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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보리
어디선가 애잔하게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가 싱그러운 바람 따라 온 들판으로 메아리치는 오뉴월! 한 사람 다닐 정도의 좁은 논두렁엔 알이 꽉 차 탱실탱실한 완두콩 꼬투리가 주렁주렁 열리고, 살랑이며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따갑게 쏟아지는 햇볕을 받으며 누렇게 보리가 익어 가면 아버지 생각에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진다. 너무 엄격하셔서 무섭게만 느껴졌던 아버지여서 한 번도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도 가슴속에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나는 아버지의 자상한 사랑 표현에 늘 목말라 했었다. 아버지의 사랑 밭은 늘 메말라 푸석거리고 얼음처럼 차갑게만 느껴졌다. 아버지의 엄격함은 나로 하여금 늘 아버지의 넉넉한 품이 그리워 울컥 눈물을 삼키게 했다. 문득문득 한쪽 날개를 잃은 새처럼 외로움에 푸덕거렸지만 빈 마음 한 자락은 어머니가 채워 주셨다. 늘 친구처럼 편안한 자상하고 따뜻한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세월이 흐른 지금에야 아버지께서 왜 그렇게 우리에게 엄격하게 대하셨는지, 왜 그렇게 맘속에 지닌 사랑을 다 표현하지 않으셨는지, 그 깊은 마음을 이제야 헤아리게 되었다. 그 누구에게도 드러내시지 못하고 당신 혼자서 지고 가야할 삶의 무게가 너무나 컸던 것이다.
큰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신 후 종손으로서의 책임감으로 집안의 대소사는 물론, 큰집과 우리 집 두 가정을 꾸려가야 했던 그 삶의 무게가 얼마나 아버지 어깨를 무겁게 했을까. 혼자서 그 무거운 짐을 지고 가시느라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어른이 된 지금에야 뻥 뚫린 동공처럼 외로움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아버지의 엄한 모습 뒤에 뜨거운 숯덩이 같은 깊은 속정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세월이 가고 어른이 되어 부모라는 이름으로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아우르며, 생각지도 않은 운명 같은 삶에 울고 웃으며 부대껴봐야 비로소 부모님의 깊은 속내를 헤아리고 이해할 수 있나보다. 자식 낳아 길러봐야 부모마음 안다는 말처럼 아등바등 자식 키우며 보낸 시간과 많은 사람들과 횡으로 종으로 얽힌 삶도 그저 흘러 보낸 시간이 아니다.
지금은 벼농사만 짓고는 빈들로 두거나 특용작물을 재배하고 보리를 잘 심지 않아서 들판에서 푸르게 누렇게 물결처럼 일렁이는 보리밭을 보기가 힘들다. 종달새 우짖던 보리밭 풍경은 이제는 관광자원으로 체험학습장으로 조성해 놓은 곳으로 일부러 찾아가야만 볼 수 있다.
가끔 여행을 하다 햇빛 쏟아지는 초여름 뙤약볕에서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밭이 눈에 띄면 아버지 생각이 저절로 난다. 육칠 십년 대엔 배고픔의 한이 서린 보릿고개가 있었다. 보리쌀이라도 먹을 수 있을 때까지의 그 긴긴 봄은 굶주리는 사람들에게는 높은 고개를 넘어야하는 것만큼 험난하고 힘들었던 것이다. 얼마나 배고픔의 고통이 컸으면 험난한 고개를 넘는 것에다 비유를 했을까.
가을 추수가 끝난 들판은 텅 비어 황량하지만 이내 보리갈이가 시작되었다. 물이 없는 마른 논이지만 그 논흙은 물로 다져져 찰흙처럼 쉽게 부셔지지 않았다. 보리를 심기 위해 소를 이용해 쟁기로 논을 갈고 큰 흙덩어리를 잘게 부숴야했는데 그 일도 만만치가 않았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보리를 파종할 때에 학교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아버지는 책 보따리를 풀자마자 우리를 논으로 불렀다. 친구들과 놀고 싶은 철부지였지만 그래도 아버지 말씀을 거역할 수 없어서 긴 수로를 따라 논에 이르면, 소에 쟁기가 채워져 있는 게 아니라 통나무로 엮어 만든 썰매 같은 것이 연결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그 위에 우리를 앉게 하고는 같이 오르시거나 아니면 갈아 놓은 울퉁불퉁한 흙 위를 힘들게 걸으시며 소를 부렸다. 그 썰매는 경운기나 트랙터가 없었던 그 옛날에 무게와 압력을 가해 수염 같은 벼 뿌리에 덕지덕지 엉겨 붙은 흙덩어리를 잘게 부수기 위한 농기구였다.
아버지가 “이랴! 좌랴! 워워!” 하면 마치 그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움직이는 소를 신기하게 여겼다. 덜커덩 덜컥거리며 탈 것이 귀했던 시절에 뭔가를 탄다는 재미에 철없이 신나했었다. 곱고 부드러운 흙이라야 씨앗이 싹을 잘 틔울 수 있기 때문에 한편에선 곰배로 흙덩이를 두드려 잘게 부수었다. 차지기 만한 논흙을 밭 흙처럼 포슬포슬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런 후 볏짚으로 만든 망태기에 보리 씨앗을 담아 어깨에 메고는 씨앗을 뿌린 후 쇠스랑을 이용해 흙을 고르며 씨앗을 묻어야 했다. 긴 논이랑을 수없이 오기며 여러 번의 작업 과정을 거쳐야만 보리심기가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찬 겨울에도 보리는 우리를 그냥 두지 않고 그 황량한 들판 흙바람 속으로 시시때때로 불러내었다. 차가운 서북풍이 낙동강을 넘어 윙윙 소리를 내며 보리밭 이랑에 머물고, 밤새 내린 하얀 서리가 아침 햇살에 눈부시도록 반짝이는 초겨울이면 어디선가 까마귀 떼가 하늘을 까맣게 물들이며 날아와 먹이를 찾느라 보리밭에서 날개를 접으면 아버지는 다급하게 우리를 논으로 보냈다. 까마귀들이 보리 순을 쪼아 먹거나 헤집어 놓으면 그만큼 수확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책 보따리를 매고 학교 가는 길에 논으로 달려가기도 했었는데 그럴 땐 속으로 툴툴거리다 눈에 보이는 흙덩이나 돌덩이를 까마귀들한테 화풀이하듯 던지고, 까마귀 쫓느라 소리소리 지르며 보리밭을 이리저리 쫓아 다녔다. 까맣게 보리밭에 앉았다 일제히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까마귀들 - 왠지 모를 슬픔을 느꼈던 그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나도 모르게 펄벅이 쓴 대지에서의 메뚜기 떼들과 영화 십계에서의 메뚜기 떼가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렇게 찬 겨울에도 꿋꿋하기만 한 보리는 겨우내 종종 흙먼지 이는 보리밭으로 손을 호호 불고 발을 동동 구르며 달려가도록 했다. 푸르게 싹을 틔운 보리 순이 찬바람을 잘 이겨내려면 꾹꾹 밟아줘야 한다. 보리는 서리가 내리거나 땅이 얼게 되면 흙 속에 뿌리를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겨울동안 흙이 얼다 부풀다 하면 서릿발이 생기고 그렇게 되면 흙 속의 뿌리가 뽑혀져 나와 수분공급이 잘 되지 않아서 보리가 말라 죽게 된다. 어릴 때는 보리밟기를 하면서도 보리를 왜 밟는지도 몰랐다. 여린 싹을 밟으면 꺾어져 오히려 죽을 것 같은데 왜 밟을까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아버지의 불호령이라 영문도 모른 채 긴 보리밭 이랑을 지겨워하며 오락가락했었다.
보리는 땅속에 뿌리를 꼿꼿하게 잘 내려야 가지치기도 좋아지고 성장도 잘 해서 더 많은 결실을 얻을 수가 있다. 겨울이면 풀은 갈색 빛으로 쓸어 누워 뿌리를 보호하고, 나무는 추위를 이기고 수분을 잃지 않기 위해서 잎을 떨어뜨리고, 여리고 어린 보리 순은 언 땅에서 악착같이 흙 속에 발을 내리고 꿋꿋하게 북풍을 이겨내고 봄을 기다린다. 찬바람 속에서도 의연하게 푸른빛을 지키고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 생명력인가. 그렇게 뭇 발자국에 밟히고 밟혀도 일어서고 또 일어서는 당찬 보리는, 사오월 길고 긴 보릿고개를 견뎌낸 서민들의 삶과 너무나 많이 닮았다. 보리는 허기진 배를 움켜진 그들에게 무더운 여름내 벼농사를 짓고 풍요로운 추수를 기다릴 수 있게 하는 귀중한 양식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웰빙이다 다이어트다 하며 건강식으로 보리밥을 찾지만 그 시커먼 보리밥은 가난과 배고팠던 시절의 향수를 일으킨다. 누런 대소쿠리에 퍼 담아 삼베보로 덮어 실겅 위에 얹어 놓았다가 한 덩어리 뚝 떼어 찬물에 말아서 된장에다 풋고추 푹 찍어서 후루루 점심한 끼 먹었던 보리밥! 뒷산에서 뻐꾸기 울음소리 자지러지게 온 들을 뒤덮을 때 하얗게 내리쬐는 여름 햇빛 속으로 아득히 들려오는 도리깨질의 “딱! 타닥!……” 하는 소리가 아버지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주고받는 도리깨질의 호흡 소리와 지친 몸의 피로를 잊으려고 부르는 노래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자꾸만 애절하게 가슴으로 후벼든다. 땀으로 범벅된 얼굴과 허리춤에 찬 수건과 노란 밀짚모자가 눈물로 다가온다. 노란주전자의 막걸리와 김치 한 사발에 종손으로 살아가야하는 아버지의 묵직한 책임감이 깊이 서려 있었음을 이제야 어렴풋이 깨달으니 나이는 그저 먹는 게 아닌가 보다.
지금은 찾아 볼 수 없는 보리타작 마당의 도리깨질 소리와 함께 거친 숨소리가 뒤섞인 노래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중년이 된 지금에야 너무 엄격하셔서 두렵게만 느껴졌던 아버지의 모습을 쓴웃음 지으며 떠나보내고, 종가를 이끄시며 단지 농사 하나로 대가족의 생계를 꾸렸던 아버지의 무거운 책임감과, 그 누구에도 마음을 열어 보이지 못하고 오로지 혼자서 감내해야 했던 외로움과, 긴 세월 갈피갈피 스며들었을 고뇌로 가득 찼을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아련하게 들려오는 도리깨질 소리와, 비 오는 날 마루에 앉아 즐겨 부르셨던 아버지의 하모니카 소리를 마음으로 들으며, 오직 가슴으로 사랑을 다하고 엄격함으로 책임을 다하신 든든하고 자상한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된다.
*곰배 : 흙을 잘게 부수거나 찰떡을 칠 때 떡메로도 쓰는 나무로 만든 연장. 고무레 곰방메의 방언
*도리깨 : 곡식의 낟알을 떠는 데 쓰는 종기구. 긴 장대 끝에 구멍을 뚫어 꼭지를 가로 박고. 그 꼭지 끝에 회초리를 서너 개 매어 달아 돌게 한다.
*실겅 : 물건을 얹어 놓기 위하여 방이나 마루 벽에 두개의 긴 나무를 가로 질러 선반처럼 만든 것. 살강이 시렁이의 방언
팔십 년대의 셋째 아이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 자기 먹을 것은 자기가 가지고 태어난다.” 등등 자식에 관한 격언이나 속담은 참으로 많다. 그만큼 자식을 낳아서 키운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부모의 아낌없는 사랑을 먹고 자라는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남녀 누구나 적절한 나이가 되면 자연스레 이성을 그리게 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소명이다. 그러기에 궁극적으로 사람도 자연의 일부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 중에서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세상의 온갖 것을 누릴 권리도 가졌지만 동시에 가꾸고 보존하여 나중에 후세에게 계승해야 할 의무도 지녔다. 그것은 태어나면서 우리에게 자연스레 주어진 운명이 아닐까.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아름다운 산야와 강이 조화를 이룬 최고의 땅이다. 굳이 오천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해외 여러 나라를 다녀본 사람이면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지구에는 사막과 척박한 고원지대, 화산과 지진이 끊이지 않는 불의 땅, 가뭄과 홍수에 늘 쫓겨 다녀야 하는 곳, 너무 춥거나 더워 생명이 살아 갈 수 없는 불모의 땅이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자연환경이 최고임을 시샘 받듯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나라이고, 아직도 전쟁 상태에 있으니 기막힌 일이다. 우리처럼 면적이 좁고 자원이 부족한 나라는 사람이 국력이고 자산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저 출산으로 인구 감소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 되고 있다. 노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인문제도 심각한 실정이다. 인구감소와 노령화가 심각한 나라는 국가 경쟁력마저 떨어질 것이다. 인구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육칠 십년 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한창 진행될 때 꿈을 키워야할 청소년들이 학업을 뒤로 미루고 생활전선에 뛰어 들었다. 가정경제를 책임지기 위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봉재, 신발, 전자업체 등의 산업체로 고향을 두고 객지로 떠난 친구들이 많았었다. 곧 사람이 재산이고 경제를 일으키는 원동력이었다. 우리 조상들이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물질문명의 발달과 현대화된 기계로 사람의 노동력은 서서히 밀려나고 두뇌경쟁의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최고의 교육을 받아야 하고, 최고의 능력을 가져야 하고, 다양한 분야에 걸쳐 최고의 전문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경제적인 어려움과 교육환경과 직장의 문제 등으로 양육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자녀 낳기를 거부한다. 사회전반에 저 출산문제와 인구감소의 원인이 내재되어 있지만 결코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디지털시대 초고속화 시대라고 한다. 알면 단순하고 편리하고 모르면 복잡하고 어려운 현대문명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일상의 모든 것들을 습득하지 못하면 디지털문명과 컴퓨터세상은 우리를 이방인으로 만든다. 물론 많은 이익과 편리함을 주지만 마치 세상은 커다란 네모 상자에 갇혀 버린 것 같다. 얼굴 없는 만남이 질주하는 사이버 세상에서 차갑고 정 없는 소통을 하고 있다. 따스한 체온이 느껴지는 만남은 단절되어 버린 것 같다. 늘 낯선 곳에 들른 나그네처럼 서먹서먹하고 알 수 없는 소외감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 그럴까. 최고의 선진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가다 보니 따라가지 못하는 어느 한 곳은 멍들고 또 어딘가는 부서진 곳이 생기기 마련이다.
초고속으로 기계문명을 쫓아 질주하는 동안 이십 년을 내다보지 못한 가족계획의 기치가 맥없이 주저앉아 버렸다. 이제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로 인구부족 국가로 전전긍긍해야만 하니 참으로 안타깝고 씁쓰레하다. 칠십 년대 라디오에서 자나 깨나 들려왔던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공익광고가 막을 내리고, 팔십년 대엔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라고 쉴 새 없이 외쳐대는 매스컴을 무시하듯이 팔십 년대 초에 결혼한 나는 아이 셋을 두었다.
조상을 위한 제사와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여전히 남아선호 사상은 질긴 동아줄마냥 시어머니들의 생각을 꽁꽁 묶어 두었다. 아들 못 낳은 엄마들은 마치 죄인이 되어버린 양 숨소리 한번 제대로 못 내고 옥죄인 삶을 살아야했다. 차라리 그런 엄마들이 아이를 많이 두는 것은 변명의 여지라도 있었지만 위로 딸 아들을 둔 나는 이웃사람들의 미개인 취급하는 듯한 요상한 눈빛을 받아야만 했고, 괜스레 죄지은 느낌과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거의 외출도 하지 못했었다.
아직 젊은 나이라 세상을 농익은 시선으로 바라볼 식견도 없었고, 인생을 철학적으로 해석할 안목도 없었지만, 생명은 너무나 소중해서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항상 뇌리에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계획의 실패와 가족계획이라는 이름으로 현대의학기술의 혜택을 받고 선호 했었지만 어쩐지 그런 걸 내켜하지 않았던 나는 덜컥 셋째를 가진 것이다. 둘도 많다고 매일 매스컴에서 수도 없이 떠들어대는데 셋째가 웬 말인가? 정신적 부담과 이웃 사람들의 시선을 어찌 감당할까하는 걱정이 밀물처럼 밀려오고 ‘의학의 힘을 빌려야하나? 그러면 안 되는데…… 어쩌나’ 하는 갈등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맘을 다스릴 수 없었고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점점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고 엄마 뱃속에서 생명의 끈을 놓아버린 태아들이 얼마나 많은가! 물리적인 힘을 가할 때 엄마의 뱃속에서 불안해하며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태아의 영상을 본 후라 의학의 힘을 빌린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자궁 속에서 죽음을 감지하고 불안해하는 태아의 동태를 아기 입장에서 하나하나 설명해 놓았던 그 영상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죽어간 영아의 영혼을 위해 기도를 바쳐오던 터라 갈등을 하고 있는 내 마음 자체가 더 두려웠다. 굳이 뭐라고 단정 지어 말 할 수 없었지만 신앙생활 속에서 은연중에 터득한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가르침이 나의 맘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해 가을 성지순례를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나는 마치 전류에 감전된 것처럼 전율을 느끼며 얼어붙은 듯 서 버렸다. 내 시야에 들어온 문구 하나가 모든 갈등을 순식간에 지워버렸다. 생명의 잉태는 축복이고 세상을 창조해가는 힘이고 사랑을 실천하는 주체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신은 많은 어린 아이를 다 돌볼 수 없어 대신 엄마를 주셨다는 그 말이 섬광처럼 스쳤다. 생명은 보이지 않지만 신의 의지에 의해 주어지는 소중한 선물이기에 결코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녀는 결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소중하고 고유한 인격체다. 그러나 아이를 소유물로 생각하여 부모의 바람대로 많은 것을 계획하고 의도하고 틀을 만들어 거기에 맞추려고 하고 또 맞추어 주기를 바란다.
아이들은 사랑을 먹고 자란다고 했다. 맹목적인 사랑이 아니라 아플 때도 있고 두려울 때도 있고 회초리 들 때도 있는 분별력 있는 사랑이다. 맛있는 음식과 호화로운 옷과 화려한 집과 유명학원과 고액과외 등이 사랑표현의 전부는 아니다. 진심으로 바라봐 주고 인정해 주고 믿어주는 사랑이 아이의 마음을 자라게 한다. 심지어 식물과 동물도 사랑을 받아야만 잘 자란다고 한다. 신을 닮아서 소우주라고도 불리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 사랑을 필요로 할까. 적어도 눈치 보고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아이는 없었으면 한다. 사랑으로 보듬어서 적당한 시기에 적절한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 가끔은 가시 없는 채찍을 들기도 하고, 변함없이 든든한 높지 않은 울타리가 되어주고, 어둠 속에서 헤맬 때 등불이 되어주는 현명한 부모가 되어야할 것이다.
자식을 낳아 기른다는 것은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끝없이 맘을 졸이게도 한다. 그러나 아이는 태어나서 세살 때까지의 해맑은 웃음과 재롱으로 평생 해야 할 효도를 다한다고 하지 않는가. 부모가 나에게 베풀어 준 큰 은혜를 어찌 효도로 다 갚을 수 있겠는가. 나의 자식을 키우면서 부모의 공에 보답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 자식 또한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대대로 이어가며 보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너도 자식 낳아 봐야 부모 마음 알 것이다”라고 하셨던 우리 부모님의 말씀이 귀에 쟁쟁한데 나 또한 내 아이에게 그 말을 자연스레 하고 있다.
인구 부족국가로 머무른다면 우리의 미래 역시 불안하다. 지금은 정부에서 많은 출산장려정책을 벌이고 있지만 결혼한 젊은 사람들의 자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절실히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인구정책과 후생복지에 앞선 선진 국가들의 좋은 제도를 우리사회에도 잘 접목해서 소중한 자녀들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 사람은 국가의 미래이고 나아가서는 지구촌 전체를 이어갈 귀중한 보물이다. 어렵고 힘든 일만 주어진다면 그 누가 자녀를 두겠는가. 아니다 자녀는 삶을 풍요롭게 하고 조화롭게 하는 신이 내려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낳고 기르는 그 과정이 결코 힘든 것만 아니라 기쁨과 충만을 가져다주는 사랑의 결정체이며 미래에 대한 희망의 보고로서 귀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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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 사랑이라고 셋째를 기르며 나 또한 더 행복했고 뿌듯함을 느꼈다. 앞으로도 그 애를 바라보며 또 어떤 깨달음과 행복을 분명히 얻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더불어 산다는 것도 최소의 기초공동체인 가정에서 소통과 화합이 이루어질 때 이웃과 사회로 확대되어 갈 것이다. 젊은이들이 미래사회에 대한 사명감과 충만한 사랑으로 최고의 행복이 어떤 것인지 자녀와 나누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 한번 쯤 누려봐야 하지 않을까. 천륜이지만 자식과의 인연은 삶의 가치를 새롭게 해주고 삶의 시각을 훨씬 더 다양하고 깊고 폭넓게 만들어 줄 것이다.
산사의 물소리
며칠 전 암자를 다녀왔다. 살아가며 끝없이 비워야함을 알기에 비록 심오한 진리는 깨닫지 못하더라도 자연의 섭리 안에 속해 있음을 느껴보고 싶어 산사를 찾는다. 산기슭에 들어서면 거대한 오케스트라에 접한다. 온갖 새소리 벌레소리, 쉼 없이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하나 되어 때로는 장엄하게 때로는 감미롭게 가슴으로 내달아 오는 그 평온한 리듬에 삶의 불협화음은 어느 새 묻혀 버리고 만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산과 하나 된다. 오솔길의 들꽃이 되었다 푸른 소나무가 되었다 이름 모를 새가 되기도 한다. 산바람에 흩날리는 꽃향기 풀냄새에 흠뻑 젖어 맑게 개어가는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자연이 들려주는 무언의 두드림은 생각을 정리해주고 맘의 묵은 때도 씻어 낸다. 그러면 하얀 여백이 자리하여 맘이 가는 대로 새로운 그림을 그려 볼 수 있다. 그래서 산이 좋다.
계곡을 끼고 좁은 오솔길을 걷다 보면 물소리가 들린다. 바위를 넘고 돌에 부딪치고 낮은 곳에 머물렀다 아래로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물은 장소와 상황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며 늘 우리와 함께 한다. 물은 시시때때로 우리를 위협하기도 하고 우리의 생명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때로는 화가 난 듯이 폭우로 쏟아져 홍수를 만들어 대지를 할퀴고,, 때로는 뙤약볕에 온몸을 내맡겨 한 방울의 육신도 남기지 않고 하늘로 날아올라 가뭄을 주기도 한다.
아침이면 맑고 영롱한 이슬로 마른 땅 마른 풀잎 적셔 주기도 하고, 대지 가까이 떠돌며 뽀얀 안개로 세상을 숨기기도 한다. 그러다 하늘로 줄달음쳐 올라 구름을 만들어 바람 따라 세상 여기저기 떠돌다 그 무게에 자신을 가눌 수 없으면 다시 땅으로 내려와 실핏줄 같은 물길을 만들어 마른 곳을 적신다. 물은 땅과 하늘을 오르내리며 끊임없이 순환한다. 물은 생명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물이 있어야 생명이 잉태하고 생명이 영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물은 유연하다. 결코 딱딱하거나 모나지 않다. 담기는 그릇의 모양대로 금방 순응하니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다. 물은 아래로 낮은 곳을 향해 흐르며 겸손을 가르쳐 준다. 맑은 물은 거울 같아서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해준다. 물은 굽이진 길을 따라 흐르며 여기저기 흩어진 더러움을 말없이 씻어가므로 한없이 넓은 포용력을 지니고 있다,. 물은 높은 곳이 가로 놓여 있어 넘어 갈 수 없으면 돌아서 갈 줄 아는 융통성이 있다.
물은 결코 억지 부리는 일이 없다. 자연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순환하며 아래로만 흐르는 물! 누군가를 대할 때 물처럼 어떤 상황에서라도 이해하고 포용하면 오해와 다툼도 없을 것이다. 주위의 변화에 순응하며 고집부리거나 다투는 일이 없는 물의 유연성은 모가 나지 않으면서 당당하고 비굴하지 않으면서 겸손한 자세를 가르치는 무언의 스승이다.
깊은 산속에서 낮게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면 영혼의 울림이 있어 일상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산사에서 고요히 타오르는 촛불을 바라보면 성찰할 것이 왜 이렇게 많은지 저절로 생각이 깊어진다. 내가 가진 것들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 나를 존재하게 해주는 무한한 것들이 더 소중하고 귀한 것이다. 이렇게 가끔 호젓하고 고요한 산사를 찾아 일상을 훌쩍 떠나보면 빛과 소리와 향기가 어우러진 대자연의 향연을 만날 수 있다. 그 향연을 온전히 즐기고 느낄 때 비로소 내면에 가득 쌓여 있던 일상의 그을음을 걷어 닐 수 있다. 자연과의 교감은 사람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 준다. 욕심과 고집과 이기심을 걸러주기 때문이다. 그 싱그러운 만남은 삶의 옹이를 걷어 내고 내면에서 억지 부리는 소리를 조금씩 잠들게 한다.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벗어나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을 잠시 놓아 본다, 우주의 섭리, 자연의 순리를 심호흡하면 행복지수가 조금씩 높아갈 것이다.
텃밭 만들기
언제부터인가 건강에 자꾸 신경이 쓰인다. 어느 새 지천명이라는 쉰 고개를 넘었다. 이룬 것도 가진 것도 없는데 살아 온 시간만큼 몸은 녹슬어 가는 것 같다. 이젠 여기저기 삐걱대는 몸의 반란에 한풀 푹 꺾여 건강식품과 먹을거리와 운동에 관심이 간다. 건강의 최대 적이라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서 마음을 비우는 연습도 해본다. 일상의 크고 작은 일을 긍정적인 자세로 받아들이고, 음악과 독서로 마음의 여유를 누리고자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 귀가 얇아지고, 계획과 다짐은 많아지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게 어디 쉬운가?
주부가 가족들의 건강을 챙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 중에 으뜸이 영양이 잘 갖춰진 조화로운 식탁의 연출이 아닐까? 텃밭이 있어 대부분의 야채를 길러서 아쉬움 없이 먹어서인지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는 야채는 늘 낯설다. 도시에 몇 년 살다보니 그때가 새록새록 그립다. 지금 사는 이곳 산자락은 시내와 멀지는 않지만 자동차 소리가 먼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다. 마당 옆에 공터가 있어 손이 근질근질하다. 머릿속엔 앙증맞은 연두 빛 어린 싹이 가득하다. 누워 있으면 천정에 온갖 야채가 줄을 선다. 공터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다.
마른 나뭇가지와 잡초와 구석구석 온갖 쓰레기가 산더미로 덮인 거기를 어떻게 텃밭으로 단장하나? 평소에 하지 않던 억지 노동에 허리도 팔도 덜커덩 삐끗 할 게 뻔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도 눈앞에 아른거리는 신선한 야채들의 유혹은 내게 용기를 준다. 낡은 등산화를 신고 끈을 단단히 조여 매고, 빛바랜 밀짚모자를 푹 눌러 쓰고, 붉은 고무가 덧칠되어 있는 장갑을 끼고 작업복을 입었다. 어디를 봐도 시골 아낙네이다. 흙에 굴러도 괜찮을 만큼 완전 무장하고 창고에 있는 연장을 총집합 했다. 삽, 괭이, 쇠스랑, 갈고리, 호미…… 그런데 낫이 없다? 여기저기 뒤져 자루 부러져 나동그라져 있는 낫을 겨우 찾았다.
치우고 정리하는 데는 분류를 잘해야 일하기가 훨씬 쉽다. 나뭇가지와 돌은 큰 것부터 작은 것으로 한 쪽 가장자리로 옮겨 엉성한 울타리를 만들고, 거름이 될 만한 작은 풀과 나뭇잎들은 흙을 파고 묻었다. 돌은 쌓고 풀은 뽑고, 버려진 쓰레기까지 재활용과 일반으로 나누어 모두 정리하고 나니 드디어 흙이 보인다. 누더기를 입고 있다가 맨살을 드러낸 듯한 누런 황토빛깔의 흙이 마치 진주를 찾은 것처럼 반가웠다. 냅다 삽을 푹 흙 속으로 밀어 넣었다. “덜그럭 따각!” 돌이 삽을 허용하지 않는다. 작은 텃밭 하나 일구는 게 어디 만만한 일이겠는가.
옛날에 밭농사 지을 땅을 찾아 산언덕으로 전전했을 화전민들이 떠오른다. 척박한 땅을 농사지을 수 있는 땅으로 일구고 가꾸는 일은 얼마나 많은 노력과 땀을 요구하겠는가. 농사지을 땅 한 평이 없어 여기저기 떠돌아 다녔을 그들을 생각하면 이것쯤이야 아무 일도 아니다. 여기도 저기도 돌이다. 한번도 밭으로 사용하지 않은 생땅인가보다. 돌을 피해 흙을 한 삽 떠서 포슬포슬한 흙을 만들기 위해 돌을 골라내는 일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렇게 반나절을 보내자 열 평 정도의 밭이 만들어졌다. 쇠스랑으로 평평하게 고르며 작은 돌까지 일일이 골라냈다. 텃밭은 잦은 손길이 필요하다. 씨를 뿌린 후 적당한 물과 온도, 햇빛과 바람이 있어야 발아를 잘 한다. 어린아이 돌보듯 해야 한다. 물도 주고 잡초를 뽑고 벌레도 잡아 주고, 촘촘한 데는 솎아주어야 땅속 영양분도 잘 흡수하고 튼실하게 자란다. 발길이 수없이 오갈 터이니 다닐 골 하나 만드니 두 개의 두둑이 생겼다.
이제 뭘 심을까? 파종하기에 조금 늦은 시기지만 가을에 심을 수 있는 것은 시금치와 겨울초, 쪽파, 양파, 마늘 등이다. 다행히 텃밭 만드는 걸 지켜보던 이웃집 아주머니가 쪽파 씨를 주었다. 호미로 작은 골을 만들어 하얀 잔뿌리가 흙 속을 향하게 하여 일정한 간격으로 심었다. 그런 후 막 움트기 시작한 초록빛 새순이 보일 듯 말듯하게 흙을 살짝 덮었다. 다음 날 근처 씨앗 파는 데 가서 시금치, 겨울초,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찬바람에 잘 견디기를 바라며 상치와 참나물과 정구지 씨앗을 샀다. 고운 흙이라야 싹을 잘 틔우고 어린 싹이 힘들어하지 않고 쑤욱 올라올 것이기에 눈에 띄는 돌을 열심히 골라내며 정성스레 파종을 했다.
벌써 치마상치의 넓적하고 부드러운 잎과 씁쓰레한 맛, 참기름과 깨소금 듬뿍 넣어 조물조물 무친 참나물의 고소한 맛, 비 오는 날 즐겨 먹는 조갯살과 풋고추 넣은 파 부침개의 구수한 맛이 입안에 감돈다. 정성과 애틋한 보살핌이 이 텃밭에 고스란히 담겨져야 이런 맛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땅속 여기저기 지렁이가 꿈틀대며 헤집고 다녀야겠지. 지렁이가 살고 있는 흙은 건강한 흙이다. 그리고 따사로운 햇빛이 고루 비치고, 부드러운 바람이 포기 사이로 들락거리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흙 속으로 고이 스며들어야 텃밭에 잔치가 벌어질 것이다. 그러면 벌과 나비 이름 모를 곤충과 벌레들이 향기를 찾아 바삐 들락거리겠지.
‘그래 여기 와서 잔치를 벌여라. 너희들 먹을거리로 다 내어 주고 남는 거 먹지 뭐. 그래야 우리도 건강하게 살 수 있으니까…… 기생도하고 공생도 하며 그렇게 사는 것이 어디 너희들뿐이겠냐. 따지고 보면 사람 사는 것도 다 그러하지 않는가.’ 시원하게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을 흠뻑 주며 이 자그마한 텃밭이 가져다주는 여유를 그려본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미물, 미물과 미물이 함께 살아가는 법을 생각해 본다. 당연히 먹이사슬과 적자생존의 틀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비움의 그릇은 어디까지일까?
<우다다>를 가르친 학교
누군가가 말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느냐고.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시리도록 위로를 받으며 또 공감한다. 땅속에 뿌리를 두고 옮겨 다닐 수 없는 풀 한포기도 수없이 비바람에 흔들리며 자란다. 추위와 더위는 물론 폭풍우까지 숱한 고난을 겪어야만 작은 꽃 한 송이라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컫는 사람이야 오죽하겠는가. 자기 자식이 건강하게 태어나서 우수한 두뇌와 착한 마음과 멋있는 외모까지 갖추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하지만 자식 농사만큼은 마음대로 안 된다는 말도 있다.
어릴 때엔 누구나 내 자식이 제일 영리하고 똑똑한 것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애들이 하나하나 배우고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면 내 아이가 제일 빠르고 잘하는 것 같다. 거기다 말이라도 좀 빨리 하게 되면 지능 지수가 다른 애들 보다 월등히 높아 마치 천재인 것처럼 우쭐해지기도 한다. 엄마라면 누구나 그러하다. 자식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러면서 애들 셋를 키웠다.
대가족이라 식구들도 많고 조카들도 많아서 한데 어울려서 성격도 모나지 않을 것 같았고, 이해와 양보도 잘하며 폭넓은 사회성을 터득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했다. 대가족에 대한 장점을 나름대로 열거하며 생각대로 반듯하게 성장해주기를 바랬다. 한 해 두 해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 어느새 아이들도 어른 키만큼 훌쩍 자라 중 고등학생이 되었다. 사춘기를 맞은 아이들이 아무 탈 없이 그 시기를 무사히 보내고 지옥 같은 입시도 잘 치러 내기를 기도했다.
둘째가 고등학교 일학년 때였다. 담임선생님께 걸려온 전화 한 통화가 너무나 큰 파장을 불러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치는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아들이 결석했다는 것이다. 여태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던 터라 불안한 맘은 심장을 쾅쾅 두드렸다. 그렇게 시작된 아들의 방황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보다 더 불안했고, 아슬아슬한 곡예를 보는 것보다 더 애타고 긴장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누구나 겪는 사춘기지만 아들은 유난히 혹독하게 앓는 것 같았다. 방황과 갈등의 연속에 피가 멎는 것 같았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내가 감당하기엔 이보다 더 큰 고문은 없었다. 가서는 안 될 길에 서 있는 자식에 대한 애타는 마음은 “문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생각에……” 노랫말 그대로였다.
잦은 결석과 방황으로 배회하던 말썽꾸러기 아들은 결국 학교에 자퇴를 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주위로부터 문제아 취급을 당할 위치에 놓인 것이다. 그러고는 한동안 집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아예 두문불출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 경우는 밖으로 나가 배회하는 것보다 정신적으로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감당을 할 수가 없었다. 아들과 나 사이에 허물 수 없는 높은 벽이 가로놓여 있었다. 그런 상황에선 아무리 다가가도 발걸음은 제자리에 맴돌 뿐이었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불안하고 초조하여 정신적으로 황폐해져가고 몸도 맘도 지쳐가고 있었다. 생각 끝에 청소년 상담실을 방문했다. 하지만 당분간은 가만히 내버려 두라는 말 밖에 해주지 않았다. 아이와 직접 상담을 하지 않아서인지 적절한 처방도 없었다. 어디에서 무엇이 어긋났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어려웠다. 깨어진 일상이 가혹할 만큼 힘들게 느껴졌다.
속 시원하게 맘 속 얘기를 하지 않으니 벙어리 냉가슴 앓듯 사방팔방 쫓아다니며 애를 태우다 친구에게 자존심 굽혀 놓고 사정얘기를 했다. 친구는 참으로 생소한 얘기를 했다. 철학관이나 무속인에게 가서 점이라도 한번 보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내게는 너무도 먼 얘기였다. 용기를 내서 가고도 싶었지만 몸에 배인 신앙이 있어서인지 선뜻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지방신문 한 자락에 실려 있는 ‘도시속의 작은 학교’라는 걸 보게 되었는데 대안학교의 광고였다. 나는 얼른 그 부분을 오려서 문의를 했더니 부산역 근처에서 운영하고 있었다. 학생들 보다 오히려 봉사하는 선생님이 더 많아서 호감이 갔다. 정규학교를 가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지만 고등학교 졸업장을 주는 학교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학업보다 누군가와 어울리며 다시 사람들 속에 서서 뭔가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더 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보다는 봉사활동이나 특기와 취미활동에 비중을 둔 프로그램이 오히려 더 맘에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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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도 하지 않으려는 애를 데리고 방문을 했다. 이곳엔 청소년 상담선생님 한 분이 상주하고 있었다. 우선 이것저것 물으며 상담을 했었는데 입을 잘 열지 않던 애가 대답을 곧잘 했다. 집이 멀었기 때문에 일주일에 세 번 등교하기로 하고 취미활동 위주로 우선 맘부터 열도록 하자는데 선생님과 의견을 모았다.
무엇이 무슨 연유로 아이가 저렇게 나약해져 버렸을까? 제발 정신적으로 멍들지 않고 비록 공부는 멀어졌어도 심성만은 밝고 맑았으면 싶었다. 그리고 세상을 어둡게 보지 않도록 따스한 맘만이라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뿐이었다. 부모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명문대학과 대기업 취업과 전문직이 다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 것도 아무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아이가 세상 속으로 나가 웃을 수만 있으면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그 학교에 일주일에 한 번도 가고 두 번도 가던 아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등교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가끔 역사 문화탐방과 봉사활동도 가기도 하고, 길거리 농구와 수화, 풍물놀이, 바둑등도 배우며 틈틈이 검정고시 준비도 했다. 나는 가끔 먹을 걸 준비해서 방문하기도 했는데 학생들의 연령층이 다양해서 어떤 면에선 서로 양보 하는 마음과 이해하는 폭과 소통의 깊이를 더 많이 체험하고 배울 것 같았다. 학교에 적응을 못한 초등학생도 여러 명이 있었는데 참으로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모든 상황은 긍정적으로 보면 긍정적이 되었다. 나는 일반 학교의 획일화된 수업과 입시위주의 학습에 매여 있는 아이들이 항상 안 돼 보였다. 우리나라 교육체제와 현실이 그러하니 별도리가 없다고 생각해 왔다. 이 학교는 학생 수보다 선생님들의 수가 더 많아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분들은 봉사를 하고 있었다. 정성을 다해 가르치고 배울 거리를 제공해주니 정규학교 학생들보다 학업은 뒤지겠지만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들이 사용하는 교실 칠판엔 언제나 “우다다”란 말이 적혀 있었는데, 나는 그 말이 외국어인지 우리말인지, 무슨 뜻이지 정말 궁금했다. 활동한 사진첩이나 노트, 그들이 보는 도서실의 책(많은 양의 책은 아니지만)에도 적혀 있었다. 선생님께 그게 무슨 뜻이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우다다 = 우리는 다 다르다”라는 말을 줄여서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그 순간 나는 머릿속으로 ‘아! 맞아! 바로 이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 다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개성이란 말을 얼마나 많이 쓰는가? 그러면서 다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는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일반화된 모범적인 시각으로 보면, 주어진 범주를 벗어나 여기에 모여 있는 애들을 분명 문제아라고 낙인을 찍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내면을 파헤쳐보면 그 누구도 모자라는 사람은 없다. 단지 생각과 고정 관념의 차이일 뿐이다. 내가 본 이곳 아이들은 너무나 순수하고 여리고 맑았다.
그해 성탄절 때 학생들은 유지들과 부모님들을 모시고 취미와 특기로 배웠던 모든 걸 발표회를 열어 선보였다. 고아원과 양로원에서 봉사 활동한 사진과 역사탐방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며 찍었던 사진 전시회도 열었다. 무엇보다 자신감에 차서 활짝 웃는 아들의 모습에 얼마나 울었던가. 나는 생각했다. 지금 이렇게 이 아이들이 미흡하고 하찮아 보이지만 나중에 사회인이 되었을 때, 분명히 여기서 배우고 익힌 모든 체험들이 커다란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학교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벗어났지만 그 벗어남이 모자람만은 아니라는 것을. 비록 누구나 인정하는 좋은 대학에 갈 수는 없을지라도 다양하게 터득한 체험으로 누구보다 깊고 폭넓은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자생력을 얻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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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한 번도 아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디서든 아들이 자퇴한 걸 숨기거나 다른 이유로 포장해 본 적도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부끄러워하고 숨기면 아들은 끝까지 당당하게 살아갈 용기를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단거리가 아니고 마라톤이다. 인생의 길은 편도이긴 하지만 결코 외길이 아니다.
인생에는 수없이 많은 길들이 숨겨진 채 얽히고 얽혀 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찾아서 돌도 치우고 잡초도 뽑으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서 자기의 길로 만드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꿈을 가진 아이들에게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조금 늦고 빠름은 먼 인생길에 비추어 보면 큰 차이가 아니다. 조금 늦더라도 새로운 출발을 다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가슴이 미어지도록 온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많이 아팠으니 아픈 만큼 분명히 성숙해질 것이다. 발자국마다 부딪혀 오는 삶의 아픔은 눈물로 키워낸 면역으로 거뜬히 이겨낼 것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그 흔들림을 어떻게 이겨 나가느냐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이고 용기이다. 꺾이면 영원히 꽃을 피울 수 없다. 모진 바람을 이겨낸 꽃은 더 향기로울 것이며 빛깔도 더 고울 것이며 열매 또한 알차게 영글어 갈 것이다.
그렇게 애간장 태우던 아들은 이년을 그 학교에서 보낸 후 검정고시를 치루고 대학에 진학을 했다. 군복무도 무사히 마치고 혼자 힘으로 공부하겠다고 야간으로 복학한 후 이젠 졸업도 했다. 기계과를 전공해서인지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으로 한 몫을 하고 있다.
아이가 아픈 만큼 엄마도 아프다. 아이가 흔들리면 그 바람막이가 되어야 하는 엄마는 몇 배로 흔들린다. 하지만 아프다고 말할 수도 흔들림을 드러낼 수조차 없는 게 부모의 마음이고 길이다. 한없이 큰 맘자리 만들어 놓고, 오직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피눈물을 고스란히 삼켜야 하는 지극하고 끝없는 모성의 샘이 엄마의 맘 아니던가.
쑥을 다시 만나다
십년쯤 바쁘다는 핑계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쑥이 작년부터 추억을 불러 모으며 나를 매료 시킨다. 이른 봄 꽃샘추위가 겨울의 끝자락을 붙잡고 아등바등 댄다. 햇살 찾아 나선 성급한 꽃과 여린 잎에게 시샘을 하는지 봄 날씨는 바람도 많이 불고 하얀 눈까지 뿌리며 봄의 전령사들을 멍 들인다. 그러나 나는 해마다 이맘 때 쯤 언덕과 강둑으로 바구니 들고 쑥 캐러 다니던 소녀를 스케치한다. 수수하면서도 은은한 쑥의 빛깔이 포근하게 느껴지고, 누런 풀숲을 들썩이며 봄을 마중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쑥은 그 빛깔부터가 다른 새싹들과 다르게 뽀얗다는 느낌을 준다. 쑥은 따뜻하고 친근하다. 여린 것 같지만 강하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생명력과 끊임없이 사방으로 뿌리를 뻗어나가는 강한 번식력이 인내와 끈기라는 말을 생각나게 한다. 양지 바른 언덕 봄 햇살 아래서 쑥을 캐면 일상의 일들을 잊게 된다. 저절로 마음이 차분해지고 편안해진다. 그래서 아지랑이 피고 바람이 부드러워지면 불현듯 쑥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것은 단군신화에서 곰이 마늘과 함께 먹었던 쑥의 신비한 에너지를 감지한 것은 아닐까. 쑥은 건국신화에서부터 우리식생활에 이르기까지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역사적인 야생식물이다.
무엇보다 쑥을 생각하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어머니와 유년의 뜰이었던 고향이 그리워진다. 친구들과 동요를 부르며 쑥을 캐러 다녔던 추억과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쑥 개떡과 쑥 털털이와 쑥인절미 그리고 구수한 쑥국의 맛은 어른이 된 후에도 나로 하여금 봄 처녀 노래를 부르며 산으로 들로 풀숲을 헤집게 만들었다. 어쩌면 쑥을 캔다기보다 어린 시절의 그리움을 좇아 봄을 마중하고, 아지랑이 속에서 찬란한 봄빛에 물들고 싶고, 산야로 다니며 새싹과 여린 나뭇잎과 서서히 깨어나는 대지의 숨소리를 듣고 싶었던 게 아니었나 싶다. 따사로운 봄볕에 여러 시간 동안 머물러 있으면 아무런 욕심도 두려움도 없어지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지금도 산야가 봄빛으로 물들면 쑥을 캐는 어린 소녀를 만나고 싶어 설렌다.
우리 집 뒤로는 계단씩 밭과 그 옆으로 감나무 과수원 울타리를 끼고 좁은 오솔길이 있었다. 봄 향기는 나비와 벌을 불러 꽃 잔치를 벌이며 마당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 언덕에 올라서면 마을이 환희 내려다보이는 낮은 동산엔 딱 한그루의 나무가 무거운 스피커를 달고 외롭게 서 있고, 중앙에는 우리들 놀이터인 봉분이 낮아진 무덤이 세 개 있었다. 바로 그 언덕이 어린 시절 틈만 나면 쑥을 캐던 곳이다. 이른 봄이면 오빠가 만들어준 작은 칼과 노란 대소쿠리를 들고 언덕을 올랐다. 가장 몸서리치고 무서웠던 게 뱀이었다. 벗어놓은 뱀허물과 막 겨울잠을 깨고 나와 똬리를 틀고 죽은 것처럼 가만히 움츠리고 있는 뱀을 보면 너무 놀라고 무서워 소리소리 지르며 언덕 아래로 뛰어내려오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추억속의 쑥이 아니라 건강식품과 약용식물로서 나를 강하게 매료시킨다. 떡과 국으로만 해 먹던 쑥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다양하게 이용되는 쑥의 진면목을 알았기 때문이다. 쑥은 옛날부터 우리 식생활과 한방의 약재로 많이 이용되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쑥은 국화과의 식물로 다년생이며 뿌리줄기가 옆으로 기면서 자라고 잎 뒤엔 하얀 잔털이 나 있다. 종류가 아주 많다고 하지만 아는 쑥이라곤 약쑥 인진쑥 참쑥뿐이다. 약쑥은 주로 한방에서 뜸을 뜰 때 많이 이용되고, 인진쑥은 간의 해독에 좋다고 하여 옛날부터 가마솥에 푹 고아서 술을 많이 드시는 분이 애용했던 걸로 안다. 참쑥은 식용으로 사랑받았다. 된장과 들깨를 풀어 국을 끓여먹거나 찹쌀가루와 섞어 떡을 해 먹거나 쑥 털털이로 해먹었지만, 지금은 쑥의 성분과 효능이 우수하다고 하여 차와 생즙과 발효음료로 마시거나 또는 말려서 쑥 가루로 만들어 오래 동안 복용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쑥의 효능이 많이 알려져 있는데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며 체내에 있는 각종 세균을 살균해주고, 위의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주어 소화흡수를 도와주고 위의 기능을 강화해주며, 활성산소를 억제해주는 비타민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세포의 노화를 방지해 주고,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성질이 있어 꾸준하게 섭취하면 여성 질환에도 효능이 있다고 한다. 아마도 우리 조상은 이런 여러 가지 성분과 좋은 효능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진 못했지만 오랜 체험으로 쑥을 식생활과 약용으로 이용해 왔을 것이라 생각된다. 쑥은 산야 지천에 늘려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채취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귀한 대접을 못 받는 것 같다. 흔하면 귀하지 않고 귀하면 흔하지 않는 것이다.
팔십 년대에 부산에서 이웃으로 이사를 오신 분이 있었다. 한의원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마을 뒷산 기슭에 새로운 길을 내고 별장처럼 예쁜 집을 지어서 이사를 왔다. 그때 예순 가까이 되어 보이던 아주머니는 종종 우리 집으로 놀러 오시곤 했는데 그분은 “쑥이 이렇게 온 천지에 늘려 있는데 여기 사는 사람들은 왜 저 쑥을 안 뜯고 그냥 내버려 두는지 모르겠네요. 쑥이 얼마나 몸에 좋고 이로운데……”라고 하셨다.
이미 다 자라서 대궁이 허리까지 쑤욱 올라 온 억센 쑥을 보며 안타까워 하셨다.
올 봄엔 쑥을 많이 뜯을 생각이다. 오월 단오 전까지는 쑥을 채취해서 먹어도 그렇게 억세거나 쓴맛이 강하지 않다고 했다. 며칠씩 건너뛰며 산새 울고 솔바람 부는 곳에서 쑥을 뜯어서 말렸다. 봄비가 잦고 햇살이 두터워지고 일조량이 많아진 요즘은 쑥대가 쑤욱 올라와서 손으로 부드러운 윗부분만 뚝뚝 뜯었다. 햇빛을 초대하는 듯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 두고 쑥을 얇게 펴 널었지만 비가 내린다. 전기장판 두 개에다 불을 올리고 그 위에 쑥을 널었다. 시간과 노력과 정성이 들어간 쑥은 귀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애지중지한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행여 잘 마르지 않아 곰팡이라도 필까 자꾸 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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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에 그을린 얼굴과 까맣게 물든 손톱을 바라보며 쑥을 대하는 마음이 옛날과 확연히 달라진 나를 발견하고 웃었다. 봄 마중하며 연록으로 물들어 가는 세상에 동심을 풀어 놓고 깡충거리며 만났던 쑥과, 들과 산에 그려 두었던 추억을 좇아 쑥 향기를 식단으로 가져와 맛을 음미했던 쑥과, 쑥의 성분과 효능을 짚어보며 삐걱거리는 건강을 염려하면서 대하는 지금의 쑥이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 연유는 무엇일까. 봄볕에 얼굴을 발갛게 태우면서 새까맣게 쑥 물든 손가락을 빠르게 놀리며 쑥을 뜯는 지금과 봄노래 부르며 또래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나비처럼 팔랑거리는 발걸음으로 쑥을 찾아 나섰던 그때와의 사이엔 몇 십 년이라는 시간이 넓고 깊고 길게 놓여 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것을 추구하는 자아를 보면 서글퍼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직 가슴을 적셔 줄 애틋한 감성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 일렁이고 있으니 다행이라 생각된다. 중년의 나이는 모든 사물을 실용적인 측면만을 바라보게 한다. 동심을 찾아주는 쑥보다는 건강을 위한 쑥이 더 진한 향기를 낸다. 온 집안에 쑥 향기가 가득하다. 쑥을 알아온 시간만큼 쑥 향기도 그 깊이가 다른 것 같다. 어찌되었든 앞으로 쑥을 더 알아가고 쑥의 효능을 몸소 체험해보고 쑥의 향기에 흠뻑 취해 볼 생각이다.
책읽기는 자아성숙의 지름길이다
성공한 리더는 독서가이다(All Leaders are Readers)라는 책이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도 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그만큼 세상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많은 지식을 얻게 되고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도 터득하게 된다. 책의 내용과 양에 달렸겠지만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는 대부분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살아가며 누리는 환경과 만나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모든 상황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직접 느끼고 체험할 수는 없다. 먼저 깨달은 사람들의 체험을 글을 통해서 간접경험을 하는 것이 독서의 필요성이고 중요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중요하고 필요성을 느끼더라도 책을 좋아하고 책을 읽는 습관이 길러지지 않으면 결코 많은 책을 읽을 수가 없다. 어떤 책을 얼마나 많이 읽느냐에 따라서 평생 동안 보듬어 보는 세상의 크기와 깊이가 천차만별일 것이다.
책을 읽는 습관은 아주 어릴 때부터 길러 주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태아교육의 중요성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애살 많은 주부는 태교부터 철저하게 시작한다. 육아전서가 동원되고 문화센터에서 열리는 교육과 다양한 매체와 정보를 통해서 엄마로서의 준비를 한다. 태아에게 필요하고 좋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해주고자하는 자녀교육의 전사 최고의 엄마가 탄생한다. 첫아이를 잉태한 주부의 태아교육은 눈물겹다. 심한 입덧에 시달리면서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기 위해 풍부한 영양 섭취를 하고, 클래식 음악과 동화를 들려주고 아빠와의 친교를 위해 아빠의 목소리도 들려주며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정작 아이가 태어나고 힘든 육아에 신경을 쓰다보면 정신적인 영양을 위한 것들은 자연히 소홀해지기 쉽다. 그동안 쌓아 왔던 육아지식은 머리에서 맴돌고 본능적인 모성애 발동으로 맹목적인 사랑을 퍼붓는 경향이 많다. 그리고 아이의 발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발육이 조금 빠르면 아이가 천재인 것처럼 생각하고 조금 늦으면 불안해하고 초조해 한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모든 엄마들은 고슴도치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녀사랑에 몰입하다보면 자기 자녀를 바라보는 시각이 객관적이지 못하고 내 아이가 최고인 것 같은 콩깍지를 덮어 쓰게 된다. 그래서 귀한자식 매 한 대 더 때린다는 속담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독서의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선 엄마는 독서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아이들의 연령에 맞추어 어떤 책들을 어떤 방법으로 읽혀서 아이들이 이해하고 습득할 수 있게 할 것인지 알아야 한다. 독서도 유아식 이유식처럼 단계별로 해야 하고 편식하지 않고 다양하게 해야 한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애니메이션과 상상력과 창의력을 길러주는 창작동화와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전래동화도 들려주고 읽게 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과학 동화도 들려주어 자라서 자연과 쉽게 친해질 수 있고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산과 들, 바다로 데리고 나가 직접 보도 듣고 느끼게 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하지만 직접 체험을 하기 전 사전 지식이 있으면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에 훨씬 더 큰 체험을 얻을 수 있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가 어릴 때는 그나마 익힌 대로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막상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엄마들의 자세는 돌변한다. 받아쓰기와 수학의 셈과 영어교육 등에 전력 질주한다. 그러다보면 자연히 중요한 독서는 뒤로 밀리고 학교공부와 점수와 몇 등이냐에 집착하게 되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 그러나 학습의 기본은 이해력이다. 이해력은 어휘력에서 좌우되고 어휘력은 독서에 비례한다. 다양한 독서를 많이 하는 것은 학습내용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기초공사를 하는 것과 같다. 기초공사가 탄탄하지 못하면 그 위에 지은 집은 언젠가는 와르르 무너진다.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될 때 독서계획을 세워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좋은 독서의 방법이 될지 아니면 나만의 주장이 될지 모르지만 나는 아이들의 교과서 내용을 먼저 철저히 파악해서 독서와 연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학습과 독서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 교과서는 그 학년과 나이에 꼭 알아야 할 가장 보편적인 지식의 총체이며 집합이고 보고이다. 요즘 학습은 통합교과가 되어서 모든 과목의 내용이 종으로 횡으로 연결되어 있다. 국어교과서도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로 세분화 되어 있다. 국어는 언어생활을 총체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니 네 가지 다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과목마다 교과서를 파악해 보면 꼭 읽어야 할 책이 어떤 책인지 알 수 있다. 국어교과서엔 이솝우화와 애니메이션과 전래동화의 내용도 학년을 달리하며 일부분 실려 있다.
과학도 자세히 살펴보면 차례에서 물리 화학 지구과학 생물로 다 나뉘어져 있어서 읽어야 할 책이 어떤 것인지 저절로 파악된다. 지구과학은 달과 태양 등 우주와 천체 그리고 지질시대와 화석 등에 관한 책을 읽고, 생물은 곤충과 식물들을 종류별로 읽으면 된다. 그리고 수많은 발견과 발명, 물리적인 원리를 찾아낸 과학자들의 전기를 읽으면 자연스레 과학학습의 기초는 저절로 탄탄해진다.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유적지답사와 다양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여행도 사회학습에 중요하다.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국사와 세계사도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들의 전기를 읽고, 시대적인 흐름에 준해서 중요한 것들을 정리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국사는 삼국유사 등 역사에 관한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학습으로 연결된다.
또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선 국경없는의사회, 국제사면위원회, 그린피스 등 국제단체와, 마더 테레사와 달라이라마 등 세계적으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분의 삶을 읽어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 교과서에서 발췌한 책의 목록이 곧 청소년 필독서인 것이다.
어쨌든 책은 꾸준히 읽어야한다. 초등학교 때 독서에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다가 중 고등학생이 되면 아이들은 입시지옥으로 떠밀려 책과 담을 쌓는 경우가 많다. 가장 중요한 청소년기에 정신적 영양의 공급이 중단되는 것이며, 책읽기의 공백 기간은 어릴 때 익혔던 독서의 습관마저 잃어버리게 만든다. 아이들의 성장과정에 따라서 책의 수준도 그만큼 높여 가야하고 달라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꾸준한 독서습관이 중요하다. 세끼 밥을 먹는 것처럼 매일 한두 페이지라도 읽어야 한다. 입시위주의 교육이 아이들을 정신적으로 황폐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인격형성과 가치관이 형성되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독서를 멈추어 버린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제 때에 먹어야 할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한 것처럼 정신적인 성숙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독서에 관한 좋은 가르침의 글들도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읽지 않으면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다. 그 누구도 어른이 된 후에는 떠먹여 주지 않는다. 독서는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제공해 준다. 보지 못한 세상과 볼 수 없는 다른 세상과의 만남이고 많은 사람들과의 교류이다. 만남과 교류는 대화이며 소통이다. 가보지 못한 곳과 알지 못하는 것을 활자를 통하여 맘을 열고 귀를 기울이고 알아가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자신의 내면은 점점 영글어 간다. 자신도 모르게 성숙한 자아가 형성되어 있다. 어떤 비바람이 불어와도 헤쳐 갈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쌓여 간다. 그러면 매사에 당당하고 자신감이 생긴다. 그 자신감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책 속에 고요히 맘을 내려놓으면 외로움과 고독의 시간이 줄어들고, 욕심과 이기심의 부피도 줄어든다. 배움의 그릇은 커지고 이해심은 바다처럼 넓어지고 지혜는 깊이를 더한다. 책 한권을 다 읽고 난 뒤에 진하게 밀려오는 벅찬 감동과 내면이 가득 채워진 듯한 희열감은 정신적 버팀목이 되고 고요와 평화를 가져다준다. 책은 지식과 교양, 사유와 풍요를 약속한다. 그리고 사람과 사물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키워준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분별력을 길러 주어 옳은 것은 마음에 간직하고 그른 것에 단호한 양심을 갖게 한다. 나쁜 습관과 악덕에 분노하고 대항하는 힘을 길러준다. 독서는 영혼을 두드리는 깊고 장중한 울림이 된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 자연과 교감하고, 책을 읽으며 정신적 풍요와 평온한 정서를 호흡해야 한다.
또한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책을 통하여 꼭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쌓아야하고, 사유의 시간을 가져 자신의 모난 구석을 다듬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이라도 나눌 수 있도록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아를 만들어야 한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한다. 하루의 계획도 일 년의 계획도 아니고 백년의 계획이다. 백년이라는 말이 꼭 시간을 의미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그 교육이 미치는 영향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사회와 역사에 지대한 여향을 미친다는 의미가 아닐까.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거기에 더해서 지식의 습득과 지혜의 터득, 그리고 인격형성에 독서가 분명히 한 몫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 사람은 시간이 남아도 책을 읽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독서도 습관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요즘은 일 년에 백 권의 책읽기에 도전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백 권 다 읽지 못하더라도 읽은 만큼의 책은 자신을 분명히 업그레이드 시켜 줄 것이다. 적어도 OECD 가입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독서수준의 오명은 씻어야 하지 않을까.
라다크인에게 배우다
어디에다 가치를 두고 사느냐에 따라서 삶의 질과 깊이와 폭은 많이 달라진다. 꼭 같은 일을 두고 어떤 관점에서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느끼는 정도도 많이 다르다. 사람들은 제각기 좋아하는 것도 다르고 취미도 다르고 생각하는 사고와 성향도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인정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개성은 너무나 소중하고 독특한 것이고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고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는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이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국민의 기본권 중에 생존권과 자유권은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는 기본권이다. 누구라도 자기 자신이 존중받지 못하면 자존심도 상할 뿐만 아니라 삶의 가치마저도 상실하게 된다. 무한한 우주 속에 오직 유일한 존재로 당당하게 우뚝 서서 자기만의 인생을 펼쳐 나가는 것은 행복과도 직결된다. 우리가 느끼는 많은 감정들 중에서 가장 소중하고 절실한 것은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라 생각한다. 행복은 모든 사람들의 삶의 목적이고 희망이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은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보이고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긍정적으로 보인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그 감정은 어린아이처럼 영혼을 맑고 순수하게 만들고 삶을 지탱하고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행복감의 정도에 따라서 삶의 빛깔도 다양해지고 삶의 형태도 유연해진다. 행복지수는 결코 물질적인 풍요와 돈에 좌우되지는 않는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가 행복지수가 높은 게 아니라 국제적으로 소외되고 가난한 나라들이 상대적으로 행복지수가 훨씬 더 높다고 했다. 부유해서 풍족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고 온 세상을 다 얻은 듯 세상의 모든 것들을 조정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인간이 누려야 할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정신적 풍요로움을 누리는지 한번쯤 생각해보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삶을 차분히 비추어 볼 필요가 있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감정은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감히 함부로 말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자연에 순응하며 종교적 가르침을 실천하며 느리게 사는 사람들이 더 큰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라다크로부터 배우다>라는 소제목을 가진 책 <오래된 미래 - Ancient Futures>에서 저자는 “왜 세상은 끊임없이 비틀거리는 것일까? 언제나 이런 모습이었던가? 예전이 더 나빴던가? 아니면 더 좋았던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18년 동안 라다크인들과 생활하면서 얻었다고 한다. 굳이 산업화 하지 않아도 그 옛날 살아왔던 방식대로 머물러 있어도 그 삶 안에 생활의 지혜와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그대로 배어 있어 그들은 문화적으로 훨씬 앞선 부유한 나라의 국민들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글로벌 경제화를 외치며 지구촌을 형성하려는 사람들과 그런 것들부터 자연과 사람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맞서고 있다. 지금은 가치관과 사고의 유형이 획일화되고 보편화 되어 있음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다양한 문화가 공간과 시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붕괴되고 오랜 역사를 통해 이루어낸 고유한 문명과 정서가 깨어지고 다양한 인종들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오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단군의 자손으로 단일 민족이라는 말에 이제는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실정이다.
문명의 발달과 문화의 진보로 사람들은 자연에 순응해서 살아가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더 빠르게 더 편리하게 단 한 번에 일과 일상의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진정한 만남과 나눔의 관계로 이해하고 못하고, 서로의 필요와 이익을 추구하는 이해관계로 얽혀 고독하고 외로운 행진을 하고 있으니 늘 초조함과 불안함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라다크 사람들은 그 척박하고 황량한 자연환경을 어떻게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해발 삼천 미터가 넘는 산악지대의 척박한 자연환경과 혹독한 추위를 어떻게 견디며 순응해서 살아가는지 그들의 일상과 그들의 가치관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고작 사개월동안 농작물이 자라고 한 사람당 1에이커 정도의 경작지로 만족을 한다. 더 이상의 농지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약간의 곡식과 생활의 중심인 넓은 평원에서 기를 수 있는 가축과 그 배설물을 연료로 사용하며 가난한 삶을 살아가지만 그들의 마음에 욕심은 없다.
그들은 자연이 그들을 위해 무엇을 제공해주고 어떻게 자연에 기대어 살아야하는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이 몸에 배어 있다. 그저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조금이라도 나누며 살아갈 수 있으면 그것으로 그들은 행복한 것이다. 그들은 긴 세월 동안 어마어마한 자연의 위력을 몸소 체험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민족보다 더 빨리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야함을 깨닫고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을 것이다.
이미 많은 선각자들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욕심은 끝이 없고 그 욕심을 절제하는 것 또한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욕심에서 벗어나 물욕에의 집착을 끊은 사람을 우리는 존경한다. 깨달음과 수행의 길은 멀고도 멀다. 알지만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고 욕심의 바다에 두 발을 푹 담그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려하니 삶이 버겁게 느껴진다.
늘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옳고 그름의 길에서, 이익과 손해의 길에서, 선과 악의 길에서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놓아야할지 망설이고 안절부절 초조해 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주변 환경과 손익에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우리의 마음은 그래서 늘 초조하고 불안하다. 딱히 잃어버릴 것도 얻을 것도 달라질 것도 없는데 마음이 이러한 것은 욕심의 질긴 끈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간혹 매스컴을 통하여 문명의 이기를 과감히 버리고 산속에서 사는 사람을 본다. 왜 저렇게 살까라는 의구심도 들지만 한편으로 동경하는 마음도 생긴다. 현실을 도피하는 행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자신의 영혼을 보듬을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물질의 풍요를 내던지고 현실을 외면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사람 속에서 서 행 더불어 살아가며 수평적인 교감을 이룰 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험난하고 척박한 환경일지라도 굴하지 않고 주어진 모든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라다크 사람들, 끊임없이 위로 아래로 원으로 순환하는 오묘한 자연의 순리를 깨닫고 터득하여 자연의 일부분이 되어 물 흐르듯이 순응하는 라다크 사람들, 불쑥불쑥 솟구치는 아집과 이기심과 욕심을 깊은 신앙의 가르침으로 절제할 줄 아는 라다크 사람들, 지구촌이 되고 산업화된 물결이 밀려와 곁에서 뒤흔들어도 꿈쩍하지 않는 라다크 사람들, 그들이 진정 행복한 사람들이 아닐까.
장맛비 끊임없이 쏟아지는 창가에 앉아 라다크인들의 삶을 한권의 책으로 체험해본다. 그들의 여유롭고 평화로운 마음을 내 안에 담아 보고, 겸손하게 자연 앞에 무릎 꿇는 가운데 생활의 지혜를 터득하는 자세를 배우고, 그 지혜를 오랜 시간 변함없이 이어오고 지켜오는 그들의 맑은 마음과 유연성 있는 삶의 자세를 배운다.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놓아야할지를 자연에 순응하는 그들에게서 배운다. 느리게 사는 의미는 무엇인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
딸에게 보내는 연서
리나! 오늘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네. 겨울비가 아니라 봄을 여는 비라 소리 없이 내리는구나. 네가 새로운 사람 만나 내 곁을 떠난 지 벌써 일 년이 되어가고 얼마 안 있으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겠구나.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했는지조차 잊어버릴 만큼 시간이란 참으로 쏜 살같이 빠르게 흐르는구나. 그래서 뒤돌아보면 늘 아쉬움이 남고 후회스러울 때도 있나 보다.
삶은 매일매일 소중하게 한 올 한 올 정성스레 엮어 가는 긴 여정인데 우리는 소중한 걸 잊은 채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앞으로 달리기만 한 것 같다. 서로 마음 속 깊은 곳을 들여다 볼 여유도 없이 무엇에 쫓겼는지 모르겠다. 다정하게 눈 마주치고 따스하게 보듬어 주고, 무릎이 부딪쳐 아플 만큼 어깨가 으스러질 만큼 서로 부대끼고 뒹굴고 웃고 떠들고 소리치며 함께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네게 늘 미안하고 아쉽구나.
어느 날 갑자기 너를 보내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너는 서둘러 우리 곁을 떠났구나.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았고 경제적인 준비도 못한 상태에서 부랴부랴 너를 보냈으니 그 빈자리가 더 허전하고 서운하고 마음도 많이 아프단다. 그러나 너는 이제 새로운 가정을 꾸렸으니 네 보금자리를 따뜻하고 포근하게 가꾸어야하겠지. 사랑과 믿음, 배려와 이해가 바탕이 되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게 가장 소중하고 큰 기쁨이 아니겠니?
리나야! 너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올해도 다 가는구나. 가장 뜻 깊고 의미 있었던 시간……
그 시간이 네 인생의 또 다른 시작이 되었음 한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가야할 날이 더 많은 너에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 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새로운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나무 한그루 마음 밭에 심었으면 한다. 나중에 그 나무가 튼실하게 자라서 늘 푸르고 울창하여 너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쉼터를 마련해 주고, 또 곁에서 늘 너를 지켜주는 튼실한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다.
네가 정성을 들여 가꾼 그 나무 아래서 소중한 사람들과 오랜 시간 함께 보내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단다.
서로의 맘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해하기 힘든 일도 이해 할 수 있단다. 작은 아픔이라도 서로 나누고 보듬어 준다면 그 아픔도 쉬이 아물 수 있을 거야. 때로는 서로 너무 달라서 당혹스러울 때도 있겠지만 그 다름이 오히려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는 소중한 것이라 생각하려무나. 그럴 때는 다른 환경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탓에 생각도 가치관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면 상대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거야. 힘들고 외로울 땐 먼저 손 내밀어 도움도 청하고 외롭다고 말하고 따스한 맘으로 다가 가려무나.
결혼이란 얼마나 많은 숙제를 주는지 모른단다. 끝없이 주어지는 현실의 무게를 그냥 맘속에 꾹꾹 차곡차곡 오래 동안 담아두면 언젠가 썩은 냄새가 나며 독한 가스를 내뿜듯 폭발하게 된단다. 갑자기 품어져 나온 그 독은 서로를 많이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 감정이든 의견이든 쌓아두지 말고 그때 바로 대화로 풀어나가는 것이 현명하단다. 참고 외면하다 보면 나중엔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게 되고, 결국 서로 소통하고 공유하는 것은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러기보다 작은 화병에 한 두 송이 꽃을 꽂고 커피 한잔 마시며 서로 얼굴 마주보며 눈을 맞춰 보아라. 그 눈빛만으로도 서로를 맘을 읽을 수가 있단다. 진한 커피 향기 어루만지다 보면 이해하는 마음도 생기고 서로의 깊은 속내도 헤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면 섭섭한 것 아픈 것 도란도란 얘기로 풀어 나갈 수 있을 거야.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다가가고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가졌음 한다.
리나야! 한 해 동안 애 많이 썼다. 아직 익숙지 않은 환경과 새로운 가족으로서 어색하고 낯설었을 테인데 주어진 숙제 다 잘 해나가는 네가 참 대견하고 고맙구나. 이제 예쁜 애기가 곧 태어나겠지…… 부디 건강하게 태어나고 너도 많이 힘들지 않고 건강했으면 한다. 그리고 햇살마냥 밝고 따스하고 사랑이 넘치는 행복한 가정 꾸려가기를 오직 그것만 바랄 뿐이다. 부모란 칼로 가슴을 에이 듯 자식을 사랑하지만 그저 바라보고 지켜볼 뿐이란다. 노래 가사처럼 문기대어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잠 못 이루지만 그러나 결국은 각자의 삶이 있을 뿐이란다. 인생도 경영이라고 하는 말이 있더구나. 처음엔 그 말이 참 생소하게 들렸지만 정말 인생은 포괄적인 경영을 해야만 될 것 같구나. 네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경영자로서 멋지게 지혜롭게 살아가길 바란다.
그리운 고향 아버지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 하얀색 혹은 검정색으로 포장된 우람한 둥근 물체가 군데군데 놓여 있다. 축산농가에 팔리어 가기 위해 기계로 단정하게 포장된 볏짚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볏짚은 우리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만큼 소중했다. 볏짚은 대나무와 함께 우리 생활에 아주 긴요하게 쓰였다. 누렇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면 추수하는 데 많은 일손이 갔다. 낫으로 베고 뒤집어 말리고, 깻단으로 묶어 낟가리로 쌓아서 탈곡을 하고 나면 논 한복판에 볏짚은 산더미처럼 쌓였다. 생필품과 마찬가지인 볏짚을 소달구지에 실어서 채마밭이나 마당 한 쪽에 쌓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동력과 시간을 들였었던가.
새마을 운동으로 지붕개량을 하기 전엔 기와집이 아니면 대부분 초가집이었다. 연례행사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초가지붕의 새 단장이다. 볏짚은 속이 비었기 때문에 그 안의 공기가 여름철에는 내리 쬐는 햇볕을 감소시키고, 겨울철에는 집안의 온기가 밖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막아준다. 그리고 겉이 비교적 매끄러워서 빗물이 잘 흘러내리므로 두껍게 덮지 않아도 물기가 스미지 않으며, 벼농사를 지어 왔던 농촌 사람이면 늘 보아왔던 눈썰미만으로도 쉽게 지붕을 덮을 수 있다. 또 초가지붕은 짚 자체가 지닌 성질 때문에 따뜻하고 부드럽고 푸근한 느낌을 주며, 한 해에 한 번씩 덧덮어 주므로 집에 각별한 치장을 하지 않아도 언제나 밝고 깨끗한 모습을 보여준다. 볏짚의 그 노란 빛깔과 부드러운 곡선이 마음을 여유롭고 편안하게 해 주는 것 같다. 그래서 벼농사가 생긴 이래로 움막에서부터 볏짚은 주거생활에 큰 몫을 했는지도 모른다.
한 해 동안 비바람에 시커멓게 변하여 푸석거리는 지붕은 노란 황금빛 단장을 해야 다가오는 여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연례행사처럼 추수가 끝난 후 농한기가 시작되면 아버지는 양지바른 마당에서 이엉을 엮으셨다. 볏짚의 뿌리 쪽을 나란히 맞추어 빠른 손놀림으로 길게 엮으셨다. 적당한 길이의 이엉이 엮어지면 둘둘 말아서 새끼로 묶어 마당 한 편에 여러 개를 나란히 세워두었다. 그리고 어떻게 만드는지 무척 어려워 보였던 용마루라는 걸 엮으셨는데 초가지붕의 제일 위 분분을 덮는데 사용하거나 돌담 위에 얹어 담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데 사용했다. 어린 나에게는 아무리 자세히 봐도 용마루는 어떻게 엮는지 모를 정도로 비틀고 꼬고 하셨는데 그게 지네모양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짚은 겨우내 땔감과 소여물로 쓰기 위해 마당 끝에 산처럼 차곡차곡 높이 쌓아 놓았다. 땔감과 소여물로 조금씩 부피가 줄어들 때까지 그 짚비까리는 매서운 북풍도 막아주면서 포근하고 따스한 양지를 만들어 주어 우리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다. 짚비까리를 빙빙 돌며 숨바꼭질도 하고, 양지에서 해바라기를 하며 딱지치기도 했다.
새끼 꼬는 일도 연례행사로 큰일이었다. 새끼는 짚을 흔들어 겉껍질을 손으로 대충 쑥쑥 훑어 내고 깔끔하게 정돈된 짚에다 물을 약간 뿌려서 꼬았다. 밤에 희미한 호야 불 아래서 밤이 이슥하도록 짚의 사그락대는 소리가 들렸었다. 짚을 몇 가닥씩 포개 넣어 두 손을 기계처럼 비비는 아버지의 손놀림이 눈에 선하다. 새끼는 굵은 것과 가는 것으로 꼬아서 실타래처럼 만들어 보관하여 한 해 동안 생활 전반에 생광스레 이용했다. 볏짚은 생활에 쓰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무청을 길게 엮어 처마 밑이나 울타리에 널어서 말리기도 하고, 소꼴 베는 망태기와 소쿠리도 만들어 들것으로 이용하고, 고추와 벼를 말리는 멍석과 가마니, 그리고 가마니보다 더 엉성한 섬도 짜서 고구마나 쌀겨 등을 보관했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소여물이다. 겨울이면 풀을 먹을 수 없는 소에게 여물은 중요한 먹이였다. 작두를 놓고 한 사람은 짚단을 들이밀고 한 사람은 작두의 손잡이를 눌러 짚을 잘게 썰었다. 언뜻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두 사람의 호흡이 척척 맞지 않으면 제대로 썰어지지 않는다. 커다란 가마솥에다 여물과 음식 찌꺼기와 쌀겨 등을 넣고 푹 끓이면 구수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쇠죽을 구유에다 가득 담아 주면 소는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모른다. 또 소외양간에도 짚을 깔아주어 소의 잠자리를 아늑하게 만들어 주었는데 나중엔 농사에 유용한 퇴비로 이용되었다. 어디 소뿐이랴. 염소와 돼지우리에도 깔아 주었고, 닭이 알을 낳고 품는 둥지도 볏짚으로 아담하게 만들었다.
소를 이용해서 농사를 짓던 육칠십 년대는 소는 정말 소중했다. 재산 목록 일호였다. 우리 부모님들은 소를 팔아서 대학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도 보냈다. 소의 시중을 드는 일은 우리에게 귀찮고 하기 싫은 일과였다. 경운기도 농기계도 없었던 그때의 소의 가치는 결코 돈으로 셈할 수 없을 것이다. 소도 한식구와 다름없었다. 그래서 소를 팔러 가는 날은 눈이 커다란 소도 눈물을 줄줄 흘리고 온 식구도 울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메주를 쑤어서 매달아 놓을 때에도, 땅속에 묻어 둔 김치 독을 덮어 둘 때도, 무를 묻어둔 구덩이 입구의 마개도 볏짚을 이용했다. 어린 시절 끝이 안보일 만큼 아득하고 넓었던 들판이 무분별한 개발과 공장지대의 입지 등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요즘은 들판에 버젓이 세워져 있는 공장들도 수없이 많다. 이제는 절대농지라는 게 없는 걸까?
선진국일수록 축산업이나 농업이 더 발달 되었다고 한다. 사람이 건강을 잃으면 다 잃듯이 우리가 사는 지구도 우리가 누리는 자연이 파괴되면 다 잃는 것이 아닐까. 보호와 보존과 새로운 기술 개발이 조화롭게 이루어질 때 선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구제역, 신종 인플루엔자. 조류독감 등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질병은 우리를 위협한다. 무엇을 먹어야 할 지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할 지 알 수가 없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각종 최첨단의 덫에 사람이 걸려 든 느낌이다. 그래도 지구에는 아직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사람이 자연의 품속에 안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획기적인 과학의 발달로 자연을 극복해가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물질문명의 보폭을 줄이고 느린 걸음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잠시 잊어버리고 손에서 놓아 버렸던 것들에 깊은 애정을 가져 봄도 좋을 듯하다. 사람과 자연이 함께 공존하기 위해서 한번 쯤 더 생각하고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어릴 때 뒹굴고 숨고 했었던 볏짚을 떠올리며 그때 몰랐던 그 유용함을 되짚어 보며 우리 조상들의 지혜도 함께 엿볼 수 있었다. 아무데서나 뒹굴고 아무런 의심 없이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볏짚은 생각만 해도 푸근하고 따뜻하고 여유롭다. 조상의 지혜가 가득 담긴 볏짚이 지금도 청국장과 메주를 발효시킬 때 이용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된다. 가을 추수가 끝나면 빈 들판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 생활에 유용하게 쓰였던 볏짚과 공예가처럼 볏짚을 만지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현대판 신문고申聞鼓 민원
살다보면 답답하고 억울한 일이 있다. 도움을 청할 때도 해결할 방법도 없을 때는 삶이 온통 가시밭처럼 느껴지고 심한 고독감과 상실감에 빠져 들게 된다. 그저 하루 세끼 밥 먹고 애들 공부시키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에겐 법은 멀리 있을 뿐이다.
몇 년 전의 일이다. 오래 동안 도시계획이 되어 있던 집 앞 골목이 소방도로로 확장되면서 우리 집 화단과 아래채가 몽땅 사라지게 되었다. 시청에서 나온 직원들은 스무 살을 훌쩍 넘긴 나무들을 포크레인으로 푹푹 떠서 트럭에 실어갔다. 아들이 태어나던 해 기와집을 헐고 양옥집을 앉히면서 어린 묘목을 손수 심었었다. 봄이면 매실을 따고 가을엔 단감을 따 먹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향기와 아름다움을 주었던 화단이 사라지니 오랜 친구와 영영 이별하는 것처럼 안타깝고 서운했다.
농기구를 보관하고 집안 행사가 있을 때와 메주를 쑬 때 이용하던 가마솥 아궁이와 벼를 쌓아 두었던 창고가 있던 아래채와 담도 순식간에 허물어지고 정화조마저 없어졌다. 당장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는 것과 하수구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다음날 정화조를 묻어준다고 했지만 어쩐 일인지 더 이상 공사는 진척되지 않고 멈춰 버렸다. 그냥 좀 늦어지나 보다 했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또 일주일이 지나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이른 봄이라 심하게 불어대는 바람 때문에 흙먼지가 집 전체를 뽀얗게 만들었다. 아이들도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르는 채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서 현장 책임자에게 물었더니 이웃노인 분들이 휴식공간으로 사용하던 작은 빈 집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집 대문 바로 옆 작은 구멍가게였던 그 집은 홀로 살던 아주머니가 돌아가시자 딸들이 있었지만 집을 비워 두고 있었다. 그러자 동네 할머니들이 거기서 노인정처럼 모여서 놀고 식사도 하시고 했는데 철거가 되자 시청을 상대로 보상을 바라고 비켜주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분들에게 특별한 권리도 없기 때문에 시청에서 어떤 보상을 해줄 리가 없는데 억지를 부리신다는 것이다. 이장님의 선처로 모두 함께 식사라도 할 수 있게 금일봉을 드린다고 해도 막무가내였고, 교대로 주무시며 집을 지키며 비켜 주지 않는다고 했다. 한마디로 많은 돈을 요구하며 데모를 하고 계신 것이다. 노인 분들을 상대로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손을 놓고 계시는 책임자가 안타깝기도 했지만, 나도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 속을 끓이고 있는데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가 찾아와서 할머니들을 설득해 달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정화조 때문에 불편을 겪고 있는 데다 할머니들의 행동이 이해할 수 없고 납득도 안 되었다. 엄연히 집주인이 따로 있고 여태까지 그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사용한 것도 고마운 일인데 이렇게 공사까지 못하게 단체행동을 하는 것은 지나친 행동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경우가 틀리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그 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자꾸 생각나서 불편을 겪는 성격이지만 늘 이웃에서 얼굴을 대하는 분들이라 다짜고짜 이러쿵저러쿵 말하기도 뭣해서 하루를 더 참고 기다렸다가 다음 날 그분들께 갔다.
“저는 왜 이렇게 이리 공사를 안 하는가 했는데 이 집 때문이라고 하네요. 여기서 매일 모여서 맛있는 음식 나눠 드시며 노시고 하던 집이 없어지는 건 섭섭하시겠지만 이집 주인이 엄연히 따로 있는데 이러시면 어쩝니꺼. 여태 여기서 노신 것만 해도 감사할 일 아닙니꺼. 그리고 정말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있는데 우찌 이럴 수 있습니꺼. 이렇게 길이고 마당이고 다 파헤쳐 놓아 흙먼지가 장난이 아니고 화장실도 사용 못하고 있는데 빨리 공사할 수 있도록 좀 도와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꺼. 할머니들 같으면 집이고 마당이고 이렇게 헐어 놓고 공사도 안하고 보름이 지나도록 중지되어 있으면 그냥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시겠습니꺼.” 그렇게 한바탕 부글거리던 속내를 풀어내자 할 말이 없으신지 할머니들은 서로 멀뚱하게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할머니들은 교대로 거기서 식사하고 주무시는 일은 하지 않았다.
다음 날 공사가 다시 시작되고 정화조도 바로 묻어 줄 것이라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 빈집은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졌지만 또 다시 공사는 멈추었다. 아침마다 화장실 사용이 제일 문제였다. 하수구가 없으니 마당은 질퍽거리고 흙먼지 때문에 밖에 빨래를 널 수도 없고 일상이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번엔 공사는 중단된 채 한 달이 지나도 직원들의 발걸음도 없었다. 왜 공사가 중단되었는지 수소문해 본 결과 그 골목을 끼고 있는 한 집이 아직 도로확장에 보상합의를 하지 않았고, 보상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를 한다고 소송을 제기한 모양이었다. 모든 게 절차가 있는데 보상절차를 끝내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부터 덜컥 시작해서 이렇게 불편을 주는 시청의 모든 절차가 못마땅했다. 경우에 어긋나고 잘못된 행정이 부당하다는 생각과 언제 이 공사가 끝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시민에게 피해를 주는 시청을 상대로 법에 호소라도 해보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여기저기 조언을 부탁했지만 시에서 하는 일이니 어쩌겠느냐는 말만 들을 뿐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궁하면 통하는 것일까. 문득 떠오르는 게 민원이었다. 시청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가 불편함과 부당함을 소상하게 적었다. 딸이 둘이나 있고 대문도 담도 없으니 맘을 놓을 수가 없으며, 흙먼지가 날아서 빨래를 말릴 수도 없고 창문을 열수도 없다.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보상이나 서류상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한 다음 공사를 시작하는 게 원칙 아니냐. 보상 문제도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벌집 쑤셔 놓은 것처럼 해놓고 오래 동안 불편을 겪게 하느냐. 당장 화장실이라도 이용할 수 있도록 정화조부터 묻어달라는 내용의 글을 도로 과와 시장님 앞으로 보냈다.
다음 날 시청 직원 세 명이 왔다. 이것저것 물어보며 죄송하다는 말을 하며 파헤쳐놓은 흙을 한데 모으고 깨끗하게 쓸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그 직원들에게 당신네들이 갑자기 하수구와 화장실이 없는 불편한 상황을 겪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아무리 정부에서 하는 일이지만 너무 무책임한 행동 아니냐고 하며 당장 정화조부터 묻어 달라고 했더니 다음 날 적절한 위치를 찾아서 묻어 주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상하수도 문제와 화장실의 문제에 불편을 겪으면 일상이 무너지는 것 같다. 그나마 화장실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공사가 마무 될 때까지 기다리는데 좀은 여유가 생겼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공사가 시작 되었다.
봄이면 채송화 봉숭아 씨 뿌리고 어린 묘목을 큰 나무로 키워 이십년 넘게 친구로 있어 줬던 화단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애지중지하던 나무들은 사라지고 마당은 좁아지고 골목은 넓은 소방도로로 변했다. 지금은 차들이 속력을 내며 달린다. 현대판 신문고인 민원 덕택에 속 끓이고 발을 동동 구르며 마냥 기다리고만 있었을 공사가 서둘러 진행되었다. 이건 아니다 싶을 때 법의 힘을 빌리지 않고 부당함을 호소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어떻게 일을 처리하면 좋을지 몰라 당황스럽고 부당한 일로 억울한데 누구한테 말할 수 없을 때 얼마나 초조하고 불안한가. 그 옛날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둥둥 신문고를 울려 하소연을 했던 신문고가 영원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아직도 민원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머물러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태풍속의 혼돈과 질서
카오스(Chaos)란 우주가 발생하기 이전의 원시적인 상태, 혼돈과 무질서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에 반하여 코스모스(Cosmos)는 질서정연한 우주를 이르는데 천지를 가리키는 말이며 공간과 시간의 총체와 상통한다고 하였다. 언제나 규칙과 질서와 관습의 틀에 메여 살다보니 이렇게 폭풍이 휘몰아치는 날이면 모든 생명체가 뒤섞일 것 같고 우주가 혼돈되는 느낌이다. 시간은 무한하지만 우리는 유한한 존재임을 실감하게 되는 때가 천재지변이 일어날 때인 것 같다. 늘 평온하게 보내는 일상이지만 정해진 시간과 공간을 오락가락하며 종종걸음 치는 게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위협하는 대자연의 몸부림과 아우성은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을 것 같다. 대단한 위력으로 일순간 혼돈의 세상을 만들어 우리를 지구 밖으로 밀어내거나 어질어질하도록 흔들어 놓는다. 자연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인간의 한계를 가르치려는 것일까 아니면 교만을 혼내려는 것일까.
이렇게 문명이 발달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지진과 해일.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 앞에서 우리는 나약하기만하다. 그래서 자연을 극복하기 위한 연구와 과학의 발달이 끊임없이 이어져오고, 그 업적으로 우리는 좀 더 편리하고 편안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을 뛰어넘어 생명도 연장하고 우주정복의 꿈도 이루어 이미 내가 초등학생 때 신비하게만 느껴졌던 달에 인간의 발자국도 남기게 되었다. 자연을 극복하고 편리함을 추구하려는 끊임없는 욕구는 잠시라도 물질문명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이런 생각이 미치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나무>를 떠올리게 된다. 인간이 발명하고 발달시킨 지식과 문명 속에 스스로 갇혀가는 모습들이 잘 표현되어 있다. 결국 정확한 위치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시계의 초침 바늘에 얽매인 듯 균일한 소리를 내며 반복되는 삶에 우리 모두 길들어져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정돈된 코스모스적인 세상 같지만 우리들은 거기에 익숙해져 내면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채, 얽히고설킨 거대한 문명의 틀 안에서 우왕좌왕 파국으로 치닫는 혼돈을 체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하나가 무너지면 이것도 저것도 와르르 무너지는 도미노 현상이 순식간에 일어나는 현대사회다. 버튼 하나로 온 세상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는 문명의 도발이 때로는 섬뜩하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도전은 얼마나 더 진보할 것이며 어디까지 다다를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숨이 가빠온다.
어찌 보면 거기에 이르지 못하는 느림보 걸음인 나만의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것이 개발되어 매스컴을 타고 있고, 어쩌다 접하는 새로운 기기는 만지기도 가까이하기도 어렵 신기함만 가득하다. 잘 정돈된 질서 속에 있는 것 같지만 때로는 오히려 혼돈의 세상처럼 느껴진다. 새로운 것을 빨리 터득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나는 어지럽고 현기증 나고, 어느 새 하나 둘 문외한의 계급장을 여러 개 달 지경이다.
바다에서 생성되어 회오리바람으로 세력과 속도를 키워가며 무한도전으로 달려오는 태풍은 자연의 소리다. 세상을 휘감아 내동댕이칠 듯 우우 소리를 내며 세상 구석구석을 다 들여다보는 바람! 바다는 바람을 안고 하늘로 높이뛰기를 하여 사람이 사는 깊숙한 곳까지 눈을 흘긴다. 쉴 새 없이 구르며 밀려오는 파도는 화가 나서 울부짖는 것처럼 거세다. 뭐라도 휩쓸고 부숴버릴 기세로 산처럼 거대하게 솟아올랐다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결코 부서지지 않을 것처럼 묵직하고 튼튼해 보이는 방파제를 훌쩍 뛰어 넘어 우리를 위협한다. 바닷물이 하늘로 솟구쳤다 깨어지는 모습은 미적지근한 삶을 질타하는 것 같다. 그 순간만큼은 내 자신이 바늘귀보다 더 작게 느껴지고, 맘은 불안에 휩싸여 오두방정을 떨다 안전한 곳이라도 눈에 띄면 꼭꼭 숨어버릴 것 같다.
사람에겐 몸살이 있다. 일상에서 주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과 무겁고 가벼운 감정의 흐름에 매달려 혼신을 기울이다 보면 덜컥 몸이 브레이크를 건다. 그건 몸을 좀 쉬게 해달라는 외침이다. 그렇게 몸살을 앓아야 비뚤어지고 깨어져가는 육신을 재정비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된다. 억지인지 모르지만 자연도 그러한 것 같다. 그러나 자연이 앓는 몸살은 우리에겐 너무 가혹하다. 소중한 생명을 잃게 되고 많은 시간과 땀을 들여 애써 이루어 놓은 것들을 순식간에 할퀴고 생채기내서 풍비박산으로 만들어 버리니 누구인들 하늘을 바라보며 원망하지 않겠는가. 차곡차곡 쌓여있던 지혜와 정성의 결정체가 사라진 흉물스런 빈 공간에는 언제나 절망과 아픔이 베어든다.
그러나 노아의 홍수 때 방주를 떠난 비둘기가 나뭇잎을 물어와 홍수가 끝났음을 알려 주었고, 살아남은 방주 안의 생명들이 씨앗이 되어 새로운 시작을 하듯, 우리 역시 시간이라는 끝없는 연속성위에 다시 희망의 메시지를 안고 걸음마를 띠게 된다. 그러고 보면 삶은 무한도전이다. 우직하리만치 고통과 슬픔이 점철된 인고의 세월을 끌어안고 앞으로 나아가는 도전이다. 힘든 것만 있으면 어찌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간간히 순간순간 베어드는 기쁨과 환희가 있어 진한 행복감을 느끼기에 늘 다시 힘차게 출발을 외치는 것이다.
누군가가 인생도 디자인한다고 했다. 하얀 여백에다 꿈을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계획하고 도전하고 노력하고 실패의 쓴맛도 보게 된다. 숱한 시행착오를 거친 후 이뤄낸 꿈은 인생에서 최고의 성취감을 맛보게 한다. 그건 행복이다. 너와 나 우리 안에 늘 흐르고 넘치는 자잘한 행복도 소중하지만, 인생의 항로에서 보물을 찾고 그 보물이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지녔을 때에, 그리고 그 가치를 사회에 기여하고 나눔으로 이어질 때 최고의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인류역사는 그렇게 열정적이고 용기 있는 도전으로 면면히 발전하며 이어져 왔다고 생각한다.
휘몰아치는 바람소리가 낯선 어딘가로 우리를 몰아갈 것 같아 두렵고, 두드리는 비 소리가 세상을 휘감아 덮칠 것 같아도, 그 우람한 자연의 소리 이면엔 또 다른 울림이 있다고 생각한다. 보이는 질서 속에 보이지 않는 혼돈이 먼지처럼 쌓여 있다. 혼란스럽고 막막한 자연의 소리 뒤에 보이지 않지만 카타르시스가 이루어지고 또 다른 질서가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태풍이 외쳐대는 소리를 들으며 창문에 사선으로 빗대어 몸부림치듯 두들기는 강한 빗줄기를 흐린 시야 속에 담으며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다. 태풍전의 고요한 순간과 적막감이 평화롭지 않음은 아직 태풍의 실체를 보고 겪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다시 바람이 소리를 낸다. 평소에 듣지 못했던 자연의 소리가 난무하며 윙윙거리며 하늘로 내달린다. 그 혼돈을 바라보며 이것저것 떠오르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메운다. 태풍의 현란한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그 강한 에너지의 절정을 느낀다.
바람과 비의 무한을 바라본다. 태풍의 그 동그란 눈을 에워싼 바람의 회오리가 우리를 두렵게 하는 순간에도 어리석어보일 만큼 열정적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억겁을 이어온 자연의 위력 앞에 당당하게 희망의 횃불을 들고 분연히 일어나 세상을 디자인하고 꾸미고 가치를 형성하며 역사를 창조해가는 선구자들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편리함에 길들여지고 편안함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건 혼돈 속에서 질서를 회복하려는 용기 있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다. 같은 상황에서 누구나 같은 소리를 듣고 같은 걸 느끼고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그 다름이 도전의 원동력인지도 모른다. 회오리치는 비바람 소리를 들으며 생각나는 대로 적어본 글이 어쩌면 궤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순간 질서와 혼돈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태풍의 요란한 음향을 들으며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해 본다.
섭리
정오를 막 넘어선 대지에 쏟아지는 늦가을 햇살이 하얗게 빛난다. 평일의 체육공원은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사람만이 드문드문 있을 뿐 한가롭다. 낙동강 하구를 따라 넓게 펼쳐진 빈터가 시민들의 체력단련 장으로 단장된 모습은 바라만 봐도 흐뭇하다. 요즘은 곳곳마다 어디를 가든 비어 있는 공간이 있으면 벤치나 원두막을 설치해두고, 나무 한두 그루와 화초 몇 포기를 심어서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쉼터를 조성해 놓았다. 산책을 하다 걷기가 힘들면 저절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아직 완전히 짜임새 있는 공원으로 탄생한 건 아니지만 넓은 주차공간과 자전거 전용도로, 큰 운동장과 작은 운동장, 의자와 원두막, 음수대 화장실 등 최소한 필요한 것은 다 갖춰져 있다. 아직 개발의 손이 닿지 않은 하구 습지에는 물을 좋아하는 나무들과 잡초가 서서히 가을빛을 잃어가고 있다. 서쪽 하늘은 낮은 산 능선을 안고 그림처럼 낙동강 하구의 전경을 감싸고 있는 듯하다.
오랜 시간 시민들과 함께 한 공원은 편리하게 조성되어 있는 반면 복잡하고 분주하다. 공원 주위에 형성된 상가들로 인해 여백의 멋이나 편안한 느낌이 없어 오히려 피로감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여긴 그 흔한 음료수와 커피 자판기 하나 없다. 자연 그대로의 길과 시설물만 조성되어 있어 복잡하고 어지러운 느낌은 전연 없다. 비어 있는 여백이 오히려 여유와 편안함을 준다. 답답한 일상과 반복되는 생활의 리듬을 잠시나마 벗어나 맑은 바람 속에 서 있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서늘한 갈바람이 옷깃으로 스민다. 아직 초록빛으로 남아 있는 잔디를 손끝으로 쓰다듬어 보면 그 감촉이 매끄럽고 상큼하다. 하늘 위로 구름 몇 점이 떠 있지만 빛의 파장이 길어진 무한한 공간은 높고 푸르러 눈의 피로를 가시게 해준다. 약간 싸늘한 기온은 때로는 긴장감과 상쾌함을 준다. 바람은 넓은 공간을 휘돌아 곱게 물든 나뭇잎들을 떨어뜨리고 억새가 춤추고 있는 강가에 이르러 물길을 붙잡고 바다로 향한다.
체육공원에서 잠시 여유로움을 즐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정오를 막 넘긴 가을 햇살이 눈부시고 따사롭다. 운동장 입구 공사장에 임시로 세워둔 높은 벽은 북쪽을 가로막아 볕살이 두터워 강아지풀 바랭이 등 잡초가 아직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포장 되지 않은 길은 차가 지나갈 때마다 뽀얀 먼지를 일으키어 시골 신작로길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흙길 위에서 메뚜기들이 이리저리 마구 뛰어다니고 있었다. 벌써 차가운 북풍을 예감하고 한살이를 충족시켜 주었던 시간과 이별했을 텐데 팔딱이며 날아다니는 그들은 아직 할 일을 다 못한 것일까. 종족번식의 본능을 감출 수 없어 육중해진 몸을 비틀며 차오른 에너지를 발산하려고 질주하는 미물들이 안타깝고 애처롭다.
그냥 갈 수 없어 차에서 내려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갈색과 초록이 뒤섞인 풀숲을 헤집자 그들은 정열적인 삶을 연출하고 있었다. 아직 다하지 못한 사랑을 위해 암컷이 수컷을 업고 짝짓기에 몰두하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며 본능적으로 솟아오르는가 하면, 보호색인 갈색을 띠고 누렇게 물든 풀숲에 기대어 아예 죽은 척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불록해진 배를 안고 알을 낳기에 적절한 곳을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날아다니는 모습은 결사적이었다. 신이 내린 모성본능은 미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마지막 열전을 치루고 있는 운동선수처럼 비장하다. 벌거숭이 맨땅도 아랑곳하지 않고 작은 홈을 찾아 꽁무니를 내리고 알을 낳고 있는 모습은 마치 최후의 준비하는 전사자처럼 숭고해 보였다.
그 고귀한 순간을 방해할까봐 발소리를 죽이며 까치발로 다가서면 어느 새 예민한 감각기관으로 위기를 감지하고 십여 미터 정도의 거리를 거침없이 날아서 피했다. 지금 눈에 띄는 메뚜기는 거의가 암컷이다. 얼마 전에 벼논에서 봤던 메뚜기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벼 포기 사이를 재빠르게 누비던 그들은 풋풋한 청춘이었다. 미물이지만 떠나야 할 시간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본능적으로 겨울이 오기 전에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해야하는 슬픈 운명이지만 처절할 만큼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것이다.
늦가을 알을 낳고 나둥그러져 있는 곤충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 마음이 싸해진다. 곤충들은 구애를 하고 짝짓기를 하고 한살이를 마감할 준비를 한다. 추수가 끝나고 바람이 차가워지면 모든 곤충들이 풍미했던 시간을 접으며 가을을 배웅한다. 사마귀도 거친 입놀림과 다른 곤충을 위협하는 자세를 낮추고 나뭇가지나 풀줄기에 기대고 숨을 죽이고 있으며, 어쩌다 길 잃은 나비도 힘없이 날개를 퍼덕이다 어딘가에 앉아 날개를 접고 잠을 자듯 침묵하고, 물가에 가면 아미 알을 낳고 죽어 있는 잠자리의 시체를 볼 수 있다. 한동안 우리들의 벗이 되어 주었던 나무와 풀과 곤충들은 제각기 겨울을 보내기 위한 준비로 가을은 분주하다.
나는 종종 한없이 게을러질 때가 있다. 머릿속은 비고 마음은 공허하고 가슴은 푸석푸석 마른 먼지가 일고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럴 땐 종종 재래시장을 찾는다. 그곳엔 소탈하고 꾸밈없는 삶이 있다. 금방 그물에서 건져 올린 생선처럼 퍼덕이고 비늘처럼 반짝이는 그 무엇이 있다. 살아야하는 강한 의지가 힘찬 발걸음에 얹혀 골목마다 누비고 있다. 살아 있는 그 자체에 자연스럽게 의미가 부여되고 시간의 소중함이 말초신경을 하나하나 곤두세우게 하며, 미세한 실핏줄마저 발갛게 타오르는 뜨거움을 느낀다. 그것은 주어진 삶을 진지하고 성실하게 누려야함을 깨닫는 순간이고, 하늘이 준 섭리에 순응하는 원초적인 본능이며 욕구인지도 모른다.
온 몸에 가득 배어드는 비릿한 냄새와, 질퍽한 물기가 고여 있는 시장 바닥에 투박하게 내딛는 걸음걸이와 “쌉니다, 맛보세요, 사세요, 떨이입니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축 늘어져 있던 내 오감을 마구 자극하면. 젖은 솜처럼 축 늘어져 있던 맘과 몸이 조금씩 꿈틀대며 불현듯 바빠진 맘으로 서성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처절할 만큼 자연의 섭리에 몰입하는 미물들이 재래시장만큼이나 나를 쾅쾅 두드린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애쓰며 오늘에 이르렀을까. 사방에 적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을 텐데. 곤충들은 참으로 신기하다. 모양이나 색으로 무장을 하여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먹이사슬의 우위를 지키려고 애쓴다. 그것 또한 숭고한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한다. 먹이사슬이 잘 이루어지면 생태계 보존도 자연스럽게 가능할 것이다. 굳이 사람의 힘으로 의도적으로 개체수를 늘이거나 줄이지 않아도 될 터이다. 근본적으로 파괴된 환경을 환원시키고 생태계가 복원되면 먹이사슬도 자연스럽게 형성 될 것이다.
세상 모든 것들이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둥글게 순환하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물은 아래로 흐르며 세상 곳곳을 휘돌아 적시고 생명을 키울 때 아름답고, 불은 용광로처럼 활활 타올라 그 뜨거움에 달궈져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때 아름답고, 꽃은 활짝 피어 그 고유한 빛깔과 향기를 천지에 쏟아내어 벌과 나비를 불러 모을 때 아름답다.
모성애도 종족번식의 의지도 먹이사슬의 형성도 결국은 자연의 섭리 안에 서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따사로운 가을볕 속에 끝나지 않은 그들의 한살이가 자동차 바퀴의 무서움과 지독한 매연 속에서 질주하고 있다. 지구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자연의 일부이며, 그 섭리 안에서 보이지 않는 고리로 연결되어 있고 나 또한 그 일부분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금목서와 은목서를 심으며
금목서 노란 꽃향기가 코끝을 간지럽게 하는 듯하다. 금목서라는 나무를 정확히 알게 된 것은 대동에 살 때이다. 마당에서 늦가을까지 금빛으로 온 집안을 은은한 향기로 물들이고, 돌담을 넘어 골목길을 가득 채우며 동네 마실까지 나가던 고운 향이 금목서 향기였다. 그 꽃 이름을 딴 카페에서 이렇게 글을 써 올리고 있으니 그것 또한 인연인지도 모른다.
지난 시월에 처음 본 학산은 재선충 방제를 하느라 군데군데 잘라서 덮어 둔 초록 무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산 전체가 온통 칡넝쿨에 뒤덮여 마치 정글 속 같았다. 그 질긴 넝쿨이 이 나무 저 나무를 얽어 메어 하늘을 가리고 있어 허리를 굽히고 낮은 걸음을 걸어야 했다. 나무는 억센 칡의 생명력에 질리기라도 한 듯 서로 키 재기를 하며 높이 자랐지만, 칡넝쿨은 아랑곳 하지 않고 숲을 점령했다. 이리저리 여기저기 줄기를 뻗어 태연하게 노란 이파리로 가을을 물들이고 있었다. 마치 연리목처럼 나무줄기에 엉겨 붙는 것도 모자라 가지를 휘감고 잎을 눌러 숨을 못 쉬게 한다. 칡넝쿨의 어마어마한 위력은 마치 독재자 같았다. 동아줄처럼 칭칭 동여매는 그 힘에 견디지 못하고 나무는 어이없이 억눌린 채 고사해서 쓰러져 있었다. 구릉처럼 나지막한 학산은 아늑한 느낌보다는 약간 을씨년스럽고 황량한 느낌이 더 많이 들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서 조금씩 사람의 손길이 닿은 학산은 이제 환해진 느낌이다. 소나무 사이사이의 잡목과 칡넝쿨이 사라지고 오솔길이 만들어져 있다. 쓸쓸하게 웅크리고 있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이제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거기다 잡목들이 사라진 자리에 상록수가 군데군데 파수꾼처럼 서 있으니 한결 싱그러운 느낌이다. 산은 나뭇잎으로 푸르게 깨어나고 봄꽃으로 수를 놓아 단장한다. 맑은 새소리가 산기슭에서 산마루에서 음악처럼 들려온다. 해가 중천을 넘어 약간 서쪽으로 기울자 황토 빛 흙과 상록수 잎은 밝은 햇살에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봄볕은 겨우내 서릿발을 돋아 세우던 대지위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따스한 눈길처럼 쏟아져 내렸다. 새싹은 힘차게 발길질을 하고 올라와 바람과 눈인사를 한다. 뿌리의 하얀 솜털이 물기를 찾아 끊임없이 기지개를 켜고 있음이 틀림없다.
학산을 문학촌으로 조성하기 위해 우선 나무부터 심는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도 금목서의 그 은은한 향기를 잊을 수 없어 금목서와 은목서를 심어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먼 훗날 이곳을 찾았을 때 그 나무들이 반겨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금목서와 은목서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맘속으로 기도를 했다. 아직 사회에 발을 내딛지 않은 딸의 미래를 나무에 담아 본다. 정들었던 흙과 익숙한 향기와 물맛을 떠나 공기도 흙냄새도 다른 낯선 이곳에 이사를 와서 하얀 솜털을 일으켜 세워 물과 영양분을 흡수하여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꿈을 향해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는 딸이 세상을 밝게 바라보고 삶을 따뜻하게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마음과 같다.
이렇게 맘으로 나무와 얘기를 나누며 자식처럼 따듯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빨간 황토 흙에서 실핏줄처럼 뿌리를 잘 내리고, 봄여름 가을 겨울마다 나무 특유의 멋을 잎과 꽃과 줄기에 담아내었음 한다. 동그란 나이테 하나씩 더 생길 때마다 굵어진 줄기와 가지들이 서로를 향해 손짓하며 하늘을 향해 곧게 서 있었으면 한다. 잎이 무성해진 숲은 바람을 부르고 새들이 날아와 둥지를 틀어서 마치 지상낙원처럼 아름다운 곳으로 탄생하기를 바랄 뿐이다. 행여 폭풍우가 찾아와 가지를 흔들어 아프게 하더라도, 가뭄이 찾아와 뿌리가 마르고 가지를 축 늘이고 잎이 목말라 헉헉대도, 그 모진 날 들 다 겪고 나면 인내의 의미를 터득할 것이다. 그리하면 남은 날 더 성숙해져서 더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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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는 다는 것은 희망을 심는 것과 같다. 나무만큼 오래 동안 생명을 이어나가는 것도 없을 뿐더러 나무는 모든 다른 생명을 키워내는 묵묵한 전사다. 집 정원에 누구나 한두 그루 심는 정원수와 유실수에는 가정의 화목과 사랑을 심고, 특정한 목적이나 행사를 위해 심는 기념 수에는 처음의 취지와 목적을 오래 동안 기억하기 위해서 심고, 도시의 매연을 흡수하고 공기정화를 하는 가로수는 오가는 사람들의 건강을 심는다.
나무를 심을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은 어릴 때 사방공사라는 이름으로 헐벗은 산에다 부역을 동원해 나무를 심던 일과 식목일이면 학교 근처 산에 나무를 심으러 갔었던 일이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지름길은 나무를 많이 심어 숲을 가꾸는 일이다. 일제점령기의 벌목과 육이오전쟁으로 인해 헐벗은 산을 푸르게 만드는 것은 국력신장의 첩경이었을 것이다. 지금 산이 푸르고 우거진 것은 그때 열심히 나무를 심고 정성을 다해 가꾸었기 때문이다. 아마존 원시림은 지구전체의 산소 중에서 많은 양을 양산하고 또 광합성을 하기 위해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있기 때문에 지구 온도의 항상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즉 지구를 보존하는데 아마존의 거대한 숲이 큰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 온도가 일도만 올라가도 지구는 어마어마한 자연의 변화를 겪는다고 한다. 곧 우리가 두려움에 떨며 겪는 자연재해가 그것이다. 그만큼 나무는 우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지구 지킴이이며 자원의 보고이다.
나무를 심는 일은 미래를 약속한다. 천년 이천년 오랜 세월 지구를 보듬고 수많은 생명을 지키고 거두는 일을 나무와 숲이 하고 있다. 만물의 영속적인 존재와 그 생명을 보듬는 마지막 보금자리가 나무와 그 나무가 이루고 있는 푸르고 푸른 숲이 아닐까. 학산에도 세상의 모든 산에도 숲이 무성하게 우거졌으면 한다. 나무가 자라고 커가는 만큼 우리의 생각이 더 자라고 더 깊어졌으면 한다
일학년 한 학기를 축낸 디프테리아
삼월의 꽃샘추위가 하얀 눈을 지천에 뿌리니 움트는 어린 싹은 얼마나 놀랐을까? 날씨는 눈과 비를 번갈아 뿌리다 멀리 중국으로부터 모래 바람을 불러오며 변덕을 부린다. 아무리 추워도 봄은 봄인지라 푸석푸석한 마른 풀잎 사이로 여린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면 잠들어 있는 듯한 숲에 바람이 일고 나무에는 물이 오른다. 봄의 전령인 매화의 그윽한 향기가 곳곳에 가득하고 하얀 솜털을 벗고 앙증맞은 나뭇잎이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켜면 세상은 한 폭의 수채화로 변한다.
봄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계절이다. 산과 들의 모든 초목들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종족번식을 위한 한살이가 시작되고, 우리 또한 희망과 꿈을 향해 뭔가를 설계하고 준비해서 새 출발의 시점으로 생각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입학이다. 해마다 입학철이 다가오면 입학하자마자 아파서 한 학기를 몽땅 쉬었던 아픈 기억이 난다. 그런 자녀를 바라보며 절박하게 애태웠을 부모님 심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찡하다.
입학식 날 아버지가 사주신 천으로 된 검정운동화를 신고 겉옷 왼쪽 가슴에 하얀 가제 손수건과 이름표를 함께 달고는 엄마 손을 잡고는 학교엘 갔다.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이라 난생처음 사람이 많이 모인 낯선 상황이 약간 겁이 났지만 맘속으로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른다. 시골학교이지만 그때만 해도 학생들이 꽤 많아 한 학급이 거의 칠십 명 정도였고 삼반까지 있었는데 나는 1학년 1반이 되었다.
입학은 나에게 뿌듯함을 안겨 주었고, 늘 조용하기만 하던 어린 감정에 묘한 희열감을 가져다주었다. 모처럼 엄마에게 어리광도 부리고 군것질을 조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도 주어졌다. 잘 녹지 않아 오래 동안 입안에서 단맛을 느낄 수 있어 이름 붙여진 하얀 왕사탕 ‘십리과자’와 하얀 삼각형 봉지에 담겨진 옥수수 튀긴 것을 손에 넣은 나는 마냥 신이 났었다.
선생님이 “하나 둘!” 하고 외치면 우리들은 “셋 넷!”을 한목소리로 내며 교문까지 선생님의 배웅을 받을 때면 정말 신나고 행복했다. 처음 보는 풍금 소리에 맞춰 “주먹 쥐고 손을 펴서 손뼉을 치고 주먹 쥐고……”라는 동요를 부르며 선생님 따라 했던 율동도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학교는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것들을 나도 모르게 표출하게 만드는 새로운 곳이었다.
학생이 되어 신나고, 마당과 동네 골목과 왕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아담한 성당 마당이 놀이공간의 전부였던 어린 맘은 낯선 곳에서 낯선 또래와 공부를 하게 된다는 사실이 가슴 벅차게 다가 왔었는지 마냥 들떴었다. 그러나 학교에 얼마 다니지도 않았는데 잔병치레가 심했던 나는 어느 날부터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해서 학교에 갈 수가 없게 되었고, 그 기간이 그렇게 길어질지도 몰랐다.
면소재지에 유일하게 하나 있는 병원에 다니면서 여러 가지 약도 먹고, 그리고 좋다고 하는 조약도 써 보았지만 잘 낫지를 않았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기침이 나면서 목은 점점 부어올랐고 목안이 따갑고 아파서 음식도 삼킬 수가 없었다. 날마다 조금씩 더 부었던 목은 나중엔 얼마나 많이 부었던지 목선은 아예 없어지고 턱이랑 가슴이 수평선이 될 정도였다. 어머니는 백년초라 불리는 선인장이 목 부은데 좋다는 소리를 듣고는 가시가 숭숭 박혀있고 손바닥처럼 생긴 선인장을 구해왔다. 껍질을 벗기고 약간 투명하며 찐득하고 미끈미끈한 속 부분을 목에다 붙여 주셨지만 별효과가 없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치료를 했지만 나아지는 기미도 없이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런 와중에 네 살 어린 남동생도 기침을 하기 시작하며 이상한 증세를 보였다. 아버지는 병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직감하셨는지 갑자기 서둘러 나를 업고 엄마는 동생을 업고 기차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건 기차시간이 임박해서 길로 가지 않고 보리가 심어져 있는 들판을 가로질러 숨이 턱에 닿을 만큼 달려 가까스로 기차를 탔었고 읍내 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렇게 치료를 받고 급한 상황이 일단락되자 퇴원해서 통원치료를 받게 되었다. 기차를 타기위해 흙먼지 이는 신작로를 걸어 학교를 지나오면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떠들썩한 목소리가 어린 마음을 슬프게 했다.
외로움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지만 세상에 혼자 있는 것 같았고 학교에 갈 수 없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다. 또래들과의 만남조차 없으니 완전 외톨이가 되어버렸다. 넓은 운동장과 교실, 얼굴이 하얗고 예뻤던 담임선생님과 여러 동네에서 모인 낯선 친구들이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안타까움에 말은 못하고 속으로 얼마나 끙끙 앓았는지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목이 너무나 따가웠고 기침이 심하게 났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쉴 새 없이 기침을 쏟아내자 손가락 한마디만한 하얀 막 같은 것이 기침과 함께 목에서 튀어 나왔다. 그때 아버지는 얼른 그걸 주워서 하얀 종이에 싸서 성모병원으로 나를 데리고 갔었다. 종이에 싼 걸 조심스럽게 의사에게 꺼내 보이자, 선생님은 그 하얀 막이 나온 게 천만다행이라고 하시며 이젠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살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런 후 나는 점점 회복되었지만 동생은 잘 낫지를 않았다. 한약이며 병원이며 이것저것 다 해봐도 회복되지 않고 급기야 어느 날 저녁부터 호흡소리가 그렁그렁 소리를 내며 동네 골목 멀리에서도 들릴 만큼 심해졌다.
우리 친척들은 성당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서 살았는데 무슨 일이 있으면 한 가족처럼 돕고 어울려 지내온 터라 아버지는 친척들을 다 불러 모으셔서 기도를 하기 시작하셨다. 부엌에선 대나무 진액이 기침에 좋다고 해서 큰어머니는 대나무를 구워 한 방울씩 떨어지는 진액을 받아 모으고 있었다. 한 숟가락 정도 모이면 얼른 동생에게 먹이고 또 대나무를 굽고 액을 받아 모으고 있었다.
두려움과 긴장감이 집안 곳곳에 스며 있었고 오직 기도 소리와 동생의 거친 호흡소리만이 어둡고 고요한 밤의 침묵을 깨었다. 어린 나이지만 나는 그때 처음으로 죽음은 온 몸이 떨리고 긴장되고 두려운 것이라는 걸 알았다. 무서움과 알 수 없는 긴박한 긴장감에 온몸이 오그라들었다. 죽음을 앞에 두고 하느님께 매달리는 애잔한 기도 소리의 여운이 어린 가슴에 뱅글뱅글 맴돌았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소매로 훔치며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어머니의 슬픈 표정을 바라보자 가슴에서 “쿵!” 하는 소리를 들렸다.
예부터 인명은 재천이라고 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엉뚱하게도 초연해지는 걸까.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께 모든 걸 맡겨야 할 때 우리는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는 우주를 주관하는 그분께 매달리게 된다. 새벽이 되어서야 기도소리가 잦아들었다. 잠시 졸았던 내 귀에 “엄마!”라고 부르는 동생의 목소리가 잠결에 아득하게 들렸다. 대나무 진액의 효험이었는지, 그분이 기도에 응답하셨는지, 자식을 잃어야 하는 부모의 애끓는 심정을 헤아렸는지 동생은 저승 문턱에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동생과 나는 그때 법정 전염병인 디프테리아를 앓았던 것이다. 의료시설과 보건시설이 미약했던 옛날엔 전염병 즉 돌림병으로 자식을 잃는 부모들이 많았다. 요즘은 현대의학이 발달해서 최첨단의 의료시설이나 의료기술의 혜택을 받고 살지만 육십년엔 약국도 병원 귀한 시골 마을에선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자식이 힘들고 아프면 부모는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하다. 자식에게 온 정성을 기울이는 부모의 맘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무조건 맹목적으로 쏟아 붓기만 하는 사랑은 독이 될 수도 있다. 부모는 내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자식에게 대물림한다고 했고, 자식은 부모에게 평생 해야 할 효도를 가장 예쁘고 귀여운 서너 살 때까지 다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무한한 그 사랑은 바로 내리 사랑이다. 그래서 부모 자식 간은 촌수도 없는 무촌이며 천륜이라고 하나보다.
세상을 영속적으로 가꾸고 책임져야할 자녀들은 미래의 보배이다. 가정은 가장 기초적인 사회이고 가족은 그 구성원이다. 가정이라는 보금자리 안에서 몸도 맘도 건강하고, 가족 간에 오가는 정과 원만한 소통과 화합은 자녀들에게 따스한 맘을 가진 밝은 모습으로 성장하기 위한 자양분이다. 곁에 있을 때는 누구나 소중함을 잘 알지 못한다. 가족도 산소 같은 성향을 지닌 공동체가 아닐까? 너무나 소중하고 귀하지만 평소에는 그걸 잘 깨닫지 못하다가 잃거나 없으면 그 빈자리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있을 때 잘해”라는 옛 선조들의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사람을 대하며 살아야할지를 제시해주는 지혜로운 가르침이다. 이맘때쯤이면 꼭 생각나는 전염병 디프테리아는 나의 초등 일학년 한 학기를 몽땅 삼켜버렸고, 동생을 생사의 갈림길에 세워 부모님의 맘을 아프게 했었다. 의학이 발달하고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사는 요즘에도 희귀병과 난치병, 병명과 치료방법도 없는 새로운 병이 우리 곁에 있다. 봄만 되면 건강을 잃거나 병중에 있는 자녀를 지켜보는 부모들의 애타는 심정을 다시 한 번 가슴 속에 되새기게 된다.
동전 한 닢의 세상 풍경
명절이나 가족들과의 모임이 있거나 특별한 날 집안에서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는 윷놀이와 고스톱과 노래방뿐인 것 같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도 종종 고스톱 게임은 단골로 등장하기도 한다.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굳이 나쁘게만 치부할 수도 없는 고스톱은 요즈음 나에게 새로운 이미지로 부각되고 있다. 굳이 우리말로 풀어보면 고는 계속 나아간다는 뜻이고 스톱은 하던 것을 멈춘다는 뜻이다. 가만히 음미해보면 그 말 안에 살아가는 지혜가 담겨 있고, 삶에 있어서 행동의 지표가 내재되어 있다.
우주의 법칙이나 자연의 섭리는 변하지 않는다. 그 거대한 틀 안에서 변화무쌍한 굴곡을 겪으며 롤러코스트를 타는 것처럼 곡예를 하고, 수많은 인위적인 발상을 하지만 어느 순간 덧없이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어떤 일에 부딪칠 때마다 해야 할까 하지말까 이걸 할까 저걸 할까 선택의 기로에 서서 망설인다. 마치 시험을 보는 수험생이 정답을 알지 못할 때 어느 것을 선택해야할지 몰라서 망설이는 것처럼. 그리고 어떤 일을 추진해 나갈 때도 고해야할지 스톱해야할지 기로에 서서 며칠 동안 머리 싸 메고 고민할 때도 있다. 그럴 때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을 토대로 한 판단력과 분별력이 필요하지만 선뜻 결정내리기는 결코 쉽지 않다. 고해야 할 때 멈추는 우를 범하거나 스톱해야할 때 계속 전진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때, 우리는 불행을 겪거나 실패를 하거나 하던 일이 흐지부지하게 되는 경우를 체험하게 된다.
어쨌거나 나는 명절에 아이들과 가끔 고스톱을 친다. 요즈음은 노인 분들의 치매에 도움이 된다고 하여 노인정에 가면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도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많은 장점도 있다. 서먹서먹한 분위기도 금방 화기애애하게 바꾸기도 하고, 타닥타닥 부딪히는 소리와 철썩 두들기는 소리에서 스트레스 해소도 된다. 적은 돈이라도 잃었을 때와 땄을 때의 묘한 심리상태도 아주 자연스럽게 반영되기 때문에 고스톱을 치보면 개인의 심성이나 성격도 어느 정도 나타나는 것 같다. 잃어도 무덤덤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 잃어도 방방 뛰며 어쩔 줄 모르는 사람도 있다. 왁자지껄하게 한 판의 경기가 끝난 후 참여했던 사람들의 행동도 가지가지다. 아주 유쾌하게 잘 놀았다며 먹을 것을 마련해서 나누어 먹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주머니에 싹 쓸어 담아 넣는 사람도 있고, 딴 돈을 되돌려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것을 잃고는 못 견디어 끝까지 더 하자는 사람도 있다.
고스톱은 사회의 축소판 같다. 멈출 때를 알지 못하면 그건 고집이다. 가야할 때 멈춘다면 그건 어리석음이다. 고와 스톱을 선택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고 어느 것이 나은지 분별하기도 어렵고 더구나 정답도 없다. 고스톱의 그 작은 판 안에 질펀한 웃음과 욕심과 화가 한데 어우러져 손끝을 타고 마음으로 오간다. 득과 실이 존재하고, 숨길 수 없는 내면의 진면목이 그대로 표출되는 현장이다. 그 네모난 작은 판 위에서 이손에서 저손으로 오가는 동전과 지폐가, 보이지 않는 내면의 모습을 마술처럼 그대로 끌어내는 것 같다. 그러나 어떤 일에도 야누스처럼 두 가지 얼굴이 있고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놀이나 게임은 과하면 인생의 적이 될 수 있으니 자제력을 발휘해야 한다. 무엇이든 그 장점을 최대한 누리면서 스스로 절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결코 과하거나 중독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걸러지지 않은 많은 게임들이 홍수처럼 개인화된 사회 속으로 밀려왔다. 때로는 사이버 게임은 현실과 게임의 무분별을 초래하여 사회의 커다란 문제로 대두되기도 한다. 필요악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게 게임인 것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접하기 전에 득과 실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때와 장소를 가리고 대쪽같은 맘으로 자기 자신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에서 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시간에 쫓기는 우리들은 늘 초조하고 딱딱한 표정으로 웃음을 잃고 있다. 어쩌면 많은 것들에 얽매어서 자기 본연의 모습은 잊어버리고 한 겹 두 겹 가식의 표정들이 습관처럼 굳어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가끔은 명절에 가족들과 함께 고와 스톱을 외치는 그 순간이 행복할 때도 있다. 평소에 잘 드러내지 않는 내면의 모습이 탁탁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숨김없이 쏟아져 나오고, 꾸밈없는 표정과 환한 웃음이 오가고, 지지 않으려는 모습과 적은 돈이지만 잃었을 때의 그 심란한 모습이 그대로 표출되는 게 고스톱이라 생각한다. 오가는 동전 몇 닢에 열정적인 모습을 드러내며 가장 솔직한 사람냄새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돈에 대한 애증 (愛症)
나는 삼십대부터 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왔다. 부자로 살기 위해 재테크를 하는 차원이 아니라 돈의 속성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왔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우선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물질만능주의와 돈이면 만사형통이라는 말은 속물의 근성을 보이는 것 같아 싫어하지만 현실에서 돈의 위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돈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다. 때로는 돈은 생명과 직결된다. 의식주의 해결과 사회생활을 위한 소통의 도구로서 소중한 가치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만족감과 성취감을 안겨주는 측도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칫하면 돈이 지니고 있는 마성을 망각하고 돈의 노예가 되기 쉽다. 돈을 버는 일과 쓰는 일은 경제활동이지만 소시민인 나로서는 경제적인 측면까지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돈에 대한 욕심으로 빚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생각하면서 적어도 돈의 노예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음지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욕심과 권력의 도구로 전락하는 돈과 나눔과 사랑의 매개체로 풍족감과 행복을 주는 돈에 대해 누구나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신문이나 매스컴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건들이 돈 때문에 일어난다. 정치와 타협하는 돈, 권력을 사기 위한 돈, 부를 축적하기 위해 약한 자를 억누르는 돈 등 정의를 망각한 돈의 행적이 얼마나 많은가.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괴리감은 사회전반에 부정의 시각을 양산하고 불신을 초래하게 된다. 돈에 대한 욕심은 절제하지 못하면 화를 부른다.
요즘은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생계비를 걱정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상상도 못할 만큼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저 주어진 여건에서 알뜰살뜰 살아 온 지극히 평범한 주부의 틀을 벗어난 적이 없는 나는 투자라는 말도 멀게만 느껴진다. 돈을 모아서 부자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재투자 한번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지금도 가난하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생명에 위협을 받을 만큼 굶주리고 헐벗는 최악의 사태까지 가보지 않아서 돈의 힘을 완전하게 깨닫지 못했는지도 모르지만, 요즘 들어 노후대책이나 백세시대라는 말을 들으면 돈의 힘을 재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돈의 가치와 위력이 점점 더 대단해지고 있다. 우리가 호흡하고 누리고 있는 물질문명은 경제의 흐름과 맞물려 있다. 돈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삶 자체가 돈을 벌기 위한 과정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돈에 대한 속담은 여전히 우리를 두드린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써라, 티끌모아 태산이다 등 아주 많다. 속담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이지만 우리 생활 전반에서 지금도 그 말들이 사실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돈에 대한 욕심과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와 돈을 어떻게 모을 것인지에 대한 속담이다. 즉 돈의 속성을 잘 대변하는 말들이다.
그러나 돈에 대한 욕심은 인간 본성을 교묘하게 바꾸어 놓기도 한다. 순간순간 우리를 악으로 유혹하기도 하고 양심에 검정 칠을 하게도 한다. 따지고 보면 부정부패의 원천도 돈이다. 돈에 초연해 질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돈과 쉽게 타협하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과 타협을 하고 양심을 팔기도 한다. 돈이 내뿜는 어둠 속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돈을 바라보는 시각을 냉정하게 가져야 한다. 머리로는 돈 때문에 양심을 파는 일은 결코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막상 돈뭉치가 눈앞에서 오가면 태연해 질수 없다. 돈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물욕은 끝이 없다는 걸 빨리 깨달아야 한다. 돈은 최소한 필요한 만큼만 가지면 된다고 깨닫는다면 욕심의 수위를 조절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쌓아 놓은 돈은 자기 돈이 아니고 쓰는 돈이 자기 돈이라고 관점도 필요할 것 같다. 물론 말처럼 쉽게 행동 할 수 없다. 돈은 마력 같은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엄청난 힘을 이겨 내려면 야누스와 같은 돈의 양면성을 잘 인식해야 한다.
돈을 어떻게 벌어서 어디에 사용하느냐에 따라 암흑의 세상과 빛의 세상이 만들어진다. 그것이 돈의 양면성이다.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어 요긴하게 잘 사용하는 돈이 자기 돈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매스컴에서 이율이 조금 더 높다고 해서 제 2금융에 예금해 놓은 돈을 고스란히 잃고 허탈해하는 사람을 보거나, 알뜰살뜰 목돈을 모으기 위해 나중에 보란 듯이 잘 살 거야라고 매일 다짐하며 현재를 아등바등 사는 사람과, 평생을 모아 둔 재산을 두고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 유산 다툼으로 왈가왈부 하는 걸 보면 허탈하고 안타깝다. 돈은 쓰기도 하고 모으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수위를 어떻게 조절해야할지 잘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도 그러하다. 낭비와 자린고비의 경계가 어디쯤인지 함부로 할 말도 아니다.
평생 큰 돈 한번 만져보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누구의 옷 한 벌이 또 누구의 한 달 생활비이기도 하다. 그러나 돈 때문에 삶이 팍팍해지지 않았으면 한다. 적은 돈이지만 알뜰하게 쪼개서 살더라도 그 안에 진실함과 기쁨이 담겨 있었으면 한다. 시원한 에어컨의 바람 아래서 스테이크를 자르는 것보다 얼음 띄운 콩국수 한 그릇이 더 맛있고 행복할 수도 있다. 적은 돈으로 최대효용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게 사용하면 얼마든지 뿌듯하고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소득창출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 일한 만큼 노동의 대가를 돈으로서 환산해서 받을 때 보람을 느낀다. 그 돈으로 삶을 영위하니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그것이 진정한 돈의 가치가 아닐까. 경제적인 안정을 누려야 하지만 세상을 살아갈 능력이 없는 사람들도 많다. 사람 속에 당당하게 서 있으려면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 더 나은 직장을 추구하고 그것이 목적이 되고 꿈이 되는 세상이다. 그러나 너무 앞만 보고 질주하지는 말아야 한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걸어왔던 길은 판이하게 다르다. 그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서로 너무나 다르지만 서로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세상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지고 사람과 사이에 큰 골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미 현대사회의 고도화된 문명과 학습되어진 문화와 관습, 구조화되고 획일화된 환경을 어찌할 수 없지만, 비록 그 안에 살더라도 적어도 돈에 대한 가치관만큼은 생존을 위한 것으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었음 한다. 아직도 지구 어느 곳에는 원시공동체로 자연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부족들도 있다. 그들은 돈이 없어도 공동체로서 자연에서 얻고 자연에 기대어 잘 살아가고 있다. 요즘은 “세게 어디에도 내 집이 있다”라고 하며 개인의 소유를 마다하고 공동체 삶을 살아가는 공동체 마을도 세계 곳곳에 있다. 그러한 삶을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지만 그들에 비추어 한번쯤 돈에 대한 가치와 인식을 되짚어보면 좋겠다. 그러면 부의 축적만이 인생의 목적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어디에 더 나은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돈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지고 인생도 달라지고 사회도 달라질 것이다. 돈의 가치와 돈의 양면성을 잘 알고 적재적소에 잘 사용해서 그 가치를 극대화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돈을 부를 축적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회를 위한 천사로 환원하기란 쉽지 않다. 아주 힘든 일이다. 감히 나 스스로도 하지 못하면서 생각과 바람만 가득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돈을 사회로 환원하고 있다. 그들이 존경스럽다. 돈을 제대로 아는 사람, 잘 쓸 줄 아는 사람이 가장 행복할 것 같다. 내게 로또라도 당첨되면 과연 나는 돈을 어떻게 쓸까? 그것은 나 자신도 알 수 없다. 욕심의 시작과 끝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나약하고 변덕스러운 존재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화초와 야생화
비가 내리는 날은 생각이 많아진다. 문득 뜬금없이 정채봉님의 <콩씨네 자녀교육>이란 시가 떠올랐다. "광야로 내보낸 자식은 콩 나무가 되었고 온실로 들여보낸 자식은 콩나물이 되었다" 참으로 큰 의미가 담긴 시다. 콩이 자라는 다른 두 가지 경우의 환경과 콩나물과 콩 나무를 비교해보며 자라나는 아이들을 생각해 본다. 콩은 온실 속에 가두어 기르면 콩나물이 되고 밭에서 비바람 맞으며 자라면 콩 나무가 된다고 했다. 방안에서 검은 보 덮고 햇빛 한줄기 못 본 채 찬바람 한번 맞지 않고 따뜻한 물만 먹고 자라는 콩나물! 기껏해야 가녀린 몸 하나 비집고 빽빽하게 서서 똑같이 닮은꼴로 자라는 콩나물은 과보호를 받는 아이와 닮은꼴이다.
콩나물처럼 자란 아이가 험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이며 날카롭기 그지없는 무한경쟁 사회에서 당당하게 우뚝 설 수 있을까? 산모퉁이 계곡을 낀 척박한 토양에서, 넓은 들판에서 거센 비바람을 이겨내며 자연의 소리와 교감하며 자란 벼와 좁은 논두렁에 나란히 서서 온종일 뙤약볕을 머리에 이고 온몸이 타들어가는 가뭄을 이겨내고, 거세게 몰아치는 비바람에 뿌리째 뽑힐 위기를 넘기면서 꿋꿋하게 자란 콩은 우리 식생활에 꼭 필요한 식품으로 이용된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좀 부족함을 느껴봐야 소중함을 알고 아픔을 겪어봐야 어려운 일에 부딪혔을 때 이겨낼 수 있는 자생력이 길러진다.
물론 미리 목적을 달리해서 키우는 콩나물과 콩 나무의 경우는 다르지만 과잉보호와 지나친 관심은 우리 아이들이 우뚝하게 설 수 있는 탄탄한 땅이 되기보다는 수렁이 될 뿐이다.
흔히들 부유하고 모자람 없는 환경에서 부모의 온갖 보살핌을 다 받으며 자라는 아이들을 온실 속의 화초라고 부르고 가난하고 부족한 환경에서 억척스럽게 자라는 아이를 잡초에 비유한다. 지금은 어느 가정에나 한두 명 두는 자녀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왕자와 공주가 아닌 아이가 없다. 사람에게도 경제 원리는 통용되는 것이다. 적으면 귀하고 귀하면 소중하다.
그러나 사람은 묘하게 편하고 좋은 것에 아주 쉽게 길들여지는 같다. 머리로는 힘든 경우도 당해보고 어려움도 겪어보고 다양한 체험을 통해 폭넓은 사고를 가진 아이로 키워야지 하지만 정작 자기 아이들한테는 하나에서 열까지 마마대접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행여 엎어질세라 다칠세라 전전긍긍 노심초사하다보니 급기야 부모가 아이의 비위를 맞추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귀한자식 매한대 더 때리고 미운자식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도 무색하고 공허한 소리가 된지 오래다. 천금같은 속담도 세월 따라 변하는지 가끔은 교훈적인 속담이나 격언도 당치 않을 때가 있다.
교육은 어렵고 정답이 없다. 정보의 바다에 살다보니 교육에 대한 가치관도 흔들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판단이 안 될 때도 많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속담은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인 것 같다. 어릴 때 자라온 환경과 보고 들은 것들이 세 살쯤에 거의 다 형성되는 성격과 습관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모 외교관 자녀의 특채를 위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어처구니없는 비리의 사례가 매스컴에 보도되었다. 온실 속 화초처럼 콩나물 시루의 콩나물처럼 키워진 사람이 어찌 이 거대한 사회라는 집단을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인가. 아니 그런 거대한 목적은 차치하고라도 직장을 얻기 위해 살기 위해 불철주야 고시공부를 준비해 온 많은 젊은이들의 피나는 노력을 물거품처럼 만들어서 되겠는가.
요즘은 권력과 부의 힘이 어디든 지나치게 개입된다. 어릴 때부터 줄곧 들어온 부정부패의 끝은 어디일까.
우리는 “적당히”라는 말을 참 많이 쓴다. 그 "적당히"라는 말은 중용을 지킨다는 것인데 중용의 미만큼 아름다운 게 어디 있으랴. 더도 덜도 아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행동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교만하지 않으면서 지나치게 겸손하지도 않은 중용의 미를 그래서 덕이라고 하는가 보다.
학교 다닐 때 도덕 교과서에 이런 말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든 사람, 난 사람, 된 사람" 이라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갖추어야 할 것들이지만 이중에서도 가장 어렵고 소중한 것이 된 사람이라고 했다. 요즈음은 이런 말도 많이 쓰고 있다 "멋있는 사람, 맛있는 사람, 향기 있는 사람!" 물론 현대인들의 성향에 맞춘 말이지만 이중에서 가장 지향해야 할 사람은 향기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어쩌면 된 사람이 바로 향기 있는 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극심한 가뭄 속에 아침이슬 한 방울은 얼마나 소중할까? 여러 날 퍼붓는 장마 때 한줄기 햇빛은 얼마나 소중할까? 척박함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에너지가 옹골진 모습으로 가지를 벌이고 잎을 넓히고 꽃을 피우고 마지막 남은 열정으로 열매를 맺는다. 꼬투리 속을 탱실탱실 꽉 채우는 힘은 어려움을 이겨내는 의지와 노력이다. 그 의지와 노력을 길러주는 것은 외적인 풍요보다 내적인 양식을 든든하게 먹여주는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딸 바보 아들 바보라는 신조어가 유행한다. 무조건이 아닌 현명하고 지혜로운 바보였음 한다.
프로필
1957년 경남 김해 출생
2010년 <문학과 현실>가을호 수필 등단
<문학과 현시>수필부문 신인상 수상
2012년 <문학과 현실>가을호 시인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부산수필협회회원
<한국 착각의 시학>연구회 편집국장
<금목문학> 편집기획위원
서 이선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3동 모분재로 105번길
40 A 301호(남광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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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 했습니다
하나더 고쳐 수십시요
고스톱을 ==>>동전 한닢의 세상 풍경으로
현대인의 돈에 대한 애정을 ===>> 현대인의 돈에 대한 애증(愛症)으로 고쳐 주시기 바람니다.
감사 드립니다. 선생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