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핀핀핀
책 아무튼, 비건 [김한민]
을 읽다가 부분 발췌
우리 모두의 종교
“넌 한국 사람들이 뭘 믿는다고 생각해?”
미처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에 머뭇거리는데, 친구는 이미 멋진 답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우리가 믿는 건 신도 아니고, 국가도 아니고, 가족, 친구, 학벌, 돈, 부동산, 성공도 아냐. 이 모든것보다 더 근본적이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건 ‘세상은 안 변한다’는 믿음이야. 어차피 나 혼자 애쓴다고 변하는 건 없으니 남들 따라 편하게 적당히 즐기다 가자는 주의, 복잡하고 골치 아픈 사회문제는 나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최대한 외면하는 태도, 뭔가 바꿔보려는 사람에게 ‘네가 얼마나 잘났길래’라며 멸시하는 반응, 모두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 내린 이 믿음에 기반하는 거야,”
들으면 들을수록 신통한 해석이었다. 물론, '안 변해'교 신도들이 모두 염세주의자라는 말은 아니었다. 그들도 어떤 종류의 변화는 믿는다.
좋은 대학을 가면 성공한다는 믿음, 잘만 하면 정권을 바꿀 수도 있다는 믿음, 수술로 외모를 고치면 삶의 질이 나아진다는 믿음, 축구 대표팀이 상위 랭킹의 팀을 꺾을 수 있다는 믿음, 운이 억세게 좋으면 로또를 맞을 확률이 있다는 믿음은 존재한다.
그러나 누군가 내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인 변화를 진지하게 거론하기 시작하면, 깊은 회의와 적의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가령, 비건처럼 인간-동물 관계를 재정립하려면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되고, 그 변화는 윤리적으로 아픈 곳을 건드리기도 한다. 그러니 곧바로 거부감을 표출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상당히 진보적인 줄 알았던 사람조차 한순간에 극보수로 변모해 기어코 저 레퍼토리, '안 변해'교 신자들이 가장 즐겨쓰는 말들을 내뱉는다.
"참 피곤하게 사네."
"너 혼자 그런다고 변해?"
"세상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아."
누군가는 말했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온갖 문제점을 알지만 그 시스템에 너무 젖어 있어서, 지구의 멸망은 상상할 수 있어도 자본주의의 멸망은 상상하지 못한다고. 상상력이 부족하면 변화에 회의적으로 반응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세상이 하루아침에 변할까 봐 가장 두려운 듯하다. 그들은 종종 비건들에게 따져 묻는다. '모두가 비건이 되면 그 많은 가축들은 어쩌나, 일대 혼란이 일어날 거다. 축산업계 종사자들의 생계는 어쩔 셈이냐?" 당치도 않은 걱정들이다. 그들은 그저 문제를 직면하기 싫은 거다. 남과 후세대는 아무래도 좋고 나만 편하게 살다 가면 그만인 거다. 그래서 변화를 거부하고 변하려는 사람까지 멸시하는 것이다.
변화를 믿는 사람들
반면,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근본적인 변화를 받아들여 일상에서 실천하는 이들도 있다. 그것도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아직 한국에는 적지만, 전 세계에서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대체 어떤 인간들일까? 변화를 위해 몸을 던지는 활동가 유형도 있겠지만 이들은 극소수다. 어떤 문제를 자각했을 때 "최소한 나라도 저 문제에 기여하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다소 소심하게나마 변화를 믿는 사람들. 내가 매일 세 번 밥상에서, 식당에서, 마트에서 던지는 한 표 한 표가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아는, 그래서 최소한 내가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공헌하는 습관만은 관두겠다다고 결심한 사람들. 소중한 결심이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힘든 일은 아니다.
가령 최근에 진행된 '미투운동' 에 빗대어 생각해 본다. 성범죄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직도 수많은 장애물들이 남아 있다. 뿌리 깊은 성차별을 나 혼자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 문제의 규모에 압도당해 아찔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 한 명만이라도 성추행/성폭행을 하지 않는 건 상대적으로 매우 쉬운일이다. 이것조차 못하겠다면 말이 안 된다.
한 개인이 가장 큰 파급 효과를 줄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의 저자인 심리학자 멜라니 조이는 현재의 보이지 않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육식주의' (carnism)'를 꼽았다. 이는 현재 한국에도 팽배하다. 비건에 도전해본 사람은 잘 알고 있다. 좌절스러운 경험도 적지 않고. 아무리 해도 이 거대한 물결을 거스를 수 없을 것 같은 무력함도 있다. 그러나 절망하긴 이르다.
사회의 지배적인 시작이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처음에는 소수 의견으로 시작되는 생각이 점점 퍼지면서 사회 전체의 9퍼센트에 이른다고 치자. 이때까지도 이렇다 할 변화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10퍼센트라는 임계점에 도달하면, 그 의견은 어느새 주류 사회의 의견이 된다. 예를 들어, 동성애자 결혼 합법화에 대한 찬성 의견이 10퍼센트만 되어도, 그 생각은 사회에서 주류적인 생각 중 하나로 받아들여진다는 뜻이다.
이 이론을 알고서 해외 사례들을 보면 힘이 난다. 영국, 미국, 독일, 스웨덴, 이스라엘 등에서 이삼십대 젊은이들은 주축으로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영국의 경우에는 2016년 기준으로 지난 10년 동안 비건 인구가 360퍼센트 늘어났고 계속 증가 추세이다. 영국 인구의 절반이 '비건식 소비 패턴'을 보이고 있고, 영국 전역의 저녁 식사 넷 중 하나가 채식이라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독일에서 식음료 제품 열 개당 한 개가 비건 제품이라는 놀라운 통계에 이어, 급기야 유럽인의 50퍼센트가 육식의 문제점을 깨닫고 의식적으로 육류 섭취를 줄이고 있다는 설문 조사까지 나왔다. -중략-
한국에서도 2016년에 '비건 페스티벌'이 처음 개최되어 현재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성공리에 치러졌는데
매년 참가 인원수가 폭발적으로 늘며 기록 갱신 중이다. 이제 하루에 1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다녀가는 이 페스티벌을 단 세 명의 여성 비건들이 시작했다. 불모지에 희망의 씨앗을 뿌린 존경스러운 개척자들이다.
-중략-
이들이 있어 한국의 비건 운동에 대해 나는 비관적이지 않다. 이런 힘들이 모여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 아니 우리는 행동으로 증명할 것이다. 비건은 평범한 개인이 지구와 동물들,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가장 효과적이로 강력하게 도울 수 있는 운동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 책 아무튼, 비건 [김한민]
직접 타이핑 한거라 오타 있을 수 있어요.
비건 관련 글이지만 요즘 제로웨이스트 실천하는 사람들에게도 맞는 글 같아요.
변화를 이루려는 작은 개인들의 커다란 하루. 오늘도 힘내세요.
문제시 알려주세요!
첫댓글 나도..세상변한다곤 생각 안하는데.. 근데 걍 요즘 고기 두번먹을거 한번먹고 물건도 잘 안사고 그럼. 걍 왠지 그래야될거같아서... 세상이 변하든 안변하든간에.
투표나 성추행에 빗대어 이야기 한 부분이 너무 좋다..나도 가끔씩 이게 정말 소용없는 일일까 하고 흔들릴 때 이 생각 해여지
요즘 여시에 이런글 많이 올라오는것 같아서 너무 좋다 다같이 노력해야해
변하든 변하지 않든 내가 행동한다는것에 의의가 있지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것이 누군가에겐 귀감이 되고 영감이 되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바뀔 수 있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없어 바꿀 수 없던 일들을 바뀔 수 있도록 하는 날이 올거라고 믿어
일단 내가 변했으니까.. 내가 변했으니까 나처럼 하나둘씩 변해갈거라고 믿고 더 노력하는중 ㅠㅠ
이 책 비건에 관심있음 읽어보는거 추천! 입문책으로 좋아
3년째 페스코로 살고있는데 당장 내 주변 사람들에게라도 영향을 주고 있어 노력해봐야겠다는 사람들도 있고! 이거 하나가 굉장히 유의미하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