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를 하기 위하여
송봉모 (토마스) 신부 예수회 . 서강대학교 대학원 교수
신앙적인측면에서의 (용서와 화해) 대해서 알기 쉽게 송봉모 신부님께서 풀이해 주신 글을 요약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용서는 감정적으로 하지 말고 신앙적으로 하라
용서하기 위해서는 우선 결심을 해야하지요. 결심을 하면 그때부터 70%는 용서의 여정을 가고 있는거나 같습니다. 시간이 흘러간다고 용서는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제대로 상처가 아물려면 용서를 해야합니다.
2. 용서는 상대방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용서를 화해와 혼동하여 우리는 또다시 상처를 받기도 하지요.
용서는 화해가 아닙니다.
용서는 자신과 주님과의 관계이고 화해는 상대방에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상대방이 변해야 화해가 이루어집니다. 여기서 영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합니다.
깐느 영화제에서 <밀항> 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여기 영화 내용이 어머니 아들이 유괴되어 살해됩니다. 어머니는 몹시 괴로운 삶을 살다가 주위에서 예수님을 영접하면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고 하여 신앙을 받아 들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던중 주위에서 살인자를 용서하면 더큰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고 하여 고해성사를 통하여 용서 하라는 보속을 받습니다. 어머니는 교도소로 가면서 생각합니다. 살인자가 지은 죄로 무척이나 수척하고 괴로워하고 있을 거라고 교도소에 도착하여 살인자를 면담을 하는데, 살인자는 싱글 벙글 웃으며 혈색이 좋아보이며 나타납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말합니다. "나는 주님께서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평화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순간 어머니는구토를 느끼며 밖으로 뛰쳐 나오며 하늘을 보고 외쳤습니다. 누가 나보다도 먼저 저 살인자를 용서했는가.. 내가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누가 용서할수있단 말인가하고 울부 짖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어머니는 그 후로 신앙을 버렸습니다.
여기서 신부님은 용서하라고 했지 화해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용서와 화해를 혼동하는 경우이지요. 위에서 말한것과 같이 용서는 나와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화해는 상대방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적으로 용서를 결심하고 하느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용서를 청할때 '주님의 기도'를 드리면 큰 도움이 됩니다.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10년뒤 폴란드 카톨릭 평화 봉사단이 독일을 방문했을때 입니다.(폴란드와 독일의 관계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독일에 카톨릭 신자들이 방문단에게 용서를 청했습니다. 폴란드 신자들은 매우 불쾌한 표정으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중 한 신자가 "어떻게 당신들이 저지른 죄악을 용서할수 있단 말입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헤어질 시간에 미사를 함께 보면서 주님의 기도를 함께 기도하던 중 순간 폴란드 신자 모두가 기도를 멈추었습니다. 주님의 기도중 저희에게 잘못한 죄를 저희가 용서하오며 이때 한 신자가 외쳤습니다. "나는 독일사람들을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은 용서할수 없지만, 주님께서 용서하기를 도와주실 것이다" 라고..
3. 남을 용서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용서해야한다.
우리는 상처를 허락한 자신을 용서하지 않고 먼저 자신을 단죄합니다. 원수보다도 자신을 더욱 미워하기도 하지요. 자기 자신을 미워하다 보면 용서의 과정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용서하라고 하셨지 화해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4. 용서에는 "값싼 용서와 섣부른 용서가 있습니다
값싼 용서
상대방을 애써 좋게 보는 것이지요, 예를들어 아버지가 나를 학대했지만 아버지는 학대 받으며 자라셨기 때문에 그럴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하고 아버지기 때문에 덮어 버리는 것입니다.
섣부른 용서
성급하게 용서하고 덮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가해자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뉘우칠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는 갈등이 생기면 친밀한 관계가 깨질까봐 두려워 회복하기 위해서 서둘러 용서를 하는데, 진정한 용서가 아닙니다.
신앙의 선조인 요셉은 이집트의 제상이 되고 나서 기근이 계속되자 형들이 식량을 구하러 오는데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고 다섯번씩이나 혹독하게 형들을 다룹니다.
화해를 하기 위해서지요. 상대가 변해있지 않으면 화해가 되지 않습니다.
삶은 선택입니다.
우리안에 상처를 치유할수있는 분은 주님과 나 자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