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거실창의 밖은 한겨울이다.
따라서 입는 순간 따스함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바지를 찾는 계절이 왔다. 홈쇼핑에서도, 이런 종류의 바지를 판매하는데 한창 열을 올리고 있다. 업체측에서만 본다면, 지금 판매를 하지 못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재고가 쌓인다. 홈쇼핑TV에서는 겉보기에는 미스같지만, 실제로는 애기 엄마인 쇼핑-호스트들이 그 바지를 입고서는 난리도 아니다. 허리춤을 자주 걷어 올려가며, 또는 뒤집고 또 까면서 설명에 침을 튀긴다. 바깥 기온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예전에 시골의 할아버지들은 핫바지스타일의 솜바지 하나로 눈 내리고 바람까지 불던 그 추웠던 겨울을 버텼다. 회색천으로 된 넓은 바지통 안쪽에 얇은 솜을 넣고 바느질하여 만든 두툼한 바지! 이 바지를 허리춤까지 올라오도록 잡아 올리고, 허리끈을 질끈 묶으면 그만이다. 윗도리는 인조털이 두툼한 털옷을 적삼 위에 입고, 머리에는 인조털로 만든 모자를 눌러서 쓴다. 비록 소련동무들이 쓰는 것과 재질은 비슷하였으나, 모양새는 조금 달랐다. 목에는 털실-시골에서는 일본어와 혼용한 '게목도리'라고 했다-로 짠 목도리를 휘감았다. 신발은 반짝이는 검정색의 털신을 챙겨 신었다. 그만하면 최고급이었다. 그렇게 갖추어 입고 한겨울을 지냈다. 그리고 가끔 제법 크고 튼튼한 °철(鐵)TB°를 타고, 읍내 장에도 가고, 마실도 다니고, 이웃집 집안일에도 참견을 했다.
°철TB°-카본이나 알루미늄 등의 고급재질이 아닌, 그냥 쇠붙이로 만든 자전거를 칭하는 것으로, 자전거타는 사람들 무리속에서는 속어로 이를 철TB라고 한다. 약간 얕잡아보고 하는 말이다.산악자전거인 MTB에 비견되는 말.
우리들도 소싯적에는 맨살에 바지 하나만 입고, 비록 추위는 느꼈지만 잘 버티면서 겨울을 보냈다. 또한 그것이 나름대로 젊은이들의 멋이었다. 내복을 입는다는 것은 젊은이임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자기최면이 필요하기도 했다. 비록 버스정류장에서 살짝 덜덜덜 남모르게 떨지라도...
지금에야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자식이 첫 월급을 받게 되면 내복을 한 벌씩 사서 부모님에게 드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요즘에는 약간의 돈봉투로 대신하지만... 아마도 그당시의 미풍양속이었으리라! 어머니에게는 빨간색 내복을, 아버지에게는 회색빛 내복을 주로 선물해었던 것 같다. 그러면 그것도 아까워서 금방 꺼내서 입지 않다가, 한참이 지난 후에나 꺼내 입곤 하셨드랬다. 내 친구의 어머니는 그 메리야쓰박스가 금고의 역할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약간의 금부치까지 넣어 보관했는데, 이사를 하는 도중에 손을 타서 그 귀한 것을 몽땅 잃어 버렸다는 어이없고도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참으로 어렵게 살아갈 때였다. 유래는 잘 알지 모르지만, 남들이 모두 다 그렇게 하니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었으리라! 아니면 내복회사들의 마케팅활동이었을까! 나의 첫 직장은 옷이란 옷은 양말부터 양복까지, 속옷부터 겉옷까지, 남자옷부터 여자옷까지 모두 만드는 회사였으나, 그것이 마케팅 때문이었지는 모르겠다. 들어본 바가 없다.
나도 어느덧 겨울에 따뜻한 바지를 찾는 나이가 되었다. 집밖에서는 물론이고, 집 안 거실에서도 가능하면 입어서 따뜻한 바지를 즐겨 입는다.
나에게는 예전 직장에서 직원들에게 선물로 지급한 겨울 트레이닝복이 한 벌 있다. 프로스펙스에서 만든 것으로, 안감은 따뜻한 재질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디자인이 No Good! 즉, 영 파이라는 것이다. 하여, 재고로 많이 남아 돌던 것이라는 인상을 짙게 받았다. 가격이 저렴했나? 내 기억에 단체복은 대부분 디자인이 No Good이었다. 졸업 ○○주년 기념행사의 단체복도 마찬가지다. 물론 한정된 예산이 제일 큰 이유겠지만... 색깔도 검정과 빨강, 두 종류밖에 없었다. 나는 과감히 빨강을 골랐다. 그 옷을 십년도 더 입은 것 같다. 디자인이 No Good이었지만, 맨살의 다리를 쓱- 바지통으로 밀어 넣는 순간, 따스함이 종아리부터 허벅지까지 확, 그리고 금방 올라온다. 포근하다. 그 따스함을 포기할 수 없었다. 또한 빨강색이라 초겨울 김장철 패션으로는 딱 안성맞춤이었다. 빨간색 고추가루가 묻어도 그만이고, 빨강색 김치속의 국물이 튀어도 그만이다. 그러니 고무줄이 헬렐레 늘어났거나 말거나, 겉감에 잔주름과 묵은 때가 쪼록쪼록 하거나 말거나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몸에만 편하면 그만이었다.
요즘의 아파트는 예전보다 난방이 우수하여 내복장사는 점점 매출이 줄어든다. 반면에 겨울철 겉바지의 질적 발전이 눈부시다. 모양은 양복바지 스타일인데 안감은 따뜻한 재질이다. 그냥 겉보기에는 청바지인 것 같은데도 뒤집으면 털이 빵빵하다. 골프복바지도 마찬가지다. 종류도 참으로 다양하다. 한마디로 기가 막히다.
우선 안감이 따뜻한 '기모'가 있다. 기모는 일어날 기, 털모라고 일부러 천에 보풀을 일게 만든다는 것이다. 처음에 나는 무슨 일본말인가 생각했다. 그리고 '본딩'이란 것은 성질이 다른 두 천을 본드, 즉 붙이는 것이다. 이것은 꽤나 높은 수준의 기술이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 또 다른 방법은 '패딩'이다. 패딩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예전에 할아버지들이 입었던 솜바지가 요즘으로 말하면 일종의 패딩바지인 것이다. 다만, 재질이 솜에서 오리털과 거위털이 되었다고나 할까! 이것보다 조금 더 정성이 가득 들어간 우리의 패딩옷은 아마도 누비옷이라고 할 것이다. 산사의 검약한 노승들이 즐겨입는 누비옷, 소매단이 헤어진 그런 누비옷.
나는 지난 주말에 허름한 마트에서 헐렁한 가격을 지불하고 겨울바지를 1장 구입했다. 가짜털이 안감에 장착된 막바지다. 기존에 즐겨입던 빨간색 트레이닝복, 허리고무줄의 힘이 다한 그 바지를 버릴때가 되었다. 앞으로 얼마간은 이 싸고 따뜻한 검정색바지를 내내 즐겨 입을 것 같다.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하지만 마음은 벌써부터 따뜻해 진다.
첫댓글 어렸을 적에 점빵이라는 곳,그곳엔 별의별 먹거리가 많았지.이 글을 읽노라니 마치 점빵 앞에서 맛난 과자들을 고르느라 설레었던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 시절 불량식품처럼
빨간 츄리닝을 입은 네 모습을 상상하며
오랜만에 혼자 키득거린다.😁😁
점빵!
정이가는 단어!
그 집 아이들은 어깨에 힘주고 다닐때였지!
유진의 선한 댓글에 감사!
대설이라나 뭐라나..말등이 많아서 두세번 눈치울 생각하고 1차 제설작업을 했다.
태생이 느려 1시간쯤 걸린다. 조금은 지친 몸으로, 밀린 대금 송금을 위해 pc앞에 앉았다.
언젠가부터 춥고 눈치워야 되는 겨울이 싫어졌다. 피할수없고 선택지도 없다(해야만 하니까ㅠ)
우쨌든 pc를 켜고 습관적으로 들어온 카페에 또다른 겨울이야기가 있구나
너무 추웠지만 왠지 따뜻했던 어린시절의 겨울로 나를 데려다 주는듯한..
얇은 홑 '추리닝' 바람에 눈치우는 아버지도 보이고, 눈와서 한잔했다는 솜바지입은 뒷집 아져씨도..눈싸움하다
진짜로 싸움붙은 동네아이들도 보이는군ㅋ
상수 글 읽는 재미는 꽤 쏠쏠하다. 일단은 마음이 편안해지고 훈훈해진다.
이어붙이기 애매할수도 있는 것들이 자연스레 흘러서 읽고나면 놀란다. 아니?! 이렇게 많은 내용이..
추억소환에..재미에..토막상식까지!! 심심한 백수입장에선..고마울 지경이다!! ㅎ
놀다보이 눈이 또 쌓였네. 눈치우러 간다!
정남이, 허리가 많이 아프겠다.
나도 스키장에서 눈을 많이도 치웠는데, 후배가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 형, 그래도 하얀게 내리니 다행인 줄 알아요, 시커먼게 내린다고 생각해봐요, 키득키득 '
그러면서 나를 나무라곤 했다.
그래도 내가 내 집앞에 쌓인 눈을 내가 치울 수 있을 만큼 힘이 있는게 얼마나 좋은가? 나중에는 그것도 불가능해서 아타까울 수도 있는데...
@김상수 ㅋㅋㅋ 시커먼게 내린다고 생각하라니....한참 웃었다.
까만 스키장은 재앙일거야🤣🤣
친구의 반가운 글.
여기서 언급한 반가운 글은 마치 벽시계처럼 일정 시간이 지나면 또 그자리에서 보게되는,
지나갔던 시계바늘 처럼, 또 만나게 되서 반갑다는 의미와 같은 반가움이다.
얼마 안되는 친구들이,게다가 카카오계정으로 바뀐 카페 출입 방법으로 채 바꾸지 못해
(빈약한 컴퓨터 이용 실력이 원인이다) 카페에 들어오고 싶어도 못하고 있는 대다수 동기들
까지 제하면,불과 서너명에 불과한 이용 가능한 친구들 중에서 글과 댓글도 달지 못하는 동기
마저 제하면,출입과 댓글 가능한 동기는 몇명 뿐이다.
얼마전 통화를 통해 바뀐 카페 출입법으로 카페에 들어가지 못함을 하소연 하던 딱한 동기들
사정~~~ 하지만 그 방법을 설명 못하는 입장(미남도 아들래미 도움으로 출입 방식을 바꾼
경우이다^^)이라 딱하긴 마찬가지다. 재길이(재길이는 12월 하순때 회사 동료들과 또 태국을
찾았다.여행 겯들인 골프여행이었다) 에게 동기들의 딱한 사정을 말하며, 이 사태를 시정할
능력과 실질적 실력을 가진 인물은 너뿐이니
조속한 시일내로 조치를 취하라 했건만,그렇게 하겠다고 답한 재길 역시 뾰죽한 방법을
찾지 못한 듯하다. 딱한 경우가 겹으로 닥친 꼴이다. 어디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상수의 글에 댓글 중에 딱한 현실만 늘어놓고 말았다.
다시 원위치로 복귀해 본다.
이러한 사정에 처한 딱한 현실에서 그래도 꿋꿋한 자세로 반가운 글을 써주는 상수가
있어 고마운 마음 대단하겠다.
지난 주말에 매장 찾아 구매한 겨울용 검은 바지를 소재삼아 어린시절에 겪었던 흡사
'전설따라 삼천리'식의 옛 이야기를 구수하게 엮은 글을 보니,어느새 모두는 옛 시절의
주인공이 된듯하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다들 옛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는 적당히 나이
먹은 준 늙은이가 된듯한데~~~~
상수가 말한 내용중엔 옛날 시골살이 하시던 친할아버지 실생활도 나오고,그 앞에서
재롱떨던 손주들의 모습도 보이는 듯했다.
글을 보며 만면에 짓고만 회상어린 웃음에 가고만 세월을 어느새 타박중이었다.
이참에 상수가 산 검은바지 입은 모습이나 올려봐라,상수야.
카페 출입이 왜 어려운거니?난 이해가 안되서..출입방식? 시정할 능력? 몬말인지 어렵네~^^
역시 넘버 1 댓글러이시다.
감사하다. 눈이 내리니 몸은 조금 힘들고, 생활은 다소 불편하지만, 우리들의 감정은 조금 누구러지는 것 같다.
겨울이 춥지 않고 눈이 내리지 않으면 그게 무슨 재미랴!
새해의 목표를 다시 다잡아야하는 10째가 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