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道 정자기행에서 본 섬호집(剡湖集)은 남간집에 등재 된 당대의 선비들의 글
이 많이 보여 스크랩을 했는데
(호남기록문화유산)에도 섬호집에 남간:나응서의 글이 실려있다는 기록이 보인다.
들밖이
개었길래 산을 보고 돌아와 /온 종일 뜨락에서 사립문 닫고 있네.
모란은 모두 져서 이끼 위에 가득하고 /겁 없은 벌들이 얼굴 스쳐
나는구나.
早晴野外看山歸 長日閒庭掩板扉 牧丹落盡蒼苔滿 無賴黃蜂掠面飛
한재렴(韓在濂, 1775-1818)이 전라도 순천에서
5년 간 유배로 산거(山居)하며 읊은 여름이다.
또다른 정자를 찾는다.
나주 섬호정(剡湖亭)은 나주 동강면 북부지역 곡강의 언덕에
섬호(剡湖) 진경문(陳景文)이 휴식장유소로
지었던 정자다. 그래서였을까? 정명(亭名)을 날카로운 섬(剡)의 호수라고 지었다. 그의 호도 섬호정(剡湖亭)다.
그가 이곳 정자에서 지은 시에서도 이와 일치한 감정을 내포하고 있다.
터잡고 살아온 지 겨우 해가 지났는데/느릅나무 뽕나무 속에
문을 닫지 않았네.
인간의 세상에선 비록 차가운 눈으로 보지만/세상의 밖에는 청산(靑山)이 있네.
두건(頭巾)을 높이 쓰고
경서(經書)와 사기(史記)를 이야기하고/말안장 걸어두고 왕래(往來)를 사절하네.
어옹(漁翁)이 이따금 흥(興)을 돋는 말을 아뢰니/고기낚는
물가에 꽃이 시들어 간다네.
그와 절친했으며 젊었을 때 인조 2년 이괄(李适)의 난에 연강(蓮江) 오정남(吳挺男) 지평(持平)
임(林?)등과 함께
병양(兵糧)을 모으고 난이 평정하기도 하며 용맹을 떨쳐는데 세월의 무상함을 뒤로하고
시서 김선(金璇)이 늙으막에 이곳에서
남긴 시가 처량하기 그지 없다.
열고 닫으며 정신을 고요하게 다스리고/빈 잠자리에 병(病)과 이웃하게 되었구나.
세상의 인정(人情)은 담박(淡泊)함으로 돌아가고/시의
구절(句節)은 빈한(貧寒)에서 나오네.
늙어감에 만남도 자주하기 어렵고/생각하자니 꿈이나 자주꾸네.
강가의 사립엔 해가
지고 있는데/홀로 화양의 두건을 쓰고 있네.
또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실지(實之)로
이천부사(利川府使)‧상주목사(尙州牧使)‧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으며,
사후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증직되었던 나주임씨(羅州 林氏) 몽촌(夢村)
임타(林㙐 1593 선조 26∼ 1664 현종 5)가 진경문을 일러
내 어찌 임화정이 되겠는가마는/그대는 응당 진후산이 될 것일세
문장은 호우에서 독차지하고 /시구는 강관을
진동시키도다.
꽃 핀 오솔길은 그윽한 대밭 속에 있고/쑥대 문은 어지럽게 흐르는 물 사이에 있네.
모년에 함께 흰 머리 되어
가는데/며칠이나 늙어서 푸른 얼술을 마주볼 것인가.
정자가 있는 동강면 월송리는 모산개에서 무안군 몽탄면 봉산리 해창 마을로 건너 사창역을 이용하기 위한 나루터 신설포나루가 있다.
섬포(剡浦)라고도 불렀다. 상종한 인물 석촌 임서(林胥), 후지 김인후(金麟厚), 동야
시서 김선(金璇) 등이 섬호정에 배를 타고 뱃놀이 하며 어느날 들리면서 이 포구를
이용한다.
밀물을 타고 새벽에 사호로 내려가니/석곶정과 창랑정이 그림같구나.
15년이 흐르는 동안 죽은 이가 많고/지금은
시서(金璇)와 섬호(剡湖)가 남아 흰 수염이로세
동남쪽에 나주 임씨
집성촌인 월해 마을이 있다.
옛 곡강면 치소였던 송암 마을에는 임진왜란 때 백련산 전투에 참여한 최욱(崔澳, ?~1597년)의 여각이 있다.
송암저수지에서 나루쪽으로 200m 거리에는 진주 강씨 성산인 '돈지'라고 부르는 고분(古墳)이 있다.
자호(刺湖) 문집의 곡강팔경중
영산강 위에 뜬 달을 노래한 시에서 이름을 따 월해(月海)라고 한다.
진경문(陳景文, 1561~1642)은 1561년 전남
나주에서 여양진씨 진정수(陳井壽)의 아들로 월해(月海)마을(월송 1리)에서 출생했다. 호를 '섬호(剡湖)'라 했다.
여양진씨
진용지가 아버지 진일을 따라 곡강에 정착, 사마시험에 합격하고 대평관장을 지내다 진용지의 6세손 진경문이 1561년에 월해 마을에서 태어나
정착하였다고 한다.
현재 나주임씨, 제주양씨, 여양진씨 그리고 광산김씨 등이 살고 있다.
본관은 여양(驪陽)으로 어려서부터 학문에
전념해 문장이 탁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589년(선조 22년)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지를 규합해 의병을
일으켰고,
1642년 이괄의 난에도 공을 세웠다.그가 남긴 문집에 섬호집(剡湖集)에 '곡강팔경시'가 전하고 있다.
특히 '섬호집(剡湖集)' 목판본은 1648년(선조 26년)에 간행된 시문집으로 상하권에는 임진왜란의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는
'예교진병일록(曳橋進兵日錄)'이 기록돼 있다.
하책(下冊)은 임진왜란에 의병을 일으켜 보고 들은 것을 역사적 사실과 자신의 느낌으로 해설해 시를 쓴 것을 모은 문집으로 시집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그의 문집은 임진왜란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시서 김선(金璇)은 다시 진경문에게 시를
지어준다.
생전에 만나지 못할까 두렵지만/늘 죽은 뒤에 만날 것을 생각하네
풍진에서 쇠한 목숨을 보존하지만/병란에 위험한
자취가 같구나
살며시 선 꿈이 넘치니/때때로 옛 모습을 마주하네
새로운 가을이 강가의 나무에 드니/고개를 돌리며 지팡이
기대네
어느덧 해오라기 날개짓이 싱그럽게하는 6월, 방랑자의 대명사로 불러지고 있는 김삿갓은 해오라기,
백로(白鷺)를 보고 그냥
지나가지 못했다.
도롱이는 섞이니 풀빛과 같이/ 해오라기 내려와 시내에 앉아
어쩌면 놀라겠지 날아갈까 봐/ 일어나려 하다가
못 일어나네
蓑衣混草色 白鷺下溪止 或恐驚飛去 欲起還不起
서민(庶民)으로 문사(文詞)가 뛰어나 벼슬에 올라 정조(正祖)의
총애를 받아 전라관찰사를 지냈으나 순천(順天)에 유배(流配)되어 5년 동안 머물며
심원당(心遠堂) 한재렴(韓在濂 1775년 영조 51∼1818년
순조 18)이 깊은 산골 산장에서 맞는 여름이 은근히 부러운 하루하루가 나다선다. (山莊首夏)
긴 둑에 비 지나자 말쑥이 깨끗한데
/아마득히 수양버들 땅을 쓸며 흔들리네.
서루에서 밥 다 먹고 등상에 앉았자니 /꾀꼬리 오후 울음 기다리고 있는 듯.
長堤過雨淨無泥 漠漠垂楊掃地齊 西樓飯罷藤床坐 恰待黃鸝午後啼
첫댓글 남간집에 인물들이 섬호집에 ...
호남누정 기초목록에는 섬호정이 없어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