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여름이 막바지로 무르익어 갈때쯤에 가족들도 한국으로 와서 자리를 잡고, 저도 가족들과 함께 열심히 위에 계신분의 손에 붙들리어서 특별히 근무가 없는날에는 주일 오전과 저녁예배, 수요저녁, 그리고 금요일밤 기도회까지 참석하는 맹신이 아닌 순종하는 크리스찬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지역사령관인 여단장의 운전기사가 된지 얼마되지 않은 어느 날! 제가 섬기는 여단장은 한국에서의 임기를 얼마 남겨놓지 않고 있었다. 어느날 이른 아침에 나를 부른다. 자기 개인 자동차(POV-Private Own Vehicle) 키를 주면서 지난밤에 손님이 사택에 와서 주무셨는데 그 손님의 집까지 모셔다 드리고 오라고한다. (천기누설-여성 입니다) 부대인 봉일천에서 멀지않은 문산까지 정중하게 모셔다 드리고 돌아와서 여단장에게 키를 돌려주고 하루의 일과를 시작했다. 오후 근무시간이 거의 끝나가는 오후 4시경에 여단본부 행정반 앞에서 세상이 무너질듯한 큰소리가 들린다.
가~ㅅ 뎀! Who drove my car today?(오늘 누가 내차 운전했어?).... 100m 거리에서도 크게 들릴정도로 화가난 여단장의 불호령에 행정반의 부관을 비롯한 장교들도 그앞에서 사시나무 떨듯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나는 그말을 듣고 속으로 ("지가 몰라서 묻나, 아침에 내가 자기 손님 모셔다 드리고 온것을 뻔히 알면서") 그러면서 번개불보다 더빠른 속도로 달려가서 네, 제가 운전했습니다. 했더니 내가 저녁에 차를 사용할려고 했는데 Small 라이트가 켜져 있어서 Battery가 거의 방전되었잖아? 이제 어떻게 할거야? 하고 소리를 지르는데, 옆에서 듣고있던 장교들은 지난번 운전병이 운전을 위험하게 한다고 길에다 버려두고와서 운전병을 교체한것을 아는지라 그들 모두가 마음 속으로 이제 드라이버 Yoon은 영창가게 생겼네! 라고 생각들을 했다고 나중에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알겠습니다. 제가 알아서 외출하시는대 지장이 없도록 처리해 놓겠습니다" 하고는 여단장 군용세단을 가지고 부대밖에 있는 자동차 밧테리 정비소에 들려서 정비사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차종을(미국 GM 쉐비) 알려주었더니 새밧테리 하나를 준비해가지고 연장도구를 싣고 제차에 함께 타고서 부대안에 들어가서 밧테리를 새것으로 교체했습니다. 불과 1시간여동안에 벌어진 헤프닝이었습니다.(또 하나의 비밀-밧테리 사이즈가 정확하게 맞지않아서 스치로폼으로 움직이지 않게 고정 시키기도..^^) 아마 비용이 당시에 출장비 포함해서 3~4만원 지불한것 같습니다.
벌써 일과시간인 오후 5시가 지나서 여단장은 사택에 부여단장(중령)과 함께 있는데 가서 보고를 드렸습니다. 밧테리를 새것으로 교체해서 차가 쌩쌩하게 움직이니까 이제 마음놓고 사용하시라고 말씀 드렸더니 그제서야 분이 조금 풀리는듯 저보고 의자에 앉으라고 하더니 "Yoon,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해서 아끼는데 그런 실수를 다 하냐고 그러면서 밧테리 교체가 얼마 들었냐고 하길래 아닙니다! 제가 지불했습니다. 했더니, 우~와! 정말 미국인 같은 발상입니다. 그러면 너와 내가 50%씩 부담하자고 하면서 절반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가고싶은(?) 영창도 못가고 해프닝은 해피엔딩으로...^^
얼마후에 여단장은 본토로 전보발령이 나서 이삿짐을 정리하는데 저한테 자기 자동차를 가지고 부산에있는 미군부대에 가서 drop off 시키면 그곳에서 선적하여 차가 미국으로 간다고 하면서 3일 휴가를 줄테니 가족들을 데리고 차를 부산으로 가지고 가라고 하면서 개인적인 휴가비로 가족들과 맛있는 식사라도 하라고 거금 $100불도 주었습니다. 졸지에 생각지도 않았던 가족들을 데리고 부산까지 자가용으로 가서 자동차를 부대에 인계시키고 해운대에서 2박3일 휴가를 즐기고 오는 행운도 있었습니다. 이 여단장은 월남전에도 참전하였었고, 부친이 미군 장성이었던 뒷배경이 좋은군인 이었는데, 한마디로 영웅호걸 타입이라 주색을 조금 즐기는 바람에 한국에 와있는 동안에 함께있던 와이프와 이혼도 했을 정도라, 장군 진급을 못하고 대령으로 예편하였습니다. 예편도 사실은 어떠한 일에 연루되어 군사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그래도 뒷배경이 있어서인지 대령으로 명예제대는 하게 된것입니다. 특히 친한파라 인근에 많은 한국군 장성들과 일반인들을 많이 알고 있어서 추석 하루전날 저는 양주(박통때문에 유명세를 탄 시바스 리걸)를 약 20병 정도 선물포장을 해서 전달하느라고 혼자서 하루종일 서울 근교를 헤매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이후에 새로운 후임 여단장은 전임과는 다르게 아주 범생이 여단장 이었습니다. 아마 장군진급을 염두에 두고 생활을 하는것 같았습니다.(나중에 제가 용산에서 근무할때 장성진급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가 운전할때도 뒤에서 스피드를 보고 있다가 규정속도보다 지나치면 슬로우다운!을 외치는 그런 스타일이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운전이 규정속도로만 하면 얼마나 위험한지를 모르는것 같았습니다. 어느 주일날은 서울 용산의 커미서리로 장보러 가자고 하면서 아이스 박스에 얼음까지 채워서 식료품을 구입해 올정도로 깐깐한 정통 스타일의 군인이었습니다. 하여튼 저는 영어가 서툴러서 문제가 생길까봐 오히려 최선을 다해서 섬기는 모습이 그들의 눈에도 그대로 비추었는지 후임 여단장에게도 (귀염과 사랑을 받다가^^) 2사단 근무가 1년이 넘어서 여단장에게 자녀들 교육문제도 있고해서 용산에 가서 근무할려고 하니까 보내(놓아)달라고 했더니 자기에게는 내가 꼭 필요한데 가야하냐고 하길레 꼭 가야한다고 했더니 그러면 나보고 나처럼 근면성실한(자뻑) 후임 운전병을 구해놓고 가라고 해서 후임을 구하고, 용산에 와서는 제가 갈수있는 부대에 가서 자리보직을 받아가지고 드디어 두번째 한국근무 하면서 처음으로 용산으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제가 옮긴 부대는 용산 미8군의 "21st Transportation Company"(21 수송중대)인데 약 200여명의 군인들이 근무하는데 절반은 카투사, 절반은 미군으로 이루어졌고 이름 그대로 대부분이 운전병과를 가지고 있었으며 저의 보직은 분대장으로 소대 선임하사와 함께 매일같이 8군내의 여러 사무실에서 차량지원 요청이 오면 그날 차량과 함께 운전병을 지원해주는 역할이라 아침에 출근해서 그날의 차량과 운전병들을 배치해주고 나면 할일이 없어서 빈둥거리다가 오후 3시쯤 되면 선임하사와 함께 영외로 퇴근하는 특과중의 특과였습니다.
**우리 카페의 회원이신 나무늘보님은 저의 청운국민학교 후배이고, 또한 카투사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할때 제가 잠시 미군으로 있던 용산의 21 수송중대에서 근무해서 시기는 다르지만 군대 후배이기도 한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육군의 계급장입니다. 영관급의 계급은 무궁화(골드)1개가 소령, 무궁화(실버)1개가 중령, 그리고 대령은 특이하게 독수리마크가 대령입니다. 현재는 General of the Army(5 Stars)는 없습니다.
첫댓글 다시 재미난 군대 이야기로 돌아 왔네요.
73년 경 해병대 통신병으로 근무 할때 휴가 갔다와서 본의 아니게 밧데리 황산액을 방전을 막으려 통에 보관 하는데 우리는 그통 하나를 물통으로 사용 하는데 모르고 황산통으로 라면을 끓여 막걸리 먹다 같이 근무하던 임하사 가 마시는 바람에 영창에 갈뻔 했던 기억을 되살아 납니다. 다행이 임하사가 사단장에게 선처를 요청하는 바람에 영창은 면했는데 그 임하사는 아직도 살아 있을 런지 감사 말씀 드립니다.
재미난 이야기 저의 군대 시절 영창 갈뻔한 이야기를 돌이키는 재미나서 소름이 돋는 이야기 잘 읽고 갑니다!
청개구리님이야 말로 대형사고를 치셨었네요!
영창은 면하셨지만 그후에 닥친 고난과 역경은
안봐도 비디오입니다...^^
@CA Yoon 대대장 명령으로 완전 군장 하여 연병장 몇주간 매일 구보 벌을 받았는데, 인생은 세옹지마. 부대는 상륙 훈련 과 공수 훈련 하느라 고생 하던데 저는 매일 좋은 날씨에 연병장을 구보 하듯이 하다가 아무도 없으면 쉬고 하며 시간을 죽이기 기억.
좌우든 그 임하사(임 현 x 하사 청룡부대 월남 파병했다 바로 돌아 왔다 던데) 살아 있다면 감사 말씀 드리고 싶으니 연락 주세요.
여단장 진짜 또라이네
난 미군은 적어도 대령정도하는 사람은 합리적이고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적인 업무를 시키고
자기 성질난다고 소리소리 지르다니..
미군은 한국군같은 보안부대는 없나요
즉 장교동향보고하는데
그리고 silver 가 gold 보다 높네요
미군에도 IG(Inspector General)라고 해서 보안부대 비슷한
역할을 하는곳이 있습니다. 잘못된것을 보고(투서)하면 조사하는 기관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여단장이 당시에 이미 군사재판까지 끝나서
미국으로 가면 조금있다가 군복을 벗고 예편하게 되어있기때문에
무서울게 없었던것 같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제가 21 수송중대에 잠시 있었던 기간이 86년도 가을이었으니까
21 수송중대 경력으로는 나무늘보님이 선배입니다. ㅎㅎㅎ
진짜 먹고 놀기 좋아서 여기가 좋사오니 하고 장군 운전기사 인터뷰도
안가고 있다가 나중에 강권에 못이겨서 할수없이 갈 정도였으니까요..^^
사진은 당시에 교회 청년부 학생들을 담당하면서 교사들과 함께 찍은 사진에 입은 빨간 티셔츠가 21 수송중대 PT 셔츠였습니다.ㅎ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카페에서 회원님들이 읽어주시는것만으로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합니다 ㅎㅎ
ㅋㅋ 역시 순발력이 짱!이십니다. 이리 저리 사건 대처하시는게 젊어서부터셨네요. 가장으로 애 쓰심의 결과로 현재의 마여사의 존중 받는 남편 되시겠습니다. 아름다운 부부는 젊어서부터 쌓아진 크레딧으로 노년까지~~~~~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어떻게 tulip님 가정얘기를 저의 가정 얘기하듯이
하십니까? ㅎㅎㅎ
강릉에 오실때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덕담을 주셨으니 대접을 해드려야지요...^^
저런..위기에도..그 가고싶은 영창도 못가시고 기지를 발휘 ㅎㅎ
어떤 일에든 최선을 다하는 성실의 아이콘으로 일평생을 사셨으니..정말 대단하세요^^
남들 한번도 안(?) 가려는 군대를 세번이나 다녀오셨다니..흥미진진
은구기일 생활에 늘 감사하시는 지금처럼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앗~그러고보니 4번인것 같은데요, 현재도 현역으로 있는 십자가군병! 까지 하면 ㅎㅎㅎ
군대를 안 다녀와서 여단장이 여자 단장인 줄 알고 오늘은 멜로인가...했는데
읽어내려 가면서 앞뒤가 안 맞아서 구글링 하고서야 알았어요.ㅎㅎ
잼나게 읽고 하나 배우고 갑니다.
그렇게 생각하실수도 있겠네요... 군대 체제를 전혀 모르셔서...
그러면 대대장은 대장중에서도 최고로 높은 대장으로 생각하신것은 아니시겠죠? ㅎㅎㅎ
개인의 역사를 이렇게 공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일생을 통해 역사하시는 우리 좋으신 하나님과 함께 하셨음이 참 마음에 와닿습니다. 윤님 화이팅!
부족하기는 해도 사람들에게는 크게 부끄러움이 없는 삶이었기에 함께 나눌수 있는것 같습니다. 후반부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 싶었기에 더욱더...^^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에서도 좋으신 하나님의 은혜로 이를 잘 극복하시고, 결국엔 힙하여 선을 이루는 결과를 경험했다는 교훈을 담은 글을 읽습니다. 미군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꽤 오랜 기간을 복무한 터라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카페에 처음 가입해서 가장 관심있게 읽은 글중의 하나가 아톰님의 GI 스토리였습니다. 저의 눈과 귀에 익은 지명 Fort Ord로 인하여 더욱 가까이 갈수있었으며 그때부터 아톰님과 저희 부부의 공통분모를 찾으며 오늘까지 오다보니 사이가 무척 가까워졌습니다 이땅에 있는 그날까지 좋은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하리라 생각합니다 ^^
자동차 배터리라 하시니..
얼마 전 아들 출장길 따라 나섰다가
배터리 땀시 시동이 안 걸리는 사고 ㅠ
새벽 울 카페 선배님들께 급질하는 더 큰 사고를~~ ^^
우리를 자애롭게 대하시는 그 아버지
우리의 좌충우돌 인생 길은 모두 그 장중에 있으니
제겐 원망도 의심도 방황도 이제는 없답니다 야호~~~~
좋은 나눔
고맙습니다
우리 모두 홧팅
주안에서 하나된 우리!
모두 홧팅(자국님 버전)^^
전에 시골에서 살 때 멀리 한국장을 보로 갔는데, 차 배터리가 죽는 바람이 홍쿠녕이 난 적이 있지요. 그 후 배터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분명 기술적으로 배터리 수명이 어는 정도 남았다고 알 수 있는데, 대부분의 차엔 이런 기능이 없네요.
미군의 계급장을 이제야 알겠군요~~~~
책으로 출간하는것도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부사관(사병) 계급장은 한국육군의 옛날 계급장과 비슷하지요, 아마 한국군이 초기에 미군 계급징을 따라서 한것 같습니다 ^^
계급장은 처음 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모임에서 뵙겠습니다.
네,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
저의 남편 독수리 계급장도 보이네요. 육군군인 은퇴후 나의 삶은 군인가족 생활에서 해방이 되었답니다.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시골 동네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도 모임에서 뵙겠습니다. 사진 보고 꼭 기역 하리라고 다짐합니다
남편분이 O-6로 제대하셨군요 독수리가 매달 $를 물어다 주시겠군요^^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윤님 군대이야기는 흥미진진하면서도 소설처럼 재미있습니다. 오늘도 한건(?) 잘 넘기신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네, 이제 군대이야기도 거의 끝나갑니다. 많은 건이 있지만 맛보기로 조금만..^^
이병, 일병, 상병,병장, 하사, 중사, 상사 ~~ 여기까지 알지요.
5명의 오빠들 군대이야기를 지긋지긋하게 들어가며 지내왔는데
어쨰 윤박사님이야기와 겹치는부분이 하나도 없을까요.
들어도 들어도 영양가없는 이야기들, 쓸데없이 듣고 지내왔네요.
큰오빠가 사고로 하사제대하여 계급은 상사까지 알지요.
주님의 은총으로 모든일들 감사하며 지내시는 윤 박사님~~^^ 부럽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고 US Army와 ROK Army의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윤님의 군대 스토리 너무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용산 21 수송중대에 근무 했던것 같은데 전 평택에서 60중대에서 트레일러 병으로 캬츄사혹은 미군들과 2인 일조로 거의 매일 용산에 물품 배달 하러 갔던 경럼이 있습니다.
같은 동 시대에 근무 했는데 이렇게 또 역이민 카페에서 만나는 인연을 맺게 되네요.
네, 21 수송중대는 86년도 가을에 잠깐 2개월 정도있다가 장군 드라이버로 발탁되어 연합사로 소속이 옮겨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