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루가 나를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는다. 이건 위험하다.
루루는 본인이 7살이 아니라 15살이란 걸 종종 잊는 것 같다. 내가 19살이 아니라 27살이란 것도 잊는 것 같다.
우리는 7살과 19살에 만났고 너는 아직도 내 눈에는 귀여운 초등학생이지만 남들이 보기엔 그렇지 않다고!
면회실의 수녀님이 얼굴 표정을 바꾸기 전에, 나부터 표정을 바꿨다. 다시금 신실하고 경건한 표정. 하지만 눈빛은 학부형(대리)같이 진지해야 한다.
나는 루루의 어깨를 잡고 부드럽게 밀어냈다.
"루이자, 좋은 아침이야. 그동안 잘 지냈니?"
"너무 반가워! 앙드레가 너무 보고 싶었어. 어젯밤 앙드레가 온다는 메시지를 받고 너무 기뻐서 날뛰었다니깐! 앙드레는 그 동안 내 생각 많이 했어? 내 소식 너무 궁금했지?"
'너무'가 요즘 유행어인가보다. 루루의 천진난만하고 솔직한 표현에 내 얼굴이 느슨해졌지만 다시 한 번 학부형(대리)의 얼굴을 했다.
"네가 충실히 학교의 교육방침을 따르는지 궁금했지."
"어휴, 아빠처럼 훈계해도 앙드레는 너무 귀여워서 전혀 안 닮았어."
젠장. 역시 내 가면은 자르제가 여자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친구들에게도 앙드레 현역 시절 사진을 보여줬어. 다들 너무 귀엽다고 감탄하더라고."
"뭐라고?"
현.역.시.절?
"루루…"
나는 다시 한번 이마를 짚었다. 10대 소녀들이 내 사진을 돌려보다니.
- 하느님 이것이 그동안 저의 신실치 못한 신앙활동의 대가입니까. 아니면 비키니 모델 사진을 파일링 한 십대 시절의 보속입니까.
나는 필사적으로 1년에 2번 가는 교회의 신에게 빌었다. 제발 멀쩡하게 옷을 걸친 사진이길. 학창 시절 남자애들이 돌려보는 핀업걸 같은 노출 사진은 아니길. 최소한 사제복은 아니길.
그때 문이 열리고 세 명의 소녀가 들어왓다.
"와아, 당신이 루루의 그이군요."
"눈이 꼭 에메랄드 같아."
"속눈썹도 너무 길어. 속눈썹에 성냥개비 몇 개나 올라가요?"
나는 '그이'라는 표현이 거슬렸지만 경건한 수녀님이 다시 눈을 부릅뜨는 것을 보고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반가워요. 루이자의 친구분들. 오늘 오후 5시까지 귀가해야 하니 서둘러 외출할까요? 다른 면회객을 방해하지 않게 통성명은 차 안에서 하고요."
"꺄! 잘생긴 사람은 성대도 균형잡혀서 목소리도 좋다더니! 정말이야."
"팔짱껴도 돼요? 정말 키가 크다. 루루 너 데이트할 때 까치발 해야 하지?"
시끌벅적한 10대 소녀들을 데리고 나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지만 어쨌든 어르고 달래며 정차되어 있는 6인승 리무진까지 겨우 끌고 나올 수 있었다.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잭 아저씨."
나는 초로의 운전기사에게 인사를 했다. 잭은 모든 것을 안다는 표정으로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루루도 아저씨를 꼭 끌어안고 뒷좌석으로 달려갔다.
조수석에서 운전벨트를 메고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앙드레 그랑디에이고, 루루의 외할아버지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 루루와는 편하게 지내는 사이이니 너희들도 말 놓아도 돼."
루루의 친구들은 카푸신, 말로, 엠마라고 했다. 루루는 잭에게 말했다.
"아저씨, 라파예트 백화점으로 가 주세요."
"라파예트? 오스칼의 선물을 라파예트에서 살 거니?"
루루는 좋은 아이지만 상류층 아가씨답게 금전관념이 조금, 부족하다.
"아니야. 나는 엄마에게 용돈카드 압수당해서 50유로 밖에 없어. 카푸신이 부탁해서 가는 거야."
카푸신이라 불리는 긴 검은 머리 여자아이가 말했다.
"앙드레, 나 올해 신상 카푸신MM 리미티드를 아직 못 샀거든. 지난 주에 셀러에게서 리미티드 디자인이 들어왔다고 연락받았는데 오늘 정오까지만 홀드해주겠대서 얼른 가야 해."
"어머, 그 셀러 너무하네. 너희 엄마 이름을 대지 그랬어?"
"프랑스엔 그 디자인이 딱 다섯점만 남고 다 해외로 나갔다나봐."
재잘거리는 소리로 차안이 꽉 찼다. 나는 5자매 누님들에게 둘러싸여 자랐기 때문에 여자들의 수다에 익숙하고, 모델 사회도 비슷한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환경이 편하다는 뜻은 아니다.
"앙드레도 루이비통 쇼에 선 적 있어? 런웨이도 했었다며?"
특히 이렇게 나에게 돌발 질문을 할 때면 더더욱. 하지만 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니, 난 하이엔드 패션쇼 무대에 서기엔 체구가 너무 컸거든."
"헤에~ 엄청 날씬한데. 체구가 큰 편이라고?"
"응. 하이엔드 남성 모델은 여자만큼 말라야 유리한데. 난 골격도 크고 근육이 많아서 무리야."
"맞아! 앙드레는 몸매가 쩔잖아! 이 사진 봐봐! 내가 구글에서 찾았다고!"
이제 화살은 나에게 돌아오는 것 같다. 망할 놈의 구글. 잊혀질 권리를 뺏아가는 악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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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런웨이의 보조모델로 시작했지만 식이조절이 싫어서 이내 평범한 레디투웨어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23살이 되어 10대의 성장이 끝나고 체구가 커지면서 근육이 붙었다. 이제 에이전트는 노골적으로 노출이 많은 화보를 제안하였다.
-물은 절대 마시지 마. 슛 들어가기 전에 푸시업 잊지 말고.
에이전트는 매번 권투 트레이너 같은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는 이미지가 소모되지 않도록 관리되는 A급이 아니라 젊음을 소비하며 쓰고 버려지는 B급 모델이었다.
이것도 내가 모델을 그만둔 이유 중 하나다. 맹세코 방탕한 샷은 찍지 않았지만, 계속 그 필드에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마지막 사진은 할 수 있다면 모두 수거해서 불태워버리고 싶을 정도였으니까.(분명히 말하는데 바지는 입고 있었다!)
연리목처럼 기괴하게 꼰 포즈로 찍은 사진은 엘르 한 구석의 1페이지짜리 화보로 실렸는데, 누님들이 모두 깔깔대며 몸매가 좋다, 표정이 섹시하다, 침이 절로 고인다고 칭찬했기 때문에 나는 내 머리에 총알을 박고 싶었다.
홍당무가 된 얼굴을 들어 오스칼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모델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누구 때문에 모델일을 시작하였는데! 저런 혐오스럽다는 표정은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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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내 과거 사진을 들먹이지 말아줘!!!' 잭 아저씨가 무표정하게 입술을 씰룩거리는 것을 보며 나는 눈을 꼭 감았다.
"이것 봐. 앙드레 팔근육 너무 멋있다."
"5년전엔 이런 밑창이 유행했나봐."
다행히 엠마라는 친구가 구글에서 검색해서 보여준 사진은 평범한 러닝화 광고였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크리스마스 미사 전에 꼭 판공성사 보겠습니다.'
나는 신에게 지키지 않을 약속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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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침 운동을 하지 못해 기분이 무척 나빴다. 커뮤니티 지하의 스튜디오로 가서 매트운동을 하며 몸을 풀었지만 땀을 낼 기분이 나지 않아 바로 올라왔다.
도대체가 앙드레는 루루에게 너무 물러!
루루는 사랑스러운 조카이지만 가끔은 앙드레를 너무 편하게 대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식사와 인사 예의범절이 아닌 한 모든 것에 관대한 오르탕스 언니는 웃으며 넘어간다.
"어휴 저 나이 땐 너도 그랬어."
"언니! 전 저런 적 없어요."
"너도 좋아하는 것엔 언제나 맹공이었다고. 승마와 펜싱을 생각해봐."
10대 소녀의 변덕인 건 알지만 가끔은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도 든다. 더군다나 앙드레도 같은 마음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내 말은, 둘은 나이 차이가 너무 나지 않냐는 거지."
"뭐?"
오르탕스 언니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이윽고 웃음을 터뜨렸다.
"저 나이 때 잘 생긴 성인 남자를 좋아하는 건 흔하잖아. 심지어 모델 출신이니 자랑하고 싶지 않겠어? 어차피 곧 또래를 사귀게 될테니 신경쓰지 마."
"앙드레가 모델을 한 시기는 본인 인생 전체의 10분의 1도 차지하지 않아." 나는 짜증을 냈다.
루루는 앙드레가 모델이 되기 전에도, 그만둔 후에도 열광적으로 대시하였다. 하지만 유명하지 않아도 전직 모델이라는 딱지가 10대 커뮤니티에서 큰 메리트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게다가 앙드레가 모델이 된 계기는 순전히 자르제가 때문이고, 일부는 나의 책임도 있어서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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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몇년 전까지도 부유한 상류층 자제들을 쇼에 올리고 후원금을 받는 것이 패션 비즈니스의 유행이었다.
어머니도, 언니들도 모두 무대에 올라 후원금을 위해 존재하는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고, 결혼에 필요한 커리어를 쌓았다.
물론 전문 모델과는 큰 차이가 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사립 그랑제콜 입학이 결정되자마자(앙드레는 공립 그랑제콜 1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라코스테 SS 레디투웨어 쇼 제안이 들어왔다.
나는 당연히 거절했다.
"나는 돈 내고 동물원 원숭이가 되고 싶지 않아요. 여자를 상품화하는 패션쇼도 싫고요."
언니들은 당연히 내 말을 무시했다.
"돈을 내는 건 아버지란다. 네 입학금처럼."
"상품은 네가 아니라 옷이고요."
"페미전사님, 남자도 모델을 하잖아."
하나하나 틀린 말이 없어 나는 구석에 몰리는 기분이었다.
"맞아, 남자 모델이 얼마나 군침도는데. 빅토르를 봐. 올해 발렌티노에 섰다고."
"빅토르요? 빅토르 클레망? 그 꼬맹이가?"
나는 코웃음쳤다. 빅토르는 제로델가의 둘째 아들인데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리고 키도 작은 꼬맹이다.
"꼬맹이라니. 언제적 이야기니? 네가 하이힐을 신어야 그의 턱이 아닌 입술에 키스할 수 있을걸?"
나는 반사적으로 조제핀 언니를 째려봤다. 조제핀 언니는 초등학교 이래 언제나 숭배자를 몰고 다니지 않은 적이 없고 언니는 내가 남친이 없다는 것을 매번 이런 식으로 강조한다.
"디올 향수 광고를 찍어서 별명이 플로리앙이야. 너무 섹시하지 않니?"
조제핀 언니가 구글에서 사진을 검색해서 나에게 보여주었지만 나는 무시했다.
"이런 류의 패션 영역은 나랑은 관계없다고 생각해."
물론 힐끗 본 사진은 충분히 섹시했고 나는 향수명을 기억해두었다. 나중에 따로 찾아보려고…
클로티느 언니는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좋아! 그럼 앙드레가 서."
그림자처럼 1인용 소파에 앉아 있던 앙드레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저요?"
"잠깐! 잠깐! 어째서 불똥이 앙드레에게 튀는 거죠!?"
나는 거품을 물었다.
"저, 저는 사양하겠습니다. 제가 자르제가 자녀도 아니고." 앙드레도 손사레를 쳤다.
"라코스테는 그냥 브랜드가 아니야 조제핀 형부의 섬유 연구소에서 개발하는 신소재를 테스트해주고 있다고. 어페럴 비즈니스는 개발부터 유통까지 긴밀하게 엮여있어. 네가 안 나가면 누구라도 나가야 해. 앙드레는 키도 크고 체형도 이상적이잖아? 형부랑도 친하니 딱이지."
클로티느 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것은 언니의 수법이다. 집안, 경제, 의무를 강조하는 것. 그리고 앙드레에 죄책감을 불어넣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래서는 내가 전진할 구멍도, 뒤로 빠져나갈 구멍도 없다.
"아아 앙드레는 휴고가 딱인데! 아쉽다."
"다음 시즌 휴고 스테이지가 있으면 세워주자!"
언니들이 떠드는 동안 앙드레는 내가 앉아있는 3인용 소파로 옮겨와서 다정하게 팔꿈치에 손을 얹었다.
"오스칼, 과잉 패션이 낭비라는 네 생각은 멋지다고 생각해. 네가 원칙을 관철하며 살고 있다는 걸 모두 알고. 하지만 라코스테는 가볍게 운동할 때도, 일상생활에서도 겸용할 수 있는 소재라서 자연스러운 너랑 잘 어울려. 네 원칙과 어긋나는 브랜드가 아니라면 한 번 정도는 해보면 재미있는 경험이지 않을까?
게다가 너는 운동도 좋아하고 잘 하니까 너의 아우라가 라코스테를 돋보이게 해 줄 걸?"
나는 우물거렸다. 앙드레는 언제나 내가 물러날 수 있게 퇴로를 만들어준다.
"알았어… 한 번이라면."
앙드레는 활짝 웃었다. 그리고 언니들도 웃었다.
조제핀 언니는 서둘러 안경을 쓰고 랩탑을 켰다.
"자, 그러면 신청서를 넣을게. 앙드레 네 전화번호는 아니까, 기숙사 주소 좀 불러봐."
"잠깐만요. 오스칼이 무대에 나가니까 이제 저는 빼주셔야죠."
"아냐아냐! 둘 다 나가는 거야! 앙드레도 여자들 침 흘리게 할 수 있어, 그치?" 언니들은 당연히 앙드레의 말도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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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에서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왔다. 페르젠이었다. 페르젠은 아침에 약하기 때문에 이제 일어난 것 같다. 아침을 쓸 데 없는 생각을 하느라 다 날렸다.
나는 후원금과 스폰서십으로 돌아가는 패션쇼를 비난했지만, 그래도 그 쇼는 인생의 이정표였다. 페르젠과 키스한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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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푸신은 이국적인 마카쥬가 그려진 카푸신을 메고 자랑스럽게 한 바퀴 돌았다. "어때? 앙드레? 프로의 눈으로 봐줘."
나는 모델 업계에 있었음에도 패션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 이것도 내가 모델을 그만 둔 이유 중 하나이다.
"넌 거적데기를 걸쳐도 여자가 꼬이니까 그렇지. 아무것도 안 걸치면 더 꼬이고."
아랑이 비아냥댔지만 실은 오스칼이 패션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스칼은 활동적고 실용적인 옷만 고수했다.
오스칼은 어차피 사려고 마음 먹은 가방을 들었다 놨다 하는 일도 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당장 산다. 당장 살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필요하지 않다. 이것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오스칼의 철칙이었다. 눈앞의 여느 소녀와는 반대로.
"음, 먼저, 나는 더 이상 프로가 아니야. 하지만 너랑 화사한 마카쥬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정직하게 칭찬하였다. 카푸신은 10대 소녀답게 까르르 웃었다.
"루루가 부러워."
나는 다시 한 번 거슬렸다. 이 건은 루루와 따로 이야기해야겠다.
이모를 닮아서인지 패션에 관심이 없는 루루 3층 악기 코너에 가 있었고 말로와 엠마는 스카프를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소녀 4명을 상대하는 것은 힘들지만 1명은 어렵지 않다(라고 생각한다).
계산을 마친 카푸신은 자연스럽게 나에게 가방 상자를 건내주었다.
"음, 카푸신."
"응?"
"가방 상자를 들기 불편하다면 차에 놓고 오는 게 어때? 내가 주차장까지 함께 가줄게."
카푸신은 몇 초간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고개를 떨궜다.
"미안해요 앙드레." 소녀는 부끄러워했다.
"괜찮아. 다만 나는 너희의 보호자이지 짐꾼은 아니야."
물론 나는 저런 류의 소녀들이 보호자인 아버지나 남자친구를 짐꾼처럼 부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상류층 아가씨의 아버지도 남자친구도 아니다. 짐꾼은 더더욱 아니었다. 오스칼도 자신의 짐을 나에게 당연한 듯 맡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짐은 네 말대로 차에 갖다놓을게. 같이 가 줄래?"
역시 한 명은 상대하기 쉽다. 카푸신은 예의있는 소녀여서 수월하다.
세 명의 소녀들은 브런치 카페로 보내고 우리는 주차장까지 내려갔다. 잭 아저씨는 없었지만 보조키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카푸신에게서 가방 상자를 받아들고 트렁크에 넣었다. 트렁크를 닫고 카푸신을 돌아보며 웃었다.
"무겁지는 않았지?"
카푸신은 눈을 빛내고 뚫어져라 나를 보고 있었다. 어둑한 조명 아래에서도 뺨이 핑크빛으로 물든 것을 눈치챘다.
나는 소름이 끼쳤다.
'아아 이건 위험하다!'
내 머릿속에 경고등이 켜졌다. 역시 한 명이 더 어렵다.
'그냥 가방모찌나 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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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쇼의 주연은 옷이다. 아니 패션 그 자체이다.
하지만 리츠 호텔에서 열린 라코스테 쇼의 주연은 옷이 아니라 파이널리스트인 비전문 '자칭 모델'들이었다.
옷들은 편안하고 각자의 단점을 보완해줄 디자인으로 섬세하게 수선되었다. 쇼가 끝난 뒤엔 입은 옷과 번들을 그대로 사가는 것이 관례이다.
나는 총 세 번 갈아입게 되어 있있었다. 물론 모든 옷은 언니들이 사전에 신중하게 검토하였다.
붉은 유니섹스 피케셔츠, 흰 면 바지. 가슴에 흰 장미.
소녀같이 풍성한 흰색 드레스에 라일락색 벨트.
푸른색 베이스의 스트라이프 셔츠에 통 넓은 맥시 팬츠.
서는 모델도 많고 보조 인력이 많았기 때문에 옷 갈아입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화장이나 헤어도 모두 전문가들이 해 주었고 우리 '모델'들은 가장 예쁜 표정으로 걸은 후 사교 잡지에 실릴 인터뷰 준비만 하면 되었다.
패션쇼는 싫었지만, 일단 무대에 서기로 한 이상 최선을 다해 워킹 연습을 했고 동선을 낱낱이 외웠다.
무대 리허설에서 앙드레는 파이널이 아니었다.
"현장에 남자 전문모델이 부족하니까 그랑디에군은 파이널이 아니라 이쪽에 서렴. 키도 커서 딱이야."
키는 핑계였다. 앙드레는 금수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금수저 남자들은 다리가 조금이라도 길어 보이게 바지컷을 섬세하게 조절받고 있었으니까. 자르제가가 후원금을 두 배로 내지 않는 한 앙드레는 파이널에 서지 못한다.
'이딴 어릿광대 짓, 다시는 안 한다.'
나는 화도 나고 실망도 했지만 쇼 당일 화장한 그의 모습을 보자 배를 잡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앙드레는 하루 종일 먹을 시간이 없다는 언니들의 충고에 간식으로 챙겨온 사과를 나에게 건내주기 위해 탈의실 앞으로 나왔는데, 눈썹, 속눈썹, 입술을 하얗게 칠하고 있었다.
"뭐야, 밀가루 뒤집어쓴 제빵사 같아."
나는 눈물로 화장이 지워질까봐 걱정할 정도로 웃어댔다. 앙드레도 크게 웃었다.
"이렇게 입으니 너는 참 예쁘다."
나는 웃음을 지우고 심퉁맞게 대답하였다.
"장미 장식이나 라일락색 벨트가 나를 바꾸는 건 아냐."
"응. 붉은 피케셔츠를 입어도, 흰 드레스를 입어도 너는 분명히 너야. 그리고 너는 언제나 예뻐."
나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남자든 여자든 나를 만난 사람들은 과장될 정도로 내 외모를 칭찬한다. 하지만 앙드레는 10년 넘게 지내면서 내 외모를 입에 담은 적이 없었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앙드레는 서서히 웃음을 멈췄다. 그리고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하얀 속눈썹 아래 떨리는 눈동자를 보고 잠깐 묘한 느낌이 들었다. 눈 색은 악어 색깔과 같았다. 속눈썹까지 밀가루를 뒤집어쓴 제빵사 모습이 아니었다면 내 심장이 아랫배까지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앙드레가 천천히 고개를 가까이 했다.
최근 앙드레는 키가 많이 컸고, 통굽 로퍼도 신고 있어서 나는 고개를 많이 들어야 했다.
그때였다.
"흰 드레스에 라일락색 벨트의 아가씨. 네가 이렇게 예쁜 줄 몰랐어."
첫댓글 눼이님 ㅠㅠ 천천히 오래 연재해주세요 ㅠㅠ 아니 무슨...퇴근길 지하철에서 휘리릭 쓰신 거 아니에요? 근데 몇달을 구상하신 것처럼 이렇게 섬세하게 설정하기 있긔 없긔!!!
카퓌신ㅋㅋ 아 '내가 아는 카퓌신은 가방이름인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진짜로 나오네요 ㅋㅋ
티비에서 애절한 노래가 나오는데 오스칼이 페르젠 생각하는 대목 나오니 왜 벌써 차인 것 같고 괜히 슬프죠 ㅠㅠ
아랑이 앙드레 퉁박주는 것도 넘 웃겨요 ㅋㅋㅋ 잘생긴 남자로 다시 태어나고 싶네요 ㅋㅋㅋ ㅠㅠ
그르게요. 신들렷나 설정이 막 나오네요? 저도 스스로 놀람. 근디 아직 커플링을 못정했고 다음 화에서 오펠 키스신 끝내주게 쓰는 게 목표인데 로맨스필력이 없어서 영원히 못쓸거 같네요 ㅋㅋㅠㅠ
루루친구 이름은 알마로 할까 하다가 요즘 아기들 이름중에 카푸신이 많다는 말 들어서 즉흥적으로 바꿨습니다 ㅋ 카푸신×앙드레 어떠신가요 ㅋ 가방모찌남
존잘남으로 다시 태어나면 어떤 기분일까요. 크흣 매일매일이 행복할듯요 ㅠ
아아아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꺄아~~ 분량도 은혜롭삽니다^^ 가방모찌를 거부하는 자존감있는 앙드레 너무 좋네요! 종놈 포지션 땜에 늘 안스러웠는데 흐흑. 그러나 다음순간 가방모찌나 할걸 후회하는..!ㅋㅋㅋㅋ
오스칼 자매들 사이에서 대등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섞여있는 호구드레 넘 매력적인데요? 앙드레 외모 묘사도 넘 좋아요^^
빅토르 별명이 플로리앙이 된 이유 넘 기발하네요~ 오스칼 라코스테 모델하는 것도..^^
모든 설정이 찰떡! 진짜 신들리셨나봐요.
마지막 대사는 누가 한 건지 한동안 고민했다가 아하~ 했답니다.ㅋㅋ
그나저나 눼이님 패션업계에 대해 해박하시네요~ 전혀 지식이 없는 저는 그저 놀랍고 흥미진진..!
담편 빨리요ㅜㅜㅜ
앙드레는 대놓고 트로피남, 오스칼은 샴페인좌파로 묘사하니까 완전 쉽네요. ㅋㅋ
플로리앙은 이름 넘 맘에 안들어서 바꿔벌임ㅋ 내키는대로 갈겻기 때문에 더 쓸 진 모르겠지만 일단 빅토르 플로리앙은 현역으로 설정했어요. 일하면서 업무에 도움되라고 모델을 병행하는 컨셉입니다.
앙드레는 유명하지도 않고 전직이라 만만하니 희롱당하지만 빅토르 플로리앙은 감히 플러팅 못할 포지션으로요.
저 패션 전혀 몰라요. 주변 경험담 다 섞어서 만들었어요 ㅋ 챗gtp 빙의해서 온갓 정보 재구성ㅋㅋㅋ
갑자기 이 분 생각나네요. 너무 섹시해서 UCL 수학교수 하다 그만둔 피에트로 보셀리.
어머나 이런 보석같은분이... 진짜 몸좋고 머리좋은 귀염남이네용. 이런 분이 제 교수였다면 나도 학교 안빼먹고 잘 나갔을텐데 ㅋㅋㅋ
여학생들이 거위배를 갈랐군요. 사실 여자집단의 성추행도 만만찮죠. 남자들만큼 직접적이지 않아 처벌도 어렵고 ㅠㅁㅡ
루루 친구들이 빤쮸(또는 사제복) 사진 돌려보면 앙드레는 혀깨물고 싶을 듯
@눼이 거위배를 갈랐죠. 바부팅이들ㅠ
포스팅 올린 사람들도 다들 이분께 배웠음 수학 잘했을 거라느니, 배운 적은 없지만 나의 교수님이 맞다느니 ㅋㅋ
이게 울나라랑은 달리 교수라고 학생들이 기죽지(?) 않으니 섹시한 젊은 교수가 더 만만한 취급을 당한 것 같아요ㅎ 여학생들은 찝쩍대고 남학생들은 놀리고.. 인터뷰 보면 학생들 때문에 상처받고 스트레스가 엄청났다고ㅠ 근데 이분 모델 시절 사진들이 죄다 벗고 찍은 사진들이라;;;;; 전업하시곤 더더 대놓고 끼를 발산하시더만요. 검색해보시면 많이 나옵니다 ㅋ
@유리바다 보면서 새삼 대학시절 수학 문제풀이 시간이 생각났네요. 오징어(조교)와 오징어들(학부생들)이 서로 동태눈을 뜨고 피차 칠판만 바라보던 아름다운 면학의 추억..크흡.
조교(속마음) : '아까운 내 시간을 이 돌대가리들한테 쓰고있네'
학부생들(속마음) : '아 졸려.. 개어렵'
끝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고.
어찌나 수학에만 집중했던지.(+숙취)
@유리바다 아 ㅎㅎㅎ 수학 때문에 울고불었던 저는 신기해요 ㅋㅋㅋ 대학입학의 의의가 더 이상 수학 안해도 되는 것에 있었던 ㅋㅋㅋ근데 고등학교 때 이과에 공부 잘하는 친구들도 칠판에 나가 수학 문제 푸는 건 공포스러워하던 게 인상적이었어요 쟤들도 부담스러워하는구나!
@alexis 저도 이공계 대학 가고 후회했어요ㅠ 4년간 오지게 고통받으며ㅡㅡ
버뜨.. 저런 샘이 있었음 수학과로 전과했을지도?ㅋㅋ
@유리바다 내츄럴리 끼가 있으니 강의 시에도 쫄티 입으셧겟죠.ㅋ 근데 저런 쌤이 가르치시면 얼굴 보느라 수학공부 안했으려나?ㅠㅠㅠㅠ
앙드레는 쫄티 안입지만 회사에서도 도촬 엄청 당한다는 설정입니다. 빅토르는 아니고요. (계속 쓰게 된다면 이유는 나중에 나옴 ㅋ)
소싯적 알바로 했던 모델 사진을 강의듣던 여학생이 퍼뜨려서 학교에 소문 다 나고.. 학생들 추파에 하도 시달려서(성추행까지ㄷㄷ) 교수직 때려치고 전업모델로 전직했다는 전설의 교수님. 아르마니 모델도 하시고.
앙드레도 이런 느낌이었을까요?^^
팬픽방은 최신글에 안 떠서 올라오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후기글 보고 첨부터 읽고 있어요~.
앙드레… 젠틀하고 말도 조곤조곤 차분하게 잘하는데 생각은 요동치고 있는게 넘나리 귀엽네요 ㅎㅎ
오스칼 눈에는 불가사의하게 조용하고 침착해보이지만 속으로는 몸을 맞대고 싶다! 네 모든것을 갖고싶다! 외치는 앙드레 답지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