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관한 시모음 28)
4월 나무 /최연창
움직임이 없다는 것
소리가 없다는 것
그것은 생명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움직임도 없이
소리도 없이
4월의 나무는
생명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움을 틔우는가 싶더니
어느새 연록의 잎들을
가득 품고
푸른 봄을 이루었습니다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커다란 몸부림이었고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그것은 아름다운
침묵의 노래였습니다
4월에는 /정태중
마른 땅 위에
촉촉이 비가 내려
노랗게 꽃피운다는 것은
설렘과 두근거림 일지나
허망한 바다 위에서는
설렘도 두근거림도
마른 가슴 적시지 못하고
오열의 혈화(血花)만 피어 난다
동백 뚝뚝 떨어지고
노란 꽃이 피어나는 4월에
다시 꽃비가 내리면
가슴에 맺혔던 멍울 하나
화알짝 꽃 피어
바다로 보내는 노란 향기
온누리에 적시었으면
사월 /이종철
꽃 피어 우러러야 할 청춘의 생동감
넘치는 세상이 벅차도록 펼쳐진
축제의 사월
꽃 피어오르는 신혼부부 꽃길에서
미소 짓는 꽃 속삭이는 시냇물과
신비로운 바다 속의 꿈은
나는 두 눈 감고 그대를 생각에
잠겨 저 높은 산을 오르는 이.
그대 삶의 의미를 쫓는 이.
4월의 길 /임영준
부디 그 앞에서
찬 숨결을 논하지 마라
잔인한 삶의 굴레 따윈
다시는 떠올리지 마라
능선을 타고 온 햇발이
소외된 황야를 일깨우고
설익은 봄노래에
가락을 더하는 것은
그의 순일한 열망이 아닌가
새순이 미소를 잃지 않는 한
절대 그 앞에서
어떠한 슬픔도 비치지 마라
생동하는 봄을 부추기는
화통한 여정이 아닌가
4월의 거리에 서면 /노태웅
벗이여
체념의 행렬 깨우던 이 거리에
4월이 오거든
마음에서 멀어진 그날의 함성
우리 모두의 바램 다시 한 번 기억해다오
창 밖 향나무
당신을 위해
몸을 태워 향기 날릴 때
항거했던 아픈 가슴
영원한 울림 그날을 기억해다오
벗이여
웃음으로 가득한 이 거리
다시 4월이 오거든
그때 많은 꿈 묻어둔 거리를 거닐며
어제의 함성에 귀 기울여다오
4월의 거리에 서면.
4월에 띄우는 편지 /허명
희망과 용기를 새롭히며
아름다운 장미 가시에 찔려
미지의 사랑으로 승화한 릴케의 가슴 아픈
사월의 잔인함 일지라도
꽃비 나리는 작은 길을 다정히 걷고 싶은
봄과 같은 사람 하나 만나
사랑하고
벗하여
인생 여정을 함께 걸어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 아니랴
그리하여 그대에게
고마워하고
사랑한 다는 말로 일관하며
봄과 같은 푹은 함으로 배려해 주고
그대를 소중히 여기며
마음 속은 항상 라일락꽃 흩날리는 향기롬으로
그대와 짝하여 평생
사월의 봄과 같은 소박함을
그대와 나의 옷깃에 가둬두고 살아 갈
그런 봄과 같은 사람 만나
사랑하고 지고 싶으리.
사월의 노래 /임수현
우물가에 큰 언니 치맛자락 닮은
분홍빛 모과 꽃이 피는 날
나비처럼 훨훨 날아
노을빛 가득한 봄 하늘을 날아봅니다.
가슴에 담은 그리움은
영글 대로 영글어
눈빛만으로도 몽글몽글 터질 듯한데
붉게 물든 석양은 그 맘을 아는 듯
더 붉게 붉게 채색합니다.
삶을 영위하는 일
그 삶을 잘 익혀 가는 일
그 속에 스며들어 나를 녹여내는 일
사월의 산들바람처럼
부드럽게 부드럽게 끌어안아 봅니다.
봄바람 지나는 길에
가만히 손 내밀어
조물조물 조몰락거리면서
네가 바람이었구나
네가 사랑이었구나
되뇌어 보면서 말입니다.
사월의 눈꽃 /임숙희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눈 깜박이는 순간조차 놓칠까 봐
감미롭게 때로는 회오리 일으키며
흩어지는 눈을 맞으며
몽환의 눈빛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사람들의 탄성 소리에 기뻐하며
바람 꼬리를 잡고 화려한 춤사위로
고별 무대를 장식하고 있다
차디찬 침묵의 시간을 견디고
희망을 뿌려놓고
눈부시게 떨어지는 아름다운 모습이
가슴 한편에 애틋하게 똬리를 튼다.
바람이 어깨를 토닥인다.
빙긋이 미소를 하늘에 날리고
손등에 앉은 꽃잎 힘껏 바람에 띄우며
수고했노라고 안녕을 고한다.
사월 소고(小考) /임재화
올 무술년 정초부터 시작하여
일이 삼월을 정신없이 보내고 있는데
어느새 또다시 사월이 시작됩니다.
그동안 기억 속에 꼭꼭 숨겨놓았던
가슴 시린 세월의 흔적을 다시 꺼내어
홀로 조용한 이 시간에 되돌아보니
기억이 맑은 듯하면서도 흐리고
메마른 가슴 또한 흐린 듯하면서도
맑은 기운이 조금은 남아 있네요.
이제는 세월의 흐름, 더욱 빨리 흘러도
아직도 나에게 갈 길은 먼 것만 같기에
곧 사월을 맞아도, 그리 마음의 여유가 없네요.
상큼한 사월 향기 /정심 김덕성
사월이 떠난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상큼한 봄 향기
임의 숨결처럼 향기로움을 안고
봄 속에 내리는 따뜻한 햇살이
고운 미소를 띠우며 내려앉은 길가
아롱대는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상큼한 풀냄새 진동한다
진초록을 꿈꾸며 사는 풀잎
산새들 하늘을 자유로이 나르고
고운 님은 뭉게구름 속에 흘러가는
사랑의 봄 사월이 아닌가
삼월의 혹독한 아픔을 이어받아
그 아픔을 실전(實戰)으로 이겨내고
오월에게 아픔 아닌 기쁨을 넘겨줄 사월
잔인보다 자랑스럽다고 말하고 싶은
봄 향기 속에 가는 사월이여
사월 꽃비 /향초 허정인
뒷동산
벤치에는
꽃비가 수 놓아졌네
산길 숲마다
온통
분홍색 사랑
초록 위에 심어 놓고
한잎 한잎
꽃잎 풀어 휘날리네
사월의 이별은
아프지 않게
참 곱게 뒹군다.
4월의 그리움 /고은영
그리움이여 피어 있어라
상처마다 햇살이 든다
가장 정직한 슬픔이여
그대의 영혼에 스민
햇살의 질량은 얼마나 되나
오늘 우리에게 저 바다는
절망과 온전한 아픔의 백서가 아니냐
그 아름다운 열정에
사랑은 봄의 말을 잃고 청춘은 사랑을 잃고
바다 위에 도화가 되어 떠돈다
사월의 꽃들은 피고
봄의 여울은 깊어가는데
나긋한 너의 속삭임
우리 영혼의 고향은 봄
가만 손을 내밀어 꽃잎에 가슴을 대면
무구(無垢) 한 사랑 앞에
미움을 묻는 자가 어디 있으랴
믿었던 사랑에 영혼을 도륙당한
삼월의 꽃들은 이 봄 흔적이 없어도
영원히 간직할 사랑의 아름다움을 위하여도
그리움이여 피어 있어라
우리 뜨겁던 사랑이
영원한 이별로 돌아앉아 있어도
그리움이여 피어 있어라
4월에 피는 목련 /김순이
내가 살아가는 시간만큼
쌓이는 게 죄뿐이라서
나는 딱, 저 목련만큼만
피었다 졌으면 좋겠습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향기가 없어도
늘 하늘을 우러르는
말간 영혼 같은 꽃
들뜸도 숨죽이고
간절함도 내려놓은 체
바람 많은 4월의 뜨락에서 서
세상을 환하게 밝혀주는
저 순백의 목련처럼
내리는 봄비 속에
내 부끄러움도 씻고 싶습니다
4월 하늘 /양해선
해마다 이맘때면
이런저런 벚꽃축제 한창인데,
하늘이 천둥번개 치며 찌푸렸다
윤중로 벚꽃이 많이 떨어져
아쉽다는데,
국가유공자를 위한 보훈병원 너른 뜰
만발한 벚나무는 지천인데,
무궁화 빼지를 실어 나르는 버스
옆면에 그려진 무궁화꽃은 그럴듯한데,
아무리 둘러봐도
무궁화나무는 없는데,
어딘가 분명히 있을 거라는 미련
자꾸만 두리번거리는데,
하늘이 우수수 몸을 털고 있다
무궁화축제를 하는 곳
언제라던가
어딘가 있긴 있다는데
4월의 향기 /지성 임종봉
3월의 풋향기가
힘찬 날갯짓을 한다
봄 햇살에
홍매화 산수유 목련 꽃이 피어나고
산들바람이 곁가지를 흔드니
벚꽃이 꽃망울을 톡톡 터뜨린다
몸 치장을 끝낸 벌 나비는
예쁜 날갯짓으로 모여들고
만개한 개나리 진달래 철쭉꽃이
4월의 향기로 이어져
여기저기서 봄의 축제를 펼친다
봄을 기다린 여심은
선홍빛으로 물들고
혼례를 치른 신부의 행복도
폐백대추처럼 여물어져 간다
먼 여정의 길목에서
저녁노을에 물든 금빛 호수는
윤슬의 어깨 내밀며 포말 지고
서산에 허리를 감은 구름의 낙조는
잊힌 기억의 편린을 다시 깨운다
4월 /靑心 장광규
날씨가 따뜻해도
기온이 고르지 못해도
기다려도
기다리지 않아도
4월이면 4월이 온다
개나리
벚꽃
목련
진달래
살구꽃
복숭아꽃
동백꽃
라일락
노랑으로
하양으로
분홍으로
빨강으로
나 여기 왔노라고
나 이렇게 있다고
웃는 얼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