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조선왕릉 탐방 [파주 장릉] 후기 <1>
<2023년 9월 9일>
518년 조선 왕조의 숨결을 찾아 떠나는 우리들의 여정!
아홉 번째 탐방은 16대 인조와 인열왕후의 능인 [장릉] 탐방 기록입니다.
1635년(인조 13), 인조의 첫 번째 왕비 인열왕후 한씨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 1636년 파주 운천리에 능을 조성하였고 인조 본인의 능자리도 마련,
1649년(인조 27)에 인조가 세상을 떠나자 쌍릉의 형태로 능을 조성하였다.
그러나 장릉에 빈번한 화재 발생, 뱀 등의 잦은 출몰 등 이변이 계속되어
1731년(영조 7)에 현재의 자리에 합장릉 형태로 천장하였다.
♣ 조선왕릉 40기 중 가장 북쪽에 위치, 한양에서 37km거리 ♣
인조(1595~1649, 재위1623~1649)는 추존 원종(정원군)과 인헌왕후의 장남 능양군으로,
1623년 서인 정권과 함께 인조반정을 통하여 '廢母殺弟"의 광해군을 폐위하고 왕위에 올랐다.
즉위 초, 공신책록에 불만을 품은 이괄의 난(1624년)으로 한양을 버리고 공주 공산성으로 피난,
1627년(인조 5)에 정묘호란(후금)이 일어나 강화도로 피난 후 형제국으로 화의하였으며,
그후에도 숭명배금정책 지속으로 1636년 청 태종(후금이 '청'으로 국호 변경)이 일으킨
병자호란으로 남한산성으로 파천, 46일만에 항복하여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였다.
♣ 재위 기간 중 세번이나 한양을 버리고 파천한 비운의 임금 ♣
인열왕후 한씨(1594 ~ 1635)는 서평부원군 한준겸(본관 청주)의 딸로
1610년(광해군 2)에 능양군과 가례를 올렸으며, 1623년에 인조가
반정으로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 42세에 세상을 떠났다.
♣ 4남 중 장남 소현세자, 차남 봉림대군 - 17대 효종 ♣
폐모살제의 패륜을 응징하고 친명배금 명분으로 반정하였으나,
그토록 치를 떨던 오랑캐 나라와 결국은 군신관계를 맺으며,
삼배구고두례를 올리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인질로,
수십만의 백성이 포로가 되어 끌려가는 참변을 ~~~.
그리고 독살이든 아니든 소현세자의 죽음과 함께
며느리 강빈, 두 손자까지 앞세운 그의 심경은?
모르긴해도 '내가 이럴려고 반정을 했나?!?!'
탐방코스는 [장릉]매표소 ~ 재실 ~ 홍살문 ~ 정자각 ~ 비각 ~ 왕릉숲길 ~
[장릉] 매표소 ~ <버스 이동> ~ 헤이리마을 점심 및 헤이리예술마을 산책.
참가자 (25명)
간석걸 감사해 금사철 꽃게 다금바리 망아지 망우산 멍게 무지개 바이칼 소풍 숭어 아구 아라다 아피오스
여행 우와 원님 유남 자넷 조옥선 천마산 여행 청파 해바라기 햇님 ~~~~<존칭 생략>
※ 무지개 님은 청산 님, 소풍 님은 여행동행 님의 새 이름입니다.
※ 헤이리 예술마을 산책 기록은 2편에 이어집니다.
만남의 장소 : 홍대입구역 1번출구
2200번 버스로 [법흥1리 이주단지] 정류장까지 이동, (통상 버스 탑승시간 1시간 정도이나 오늘은 조금 더 걸렸다)
좌측은 레스토랑 [로빈의 숲]
담장에 끼인 은행나무.
[장릉] 매표소까지 10분 남짓 소요
미리 와서 대기 중인 반가운 회원님들.
[쉼터]에서 오늘 탐방 일정 설명, 그리고 우수회원 등업(숭어 님, 여행 님) 축하 및 향후 도보 계획 공지 등.
밑동이 아름다운 느티나무.
백당나무 열매, '마음'이란 꽃말을 가진 새하얀 꽃도 아름답지만 열매 또한 매력적이다.
좀작살나무 열매, 보라색 열매가 흔하지만 흰열매가 달리는 흰작살나무도 있다, 꽃말은 '총명'
*** '좀'은 작다는 뜻, 작살나무보다 꽃이나 열매가 작다.
재실
대추 열매가 주렁주렁
병자호란으로 인해 생긴 말들, 환향녀. '오랑캐 胡'로 시작되는 호로자식, 호주머니, 호떡, 호밀 등등
*** '호빵'은 팥고물이 든 찐빵을 '호호 불면서 먹는다'는 의미로 삼립식품 회장님이 직접 작명하신 것이라 하니 오해 없으시길!
금천교를 지나 홍살문으로 ~~~.
홍살문, 판위, 향로어로, 수라간, 수복방, 정자각, 비각, 예감, 산신석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향로와 어로 그리고 양쪽에 변로까지 ~~~.
정자각 신문을 통해 본 능침
인조 얘기로 담소를 나눈다. 오늘 인조 임금 귀가 많이 가렵겠단 말에 웃음 바다.
비각
1731년(영조 7) 파주 운천리에서 여기로 천장한 후 세운 표석.
왕릉 숲길 걷기
오곡백과 무르익는 초추의 양광, 햇살이 엄청 강하다.
다시 [쉼터]로 원점 회귀, [쉼터]에서 숨 좀 고르고, 헤이리 예술마을로 이동예정
추석 전에 추수는 어려울 듯. 자세히 보니 '피'가 많구나.
[로빈의 숲]
사과나무 감나무, 가을은 역시 결실의 계절.
헤이리 예술마을까지 버스 이동.
[쉼골전통된장] 집, 대기 손님이 너무 많아, 칼국수가 맛있는 집 [오벧에돔]으로 이동, '개운한 칼국수'로 오찬
[오벧에돔] 앞 화단에 만난 '꽃과 나비'
1623년 4월 11일 밤(광해군 15년 음력 3월 12일), 반정군이 모일 때까지 능양군(인조)은 이 별서에서 대기하다가 합류.
*** 아버지 정원군의 별서였던 이곳에서 능양군이 서인들(이귀 기서 김류 등)과 반정 모의를 하였으며,
1695년(숙종 21) 이를 기념하기 위해 숙종이 기념비와 비각을 세웠다.
(앞면 글씨는 숙종 어필이며, 뒷면은 숙종이 짓고 글씨는 이항이 썼다.)
[인조대왕 용잠지시 별서 유기비]
위치는 구산역 2번출구 부근에 있다.
덕수궁 석어당, 살구꽃이 참 아름답게 피는 전각이다.
*** 광해군에 의해 석어당(덕수궁)에 유폐되었던 인목대비, 인조반정 성공 후, 광해군이 석어당 마당에서 대비 앞에 꿇어 앉아
대비가 직접 적은 36가지의 죄목을 조목조목 읽어 나간 후, 강화도로, 후에 제주도로 귀양을 가게 된다.
우측이 석어당, 가운데 건물이 즉조당, 인조 즉위식은 즉조당에서 거행.
잠실역 롯데백화점이 있는 석촌호수 서호 부근에 세워진 [삼전도비], 원래 이름은 '대청황제공덕비'
*** 우측의 귀부는 처음 만든 비석 귀부. 비석의 크기가 너무 작다고 '청'의 지적을 받고 다시 크게 만들었다고 전해 진다.
1895년(고종 32) 청일전쟁 종전 후, 땅속에 묻었으나, 1917년 일제가 다시 세우고, 1956년 다시 묻었다가 1963년 다시 세웠으나,
비석 부근 삼전동 동네 주민들의 반대 여론도 있고 하여, 2010년 고증에 의해 원래 위치와 가장 가까운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
*** 헤이리 예술마을 산책 기록은 2편에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사우디서 완전무장하고 왔더니 모기~등,등들~ 거비나서 마니들 수벘네요~
그라고 칼국수맛이 막걸리안주로도 조았습니다~ 감솨합니다.(^^0^^)
ㅎ ㅎ ㅎ
어쩌다 보니 술이 없는 식당으로 가게됐네요.
속으로 이럴수가 했습니다.
덕분에, 모처럼 시원한 맥주 한 잔 잘 마셨습니다.
언제나 즐겁게 참석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능도 딱 하나 그리고 헤이리 마을
단조로운 코스라 생각했는데 여기저기 잘 구경하며 다녔습니다
가을이 온줄은 알지만 요즘처럼 하늘이, 구름이 아름다울까요
이런 날씨가 좀더 오래 지속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지고 ~~~.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아~~~' 할 때
다이돌핀이 마구마구 샘솟는다지요.
참 아름다운 하늘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왕릉 탐방에 가을 나들이까지한 날이네요.
햇살은 따가와도 가을은 벌써 오고 있고...
우동길에서 항상 계절의변화를 함께합니다.
우동길은 매우만족^^
후기까지 매우만족입니다^^
조석으론 분명 가을이지만, 낮에는 한여름 날씨라 내심 걱정했었는데,
모두들 솔선수범, 적극 협조해 주셔서 무사히 잘 마쳤네요.
계절의 변화가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느낀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