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강해2🍚(막12 13 17, 유튜브 교회 #활공교회, 설교원본-BAND: 활공교회)
https://youtu.be/OqIX0vzYQ74?si=j9BIsqnWVt7C4MDU
말씀:
[막12:13-17]
13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14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15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16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17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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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41 십자가를 내가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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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보기:
가이사:
Kai'sar(2541, 카이사르)
가이사, 황제.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가이사(Caesar)는 원래 고유명사, 즉 줄리어스가(家)의 성(姓)이었다. 특히 줄리어스 시이저 또한 아우구스투스의 가명(家名)이었다(눅 2:1). 이 왕가 중에 가장 탁월한 사람은 위대한 군인이며 정치가, 웅변가, 저술가인 가이우스 줄리어스 시이저(B.C. 102-44)였다. 가이사는 사령관으로서는 최후의 사람이었고 국가 체제의 위험과 내란의 한 세기 동안 군대의 힘을 이용하여 정치적인 붕괴를 막았으며, 법과 질서의 파괴를 방지하고 로마를 궁극적으로 망치는 사악한 행위들을 금했다.
비록 그가 B.C. 44년에 암살 당해 죽었으나 가이사의 직위는 옥타비아누스(Octavianus)에게 계승되었다. 그는 그의 양자이며 후에 법적으로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 가이사라는 이름을 가졌다가 후에 아우구스투스로 바꾸었다. 그리하여 가이사는 하드리안(Hadrian) 때까지 모든 황제들에게 붙여진 왕통의 이름이 되었고 계속 상속되었다(Pictorial Encyclopedia).
이 단어는 직함의 의미로 발전하여 "황제"의 상당어가 되었다. 이런 의미로 이 단어는 문학, 비문, 파피루스 문서들에 종종 나오는데, 예를 들어 "황제의 자유를 얻은 자", "N. 황제의 종", "가이사들" 등이 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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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구약성경의 용법.
주후 1세기를 포함한 그 이전까지의 유대 문헌에만 나오는 언급들은 몇 가지의 역사적인 언급들, 곧 요세푸스의 줄리어스 시이저와 아우구스투스에 대한 것이다(D. H. Field).
3. 신약성경의 용법.
신약성경에서 카이사르는 모두 29회 나오며, 빌 4:22을 제외하면 복음서(18회)와 사도행전(10회)에만 나온다. 이런 구절들에서 가이사는 직함으로 나온다. 신약성경에서 가이사는 정치적 세력의 합법성을 인정 받고 있다. 그러나 그릇된 대립으로, 가이사의 권세는 하나님의 권세를 반대할 수도 있다. 행 17:1-9에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전하는 바울과 그의 동료들을 고발한 사건에서 이러한 대립이 나타난다. 데살로니가에서 자신들의 종교적인 의무와 세속적인 의무간에 만족할만한 균형을 유지했던 유대인 공동체의 한 파당은 기독교 복음의 강한 종말론적 도전으로 평안이 위협받는다는 것을 느꼈다(살후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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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이렇게 자신들의 평안과 확립된 생활 방식에 위협이 되는 것을 일반 사회의 법과 질서에 위협이 되는 것이라고 고발한 것이다. 그들의 주장의 요점, 곧 가이사의 법령을 거역하여 다른 임금 예수가 있다는 주장은 세상의 전제군주라는 주장으로 잘못 전해지고 예수님은 가이사의 적수로 그려질 수 있는것이다. 이러한 그릇된 대립 관계가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는 나라에서 종종 있어왔다. 가이사의 정치적 권세에 대한 인정은 누가의 기록에서 나타난다. **누가의 기록은 기독교가 로마 제국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지적한다. 바울은 가이사랴에서 베스도 앞에서 자기는 유대 율법과 성전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가이사에 대해서 아무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했다(행 25:8). 그리고 바울이 또한 큰 종교적 박해에 대항하여 공적 세력인 가이사에 보호를 호소한 것에서 권세에 대한 인정이 나타난다(행 25:12, 행 25:21; 행 26:32; 행 27:24; 행 2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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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kh'nso"(2778, 켄소스)
세금 tax, 인두세 poll-tax.
1. 일반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켄소스는 라틴어로 census에 해당한다. 로마인들 사이에서 *재산의 등기부 또는 평가부를 뜻하였는데, 이것에 따라 세금을 납부하였다.
2. 신약성경의 용법
켄소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만 사용되었으며, 다음의 의미를 나타낸다.
(a) '개인들에게 부과된, *매년 지불해야 했던 세금 또는 연공(年貢)', 우리의 *'인두세(人頭稅)': 마 17:25 "가로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가라사대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뇨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마 22:17; 막 12:14에서도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b) 세금을 지불하는 경화 '셋 돈': "[셋]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마 22:19).
(참조: J.H.Thayer; Walter Bau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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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나리온:
dhnavrion(1220, 데나리온)
데나리온 denarius
데나리온(Plut., Epict. 등)은 무게가 3.8g인 로마의 은전(denarius)이다.
데나리온은 신약성경에서 15회 나오며, 요한계시록의 2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복음서에 사용되었다.
(a) 예수님은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먼저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 오도록 하여 대답하였다: "셋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마 22:19; 병행구 막 12:15; 눅 20:24).
(b)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다. 마 20:2(마 20:9; 마 20:10; 마 20:13),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군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한 데나리온은 헬라의 은동전 드라크마(참조: 눅 15:8)와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
(c) 갈릴리 해변에서 굶주린 무리를 위한 떡을 사는데는 이백 데나리온이 필요했다: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요 6:7). 이백 데나리온은 8개월의 임금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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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한 가난한 여인이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향유의 양은 3백 데나리온 이상의 가격이었다(막 14:5; 요 12:5). 이 가격은 1년 이상의 임금이었다.
(e) 예수님의 용서에 대한 비유에서 어떤 하인이 백 데나리온의 빚을 지고 독촉을 받았다: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마 18:28).
눅 7:41에서도 나타난다: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f)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자를 위해 두 데나리온을 구제했다: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눅 10:35).
(g) 계 6:6,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한 데나리온은 하루 품삯이었다(참조: 마 20:2). 이것은 기근 때의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밀을 먹게 되면 겨우 자신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벌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R. Earle).
(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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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절,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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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은 백성들의 편에서 침략군인 로마인들에게 세를 바치는 것을 반대하는 자이고 헤롯당은 헤롯이 로마를 위해 싸운 적이 있어 로마인들에게 세를 바치는 것을 찬성하는 자이므로 예수님은 이 딜레마의 함정으로 몰아 내게 하기 위한 악한 계략인 것을 봅니다. 두부류 모두 예수님을 적대시 한 것은 바리새인은 율법주의 무시하는 둣한 예수님을 제거하려는 것이요 헤롯당은 로마의 신 가이사를 무시하는 것 같아 예수님을 같이 제거하려는 의도가 있었기에 같이 모인 것입니다.
저도 또한 직장에서 놀랍고 신기하게 같은 경우를 당하였습니다. 겨우 4정거장 밖에 안되는 호텔의 경내에서 서로가 잘 보이고 서로의 가상 시간을 지키며 융통성 있게 돌면 무전을 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한다면 번거로와 스트레스로 이직자가 생기고 사고유발과 불친절의 위험성이 있기에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무실 직원은 가만히 사무실에 앉아 있기에 이 현상을 모르고 상부와 협의 하여 개정하려고는 하지 않고 오래전 상부와 하기로 하였기에 무식하게 강제로 하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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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간 위치가 오늘의 저 였습니다. 직원들의 대표로하여 직원들을 위해 제가 하지 않았고 또한 직원들의 대표로 제가 사무실에서 욕을 먹었습니다.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제가 무전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고 사무실이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위의 권세임으로 꼭 해야만 하는 사항입니다. 저는 이 위험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전을 안하면 명령 불복종으로 제가 사직을 해야하는 상황이 오기도 하였으며 만약 하게 되면 괴로운 직원들이 이직하고 나머지 직원들이 이직한 직원 일을 대신하다 과로사로 죽는 사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하면 강제 사직을 당하고 하면은 괴로워 나와 직원들이 그만두며 안 그만두는 자는 과로사로 죽거나 둘중 하나의 극단 상황입니다. 아니나 다를 까 소장님은 저에게 안한다하는 저에게 바로 근무를 제외 시키고 사직하라 하였고 상부에 전화를 걸어 그 절차를 밟는 둣 하였습니다. 정말 위기의 상황 이었습니다. 사과해도 이미 업질러진 물이라 소장님이 저를 무시 하였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진홍 전도사 꼴 좋네 비웃는 분도 지금 계실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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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절,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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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함정에 빠치려는 헤롯당과 바리새인들의 간교함을 봅니다. 소장도 저를 미워하여 그런 함정을 저에게 내밀었을 지도 모릅니다. 바리새인같이 간교한 율법주의자, 고지식(원칙을 위해 사람과 사회를 망쳐도 밀어붙이는...)한 크리스찬인지도 모를 인물이지요? 저는 고용부에 신고를 위해 전화를 걸어 내용을 이야기 하였더니 고용부는 먼저 그 회사내 상부조직과 협의를 보고 그래도 안되면 고용부에 신고를 하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회사의 상부기관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분은 제가 일하는 것을 해보아 제가 하는 이야기를 대부분 이해를 하였습니다. 또한 소장의 겁 없는 행동을 제지하는 둣하였고 저는 다음 날 원래 제 업무를 복귀하여 일하게 되었고 휴가 뒤에는 세분이서 모여서 잘 협의 하도록 하였습니다. 상부기관의 말씀은 제가 하는 내용의 일은 다 맞으나 형식이 틀리다는 거였습니다. 즉, 무전을 안하려면 상부기관의 허락을 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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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제가 무전을 안하는 것은 회사와 동료들을 위해 좋으나 안하기 위해서는 일단 회사에 허락을 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 허락을 맡는 것입니다. 그럼 형식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완벽하여 안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저는 강제 퇴직이라는 위기에서 결국 동료에게도 인정 받고 회사에게도 인정 받는 최고의 기회가 온 것인지도 모르지요 다만, 몇일 뒤 있을 저와 소장님과 회사 부장님과의 협의에서 가장 지혜롭게 회의 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고민으로 인해 제가 주일 날 글 업로드가 늦었으며 다시금 양해를 구합니다. 다음은 제가 주일 날 아침 꿈을 꾼 내용입니다. 아직도 위기인 상황에서 제가 믿음의 전진만 한다면 승리할 싸움이라 여겨집니다. 여러 내용과 이후의 내용은 다음 주에 적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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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일 일 아침의 놀라운 꿈
산동네에는 무언가 시간을 지키어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산동네에는 식당들이 많았는데 그 식당을 비롯하여 모든 가정은 아침과 저녁으로 다 같이 그 자리에 정렬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놀라고 감사하며 그곳을 떠나고
버스를 운전하는 다윗을 보았습니다
누군가 그에게 열쇠등 사유물을 맡기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그 맡긴 물품을 찾아야 했습니다 한 동료는 그 물품을 버스안에서 열심히 찾았지만 그 물품들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화면이 바뀌고 한 실내안에 회중 가운데
다윗과 그 동료는 귀신들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 악령들은 소름끼치는 모습으로 둘에게 달려들고 있었으나 둘은 어떤 권능이 있었는지 몸을 휘두루기만하면 다 사라지고 이기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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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론 엄청난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악령들이나 겁먹지 않고 휘두루기만 하면 모두 쉽게 사라지었습니다 다윗은 모든 것을 이기고 왕권의 자리에 앉게 될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때 웃음을 자아내는 해프닝이 일어납니다 그 동료말하길
'다윗이여 그 분실물 찾아보아요'
듣는 모두가 웃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일국의 왕으로서 그 분실물을 다 사주고도 남는 왕이기 때문입니다
[시56: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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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환란이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시고 함정에 빠뜨리는 간교한 자를 부끄럽게 하실 우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저의 이와같은 함정에 빠진 상황을 우리 주님 아십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여 내용과 형식이라는 권세를 잘 맞추어 살아가게 하여 주시오며 가급적 모두가 같이 우리 하나님의 인자를 보게 하시어 모두가 동시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이되며 유사한 위기에 빠진 우리 활공교회 성도들과 가족, 지인, 동료 이웃도 지켜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