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에 정선을 경유해서 펜션 "비 개인 후"로 예약을 해 놓은
정호씨 가족이 엇 저녁 6시 즈음에 조침령 터널로 해서 도착을 했다.
@ 6월 6일 현충일에 "백호"는 다섯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방태산으로 가기 전에 새끼를 낳을 징후로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산에 다녀 왔더니 그새 그렇게 줄줄이 새끼를 낳았다.
부모님께서는 검은 놈이 한마리 섞여 있다고 이상해 하신다.
벌써 부터 윗집, 의정부에서 한분 예약을 해 놓은 상태인데.....
서로 인사를 나누고는 미리 준비를 해 온 삼겹살과 반찬 등으로
함께 주거니 받거니 소주를 마시다 보니 3병이 거의 비워졌다.
나와는 함께 군대 생활을 같이 한 전우이지만 나이는 동갑이고
나보다는 한 달 입대가 늦지만 군대 생활을 지겹지 않게 참 재미있게
지낼 수 있었던 절칠한 친구지간이기도 하다.
@ 지난번에 분명히 꽃을 피웠었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또 다시 꽃을 피우고 있다.
그래서 그 옆의 노란 선인장도 꽃을 다시 피우지 않을까 기다리고 있다.
올해 초 사당역에서 함박눈이 내릴 때 군대 친구들 모임 이후로 오랫만에
이렇게 서울이 아닌 인제에서 만나게 되니 너무도 반갑다.
중학교 2학년 딸과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은 토끼들이 너무도 신기한 모양이다.
핸드폰으로 토끼 사진을 찍느라고 엇저녁 그리로 오늘 아침까지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모습이 내가 보기에는 신기하다.
@ 木鳥와 함께 가족 사진을 한장 담아 보았다.
만나면 했던 얘기를 반복하기도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도 술 한잔 나누면서
그 땐 그랬지 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즐겁다.
그렇지만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전우들은 지금은 무엇을 할까?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정말 궁금한 이들이 많다.
내가 쓴 편지를 꼭 검열하면서 글솜씨가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던 서치관하사.
학교 교사 생활을 하다가 입대한 전남 고흥의 박태균하사.
빼빼한 체격에 멀뚱히 키가 컷던 경북 봉화가 고향인 헌병대의 금석삼병장.
다른 내무반이었지만 나보다 한참 후배인 곽유진 병장은 지금도 구미에 있지 않을까?
경남 밀양이 고향인 후배 배종덕병장도 요즘 살이 좀 붙었을까?
한 아이의 아버지로 군대에 입대해서 늘 조용했던 후배 장태후 병장은 전남 화순이 고향이었다.
이 외에도 일일이 적을 수는 없지만 그 시절 젊음을 같이 했던 모든 전우들이
보고싶을 때가 특히나 이렇게 그 시절의 전우 친구들을 만날 때이다.
그 중에 제대를 하고 나서도, 콜롬비아 유학을 가서도 끊임없이 내게 편지를
보내주고 안부를 물어주었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함께 산에 가자면서
서울과 원주를 각각 출발해 설악산, 치악산 등에서 만나 시간을 보냈던
후배 양진선 병장은 지금은 고인이 되었다.
그 때 고대병원에 입원해서 수술을 받는다고 면회오라고 했을때
난 알았다고 하고 잊고 지냈다가 그 후에 청주 인테리어 공사때
만날양으로 전화를 했다가 그의 아내로부터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그 충격은 너무도 큰 것이었다.
특히나 그 때 면회를 오라는 뜻을 헤어리질 못하고 그렇게 멀리
보내게 되어서 더욱 더 안타까웠다.
멀리에서도 국문학도답게 좋아하는 글 쓰면서 詩도 지으면서
자유인으로 여행을 다니면서 편히 지내기를 빈다.
그런 추억을 끄집어 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밤이 깊어간다.
아침이 밝아 2박 3일 동안의 여정을 마무리한 정호씨 가족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는 떠날 채비를 한다.
하루 더 머물면서 여기 저기 안내를 해주고 싶었는데,
꼭 서울로 돌아가야만 한단다.
아쉬운 마음 그지없다.
그렇지만 많은 친구들 중에서 나라도 이런 곳에서 자리잡고 있다보니
한 편으로는 대도시가 고향인 친구들에게 고향 처럼의 휴식처를
제공할 수 있어서 대행스런 면이 있기도 하다.
언제나 지금처럼 늘 변함없는 모습으로 인연의 끈은 이어질 것이다.
20년 가까운 세월을 그래도 잊지 않고 잊혀질만 할때
한번씩 연락이 와서 만날 수 있게 해준 친구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