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이 극찬한 절경, 옥순봉으로 떠나는 여행
제천 여행 첫 날에 월악산 정상에 오른 뒤 기진맥진한 상태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는 청풍호 옆에 세워진 청풍리조트로, 제천에서는 리솜 포레스트 다음으로 유명한 리조트다. 청풍리조트 앞은 에메랄드빛의 청풍호가 주변의 봉우리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를 뽐낸다. 월악산을 오르기 힘들어하는 이라면 청풍리조트 앞에 있는 호수를 따라 걸으며 월악산을 멀리서 감상할 수 있다. 월악산의 정상인 영봉은 멀리서도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신령스러운 산’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청풍리조트에서 푹 쉬고 나니 월악산 국립공원의 다른 봉우리들을 오르는 데 문제가 없다고 느꼈다. 월악산 국립공원은 월악산 뿐 아니라 금수산, 옥순봉, 구담봉, 제비봉, 도락산, 만수봉 등 수많은 산들을 포함하고 있다.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인 백두대간을 포함하고 있는 월악산 국립공원의 상징은 바로 남한강과 충주호 뒤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봉우리들이다. 앞에서 말한 산들 중 어떤 산들을 가도 감탄이 나오는 풍경을 만나볼 수 있지만, 힘이 가장 덜 드는 산은 옥순봉과 구담봉이다. 높이가 각각 288m, 330m에 불과한 봉우리에 올라서면 월악산 영봉에 올라 보는 풍경만큼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이런 연유로 옥순봉은 제천 여행 일정에 빠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월악산 국립공원과 함께 인근의 청풍 문화재 단지・장락동 칠층모전석탑을 둘러보며 제천의 자연과 역사를 함께 볼 수 있는 뜻깊은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국립공원 이야기 25 - 옥순봉과 구담봉
옥순봉 (玉荀峰)은 비가 갠 후 희고 푸른 여러 개의 봉우리가 죽순이 솓아나듯 우뚝우뚝 솟아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옥순봉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남한강 위로 솟아오른 봉우리가 매우 특이하고 아름답다.
옥순봉은 조선 시대 제천 (당시 청풍) 땅인데 이 곳이 단양팔경에 속하게 된 것은 조선 명종 때 단양군수였던 이황이 옥순봉을 단양에 속하게 해 달라고 청풍부사에게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자 옥순봉 석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 새기면서 이 곳을 단양의 관문으로 정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인근의 구담봉과 함께 오래전부터 시인묵객들의 시문이 다수 전하는 절경지로 손꼽힌다.
구담봉 (龜潭峰)은 절벽 위의 바위가 거북이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구담봉의 장회나루 쪽은 퇴계 선생을 사모하던 기녀 두향의 묘가 있다. 조선 인종 때 백의재상이라 불린 주지번이 낙향하여 칡넝쿨을 구담봉의 양쪽 봉우리에 걸어 타고 다녀 신선이라 불렸다는 전설 등 이야기가 많은 명승지다. 구담봉은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 펼쳐지는 깎아지른 장엄한 기암절벽이 제비봉과 금수산, 멀리는 월악산에 감싸여 있다. 이황, 이이, 김만중 등 수많은 학자와 시인 묵객이 그 절경을 극찬하였으며, 지금도 충주호에서 배를 타며 유람할 때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고 있다.
옛 청풍군의 지도. 옥순봉과 구담봉이 보인다.
옥순봉과 구담봉은 단양팔경 (丹陽八景)이자 국가 명승으로 지정된 봉우리로,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에 대해 노래하였다. 월악산 국립공원의 일부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으며, 사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땅, 청풍
청풍리조트에서 아침을 먹은 뒤 차로 10분이면 도착하는 청풍문화재단지로 향했다. 청풍은 옛날부터 큰 고을로 여겨질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충주댐 건설로 청풍면 후산리・황석리, 수산면 지곡리에 있던 마을이 수몰되고 만다. 남한강과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마을이 품고있던 수많은 문화재도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충청북도는 1983년부터 3년간 수몰될 문화재를 원형대로 이전해 단지를 조성했다. 이렇게 조성된 단지가 청풍문화재단지이며, 청풍호반벚꽃길과 청풍호반케이블카가 인근에 위치해 제천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손꼽히고 있다.
팔영루
단지 안에는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문물이 번성했던 청풍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향교・관아・민가・석물군 등 43점의 문화재가 단지에 있으며, 민가 4채 안에는 생활 유품 1,6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고려 때 관의 연회 장소로 사용된 청풍 한벽루와 청풍 석조여래입상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청풍부의 관문인 팔영루와 금남루, 응청각과 청풍향교 등의 옛 건축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 외에도 송덕비, 선정비, 열녀비, 공덕비 등이 세워져 청풍의 오랜 역사를 전한다.
한벽루
청풍의 대표적인 문화재는 보물 제528호로 지정된 한벽루다. 고려 충숙왕 4년 (1317년)에 청풍현이 군으로 승격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관아의 부속건물이다. 1972년 대홍수로 인해 무너지자 1975년에 원래의 양식대로 복원하였다.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팔작지붕에 주심포 양식으로 지어져 고려시대 건물이라는 것이 잘 드러난다. 특이하게도 누의 오른쪽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계단식 익랑이 있다.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
높이가 341cm인 거대한 불상도 이 곳에서 만날 수 있다. 전체적인 조각 양식으로 볼 때 통일신라 말기 (10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불상은 충주댐 건설로 인해 수몰지인 청풍면 읍리에서 옮겨온 것이다. 불상의 얼굴 모양은 풍만하고 자비로우며, 두툼한 양볼에 인중이 뚜렷하고 두 귀는 양어깨까지 드리워졌다. 목에는 삼도가 새겨져 있으며, 왼손은 땅을 가르키고 있다. 옷은 통견의를 걸치고 안에 속내의를 받쳐 입었으며, 배에서 매듭을 지어 V자 형태로 대좌까지 내려왔다.
조선시대까지 존속했던 청풍군은 1914년 일제시대 때 행정 통폐합으로 제천군에 합병되었다. 청풍군의 중심지였던 읍내면은 제천시와 통합된 후 청풍면으로 개칭하여 옛 청풍군의 이름과 역사를 되살렸다. 하지만 펑풍도호부와 군 청사가 사라지게 되자 그 유명했던 청풍군은 발전이 정체되어 한적한 고을로 남아있었다. 그들의 화려한 역사는 청풍 곳곳에 남아있던 관아 시설로 확인할 수 있다. 발전이 더뎠던 탓인지 청풍의 관아는 보존이 잘 되어 있었고 충주댐으로 인해 옛 중심지가 수몰되어 청풍군의 흔적은 문화재 단지에서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옛 관아 건물들은 다행히 잘 남아있지만 원래 마을이 어떠한 모습이었는지는 옛 사진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문화재 단지에는 오래된 고가도 있다. 후산리 고가, 도화리 고가, 황석리 고가가 그것들인데 모두 조선 말기에 지어진 기화집이다. 후산리 고가는 ㄱ자 형의 팔작 기와집으로 중부지방의 보편적인 민가 유형이다. 도화리 고가는 ㄷ자 형태로 지어진 우진각 기와집으로 , 둥근 통나무 굴뚝과 부엌 옆에 설치된 어둠을 밝히는 시설은 태백산맥 일대의 산간지대 민가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황석리 고가는 안채와 문간채로 이루어진 민가 건물로, 안채는 팔작 겹머리 기와집이며, 문간채는 초가집이다.
청풍 문화재 단지에서 바라보는 청풍호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워 감탄을 자아낸다. 특히 청풍호가 생긴뒤 심어진 벚나무들은 봄에 벚꽃길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최근에 지어진 케이블카를 타면 비봉산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다. 비봉산에 올라가면 왜 이 곳이 청풍명월 (淸風明月, 맑은 바람과 밝은 달)로 불리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문화재 단지를 뒤로 하고 둘째날 일정의 목적인 옥순봉으로 향했다. 시간과 체력이 넉넉하다면 옥순봉과 구담봉을 당일에 오르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눈이 발목까지 쌓여있는 데다 집까지 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걸 감안하면 둘 중 하나만 오를 수밖에 없었다. 친구와 나는 높이가 조금이라도 낮은 옥순봉에 오르기로 했다. 288m밖에 되지 않는 자그마한 봉우리지만 겨울철 눈이 쌓인 등산길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1시간 30분 정도 오르니 절경이라 부를 수 있는 경치가 눈 앞에 펼쳐졌다. 조선시대 산수화에 전혀 관심없는 친구도 옥순봉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보자마자 ‘와, 조선시대 그림같은 풍경이다!’라고 감탄을 마지 않았다. 겨울에 눈쌓인 금수산과 청풍호의 풍경은 정말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퇴계 이황이 단양에 부임했을 때 청풍부사에게 옥순봉을 단양에 달라고 한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눈 쌓인 봉우리와 푸른 하늘, 그리고 에메랄드 빛의 청풍호가 어우러진 풍경, 국립공원에서도 오직 월악산 국립공원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인 것이다.
옥순봉에 오른 뒤 제천 시내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제천은 약선밥상이 유명한 고장으로, 다채로운 야채로 이루어진 한정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제천시내에 몇몇 유명한 식당이 약선밥상을 제공하고 있어 발품을 팔아 제천시내까지 갔다. 먹으면서 건강하다는 생각이 드는 음식이 많지 않은데 제천의 약선밥상은 그런 느낌을 준다. 생전 처음보는 요리도 있지만 흥미를 더하는 데다 제각기 다른 맛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마치 간장게장처럼 밥도둑을 만난 느낌이랄까.
제천 장락동 모전석탑
집으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제천시내에 있는 유명한 석탑을 보기로 했다. 제천시내에 있는 7층 모전석탑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 만든 탑으로, 전탑을 모방하였다하여 모전석탑이라 불린다. 7층의 거대한 높이의 석탑 기단은 자연석으로 되어 있으며, 그 위로 벽돌을 쌓아 7층의 탑신을 올렸다. 1층의 남쪽과 북쪽에는 사리를 두는 감실이 있다. 머리 부분에는 머리 장식이 없어지고 장식 받침인 노반(露盤)만 남아있다. 만드는 형식이나 돌을 다듬어 쌓아올리는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월악산 다음은 월출산!
월출산에선 볼 수 없는 호수의 풍경
충북에 달이 뜨는 산으로 월악산 (月岳山)이 있다면, 전남에는 월출산 (月出山)이 있다. 월악산의 상징으로 신령스러운 봉우리인 영봉 (靈峯)을 꼽을 수 있다면, 월출산은 무엇을 상징으로 꼽아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수려한 기암괴석이 곳곳에 널려있다. 이름난 절이 없는 월악산과 달리, 월출산은 도갑사와 무위사라는 이름난 절까지 갖추고 있다. 다만 월출산은 월악산에서 남한강과 봉우리들이 만들어내는 산수화같은 풍경이 없을 뿐이다. 다음 국립공원 여행기는 남도를 대표하는 산인 월출산이 주인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