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서울의 한 병원
"콜록,콜록,"
우정호는 연신 기침을 내뱉으면서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문밖에서 들어갈까 말까하고 고민하더 박완규는
그의 기침소리를 듣자, 무겁게 발걸음을 옮겨 병실로 들어섰다.
"정호야, 오랜만이다."
"응? 완규형?"
우정호는 아픈몸을 이끌고 몸을 일으켜 박완규를 바라보며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다. 박완규는 그런 우정호의 미소에서
가슴이 미어질듯한 아픔을 느낀다. 이미 살이 빠질대로 빠졌고 항암치료료 인해 눈썹까지 모두 빠진 상태, 초췌한 모습을
하도고 여전히 싱글벙글하며 자신을 반겨주는 우정호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가 난감했다.
"그래... 건강해 보이네.."
왠지 어색한 건강해 보인다는 말. 그러나 그 말 이외에는 달리 할말이 없는 그였다. 우정호도 박완규의 그런 심정을 알았는지
어른스럽게 먼저 봉봉쥬스를 건넨다.
"이거라도 드세요. 어제 택용이가 갔다주고 갔더라구요."
"택용이가?"
"예. 원래 친하지도 않았는데 요새 들어서는 병문안을 자주 오더라구요. 자기도 요새 슬럼프때문에 힘들텐데... 제가다 눈물이 나더군요."
"허허..하긴 녀석이라면.."
박완규는 우정호의 옆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병의 경과라던가, 요새 연락은 다들 잘 하고 있다던가.
"그래, 요새 KT애들이랑은 연락 잘 하고 있니?"
"아..다른 애들이랑은 잘 되는데 영호랑은 연락이 잘 안되네요. 아마 요새 스투 연습때문에 힘들테니.."
우정호 역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최근 연락이 뜸한 영호에게 약간은 원망스런 마음을 가진듯 했다. 박완규가 말했다.
"다들 자기 할일을 하면서도 늘 너를 생각하고 있을거다. 이제 치료는 거의 막바지로 들어선거니?"
"하하. 뭐 제인생의 막바지라면 예전에 들어선거 같네요."
"무슨소리야 그게?"
박완규는 뭔가를 포기한듯이 말을 내뱉어내는 우정호를 보며 깜짝 놀랐다. 병이 심각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치료를 받으려고 노력한다고 들었는데 지금의 우정호는 완전히 그 생명의 끈을 포기한것만 같았다.
"너 무슨소리야? 너 임윤택 못봤어? 개도 긍정적으로 열심히 사니까 결국 호전되고 있잖아? 너도.."
"뭐..사람마다 다른거 아니겠어요?"
우정호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말없이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박완규는 뭐라고 할말을 잇지 못한채 그의 시선을 따라 창문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문 밖에는 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아직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잎사귀가 모두 떨어진 나무. 박완규는 문득 의아스런
생각이 들었다.
"저 나무..왜 저렇게 잎사귀가 없지?"
"하하! 그거 왜그런줄 아세요? 사실 이쪽 통로는 죄다 항암치료 받는 환자들 통로거든요? 근데 개중에는 치료를 버티지 못하고
약을 창밖으로 던저버리는 사람들도 있대요. 그리고 놀라운건 그 약이 땅으로 스며들면서 저 나무의 잎사귀가 하나씩 빠지기
시작했다는 거에요. 의사선생님들도 과학적으로 말이 안된다고 하던데 정말 항암치료 받는 사람처럼 잎사귀가 죄다 빠져버렸어요."
"..."
박완규는 그말을 듣자 마음이 무거워 졌다. 안그래도 희망과 긍정 두개의 힘이 필요한 환자들의 창문밖에 저런 나무를 계속 세워놔도
되는걸까? 그런데 유독 벌거숭이인 나무에 한가닥의 잎사귀가 맻혀 있었다.
"저 잎사귀는..."
"저 잎사귀가 마지막이죠. 제가 여기 처음 왔을때는 아직 10개정도 남아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정말 아프다고 느낄때마다
저 나무를 바라보았는데 그때마다 잎사귀가 하나씩 떨어지더라구요. 그리고 지금은 딱 한개 남은거죠."
우정호는 그말을 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아마 저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어쩌면 저역시 마지막이 아닐까요?"
"무슨소릴 하는거야! 너 자꾸 왜이렇게 약한 모습만 보여?"
"약한모습 보이고 싶지 않은데....어쩌겠어요. 전 이미 약해요."
우정호는 그렇게 고개를 숙인채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박완규는 더이상 뭐라 할말이 없어서 우정호에게 안부인사를 남긴 뒤 병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앞 복도에서 빨래를 하고 돌아오는 우정호의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아..박완규씨? 병문안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아는 동생이 아픈데 자주 오지도 못해서 큰일입니다."
박완규는 그렇게 어머니와 함께 잠시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근 우정호에게 필요한 O형 혈액이 부족하다는 말부터,
아까 박완규가 보았듯이 본인이 치료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이야기까지... 우정호의 어머니는 아들이 아픈것보다 의지를 잃었다는것에
대해 더욱더 슬퍼하고 계셨다. 박완규가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머니 혈액은 제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박완규는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봉투 한장을 꺼네 어머니에게 건네었다. 어머니는 그 봉투를 보고 놀라며 말했다.
"이건?"
"제 성의입니다. 일단 받아주세요."
"아니에요! 이런걸 받을순.."
"많은 액수도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해줄수 있는 거라곤 이런거 밖에 없네요.."
박완규는 정말 자신이 무력하다고 생각했기에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 진심어린 모습에 어머니도 더이상 거부를 하지 못하고
봉투를 받아들었다.
"정말..늘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어머니야 말로 희망을 잃으셔선 안됩니다."
박완규는 그렇게 말한뒤 KT숙소로 향했다.
삐용삐용!
여전히 게임 타격음이 들리는 KT숙소 박완규는 감독과 코치및 선수들을 만난뒤 연습실 가장 뒤쪽에서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 이영호를 찾았다.
"영호야."
"...."
이영호는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는지 그 말을 듣지 못했다. 박완규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고 한참이나 지나서야 이영호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터져나왔다.
"아씨발!"
이영호는 당장이라도 이어폰을 던저버릴 기세였다. 아마 래더에서의 게임이 잘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문득 옆에 서 있는
박완규를 발견하고 놀란듯이 말한다.
"어 완규형?"
"하하! 연습이 잘 안된거냐?"
"아뇨... 아 택용이형이랑 연습했는데 요새 계속 지네요..."
"그래? 너 얼마전엔 택용이 이겼잖아?"
"그땐 사실 쇼부쳐서 이긴거죠... 요새 택용이형 실력이 너무 늘어서 10판하면 2판밖에 못이겨요. 아 씹사기 플토 진짜!"
이영호는 종족탓을 해대면서 꼼시렁 거렸다. 박완규는 문득 스1에서 테란종빨로 6회우승을 먹은 이영호가 저런 말을 하는것이 우스웠지만
그대로 말을 이었다.
"너 요새 정호한테 연락 안하냐?"
"에? 요새 바빠서..."
"너 정호 요새 힘들어 하는거 몰라? 내가 너네 일에 이런말을 하긴 뭐하지만 그래도 연락한번 해주렴."
"후...저도 알아요 요새 힘들어 하는거. 하지만 그래서 지금 당장은 연락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무슨 소리니?"
"지금 제가 연락해봤자 달라지는게 뭐죠? 그런다고 정호형이 낳는건 아니잖아요?"
"아니 너 무슨소리야? 네가 연락한번 해주면 그게 얼마나 큰 힘이 될지 몰라서 하는 소리야? 정호에게 필요한건 획기적인 치료제가
아니라 바로 병에 맞서싸울 용기 그 차제라고!"
"안다구요 씨발!"
이영호는 갑자기 싸닥션을 날릴 기세로 벌떡 일어나 박완규를 노려보았다.
"씨발 그걸 누가 모르냐구요? 근데 지금 연락하면 정호형이 용기를 얻기나 하겠어요? 팀이 허벌창이 나서 빌빌 기고 있는데 퍽이나
용기가 나겠네요! 저도 생각없이 이러는거 아니라구요! 뭔가 진짜 제대로된거 하나 만들어서 연락할거란 말예요!"
"그게...무슨소리야?"
"후...저희 무조건 포시 갈겁니다. 정호형한테 포시간다는 소식 들려줄때까지는 연락 안할거에요."
"그런..."
박완규는 순간 자신이 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호는 생각없이 우정호에게 연락을 하지 않은것이 아니었다. 팀을
포시에 올려보낸 이후 이 기쁜소식을 들고 정호를 찾아가 북돋아줄 생각이었음에 분명했다. 박완규는 어린 영호가 이런 대견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걸 모른채 화만냈던것이 부끄러워 졌다.
"이런...내가 너무 어리석었구나. 니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뭐 됐어요.."
박완규는 다시 기쁜 마음이 되었다. 어찌되었든 모두들 정호의 완쾌를 위해서노력하고 있었다. 박완규가 영호에게 말했다.
"영호야 꼭 포시 가라. 그러면 정호도 꼭 용기를 얻을거야."
"전 무조건 갈겁니다."
영호는 확실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박완규는 그런 확신에 찬 이영호의 표정이 결코 무리한 자신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몇번이나
이런상황에서 그런 허황된 자신감을 현실로 만들어낸 신화적인 사나이니까. 박완규는 인사를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스갤에 글을 올렸다.
"스갤러 여러분 저 박완규 입니다."
물론 그 글은 O형 혈액을 구하기 위한 글이었다. 평소같았으면 선수들을 개씹혐좆이라고 까면서 지들 장난감으로 만드는 개새끼들과
상종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힘이 될까 싶어서 였다. 그렇게 글을 쓴 후 박완규는 다시 화점으로 향했다.
"네 붓이랑 그런걸? 가수분께서 갑자기 그림이라도 그리시게요?"
"하하. 그냥 취미로 하는겁니다."
박완규는 화점에서 그림도구를 사와서 집에서 열심히 잎새를 그렸다. 몇번이나 실패가 반복되고 아들들이 도와주기를 여러차례. 마침내 그림을
완성시킨 박완규는 그것을 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슬쩍 우정호의 병실을 둘러보니 우정호는 잠에빠져 있었다. 박완규는 그대로
창문 쪽의 나무로 와서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여전히 마지막 잎새가 걸려 있었지만 조만간 떨어질것처럼 위태로웠다. 박완규는 그
잎새를 떼고 자신이 그린 잎새를 초강력 접착 테이프로 붙여놓았다. 이대로라면 적어도 한두달은 거뜬히 버틸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공군과 KT의 경기날.
박완규는 난생 처음으로 KT를 응원했다. 그러나 전반전부터 말리기 시작하더니 어찌어찌 에결까지 오게된 경기. 에결에는 오늘 승리한
이영호와 공군의 김구현이 맡붙었다. 그러나 점차 밀리기 시작하는 이영호,
"아,안돼 영호야! 여기서 니가 지면!"
여기서 지면 포시 탈락이 확정되는 순간, 그러나 이영호는 결국 페이스를 잃은채 김구현에게 속절없이 밀리고 말았다. 화면속 이영호의
표정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이영호보다도 절박했다. 그러나 결국 GG를 선언해 버리면서 힘없이 부스를 빠져나온다...
"...."
박완규는 망연자실했다. 포시진출을 계기로 우정호에게 용기를 주려던 그 계획이 완전히 수포로 돌아가버렸다. 그리고 문든 정호가 걱정되었다.
띠띠띠띠
박완규는 즉시 우정호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면서 옷을 주섬주섬 챙기고 나갈 준비를 했다.
"네 박완규씨?"
"예 어머니! 혹시 지금 정호 옆에 있나요?"
"에? 그런데요?"
"혹시 정호가 지금 티비보고 있습니까?"
"아뇨 지금은 안정을 취해야 해서 아무런 일도 안하고 있어요."
"그럼 혹시라도 티비를 보려고 하면 절대 못보게 하세요. 지금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박완규는 천만 다행이다 싶어 즉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정문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박완규는 자신이 만든
그 마지막 잎새가 걸린 나무쪽에서 왠 꼬마애 둘이서 장난질을 치고 있는게 보였다.
"야! 저거 가짜 맞다니까?"
"저게 무슨 가짜야? 진짜라고?"
"아 씨발 한번 떼서 볼래?"
그들은 그렇게 말하더니 순간적으로 나무를 타기 시작했다. 박완규는 깜짝 놀라 그들에게 달려오며 외쳤다.
"안돼! 뭐하는 짓이야! 안됀다고!"
그러나 박완규의 외침이 들리기도 전에 아이들은 그 마지막 잎새를 쥐어뜯어 버렸다. 박완규는 순간 세상이 뒤집어지는 충격을 받았다.
"봐 이거 가짜 맞잖아?"
"아 씨발 진짜네.."
박완규는 더이상 기다릴 틈이 없었다. 재빨리 우정호의 병실쪽으로 헐레벌떡 뛰어들었다.
콰당!
문을 박차고 뛰어든 박완규의 눈에 맨처음 보인것은 티비였다. 놀랍게도 티비는 온게임넷이 틀어져 있었고 해설진들은 KT의 포시탈락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다만 중환자들이 기거하는 곳이었기에 음소거 상태였다.
"아니 어머님 제가 티비 틀리 말라고!"
"아 그게...주변사람들이 틀어서.."
박완규는 순간적으로 우정호를 바라보았다. 우정호는 멍하니 마지막 잎새가 위치하고 있어야할 그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이제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벌거숭이 나무였지만...
"저,,정호야.."
박완규는 그대로 무릎을 털썩 꿇으면서 끓어오르는 눈물을 참기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눈물이 터져나오는것 같았다.
"정호야...정말...정말 잘해보려고 했는데.."
박완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최대한 우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했다. 그때 갑자기 우정호가 박완규를 돌아보며 말했다.
"형. 지금도 잎새가 나무에 걸려 있나요?"
"!?"
박완규는 놀란나머지 정호를 바라보았다. 놀란것은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정호야 그게 무슨소리니?"
"아니...아까부터 눈이 안보여서요. 요새 가끔씩 이럴때가 있었느네 점심먹고 나서는 계속 눈이 안보이네요. 너무 부어서 그런가?
너무 희미해서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우정호는 약기운때문에 눈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박완규는 틈을 놓지지 않고 말했다.
"그래! 잎새는 아직도 달려있다! 어제 그렇게 비가 내렸는데도 여전히 나무에 걸려 있다고!"
"정말 다행이에요.."
우정호는 안심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박완규에게 물었다.
"아참? 우리팀 어떻게 됐어요? 오늘 경기 있지 않나요?"
"그게...극적으로 포시에 진출했단다. 영호가 2승을 거두면서 말이야."
"정말요? 하아...진짜 다행이에요. 하하!"
정호는 기쁜표정을 지으면서 보이지도 않는 티비를 바라보는듯 했다. 박완규는 눈물이 흘러 내렸지만 애써 그에게 울음을 참는
소리를 내고 싶지 않아 기쁜듯이 말했다.
"그래 정호야. 잎새도 아직 붙어있고 팀도 포시에 진출했단다. 그러니 너도 희망을 잃지 마렴. 잎새가 떨어지거나 팀이 포시에서 떨어지지
않았으니 너도 끝까지 맞서 싸워보는거야!"
"네. 그래야 당연히."
정호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머니 역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박완규는 잠시 어머니를 불러내 병실 밖으로 나갔다.
이제 병실에는 우정호와 다른 환자들만 남아 있었다. 순간 우정호의 옆에 앉아있는 환자가 물었다.
"저사람 가수 아닌가?"
"네. 박완규씨라고 유명하잖아요?"
"그렇지? 내눈이 틀린게 아니지? 근데 저사람 무슨 일이 있길래.."
순간 또다른 환자가 그 환자를 바라보며 조용히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자, 그 환자느 말을 멈추고 말았다. 그 환자는 박완규가
뭘 하려고 했는지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조용해진 병실. 우정호는 잠시 박완규와 어머니가 나간 병실문을 바라보며
나지막히 말했다.
첫댓글 ㅇㅇ
허,.
와 능력자;
필력돋네 잘슨다
스타1과 함께 살다 스타1과 함께 가네요 부디 좋은곳으로 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