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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 소림화상 제6권 제40장
제 40 장. 대인대용의 아들
방문이 열리자 들어온 사람은 바로 이 객점의 점원이었다.
좌려선은 공연히 가슴졸이고 있다가 막상 들어온 사람이 점원이라는 사실을
알자 일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떠올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정중한 표정으로 묻는 점원을 힐끗 주시한뒤,좌려선은 가볍게 웃으며 심옥산
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체 그는 무엇 때문에 불렀죠?]
심옥산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실은......우리 운랑은 아까 주루에서 별로 식사를 하지 못해서,마침 선매도
왔고 해서 저녁상을 한상 차리려는 거야.]
좌려선은 심옥산이 우리 운랑이란 표현을 쓰자 왠지 다소 새침한 표정을 지었
다.
그녀는 문득 자신도 모르게 질투감을 느낀 것이었다.
허나,
그녀는 곧 그런 마음을 지워버리고 웃음을 띄웠다.
심옥산은 이어 점원에게 몇가지의 고급요리를 시킨 후에 다시 질문을 던졌다.
[혹시 이 객점에 빈방이 남아있지 않나요?]
점원은 즉시 대답했다.
[예,마침 요 옆방이 비어 있습니다.그럼 그 방을 드릴까요?]
심옥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그렇게 해주세요!]
점원이 인사를 하고 물러가자,좌려선은 궁금한 듯 다시 물었다.
[대체 또 하나의 방은 무엇하려는 거죠?]
심옥산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선매는 오랜만에 우리와 만났으니 한밤중에 일행에게 돌아가기가 어려울꺼야
.그래서 내가 방을 하나 더 마련한거야.]
[......]
좌려선은 그 말을 듣고 쉽게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 곰곰 생각하는 듯한 표정
을 보였다.
그것을 보고,
심옥산이 좌려선에게 질문을 던졌다.
[참,아까 선매가 운지라는 아가씨에 대해서 얘기를 했었는데,혹시 그 낭자에
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인가?]
좌려선은 문득 생각에서 깨어난 듯 대답했다.
[예,그녀는 숲속에서 천산검문의 새 문주인 종리천파에게 당할뻔 했는데 우리
가 나타나서 극적으로 구해주었죠.혹시 언니와 만난적이라도 있었나요?]
좌려선은 백리운과 심옥산의 표정을 보고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심옥산은 잠시 차분하게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음......우리는 원래 그녀와 셋이서 주루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운랑이
동심각 소각주와 함께 나가게 되었지.그 후에,얼마 지나지 않아서 종리소협이
나타났었는데 그는 신녀문주의 명이라고 하면서 그녀를 데려가는거야.나는 조
금 걱정을 하면서도 혹시나 하고 있었는데 정말 그렇게 될 줄은 몰랐었어.]
좌려선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받았다.
[그러니까 그 종리천파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짐짓 사부의 명이라고
속여서 그녀를 그 숲속으로 유인했었던 것이로군요?]
심옥산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좌려선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째서 신녀문이 그런 작자와 함께 동행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군요.사람의
속은 겉으로는 모른다더니......우리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그 인면수심의 작
자에게 순결한 하나의 꽃봉오리가 시들어버릴뻔 했었으니 실로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몰라요.]
이어,
그녀는 고개를 돌려 백리운에게 물었다.
[당시는 미처 물어보지 못했었는데,백리공자께서는 어째서 그런 작자를 그냥
달아나게 내버려 두셨었죠?만일 나혼자였다면 결코 가만두지 않았을 거예요.]
백리운은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모든 것은 인연에 따라 움직여지는 것이오.내가 굳이 손을 쓰지 않아도 그는
저절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니 공연히 상관할 것이 뭐가 있겠소?]
[......!]
좌려선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심옥산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요?그녀는 용모도 아름답고 성품도 훌륭하여 비범한 인
재인데,마침 백리공자를 좋아하고 있는 것도 비슷하고 하니 장래에 우리의 동
생으로 삼아버리는 것이?]
이것은 물론 좌려선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그저 말한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말을 끝내고 나자 마치 그것이 함께 백리운의 세 부인이 되자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에 좌려선은 순간 얼굴이 절로 붉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심옥산은 담담히 웃으며 그녀의 말을 받아주었다
[물론 좋은 일이야.하지만 모든 일은 역시 인연의 흐름에 따르는것이 좋을 거
야.]
......
이때,
마침 방문이 열리며 점원들이 음식들을 날라왔기 때문에 그들의 대화는 잠시
중단 되었다.
점원들이 빠르게 탁자위에 음식들을 가득 차려놓고 이어 옆방의 열쇠를 심옥
산에게 건네주고 물러가자,
세 사람은 함께 즐거이 먹고 마시며 다시 얘기를 시작했다.
좌려선이 입을 열었다.
[참,두분은 무림맹의 그 소식을 들으셨나요?]
심옥산은 미소하며 물었다.
[무슨 다른 소식이라도 있나?]
좌려선이 눈빛을 빛내며 대답했다.
[무림맹의 계획이 갑자기 급진전 되었다는 거예요.들리는 말에 의하면 맹주가
이미 전부터 적도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는데,드디어 서로간의 생각이 하
나로 모아졌다는 거예요.무림맹은 그들과 내일 정오에 구궁산에서 건곤일척의
대결을 갖기로 했어요.]
......!
-내일 정오의 대결전!
이것은 실로 세인의 상상을 뒤엎는 놀라운 사태의 진전이 아닐수가 없었다.
불과 오늘 정오에 무림맹을 결성하고 바로 다음날 정오에 건곤일척의 대격전
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전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다소 놀라는 심옥산의 표정을 보며 좌려선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것은 오늘 회의가 끝난 후에 연락이 전해짐으로써 긴급회의를 소집한 끝에
결정된 사항이라고 해요.바로 그것 때문에 오늘밤부터 군웅들의 대이동이 시
작될 거예요.]
심옥산은 가볍게 아미를 찌푸렸다.
하긴,
이러한 무림의 혼란은 빨리 끝날수록 좋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왠지 불길한 느낌이 전해져 오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고개를 돌려 백리운의 얼굴을 보니,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지금도 여전히
담담한 신색으로 조용히 앉아 있었다.
심옥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맹에서 결정한 사항이니 잘되어 가겠지!]
좌려선도 뭔가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끼는 듯 다소 아미를 찌푸리며 다시 말했
다.
[이치적으로 따져본다면 당연히 우리 무림맹 쪽이 유리해요.하지만 그것을 뻔
하게 알면서도 적도들이 무엇때문에 그 격전에 응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남
아요.아무래도 뭔가 술수가 있겠죠?역시 우리도 그곳에 가보는 것이 좋을 거
예요.]
이어,
좌려선은 백리운에게 시선을 돌려 물었다.
[당신도 우리와 함께 그곳에 가실 것인가요?]
백리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가기로 합시다.]
좌려선은 백리운의 허락을 얻어내자 매우 기쁜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심옥산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좌려선에게 화제를 돌려 물었다.
[그건 그렇고 선매,혹시 삼년전에 우리가 이 양양성밖에서 보았었던 그 가마
속의 미소녀가 누구인줄 알아?]
좌려선이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깜빡 잊었었는데,그녀가 대체 누구였죠?]
심옥산은 백리운을 돌아본 다음에 미소하며 대답했다.
[바로 그녀는 만화교의 소군주인 화령 음보보야.]
백리운은 이미 심옥산에게 음보보에 관해서 얘기를 해준바가 있었다.
좌려선은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인가요?그렇다면......?그녀도 아마내일 구궁산에 나타나겠군요?]
그녀가 이렇게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음보보는 바로 그녀들 두 사람과 함께 세상에서 천하삼미로 불리우는 절세미
소녀였고,
게다가 삼년전 그 뒤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었을 것인지 눈에 선했기 때문이
었다.
심옥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럴지도 몰라.하지만 그녀는......이미 우리의 친구야.]
좌려선은 즉시 심옥산의 어조로 보아 보다 확실하게 모든 것을 알수가 있었
다.
그녀는 곧 웃으며 대꾸했다.
[잘 됐어요!두분의 친구라면 바로 저의 친구가 아니겠어요?]
심옥산은 미소하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마워.그녀는 나이가 우리 두 사람보다 어리니 아마도 셋
째동생쯤 될거야.]
좌려선은 웃으며 말을 받았다.
[언니는 너무 욕심이 많으시군요,또 한명의 동생을 거느리려고 하다니!]
심옥산은 다소 안색을 붉히며 미소했다.
[그래......하지만 원래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을 어떻게 하겠어?]
......
좌려선은 심옥산의 담담한 어조에 뭔가 심상치 않은 뜻이 서려있는 것이 아닌
가하고 다소 의아해졌다.
대체 심옥산의 의도는 무엇일까?
그 뒤로,
좌려선과 심옥산은 서로의 집안과 강호의 사정,그리고 풍물이나 그 밖의 사소
한 일에 관해서 얘기를 나누었고,
백리운은 주로 듣는 쪽이었다.
그렇게 식사를 끝나고 나자,심옥산은 다시 점원을 불러서 탁자를 치우게 하고
는 좌려선과 함께 새로 예약한 옆방으로 들어갔다.
* * *
점원들이 모두 물러가고 방안이 다시 조용해지자, 백리운은 욕실에 들어가서
간단하게 목욕을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의외에도 방안에는 이미 한사람이 언제부터인가 나타나 그를 기다리고 서 있
었다.
바로 심옥산의 아버지 백리운의 장인인 심원이었다.
아마도 그는 객방의 넓은 창문을 통해 날아 들어온 것 같았다.
[장인어른께서 오셨군요!일찍 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심원은 공손히 인사하는 백리운을 향해 자애롭게 웃으며 담담히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닐세,나도 방금전에 왔으니 상관할 것 없네.]
이어,
심원은 다소 방안을 서성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도 이미 들었는지 모르지만,바로 지금 군웅들이 구궁산으로 향하고있네.
나는 자네를 찾기위해 다소 시간을 지체한 셈이지.그래서 시간이 없어서 다만
몇마디의 말만 하고 곧장 떠나겠네.산아에게는 자네가 대신 말해주게.]
[......]
심원은 문득 고개를 들어 백리운을 주시하며 미소하며 물었다.
[참,자네가 이미 산아의 할아버지를 뵈었다고 하더군.그래 그 분의 인상이 어
떠하시던가?]
백리운은 공손히 대답했다.
[생각했던대로 매우 훌륭한 분이셨습니다.저는 백맹주에게 불려갔었다가 우연
히 그분을 뵈었는데,매우 친절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께서는 자네에 대한 칭찬이 대단하셨네.꼭 고인을 뵌듯한 기분이었다고
하시더군.]
(......!)
백리운은 갑자기 안색이 다소 변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이미 알고 계셨었군요!]
심원은 담담히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사실,난 이미 삼년전에 자네를 처음 보았을때부터 자네를 알아보았었
지.내 그래서 자네에게 소림사에 정식으로 입문하지말라고 했었던 것이었네.]
[......]
백리운은 잠시 고개를 들어 천정을 바라보았다.
그렇다!
기실 백리운의 백리라는 성은 올바른 것이 아니라 다만 그가 스스로 지어낸
가명에 불과했다.
-백군산!
과거 십삼년전의 동심각의 각주였던 대인대용의 무림거목,백군산의 외아들이
었다.
당시 백군산은 성수방의 소공녀이자 심원의 누이동생이었던 심소혜와 사랑에
빠져서 결혼하여 백운상이라는 이름의 총명준수한 사내아이를 하나 얻었었는
데,
백운상이란 아이는 바로 다름아닌 백리운,그였다.
사건이 일어나던 해-,
백군산은 사천성의 어느 심산에서 용암이 분출되어 주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다섯 살난 외아들인 백운상과 부인 심소혜를 대동하고 용암을 진압하기 위해
용감하게도 그 화산으로 향했었다.
그런데,
대단한 그의 능력으로 보아 그것은결코 무리한 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로 불의의 일을 당하여,
세 사람 모두다 용암속에 빠져 죽고 말았고,백군산의 동생인 백군악이 그 뒤
를 이어 차대의 동심각주에 오르게 되었다.
물론 이 이야기는 당금의 세인들이 알고 있는 소문에 불과했다.
실상은 그때 부모의 힘에 의해서 마침 용암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무극신화
속으로 던져져서,
비록 얼굴은 온통 심하게 화상을 입어 추악하게 변했지만 놀라운 능력으로 다
시 살아난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그가 바로 백운상,아니 백리운이었던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백리운이 어렸을 때부터 석문산의 심산에서 홀로 살아오게 되었
던 근본적이 이유였고,
또한 그것은 강호의 숨겨진 비화였다.
그렇다면 당시 백군산등 삼인을 용암속에서 죽게 만들었던 사람은 과연 누구
였을까?
하지만,
과거의 생각하기도 싫었던 기억을 잠시 떠올리는 백리운의 표정에는 이제 어
떠한 음영도 일지 않았고 그저 담담했다.
심원은 그런 그의 안색을 살피며 다시 조용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당시 나는 그 사건이 매우 괴이하다고 여겨져서 용암이 가라앉은 부근에서
여러해동안 조사를 했었는데 단서를 찾지 못하고,마침내 자네를 만나게 되어
매우 기뻤었던 것이었네.]
그러니까,
말하자면 심원은 백리운의 외삼촌인 셈이고,심옥산은 외사촌인데 중원에서는
외사촌간의 혼인은 성립되므로,
심원은 그 선친에 이어 백리운도 성수방주 가문의 딸인 심옥산과 짝지어 주었
던 것이었다.
백리운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심원은 눈빛을 깊숙히 빛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필시 자네가 그 사건의 내막을 자세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네.헌데 자
네는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없는가?]
백리운은 잠시 생각한 후에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 일에 관한한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습니다.]
심원은 눈빛을 번쩍 빛냈다.
[그렇다면 자네는 전혀 복수를 하지 않을 셈인가?]
백리운은 담담히 미소하며 대답했다.
[복수라는 것은 부질없는 짓입니다.저는 그가 앞으로 실수없이 일을 잘해나가
기를 바랄뿐,과거의 일로 그에게 해를 가하지는않을 생각입니다.아마도......
그것이 또한 선친의 뜻이었을 것입니다.]
[고인의 뜻이라고?......]
심원은 잠시 망연하듯 중얼거리다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가 만일 과거와 같은 짓을 되풀이 하거나 무림에 악영향을 미친다
면 그때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백리운은 담담히 대답했다.
[그것은 다만 인연의 흐름에 맡길 뿐입니다.세상에는 끝나지않는 잔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
심원은 마치 둔기로 뒷머리를 한차례 당한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다가 문득
깊게 탄식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군!......자네는 역시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도 더욱 훌륭한 사람 같으이
.자네는 지난 삼년간 실로 많이도 달라졌었구먼!]
백리운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심원은 고개를 내저었다.
[결코 죄송한 일이 아닐세.오히려 아주 기뻐해야 할 일이지.자네는......아무
리 보아도 자네의 선친보다도 더욱 훌륭해 보이네.]
심원은 백리운의 손을 잡아주었다.
백리운은 가볍게 미소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거야 과찬이지.부모보다 무공이 더욱 뛰어나다고 말해서는 안되는 일
이니까.그건 그렇고......자네는 내일 정오에 구궁산에 가볼 생각인가?]
심원은 어느새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현실의 일을 의논하고 있었다.
역시 믿기지 않을 대단한 수양이라고 말할수가 있었다.
백리운은 담담히 미소하며 대답했다.
[예,가볼 생각입니다.]
심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 하겠지.내가 생각하기에도 이번의 격돌은 뭔가 심상치 않은데가 있는
것같네.하지만 유사시에는 자네는 내 딸을 데리고 함께 자리를 피하도록 하게
,내 말뜻을 알아 듣겠는가?]
심원은 지금 백리운이 나서봐야 별로 효과가 없을 것이란 말을 하고 있는 것
이었다.
백리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심원은 그의 대답이 매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놓았다.
[좋네,그럼 내일 그곳에서 보세나!나는 바빠서 이만 가겠네.]
말이 떨어지자,
심원의 신형은 어느새 반쯤 열려져 있는 창문사이로 빠르게 사라져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 * *
백리운은 창문을 닫고 침상위에 앉아서 심옥산을 기다리며 눈을 감고 명상에
들었다.
그때,
문득 방문이 열리고 발자국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웬지 이 사람의 발걸음과 호흡소리는 매우 불안해보였다.
백리운이 눈을 뜨니,
뜻밖에도 방안에 들어온 사람은 심옥산이 아니라 바로 좌려선이었다.
헌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지금 그녀가 걸치고 있는 옷은 속이 거의 다 비쳐
보이는 아름답고 투명한 나삼뿐이라는 것이었다.
은은한 방안의 불빛아래 그녀의 아름답고 거의 뇌살적인 나신이 그대로 백리
운의 눈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좌려선은 백리운의 시선이 자신의 몸에 와닿자,다소 떨리는 음성으로 겨우 입
을 열어 해명을 했다.
[언니는......옆에 얻은 방은 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녀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했어요.저에게......이 사실을 알리라고......]
백리운은 이미 그녀의 말뜻과 심옥산의 의도를 파악할 수가 있었다.
말하자면,
언젠가 심옥산이 애기했었던 대로,그녀는 좌려선을 백리운의 처로 만들기 위
해 스스로 옆방에 몸을 피하고,
대신 그와 좌려선을 동침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백리운은 가볍게 탄식한 후에 조용한 음조로 입을 열어 좌려선에게 물었다.
[이 일을 그대는 후회하지 않겠소?]
좌려선은 그 말을 듣자 비로소 약간 용기가 되살아났다.
그녀는 원래 강하기 짝이 없는 여인이었는데,백리운을 짝사랑하고 있다 보니
마음이 절로 약해졌었던 것이었다.
좌려선은 다소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저는 이 일을 결코 후회하지 않겠어요.저는 믿어요,언니들을 모시고 당신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인생 최고의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것을......저는 무엇
보다도 당신을 사랑해요.]
좌려선이 백리운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백리운도 이미 알고 있었던 일이었
다.
하지만,
그녀가 무심코 말한 언니들이란 대목만은 실로 의미심장한 것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을 것이었다.
백리운은 잠시 그녀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고요한 신색으로 대답했다.
[나 역시 그대를 부인으로 맞아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조금의 후회도 하지 않
겠소.]
좌려선은 그 순간 실로 거대한 기쁨에 가슴이 벅차서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러나,
그녀는 시종 침착했다.
우선 백리운을 향해 그 자리에서 날아갈 듯이 대례를 올린 연후에,
침상으로 다가와서 그의 손에 입을 맞추고 이어 천천히 그의 옷을 벗겨주었
다.
백리운은 몸을 일으켜서 그녀의 시중을 받아 옷을 모두 벗은 다음에 다시 그
녀의 나삼을 벗겨 주었다.
......
그들은 하나같이 피가 들끓는 젊은이들이었기 때문에 방안은 금새 뜨겁게 달
아오르는 듯 했다.
백리운은 곧 좌려선의 나신을 부드럽게 안아주고 그녀의 입술에 조용히 입맞
춤을 해주었다.
좌려선의 몸은 백리운의 손길이 닿자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백리운은 곧 그녀의 나신을 안아들고 침상위로 올라 함께 누웠다.
[나 역시 당신을 깊이 사랑하겠소.]
백리운의 부드러운 이 말에 좌려선은 일시 영혼 깊숙히 충격을 받고 한없이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
그렇게,
뜨거운 하룻밤은 소리없이 흘러갔다.
실로 아무런 후회도 유감도 없는,지극히 만족스럽고 행복이 가득찬 그리고 앞
날의 찬란한 행복을 예고하는 하룻밤이었다.
욕정의 행위가 성결스럽게 보이기까지 하는......
* * *
새벽이 되어 창밖이 훤하게 밝아오기도 전에 좌려선은 이미 사랑하는 사람의
품속에서 일어나 옆방의 심옥산에게로 돌아갔다.
백리운이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에는 그의 방안에는 이미 심옥산과
좌려선이 단정한 차림새로 정답게 마주 앉아서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녀들이 주고받는 얘기의 소재들은 과거 강호의 영웅협객들에 관한 무용담들
이었고 부담이 없어서 마치 아름다운 새들이 지저귀는 것과도 같았다.
그러다가,
백리운이 몸을 일으키자,즉시 두 사람이 함께 다가와서 옷을 가져오고 입혀주
는 등의 세심한 시중을 들었다.
백리운은 심옥산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간밤에 잘 지냈소?]
심옥산의 얼굴에는 단 한점의 그늘이나 나쁜 감정이 깃들지 않았다.
그녀는 옷을 입혀주며 조용히 웃더니 대답했다.
[저는 잘 잤어요.그리고......당신께서 저의 청을 들어주신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어요.]
백리운은 담담하게 미소했다.
[고마운 일이오,나는 두 사람이 있어서 매우 행복하오.]
[......]
좌려선은 이때 시종 얼굴이 붉어진채 고개를 거의 들지 못하고 있었다.
헌데 바로 그때,
느닷없이 이 아침의 아름다운 평화를 깨는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세차게 들
려왔다.
쾅,쾅,쾅......
좌려선이 놀라 나는 듯이 달려가서 방문을 열어보았다.
문밖에는 뜻밖에도 백의에 얼굴에는 면사를 쓰고 있는 신녀문의 문주,운백봉
이 다소 초조한 태도로 서 있었다.
[무슨 일이죠?]
좌려선이 그렇게 묻자,
운백봉은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백리운을 주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대에게 급한 볼일이 있어서 찾아왔어요.]
보아하니 그녀에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백리운은 그녀를 마주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지 말씀하십시오.]
헌데,
운백봉은 고개를 저었다.
[우선 그대에게 한가지 확인하기 전에는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
심옥산과 좌려선은 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하고 매우 기이하
게 생각했다.
운백봉은 그녀들을 한차례 돌아본후에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그대는,만일 사람이 어떤 이유로 해서 죽어간다면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어
떠한 일이라도 할 수가 있나요?]
백리운은 담담하게대답했다.
[필요하다면 도의에 어긋나지 않고 가능하다면 하겠습니다.]
운백봉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매우 필요하고 또한 도의에 어긋나지 않으며 오직 그대만이 가능한 일이예
요.]
심옥산과 좌려선은 그 말을 듣고 다소 놀랐다.
그렇다면 혹시 지금 운백봉의 주변에 누군가 죽어가는 사람이 있기라도 하다
는 말인가?
백리운은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무슨 일입니까?]
운백봉은 고개를 흔들었다.
[우선 나를 따라서 함께 가면서 얘기해도 늦지 않아요!]
말과 함께,
그녀는 즉시 몸을 돌려서 신법을 펼쳐 밖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비록 이미 옷차림을 단정하게 갖춘 후여서 별다른 문제점은 없지만,백리운 등
은 그녀의 뒤를 쫓아가면서 다소 의아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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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