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장/제례 (最新 葬/祭禮) -사후 장/제례에 대한 나의 생각-
민족의 대 명절 추석이 지난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전국 각 고속도로와 기찻길이 고향 찾는 사람들로 북적대었고,
이 명절에 앞서, 음력 7월 그믐 전후에, 벌써 우리들 대부분은
선대의 산소를 찾아 벌초 겸 성묘를 하기위해 주말을 이용해 친족들이 모였다.
부모에 효도(孝道)하고 조상을 숭경(崇敬)하는 것은 백행(百行)의 근본으로
자손 된 사람의 기본 도리라고 믿고 행하며 살아온 민족이기 때문이다.
부모 살아 계실 때는 성심성의껏 봉양(奉養)하고 별세하시면 정성껏 초상(初喪)과
장례(葬禮)를 치루고 제사(祭祀)를 받드는 일을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대 변천에 따라 이 보본감은(報本感恩), 즉 자기가 나서 길러진 근본에
보답하고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는 각자의 인식과 그 실행 방법에도 변화를 가져와야 할
상이한 여건 차이로 인하여,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이 훌륭한 장례(葬禮) 혹은 상례(喪禮)와
제례(祭禮) 문화에도 당연히 간소화 내지 합리화라는 시대적 요청이 대두되기 마련이다.
우리 세대들 대부분은 선대 때부터 대승적 자아(大乘的 自我)와 계세관(繼世觀),
즉 자기라는 것은 자기 가족과 가문(家門)의 선, 후대를 아우르는 자기로 인식하고 몸은
비록 죽을지라도 그의 기(氣)와 영혼은 영생하는 것으로 믿고 향화(香火), 즉 제사의
향불이 대대로 꺼지지 않고 이어져 오는 것이 영생하는 것이지 그 불이 꺼지는 것이
진짜 죽음이라 인식하고, 이 세상 어느 민족보다 유별난 족보제도와 장/제례 문화를
지금까지 계승해 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핵가족화로 인하여 각자 가문의 형편이 다르게 되었고
상이한 종교에다 가문마다의 풍습 및 예법인 가가례(家家禮)도 변하여 다양하게 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오랜만에 친족들이 모였으니 즐거운 놀이로 화목을 다지는 것도
좋았겠지만, 한번쯤은 집고 넘어가야할 이 안 하자니 그렇고 하자니 골치 아픈 문제,
즉 죽으면 장사 지내고 제사 지내는 이 문제에 대해 좀 전향적으로 생각 해 보자.
나서 죽는다는 것은 인간을 비롯한 온갖 생물의 숙명인데 유독 인간만이 “송종의 미덕”
(送終의 美德)이라 하여 장례 혹은 상례는 운명(殞命)-조상(弔喪)-장례(葬禮)-복상
(腹喪)의 절차를 엄숙히 하는데 죽은 것을 섬기기를 산 것을 섬기듯 하고(事死如事生),
상(喪) 중에 제사지낼 때는 없는 것을 섬기는 것은 있는 것을 섬기듯 한다(死亡如事存)고
하여, 초, 재, 삼우(初, 再, 三虞)를 거쳐 졸곡(卒哭)-부제(祔祭)-소. 대상(小. 大祥)-담제
(禫祭)의 절차를 엄숙히 하는 것이 전통 유교 의식(儀式)의 골간이다.
신(神) 또는 사령(死靈)에 대하여 사람이 종교적으로 표하는 의식이 제사며 종교의 원래
모습이라 할 수 있어 신사(神事)가 곧 제사(祭祀)로, 이것은 부족이나 민족의 처한
자연조건, 풍습 및 시대 사항에 따라 표하는 형식과 절차가 다르기 마련이나 중요한 것은
그 표하는 마음은 지극정성이다.
우리 민족이 고래로부터 제례의 대상으로 삼은 것들은 천, 지, 인 (天, 地, 人)에 대한 신과
예컨대, 부여-영고(迎鼓), 고구려-동맹(同盟), 고려-팔관회(八關會) 고구려-사직제(社稷祭),
신라-팔자(八䄍) 등이고, 심지어는 동, 식물에 대한 신도 섬겼으며, 집안 기제(忌祭)의
대상은 조상신(祖上神)이고 형사(亨祀)에는 성현신(聖賢神)을 모시고 호국(護國)을 위해서는
충렬신(忠烈神)을 모신다.
사람이 죽으면 상고 시대에는 순장(殉葬) 또는 생매장(生埋葬)이라 하여 권력자 옆에 따로
산 사람을 파묻는 경우도 있었고 고려장(高麗葬)이라 하여 생산력 잃은 노약자를 현실(玄室)
같은 광(壙) 속에 갖다 버리는 경우도 있었으며 매장할 땅이 협소한 화전민들은
풍장(風葬)과 초분(草墳)으로 시신이 바람과 풀과 같이 사라져 가게 했다. 짚으로 싸 높은 나무에
시신을 매다는 수상장(樹上葬)이 있는가 하면 고인돌을 이용한 지석장(支石葬)은
상고시대 때 우리나라에는 북, 남방형의 다양한 고인돌이 발견되나 일본에는 찾기 어럽다.
사막지대의 일부 유태, 기독, 회교도 인들은 봉분(封墳) 없는 평토장(平土葬)을 하고
우기가 잦고 땅이 진 인더스, 갠지스 유역에는 화장(火葬) 즉, 다비(茶毗)가 유명하고
중국 남방 일부나 티벹 지방에서는 새를 통해 영혼이 하늘로 오르라고 하는 조장(鳥葬)이
있는가 하면 북미 타고타 인디언은 영혼이 승천하기 쉽게 노천장(露天葬)을 하고
우리나라 일부에서는 청상과부나 노처녀가 품은 성(性)에 대한 원귀(怨鬼)를 푸라고
사내들이 많이 오르내리는 고갯길에 하는 노장(路葬)도 있다.
공자께서 이미 “예라는 것은 이치다” (禮也者理也)라 하셨는데도, 즉 무리(無理)는 예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 말 경부터 들어와 시행하기 시작한
송대(宋代)의 주자가례(朱子家禮)는 원래 중국의 예기(禮記)를 기초로 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조 500년 동안 우리의 예론(禮論)은 너무나 형식과 절차를 중요시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나라 지배층들이 사색당파로 갈라져 예의 본질인 그 몸체는 두고
그 가지인 형식이나 절차에 대한 명분 싸움을 하였기 때문에 장/제례에 대한 무리가
오늘까지 우리들 서민층까지 패습으로 남아 전해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제상(祭床)에 대추, 밤 놓은 자리가 맞니 안 맞니, 절할 때 오른손이 왼손 위에 올라가니
왼손이 오른손 위에 올라가니 하고 싸우고 관(棺)이 두꺼워야 좋니 옻칠을 해야 좋니
따위가 오늘까지 웃지 못 할 예로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紙榜)에 기제축(忌祭祝)은
물론이고 묘제축(墓祭祝)을 써 격에 맞춰 독축 정도는 해야 어느 가문의 정상인 수준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세대와 더불어 살고 있는 현하 각 도회지 청. 장년 아들과 손자들의 대다수
생각은 좀은, 아니 너무나 많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현재 우리나라 국민 1인당 평균 주거 공간은 4.3평인데 묘지는 평균 약 15평이나 되고
매년 여의도만한 땅이 새 묘지로 생겨나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연간 4조원에 달하고,
이런 매장 관행이 계속되면 수도권은 3년 전국적으로는 10년 내에 묘지 공급이
한계에 이르게 된다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있는 이 마당에 말이다.
조상을 섬기는 유교 원리에다 조상의 음덕(蔭德)으로 발복(發福)을 기원하는 풍수사상
(風水思想)이 합쳐 우리의 장/제례 문화가 계승되고 있다고 보면, 서양의 장묘 문화는
후손들이 망자(亡者)를 추억하며 쉴 수 있는 자연 학습공간으로 활용하는 있는 점에서
우리와 크게 다르다. 예컨대, 프랑스 파리 페르나세즈 몽다르나스에는 유명 작가나
가수들이 모여 공연도 하며, 영국 런던 켄셀 그린 공동묘지에서는 85종의 새를 볼 수
있게 해 놓았고, 로스엔젤레스 로즈힐 추모 공원에서는 600여종의 장미를 관람하게 해
놓았다. 중국에서는 원래 “장(葬)”이라는 글자가 뜻하듯이, 받침대 위에 시신을 놓고
그 위에 풀을 덮는다는 의미로서, 결국 장례라고 하는 것은 영혼이 쉽게 자연에 회귀할
수 있게 해 놓는 절차에 불과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장/제례도 분명 우리가
살아 있으니 죽은 이후를 논할 수 있는 것이며, 아무리 말하거나 논해도 결국은 산 사람,
즉 후손을 위하고 기준해야 하는 것임에는 다들 이의가 없을 것이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이상의 우리 장/제례 문화에 대한 개요를 알고 더 상세한 것들은 각자
별도로 공부하되, 한번 쯤 나에 대한 사후 장례와 제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자.
1934년 일제 총독부에서 그리고 1969년과 1973년에 5.16 혁명 정부가 발표한
가정의례준칙은 의식(儀式)의 간소화 내지 합리화를 꾀한 것들이라고는 할 수 있으나,
특히 장례의 경우 2001년 개정 공포한 장사 등에 관한 법률과 그 시행 규칙에 의해,
예컨대 묘지 설치를 허가 하면서 간접적으로나마 봉분 매장 보다는 화장을 하여 납골당
(納骨堂) 내지 납골평장(納骨平葬) 등을 하도록 인센티브를 줌으로서 보다 적극적이고도
구체적인 정책을 펴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매장보다는 화장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봉분 매장 보다는 납골장이 해마다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윗 선조들의 기제사도 이제 일정한 날을 정하여 한 날에 모시는 집안이 많아졌으며
도시인 경우에는 특히 모시는 시간도 굳이 자시(子時)가 아니라 저녁 식사 시간쯤에
모시고 각자 제 집에 가야 할 참석자들은 다음날 출근에 지장 없게 하고 헤어진다.
장례는,
1. 사망 확인서 발급 후 2-3일 내에 할 것
2. 화장을 하되 유골은 장지 역내 적당한 수목 밑에 파묻을 것
3. 장지는 15-25평 이내로 선산, 가족묘지 또는 공원묘지에 정하고 정원화(庭園化)할 것
4. 묘는 고조부,모 이하 약 50-100위의 위패 만를 모실 수 있게 한 납패묘일 것 *
5. 장례의식은 가능한 한 가정의례준칙에 따를 것
제례는,
1. 고조부 이하 윗 선조의 기일에 합사(合祀) 할 것
(단, 선친 내외 만 따로 합사하고 싶을 경우에는 그러하되 손자 때는 반드시 윗 선조와 합사할 것)
2. 제사 시작 (강신) 시간은 기일 석식 시간 (19-20:00)으로 할 것
3. 지방, 축문 및 행사(行祀) 진행과 제물 진설(祭物 陳設)은 약식 전통 의식대로 하되
허례허식은 피하고 후손들이 모여 추모와 가문 화합을 다짐하는 날이 될 것
4. 시사(時祀)는 추석 명절 약 1-3주 전에 하고 반드시 가족 납패묘 정원에서 행할 것
5. 제례에 남녀 구별은 하지말되 출가한 여식일 경우라도 시사에는 참석하도록 할 것
* 기존 조상들의 묘는 이장하거나 유골을 파서 따로 화장할 필요 없다.
석물 등이 있으면 그것들만 묘 근처에 파묻고 그 내용과 내력들을 별도로
기록해 놓고 (혹는 CD_R하고) 봉분만 적당히 평지로 해 놓고 지정 가족
납패묘(혹은 위패당이라 불러도 좋다) 내에 위패만 모시면 된다고 생각한다.
가족 납패묘의 규모나 형식은 각 가문의 형편에 따라 정하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