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젤입니다
오앙입니다
근데 오펠입니다 ㅠ어쩌라고 싶은데 몰라요 저도.... 이제 슬슬 커플링 확정해야 하는데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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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오늘 시간 있으면 만나고 싶어요.
나는 휴대폰에 뜬 문자메시지를 보았다. 저장되어 있지 않은 전화번호였다. 깍듯하게 인사하지만 용건만 보내는 단도직입적인 말투.
누군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확인 차 답신을 보냈다.
- 안녕하세요. 문자 보내신 분이 누구신지 알 수 있을까요?
한동안 답이 없어서 아침식사를 하러 갔다. 나는 식사 중에는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다. 누구나 그렇듯 중독처럼 화면을 들여다 보던 때도 있었지만, 변호사 개업을 한 후에는 주말에도 업무 문자가 많이 와서 점점 개인시간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작년부터는 식사시간과 저녁 10시 이후에는 스마트폰을 보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촬영 전 대기시간에도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다.
꽤 노력이 필요한 루틴이고, 못 지킬 때도 많다. 특히 지금같은 때는 더욱. 나는 연속해서 문자를 보내거나, 답신이 올때까지 폰을 들여다보는 것을 참기 위해 스마트폰을 침실에 두고 식사하러 갔다.
식사하고 이를 닦은 후 돌아와보니 문자메시지가 여러 통 와 있었다. 부재중 전화도 1통 와 있었다.
- 프랑소와즈입니다. 지난 달에 집까지 태워주셔서 감사 인사로 식사 대접 하고 싶어요. 저는 11시 이후 다 괜찮습니다.
- 프랑소와즈 드 자르제입니다. 방금 성을 안 적었네요.
- 11시는 오전 11시입니다.
- 11시 이후 괜찮다는 뜻은 점심식사가 아니라 오후라도 괜찮다는 의미였어요.
- 빅토르 클레망 드 제로델 씨 전화번호 맞나요? 번호가 틀렸다면 알려주세요.
- 죄송해요. 잘못 눌러서 통화로 연결되어 버렸네요.
나는 얼굴에 미소가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러다간 내 스마트폰 저장공간이 문자메시지로 가득찰 것 같다! 성급한 아가씨가 또 문자를 보내기 전에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프랑소와즈는 전화신호 한 번 만에 전화를 받았다.
"네!"
"안녕하세요, 프랑소와즈. 빅토르입니다. 아침식사를 하느라 문자를 늦게 봤습니다."
"안녕하세요. 네. 제가 문자를 좀 많이 보냈죠, 그러려던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프랑소와즈는 서둘러 변명했다.
"예, 연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가워요."
나는 웃음을 참기 위해 노력하며 진지하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웃음을 비웃음이나 냉소로 오해하는데, 보통은 해명하기 귀찮아서 내버려두지만 프랑소와즈에게는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여자를 싫어한다는 오해도 사고 싶지 않았다.
"저도 오늘 특별한 약속은 없습니다. 퐁피두 근처에 캐쥬얼한 브런치 카페 있는데요. 12시에 댁으로 모시러 갈까요?"
"아아! 그렇게까지는 안해주셔도 되는데, 그냥 퐁피두 센터 앞에서 뵈어요." 프랑소와즈는 서둘러 말하고, 서둘러 끊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웃었다. 그리고 문자를 보냈다.
- 샤틀레역 앞에서 뵙겠습니다. 식사 후에는 제가 모셔다 드릴테니 지하철을 타고 오세요.
나는 레스토랑에 전화해 예약을 하고 오늘 1시에 가기로 한 피트니스 예약을 취소했다. 당일 취소여서 1회치 비용이 전액 차감되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30분 일찍 도착해 주차해놓고 샤틀레 역 앞까지 걸어갔다. 다행히 비가 그쳤고 하늘도 개었다.
저녁 약속이면 망설였을 수도 있지만, 점심 식사이기 때문에 가볍게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프랑소와즈가 굳이 저녁이 아닌 점심에 만나지고 한 것은 성격이 급해서이지 다른 복잡한 계산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나의 연애관계는 부모님이 끼면 언제나 귀찮아진다. 내가 늘씬한 금발 모델들과 데이트하는 이유는 첫번째는 내 여자 취향 때문이고 두 번째는 그녀 대부분은 부모님이 내 눈앞에 밀어놓는 '우리와 비슷한 집안의 아가씨'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변호사시험을 통과한 이래, 계속 선자리 압력을 받고 있었다.
"도미니크는 벌써 애가 둘인데 너는 왜 아직 이러고 있니?"
어머니는 노골적이었고 클라이언트들은 은근했지만 요는, 비슷한 성장과정과 가정환경을 가진 여자를 만나 빨리 가정을 꾸리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프랑소와즈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수도 있다. 10년 전에 도미니크 형의 데이트를 거절했고, 도미니크 형은 어머니 말대로 '벌써 애가 둘이나 되는데도' 계속 프랑소와즈에게 불만인지 억울함인지 모를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도미니크 형처럼 어머니와 친밀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별 상관 없었다.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대외적으로는 누구나 감탄하는 훌륭한 둘째 아들이지만, 집안에서는 소위 말하는 모난 정이다. 두드러지진 않지만.
내가 합의 과정을 이끌었을 때도 어머니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도미니크 형이 소송에서 역할을 하길 바랬기 때문이다.
샤틀레 역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프랑소와즈는 검은 진에 흰 블라우스, 회색 자켓과 검은 가죽 부츠 차림이었다. 가방도 없이 접은 우산만 손에 쥐고 있었다. 눈부신 금발은 깔끔하게 포니테일로 묶고 있어서 광대뼈에서 턱선까지가 도드라져보였다.
나는 멀찍이서부터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프랑소와즈는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우산을 들지 않은 손을 어색하게 들어올려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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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쳐 모처럼 푸른 하늘이 자태를 뽐냈고, 우리는 레스토랑에서 일어나 스트라빈스키 분수에서 퐁피두 광장까지 걸으면서 대화를 나눴다. 시간이 어찌 지났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나의 아버지와 그의 어머니는 완전히 달랐지만 비슷했다. 그리고 우리의 성장과정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꼭 갖고 싶었지만 막내인 저도 딸이어서 무척 실망하셨다고 했어요. 하지만 덕분에 저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죠."
나의 아버지는 그시대 사람답게 남아선호와 남녀평등을 동시에 내재한 가부장이었다. 사춘기 때는 크게 반항해서 얻어맞은 적도 있었으나 어른이 된 지금은 왜곡되었지만 사랑의 일부였다고 인정하고 있다. 아버지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다… 고 생각한다.
"저의 어머니는 둘째는 꼭 딸을 얻고 싶었다고 했어요. 어머니는 한동안 아버지 유전자 탓을 했어요. 아버지 가계에 여자 친척이 적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는 머리를 기르고 인형처럼 입히기도 했어요."
빅토르는 웃으며 어릴 때 사진 (아날로그 인화 사진을 다시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을 보여주었다. 치렁치렁한 레이스를 목에 감고 머리를 길게 기르고 빨갛게 타서 주근깨가 있는 꼬마 빅토르는 여자아이라기보단 어린 태양왕처럼 보였다.
딸을 낳지 못한 실망 때문은 아니겠지만, 빅토르의 어머니는 그가 3살 때 UN파견 변호사로 지원했고, 아프리카로 파견을 갔다. 빅토르는 3살부터 4년 동안 마르세유의 외갓댁에 맡겨져서 살았고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일드프랑스로 돌아왔다고 했다.
"어머니가 4년만에 만난 저에게 한 말이 뭐였을지 맞춰보세요."
"글쎄요, '보고 싶었다'라던가 '많이 컸구나' 같은 뻔한 답이면 처음부터 저에게 퀴즈로 내지도 않았겠죠?"
"하하, 맞아요. 어머니의 첫마디는 '얼굴에 주근깨라니, 하아...?' 였습니다."
"우아! 너무하시네요!"
"어머니는 세련된 파리지엔느시니까요. 깨끗한 피부가 곧 미인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자식에게도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십니다."
그는 모델 활동은 변호사 업무의 홍보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빅토르를 흘끔거렸다.
빅토르는 캐쥬얼한 자켓과 피케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촬영장에서 바로 빠져나온 사람처럼 머리카락 한 올까지 완벽했다.
남성적으로 잘 생겼고 옷도 세련되게 잘 입지만 자연스럽게 하고 다니는 페르젠과는 사뭇 달랐다.
나는 그와 물리적으로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러니까, 손을 잡는다던가 그보다 더 친밀한 행위. 하지만 빅토르는 외견부터 매너까지 너무 완벽했기 때문에 나는 빅토르와 어떤 식으로 가까워져야 할지 몰랐다. 페르젠과 처음 가까워질 때도 능숙하지 못했지만…
페르젠을 생각하니 다시 우울해졌다. 페르젠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데이트를 하는데도 페르젠과 새로운 데이트 상대를 계속 비교하는 내 자신이 바보같았다.
빅토르가 말했다.
"벌써 4시네요. 슬슬 돌아갈까요? 바래다드릴게요."
내가 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나는 늘 이런 식이다. 남자에 있어서는 내 마음을 잘 보이지 못한다. 나의 평소 모습, 사회적인 성취욕구와 진취성은 평범한 남녀관계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걸까?
다행히 차 안에서는 페르젠 생각이 거의 나지 않았고, 우리는 펜싱 클럽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당신과 승부에서 졌을 때 무척 기죽었습니다. 마르세유 펜싱 클럽 관장님은 이탈리아 국가대표 출신이었고, 저는 파리로 올라온 이후에도 한 달에 두 번 마르세유로 비행기를 타고 내려가서 개인 수업을 받아왔는데 설마 지리라곤…"
"후후 초등학교 때는 여자 쪽이 성장이 빠르니까요." 나는 나답지 않게 겸손하게 대답해줬다. 보통 이런 말투는 여자에게만 쓰지만 남자들에게도 가끔씩 관대하게 대해줘도 나쁠 건 없다 생각했다.
나는 그가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어서 놀랐다. 특히 마리에게 가짜 러브 레터가 돌았을 때 내가 남자애들을 혼내주었던 이야기를 할 때 입을 딱 벌렸다. 나는 그 사건을 완전히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마리와 함께 다녔는데, 빅토르에 대해서는 거의 기억이 없었다. 나는 앞을 보고 달리지 옆이나 뒤를 보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빅토르가 나의 중학교 시절 에피소드를 다 기억하는 것이 신기했다.
"빅토르 당신은 기억력이 좋군요. 저는 완전히 잊고 있었어요."
"섭섭하네요. 러브 레터가 가짜라는 걸 처음 당신에게 알려준 사람이 저였는데요."
마리의 어머니, 즉 고 로렌느 여사는 펜싱 클럽의 후원자였기 때문에 마리는 펜싱 클럽에 가끔 놀러왔다. 마리는 명실공히 공주님이었기 때문에 흠모하는 남자들이 많았고, 또 되바라진 마리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악의적인 장난이 워낙 많았는데 그때마다 당신이 늘 마리를 보호해줬죠. 프랑소와즈 당신은 그때도 마담 카페의 기사 같았어요."
그라프 종이봉투를 건내주며 울던 마리가 떠올랐다. 나도 이런 내 자신이 바보 같았다. 이렇게 잘 생기고 이야기도 잘 통하는 남자의 차 안에서 다른 남자 생각을 하고 있다니.
다행히 차는 내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빅토르는 이번에도 시동을 끄지 않고 사이드 브레이크만 잠근 채 내려서 보조석 문을 열어주었다.
"오늘 즐거웠습니다, 프랑소와즈. 즐거운 저녁 되세요."
그가 내 손끝을 살짝 잡은 순간, 내 가슴은 방망이질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손을 놓았다. 나는 주춤주춤 하다가 몸을 돌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로 통하는 복도 코너를 돌기 전에 돌아보았는데, 그는 여전히 회색 아우디에 기대서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중대한 실수를 깨달았다.
'아아! 점심이 아니라 저녁에 만났어야 했어!'
나는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난 왜 이 모양일까.
'또 망했어.'
애초부터 잘 진행 되기도 어려웠다. 나는 다른 남자를 잊으려고 빅토르와 만났고, 빅토르는 소송이 끝난 뒤 의뢰인과 점심식사를 했을 뿐이다. 저녁식사도 아니고.
빅토르는 언니들이 늘 손꼽는 이상적인 상대에 걸맞는 남자다. 잘 생기고, 나와 비슷한 가정환경에, 비슷한 성장과정을 거친 남자였다.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은 편안하고 즐거웠다. 그런 자리에서도 페르젠의 우울한 기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심지어 대화 중간중간 멍때리기까지 했다.
현관 문을 닫고 우산을 내던진 다음 쇼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보통 혼자 있을 때 페르젠과 나눴던 대화를 훑어보며 추억에 잠기곤 했지만, 어제 문자를 다 지워버렸기 때문에 내 스마트폰에는 페르젠의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페르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들어가 세 달 전 마지막으로 업데이트된 백야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마리가 하트를 눌러놓은 게시물이었다.
피드에 딸린 게시글은 한 줄 뿐이었다.
-북구 사람들은 백야 때문에 수면부족에 걸릴까요?
페르젠이 연거푸 세 대륙을 다니느라 시차 적응으로 고생하던 때였다. 나는 슬그머니 웃었다. 나는 그의 유머를 좋아했다. 언제나.
그때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잘 들어갔나요? 저도 지금 집에 도착했습니다.
나는 망설였다. 예의 상 보내는 인사일까?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는 뜻일까? 나는 신중하기로 했다.
아까처럼 문자폭탄을 보내지 않기 위해 메모장에 몇개의 답안을 적고 가장 공식적이고 예의바른 문장을 복사해서 전송했다.
-네, 덕분에 편하게 집에 왔습니다. 오늘 식사도 맛있고, 대화도 즐거웠어요.
이번에는 바로 답신이 왔다.
-시간이 짧아서 아쉬웠습니다. 다시 뵙고 싶은데 이번 주 금요일 저녁에 시간 되시나요?
나는 소리지르고 싶은 욕구를 눌렀다. 오른손으로는 스마트폰을 꽉 쥐고 왼손으로는 입을 눌렀다가, 혼자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입을 떼고 웃었다.
- 네, 시간 있습니다. 몇시에 어디서 뵐까요.
이번에도 서둘러 문자를 보내놓고 후회했다. 아, 너무 단도직입적으로 보이잖아. 메모장에 작성했다 보냈어야 했는데…
- 맛있는 레스토랑을 찾아보고 내일 쯤 연락드릴게요. 남은 일요일 즐겁게 보내세요.
빅토르는 더 이상의 여지를 남기지 않고 문장을 끊었다. 아아, 나는 대화의 스킬이 필요하다.
나는 당장 아마존 프랑스에 접속해서 연애/성생활 지침서 베스트셀러인 <오르강>을 주문했다. 이 책을 알게 된 건 로망스 드 프랑스 과월호를 검색했기 때문이다. 연관 배너로 <마리안느의 길>과 <오르강>이 자꾸 따라와서 짜증났었지만, 지금의 내겐 쓸모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번엔 제대로 해내기로 마음먹었다.
아마존 프라임으로 배송받은 <오르강>에 따르면 세 번째 데이트가 끝나면 남자를 집으로 초대해야 한다.
나는 빅토르와 몇 번 만난 건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본가에서 식사 후 차로 데려다준 것도 데이트에 포함일까? 일요일 점심에 만난 것은 데이트일까? 금요일의 초대는 데이트일까? 셋 다 데이트로 친다면 이번 주 금요일에는 빅토르를 집으로 초대하고 다음 단계로 나가야 한다.
데이트, <오르강>에 따르면 빅토르와의 약속은 확실히 데이트다. 금요일 저녁! 남자쪽에서 먼저 초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나는 여성스럽지만 지나치게 헤프지는 않게 입으라고 적혀 있었다. 내가 가진 옷 중에서 가장 여성스러운 옷으로 골랐다. 어차피 헤픈 옷은 없어서…
'관계가 발전한다면 서로의 판타지를 위해서라도 헤픈 옷이 필요하다고 적혀있는데, 그럼 헤픈 옷은 언제 사야 하지?' 나는 옷을 고르면서 10년 후 철강 가격을 고민하는 미래학자처럼 쓸데 없는 고민을 했다.
금요일은 캐쥬얼데이이지만 맥시한 바지와 딱 붙는 실크 블라우스를 입고 머리도 정돈했다. 발이 좀 아프지만 높은 굽도 신었다.
"와, 오늘 평소와 무척 다르네? 멋지다. 넌 늘 멋지지만. 오늘은 특히 예뻐."
앙드레는 아침마다 내 사무실에 잠깐 들른다. 그가 내 옷차림을 칭찬했기 때문에 조금 부끄러워졌다.
"아, 오늘 저녁에는 약속이 있거든."
"누구? 페르젠?"
나는 경악했다. "무슨 소리야?"
"아, 아니라면 미안. 그냥 물어본 것 뿐이야." 앙드레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고 나는 조금 안심했다. 내가 페르젠과 만난다는 사실을(만난다고 부를 수 있다면)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된다. 특히 마리에게는 절대 알려지면 안 돼!
내가 페르젠을 만난다는 사실을(만난다고 부를 수 있다면) 소꿉친구에게도 숨겨야 한다는 사실에 다시 우울해졌다. 역시 이런 투명하지 못한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서라도 빨리 누군가와 안정적으로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빅토르와의 데이트가 좋은 출발이 되었으면 좋겠다.
"제로델이야. 그가 데이트를 신청했거든."
"빅토르 클레망 드 제로델?"
"응."
그는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시간 보내."
나는 감정이 조금 복잡해졌지만 앙드레도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같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는 타블로이드에 실릴 정도로 요란스럽게 연애한 적이 있다. 상대방이 워낙 핫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루루가 엉엉 울었다) 물론 나는 흑표범 쪽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런 미녀가 뭐가 아쉬워서 머리 손질을 안 하면 까치집이 되는 꺽다리 허수아비랑…
흑표범은 헐리우드로 건너가기 전에 앙드레와 헤어진 것 같았다.(루루가 기뻐했다) 이후엔 일절 그의 연애사를 묻지 않았기 때문에 앙드레의 여자관계를 알 길이 없었다.
앙드레가 데이트 중이란 걸 안 것은 화요일이었다. 그는 내 사무실에 들러 업무 이야기를 한 후 바로 퇴근했는데, 한참 뒤에나 그가 휴대폰을 놓고 간 것을 알았다.
'이래서 집전화를 놓으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나는 좀 짜증이 났다. 비상상황에 언제든 연락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앙드레의 집까지 직접 갖다줘야 하나, 하고 잠깐 고민했으나 금요일에 혹시 모를 이벤트를 위해서 집을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에 다음날 돌려주기로 하고 곧장 나의 집으로 왔다. 앙드레의 핸드폰은 배터리가 거의 방전되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 가지고 와서 충전했다.
저녁 늦은 시간 전화가 왔다. '이베트'라는 이름이었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으나, 이어서 문자가 와서 미리보기 화면에 떴다.
- 전화받아.
앙드레의 비밀번호는 언제나 1225이다.(문자 조합형 비밀번호는 Xmas1225이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할머니가 앙드레를 키워서일 것이다.) 잠금을 해제 해서 답신을 보내줄까 망설이고 있는데, 이어서 다시 전화가 오길래 엉겹결에 받았다.
"네, 앙드레 그랑디에의 핸드폰입니다."
"..."
나는 직감적으로 그녀가 앙드레와 가까운 사이인 것을 알았다. 불필요한 오해를 주면 안 되기 때문에 서둘러 해명하였다.
"아, 저는 앙드레의 회사 동료입니다. 앙드레가 제 사무실에 핸드폰을 놓고 퇴근했어요."
"오늘 저녁에 그의 짐을 현관에 내놓을테니 토요일까지 짐 찾아가라고 전해주세요. 그때까지 안 찾아가면 버릴 예정이에요."
그녀는 용건만 말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스마트폰을 돌려주며 이베트의 말도 전달했다. 앙드레는 별 반응 없이 고맙다는 말만 했고 나는 묻고 싶은 마음을 진정하느라 힘들었다. 이베트와 어느 정도 깊은 사이인지, 그녀도 모델인지, 검은 피부에 이국적인 미녀인지, 짐을 가지고 가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하지만 앙드레가 내 데이트 상대에 대해 물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도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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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가 여자를 만나고 있는지 처음 의심한 건 고등학교 때였다.
할머니는 경제적 안정을 위해 의대 진학을 원했지만 앙드레는 대학 진학 대신 공립 그랑제콜 준비를 시작했다. 앙드레는 할머니와 함께 (200년 전에는 정원지기가 살던) 별채에 살고 있었지만 바칼로레아를 준비하는 나와 함께 공부하기 위해 본관으로 옮겨와서 작은 방에서 지내고 있었다.
입시가 임박했을 때, 그는 밤마다 몰래 외출했다. 처음에는 내가 잠든 후에 나갔다 온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초저녁에 나가 새벽에 들어오는 일이 잦았다.
대신 낮에 쪽잠을 자거나 가족 모임에서 대놓고 하품을 하기도 했다.
나는 밤마다 늦는 앙드레를 의심해 잠을 잘 수 없었고, 뒷문으로 몰래 들어오는 앙드레를 붙잡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산책이라고 둘러댔지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부끄럽지만, 소파에 잠깐 벗어놓은 그의 옷을 뒤졌고 주머니에서 가짜 진주 목걸이를 발견했다. 학교 복도에서 수근거리던 한껏 꾸민 여자들과 데이트하는 게 아닐까 의심하고, 또 이제 혼자서 시내에 나가는 그가 모르는 여자들을 만나고 다니는지도 의심했다.
나는 바칼로레아 준비로 지쳤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예민해져 그를 추궁했고 그제서야 앙드레는 비밀을 털어놓았다.
"프레파 과정의 스터디 모임이야. 목걸이는 스터디 친구가 떨어뜨린 걸 돌려주려고 주워놓은 것 뿐이고."
나는 안심했고 또 동시에 앙드레가 나에게 비밀을 만들었다는 것에 상처받았다. 내가 아무말 하지 않자 앙드레는 재차 말했다.
"너나 사장님에게 스터디 모임을 말하면 나를 위해 과외 선생을 고용할텐데 그런 호의는 더이상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나는 상류층인 너의 집에서 살고 있지만 너와 같은 계급은 아냐. 이제 계급은 사라졌다고 하지만, 우리는 다르니까."
내가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침묵을 지킬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피를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나는 그를 늘 남동생이라 생각했는데, '우리가 다르다'라는 말은 나에게 쓰라렸다. 또 그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동생'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그는 성인이었고 나보다 훨씬 많은 고민을 하는 어른스러운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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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정보까지 나누던 사이였지만 그때부터는 어떤 면에서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고 말을 아꼈다. 특히 계급이나 이성 이야기는.
하지난 내가 누군가와 당당하게 데이트할 수 있다면 앙드레에게도 이야기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서로 연애 상담도 해 주면서. 물론 내가 다른 사람의 연애 상담할 깜냥 따위 없지만. 그래도 앙드레보다는 낫지 않을까? 라고.
내 스마트폰 메시지가 반짝거렸다.
- 좋은 아침이야. 오늘 시간될 때 만날 수 있을까?
페르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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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성 드리다 포기하고 그냥 쓰는데 펠 끼얹으니 진도 팍팍 나가네용. 그래도 신내림만큼 재밌진 않아 아쉬워요
다음화에 제로델이랑 야간 데이트해야 하는데 차잇는 사람과 데이트 안해봐서 모르것네요. 어찌 하나요? 프랑스도 대리운전 잇나요?
그랑제콜 출신들은 부심이 잇더라고요. 나 의대/밥대 갈수 잇는데 안 가고 국가공인 에리뜨 되엇다 뭐 그런… 실용적인 제로델은 법대 진학 하고 인정투쟁 하는 앙드레는 공학 그랑제꼴 갔다는 설정입니다 에효 흙수저는 국가면허가 최곤데… (나라에서 인정한 살인면허 1.의사면허 2.운전면허 3.007면허)
첫댓글 넘 좋아요 ㅠㅠ 정말 넘 좋아요 ㅠㅠ
펠은 이제 아웃이라 생각했는데 끼얹으면 진도 나간다니 영감(inspiration)템으로 놔둬야겠네요. 근데 오스칼 그 문자는 거절해! 사람이 밑천(딴 이성)이 있어야 밀당이 잘 되니까 아직도 펠을 원한다면(ㅡㅡ;) 젤을 밑천으로 튕겨!
앙드레 표정관리 엄청나게 잘하네요 역시 프로 짝사랑러 ㅠ
오스칼 '앙드레보단 내가 낫지 않을까'라니ㅋㅋㅋ 웃다가 생각하니 결국 거기서 거기 같기도 하고요 ㅠ
젤도 좋고 '어차피 결론은 앙드레'도 좋고...기냥 다 좋아요
결론 내지 마시고 그냥 달아두고 생각날때마다 가끔 써주심 앙대요? 흑흑
젤은 처음부터 택시 타도 좋고 돈 많으니 대리기사 비스무레한 거 뭐든 가능할거고 무엇보다 다음날 술깨고 데려다 주는 게 제일 좋고 ^^
스무살에 펠이랑 자고 사귀지도 못했는데 지금 30초반(맞나요?)까지 딴 남자가 없었다니 오스칼 얼른 봉인해제시켜주세요
어우 ㅜㅜ 조아해주셔서 감사합니디. ㅠㅠ
몇살인지도 모르겟네요 1화에서는 앙드레 25살이엇다가 27로 올렸는데 이거저거 하면 제로델이 30은 되어야 할거 같아요 ㅠㅠ
제가 생각날때마다 닥치는대로 써서 시제가 엉망인데 앞으로도 엉망일 듯 ㅠㅠ
라코스테패션쇼 - 마리결혼 - 펠귀국 - 어영부영양다리 - 회상록사건 - 젤 1차 드라이브데이트 - 반지배달 - 젤 2차 데이트(오늘 연재분) - 3차 데이트 - 파파라치 - 루앙 - nft때문에 오스칼이 마페 만남
루앙까지 페르젠이랑 관계 못 끊엇어요. ㅡㅁㅡ 아직도 가끔 자고 있다는…. 오펠은 속궁합 쫙쫙 맞는다는 설정입니닼ㅋㅋㅋ 오는 펠 외엔 잔 남자 없어요. 오늘 연재분까지는…
오 그러게요. 택시가 잇네요. 택시 해야겟당...ㅋㅋㅋ
아앙 넘 재밌어요~ 연애초보 오스칼 왜케 귀엽나요ㅋㅋㅋ 펠 끼얹으면 진도 쫙쫙.. 공감합니다ㅋㅋ 오앙 오젤 오펠 루앙 루젤 카푸앙 다 좋으니 걍 내키는대로 써주세요~~
으헝? 펠양념 공감하시는귱요. 유리페르가 그리 빙구빙구인 것도 연재를 위한 밑밥이엇나요?
원작/애니에서도 페르젠이 나와야 스토리가 진행되고 오앙이 자발적으로 진도빼질 않는 것만 봐도 알파메일의 중요성을 느낍미다. ㅡㅁㅡ
내키는대로 쓰고 싶은데 어떤 커플도 내키지가 않아요. ㅋㅋㅋ ㅠㅠ 그나마 카푸앙 정도?
@눼이 현대판 오스칼 하렘은 어떠신가요?ㅋㅋ
연애초보이지만 마성의...
@유리바다 어우 그정도 필력 되면 이미 데뷔했죠. ㅋ
사실 젤과의 3차데이트는 대충 구상해놧는데요. 아무렇게나 갈겨쓰다보니 현재시점(루앙)에선 오젤이 이미 헤어진 상태네요? 저도 타임라인 정리하다 알아챔ㅋㅋㅋ 이거 어찌 수습해 ㅠㅠ
@눼이 눈감아드릴테니 걍 모른척 연재해주세용ㅋㅋ
@유리바다 안그래도 그럴려고욬ㅋㅋㅋㅋㅋㅋ 이미 엉망이라 ㅋ
오스칼 진짜 너무 귀엽네요…..ㅋㅋ 오스칼인 줄 문자 보고 알아챈 제로델도 역시 제로델이다 싶고…!
앞편까지 오스칼 페르젠 애틋하다고 썼었는데 오젤 나오니 바로 마음이 바뀌네요…ㅋㅋ
페르젠 꺼져… 문자 같은거 보내지 마…ㅋㅋ
제로델은 사람 상대하는 직업이라 뉘인지 바로 알아차렷다고 합니다.
애니 페르젠이 타이밍의 귀재잖아요. ㅋ 오스칼이 연애 시작할 것 같을 때마다 기가 막히게 등장해서 훼방모드 놔야 진정한 페르젠이랄까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