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내맡김
이전의 의식 수준들에서 지각의 환상은 내맡겨졌는데,
덧씌우어진 '의미' 가치, 의의라는 해석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감정성과의 동일시 상실이나 혹은 정신화의 형태를 띠는 선형성과의 동일시 상실로 인도하고,
물질적 육체와 세속적 현상을 포함하는, 일시적인 것에 대한 관심 투입의 철회로 인도한다..
결국에는 목격자/관찰자/지켜보는 자의 환상조차 앎/의식 자체 속으로 녹아드는데,
이 앎/의식은 비개인적이며 자율적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원인과 결과'나 '변화'라는 제한은 더 이상 없다.
'시간'이라는 환상 또한 신성한 일치(Divine Concordance)의 전부임 속으로 녹아든다.
심지어 존재 자체에 대해서조차 매력도 혐오도 없는데,
그것은 나타난 것(Manifest)조차도 하나의 개념으로서, 의식에 의한 식별 결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전부가 신에게 내맡겨졌고,
그다음에 자기의 마지막 전재가 생명의 표면적 근원, 에고 자체의 핵심으로 남아 있는데
에고의 핵심에는 그것이 자신의 생명과 존재의 저자이자 원초적 근원이라는 확신이 딸려 있다.
이러한 확신이 일어날 때, '이것조차도, 역시' 신에게 내맡겨져야 한다는 인식이 또한 일어난다.
이 마지막 장벽을 알려 주는 것이 마지막 남은 두려움의 갑작스러운 폭발인데,
매우 강력하고 격렬한 이것이 바로 죽음에 대한 기본적 두려움이다.
그 다음에 영적 오라 안에 발생기 상태로 있는 어떤 인식이 떠오르는데,
그것은 '모든 두려움은 환상이다'와 '죽음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다음 믿음과 헌신의 귀결로서, 마지막 환상이 내맡겨진다.
그러고 나서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며 두려운 죽어감의 감각이 출현하는데,
이것은 짧지만 매우 격렬한 고통이다.
왜냐하면 육체의 죽음과는 달리 이것은 한 번도 맞닥뜨려본 적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유일하게 가능한 최후의 '죽음'이다.
격력한 고통이 사그라들면서, 신성의 무한한 영광의 드러남(Revelation)속으로 어떤 출현이 있다.
에고/마음의 마지막 자취는 현존의 침묵 속으로 사라진다.
신성으로서 창조의 전부임의 눈부신 완벽함과 아름다움이 빛을 발하고,
전부는 모든 시간 너머에서 멎어 있다.
글로리아 인엑첼시스 데오(Gloria in Excelses Deo)가 그 상태(State)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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