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사진 - 김영근 詩] 2008.10.24 13:26
고등학교 동기들과 산을 탑니다 해발 900여m의 산을 쳐올렸다가 긴 능선 지나 삼삼오오 무리지어 급한 비탈을 내려옵니다 누군가가 졸업 후 스물여덟이 죽었다고 합니다 제일 먼저 죽은 놈은 대학 때 교통사고로 죽은 누구라고 누가 받습니다 나는 세월이 읽었다는 기억만 있을 뿐, 아무것도 남지 않는 요즘의 책읽기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무를 잡기도, 미끌어지기도 하면서 내려옵니다. 이끼 낀 돌담의 청도 한재리, 봄이면 미나리가 유명하지요 모과는 저혼자 가지가 늘어졌습니다 파장이라며 햇살 전 거두는 삼거리 슈퍼의 평상에서 일행을 기다립니다 누군가가 막걸리를 돌립니다 갈증이 확, 풀어집니다 또 누군가가 한 통, 급기야 가을 미나리도 한 봉지 펼칩니다 철 지난 화분의 고추도 몇, 슬쩍 따 놓으니 풍성합니다 바람피운 재미를 안주 삼고, 누군가의 음담에는 왁, 웃음이 터집니다 처져 내려온 누구든 막걸리 한 잔에 된장 찍은 미나리 으적으적 씹습니다 시원하고 향기롭다며 한 잔 더 청하기도 합니다 슈퍼 막걸리 동 날 때까지 한 통 한 통 평상에 줄을 섭니다 새 장 선 듯 삼거리가 출렁입니다 된장에 매운 꼬추 먹어 갖은 헛소리, 미나리 향에 취해 켈켈거립니다 저무는 가을 햇살에 삭은 욕설과 실없는 웃음들 찍힙니다 오래된 사진 한 장 영원인 듯 선명합니다
※. 화악산(華岳山, 932m) 산행하고 지은 글이란다. [2008년 10월 산행지]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과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부북면에 걸쳐 있는 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