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필선언 해놓고선 또 쓰네요. 왜냐면... 오아랑 쓸려고...ㅋㅋ
절필선언 = 금주금연다이어트선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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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부서에서 이상한 구매건을 발견했다. 매해 수의계약으로 계약을 갱신하는데, 10%씩 자동으로 금액을 올리고 있었다.
자르제 컴퍼니는 규모가 크지 않다. 대부분 비상장 법인이고 지주사의 목적 자체가 따로 있다보니 전결규정이 까다로운 편은 아니다. 하지만 실무자 전결은 5천 유로, 그 이상은 매니저인 내 승인하에 집행이 이루어져야 한다.
계약한 회사는 '코리에'라는 규모가 작은 잡품 조달업체였다. 카트리지에 들어가는 소모품 일습이고, 물품 자체는 과한 비용이 아니지만 금액은 딱 실무자 전결에 맞춰서 쪼개기 계약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계약 담당자는 니콜라스 라모트였다.
나는 라모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경영지원부서 총괄 매니저인 오스칼도 마찬가지이다. 니콜라스는 자르제 사장보다 더 윗선, 그러니까 카페 가 인맥으로 들어온 사람이라 우리도 어찌할 수가 없는 인간이다.
나는 니콜라스를 불렀다.
"니콜라스. 저는 동일한 업체에 여러 건의 수의계약이 반복 집행되는 것이 마음에 걸리네요. 여기에 대해 브리핑해주시죠."
니콜라스는 교활한 웃음으로 빙글빙글대며 어설픈 변명을 했다. 나는 프랑스 공화정을 존중하지만 가장 짜증나는 부분은 해고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나도 해고되지 않지만 내 옆의 미친 놈도 해고할 수 없다. (심지어 나는 매니저여서 언제든 해고될 수 있다) 아무튼 나는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해서 (이건 내 장점이다. 덕분에 나같은 공돌이도 행정 업무를 하며 먹고 살 수 있다) 니콜라스에게 말했다.
"코리에와의 계약은 연 12회 이상 반복계약되니 쪼개기로 오인될 여지가 있습니다. 앞으로는 경쟁입찰을 하던가, 수의계약을 하더라도 연간 계약을 해서 결재권을 상향해주세요. 다음달부터는 코리에의 계약은 저에게 올리셔야 합니다."
니콜라스의 전적은 규정상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처벌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향후 일어날 비리는 차단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그날 밤 간략하게 경영윤리위원회에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코리에의 대표이사라는 사람이 나에게 연락해왔지만 나는 만날 이유가 없다며 거절했다.
문제는 다음 주에 일어났다.
"앙드레, 외부 미팅 요청이 들어왔어요."
"누구신가요?"
"'아스트롤로지'라는 회사의 니콜 올리비에인데요. 검색해보니 홍보회사네요. 제안서를 들고 왔다는데요."
보통은 메일로 먼저 제안서를 받아보고 미팅하는 것이 일반적인 루트지만, 이 니콜 올리비에라는 사람은 내가 만나줄 때까지 카페테리아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해서 방법이 없었다. 나는 매너 없는 태도에 짜증이 났지만 급한 메일을 처리하고 서둘러 카페테리아로 내려갔다.
외부인도 출입할 수 있는 카페테리아는 업무시간에는 미팅 용도로 더 많이 사용된다. 탁 트인 공간이지만 조용하게 회의할 수 있는 문과 벽이 달린 회의실도 있다. 오전이지만 회의나 농땡이로 카페테리아는 적당히 붐볐다. 나는 니콜 올리비에가 누구인지 몰랐지만, 카페테리아 한가운데의 테이블에 앉아있는 여자가 나를 보고 일어섰다.
니콜 올리비에는 헤진 가을 코트에 유행 지난 통굽 구두를 신고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었다. 뱅뱅 돌아가는 두꺼운 안경 뒤의 옅은 푸른색 눈은 초점이 없었다. 도저히 홍보회사 직원이라고 볼 수 없는 차림새였다. 나는 이 여자에게 제안서가 아닌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이미 눈이 마주친 이상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예의바르게 별과 천체도가 모양이 그려져있는 요란한 명함을 내밀었다.
[니콜 올리비에 / 행정 프리랜서]
행정 프리랜서라고 하면, 정규직을 채용하기 부담스러울 때 쓰는 사무 파견직이다.
"네 마담 올리비에. 제안서를 가져오셨다고요. 제가 어떤 일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나는 사무적인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저는 '아스트롤로지' 직원이지만 '코리에'에 파견되어 행정업무를 하고 있어요." 그녀는 작게 속삭이며 고백하듯 말했다.
"그러시군요. 저는 '코리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나는 그녀가 나를 속인 것에 무척 짜증이 났지만 표정을 바꾸지 않고 바로 명함을 되돌려주었다.
"그만 일어서겠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전법은 굉장했다. 올리비에는 울기 시작했다.
"으흐흑, 으흐흑! 앙드레!"
"네?"
"앙드레, 앙드레, 도와줘요."
"아니, 저기… 저… 목소리를 낮추시지요." 나는 너무 당황해서 어찌해야 할지 몰랐고 아마 표정에도 드러났을 것이다.
"살려주세요. 무슈 그랑디에. 저는 정규직도 아니고 외주로 계약 업무를 하고 있을 뿐이에요. 한달에 3건 이상 계약이 유지되지 않으면 잘린다고요. 계약이 끊기면 저는 일자리를 잃고." 그녀는 여기까지는 작은 소리로 나에게 말하고 한번 크게 숨을 쉬었다. 이어서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저는 젖먹이 아이와 길거리에 나앉게 될 거에요. 앙드레! 제발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그의 울음은 요란하고 우렁찼다. 카페테리아의 바리스타도, 잠시 커피 타임을 하러 내려온 직원들도 나를 둘러보진 않았지만, 나와 올리비에를 주목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 이러지 마시고…" 나는 공용 공간의 냅킨을 가져와서 올리비에에게 건내고, 또 내 손수건도 건내려다 멈칫하며 손을 멈췄다. 올리비에는 잽싸게 내 손수건을 가로채고 내 손을 잡고 더 크게 울었다.
"으흐흐흑. 제발 제 사정을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저는 눈도 잘 안 보여요, 약시라고요! 약을 먹어야 시력이 유지되어요."
"그것은 제 소관이 아닙니다. 계약하신 회사와 직접 이야기하세요." 나는 차가운 표정을 짓는데 겨우 성공하고 의자를 뒤로 밀며 일어났다. 그때 올리비에가 내 허리를 껴안았다.
"제발요!!"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 컸고 층고가 높은 카페테리아에 쩌렁쩌렁 울렸다. 이제 주변 테이블의 직원들은 대놓고 몸을 돌려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도와주세요! 제발! 우리 아이에게 먹일 분유도 없다고요!"
우리 아이라니! 나는 올리비에의 교활한 소유격 사용법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나는 단호하게 내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마담 올리비에. 저는 이만 들어가보겠습니다. 앞으로 연락하지 마세요." 나는 도망치듯 카페테리아를 떠나서 사무실로 올라왔다.
내 이야기는 순식간에 워크스페이스 메신저를 통해 전사에 퍼진 것 같다. 아랑이 메신저를 해왔으니.
-야, 너 나 놔두고 여자랑 바람났다며.
하아…
나는 아직도 이놈이 진짜 게이인지 바이인지 스트레이트인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이 녀석이 나를 좋아한다는 건데, 섹슈얼한 의미로 좋아하는 건지, 오스칼이랑 엮여 있어서 좋아하는 건지, 그냥 좋아하는 건지 파악하는 건 애저녁에 포기했다. 어쨌든 나는 지금 농담할 기분이 아니었다.
- 꺼져.
- 도대체 무슨 일이야. 너를 따먹으려던 여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욕하고 있어. 젖먹이 아기를 버렸다고.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아랑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메신저 너머로 아랑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니콜라스 그 쌍놈은 조만간에 본때를 보여줘야겠구만. 증거 잘 수집해 놔.
그의 체격과 거친 태도 때문에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랑은 일처리가 확실하다. 나는 그와 소속회사도 다르고 하는 업무도 달랐지만 그를 인정하고 그의 리더십을 존경했다. 그가 나를 좋아하는만큼이나 나 역시 그를 좋아했다. 선정적인 농담만 빼고…
-나야 따먹으려는 부위가 다르니까 봐줄 수 있지만 너의 공주님은 과연 니 바람끼를 봐줄까?
-차단한다. 미친 놈.
-얼음공주님 찬바람에 덜덜 떨지나 말라고. 어금니 꽉 깨물어라.
그의 말은 사실이다. 나는 무서웠다. 왜냐면 오늘은 오스칼과 함께 집에 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매주 수요일은 패밀리데이여서, 5시 30분에 모든 PC가 꺼진다. 나와 오스칼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오스칼 아파트와 계약된 커뮤니티 센터에서 대련을 한다. 그래서 나는 오스칼의 차를 타고 퇴근해야 한다.
나는 오스칼에게 '특별한 일'이 생기길₩ 바랬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약속을 만들까 생각했지만 후환이 두려워서 관뒀다. 5시 25분, PC가 꺼지기 직전 오스칼은 주차장에서 만나자고 짧은 메신저를 보냈다.
나는 '마담 올리비에' 사건에 대해 최대한 간략하고도 나를 변호할 수 있는 문장을 미리 준비했다. 주차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문장을 머릿속으로 되뇌면서 3분 스피치를 시뮬레이션했다.
오스칼은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나는 집에 오는 내내 조수석 의자가 살얼음판이라고 느꼈다. 혹시나 '마담 올리비에' 사건을 듣지 못한 게 아닐까~ 헛된 기대를 했지만, 그녀의 차가운 표정과 무거운 침묵이 내 기대를 부정하고 있었다.
물론 나는 대련에서 멍투성이가 되었다. 이건 불합리해! 하지만 나는 반격하느니 찔리는 쪽을 택했다. 이쪽이 편하니까!
다음날, 나는 또 데스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앙드레, 미팅 요청이 있어요."
"누구인가요?"
"아스트롤로지의 마담 니콜 올리비에 입니다."
"거절해주세요. 그분과는 더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나는 카페테리아로 내려가지 않았고 그녀가 카페테리아에서 무슨짓을 하든 내가 알 바가 아니라고 다짐했다.
점심시간, 오늘은 홍보부 매니저와 식사 약속이 있어서 근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회사 건물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정문에 선 니콜 올리비에를 발견했다.
"앙드레!"
나는 다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한번만 기회를 주세요. 제게! 네?! 제발!" 그녀는 내게 매달리며 울면서 외쳤다. 나는 이제 그녀가 뭘 요구하는지도 잊었다. 그냥 도망가고 싶었다.
나는 스마트폰에 공유되어 있는 구글 일정표를 마음 속으로 복기했다. 오늘 오스칼이 점심식사는 건물 안에서 해결하길. 만약 건물 밖에서 먹는다면 일찍 나갔기를. 늦게 나오기를. 나는 빌었다. 그리고 신은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오스칼과 눈을 마주쳤다. 나는 배교하겠다! 십자가를 밟겠다! 무신론자가 될 거다!
경비에게 요청했지만 그녀는 교활하게도 건물의 사도가 아닌 공용도로 시작점에서 나를 기다렸다. 퇴근길에도 그녀는 나를 붙들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유튜브 쇼츠나 틱톡에 올라오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할 것이다.
금요일, 나는 니콜라스를 불렀다. 그는 노골적으로 나를 엿먹이고 있었다.
"저는 코리에와 계약을 맺었고, 코리에와는 매니저님 분부대로 계약 해지 했슴다. 코리에가 어떤 에이전시와 외주 계약을 맺는지에 대해서는 제 관할이 아닌뎁쇼."
나는 턱에 힘을 꽉 주면서 패배를 인정했다. 하지만 감저을 숨기고 니콜라스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이렇게 하시죠. 코리에와의 계약은 이번 분기까지 당신 전결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분기부터는 이 이름이 나오지 않게 해주세요."
시간은 나의 편이다. 올리비에의 1인시위 따위는 무시하면 그만이다. 그 시위 방식이 일반적인 시위와는 큰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한달 후 계약이 자동 해지되면 끝날 일이다.
하지만 오늘 점심시간에 오스칼이 내게 보낸 눈빛을 다시 보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것으로 손실이 있더라도 오스칼 아버지의 손실 아닌가. 니콜라스와 달리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나같은 매니저가 알 바가 아니다. 라고 나는 자위했다.
혹시나 모를 모럴 해자드를 막기 위해 윤리경영위원회의 보고서를 업데이트했다. 코리에에 관계된 모든 인력들은 앞으로 자르제가와는 업무할 수 없게 하기 위해서. 니콜 올리비에를 포함해서.
그날 저녁, 아랑은 웃으면서 나에게 쇼츠 링크를 보내줬다.
- 마담 올리비에가 여자여서 다행이야. 남자였으면 더 큰 오해를 샀을텐데.
역시나 쇼츠에 올라와 있었다. 태그가 중국어여서 검색에 걸리지 않았을 뿐. 분명히 17층 해외사업팀의 중국인들이 올렸을 거야! 뗏놈들! 짱꼴라들! 리베르떼 텐안멘! 시진핑개객끼! 나는 공화국에서 받은 모든 평등 교육을 부정하고 인종주의자가 되어 각종 욕설을 (마음 속으로만)뱉어냈다. 다행히 오스칼은 중국어를 못 하니까 누군가가 일부러 보여주지 않는 한 모를 것이다… 라고 헛된 희망을 품었다.
나는 오스칼이 올리비에와 나 사이의 '우리 아이'에 대해 오해하는 일이 없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녀가 결코 입에 담지 않았기 때문에 말할 기회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랑에게 말했다. 아랑이 오스칼과 데이트를 했(혹은 하고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가 오스칼에게 간접적으로 전달해주길 바랬다. 결과는 알 수 없었다. 호랑이 목에 방울 달기였을지도. 아니면 호랑이에게 생선을 맡겼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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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완공식인데 주말에는 현장을 가볼까 해요 대장공주님!"
현장직에 있을 때 마지막으로 건축한 교량이 완공되었다. 오를레앙에서 베르사유로 올라오는 고속도로 옆의 소도시에 있는 작은 다리였고, 나는 설계까지만 검토했지만 지주사로 온 다음에도 그 다리는 계속 눈에 밟혔다. 부이에 가문이 주최하는 자선 바자회 때문에 완공식에 가지 못하는 게 무척 서운했다. 도대체 철골 생산하고 다리 짓는 회사에서 자선 바자회는 왜 하는지 모르겠다. 바자회에 페르젠과 마리, 그리고 제로델이 와서는 아니야! 의미없이 불필요한 행사가 싫은 거라고!
아버지는 나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싶어서 나를 지주사로 불러들였다. 나도 아버지의 부응에 기대하려고 최대한 노력했지만, 내가 경영자 체질이 아닌 것을 계속 느끼고 있었다. 나는 눈에 보이는 작은 것을 컨트롤하는 업무에 익숙하지 보이지 않는 숫자와 사람을 관리하고 전략을 짜는 재능은 없었다.
특히 바자회처럼 사무실과 서류 밖에서 일어나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데 약했기 때문에 괴로웠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돌아갈 자리가 없었지만.
나는 책상물림에 진력이 나 있었고, 아랑에게 나도 직접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앙드레에게 같이 가자고 연락했다.
가을비가 조금씩 오는 휴일, 아랑은 차를 몰고 나를 데리러 왔다. 앙드레가 조수석에 타고 있었다.
"공주님께서는 뒷좌석에 앉으셔야죠. 저희는 사귀는 사이여서 이렇게 나란히." 아랑이 기어를 놓고 앙드레의 허벅지를 더듬었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아랑은 앙드레에게만 색드립을 날린다. 앙드레는 당황하지도 않고 허벅지 위에 올린 그의 손을 고이 잡아 기어 위에 되돌려놨다.
"공주님은 미성년자셔서 P-13미만만 봐야 해."
나는 화를 냈지만 둘은 크게 웃었다. 앙드레가 나를 어린애 취급하는 것엔 진절머리가 난다. 아랑은 차를 출발했다.
"흐음, 역시 보기 좋아. 나의 아름다운 다리."
차를 세워놓고 완공된 다리를 보니 몹시 기분이 좋았다. 다리는 아름다운 강의 외관과 어울리게 작고 코티지풍으로 빈티지하게 디자인했다. 외장은 일견 아치형 벽돌로 마감되어있지만 실은 철골 구조였고, 근처에 외인부대가 있기 때문에 탱크가 지나갈 수 있게 설계되었다. 꼴보기 싫지만 탱크 바리케이트도 세웠다.
"공주님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아랑은 양손바닥을 비비적대며 웃었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며 스산해졌다. 나와 아랑은 강둑으로 내려가서 가까이서 보고 사진도 찍기로 했다. 현장에서 입는 우비를 입고 장화와 우산을 썼다.
"요즘 강 수위가 낮아서 전력 가동에 문제가 많았는데 다행이네."
나는 강둑을 바라보았다. 떠내려가는 인형을 까마귀가 발톱으로 잡아채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신도시에 연결되어 있어서 강둑을 따라 조경수와 조깅코스가 잘 조성되어 있었다.
나는 언제나 육상을 가장 잘 했고, 특히 단거리 육상을 좋아했지만 실내스포츠를 하라는 어머니의 요청도 있었고, 1:1로 상대하는 게임을 좋아했기 때문에 펜싱으로 주력 종목을 바꾸었다.
주말 새벽이나 저녁, 해가 없을 때 조깅하는 것이 나의 즐거움이었지만 올해 여름은 무척 가물었고 더웠기 때문에 밖에서 전혀 뛰지를 못했다. 나는 여름 내내 뛰지 못해 답답했다.
우레탄에 물이 슬슬 차오르고 있었다. 나는 재밌는 생각이 들었다.
"아랑, 나랑 100미터 달리기 해볼까?"
"흥! 여자랑은 대결 안합니다."
아랑은 조부모중 한 분이 사모아 출신이여서 덩치가 매우 크고 근육도 많았다. 많이 운동하지 않아도 근육이 잘 생성된다며 자랑하는 '근수저'였다. 앙드레와 팀원들은 그를 무척 부러워했고 팔뚝을 만져보며 감탄하기도 했다.
그는 모든 종류의 운동을 잘 했고 나처럼 아마추어 럭비 선수 출신이었다. 단 체격이 너무 커서인지 달리기만큼은 느렸다. 그는 여자인 나보다 느리다는 것에 자존심 상해했고, 그를 놀리는 것은 나의 단골 멘트중 하나였다. 공주님이 현장에 왜 왔냐고 비아냥댔을 때 나는 대꾸했다. "너같이 느린 남자를 만나기 위해 이 부서로 왔다."라고.
"하아, 부전승이네. 시시해라. 하지만 지금은 비가 내려서 우레탄도 질척이고, 우린 장화를 신고 있으니 허들이 많잖아. 핸디캡이 많을수록 덩치 큰 네가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해보니, 여자랑은 대결 안 하지만, 공주대장님은 여자가 아니니까 대결해도 되겠군요."
아랑은 웃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빗줄기가 거세질수록 우리는 큰 소리로 외쳐야 했다.
나는 내가 쓴 우산을 앙드레에게 맡겼다. "앙드레, 결승선에 서서 카메라로 빛을 비춰." 나는 아랑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게 출발 신호야!"
하지만 앙드레는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난 들어가있을래. 우비도 입지 않았고."
"무슨 소리, 네가 심판을 봐줘야지." 나는 앙드레의 이마를 툭 쳤지만 앙드레는 내 손을 치웠다.
"둘이서 알아서 해. 난 차 안에 있을테니. 트랙에 물 차기 전에 올라와야 해." 앙드레는 운동을 좋아하고 잘 하지만, 대결은 질색했다. 그래서 그와의 펜싱은 정말 지루하다. 그가 강둑을 올라가는 것을 보고 나는 뒤돌아섰다.
"자, 시작하겠습니다. 심판은 저입니다. 출발 신호도 저입니다."나는 명랑하게 말하며 아랑을 출발선으로 데리고 갔다. 아랑은 빙글빙글 웃었다. 장애물이 많아질수록 그에게 유리하니까. 하지만 육중한 몸이 과연 내 다리를 이길 수 있을까? 우리는 후드에 붙은 고무줄을 당겨 벗겨지지 않도록 단단히 조였다. 나는 방수케이스가 씌여진 스마트폰을 우산 밑에 내려놓고, 알람을 세팅했다.
"5, 4, 3, 2, 1"
따르르르릉! 알람소리와 동시에 스프린트했다. 처음 15미터는 몸을 숙인채, 그리고 서서히 올린다. 이제 팔에 힘을 푼다, 어깨를 유연하게 하고, 고개를 숙이면 안 돼. 턱을 들어서도 안 돼. 보폭을 넓히고 허벅지를 높게!
장화는 생각보다 걸리적거리고, 빗줄기가 눈앞을 가렸다. 트랙에 고인 물이 튀어 우비 안으로 들어온다. 내 이마를 때리는 빗줄기가 옆으로, 뒤로 위로 흐른다. 나는 행복했다. 나는 살아있는 것 같았다.
-쿠당탕
아랑이 큰 소리를 내면서 엎어졌다. 나는 고꾸라질 뻔 했지만 천천히 속도를 늦췄다가 아랑에게로 돌아왔다.
"괜찮아?" 나는 걱정되어서 무릎을 꿇고 그를 들여다보았다. 그는 아프다기보다는 수치스러움에 얼굴을 찌그러뜨렸다.
"아, 괜찮아요. 공주대장님이 이겼네요."
"나도 결승선까지는 가지 않았어. 괜히 뛰자고 했나봐. 아무도 없는 트랙을 보니까 기분이 좋아서 그만…"
나는 그를 부축하려고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때 아랑이 그의 어깨를 잡은 내 손위에 자신의 두툼한 손바닥을 올려놓았다.
나는 의아해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구릿빛 얼굴은 빗물로 뒤덮여 있지만, 눈을 강렬하게 빛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체격도 컸지만 눈, 코, 입 이목구비도 투박하고 강했다. 내 손을 으스러지게 쥐는 그의 손바닥도 두꺼웠다. 얼굴은 전혀 내 취향이 아니었고 나는 그를 한 번도 성적인 대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프랑소와즈, 너의 취향은 어떤 사람이니? 각진 턱에 콧대가 높고 색소가 옅은 달콤한 미소의 북유럽 남자가 네 취향인 거니? 아니면 너의 첫 남자가 페르젠이기 때문에 네 취향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거니?'
나는 실험해봐야했다. 내가 어떤 남자에게 끌리는지 알아야 했다. 마치 새끼 오리의 각인처럼 페르젠으로 각인된 내 취향을 바꿀 수 있다면, 다른 남자와 정상적인 사랑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너, 키스 잘 해?"
"????" 아랑의 얼굴 전체에 물음표가 떠올랐고, 이윽고 얼굴이 시뻘개졌다. 덩치 큰 남자의 짙은 피부색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보자 나는 섹슈얼한 자극을 느꼈다. 그가 섹시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어떤 욕구가 느껴졌다. 그가 근육이 많고 남성적인 외모였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운동 후 도취감에 빠져서일지도 모른다.
"글쎄. 나랑 해본 여자들은 내가 키스를 잘 한다고 다들 칭찬했어."
"그렇구나." 나는 그가 입은 우비의 후드 테두리를 만지작거렸다. "많은 여자들과 키스해봤니?"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많이." 아랑은 거의 으르렁대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열기가 올라와 수증기가 증발하는 것 같았다.
"그렇구나." 나는 왠지 그의 인내심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많은 남자와 키스해본 적이 없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겠지.
"내가 최근에, 음… 남자랑 키스를 좀 해봤는데, 이 남자가 키스를 잘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당최 몰라서 말이지. 비교해보고 싶어..." 그 순간 아랑은 후드를 젖히고 나를 거칠게 끌어안았다. 이것은 내가 바라던 바였다.
아랑은 입술이 두툼했고 혀도 마찬가지였다. 페르젠보다 제로델보다. 나쁘지 않았다.
내 혀는 그의 윗니를 훑었고, 아랫니를 훓었다.
아랑은 턱이 두개로 나뉘어져 있고 각져서 남성적인 외모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귀에 연결되는 턱뼈는 작았다. 그래서 윗 앞니는 벌어졌지만 아랫니는 살짝 덧니였다.
나는 키스하다 말고 얼굴을 땠다. 그리고 웃었다.
"너의 덧니, 웃겨."
아랑이 이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얼굴을 나에게 들이밀었다. 나는 그의 혀가 다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우리의 혀끝은 서로의 혀를 탐닉했고, 나는 다시 그의 이를 훑었다. 오톨도톨한 아랫니의 요철이 느껴졌다. 내가 혀로 그의 이를 훑는 동안 그는 팔로 내 허리와 어깨를 미친듯이 쓰다듬었다.
"하하하! 너의 덧니 너무 웃겨!"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새 나의 후드도 벗겨지고 우비가 말려올라가 우리의 몸은 흠뻑 젖었다. 그는 화를 내며 우비를 젖히고 내 엉덩이를 꽉 움켜쥐어 자신에게로 당겼다. 그의 두꺼운 근육과 성난 몸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내 팔을 뒤로 돌려 엉덩이에 붙은 그의 팔을 떼냈다. 그는 신경질을 냈다.
"키스가 궁금하다고 했지 엉덩이를 잡는 손길을 궁금하다고 말한 적은 없어."
나는 냉정하게 말하고 트랙에서 일어났다. 아랑은 이를 갈았다.
그에게서 섹슈얼한 자극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키스 이상 나가지 못한 것은 덧니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익숙한 상대, 그와 치열이 같은 남자를 찾고 있는 걸까. 그는 이런 식으로 내 엉덩이를 잡은 적이 있을까. 나는 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 또 내 문제다.
우리는 트랙에 나란히 서서 말없이 강을 바라보았다.
한참이 지났고 인기척에 나는 뒤를 돌아봤다. 앙드레가 있었다. 그는 우산을 쓰고 있었지만 우비를 입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머리를 제외한 상체 대부분이 젖어 있었다. 그는 말없이 아랑의 어깨를 세게 쥐었다. 나는 무언지 모르지만 어떤 전율을 느꼈다. 아주 짧은 시간.
"더이상 수위가 높아지면 위험해. 돌아가자." 앙드레는 내게 우산을 건내며 말했다. 우리 셋은 말없이 각자 우산을 쓰고 차로 돌아왔다.
고맙게도 아랑은 이 이후에도 그날의 내 서투른 유혹을 절대 입에 올리지 않았다. 우리는 자연스러운 동료로 돌아왔다. 나는 그에게 고마워했고 동시에 무척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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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오스칼은 여러 남녀와 입술궁합 테스트 해봤다고 생각합니다 ㅋㅋㅋ
애니 오스칼은 아랑과 입술궁합 맞았을까요?
강둑과 다리는 애니에 자주 나오는 그곳입니다 ㅋ
올리비에 사건은 원래 제로델 이야기였습니다. 소송 관련해서 의뢰인이랑 벌어지는 에피소드로 오스칼이 오해한다는 내용이엇는데 써놓고 보니 영~ 아니어서 바꿨습니다.
제로델이랑 뚝딱대는 것도 쓰고 싶은데 잘 될지 모르겠어요... -_- 젤 성격상 안 될듯
거짓말같지만 올리비에 사건 역시 실화입니다 ㅋ
부이에 바자회에서 뭔일 나야 하는대 아직 아무 구상없음.... 뇌도 생각도 엄뜸
첫댓글 아 ㅋㅋㅋ 넘 웃기고 유쾌해요 ㅋㅋㅋㅋ 글구 아랑 넘 구체적으로 못생겼어요 ㅋㅋㅋㅋ 아랑이 좀 조무래기 분위기라 원작 아랑인줄 알았는데 외모는 애니아랑이군요 ㅎㅎㅎ
아랑-앙드레 대사도 넘 웃기고 ㅋㅋㅋㅋㅋ
무서워서 못 여쭤보겠어요 올리비에 건이 실화라니 ㅠㅠ
눼이님. 진지하고 애절한 브라비리 말고 그냥 앙드레가 술 심하게 취해서 왜 나만 안주는데 해도 되겠어요 ㅠㅠ
저속한 짤 죄송합니다.
@alexis 오스칼 순진하고 귀엽져? 진심으로 본인 취향 아닌 못생긴 남자 앞에 놓고도 진지하게 키스실험해보려 하고…이게 다 존잘 페르젠놈 때문이다!
바자회에서 오스칼을 두고 펠&젤 뭔일 나게 하고 싶은데 팰젤은 대결구도가 쉽지 않네요.
아랑은 원작애니 반반 섞었습니다.
아랑이 동네북 앙드레에게 섹드립 날리는 이유는 오스칼을 좋아해서죠. 앙드레도 대충 알고도 넘어가주고요.
짤은 애니드레 브라비리 심정이네요ㅋㅋ 고상하게 흰장미 붉은장미 라일락 운운했지만 마음속으론 '나도 너랑 자고싶어!' 엿을거라는ㅋ 제로델 베드씬까지 나오면 진짜 저심정 아닐까요? ㅎㅎ
@alexis 진챠 이 말에 동의합니다. 아니 수요일에 다른 약속 잡지도 못하게 하면서 앙드레랑은 왜 안 사겨주는데ㅜㅜ
아 넘 웃겨요 근데 이 편ㅋㅋㅋㅋ
@유리바다 가족이랑은 하면 안 되죠 ㅋㅋㅋ 오스칼에게 앙드레는 모친 아들이랑 동급
대장공주님 이라는 호칭이 귀엽네요 ㅎㅎ
서툴게 간보는 오스칼도 귀엽고 홀라당 넘어가는 아랑 ㅋㅋㅋ 평소에 많이 참고 있나봐요.. ㅎ
애니의 빗속대결 + 만화의 빗속키스 섞어봣어요. 오스칼의 서툰 유혹에도 바로 떡밥무는 아랑... 얼마나 고팟으면 ㅋ
만화에서 오스칼은 오해살 행동을 많이 했죠? 아랑이 착각하고 혼자 연심 쌓을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