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제주도의 공식 명칭은 제주특별자치도(濟州特別自治道)다. 2006년에 승격된 제주특별자치도는 우리나라에선 아주 특별한 광역지방자치단체 라고 할 수 있다. 특별법에 의하여 자치경찰제도의 실시, 교육자치권의 확대, 그리고 대한민국 중앙정부의 직접적인 통제 권한의 일부를 합법적으로 이양 받아서 자치입법권과 자치재정권을 위임 내지는 부여받고 있는 아주 특별한 지역이다. 관광특구로 지정되어 상당수의 해외여행객들이 무비자로 제주도를 드나들 수 있는 경우가 그 한 사례가 되겠다. 비수교권 여행자가 대한민국을 방문하려면 반드시 비자가 필요하지만, 제주도에 한해서만은 자기 집처럼 드나들어도 된다는 말이다. 이유는 단 하나, 와서 돈을 펑 펑 쓰고 가라는 말이다. 외국인의 부동산을 포함한 투자제한도 대단히 자유롭게 제주도에 한해서 풀어 준 결과로 제주도의 상당한 토지와 건물이 해외자본에, 특히 중국인들 소유가 되었다. 특구로 지정하고, 법률을 바꾸어 가면서 여러 가지 제약을 풀어주고 제도적 심사와 절차를 생략해 주면서 까지 실행한 결과는 거대 외부자본 유입과 시장경제 논리에 따른 투기 극성이었다. 생태계를 위협하는 정도의 마구잡이식 난개발이 횡행했고 각종 사행성 사업들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외부자본에 의한 시장성 논리의 결과는 곧 모든 이익은 다시 외부(외국)으로 빠져나가고, 단기 투기를 노린 개미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길거리에 나앉는 파행을 마구마구 양산해 내기 시작했다. 훌륭한 정치가와 행정가들이 충분히 이런 것들까지 예견하고 국익에 필요한 조치라 생각하여 실행에 옮겼겠지만, 거기에 다른 상당히 많은 부작용들이 심각하게 발생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 시작과 저변에서 대한민국은 좀 더 냉정하고 심도 있게 (개발)과 (환경보존)에 대해서 고심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이 나에게는 씁쓸하게 남아있는 것이다. 이렇게 제주도가 특별자치도로 승격되고 관광특구 사업의 특수를 누리게 되는 데에는 누가 뭐라고 해도 2003년에 방영된 SBS TV드라마 <올인>의 영향을 결코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올인>은 영향력을 넘어서 열풍이었으며 후반부에 들어서는 거대한 광풍과도 같았던 것이다. 이 드라마의 상당부분 중요한 장면들이 제주도에서 촬영되었다. 특히 서귀포시 성산읍 섭지코지에 설치된 드라마 세트장 (올인 하우스)는 이국적이리만치 빼어난 풍광으로 드라마를 시청하는 모든 시청자들의 시선을 빼앗아 가기에 충분했다. ‘제거 도대체 어디야?’ ‘동남아 유명 관광지에서 찍었나?’ 당시 88 서울올림픽 이후로 해외여행 자유화가 실시되면서 동남아 관광열기가 뜨거워지기 시작하던 즈음에서 해외여행을 동경하면서도 쉬이 떠나지 못하던 많은 사람들에게 제주도는 그야말로 언제든 쉽게 꿈이 현실이 되는 새로운 영역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동남아 보다 멋진 곳이 많은데 뭐 하러 돈 싸들고 죽어라 사서 고생을 하면서 해외를 나간단 말이야? 다들 살만해 지니까 헛지랄들 하는 거여. 제주도랑 울릉도를 지들이 다 가보기나 했대? 홍콩이나 방콕이 다 뭐여. 서귀포가 있는데......’ 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너도나도 제주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거기에다가 드라마 <올인>이 동남아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얻게 되자 해외 여행자들 까지 몰려오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제주도는 미어터졌고 숙박업소와 관광버스와 음식점들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그 틈을 외지의 거대자본들이 눈치를 챘고 내노라하는 장사꾼들이 전방위적으로 제주로 몰려들었다. 돈이 쏟아져 나올 분야에 투자를 시작했으며, 이권을 위해서 장애가 되는 제도 개선과 법규 허용을 합법과 비합법을 총망라해서 추진하고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제주도는 물가가 치솟는 관광지로 탈바꿈하기 시작했으며 이내 자본주의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투기 체험장이 되었다. <올인> 드라마가 성공리에 종영되었으니 당연히 세트장을 철거하고 섭지코지를 원래의 모습으로 원상복구를 해야 했다. 하지만, 제주도는 끝내 세트장을 철거하지 못했다. 제주도를 찾아오는 내국인과 외국인들이 하나 같이 제주도를 찾아 온 이유 중의 첫 번째가 바로 송혜교와 이병헌이 성장하고 거닐던 해안언덕의 수도원(교회)을 돌아보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바람 부는 언덕위에 세워진 송혜교가 살았던 수도원이 없는 섭지코지는 이제부턴 제주도가 아닌 게 되는 것이다. 세트장의 철거가 아니라, 이제부턴 세트장의 보존에 제주도가 목숨이라도 걸어야 할 새로운 형편이 되었던 것이다. 목재에다가 합판을 붙이고 페인트칠을 했던 (올인 하우스)가 그만, 태풍 매미로 인해서 폭삭 주저앉고 말았다. 제주도로서는 제도가 어떠니 허가권이 어떠니 따질 게재가 아니었다. 허겁지겁 서둘러서 세트장의 목재를 철거하고 철근과 콘크리트로 세트장의 원형을 고스란히 감쪽같이 복원 시켜 놓았다. 성산음 고성리의 섭지코지에 들어선 지하2층에 지상1층 규모로 복원된 교회건물은 제주도가 투자를 맡았지만, 이 시설을 관광특수에 맡게 활용하기 위하여 민간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 냈고 운영을 맡을 법인까지 설립하게 되었다. <올인> 드라마를 성공시킨 제작사가 올인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새로 완공된 교회 건물의 소유권을 사들였고, 제주도는 이 법인의 지분 25%를 매입했다. <올인> 열풍은 해가 바뀌어도 식을 줄을 몰랐다. 한 해에 200만 명이 넘는 여행자들이 섭지코지를 찾았다. 상황이 이쯤 되자 엄청난 투기자본과 투기꾼들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찾아서 섭지코지 노다지 땅에 빨대를 꼽으려 시도하기 시작했다.
섭지코지는 대대손손 신양리를 포함한 인근 여러 마을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억새밭 사이로 밭을 일구고 보리와 고구마와 유채를 심으며 농사를 지어왔다. 관광특수를 노린 자본들이 섭지코지 인근을 해양관광단지로 제주도로부터 지정을 받아냈다. 외부자본에 의한 난개발이 시작된 것이다. 자본들이 모여들어 ㈜보광제주를 설립하고 마침내 제주도로부터 관광단지 개발사업 승인을 받아냈다. 동시에 섭지코지에 농사를 지어온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마구잡이식으로 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개발 후의 청사진만을 그럴싸하게 늘어놓으며 헐값에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 가구만을 남겨 놓은 채 섭지코지의 모든 사유지를 ㈜보광제주가 매입했다. 동시에 사들인 대지에 말뚝을 박고 울타리를 쳤다. 어느 날 갑자기 올인 하우스를 가려면 한참이나 먼 길을 삥 돌아서 힘겹게 찾아가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이어서 보광은 섭지코지 관광단지를 제주투자진흥지구로 새롭게 지정을 받아냈다. 투자유치의 특혜권을 따낸 것이다. 부동산 취득의 취득세, 등록세, 재산세를 모두 감면 받았다. 그런 후에 1만이천 평 정도의 미개발토지를 중국자본의 ㈜오삼코리아 측에 약 3배의 시세차익을 남기고 팔아 버렸다. 관공서(제주도)를 상대로 온갖 혜택을 다 받아내고 다시 땅장사로 엄청난 수익을 남기고 손을 뺀 것이다. 보광이 제주도에 관광단지 사업승인을 받으면서 제안한 허가조건에는 호텔과 콘도, 해양수중전망대, 해양수족관, 해양공원, 해양레포츠센터 조성이 전제되었다. 하지만 보광은 당장 돈이 회전이 되고 이익을 남기는 호텔 콘도만 조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휘닉스 아일랜드)인 것이다. 해양관광단지 조성을 조건으로 허가를 받아내고, 대형 리조트 사업체를 벌인 것이다. 거기에다 미개발지를 중국자본에게 거대한 이익을 전제로 팔아 넘겼다. 더하여 보광은 애초부터 섭지코지로 향하는 입구 하나만을 허용하고 나머지 길은 모두 폐쇄해 버릴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해서 섭지코지 해안의 대부분을 휘닉스 아일랜드를 이용하는 사람만을 위한 프라이빗 비치로 개발하려 했었다.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고, 섭지코지를 드나드는 길목에 설치된 현지주민들의 상가가 모두 철수까지 하면서 제주도 차원에서 반발이 심하게 되자 결국 철회했다. 거대자본의 극심한 이윤추구 아래 현지주민들이 생기는 이익은 전혀 없게 변해갔다. 모두가 길거리에 나앉게 생긴 형편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현지주민뿐만이 아니라 인허가를 내준 제주도 공무원들까지 후회를 감추지 않는다. 아름다웠던 섭지코지엔 지금 자본주의의 병폐가 가득하고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산 일출봉을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장소가 사라졌다. ‘자연경관의 사유화’ 라는 새로운 신조어가 탄생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자 휘닉스 아일랜드는 여론을 의식한 듯, 단지 내에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로 하여금 글래스하우스를 짓게 했다. 그리고 옆으로 지니어스 로사이라는 갤러리를 지었다. 요즈음은 (올인하우스) 때문에 섭지코지를 찾는 사람을 찾아 볼 수 없다. 대신 (글래스 하우스)와 (지니어스 로사이)에서 멋진 사진을 찍으려고 찾아오는 사람은 부지기수다. 신세대나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혹 안도 다다오의 건축이 섭지코지를 더 빛나게 만들고 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가 하면 상당수의 사람들이 등대에 올라 성산 일출볼을 바라보면서 눈 앞에 펼쳐진 멋진 풍경을 가로막고 서있는 이 차가운 느낌의 썰렁한 건물에 안타까움을 넘어서 한탄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2개의 주차장에서 섭지코지를 제한된 통로를 통해 드나들고는 있지만, 사태의 추이가 언제든 변할 수 있고, 또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에 안도 다다오의 건축과 성산 일출봉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는 나로서도 딱히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휘닉스 아일랜드가 이럴 판에 그럼 원조 겪인 ‘올인 주식회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운영회사 측은 <올인>의 열기가 식어들기 시작하자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송혜교가 자란 수도원(교회)를 털어내고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 궁전 같은 새로운 건물로 리모델링한 후에 카페와 기념품점 등의 상가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경영진간의 마찰과 투자자본의 부족 등으로 심각한 내환을 겪은 끝에 이사진 6명이 모두 말소되는 사태 끝에 ㈜올인은 해체되었다. 돈을 빌려 준 채권자가 올인 하우스의 건물지분에 대해 경매를 신청했다. 그러자 현지주민 신양리와 고성리가 제주도를 상대로 토지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애초에 이 땅은 마을 공동소유였는데 70년대 특별조치법에 의해서 공유지로 제주도가 공권력을 앞세워 강제로 가져가 버린 경우였던 것이다. 결국 올인하우스의 토지는 마을공동체가 되찾았다. 하지만 건물의 경우는 지역 여성경제인이 경매에 응찰하여 소유권을 확보했다. 여성경제인은 이곳을 새롭게 꾸며서 커피숖으로 운영을 추진하였지만, 토지소유권을 가진 마을주민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증개축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여성경제인은 땅까지 사서라도 커피숕을 사업으로 하겠다는 주장이고, 마을주민들은 적정선에서 건물을 마을 공동재산으로 구입하여 커피숖을 자신들이 운영하겠다고 주장한다. 올인하우스는 결국 방치된 채 주변 경관이 빼어나기로 이름난 선지코지에서 흉물로 전락한 채 무단 방치되고 있다. 투기자본에 의한 개발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한 번 훼손된 자연은 복구하자만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한다. 지금 섭지코지는 (개발이냐) (보존 내지는 복구냐) 하는 딜레마에 깊게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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