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벼루에 갈린 휘황한 허무
소설가 최삼경은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흔히 3원-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과 3재-겸재 정선, 공재 윤두서, 현재 심사정-를 꼽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전업 화가이며 조선의 반 고흐로 불린 호생관 최북을 빼놓을 수는 없는 일”이라며 이번 소설에 대해 이렇게 부언한다. “도시괴담처럼 떠도는 최북에 대한 여러 일화들을 접하며 이것들을 재구성해내는 일은 재미있었다. 혹여 잘못된 정보일지도 모르고 작품에 각색을 했을지도 몰라 불안하기도 했지만 조선조에 화가로 지내는 예인들과 하층민들의 삶은 꼭 그려내고 싶었다.”
“북이 자신의 눈을 찌르기까지 그를 떠밀었던 신분적, 예술적 절실함과 광기에 대한 한을 어찌 풀어가야 할지는 쓰면서도 계속 떠오르는 화두였다. 우리 문화의 중흥기로 알고 있던 영·정조 시대가 그 많은 사회 변화를 이루고자 하는 열망과 성장에도 불구하고 기실은 엄혹한 정파 간의 정쟁이 고조된 시기였고, 이때 정권을 잡은 노론의 정치 이념에 따라 이후 조선말의 역사가 어찌 흘러갔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최북에 관한 논문은 많지 않았으나 그가 젊은 시절 만주 쪽을 한 바퀴 여행했다는 이야기를 보고 우리 민족의 시원이랄까, 우리의 국토를 넓혀보고 싶어서 저 샤먼의 태동이라는 바이칼 호수까지 나아갔다. 나름 최북이라는 예술가가 처한 사회적 상황과 예술적 고민을 잘 버무려 멋진 캐릭터를 하나 만들어보고 싶었으나 다시 읽어봐도 욕심뿐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최북이라는 인물을 소설로 재구성하면서 작가는 조선 시대 화가로 지내는 예인들과 하층민들의 삶을 함께 그려내려 했다는 것이고, 문화의 중흥기로 알고 있던 영정조 시대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조선이 망국, 망조의 길을 걷게 된 시발점이라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는 것이다.
발문을 쓴 화가 이광택은 이번 소설을 한마디로 “생의 벼루에 갈린 휘황한 허무”라 칭하며 이렇게 얘기한다. “‘사실이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되고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된다’(이병주)고 하듯 일사(逸事)에 가려진 조선의 기인 화가의 삶을 이렇듯 야무진 직조처럼, 십자수처럼 올올이 치밀하게 엮어내 세상에 내놓다니! 역시나 허접한 소원 따위야 저만치 내던진 채 임원(林園)에서 교양을 갖추며 한평생을 마칠 것 같은 풍모의 문사에서나 나올 문장의 솜씨가 아닐 수 없다. 관찰의 미더움과 따뜻한 상상력이, 평정과 여유, 관조와 지혜가 도처에서 빛난다. 시대에 대한 비판적 안목과 따스한 마음씨가 단아한 문장으로 교직되어 있다. 크게 보되 작게 살피고, 작은 것 속에 큰 의미를 담았다.”
“그가 써낸 소설을 읽고 난 뒤 책을 흔들기라도 하면 월용(月容)의 여인이 뜯는 가야금 소리에 실려 오랜 시간이 쟁여놓은 웅숭깊고 아득하면서도 고즈넉한 향기가 날 것 같다. 그것만이 아니다. 소설 안에는 산맥으로서의 이 땅의 역사와 그 골짜기에서 벌레처럼 낮게 엎드려 살아온 뭇 백성들의 다채로운 삶의 결이 깊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암석의 지층처럼 겹겹이 쌓인 조선 시대 민초들의 절망과 눈물로 응달진 고통스러운 상처가 사금파리처럼 엉켜 있다. 삶의 잡스러움, 그 이질적인 것들의 혼효 속에 현실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인지 소설에서는 왁자한 장바닥의 풍각 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어찌 보면 최북은 예술의 가장 깊은 곳을 본 것 같다. 예술이란 것의 본질이 결코 삶과 유리될 수 없고 삶의 마당에서 역할 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건조한 우리 삶을 촉촉하게 해주는 수분 크림 같은 것이니까. 또한 살천스럽고 황량한 세상의 덤불에 걸리고 찢기며 속병 든 한생이었지만 최북은 그 ‘생의 한 철’을 잘 놀고 간 것 같기도 하다. 힘없는 백성들이 너나없이 비인칭 주어로 살던 험악한 시절이었음에도 호생관이야말로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 정신만큼은 온전하게 ‘주체’로 깨어 있지 않았던가. 그의 죽음이 푸짐한 함박눈의 축복 아래에서 길마 벗은 황소마냥 편안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권력과 폐쇄성으로 꽉 조여진 조선 사회에서 ‘환기통’ 같은 역할을 한 예인이 최북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미 오래전부터 최삼경은 글을 업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비록 호구지책으로 숱한 잡문을 써내야 했지만, 그의 마음에는 늘 소설이 자리 잡고 있었고, 홀로 절차탁마한 지도 꽤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호구지책을 벗어버린 그가 펜을 들었다. 밤낮없이 조선의 반 고흐, 칠칠이 최북의 일생을 써내려갔다. 그 사이 몇 개의 계절이 지났다. 1,200장의 원고지를 채웠다. 〈붓이 나의 국가였고, 붓이 나의 생이었다〉는 문장을 끝으로 마침내 소설 『붓, 한 자루의 생』이 세상에 나왔다. 우화등선(羽化登仙), 마침내 그가 껍질을 벗었다. 이번 소설을 통해 화가 최북과 소설가 최삼경이 제대로 조명받기를 소망한다.
■ 작가의 말
몇 년을 머릿속에서 되뇌다 정작 쓰기 시작해서는 생각보다는 즐겁게 쓴 글이었지만 처음 써본 장편이라 구성도 집중도 어려웠다. 영·정조 시절에 대한 시대상도 허투루 알고 있었고, 당시 양반들의 문화는 물론 도화서 화원들의 생활 등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필요하면 자료를 찾아 공부하면서 써야 했다. 무엇보다 인터넷이라는 매체는 얄팍한 지식에 매여 사는 나에게는 축복이었다. 도시괴담처럼 떠도는 최북에 대한 여러 일화들을 접하며 이것들을 재구성해내는 일은 재미있었다. 혹여 잘못된 정보일지도 모르고 작품에 각색을 했을지도 몰라 불안하기도 했지만 조선조에 화가로 지내는 예인들과 하층민들의 삶은 꼭 그려내고 싶었다.
특히나 북이 자신의 눈을 찌르기까지 그를 떠밀었던 신분적, 예술적 절실함과 광기에 대한 한을 어찌 풀어가야 할지는 쓰면서도 계속 떠오르는 화두였다. 우리 문화의 중흥기로 알고 있던 영·정조 시대가 그 많은 사회 변화를 이루고자 하는 열망과 성장에도 불구하고 기실은 엄혹한 정파 간의 정쟁이 고조된 시기였고, 이때 정권을 잡은 노론의 정치 이념에 따라 이후 조선말의 역사가 어찌 흘러갔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최북에 관한 논문은 많지 않았으나 그가 젊은 시절 만주 쪽을 한 바퀴 여행했다는 이야기를 보고 우리 민족의 시원이랄까, 우리의 국토를 넓혀보고 싶어서 저 샤먼의 태동이라는 바이칼 호수까지 나아갔다. 나름 최북이라는 예술가가 처한 사회적 상황과 예술적 고민을 잘 버무려 멋진 캐릭터를 하나 만들어보고 싶었으나 다시 읽어봐도 욕심뿐이었던 것 같다. 혹여 이 소설에서 조금이라도 재미나 고민거리를 만날 수 있었다면 순전히 그동안 나에게 애정 어린 눈길과 손길을 주신 분들의 공덕이다.
어쨌거나 처음 쓴 장편소설이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사랑하는 나의 가족, 또 주위의 지인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소설로 화인으로 뜻 모를 삶을 살다 간 최북과 화마(畵魔)에 붙잡혀 살다간 이 땅의 모든 예인들의 신산했던 삶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길 바란다.
"북(최북)은 산이며 강이며 들판에 나가 실경(實景)을 보며 대충의 밑그림을 그릴 때면, 과연 실제 풍경을 그린다는 것이 맞는 말인가 하고 자문할 때가 많았다. 실경이란 것이 같은 날에도 시시때때로 변하는 것이어서 실재를 그대로 모사하는 것은 불가능한 데다 기억이 어찌 이것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기억을 통한 재현은 이미 왜곡을 전제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기에 표암이나 겸재가 말하는 '진경산수화'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또한 산수화 자체가 그린 이의 화의(畵意)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그 진경이라는 말이 참으로 애매하였다." (303~304쪽)
작가가 무엇을 근거로 최북이 칠십 세 이상의 장수를 누린 것으로 기록했는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그의 벗인 원교와 필재 등이 먼저 떠났고, 그가 죽었을 때 신광하가 「최북가」를 지어 애도한 것 등으로 칠십 세를 넘긴 것으로 본 듯하다. 아무튼 최북은 최소한 환갑은 넘긴 듯하니 그 시대로서는 장수한 것이다. 자해 행위로 인해 한쪽 눈을 잃었고, 홀몸으로 술에 찌들면서 가난하게 산 것에 비하면 놀라운 체력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왕성한 창작 활동은 아마도 체력의 뒷받침이 있었기게 가능했던 듯하니, 그림과 글의 능력에 더하여 체력과 수명과 명예까지 갖추었으니 이만하면 부러운 삶이 아닌가 싶다. 다만 부귀와 처복이 따르지 않은 듯하나 모든 것을 다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서양인들이 최고의 화가로 추앙하는 빈센트 반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잘랐다지. 스스로의 눈을 찔러 외눈박이가 된 조선의 화가 칠칠이 최북은 그에 빗대어 조선의 반 고흐라고도 한다. 기준은 유명세에 따른 것일까? 그래서 나이로만 따져도 141년 전 사람 최북을 고손자뻘이나 되는 고흐에 견준 것일까? 나는 이 빗댐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고흐는 고흐이고 최북은 최북일 뿐.
최북은 조선 영,정조 시기에 활약했던 중인 화가로 뛰어난 실력으로 도화서에도 발탁되었으나 배짱이 맞지 않아 그만 두었다. 주로 이광사(李匡師)·강세황(姜世晃) 등 권력에서 소외되었던 소론이나 남인 계열의 명사들과 교유하였는데 기이한 행동으로 광생(狂生)이라고 불리기까지 하면서 많은 일화를 남겼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최북의 일대기를 그린 것.
작가는 기록으로 전하는 역사 사실, 이 뼈마디에 살을 붙이고 피를 돌게 해 생동감 넘치는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흥미진진하다. 만주와 조선, 일본까지를 넘나드는 배경이며 그 안에서 얽힌 인연과 설킨 사연들이 치밀하고 정교하게 짜여져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책장을 넘어 간다. 소설이라면 빠질 수 없는 비극적 로맨스도 있는데 이름부터 여진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조강지처 '란'과 남자가 먹고 살만 하면 꼭 나타나고는 하는 기생 월향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이 그것. 애들이라면 결코 지어낼 수 없는 이순(耳順), 작가의 연륜이 묻어난다.
말이 나온 김에 굳이 꼬집어 보자면 소설의 주요 무대가 되는 최북 처가의 고향은 함경도인데 감칠맛 나는 사투리의 대부분은 강원도 방언. 강원도가 작가의 고향이기 때문일 테지만 어쩐지 무언가 살짝 아귀가 맞지 않는 듯 어색한 면도 있다. 중간에 한 장 씩 들어 있는 그림의 인쇄 상태도 너무 조악하기만 하다. 오히려 소설 읽는 재미를 반감시킬 정도. 조금만 더 신경써서 깨끗하게 잘 보이도록 했으면 좋겠다.
칠칠이 최북의 이름을 듣고 보아서 익히 알고는 있었으나 이렇게 한 편의 소설로 다시 만나 보니 새롭고도 반갑기 그지없다. 왕유의 산거추명을 란이와의 사랑이야기에 접목해 달리 해석한 것도 좋았다. 답사여행을 다니면서 만났던 이광사의 글씨도 살갑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구성과 전개, 깔끔한 문장이 소설의 진미를 만끽하게 해 준다. 오랜만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 향기에 흠뻑 취했다. 최삼경 작가의 앞날에 영광을!
서양인들이 최고의 화가로 추앙하는 빈센트 반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잘랐다지. 스스로의 눈을 찔러 외눈박이가 된 조선의 화가 칠칠이 최북은 그에 빗대어 조선의 반 고흐라고도 한다. 기준은 유명세에 따른 것일까? 그래서 나이로만 따져도 141년 전 사람 최북을 고손자뻘이나 되는 고흐에 견준 것일까? 나는 이 빗댐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고흐는 고흐이고 최북은 최북일 뿐.
최북은 조선 영,정조 시기에 활약했던 중인 화가로 뛰어난 실력으로 도화서에도 발탁되었으나 배짱이 맞지 않아 그만 두었다. 주로 이광사(李匡師)·강세황(姜世晃) 등 권력에서 소외되었던 소론이나 남인 계열의 명사들과 교유하였는데 기이한 행동으로 광생(狂生)이라고 불리기까지 하면서 많은 일화를 남겼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최북의 일대기를 그린 것.
작가는 기록으로 전하는 역사 사실, 이 뼈마디에 살을 붙이고 피를 돌게 해 생동감 넘치는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흥미진진하다. 만주와 조선, 일본까지를 넘나드는 배경이며 그 안에서 얽힌 인연과 설킨 사연들이 치밀하고 정교하게 짜여져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책장을 넘어 간다. 소설이라면 빠질 수 없는 비극적 로맨스도 있는데 이름부터 여진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조강지처 '란'과 남자가 먹고 살만 하면 꼭 나타나고는 하는 기생 월향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이 그것. 애들이라면 결코 지어낼 수 없는 이순(耳順), 작가의 연륜이 묻어난다.
말이 나온 김에 굳이 꼬집어 보자면 소설의 주요 무대가 되는 최북 처가의 고향은 함경도인데 감칠맛 나는 사투리의 대부분은 강원도 방언. 강원도가 작가의 고향이기 때문일 테지만 어쩐지 무언가 살짝 아귀가 맞지 않는 듯 어색한 면도 있다. 중간에 한 장 씩 들어 있는 그림의 인쇄 상태도 너무 조악하기만 하다. 오히려 소설 읽는 재미를 반감시킬 정도. 조금만 더 신경써서 깨끗하게 잘 보이도록 했으면 좋겠다.
칠칠이 최북의 이름을 듣고 보아서 익히 알고는 있었으나 이렇게 한 편의 소설로 다시 만나 보니 새롭고도 반갑기 그지없다. 왕유의 산거추명을 란이와의 사랑이야기에 접목해 달리 해석한 것도 좋았다. 답사여행을 다니면서 만났던 이광사의 글씨도 살갑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구성과 전개, 깔끔한 문장이 소설의 진미를 만끽하게 해 준다. 오랜만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 향기에 흠뻑 취했다. 최삼경 작가의 앞날에 영광을!
서양인들이 최고의 화가로 추앙하는 빈센트 반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잘랐다지. 스스로의 눈을 찔러 외눈박이가 된 조선의 화가 칠칠이 최북은 그에 빗대어 조선의 반 고흐라고도 한다. 기준은 유명세에 따른 것일까? 그래서 나이로만 따져도 141년 전 사람 최북을 고손자뻘이나 되는 고흐에 견준 것일까? 나는 이 빗댐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고흐는 고흐이고 최북은 최북일 뿐.
최북은 조선 영,정조 시기에 활약했던 중인 화가로 뛰어난 실력으로 도화서에도 발탁되었으나 배짱이 맞지 않아 그만 두었다. 주로 이광사(李匡師)·강세황(姜世晃) 등 권력에서 소외되었던 소론이나 남인 계열의 명사들과 교유하였는데 기이한 행동으로 광생(狂生)이라고 불리기까지 하면서 많은 일화를 남겼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최북의 일대기를 그린 것.
작가는 기록으로 전하는 역사 사실, 이 뼈마디에 살을 붙이고 피를 돌게 해 생동감 넘치는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흥미진진하다. 만주와 조선, 일본까지를 넘나드는 배경이며 그 안에서 얽힌 인연과 설킨 사연들이 치밀하고 정교하게 짜여져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책장을 넘어 간다. 소설이라면 빠질 수 없는 비극적 로맨스도 있는데 이름부터 여진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조강지처 '란'과 남자가 먹고 살만 하면 꼭 나타나고는 하는 기생 월향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이 그것. 애들이라면 결코 지어낼 수 없는 이순(耳順), 작가의 연륜이 묻어난다.
말이 나온 김에 굳이 꼬집어 보자면 소설의 주요 무대가 되는 최북 처가의 고향은 함경도인데 감칠맛 나는 사투리의 대부분은 강원도 방언. 강원도가 작가의 고향이기 때문일 테지만 어쩐지 무언가 살짝 아귀가 맞지 않는 듯 어색한 면도 있다. 중간에 한 장 씩 들어 있는 그림의 인쇄 상태도 너무 조악하기만 하다. 오히려 소설 읽는 재미를 반감시킬 정도. 조금만 더 신경써서 깨끗하게 잘 보이도록 했으면 좋겠다.
칠칠이 최북의 이름을 듣고 보아서 익히 알고는 있었으나 이렇게 한 편의 소설로 다시 만나 보니 새롭고도 반갑기 그지없다. 왕유의 산거추명을 란이와의 사랑이야기에 접목해 달리 해석한 것도 좋았다. 답사여행을 다니면서 만났던 이광사의 글씨도 살갑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구성과 전개, 깔끔한 문장이 소설의 진미를 만끽하게 해 준다. 오랜만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 향기에 흠뻑 취했다. 최삼경 작가의 앞날에 영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