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대학교-평화신문 공동기획>
프랑스 파리에서 지도 한장 들고 파리가톨릭대학교(Institut Catholique de Paris)를 찾아가느라 무척 헤맸다.
미국이나 우리나라처럼 큰 캠퍼스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과대학들이 이 건물 저 건물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보니 지도를 보면서 물어물어 찾아간다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
파리 젊은들의 데이트 장소로 유명한 뤽상브르 공원에서 5분쯤 더 걸어갔더니 대학본부가 나타났다.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릴케, 보를레르 같은 시인들이 한가로이 거닐면서 시심(詩心)을 떠올렸다는 넓은 뤽상브르 공원을 무거운 카메라가방을 메고 낑낑대면서 가로 질렀다.
대학본부 교정은 수도원 정원처럼 아담하고 아늑하다. 철학·신학종교·사회경제학부 등 6개 학부가 주변에 모여 있는데 백발이 성성한 노신사들이 유달리 눈에 많이 띈다. 교수가 아니라 신학을 공부하는 '늙은 학생들'이다.
신학 강의실에 평신도가 절반 가량 앉아 있는 것은 이 대학만의 독특한 풍경이다. 프랑스에 사제성소가 줄어든 탓도 있지만 대학측이 '배울 능력이 있는 사람은 오라'면서 문을 활짝 열어놓은 덕분에 뒤늦게 신학을 공부하러 온 만학도가 많다.
그러나 교수들이 만학도라고 해서 봐주지는 않는다. '배울 능력'을 인정받고 입학한 학생들이기 때문에 젊은이들과 똑같이 공부해야 한다는 게 대학측 설명이다. 한때 세계 지성사의 흐름을 주도했던 프랑스인의 학문 기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파리는 대성당 부속학교들을 모태로 중세 대학교육의 꽃을 피운 도시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는 1232년 파리를 '모든 학문을 낳는 어버이'라고까지 극찬했다. 파리가톨릭대는 당연히 그같은 명성의 중심에 있는 대학일텐데도 정문 한쪽 벽에 '설립연도 1875년'이라고 새겨진 작은 간판이 걸려 있다.
대학 역사가 129년으로 축소된 이유는 이렇다. 파리가톨릭대 전신은 파리대학(소르본대학)이고 파리대학은 노틀담대성당 부속학교에서부터 출발했다.
1215년에 정식 개교한 파리대학을 흔히 소르본대학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신학자 소르본 추기경이 세운 신학원을 중심으로 대학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소르본대학이 신학·인문과학의 꽃을 피우면서 세계 지성사에 끼친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정교(政敎)분리가 이루어지면서 반가톨릭 세력들은 소르본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했다. 계몽주의자들은 1000년 이상된 가톨릭 국가 프랑스를 이성론자(理性論者)들의 국가로 만드느라 교회재산을 몰수하고 성직자들을 구금, 처형했다.
그 폭풍이 지나간 후 1875년 소르본대학 학자와 신부들이 카흠므 수도원에 세?대학이 현재의 파리가톨릭대학이다. 파리대학(국립)은 1970년 고등교육기본법 시행에 따라 제1대학, 제2대학 하는 식으로 13개 독립대학으로 개편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파리가톨릭대 총장 바트리크 발디리니 몬시뇰은 '우리 대학은 소르본대학의 신학, 종교학 전통을 계승한 사립 명문'이라며 '지적 전통에 대한 자부심으로 프랑스 대학교육을 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발디리니 몬시뇰은 '현재 유럽 대륙 차원의 교육개혁이 진행되고 있는데 개혁내용 중 상당 부분은 이미 우리 대학에서 실시하고 있는 것'이라며 그 예로 전문가 양성과 소그룹 교육을 꼽았다.
이 대학에서 산만할 정도로 많은 전문가 과정은 눈여겨볼 만하다. 이 대학은 6개 학부(Faculty)와 16개 교육원(Institute), 18개 특수대학원, 30개 연구소로 구성되어 있다. 의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학과가 설치되어 있는 재학생 1만6000명의 종합대학이다.
그런데도 소그룹 특수과정이 더 이상 쪼개기 힘들 정도로 나뉘어져 있다. 언어교육과정만 하더라도 파리에 있는 여느 대학들은 6단계지만 이 대학은 12단계로 구성돼 있다. 특히 교육원과 특수대학원에는 교리교사부터 엔지니어까지 다양한 직종의 전문가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이 설치돼 있다.
이같은 세분화는 모든 학사행정이 학장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가능하다. 총장은 행정 최종 책임자일뿐 입학, 졸업허가까지 학장 결제로 끝난다. 세분화의 또다른 비결은 전문 교육원들과의 연합이다. 전문 교육과정을 갖고 있는 일반 교육원도 서로 이해관계가 맞으면 파리가톨릭대 일원이 될 수 있다. 대학측이 교육원을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필요에 의해 연합하는 것이다.
교정에서 만난 유학생 이영춘(서울대교구, 역사신학 박사과정) 신부는 '인상적인 것은 한국 대학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강의실 분위기'라고 말했다.
'교수가 10분 강의하고 나머지는 학생들이 토론하는 철저한 소그룹 토론식 강의다. 발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 생각이다. 발표를 장황하게 하면 교수가 말을 끊고 '그렇다면 자네 생각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책을 읽고 레포트를 써도 요약은 1장, 본인 생각은 2장을 요구한다.'
이는 프랑스 대학입학자격시험 바칼로레아(Baccalaureat)에서 논술시험(철학)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프랑스 입시제도 연장선상이다. 이 신부는 '논리력과 창의적 사고가 프랑스 학문 전통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파리가톨릭대에서 신학, 특히 교리교수 분야는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다. 현재 한국 유학신부 상당수가 그 분야를 공부하고 있다. 교리교수법이 강세인 이유는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 있던 프랑스 식민지의 종교교육과 관련이 있다. '어떻게 하면 교리를 쉽게 가르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교리교수법이 발달했다.
이문희 대주교, 이병호 주교, 권혁주 주교 등이 이 대학 출신이다. 현재 서울대교구 이영춘·이재정 신부, 수원교구 김승부 신부, 대구대교구 한영수 신부, 부산교구 강헌철 신부, 광주대교구 조진무 신부, 안동교구 이영길 신부, 원주교구 윤종민 신부, 춘천교구 민상영 신부 등 한국신부 16명이 수학 중이다.
■ 인터뷰=총장 바트리크 발디리니 몬시뇰 발디리니 몬시뇰은 파리가톨릭대의 명문 비결로 국제적 개방성, 이론과 실용성의 접목 2가지를 꼽았다. 또 대학은 '연구와 사색의 장(場)'이라며 인문학 전통을 강조했다.
-교정에 외국 유학생이 많아 보이는데. '100여개 국가에서 젊은이들이 찾아온다. 신학부에는 절반이 유학생이다. 그래서 신학부 교수들은 세계, 특히 아시아를 알아야 한다면서 지난해 터키를 방문했다. 한국과 베트남도 방문할 계획이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 안에서 참된 인간을 형성하는 것이 우리 목표다.'
-프랑스 가톨릭계 대학 현황은. '리옹가톨릭대, 앙제가톨릭대 등 5개 종합대학이 있는데 파리가톨릭대가 대표성을 띤다. 며칠 전 5개 대학 총장들이 만나 중요한 합의를 했다. 석사와 박사 과정 사이에 마스터(Master) 프로그램을 신설하기로 한 것이다. 전문성 강화와 교류협력 활성화는 물론 5개 대학이 한 대학처럼 움직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인문학 전통과 위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 대학은 신학, 인문학, 과학기술 학문 등 크게 3개 축으로 형성돼 있다. 교수들과 학생들은 인문학의 痔岵凰育?자랑스럽게 여긴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도 오히려 높다. 중요한 것은 이상과 현실, 이론교육과 실용교육의 적절한 조화다. 아울러 가톨릭계 대학은 인간과 사회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학생들을 소그룹으로 나눠 부모가 자녀를 가르치듯 교육시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학박사인 발디리니 총장은 1982년부터 대학에 몸담고 있으며 현재 프랑스 가톨릭대학교육연합회장직을 맡고 있다.
(사진설명) 1. 아담한 대학 교정에는 다양한 인종의 유학생과 백발이 성성한 만학도로 붐빈다. 1792년 프랑스 혁명정부는 공민헌장에 선서를 거부하는 신부 114명을 교정 바로 옆 카흠므 지하성당에서 처형했다. 2. 프랑스의 지적 전통을 상징하는 파리가톨릭대 입구. 3. 안식년 중인 전 인천가톨릭대 총장 이찬우 신부(앞줄 오른쪽에서 3번째)와 파리 유학 신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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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태오 신부님이 공부하시던 파리 가톨릭 대학교가 신문에 실려 있기에 가져왔습니다. 공부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커집니다.
좋은 기사 감솨합니다^^* 만학도들이 부럽군요..
벌써 머리가 하얗게 변하셨네요...존경하옵는 이 신부님...아담해보이는 분위기의 신학교 모습과 철저한 토론식 강의가....동행님 고맙습니다^^*
이상하게 동행님 글보면 옆에서 목소리를 듣는듯합니다.항상 느껴지니 돼 일까요?넘 친근감을 느껴서일까? 글 잘읽었어요.
파리 대학교도 볼수 있으니.. 영광이네요 동행님 감사해요
미카엘라님, 그렇지 않아도 멋진 음악 메일을 보내드리려고 하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어요. 엔야의 노래를 꼭 보내드리고 싶어요.
아, 제 모교가 이렇게 평화신문과 가사방에 뜨니 넘 감개무량합니다. 10여년 전 파리 가톨릭 대학에서 공부하던 시절이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릅니다요.
동행님의 적극적인 홍보,나눔으로 가사방이 훈훈해졌습니다. 이 분위기 계속 유지되는거죠?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눈밭을 하루종일 서성였던 솔방울 다녀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