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dward Hallett Carr -
E.H. 카아는 1892년 런던에서 태어났고, 케임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했다...
1916년에는 영국 외무부에 들어가 약 20년 동안 외교관으로 활약했으며, 1919년에는 베르사이유 강화회의에서 영국 대표단을 수행하기도 했다...
1936년에는 외교관직에서 물러나 웨일즈 대학에서 국제정치를 강의하는 교수가 되었다...
그는 런던 타임즈의 부주필로 언론 활동에 참여한 일도 있고, 1948년에는 국제연합의 <세계인권선언> 기초위원회 위원장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 후 1953년 옥스포드 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다가 1955년 모교인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돌아와 역사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는 1982년 11월 3일 케임브리지 자택에서 보람있는 한 생애를 마쳤다...
주요 저서로는 <20년간의 위기, 1919~1939>(1939), <내셔널리즘과 그 이후>(1945), <새로운 사회>(1951), <볼셰비키 혁명>(1950~1953), <소비에트 러시아사>(1950) 등이 있다...(앞장)
이 책은 1961년 1월부터 3월에 걸쳐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연속 강연을 한 것을 묶어서 그 해 가을 출판한 것이다...(12)
이 책은 역사 이론을 개관하는 책이 아니라 탁월한 역사가인 저자의 역사관을 조리있게 밝힌 책이다...
그의 역사관은 한마디로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표현되어 있으며, 이것은 E. H. 카아의 오랜 역사 연구에서 탄생된 역사철학인 것이다...(12)
여기서 <역사란 무엇인가>의 내용을 간략하게 개관하기로 한다...
E. H. 카아는 역사를 "현재와 미래의 대화"라고 규정한다...
이것은 "현재 사회와 과거 사회의 대화"라고 바꾸어 말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 말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그는 역사는 역사가의 해석이라고 생각하고,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는 변화(그는 이러한 변화를 진보라고 생각한다)며, 따라서 이러한 변화는 우리들의 가치와 관점이 변화에 따라 언제나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며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역사를 보는 눈은 항상 상대적일 수밖에 없고,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역사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가는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보고 현재에 비추어 과거를 보면서 언제나 미래를 전망하고 있다는 것이다...(13)
제1장... 역사가와 사실...
이 장은 이 책의 출발점인 동시에 핵심을 이룬다...
여기서 저자는 19세기의 역사학과 20세기 역사학의 차이점을 다루고 있다...
제2장... 사회와 개인...
종래의 역사가들은 위대한 천재적 개인의 창조력에서 역사의 원동력을 찾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원시적 단계의 역사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는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역사는 사회 속에 놓인 인간의 과거를 연구하는 것이고 사회는 개인의 의도를 초월한 힘과 움직임을 나타내므로 역사가의 관심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 있어야 한다...
사회는 역사가에 대해 이중의 중요성을 갖는다...
제3장... 역사와 과학과 도덕...
역사는 과학인가 하는 어려운 문제를 다루는 중요한 장이다...
카아는 우선 자연과학과 역사를 비롯한 사회과학은 그 기본 목적이나 근본 절차에 있어서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제4장... 역사에 있어서의 인과관계...
역사가의 임무는 역사의 인과관계를 수립하는 것이다...
한 사건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되어 있으며, 따라서 역사가는 여러 원인의 상호관계, 상하관계를 결정하고 한 사건에 통일성을 부여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과의 연쇄를 선택하는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은 없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제5장... 진보로서의 역사...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했지만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는 순간적인 경계선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역사가의 경우에는 과거나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가 큰 비중을 차지하며, 역사가의 성격은 그의 미래관(未來觀)에 잘 나타나 있다...
제6장... 넓어지는 지평선...
이 장은 카아의 현대관과 미래관을 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카아는 현대의 특징을 인간의 자기의식의 발달, 따라서 역사의식의 발달에서 찾아본다...
현대인은 환경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또 환경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개조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의식의 변화는 이성(理性)의 확대(擴大)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이성의 확대는 데카르트, 헤겔, 마르크스, 프로이트 등에 의해 성취되었다...
그 결과 현대인은 이성의 힘과 기능을 새로운 영역으로 확대하는 데 성공했고, 확대된 이성의 힘을 의식적으로 이용하여 자기 자신을 변경시키고 사회를 개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13~17)
역사란 무엇인가?(21)
- 액턴 -
19세기가 후대에 남겨 놓으려고 하는 지식을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유익한 방식으로 남김없이 기록하기 위해서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이다……...
현명한 분업에 의해 우리는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며, 새로운 문서, 국제적 연구에 의해 만들어진 그 가장 원숙한 결론들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 줄 수 있을 것이다...
완전한 역사를 현재로서는 우리는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상투적인 역사를 청산할 수 있고, 또한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가는 길에서 우리가 도달한 지점을 보여줄 수도 있다...
오늘날은 모든 지식을 입수할 수 잇고 어떠한 문제든지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21)
- 조지 클라크 -
그 후의 역사가들은 이러한 전망을 갖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일이 몇 번이고 극복되리라고 기대한다...
그들은 과거에 대한 지식이 한 사람, 또는 몇 사람의 정신을 통해 전달되어 왔고 이러한 정신에 의해 "가공(加工)"되었으며, 따라서 절대 불변의 원소적(元素的)인 비인간적 원자(原子)에 의해 성립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탐구의 길은 무한한 것 같고, 따라서 일부 성급한 학자들은 회의주의(懷疑主義)에서 피난처를 찾거나, 또는 적어도 모든 역사적 판단에는 인간 및 관점이란 요소가 포함되므로, 이 판단이든 저 판단이든 마찬가지며, "객관적"인 역사적 진리른 없다는 이론에서 피난처를 찾는다...(22)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답하려고 할 때, 우리의 대답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들의 시대적 관점을 반영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보다 광범한 문제에 대한 우리들의 대답의 한 부분이 된다...(23)
- 랑케 -
역사가의 과제는 단지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23)
역사의 사실을 과거에 대한 다른 사실과 구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25)
- 배러클러프 -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사실을 바탕에 두었다 하더라도, 엄밀히 말하면 결코 사실이 아니라 널리 인정되는 일련의 판단일 뿐이다...(31)
- 리턴 스트레치 -
무지(無知), 곧 단순화하고 명료화하며 선택하고 생략하는 무지는 역사가가 갖추어야 할 첫째 요건이다...(31)
어떠한 문서든 그 문서의 필자가 생각하고 있었던 일(그가 일어났다고 생각한 일, 일어나냐 할 또는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일, 혹은 어쩌면 그가 생각하고 있다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일, 혹은 단지 그가 생각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일) 이상을 말해 주지는 못한다...
이러한 문서는 역사가들이 이 문서를 연구하여 해독할 때까지는 아무런 뜻도 갖지 못한다...
사실은, 그것이 문서에서 발견되든 안되든 역사가의 손을 통해 처리된 다음에야 비로소 역사가들에 의해 이용될 수 있다...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역사가가 문서를 이용한다는 것이 곧 처리과정인 것이다...(33)
지난 50 년 동안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있었다...
1880 년대 및 1890 년대에 독일, 곧 19 세기의 자유주의의 편안한 지배를 무너뜨리기 위해 힘을 기울였던 나라로부터 역사에 있어서의 사실의 우위(優位) 및 자율성(自律性)이라는 학설에 대해 최초의 도전장이 날아왔다...
이러한 도전을 한 철학자들은 거의 지금은 이름만 남아 있다...
그들 중에서 오직 딜타이만이 최근에야 뒤늦게 영국에서 인정을 받았다...
20 세기로 접어들 때까지 영국에서는 번영과 자신이 아직도 대단했으므로 사실 숭배를 공격하는 이교도(異敎徒)들은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20 세기 초에 횃불은 이탈리아로 옮겨졌고, 이탈리아에서는 크로체가 분명히 독일 학자들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은 역사철학을 제창하기 시작했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크로체는 선언했으며, 이 말은 본질적으로 역사는 현재의 눈을 통해서 또한 현재의 문제에 비추어서 과거를 봄으로써 성립하고, 역사가의 주요한 일은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만일 역사가가 평가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기록할 만한 것인가를 어떻게 알 수 있을 것인가?(39)
- 콜링우드 -
역사철학은 "과거 자체"나 "과거 자체에 대한 역사가의 사상"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상호관계에 있는 양자(兩者)"를 다루는 것이다(이 말은 "역사"라는 말에 대한 현재 통용되고 있는 두 의미(역사가가 하는 연구와 역사가가 탐구하는 과거 일련의 과거의 사건들)을 반영한다)...
"역사가가 연구하는 과거는 죽은 과거가 아니라 어던 의미에서는 아직도 현실 속에 살아 있는 과거다."...
그러나 과거의 행위는 역사가가 그 배후에 놓인 사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역사가에 대해서는 죽은 것, 곧 무의미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역사는 사상의 역사"이고, "역사는 역사가가 그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사상이 역사가의 마음 속에서 재현(再現)된 것이다."...
역사가의 마음 속에서의 과거의 재구성은 경험적 증거에 의거한다...
그러나 이러한 재구성 자체는 경험적 과정이 아니며, 또한 사실의 단순한 나열에 그칠 수도 없다...
반대로 재구성과정은 사실의 선택과 해석을 지배한다...
바로 이것이 사실을 역사적 사실로 만드는 것이다...(40)
- 오우크쇼트 -
역사는 역사가의 경험이다...
역사는 역사가 이외의 어느 누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곧 역사를 쓴다는 것이 역사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41)
역사적 사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도 않고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결코 "순수한" 것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없다...
역사의 사실은 언제나 기록자의 마음을 통해 굴절(屈折)된다...
따라서 역사책을 읽을 때 우리는 그 책에 포함된 사실이 아니라 그 책을 쓴 역사가에 대해 일차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41)
역사책을 읽을 때에는 언제나 역사가의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사색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다면 당신이 귀머리거거나 역사가가 바보일 것이다...(43)
사실은 결코 생선 가게 목판에 놓인 생선과 같은 것이 아니다...
사실은 광대한, 때로는 접근할 수 없는 바다 속을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와 같은 것으로서, 역사가가가 무엇을 잡아낼 것인지는 부분적으로는 우연에 달렸기도 하지만, 주로 그가 바다의 어느 지점에서 고기잡이를 하는가, 어떤 고기잡이 도구를 선택하는가(물론 이러한 두 요소는 그가 잡으려고 하는 물고기의 종류에 의해서 결정되겠지만)에 달려 있다...(43)
역사는... 해석인 것이다...(43)
역사가는 자기가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그들의 행위 배후에 있는 사상을 상상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43)
역사가가 자신의 저술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람들과 어떤 형태로든 마음의 접촉을 갖지 않는 한, 역사는 쓰여질 수 없다...(44)
오직 현재의 눈을 통해서만 우리는 과거를 볼 수 있고 과거를 이해할 수 있다...(44)
프랑스 혁명에 대한 지난 40년 동안의 프랑스 역사가들의 업적으로 피상적으로나마 안다면 이 연구들이 1917년의 러시아 혁명으로부터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받았는가를 알 수 있다...(45)
역사가의 기능은 과거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과거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것도 아니며,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로서 과거를 지배하고 이해하는 것이다...(46)
- 콜링우드 -
어느 관점이 올바른가를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어느 관점이나 그것을 선택한 사람에게는 유일하게 가능한 관점이었다...(47)
보는 각도가 달라짐에 따라 산의 모양이 달라진다고 해서 산에는 객관적으로 모양이 전혀 없다거나 무한한 모양이 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역사상의 사실을 결정할 때 해석이 필수적 역할을 한다고 해서, 또는 현존하는 해석은 어느 것이나 전적으로 객관적인 것은 아니라고 해서 어떤 해석이나 모두 좋다든가, 역사상의 사실은 원칙적으로 객관적 해석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역사의 객관성은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가?(47)
- 니체 -
우리들이 보기에는 어떤 의견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은 이 의견에 대한 반박은 아니다...
……문제는 그 의견이 얼마나 생명을 촉진하고 생명을 보존하고 종족(種族)을 보존하는가, 또는 혹시 종(種)을 창조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48)
20세기 중엽인 지금 사실에 대한 역사가의 의무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사실을 존중하는 역사가의 의무는 그 사실의 정확성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역사가는 자기가 연구하는 주제나 계획하는 해석에 어떠한 의미에서든 관련된 모든 사실(알려진 또는 알려질 수 있는)을 그려 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49)
인관과 환경과의 관계는 역사가와 테마의 관계다...
역사가는 사실의 비천한 노예가 아니고 사실의 포악한 주인도 아니다...
역사가와 사실과의 관계는 평등한 관계고 주고받는 관계다...(51)
역사가와 역사의 사실은 서로 꼭 필요한 것이다...
사실을 갖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가 없으며, 따라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
역사가가 없는 사실은 죽은 것이고 무의미하다...
그러므로 "역사란 무엇인가?"하는 물음에 대한 나의 최초의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다...(51)
사회와 개인은 분리될 수 없다...
사회와 개인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것이고 상보적(相補的)인 것이며,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52)
세계는...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우리들에게 작용하기 시작해서 우리들을 단순한 생물적 단위로부터 사회적 단위로 바꾸어 놓는다...(52)
역사시대든, 선사시대든 모든 단계의 모든 사람은 어떤 사회 속에 태어나서 태어난 직후부터 사회에 의해 형성된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는 개인의 유산이 아니라 그가 자라난 집단으로부터 받은 사회적 획득물(獲得物)이다...
언어와 환견은 다 그의 사상의 성격 결정에 도움이 된다...
곧 그의 가장 최초의 관념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아들인 것이다...(53)
역사가들은 어느 정도로 단일한 개인이고 어느 정도로 그 사회와 시대의 산물인가?
역사적 사실은 어느 정도로 단일한 개인에 대한 사실이고 어느 정도로 사회적 사실인가?(57)
역사가는 역사의 한 부분이다...
지금 역사가가 들어 있는 행렬의 지점이 과거에 대한 그의 시각을 결정한다...(58)
- 네이미어 -
정치라는 심각한 일에 사상이 들어오는 것은 무익하고 위험하다...
정치적인 학설이나 독단에 의해 자신의 정신의 자유로운 활동을 방해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인간의 사고에는 더욱 유리하다...(62)
- 네이미어 -
일부 정치철학자들은 현재 영국에서의 일반적인 정치에 대한 논의는 따분한 소강(小康) 상태며 부재(不在)의 상태라고 불평한다...
구체적 문제에 대한 실제적 해결만을 추구할 뿐, 두 당(黨)이 모두 정강(政綱)이나 이상을 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러한 태도는 국민의 보다 높은 성숙을 보여주는 것 같고, 따라서 나로서는 이러한 태도가 정치철학의 작용에 의해 흐트러지지 않고 오래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62)
나는 당장 이러한 견해를 따지고 싶지는 않다...
지금의 나의 목적은 두 가지 중요한 진리, 곧 첫째로 역사가가 문제에 접근하는 입장을 우선 파악하지 않는 한, 역사가의 업적을 충분히 이해하거나 평가할 수 없다는 것, 둘째로 이러한 입장 자체는 그 뿌리를 사회적·역사적 배경에 두고 있다는 것을 밝히려고 할 뿐이다...(63)
- 버터필드 -
말하자면 한쪽 눈으로는 현재를 바라보면서 과거를 연구하는 것이 역사의 모든 죄와 궤변의 근원이다...
……이것이 "비역사적"이라는 말의 본질적 의미다...(65)
나의 의도는 단지 역사가의 연구가 얼마나 정확하게 자기가 그 속에서 연구하고 있는 사회를 반영하는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66)
어떤 사회가 어떠한 역사를 쓰는가 또는 쓰지 못하는가 하는 것만큼 한 사회의 성격을 의미심장하게 가리키는 것은 없다...(67)
역사가의 사상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환경에 의해 형성된다...(68)
- 액턴 -
역사는 다른 시대의 부당한 영향뿐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시대의 부당한 영향으로부터, 환경의 압제(壓制)와 우리가 숨쉬고 있는 공기의 압력으로부터 우리를 구출해 주어야 한다...(68)
역사를 연구하기 전에 역사가를 연구하라...
역사가를 연구하기 전에 그의 역사적·사회적 환경을 연구하라...
역사가는 개인인 동시에 역사와 사회의 산물이다...
따라서 이러한 두 줄기의 빛 속에서 역사 연구자는 역사가를 볼 줄 알아야 한다...(68)
역사가의 연구대상은 개인의 행동인가, 또는 사회적 힘의 작용인가?(69)
- 웬지우드 -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행위는 나에게는 집단 또는 계급으로서의 행위보다 더 흥미있다...
어느 쪽을 기반으로 하든 역사는 쓰여질 수 있고, 어느 쪽기 더 잘못되었다거나 덜 잘못되었다는 것은 없다...
이 책은……이러한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또한 그들의 견해로 보아서 왜 그들이 그렇게 했동했는가를 이해하려는 것이다...(70)
웨지우드 양의 말은 두 명제(命題)를 결합한 것이다...
첫째 명제는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행동은 집단 또는 계급의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의 행동과는 다르며, 역사가는 합법적으로 한쪽을 선택해서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명제는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행동의 연구는 그들의 행위의 의식적 동기의 연구라는 것이다...(72)
"역사"라는 말은 사회 속의 인간의 과거에 대한 연구과정에만 쓸 수 있다...(74)
인간은 언제나 또는 습관적으로 스스로 충분히 의식하거나 기꺼이 승인한 동기에 의해서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무의식적인 또는 시인하지 않은 동기에 대한 통찰을 배제하는 것은 분명히 일부러 한쪽 눈을 감고 일을 시작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74)
- 마르크스 -
"역사"는 하는 일이 하나도 없고, 거대한 재산도 갖지 못했으며, 어떠한 전투도 하지 않는다...
모든 일을 하고 또 소유하고 싸우는 자는 오히려 "인간", 진짜로 살아 있는 "인간"이다...(75)
- 카알라일 -
2천 5백만 명의 가슴을 무겁게 내리누르던 굶주림과 추위와 악몽같은 억압(철학적인 변호사, 돈 많은 장사꾼, 지방 귀족 등의 상처받은 자존심이나 대립되는 철학이 아니라) 이것이 프랑스 혁명의 원동력이었다...
어느 나라의 어떠한 혁명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75)
- 레닌 -
정치는 대중이 있는 곳에서 시작된다...
수천 명이 아니라 수백만 명이 있는 곳에서, 곧 진정한 정치가 시작되는 곳에서...(75)
역사에서 수는 중요하다...(76)
- 만데빌 -
개인의 악덕은 사회의 복지...(77)
- 마르크스 <경제학 비판 > 中 -
생산수단의 사회적 생산에 있어서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독립된 일정하고 필연적인 관계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77)
-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中 -
인간은 의식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만 인류의 역사적이고 보편적인 목표 실현의 무의식적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77)
- 버터필드 -
역사적 사건의 본성(本性)에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역사의 과정을 비틀어 놓는 것이 있다...(77)
역사의 사실은 사회에서의 개인 상호간의 관계에 대한 사실이고, 또한 개인의 행위로부터 그들 자신이 의도하던 결과와는 다른 또는 때로는 정반대되는 결과를 일으키는 여러 가지 사회적 힘에 대한 사실이다...(78)
모든 사회는 사회적 투쟁의 무대며 기성 권위에 반대한다고 자처하는 개인들도 기성 권위를 지지하는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그 사회의 산물이고 반영물이다...(79)
군주도 반란자도 모두 그 시대 및 국가의 특수 조건의 산물이다...(79)
- 헤겔 -
어떤 시대의 위인은 그의 시대의 의지를 표현하고, 그의 시대를 향해 그 시대가 원하는 바를 전해 주고, 그 의지를 실행하는 사람이다...
그의 행위는 그의 시대의 핵심이고 본질이다...
곧 그는 그의 시대를 실현한다...(81)
위인은...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고 대행자이면서도 동시에 세계의 양상과 인간의 사상을 바꿔 놓는 사회적 힘의 대표자고 창조자가 되는 뛰어난 개인이다...(82)
역사는... 두 가지 의미에서(역사가가 행하고 있는 연구라는 의미에서나 역사가가가 연구하는 과거의 사실이라는 의미에서나) 사회적 과정이며, 개인은... 사회적 존재로서 이 과정에 참여한다...(82)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상호작용이라는 상호과정(앞에서 이것을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불렀거니와)은 추상적이고 고립된 개인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오늘의 사회와 어제의 사회 사이의 대화다...(82)
과거는 현재에 비추어 볼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고... 과거에 비추어 볼 때 비로소 현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인간으로 하여금 과거의 사회를 이해하게 하고 현재의 사회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증대시키는 것이 역사의 이중의 기능이다...(82)
과학 자체도 심각한 혁명을 겪었다...(85)
- 과학적 방법은... 본질적으로 순환적(循環的) -
경험적 자료, 곧 "사실"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의 힘을 빌어 우리는 원리에 대한 증거를 얻고, 이 원리를 기초로 경험적 자료를 선택하고 분석하고 해석한다...(88)
가설은... 어떤 문맥(文脈) 또는 목적에서는 타당하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 문맥 또는 목적에서는 타당하지 않다...(88)
- 베르너 좀바르트 -
지금까지 복잡한 생존 속에서 우리를 이끌어 준 편안한 공식을 잃을 때……우리는 새로운 발판을 찾아 내거나 헤엄치는 법을 배울 때까지는 마치 사실(事實_의 대해(大海)에 빠진 것과 같다...(89)
- 조로주 소례 -
우리는 자신의 길을 의식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개연적(蓋然的)이고 부분적인 진리를 엄밀히 검토하고 언제나 발전적인 수정의 여지가 남아 있도록 잠정적인 근사치(近似値)에 만족해야 한다...(90)
- 홉스 -
명칭을 제외하고는 세계에는 보편적인 것은 없다...
같은 명칭을 가진 사물로 그 하나하나에는 개별적이고 독특한 것이기 때문이다...(92)
역사가가 참으로 관심을 갖는 것은 독특한 것이 아니라 독특한 것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것이다...(93)
역사를 읽는 사람도 역사를 쓰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상습적으로 일반화를 하며 역사가의 관찰을 자신에게 가까운 다른 역사적 맥락(아마도 자기 시대)에 적용한다...(94)
- 마르크스 -
놀라우리만큼 비슷한 사건이라도 다른 역사적 환경 속에서 일어났을 때에는 전혀 다른 결과를 야기시킨다...
이와 같은 사건의 진행을 불리해서 연구한 다음에 비교해보면 이 현상을 이해하는 열쇠를 쉽게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역사를 초월하는 것을 최대의 덕으로 삼는 역사철학의 이론을 열쇠로 이용한다면 이러한 이해에는 도달하지 못한다...(95)
역사는 독특한 것과 일반적인 것과의 관계에 관심을 둔다...
한 역사가로서 우리는 사실과 해석을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 독특한 것과 일반적인 것을 분리할 수 없으며, 또한 어느 하나를 다른 하나의 우위에 놓을 수도 없다...(96)
사회학은 지금 상반되는 두 가지 위험(초이론적(超理論的)인 것으로 될 위험과 초경험적(超經驗的)인 것으로 될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첫 번째 위험은 사회 일반에 대한 추상적이며 무의미한 일반화에 떨어질 위험이다...
일반화에 대한 나의 두 번째 문제, 곧 역사적 교훈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일반화의 참된 문제점은, 일반화를 통해 우리가 역사로부터 교훈을 배우려고 하고 일련의 사건으로부터 얻은 교훈을 다른 일련의 사건에 적용하려고 한다는 것이다...(96~98)
역사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결코 일방적인 과정일 수는 없다...
과거에 비추어서 현재를 배우는 것은 또한 현재에 비추어서 과거를 배우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의 기능은 과거와 현재의 상호작용을 통해 과거와 현재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촉진시키는 것이다...(99)
역사가는 일반화를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일반화를 하면서 역사가는 특수한 예언은 아닐지라도 미래의 행동을 위해 타당하고 유용한 일반적 지침을 제시한다...(100)
- 칼 만하임 -
경험을 포섭하고 수집하고 정리하는 범주조차도 관찰자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다르다...(102)
볼셰비키는 프랑스 혁명이 나폴레옹 같은 인물의 등장으로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들의 혁명이 같은 결말에 이를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지도자 중에서 나폴레옹과 가장 비슷한 인물인 트로츠키를 믿지 않고 나폴레옹을 가장 닮지 않은 스탈린을 믿었다...(?)(103)
역사에는 고난이 따른다...(114)
- 베이컨 <혁신에 대하여> 中 -
관습의 완강한 지속력은 혁신과 마찬가지로 난폭한 것이다...(114)
- 엥겔스 -
역사는 모든 여신(女神)들 가운데서도 아마도 가장 잔인한 여신이어서, 전쟁만이 아니라 "평화로운" 경제 발달에 있어서도 이 여신은 신체의 산 너머로 승리의 전차(戰車)를 몰고 간다...
불행하게도 우리들은 남녀 가릴 것 없이 매우 어리석어서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고난이 강요하지 않는 한, 진정한 진보를 위한 용기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116)
역사가도 보다 작은 악보다 큰 선이라는 명제에 의존한다...(117)
사회로부터 유리되고 역사로부터 유리된 추상적 기준 또는 가치는 추상적 개인과 마찬가지로 환상이다...
진정한 역사가는 모든 가치의 역사적 제약성(制約性)을 인정하는 역사가며, 자신의 가치에 역사를 넘어선 개관성을 요구하는 역사가는 아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믿음과 우리가 세워 놓은 판단의 기준은 역사의 한 부분이고, 인간 행동의 다른 측면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연구의 대상이 된다...
오늘날 과학(특히 사회과학)은 완전한 독립성을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역사 이외의 어떤 것에 근본적으로 의존하고 있지도 않으며, 이것이 역사를 다른 과학으로부터 구별하지도 않을 것이다...(120)
과학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방법과 기술을 사용하는 지식의 여러 가지 갈래를 지칭하고 있어서 역사를 과학에 포함시키려는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역사를 과학으로부터 제외시키려는 사람들이 무거운 짐을 지게 되는 것 같다...
역사를 과학으로부터 제외하려는 논의가 자기들의 선택된 집단으로부터 역사가를 쫓아 내려고 하는 과학자들로부터 나오지 않고, 오히려 인문학(人文學)의 한 분과로서의 역사의 지위를 옹호하려는 역사가들 및 철학가들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논의에는 인문학과 과학을 구별하려는 낡은 편견이 반영되어 있고, 이러한 편견에서는 인문학은 지배계급의 광범한 교육을 나타내고 과학은 지배계급에 이바지하는 기술자들의 기능을 말한다...
이러한 문맥에서는 "인문학"이니 "인문"이니 하는 말은 그 자체가 이 유서 깊은 편견의 유물에 지나지 않으며, 또한 과학과 역사의 대립은 영어 이외의 다른 언어에서는 뜻이 없다는 사실은 이러한 편견이 특히 섬나라적 성격을 가졌음을 보여 준다...
나는 역사를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을 거부하는 주장에 반대하며, 그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곧 역사를 과학으로 부르는 데 반대하는 것은 이른바 "두 문화"의 균열을 정당화하고 영속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균열 자체가 이미 과거에 속하는 영국 사회의 계급적 구조에 바탕을 둔 낡은 편견의 소산이다...
내가 믿는 바로는 역사와 지질학자를 갈라 놓는 틈은 지질학자와 물리학자를 갈라 놓는 틈보다 더 깊거나 더 메꿀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의 견해로는 그러한 균열을 바로잡는 방법은 역사가에게 과학의 기초를 가르치고 과학자에게 역사의 기초를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사고의 혼란 때문에 우리가 들어서게 된 막다른 골목이다...
어쨌든 과학자 자신들은 이와같이 하지는 않는다...(120)
과학자, 사회과학자 및 역사가는 모두 동일한 연구(인간과 그 환경, 환경에 대한 인간의 작용, 인간에 대한 환경의 영향 등의 연구)의 다른 분야에 속해 있다...
연구의 목적은... 환경에 대한 인간의 이해와 지배력을 증대시키는 것이다...(122)
역사의 연구는... 원인의 연구다...
위대한 역사가는(혹은 좀더 광범위하게 말한다면 위대한 사상가는) 새로운 사물에 대해, 또는 새로운 문맥(文脈)에서 "왜?"라고 묻는 사람이다...(124)
- 몽테스키외 <로마 사람들의 위대성과 성쇠의 원인에 대한 고찰>, <법의 정신> 中 -
모든 왕조(王朝)에 작용하고 이 왕조를 일으키고 유지하고 무너뜨리는 정신적 또는 물질적인 일반적 원인이 있다...
모든 사건은 이러한 원인에 따른다...
세상에서 보는 모든 결과는 맹목적인 운명의 산물이다...(125)
인간은 "환상의 지배만을 받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행동은 사물의 본질로부터 나오는 어떤 법칙 또는 원리에 따르는 것이다...(125)
기능적 접근법... 어떻게 그것이 일어났는가?
인과적 접근법... 왜 그것이 일어났는가?(126)
역사가는 복합적인 원인들을 다룬다...(127)
- 결정론 -
모든 사건에는 하나 또는 몇 가지 원인이 있으며, 하나 또는 몇 가지 원인에 어떤 변화가 없는 한, 어떠한 변화도 일어날 수 없다고 하는 신념...
소여(所與)는 현재 상태 그대로고, 일어날 일은 어떤 일이든 반드시 일어나게 마련이고 다른 것이 될 수는 없다는 의미...(132)
- 마르크스 -
만일 세계사에 우연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면 세계사는 매우 신비한 성격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 우연은 발전의 일반적 경향의 한 부분이 되고 다른 형태의 우연에 의해 상쇄된다...
그러나 발전의 촉진과 지연은 이러한 "우발적 사건"에 의존하고, 이러한 우발적 사건에는 처음에 운동의 선두에 선 사람들의 "우연한" 성격이 포함된다...(142)
마르크스는 역사에 있어서의 우연을 세 가지로 나누어 변호했다...
첫째로, 역사에 있어서의 우연은 매우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건의 과정을 "촉진하거나" "지연시킬" 수는 있지만 사건의 과정을 근본적으로 변경시키지는 못한다...
둘째로, 한 우연은 다른 우연에 의해 상쇄되고, 따라서 결국 우연은 그 자체를 말살시킨다...
셋째로, 우연은 특히 개인의 성격에서 구체화된다...(143)
- 트로츠키 -
역사의 모든 과정은 역사의 법칙이 우연인 것을 통해 굴절(屈折)하는 과정이다...
생물학의 용어를 사용한다면 역사의 법칙은 우연의 자연도태(自然淘汰)를 통해 실현된다고 말할 수 있다...(143)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 사실이 선택되고 정리되어 역사적 사실로 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144)
인간의 정신은 관찰된 사실이라는 넝마자루를 뒤져서 "부적절한" 것은 버리고 "적절한" 관찰된 사실들을 가려내고 이어 붙이고 모양을 만들어서 마침내는 "지식"이라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누비 이불을 만들어 낸다...(146)
우리들은 진보의 시대에 살고 있는가 또는 몰락의 시대에 살고 있는가?
진보라는 개념에는 무엇이 함축되어 있는가?
그 배후에는 어떠한 전제가 있는가?
이러한 전제는 어느 정도로 유지될 수 없는 것으로 되었는가?(158)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질은 지난 세대의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자신의 잠재적 능력을 발전시키는 점에 있다...(159)
역사는... 획득된 기술(技術)이 세대로부터 세대로 전승됨으로써 이루어지는 진보를 말한다...(160)
역사가는 진보를 하나의 과정, 곧 계기(繼起)되는 각 시대의 요구와 조건이 그 나름의 독특한 내용을 부여하는 과정으로 다룰 각오를 해야 한다...(161)
역사의 내용은 우리가 그것을 경험할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162)
진보는 만인의 평등하고 동시적인 진보를 의미하지 않으며, 또한 이러한 의미를 가질 수도 없다...(163)
역사에 있어서의 진보는 자연에 있어서의 진화와 달라서 획득된 자산의 전승에 의존한다는 것은 역사의 전제다...(164)
마르크스는 인간의 노동을 구조 전체의 기초로 본다...
"노동"이라는 말에 충분히 광범한 의미를 부여한다면 이러한 공식도 받아들일 만하다...
그러나 기술적 및 사회적 지식과 경험이 증대될 뿐 아니라 보다 넓은 의미에서 환경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이 증대되지 않는 한, 자원의 단순한 축적은 쓸모가 없을 것이다...
현재 물질적 자원 및 과학적 지식의 축적이라는 면에서 진보하고 있다는 사실과 기술적인 의미에서 환경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의심할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히려 20세기에 들어와 우리들의 사회질서의 형성과 국내적이든 국제적이든 사회적 환경의 지배에 과연 진보가 있었는가, 사실은 퇴보해 오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 의문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진화는 숙명적으로 기술의 진보에 뒤떨어져 오지 않았을까?(164)
- 베리 -
후세(後世)에 대한 의무라는 원리는 진보의 관념으로부터 직접 아온 필연적 귀결이다...(166)
역사에 있어서의 객관성은 사실의 객관성이 아니라 오직 관계의 객관성, 곧 사실과 해석, 과거와 현재 및 미래의 관계의 객관성이다...(167)
절대적 진리라는 개념은 역사의 세계에는 적합하지 않다...(167)
헤겔은 그의 절대자에게 세계 정신이라는 신비한 모양을 갖게 하고, 역사의 과정을 미래 속으로 투사(投射)하는 대신에 현재에서 끝나게 하는 커다란 오류를 범했다...
그는 과거에 대해서는 연속적인 진화과정을 인정하면서 부당하게도 미래에 대해서는 이를 거부했다...
헤겔 이후로 역사의 본질을 가장 깊이 생각한 사람들은 과거와 미래의 종합에서 역사의 본질을 보았다...(170)
미래만이 과거를 해석하는 열쇠를 마련해 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만 우리는 역사에서의 궁극적 객관성을 말할 수 있다...
과거가 미래를 조명하고 미래가 과거를 조명하는 것이 바로 역사의 정당화인 동시에 역사의 설명이다...(171)
어떤 역사가를 객관적이라고 해서 칭찬하고, 또는 한 역사가가 다른 역사가보다 더 객관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뜻을 갖는가?
단지 그가 올바르게 사실을 입수한다는 뜻이 아니라 올바른 사실을 선택했다는, 다시 말하면 올바른 중요성의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뜻임이 분명하다...
어떤 역사가를 객관적이라고 부를 때 우리들은 두 가지 의미를 나타낸다고 나는 생각한다...
첬재, 이 역사가는 사회와 역사에서의 자신의 상황으로부터 생기는 제한된 시야(視野)를 넘어서는 능력(전면적인 객관성은 불가능함을 인식하는 능력에 달려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뜻이다...
둘째, 이 역사가는 그의 시야를 미래에 투사하고, 따라서 자기 자신의 직접적인 상황에 의해 그 견해가 속박되고 있는 역사가들보다는 보다 깊고 보다 지속적으로 과거를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뜻이다...(171)
역사는... 과거의 사건과 점진적으로 나타나는 미래의 목적의 대화...
과거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중요하고 타당한 것을 골라내는 역사가의 선택도 새로운 목표가 점진적으로 나타남에 따라 진화되는 것이다...(172)
역사기술(歷史記述)은 그 자체가 진보적인 사건의 과정에 대한 끊임없이 확대되고 깊어지는 통찰을 마련하려고 한다는 의미에서 진보하는 과학이다...(173)
역사에 있어서의 판단의 기준은 "보편타당성을 요구하는 원리"가 아니라 "가장 효과적인 것"이다...(177)
자유, 평등, 정의 등 가치를 나타내는 말의 역사적 내용은 변화한다...(181)
프라우다(pravda)... 진리... 사실로서의 진리... 인간적인 진리...
이스타나(istana)... 진리... 신적(神的)인 진리... 신에 대한 진리와 신에 의해 계시(啓示)된 진리...(182)
참된 의미에서 역사라고 부를 수 있는 역사는 역사 자체에서 방향감각을 찾아 내고 이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쓰여질 수 있다...(183)
우리들의 역사관은 우리들의 사회관의 반영이다...(183)
인간이 시간의 흐름을 자연적 과정(사계(四季)의 순환이나 인간의 일생)이라는 관점에서 보지 않고, 인간이 의식적으로 관련되고 또한 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특수한 사건의 연속이라는 과점에서 볼 때, 역사는 시작된다...(185)
- 부르크하르트 -
역사는 의식의 각성에 의해 생긴 자연과의 단절이다...
역사는 이성을 사용해서 환경을 이해하고 환경에 작용하려고 하는 인간의 오랜 투쟁과정이다...(185)
근대 세계의 변화는 인간의 자기의식의 발달을 말하거니와 이러한 변화는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데카르트는 처음으로 인간에게 오직 생각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사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존재, 관찰 활동을 하는 자기 자신을 관찰할 수 있는 존재(따라서 인간은 동시에 사고와 관찰의 주체와 객체가 된다)라는 지위를 확립해 주었다...(186)
그러나 루소가 인간의 자기이해(自己理解) 및 자기의식의 새로운 깊이를 파헤치고 자연의 세계와 전통적 문화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가르쳐 준 18세기 후반까지는 이러한 발달은 완전히 명백하지는 않았다...(186)
18세기로부터 근대 세계로의 전환은 장기적이고 점진적이었다...
그 대표적 철학자는 헤겔과 마르크스였으나, 두 사람은 모두 대립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헤겔은 섭리의 법칙을 이성의 법칙으로 바꿔 놓고 이러한 사상을 토대로 삼았다...
헤겔의 세계 정신은 한 손으로는 섭리를, 또 한 손으로는 이성을 꽉 움켜쥐고 있다...(187)
아담 스미스와 헤겔의 제자인 마르크스는 합리적인 자연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라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이 점에서는 헤겔과 마찬가지였지만, 이번에는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형태에서 마르크스는 인간의 혁명적 이니시어티브에 대응하여 합리적 과정을 통해 발전하는 법칙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견해로 전환하게 되었다...
마르크스의 마지막 종합(綜合)에서는 역사는 서로 분리할 수 없고 일관된 합리적 전체를 형성하고 있는 세 가지 일을 의미했다...
곧 첫째는 객관적인 법칙, 주로 경제적 법칙에 따르는 사건의 움직임, 둘째는 이에 대응하여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이룩되는 사고(思考)의 발전, 셋째는 이에 대응하여 일어나는 계급 투쟁이라는 형태의 행동(이러한 행동이 혁명의 이론과 실천을 조화시키고 통일한다)이다...
마르크스가 제시하는 것은 객관적 법칙과 이 법칙을 실천에 옮기는 의식적 행위의 종합, 때때로 (오해를 일으키기 쉬운 말이기는 하지만) 결정론(決定論)이라고 불리는 것과 주의주의(主意主義)라고 불리는 것의 종합이다...
마르크스는 항상 사람들이 지금까지 의식하지 못한 채 따라 온 법칙에 대해 말한다...
그는 자본주의 경제와 자본주의 사회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허위의식(虛僞意識)에 대해 여러 번 주의를 환기시켰다...
"생산과 유통(流通)의 당사자의 마음 속에서 형성된 생산법칙의 개념은 참된 법칙과는 매우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마르크스의 저술에서 의식적인 혁명적 행동을 요구하는 현저한 예들을 찾아볼 수 있다...
포이에르 바하에 대한 유명한 테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철학자들은 오직 세계를 여러 가지로 해석해 왔으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變革)시키는 것이다."...
또한 <공산당 선언>에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그들의 정치적 지배권을 이용하여 착실하게 부르주아지로부터 모든 자본을 탈취하고 모든 생산수단을 국가의 수준에 집중시킬 것이다."...
또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리메르 18일>에서 마르크스는 "1세기 동안의 과정을 통해 모든 전통적 관념을 폐기하는 지적(知的) 자기의식을 말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허위의식을 폐기하고 계급 없는 사회라는 참된 의식을 도입할 존재는 프롤레타리아트였다...
그러나 1884년의 혁명의 실태는 마르크스가 일을 시작했을 때에는 임박할 것 같던 발전에 대해 심각하고 극적인 좌절이었다...(188)
현대라는 역사적 시기로의 전환은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완성되었으며, 현대에 있어서는 이성의 일차적 기능은 이미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지배하는 객관적 법칙의 이해에 있지 않고 오히려 의식적 행동에 의한 사회와 이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의 개조(改造)에 있다...(190)
마르크스의 경우 "계급"은 비록 엄밀하게 정의되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으로는 경제적 분석에 의해 확립되어야 할 객관적 개념으로 남아 있다...(190)
레닌의 경우에는 계급으로부터 "당(黨)"으로 강조점이 옮겨진다...
당은 계급의 전위(前衛)를 형성하고 계급 속으로 계급의식(階級意識)이라는 불가결한 요소를 주입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경우, "이데올로기"는 부정적 용어(자본주의적 사회질서의 산물)다...
레닌의 경우에는 "이데올로기"는 중립적 또는 적극적 용어(계급의식을 가진 지도자라는 엘리트가 계급의식을 가질 가능성이 있는 노동자 대중에게 심어 놓은 신념)로 변한다...
계급의식의 형성은 이미 자동적 과정이 아니고 오히려 시도해야 할 과제다...(190)
이성에 새로운 차원을 첨가한 현대의 또 한 사람의 이대한 사상가는 프로이트다...
프로이트는 오늘날도 조금은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남아 있다...
그는 교육으로 보나 배경으로 보나 19세기의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자였으며, 개인과 사회의 근본적 대립이라는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오해하기 쉬운 전제를 의심없이 받아들였다...
프로이트는 인간을 사회적 존재라기보다는 오히려 생물학적 존재로 보았으므로, 사회적 환경도 인간 자신에 의한 창조와 개조의 끊임없는 과정으로 다루지 않고 역사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다루는 경향을 갖고 있었다...
그는 사실상은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관점에서 보았다고 해서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언제나 공격을 받았고, 그 때문에 반동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러한 비난은 프로이트에게는 부분적으로만 타당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현재의 신프로이트 학파로 말미암아 훨씬 충실한 정당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신프로이트 학파는 부적응(不適應)은 개인에게 내재(內在)하고 사회구조에는 내재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고, 개인을 사회에 적응시키는 것을 심리학의 본질적 기능으로 보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사(人間事)에 있어서 비합리(非合理)의 역할을 확대시켰다는 잘 알려진 또 한 가지 비난을 받고 있는데, 이러한 비난은 전적으로 잘못이며 인간 행위에서 비합리적 요소를 인정하는 것과 비합리를 숭배하는 것을 조잡하게 혼동하고 있다...(190)
프로이트는 절대적 합리주의자, 오히려 소박하다고 할 만한 합리주의자였다...
인간 행동의 무의식적 근원(無意識的 根源)을 의식과 합리적 탐구를 열어 놓음으로써 우리의 지식가 이해의 범위를 넓힌 것, 이것이 프로이트가 이룩한 일이었다...
이것은 이성의 영역의 확대였고, 자기 자신을, 따라서 자신의 환경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힘의 증대였다...
그리고 이것은 혁명적이고 진보적인 성취(成就)를 나타낸다...
이러한 점에서 프로이트는 마르크스의 일을 보완하고 마르크스의 일과 충돌되지 않는다...
프로이트 자신은 비록 고정 불변의 인간성이라는 관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더라도, 인간 행동의 근원을 보다 깊이 이해함으로써 합리적 과정을 통해 이러한 근원을 의식적으로 변경시키는 도구를 마련해 주었다는 의미에서 프로이트는 현대 세계에 속한다...(191)
- S. Leathes <제1차 케임브리지 근대사 (1910)> 마지막 권 中 -
의식적 노력에 의한 사회 개혁(社會 改革)이 가능하다는 믿음은 유럽의 지배적인 정신적 조류다...
이러한 믿음은 자유를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하던 믿음을 대신하게 되었다……...
현재 유행되고 있는 이러한 믿음은 프랑스 혁명 당시의 인권(人權)에 대한 믿음과 마찬가지로 뜻깊고 유익한 것이다...(194)
과학조차도... 작업가설(作業假說)(이러한 가설에 의해 인간은 자연을 자신의 목적에 이용하고 환경을 변경시킬 수 있다)의 형성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195)
사회적 혁명... 기술적 혁명... 과학적 혁명...(196)
생산의 합리화는... 곧 인간의 합리화를 의미한다...(197)
혁명에서의 이성의 확대라고 말한 것은 역사가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성의 확대는 본질적으로는 지금까지는 역사의 외부에 있던 집단과 계급, 민족과 대륙이 역사의 내부에 등장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203)
민중은 전사시대(前史時代)의 민중과 마찬가지로 역사보다는 오히려 자연에 속해 있었다...
민중이 점점 더 사회적·정치적 의식을 갖게 되고, 과거와 미래를 가진 역사적 실체로서의 각각의 집단을 자각하게 되고, 완전히 역사에 등장하게 될 때 근대사는 시작된다...
사회적, 정치적 및 역사적 의식이 대부분의 인구에게 퍼지기 시작한 것은 소수의 선진국에 있어서도 겨우 2백 년밖에 되지 않는다...
완전한 의미에서 역사에 등장핶고 이미 식민지 행정관(植民地 行政官)이나 인류학자(人類學者)의 대상이 아니라 역사가의 대상이 된 민족들로 구성된 세계 전체를 상상하는 것도 오늘날에 이르러서 비로소 가능해진다...(204)
과학이든, 역사든, 사회든 이난 문제에서의 진보는 오직 현존 제도의 단편적 개선을 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성의 이름으로 현존 제도에 대해, 또한 공공연하든, 은밀하든 현존 제도의 전제에 대해 근본적 도전을 하는 인간의 결의를 통해 이룩되는 것이다...(211)
그래도 역시... 그것은 움직인다...(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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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는 언제나 미래를 생각하며 역사를 써야 한다...(213)
카아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역사가가 쓴 역사철학서이며... 사변적 역사철학이 아닌... 비판적 역사철학에 포함된다...(214)
<역사란 무엇인가>는... 역사가가가 역사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주제로 하고 있는 책이다...(214)
카아는 역사란 끊임없이 움직이는 과정이고,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이라고 본다...(214)
과거의 사실이 역사의 대상이다...(214)
역사가가 과거의 어떤 사건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그 사건을 해석하고 평가하여 재구성할 때 역사적 사실이 확립된다...(215)
역사적 사건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기준은 현재에 있다...
따라서 역사란 "현재의 역사가와 과거의 사실의 끊임없는 대화"가 된다...(215)
역사란...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인간의 집단으로서의 사회에 의해 형성된다...(215)
역사를 바로 보기 위해서는 사회의 움직임을 보아야 한다...(215)
사회는 역사가에 대해 이중의 중요성을 갖는다...
첫째로, 역사가는 과거의 사회를 연구대상으로 한다...
둘째는, 역사가 자신도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사회에 속해 있어서 그 사회의 관심과 가치관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가 된다...(215)
오늘날의 자연과학도 불변의 객관적 법칙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유효한 작업 가설의 설정을 추구한다...(216)
역사가는 도덕적 평가를 제외할 수 없다...(216)
그 기준이 유효한 일반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합리적인 것이다...(216)
역사는 언제나 새롭게 해석될 수 있고, 우리들의 역사를 보는 눈은 절대적일 수 없으며, 상대적이다...(216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이다...(217)
대화로서의 역사의 기능은 현재에 비추어 과거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고, 과거에 비추어 현재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며,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통해 보다 좋은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다...(217)
세계적 파멸에 대한 예언은 미래에 대한 우리들의 계획을 가로막을 만큼 확실한 것은 아니므로……우리를 위협하는 위기를 이겨 내고 살아 남을 것이고 역사는 계속될 것이라는 전제에서 우리들의 사회의 현재와 마래를 검토해 본다면, 우리들이 이러한 위기를 조성한 과학과 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인류의 미래는 아주 밝아질 수도 있고, 아주 어두워질 수도 있는 것이다...(218)
역사결정론자의 입장에 서면 우리는 편한 마음으로 인간의 역사는 진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마르크스에게 말하라면 공산주의 사회라는 절대적인 목표를 향해 가는 필연적 과정이 인간의 역사고, 이 역사는 변증법적인 발전법칙에 따라 이상사회를 향해 진보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카아는 이러한 입장을 과학적이라고 말하면서 인류의 역사의 필연적 진보를 주장하더라도 공산주의 사회가 실제로 실현되기 이전에는 마르크스의 주장이 맞는다는 증거를 가질 수 없고, 따라서 마르크스의 주장은 단지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219)
역사의 인과계열은... 필연의 과정은 아니더라도, 진보의 과정이기는 하다...
역사의 필연적 진보를 말할 수 없다고 해서 역사가 진보하지 않는다는 논리적 귀결은 나오지 않는다...
획득된 기술이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됨으로써... 역사는 진보한다..(219)
희망은 이성의 확대가 기술의 발달을 앞질러서 기술을 통제하게 되는 것이다...(221)
이성의 확대, 곧 개인화의 증대가 일치성이나 획일성을 요구하는 사회적 압력의 약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221)
자기의식의 강화는... 고립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자기 자신의 위치와 책임을 자각하는 것이다...(222)
민중의 자기의식이 확고한 역사의식으로 깊어지고, 이성의 확대가 획일화의 요구를 제압하고, 세계가 하나의 통일된 역사의 무대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224)
이론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가능성의 진보적 발전에 대한 믿음과 희망, 그리고 이 가능성을 실현하려는 각오와 용기다...(225)
역사에서의 절대자는 과거나 현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쪽으로 움직여 나가고 있는 미래에 있다...(226)
이성의 확대, 개인의식의 고양, 역사의식의 확산 등으로 표현해 온 것은 역사에서의 인간의 자율성을 말하는 것이다...(236)
역사에 대한 책임감을 상실하지 않는 한, 우리는 뜻깊은 실패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과거의 뜻깊은 실패들이 오늘의 자유의식, 평등의식의 진보를 성취했다...(227)
나는 격동하는 세계, 진통하는 세계를, 바라볼 것이고, 어떤 위대한 과학자의 오래된 말로 대답할 것이다...
그래도 역시... 그것은 움직인다...
오직 인간에 의해서만...(227)
- E. H. 카아 <역사란 무엇인가>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