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16 달날 날씨: 하늘은 파랗고 햇살은 따갑고 바람은 살랑살랑 분다.
모두 모여 아침열기-송편 빚기-점심-청소-한가위 몸놀이-마침회
[솔떡의 세계]
고운 한복을 입은 옹달샘 아이들이 1층 마루를 환하게 밝힙니다. 한가위 송편 빚는 날이라 모두 한복을 입고 오자 했는데 까먹은 아이들이 많습니다. 옹달샘 2학년 여자 아이들이 모두 입고 왔는데 정말 예뻐요. 선생들이 같이 사진을 찍는데 수줍어하며 얼굴을 감춥니다. 환하게 웃는 아이들 덕분에 아침이 행복합니다. 다섯 모둠으로 나눠서 1층과 2층에서 송편을 빚는데 앞치마 두른 정우와 민주가 꼭 요리사 같습니다. 어머니들이 많이 오셔서 아이들과 선생들을 돕습니다. 원서현서어머니, 동엽어머니, 근학어머니, 지우정우어머니, 수빈지빈어머니, 승민어머니 부지런한 손놀림 덕분에 솔떡 빚고 찌는 일이 빨리되네요. 이렇게 음식하는 날에는 통합 모둠으로 공부를 하곤 하는데 이번에도 이끔이 노릇을 하는 6학년과 5학년이 척척 일나누기를 해요. 세영, 근학,희주, 한주, 3학년 민주, 정우, 호연이랑 같은 모둠이 됐는데 역시 일을 잘하는 아이들이라 쌀가루 체로 곱게 걸러서 반죽을 하는데 우리 모둠이 가장 빠르다고 좋아합니다. 빠르게 하는 것 보다 정성들여 하는 것이 중요한 줄 알지만 얼른 마치고 놀고 싶은 마음이 늘 앞서는 아이들인걸요. 또 송편빚기 세계가 시작됩니다.
"네 솔떡 빚는 세계에서는 정성이 중요하죠. 땀을 뻘뻘 흘리며 반죽을 치대야 해요. 그래야 쫀득쫀득한 송편을 먹을 수 있지요."
"선생님 저번 자연속학교 때는 김밥의 세계, 저번에는 요리의 세계, 솔잎의 세계 하더니 이번에는 솔떡의 세계네요."
"그렇지. 우리 일하는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날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지. 오늘도 달인의 경지로 달려가는 거야."
선생의 말투와 늘 하는 요리의 세계라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으며 솔떡을 빚습니다.
이번에는 송편모양으로 10개 넘게 빚은 다음 자기가 빚고 싶은 모양으로 만들기로 했어요.
이웃들과 나눠먹으려면 예쁜 송편이 좋을 것 같아서지요.
그래도 얼마 안가 끝내 우주선과 버섯 송편이 나옵니다. 아이들이 부르는 사기송편은 소가 들어있지 않는 걸 말하는데 한두 개 나오기 시작해요. 도넛, 막대기, 돌, 동물, 공 모양 송편이 자꾸 보입니다. 아이들이 빚은 송편 마무리는 선생이 돕는데 한 번 더 눌러줘 모양도 잡고 소가 나오지 않도록 해줍니다. 쌀을 불리고 방앗간에 가서 빻고 산에 가서 솔잎을 따다 송편을 빚어 찌다보니 일찍부터 아이들 모두 한가위 준비를 하는 셈입니다. 아침부터 소 챙기랴 모둠마다 일 나누랴 전체 이끔이 조한별 선생이 바쁩니다. 뿌리샘 아이들과 매작과(타래과)랑 식혜도 만들더니 솔떡 준비부터 척척 일을 알맞게 나누고 이끄는 모습이 참 멋있습니다.
낮에는 한가위 몸놀이를 해요. 성준이 생일잔치도 있고 송편도 줄곧 쪄야해서 멀리 가지 않고 학교 마당에서 합니다. 자치기와 윷놀이를 솔떡 빚기 모둠으로 나눠 하는데 아이들 소리가 동네를 울리더니 끝내 아랫집 아저씨로부터 조용히 해달란 소리를 듣고 맙니다. 참 미안합니다. 몇 개월만 더 참아달랄 수밖에 없네요.
자치기를 처음하는 아이들이 있어 푸른샘 1학년 아이들이 도움말을 줍니다. 새끼자를 멀리 뜨고 쳐서 한 자 두 자 세가며 거리를 재가는 놀이 속에서 아이들은 규칙을 배우고 서로를 알아갑니다. 역시 놀다보면 말이 헛나오고 서로를 슬프게 하는 일이 생기네요. 갑자기 한 아이가 소리를 크게 지르며 엉엉 울어 모두가 깜짝 놀랐어요. 무슨 일인지 달려가 물었더니 엉엉 울며 말을 하는데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흥분되어 있습니다.
"나한테 잘난척대마왕이라구 하잖아요. 엉엉. 하지 말라고 해도 줄곧 그래요. 엉엉"
"아니 누가 그랬어. 정말 화가 많이 났나보다."
"영영이와 땡땡이가 그래요."
"영영아 땡땡아 정말 그랬어? 이렇게 많이 슬퍼하는데 정말 그랬다면 사과를 해야겠는데."
"미안해."
사과말을 듣고도 아이는 감정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한참을 울고 있는 모습을 보며 마음은 아프지만 선생은 다행이다 싶어요. 자기 마음껏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억울함을 쌓지 않고 터트리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자치기를 마친 뒤 세 아이를 불렀어요. 조금 진정이 되어서인지 서럽게 울던 아이랑 같이 사과를 합니다.
"잘난척대마왕이라고 해서 미안해."
"나도 화 많이 내서 미안해."
다시 일어난 일을 정리해보니 아이들이 더 뚜렷하게 보입니다.
가끔 동무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썼던 아이는 나쁜 뜻은 없지만 툭툭 뱉는 말을 가끔 해서 조심하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화가 많이 나서 엉엉울던 아이도 자기가 한 말이 먼저 생각납니다. 자치기 새끼자로 어미자를 못맞히는 아이를 보고 "넌 그것도 못맞히냐?" 했던 말이 떠오르는 것이지요. 그러자 그말을 들은 아이는 잘난척대마왕이란 말을 하고, 그말을 듣기 싫던 아이는 언젠가 들었던 때까지 떠올라 화가 더 많이 났습니다. 아이들이 슬퍼하면 선생도 슬픕니다. 그래도 늘 행복하고 즐겁게 살다 가끔 나오는 다툼과 아픔은 서로를 자라게 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기회입니다. 어깨 두드리고 마음을 내 이야기를 할 때까지 기다려 들어주는 것이 가장 먼저이고 함께 할 수 있는 말과 몸짓을 찾습니다. 선생은 아이들 세계에서 어설프게 중간자 위치를 취해서는 안되는 줄 압니다. 아이들이 맺힌 거 없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도록 귀기울여듣고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책을 내오도록 도움말을 주고 분위기를 만드는 게 선생 노릇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다가 역시 부족한 선생임을 깨닫습니다. 그저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주면 되는 것을. 아이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이들 세계에서 같이 사는 아이들과 선생들이 슬기를 모아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인 것을.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다시 꺼내듭니다.
내일 한가위를 친척들과 보내려고 일찍 고향으로 가는 아이들이 그소식을 알리는데 고향가는 길이 아주 많이 막힐 것 같아 걱정입니다. 아마 저녁때부터 고속도로가 많이 막히겠지요. 그제는 병원에 계신 어머니랑 통화를 하는데 언제 오냐 물으십니다. 두 분 다 병원에 계셔 이번 한가위는 병원에서 지내지 싶은데 어머니 목소리에 기운이 들어있어 얼마나 좋은지요. 이제 식사를 하실 수 있어 약 먹기도 훨씬 낫다고 하세요. 부모님을 생각하다 문득 책상 위에 놓여있는 피에르쌍소가 쓴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란 책을 펴는데 마음이 불편합니다. 시간에 쫓기지 않기 위해서 삶을 바꿀 게 참 많아 보입니다. 한가로이 거닐기, 듣기, 고급스러운 권태, 꿈꾸기, 기다리기, 내 마음의 시골 고향, 글쓰기, 포도주 한 잔의 지혜, 모데라토 칸타빌레로 삶을 가꾸기에 내 삶이 허락할 수 있는 수준이 뭔가 싶기도 하고, 부모님에게 주어진 시간을 생각하면 자식 노릇이 무엇인지 자꾸 생각하게 되어 그런가 봅니다. 그러다보니 고향 가는 가방에 자꾸 삶을 통찰하고 성찰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을 자꾸 넣게 됩니다. 들고가서 안 읽을 게 예상되면서도 혹시 하며 주섬주섬 챙기는 모습이 참 웃깁니다. 맑은샘 아이들과 공동체 식구들과 으샤으샤 살며 행복해 하다, 고향 생각하니 직면해야 할 현실과 감당해야 할 노릇들이 떠올라 괜시리 걱정하다, 반가워하실 부모님 생각에 행복한 마음은 벌써 시골에 가있네요. 길 위에서 길을 찾기를 바라는 여행자처럼 길을 찾고 싶은 한가위입니다.
첫댓글 선생님과 맑은샘 가족들 모두 한가위명절 잘 보내시고 더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보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