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거의 유사한 두 개의 수입신용장 분쟁에서, 1998.3.7.일자 대법원 판결에서는 모 개설은행이 승소하였는데 동년 6.26.일자 대법원 판결에서 패소한 (다른) 개설은행은 상충하는 판결에 대한 재심을 요구하였습니다.
대법원에서는 2002.2.21.일, 전원합의체에서 통과된 다음과 같은 다수의견이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의 판례가 되고 있습니다.
(쟁점) 개설의뢰인이 개설은행에서 수입결제를 마치고 서류를 수령한 후, 상당한 기간이 경과된 후에라도 (개설은행이 지적하지 않고 개설의뢰인이 용인하지 않은) 서류상의 하자를 이유로 기 결제대금의 반환을 요구한다면, 개설은행은 이를 반환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
(다수의견)
1. 개설은행은 정해진 시간 내에 제시된 서류를 심사하여 하자가 있으면, 개설의뢰인의 명시적인 지시가 없는 한, 신용장대금을 지급하지 않아야 한다.
2. 개설은행이 임의로 서류상의 하자를 수리하기로 결정하였거나 이를 발견하지 못하여 대금을 지급하였다면, 개설의뢰인에게 결제대금을 청구할 수 없고, 개설의뢰인이 예치한 결제보증금을 인출하여 대금을 지급하였다면, 개설의뢰인의 요청이 있으면 그 예치금을 반환하여야 한다.
3. 하자서류를 받은 개설은행이 일방적으로 신용장대금을 지급한 다음, 개설의뢰인에게 하자서류를 송부한 경우, “당사자 간 특약이 없는 한”, 이를 접수한 개설의뢰인이 상당한 기간 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하여도 개설의뢰인은 결제자금/예치금의 반환청구를 할 수 있다.
4. 따라서, “당사자 간 특약이 없었는데”, 서류를 수령한 개설의뢰인이 서류심사를 하지 않았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제대금/예치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 1998. 3. 27. 선고 97다16114 판결의 견해는 앞서 본 법리에 저촉되는 한도에서 이를 변경하기로 한다.
5. 반대의견 1인, 별개의견 1인을 제외한 관여 대법관들의 일치된 견해로써, 개설은행의 상고를 기각한다.
(반대의견, 대법관 1인)
1. 다수의견의 견해는 다음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신용장 개설은행과 개설의뢰인 사이에 존재하는 신뢰관계를 도외시하고, 국제무역거래에서 대금지급의 확약을 위하여 사용되는 신용장제도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으며, 신용장개설계약에서 개설은행의 의무만을 강조한 나머지 개설은행의 지위를 지나치게 불안하게 한다는 점에서 찬성하기 어렵다.
2. 통상 국제무역거래에서 대금지급수단으로 이용되는 신용장을 개설할 경우 개설의뢰인의 다양한 요청과 지시에 따라 신용장의 문안과 조건이 결정되므로, 신용장 조건과 실제 제시되는 선적서류가 일치하는지 여부에 관하여는 그 신용장 조건의 의미와 내용에 관하여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개설의뢰인이 더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다.
3. 더구나, 개설의뢰인은 당해 신용장 조건의 중요도에 따라 불일치하는 선적서류의 인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만큼, 개설의뢰인이 자신에게 송부된 선적서류를 받고도 상당한 기간 그에 관하여 이의를 제기함이 없이 그대로 있거나,
4. 그 서류를 이용하여 물건을 수령하는 등으로 권리를 행사한 경우에는 그 불일치의 하자를 더 이상 문제삼지 않기로 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5. 만일 이와 같이 보지 않을 경우에는 개설의뢰인이 하자 있는 서류에 기하여 물건을 인수한 후 원칙적으로 신용장대금 상환의 거절사유로 되지 못하는, 물건에 하자가 있다거나 시장상황의 변동으로 그 판매에 지장이 발생하는 등의 사유가 있을 때, 서류상의 하자를 핑계로 개설은행에 그 위험을 전가할 수도 있게 되어 심히 부당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6. 나아가 뜻하지 않은 부주의나 과실로 하자 있는 서류를 인수하고도 신용장대금을 지급하게 된 개설은행으로서는 손해를 줄이거나 손해회복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 위하여 개설의뢰인으로부터 신속한 하자 통지를 받을 필요 또한 긴요하다.
7. 그리고 개설의뢰인이 물건대금 지급의 중개자적 지위에 있을 뿐인 개설은행에 서류조사의무 위반에 대하여 언제까지나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할 뿐 아니라, 신용장 거래에 불안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8. 따라서 신용장통일규칙이나 당사자 사이의 신용장개설계약상 이에 관한 특별한 규정이나 약정이 없다고 할지라도, 앞서 본 바와 같은 점과 신뢰관계를 기본으로 하는 개설은행과 개설의뢰인 사이의 관계에 비추어 볼 때, 개설의뢰인은 개설은행으로부터 선적서류를 인수하였으면 그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그 서류들을 조사하여야 하고,
9. 거기에 신용장의 문면이나 조건과 일치하지 않는 하자가 있는 경우에는 그 하자를 바로 개설은행에 통지하여야 하며, 이로써 신용장대금의 상환의무를 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0. 그러나 상당한 기간이 경과하도록 이러한 통지를 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개설의뢰인으로서는 더 이상 서류의 하자를 이유로 개설은행에 대하여 신용장대금의 상환을 거절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신의칙에 합당하다.
(별개의견, 대법관 1인 - 생략)
개설의뢰인이 묵시적으로 이의제기권리를 포기하였다고 간주할 수 없다는 다수의견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소수의견의 취지에 공감하여 개설의뢰인에게 이의제기권리를 무제한으로 허용하는 판단에 대한 우려를 표명.
(필자의 개인적 소견)
1. 개인적으로는, 현행 일반적인 신용장업무를 취급하는 국제은행들의 일반적인 관행을 감안하여 대법관 1인의 “반대의견”에 공감합니다.
2. UCP 600에는 개설은행의 서류심사 기간을 5은행영업일로 제한할 뿐이고, (개설의뢰인은 신용장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개설의뢰인의 서류심사 제한기간을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보증신용장규칙인 ISP98에서는 개설은행으로부터 서류를 수령한 개설의뢰인도 서류상의 하자를 발견한다면, 합리적인 시간 (대부분의 경우 3영업일, 특수한 경우 최대 7영업일) 이내에 개설은행에게 이의를 제기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3. 선적서류를 수령해 간 수입업체가 묵묵히 있다가 7-8개월이 지난 뒤에 개설은행이 지적하지 않았던 서류상의 하자가 있다고 하여 이미 결제하였던 자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면, 개설은행은 수입신용장 거래에서 큰 위험을 감수하여야 합니다. 국제관행과도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4. 더구나, 수입업체가 이미 수령해 간 선적서류를 이용하여 수입화물을 취득한 경우에도, 개설은행이 미처 지적하지 않았던 서류상의 하자를 이유로 이미 결제하였던 자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하면, 개설은행으로서는 금전상의 손실은 물론이고, 수입화물에 대한 담보권마저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데.....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다수의견에 공감하기가 힘드네요....
5. 그러나 헌법소원 등을 통하여, 또 다시 바뀌지 않는 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최종판결을 판례로 인정할 수 밖에 없으므로, 개설은행으로서는 첫째, 외국환거래약정에 개설의뢰인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기간을 명시하여 두던가, 둘째, 개설은행의 수입서류 결제부서 직원들은 수입 선적서류를 철저히 심사하여 모든 하자를 빠짐없이 열거한 하자서류 인수증을 개설의뢰인으로부터 받아두어야 할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