재림성도 필수 목회신학 이론 : 신학사조 라는 것이 있습니까?(4)
정영근
신학사조라는 것이 있습니까?
먼저 ‘사조'입니다. ‘사조'란 사상의 흐름을 일컷지요. 한 시대를 흐르는
사상의 일반적인 경향, 곧 시대사조, 세계사조, 문학사조 그러는 것이지요.
‘신학사조'라는 것이 있습니까. 지난날을 더듬건데 그러합니다. 먼저 여기
에서부터 생각해 봅시다.
기독교에 입문하는 이들이 왜 주님을 믿고 , 왜 하나의 성경을 보면서도
그렇게 많은 교파를 파생 시키는 것인가! 하고 의아해 합니다. 사실인즉
너무나 당연한 말이기도 하지요. 그렇지요. 마치 전후의 잔해를 말하고 있
는 상 싶습니다.
그래서 기독교회사를 공부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1천여년간의 종교암흑
시대로 인해 불행하게도 망각되고 혼란되고 잃어버렸던 성경의 진리를 되
찾아내기 위해 해 온 노력이 결국 많은 파편들이 만들어진 셈이 되었습니
다. 사필귀정, 이 사실을 알고나면 대개는 쉽게 그 정황을 이해하게 됩니
다.
또 어떤 이들은 재림교회는 역사적으로 늦게 탄생한 교회가 아니냐 하는
생각을 가지면서 전통이 없고 심지어 파생한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도 하
는가 합니다. 알고보면 사실 그렇게 생각되는 대도 무리는 아니겠지요.
그런데 그 전제로 이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16세기의 종교개혁 이
후 성서적으로 밝혀진 성서교리는 교파교회들이 따로 있지만 사실상 공
유하고 있는 셈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큰 물줄기이며 그 물줄기를 타면 되는 것입니다. 미
국 북단에 미시시피강이 있는데 저 남쪽 미시시피 주에서도 물이 그리로
흘러들어가면 여전히 미시시피강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통이라는 말 보다 더 아담 해와에게로 이어지는 신앙의 계보를
갖고 중히 여깁니다. 재림교회는 그동안 공유해 온 잘 밝혀진 성서진리
위에 또 당시에 밝혀진 진리를 함께 가지고 흐르는 사실이 잘 드러나 있
는 교회입니다. 재림교회는 그 ‘밝혀진 성서진리'(계 12장)를 온 세상에
성서진리로 가속화하여 전달할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성경적으로 사
실이고 명백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또 달리 문제 하나가 붉어졌습니다. 신학이면 단순히
신학이지 신학에도 ‘사조’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곧 신학이 하나여야
지 여러 개가 있는가 라는 의아심과 더불어 강한 의문을 갖습니다.
그 해답은 예, 여러 개가 있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8세기까지는 일반적으로 성경을 단순히 하나님의 계시의 책으로 받아
들이고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사람들의 인지의 폭발시대를
맞으면서 그러면 그것이 왜냐는 식의 두뇌, 곧 지성적인 탐구가 개입되
어지고 점차 전개되어 갔습니다.
그리하여 마음으로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믿던 신앙을 머리로 재해석하려
는 경향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그동안 많은 신학사조를 이루
어 놓았습니다. 물론 이것이 기독교의 자랑이 될 수는 없지만 진리를 탐
구하고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생각이 가상한 것입니다. 일단 시작했으니
믿음의 학문이라는 신학의 사조가 많음에 대하여 아래 설명하고 그 정황
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래집니다. 다만 여기에서 이것들을 세분화 시키
거나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줄거리 이야기로 끝맺고자 합니다.
신신학
우리가 알기로는 우리나라에서는 신학의 종류 중 ‘신신학'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했는데 그 뜻은 보수주의나 전통주의 신학에 대항하는
의미에서 새로운 신학사상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신학 사상입니다. 그리
고 칼 바르트와 브르너의 신정통주의를 두고 신신학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렇게 부르는 것은 혼돈해서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다음 기회에 좀 더 설명하겠습니다.
보수주의 신학
보수주의는 매우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특
수한 학파나 교단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신학의 전통적으고 재래
적인 것을 그대로 간수하고 지키려고 하는 뜻이 다분한 신학의 방법을
말합니다.
신신학이나 보수주의신학이 각각 일단일장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
론 신학이 정중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한 의미에서 신신학이 진
취적인 것이로되 지나치게 나갈 때 그동안 큰 문제가 되어진 것입니다.
정통주의 신학
오늘날 보통으로 자기들의 견해가 제일 좋다 라고 말할 때 ‘정통주의'라는
식의 말을 사용하지요. 그런데 정통주의는 따로 있는 말입니다.
이 지구 역사에서 제일 오래 된 정통주의 교파는 1054년에 시작된 ‘동방
정통교회'(The Eastern Orthodox Church)가 있습니다. 종교개혁 이
후에는 두 개의 정통교회가 나타났는데 칼빈과 루터의 개혁사상이 쌍벽을
이루어 이론적인 면으로 제 각각 극단화시킨 것이라고 말하는데 후세의
학자들이 그것을 ‘프로테스탄트 스콜라주의'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던 나라를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 정통주의는 대개 칼빈
주의 적인 정통주의를 말합니다. 그리고 교권 싸움이 일어날 때 그 고지
를 차지하기 위해 이 말을 사용하는 예가 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로마 카톨릭교회는 그 의미가 ‘보편적'이라는 뜻으로 달리 사용하지만 자
기들의 교회가 종가라는 뜻으로 해서 일종의 정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
다.
자유주의 신학
자유주의는 보수주의와 정반대 되는 입장을 견지합니다. 그런데 ‘그 재해
석이 대체로 전통적인 해석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진다.’고 말합니
다. 왜 그럴까 하는 것입니다.
‘자유주의는 무엇이든지 낡은 것을 그대로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오늘의 시점에서 그것이 가치가 있으면 받아들이고 별가치가 없다고 생
각되면 버리자는 태도이다. 따라서 가치판단의 표준은 언제든지 자기에
게 있다.’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자유주의는 너무나 새 것을 추구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전통적인 것 가
운데에 있는 좋은 것까지도 버리는 폐단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추구가 자유주의 적인 것이 구미에 맞게 느껴
질지도 모릅니다. 말하자면 성경을 자의 해석하고자 하는 자유해석의
취향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추구는 성경적이라야 하는데 기독교학
자들(재림교회만 아니라)이 입을 모운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정통주의 신학
신정통주의는 바르트와 부르너를 중심한 신학운동을 일컷습니다. 그들
은 그들의 신학적인 성격이 정통주의의 중요성을 재강조하면서도 신학
의 새로운 방향과 재해석을 주장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칫 오해하지 말 것은 이들은 성경으로 강조하지만 오늘날의
재림교회가 말하는 성경주의와는 사뭇 다른 것입니다. 사실 바르트와
부르너는 자유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반대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
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한국 이야기입니다만 우리나라에서 이것을
신신학과 혼돈하여 함께 신신학이라고 부른 것은 잘못이라고 저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근본주의 신학
중요한 이야기가 여기에 있습니다. ‘19세기 말에 자유주의 신학이 프로
테스탄트 교회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을 때 정통주의 신학은 이에 대항할
힘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에 있던 보수주의 자들이 자유주
의자들에 반대하면서 기독교가 보수해야 할 몇 가지 근본 교리를 설정하
고 그 근본 교리를 지키려고 일대 운동을 진개 했다는 것입니다.
근본주의 란 여기에서 태동한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 가운데 성경의 무
오성,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설, 그의 신성과 대속적인 죽음, 육체적
인 부활, 등등이 있는데 이것을 보수해야 한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단
지 이것만 생각해 본다 하더래도 자유주의 회리바람이 어떻했는가를 짐
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근본주의 주장이 교회들에 남아있는데 특히 미국의 남침례교회에
서 그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셈입니다. 다시말하자면 어떤 한국 기독교
학자는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정통주의와 칼빈주의와 근본주의를 혼돈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이상의 이야기들을 생각하면서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인문주의나 종교학적인 이야기로 말하는 구원관
추구를 두고 하는 말이 전혀 아닙니다. 지금의 이야기는 성경의 한 루트
를 타고 내려오는 중에 벌어진 이야기들입니다. 한라산 상봉에서 500
미터 이내에서 표지판을 경고판이라고 생각하면서 잘 보아가면서 조심
성스럽게 내려와야 합니다. 그 표지판은 ‘오직 성경으로 가라!’는 표지판
입니다.
재림교회는 이상의 주의들을 선호하거나 따르고 있다 라고 생각하십니
까? 아니지요. 결코 아니지요. 성경의 가르침과 그 지표를 그대로 따르
지요. 결코 목마르거나 허기지지 않을 것입니다. 죵교개혁자들이 받아
들인 빛은 참된 것이었습니다. ‘은총만"(sola gratia), ‘믿음만’(sola
fide), ‘성경만'(sola scriptura)입니다.재림교회는 성경만을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