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축복의 생활화
정말 모든 사람들이 나의 아버지를 무척 사랑했다. 안 부부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들은 우리가 13년 간 위스콘신 주 호수 변에 살 때 우리의 이웃이었다. 그들이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던 이유는 어떤 개인적인 일 때문이 아니었음을 먼저 말해 두고 싶다.
이곳으로 이사 오기 이십 년 전, 안 부부는 그들이 출석하는 교회의 한 신자와 심한 갈등을 겪었다. 그 갈등을 신앙으로 해결하지 못해 그들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고 급기야 전교인의 걱정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들은 다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같은 태도를 취하였다.
우리가 안 부부를 만났을 때 그들은 60대 중반이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듣자 그들은 표정이 굳었다. 최소한 신앙에 관하여는 아무 상관없는 관계로 지내려 했다. 우리는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고 가능한 한 인내하면서 기다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으로 환경을 이끌어 가셨다.
우리 집에는 콜리와 세퍼드 잡종인 '슐츠'라는 개가 한 마리 있었다.
우리 시골 집은 면적이 족히 이천 평은 넘었기에 슐츠가 마음대로 뛰어다니기에는 충분했다. 그런데도 슐츠는 만족하지 못한 듯 안씨네 마당을 활보하면서 뛰어다녔다.
슐츠는 이리저리 뛰어다녀서 특히 안 부인을 성가시게 했는데, 아무리 고함을 쳐도 소용없었다. 안 부인이 슐츠 때문에 우리 집에 전화를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슐츠를 집에 붙들어 두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보트가 호수 물살을 가르고 지나가는 것을 보면 녀석은 좀처럼 집에 있지를 못했다.
어느 날 안 부인과 슐츠는 막판 대결을 피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잔디밭에서 제초기로 민들레를 제거하고 있었다. 슐츠가 안 부인의 마당을 가로질러 뛰어갈 때 그녀는 마치 소프트볼의 투수마냥 슐츠를 향해 흉기를 날렸다. 다행스럽게도 안 부인이 훌륭한 투수는 아니여서 15cm정도 차이로 슐츠를 비껴 갔다.
몇 분도 채 못되어 누군가가 우리 집 문을 탕탕 두들겼다. 창문을 통해 일의 추이를 살피던 우리는 이내 그가 누구인지를 직감했고 결국 아버지께서 문으로 나가셨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아버지께서 문을 여시자마자 나는 두려움에 떨었다. 분노한 부인이 무슨 플라스틱 같은 집기를 들고 험악한 얼굴로 버티고 서 있었던 것이다.
안 부인은 들고 있던 집기로 아버지의 가슴 위쪽을 내리쳤다.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녀는 낡은 모터처럼 거기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안 부인을 응시하며 이렇게 말했다.
"친애하는 안 부인, 당신을 괴롭힌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우리를 용서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조심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인에게 복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부인은 잠시 아무 말 없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리고는 신발을 고쳐 신더니 선으로 악을 갚은 사랑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일이 있은 후 몇 주 동안 우리는 안 부부를 볼 수 없었다. 아버지는 그들을 염려하기 시작하셨다. 항상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던 그들의 잔디밭에 잔디가 수북이 자라 더 이상 깎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었다.
생각 끝에 형과 나는 그 집 잔디를 깎아 주기로 하였다. 당시 우리는 열넷, 열여섯 살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도 그 무더운 여름날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꼬박 하루 동안 잔디를 깎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원하시는 일이었기에 우리는 기꺼이 그 일을 해냈다.
잔디를 깎는 동안 안 씨의 집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지만, 우리는 그들이 집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두 주 후 형과 나는 아버지께 잔디를 한 번 더 깎아 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이번에는 우리가 잔디를 깎는 동안 안 부인이 커튼 뒤에서 살짝 엿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두 주가 더 지나서 안 씨의 잔디밭을 보신 아버지께서 "얘들아, 어때?"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아버지의 뜻을 알아차리고 잔디를 깎기 위해 안 씨의 집으로 갔다. 이번에는 우리가 잔디 깎는 일을 마칠 즈음 안 부인이 쟁반에다 레몬 주스를 담아 왔다. 그녀는 잔디를 깎아 준 일에 감사를 표하면서 남편이 건강이 좋지 않다고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유감의 뜻을 표한 뒤 아저씨의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 잔디 깎는 일을 돕겠다고 말했다.
그 해 가을 느지막이, 아이들이 안 부인의 전화를 받았다.
"빨리 좀 와 주시겠어요? 남편의 병세가 심합니다." 부모님은 급히 달려가셨다.
그것이 그 집에 들어선 첫날이었다. 안 부인은 우리 부모님을 남편이 누워 있는 방으로 안내하였다. 방에 들어간 사람들은 안 씨가 앓고 있는 병, 교회와 맺었던 과거의 관계, 영혼의 상태, 그리고 모든 죄를 깨끗케 하실 수 있는 그리스도의 보혈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안 부인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렇게 와 줘서 고맙다고 말했고, 다시 한 번 찾아 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그 다음 몇 주 간에 걸쳐 아버지 어머니는 수차례 안 부부를 찾아가셨다. 마침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였다.
안 부부의 회심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눈물 흘리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꼭 두 주가 지나, 안 씨는 주님 곁으로 갔다. 안 부인은 우리 교회에 등록했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궂은일까지도 도맡아하고 있다.
그 다음해 여름, 안 부인은 우리 교회 신자들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그녀의 신앙은 놀랍도록 성장했고 우리 가족과 아주 친밀하게 지내고 있다.
몇 해 후 그녀 역시 남편의 뒤를 주님 계신 곳으로 갔다.
그 여름날 오후, 만일 우리 아버지가 다른 과격한 방법으로 안 부인을 대했다면 안 부부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나님은 이 땅 위에 당신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부드러운 대답과 친절한 말과 사랑스런 행동을 사용하셨다. 다시 말해 축복을 사용하셨던 것이다.
삶의 방법
그날 안 부부에게 보여 준 아버지의 반응은 실로 그리스도인다운 행동이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배웠다. 아버지는 사람들을 어떻게 축복해야 하는지를 아셨다. 아버지는 축복이 삶의 방법이라는 것을 아시는 분이었다.
축복이 삶의 방법임을 알았던 또 다른 한 사람이 있다. 다윗 왕이다.
사실 성경에서 사용된 '축복'이란 말의 여러 형태 가운데 70회 이상이 다윗과 관련되어 있다. 특별한 한 예를 들면, 하나님의 언약궤를 대적의 손에서 되돌려 취했을 때 다윗 왕은 우리가 본받아야할 행동 양식을 보여 주었다. 그때 다윗은 세 가지 방향에서 축복했다. 먼저 그는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대상 16:36)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찬양(축복)했다.
그는 또한 주변 모든 사람들을 축복했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여화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였더라"(2절).
끝으로 그는 자신의 가족에게도 축복하였다.
"이에 성은 각각 그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도 자기 집을 위하여 축복하려고 돌아갔더라"(43절).
성경에서 다윗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 그가 끊임없이 하나님을 송축(축복)하고 가족과 백성을 축복하는 것을 대하게 된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아버지의 이 모범에 깊은 감동을 받아서 아버지가 세워 놓은 방식을 따랐다(왕상 8:12-15 참조). 그랬기 때문에 축복의 사람 다윗 왕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모두 행하는 자라 불리는 것이다(행 13:22).
삶의 구심점
이 책의 큰 주제는 부모, 특히 아버지가 의도적이고 규칙적으로 자녀를 축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녀를 파괴하는 힘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축복의 힘 또한 보아 왔다. 우리는 자녀들 축복하는 사역을 시작하는 방법과 그들 위에 있는 저주의 힘을 파괴하는 방법, 그리고 쓰고 남은 낡은 톱밥을 가지고 하나님이 어떻게 새것을 만들어 내시는지에 대해서도 논의하였다. 그리고 우리에게 우리 자녀뿐만 아니라 주변 모든 사람들과 하나님까지도 축복해야 할 특권과 책임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규칙적으로 베푸는 축복은 마치 둥근 원의 중심점과도 같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말들은 이것을 중심으로 원을 더 크게 확대해 나간다. 우리의 삶에 그와 같은 변화를 일으키는 그 시작은 하나의 중대한 도전이다. 그 축복의 아름다움은 헌신이라는 작은 지점에서 시작된다. 잠깐 밝히자면 나는 축복의 아름다움을 희망하며 이 책의 결론에 이르고 싶다. 불과 몇 분의 투자로 당신 가정에 습관을 형성하지만 그 결과는 일평생 막대한 유익을 가져다준다. 매사 작은 일에 충성함으로써 더 큰 일에 충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마 25:21).
집 구석구석을 수리하라
자녀들과 주변 사람들을 축복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훈련이다. 축복은 너무 쉬워서 양탄자 아래 묻혀 버리거나 아예 구석진 곳으로 밀려나거나 무시될 수도 있다. 우리는 '양탄자 아래' 성향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은 좋은 것 나쁜 것들이 마구 뒤범벅되어 있어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소제를 시작해야 할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어떻게 보면 문제될 게 전혀 없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는 양탄자 아래에 있는 것을 해결해야 하며, 그 일을 지체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기보다는 지금 바로 시작하는 편이 훨씬 낫다.
마귀는 나에게 내 인생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감출 수 있는 한 오래 감추어 두라고 속삭였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몇 년 전에 나는 영적으로 힘든 시기를 거쳤다. 그때 나는 카펫 밑 구석구석에, 그리고 내 삶의 모든 벽장 안에 너무나도 많은 쓰레기를 갖고 있어서 그것들을 공공장소에 갖다 버리기란 영영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이런 혼미한 상황을 더 이상 감당할 힘이 없어 나는 하나님께 도움을 청했다.
하나님은 내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내 마음을 청결케 하시는 놀라운 일을 시작하셨다. 마치 내 마음의 방 구석구석을 찾아다니시면서 가장 어두운 구석에 성령의 밝고도 부드러운 빛을 비춰 주시는 것 같았다. 그 어떤 저주나 심판도 없었고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는 깨달음으로 충만해졌다.
"주님, 우리가 어떻게 이 혼돈을 깨끗이 정돈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었고, 주님은 "걱정하지 말라. 우리는 한 번에 방 하나씩 정돈하게 될 것이다"라고 대답하셨다.
그런 뒤, 주님은 바울이 빌립보교회 교인들에게 보낸 큰 위로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셨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하나님께서 대청소를 시작하시던 바로 그 특별한 날, 지역 신문에 실린 한 기사가 내 시선을 끌었다. 미네소타 주, 세인트폴에 있는 고색창연한 저택에 관한 기사였다.
그 저택은 그 집의 소유주가 인생 절정기에 누렸던 기쁨과 긍지였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 험하게 쓰이고 관리되지 않아서 집값이 폭락했다. 결국 그 저택은 버려졌고, 사람이 거주할 만한 가치가 없음을 판단한 시 직원에 의해 철거 계획이 수립되었다.
철거 예정일 바로 며칠 전에 한 젊은 부부가 차를 몰고 와서 집 주위에 돌아보고는 그 집의 앞날을 내다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그 저택을 사서 수리하기로 결정했다. 그들 부부와 시청 사이에 희한한 계약이 성립되었다.
그 달 말일에 그 부부가 그 집으로 이사 오는 조건으로 당국이 1달러에 집을 팔았던 것이다. 그 부부는 동의하고 약속된 날짜에 그 집에 입주하였다.
그 집은 온갖 쥐들의 서식지로 변해 있었고, 창문은 거의 깨어져 있었다.
어느 한 구석도 성한 데가 없었다. 거의 3년 동안 대대적인 수리를 한 끝에 수리가 끝날 무렵에는 집 구석구석에 새 주인의 성품이 배어 있었다.
신문 기자는 어떻게 이런 작업을 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집 전체를 살피면서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가를 결정한 다음 방 하나를 수리한 후 다른 방으로, 또 다른 방으로 옮겨 가면서 일을 마쳤다고 대답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무궁하신 지혜로써 그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다루시는 데 깊이 감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성령은 지금도 우리 안에서 개조하는 일을 하고 계신다. 그리고 성령의 하시는 일은 우리 자신과 우리 가족들의 삶에서 일어나야 할 변화에 대하여 희망을 주신다.
당신이 이 책을 읽을 때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말씀하셨으리라 믿는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카펫에 묻은 때를 지적하시면서 "이봐, 그 때는 거기에 있어서는 안 되는 거야. 그 때를 깨끗이 지우는 일을 내가 도와줄게"하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바로 지금이 하나님께서 그 일을 시작하시도록 할 시간이다. 낡아빠지고 저주받은 저택에서 그것을 사서 고친 새 주인의 성품이 묻어 나왔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사역을 통하여 당신의 삶에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시는 일을 하시도록 하라.
당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시작하라
가정 축복 사역에 관해 당신이 읽은 내용들은, 어떤 부분은 사실일 수도 있는 반면에 다른 어떤 부분은 당신의 경험과 전혀 무관하기도 할 것이다.
이것은 마치 전채 요리가 깃들여진 스칸디나비아식 식사와도 같다. 차려진 모든 음식이 훌륭하지만 다 당신 취향에 맞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에게 유익한 것을 골라서 당신 삶에 적용하면 된다.
무엇보다도 당신에게 가장 감동을 주었던 부분부터 시작하도록 하라.
어쩌면 당신은 당신을 전혀 축복한 일이 없는 당신의 부모와 관계 회복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미 자라서 가정을 떠난 자녀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다른 사람들 칭찬하는 일에 감동을 주셨을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지금 당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시작하라.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그 일을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갖지 말라.
현재 당신의 자리에서 시작함으로써 축복의 원리들을 적용하기 시작하라.
모든 것을 이해한 다음 시작해야지 하고 기다리기보다 당신이 이해한 것부터 하나씩 적용해 가면서 시행착오를 겪는 편이 훨씬 낫다.
이해하지 못한 나머지 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분명해질 것이다.
일을 엉망진창으로 망가뜨리면 어쩌나 하고 염려하지 말라. 주변 사람들이 도와주고 협력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정직한 마음으로 진지하게 시작한다면 무언가 부족한 부분은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실 것이다.
축복하는 일을 시작하라! 바로 오늘부터 시작하라! 축복은 관계된 주변 모든 사람들을 즉각 치유하며 풍성한 보상을 안겨 준다. 사도 바울이 말했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전 3:5-8). 우리 각자에게 축복하는 사역을 맡기신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보상을 주실 것이다.
축복의 유산
아마도 축복이 주는 최상의 보상은 축복이 자녀들에게 남기는 축복의 유산일 것이다. 나는 우리 아버지가 나와 내 형제들에게 축복의 유산을 남겨 주셨기 때문에 그런 유산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내가 보기에 내 아버지는 거장이셨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세 아들을 무척 사랑하셨고 그 사랑을 친히 보여 주셨다. 아버지는 열심히 일하는 분이셨고 훌륭한 가장이셨다.
아버지는 성실히 가족들을 교회에 데리고 다니셨다.
아버지는 '안녕' '잘 가' 하실 때마다 포옹하면서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꼭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 어머니께서 서로를 향해 목청을 높이거나 다투는 일을 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 아침마다 잠에서 깰 때면 나는 의자에 앉아 성경을 읽으시고 가족을 위해 기도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뵐 수 있었다. 아버지의 삶을 이끌었던 지배적인 동기는 아들 셋이 하나님을 알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매일 함께 기도하셨다. 두 분의 기도 내용 가운데 한 가지는, 세 아들 모두가 서로 사랑하며 신앙을 나누며 함께 주님께 헌신할 아내를 얻는 것이었다.
그 기도는 놀랍게 응답되었다.
1968년 정월, 메리와 내가 결혼했을 때 우리는 아름다운 선물과 사랑의 소원을 듬뿍 받았다. 메리와 내가 오늘날까지 간직하고 있는 특별한 선물 한 가지는 우리가 이어갈 일평생의 결혼 생활을 위해 부모님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르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 같이 하라"(엡 4:32).
아버지는 사업상이든 개인적 관계에서든 작은 회계 장부를 가지고 계셨다. 어린 내가 즐겨 듣던 이야기들 중에 하나는 예수님이 언제 다시 오실까 하고 어머니에게 묻는 노르웨이 소녀에 얽힌 이야기였다.
"그래,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몰라.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오실 거야"하고 소녀의 어머니는 대답했다.
딸은 잠깐 동안 생각한 다음 "그렇다면 어머니, 우리가 가방을 꾸려 놓아야 하지 않나요?"하고 물었다.
아버지의 가방은 항상 꾸려져 있었다. 아버지의 회계 장부는 항시 정리되어 있었고 늘 돌아가실 채비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날
1985년 정월 15일, 아버지와 어머니는 여느 때처럼 일찍 일어나셨다.
그리고 항상 애용하시던 의자에서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하셨다.
성경을 읽으신 후 즐겨 읽으시던 책을 노르웨이 저자 프레드릭 위슬로프(Frederick Wisloff)가 쓴 [잠깐 동안의 안식(Rest a While)]이란 경건 서적이었다.
아버지는 이 책을 노르웨이 언어와 영어로 수도 없이 읽으셨다. 다음은 아버지께서 아침에 읽으시던 내용이다.
나의 거처는 목자의 장막을 걷음같이 나를 떠나 옮겼고 내가 내 생명을 말기를 직공이 베를 걷어 말음같이 하였도다. 주께서 나를 틀에서 끊으시리니 나의 명이 조석 간에 마치니이다(사 38:12).
인간의 생명은 비단을 짜는 베틀과 같다. 매일매일 베틀의 북이 앞뒤로 움직이며 비단을 짠다. 실 위에 실이 놓이면서 직조가의 도안이 모습을 드러낸다.
실은 너무나도 연약하고 가냘프다. 그러나 비단 자체는 그러한 실들로 짜여지는 것이다. 만일 몇 가작이 잘못 짜이면 전체 디자인은 엉망진창이 된다.
하루는 너무 작고 하찮게 보인다. 그러나 매일 매일의 하루는 전체 인생의 귀한 한 부분이다. 만일 하루를 잘못 사용하거나 부주의하게 사용한다면, 내 인생의 디자인은 어찌되랴?
비단 직조가 끝나면 그것을 말아 끝부분을 자른다. 그리고 더 이상 직조하는 일은 계속되지 않는다. 직조물은 언젠가 전시되어 평가를 받는다.
오 하나님이시여, 내 인생의 직조물이 잘 짜여지도록 허락하소서. 나는 베틀을 당신의 손에 맡기나이다. 실을 자르고 비단을 평가하실 때, 하나님 당신의 형상이 직조물에 드러나게 아버지의 뜻대로 나를 사용하소서.
아버지는 이 글을 읽으신 후 눈물의 기도로 당신의 심경을 하늘 아버지께 토로하셨다. 나는 아버지께서 기도하실 때 외에는 우시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날은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 감사하시는 모습이었다.
아버지께서 기도하실 때는 언제나 아내와 세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 손녀들을 위해 중보 하셨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 자신을 위해, 아버지 인생의 베틀에서 실이 잘 짜여지도록 간구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삶 그 어떤 영역에도 죄가 자리하지 않도록, 그래서 하나님 앞에 정결하게 설 수 있도록 기도하셨다.
그날 저녁 형 로렌과 그의 아내 클레어리스가 저녁을 먹기 위해 부모님 집에 갔다. 식탁에 둘러앉았을 때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요즘 같은 꿈을 계속 꾼단다. 때로는 밤새 계속 꾸기도 해, 내 자신이 하나님 보좌 앞에 서 있는 수많은 성도들 가운데 한 사람인 것을 보아.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 경배하고 있어. 때로는 내 주변에 있는 군중들 가운데서 사랑하는 친구들 모습을 보지. 그런데 그 친구들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친구들이야. 이 꿈이 무슨 뜻인지 알겠니?"
로렌과 클레어리스는 무슨 말씀인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틀 전 주일 예배가 끝난 다음, 아버지는 친구를 포옹하시고 "테리, 내가 주님을 뵈올 날이 가깝지 않았을까? 하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친구들은 아버지의 말뜻을 몰라 어리둥절하였다.
그날 저녁 아홉 시 반경, 아이스크림 한 접시를 드시고 석간신문을 보신 후 아버지는 어머니를 부드럽게 포옹하시고 얼마나 어머니를 사랑하셨는지를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긴 숨을 내쉬고서 떠나가셨다. 아버지께서 사랑하시 섬기시던 주님 곁으로 그분은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연세, 일흔 여덟이셨다.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년 전 칼튼이 신앙에 대한 탐구와 문제를 놓고 씨름할 때 나는 아들이 공부하고 있는 대학 기숙사로 달려갔다. 우리는 아버지를 회상하며 밤새 걸었다.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4년 전 할아버지께서 살아 계실 때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려고 들른 적이 있었어요. 한참 대화를 나눈 후 떠나는 길에 제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포옹하고 키스해 드리면서 사랑한다고 말씀드렸죠. 그때 할아버지께서 '칼튼, 너를 위한 나의 가장 깊은 소망은 네가 하나님을 알고 너의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란다.'하고 말씀하셨어요. 아버지도 아시죠? 그게 할아버지가 제게 하신 마지막 말씀이에요." 우리는 둘 다 눈시울을 적셨다.
아버지가 주님 계신 곳으로 가신 뒤 몇 주가 지나자 어머니는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셨다. 놀랍게도 거기에는 세 아들과 가족에게 남긴 한 통의 편지가 있었다. 아버지가 자필로 쓰신 것이었는데, 노르웨이에서 보낸 아버지의 어린 시절과 어떻게 어머니를 만나셨고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셨는지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이었다. 편지를 마무리하시기 전에 아버지는 우리들에 대해 마음속에 품고 계신 가장 깊은 소원을 다시 한 번 말씀하셨다.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나는 너희 모두가 내가 너희들 모두를, 내 자식들과 그 배우자들과 손자 손녀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기를 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서 매일 기도할 때마다 너희를 위해 기도한다. 우리가 드리는 가장 간절한 기도 제목은 이후에 우리 모두가 영광의 나라에서 함께 만나게 되는 것이다. 늘 주님과 가까이 해라. 그러면 주님께서도 너희와 가까이 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두려워 말라 내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내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어 주리라."
이 말씀으로 아버지는 우리에게 축복을 주셨다. 그러나 보다 진정한 의미에서, 아버지의 삶 전체가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었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셨고, 아버지의 인생에서 바라시던 오직 하나 강렬한 욕망은 세 아들과 그들의 가족 전체가 한결같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었다. 바로 그 목적을 위해 아버지는 당신의 생을 바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소원을 이어받아 어머니 자신의 기도와 축복을 우리에게 주고 계신다.
아름답게 짜여진 비단
가정 축복이란 무엇인가? 가정 축복은 우리의 자녀들이 최상의 유익을 얻게 하는 적극적인 헌신이다. 그렇다면 최상의 유익 즉 최고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이들이 주 하나님을 알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내 아버지 인생의 마지막 날 이야기가 우리 자신의 삶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했을 줄로 믿는다. 아버지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 그리고 자식인 우리와 갖는 관계는 우리의 인격을 직조하는 시로가 같았다. 그 직조물은 어떠한가? 우리가 행하는 태도 하나하나는 우리 자신의 베틀에 들어 있는 한 오라기 실이다. 우리가 장차 어느 날엔가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기 위해 내놓을 비단의 최후 형태는 어떠한가?
만일 우리가 나의 아버지처럼 축복을 생활화한다면 우리 자녀들의 직조물은 튼튼할 것이고, 축복의 유산으로 남게 될 경건한 직조물인 비단은 찬란할 것이다. 그러면 진실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이며, 그 얼굴의 빛을 우리에게 비추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것이며, 그 얼굴을 드사 평강을 주실 것이다.
오! 우리가 바라는 축복의 위대함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