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생활은 "내가 사는 것, 내 삶을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것" 수다 더하기 - '영희네부동산' 임영희 씨
편집실
비마이너는 창간 특집기사로 ‘중증장애인이 독립해 집에서 살 권리’를 싣습니다. 특집기사는 1. 중증장애인들의 주거권 수다방 2. 어떤 집에서 살 수 있나 3. 사는 집 들여다보기 4. 장애인주거 대안 살펴보기 순으로 이어집니다. 첫 번째 기사 ‘중증장애인들의 수다방’은 생활시설이나 집에서 나와 독립한 중증장애인들이 모여 주거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수다'를 옮겨봅니다. 수다방은 지난 해 말경 진행되었으며, 서울에 사는 김선심, 서기현, 박정혁, 이라나, 정은주, 이규식 씨 등 중증장애가 있는 여섯 명의 활동가가 참여하고 문애린 씨가 사회를 맡아 진행했습니다.
애린 _ 얘기를 들어보면 장애여성하고 장애남성하고 경우가 달라요. 더구나 장애여성 같은 경우 사람들이 너무 쉽게 보기 때문에.
은주 _ 이웃도 막 대해요. ‘언니 어디가?’ 이러는데… 지가 날 언제 봤다고. (모두 웃음)
애린 _ 맞아 맞아. 막말도 하고 가다가 심심하면 문도 두드려보고 그래요. 사람들 인식 속에는 아직 남녀차별이 있고, 그 속에서 장애여성하고 장애남성이 구별되는 거죠. 그런 차원에서 정혁님은 이런 것들을 어떻게 겪으셨는지.
정혁 _ 여름철에는 문을 열어놓으니까 노숙인들이 불쑥 들어와서 먹을 것 좀 달라고 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걸인이 들어와서 나도 좀 달라고 하기도 했어요.
애린 _ 집을 구할 때 지영언니(정혁씨 부인)가 구했잖아요. 집을 구할 때 힘들어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셨을 텐데, 주로 어떤 것 때문에 힘들어하셨는지.
정혁 _ 일단은 뭐 장애인이기 때문에 겪는 불편한 반응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아까 은주님이 얘기했듯이 우리는 전동이 두 대잖아요. 최근에 집을 구했던 이야기부터 하자면, 내 딴엔 집을 쉽게 구했다니까 궁금해서 가봤죠. 그랬더니 주인이 있는 거예요. 내가 발로 (전동휠체어를) 운전하다보니까 운전하는 모습이 주인 눈에 띄었나 봐요. 그러더니 (집주인이) 하는 말이 계약 다시 생각해봐야겠다고. 이미 이야기가 다 끝난 상태에서. 그러니 와이프가 완전히 빡 돌았지요. 그렇게 계약 취소돼버렸어요. 그 다음 날 하루 온 종일 돌아다니면서 지금 있는 집을 구한 거예요.
애린 _ 그 집을 구할 때는 언니랑 같이 다니신 거예요? 아니면 혼자 다니신 거예요?
정혁 _ 나는 일 때문에 묶여 있는 터라 가지 못했어요. 또 와이프가 나하고 같이 다니면 오히려 방해된다고 해서. (모두 웃음) 아까 집주인 같은 그런 사람이면 내가 아예 없는 게 나으니까.
애린 _ 규식님은 집을 구할 때, 나 같아도 얼굴만 보고 선뜻 집을 주기가 싫을 거 같은데 어떤 일들을 겪으셨는지.
규식 _ 다른 사람들 얘기 들어보니까 내가 좋은 편이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조용하고 안락하고. 다른 사람보다 은주님이 완전 대박이고. 내 집이 훨씬 좋구나. 내가 지난 7월부터 10월까지 집을 얻으러 계속 왔다 갔다 했는데, 복덕방에 가서 아저씨한테 집 좀 소개해달라고 해서 가긴 갔어요. 집주인을 만나 집을 보러 가는데 내 전동휠체어가 크고 골목이 하도 좁아가지고, 나보고 기어서 들어오래요. 어떻게 기어들어오라고, 한참 먼데. 한 번은 가서 보고 내일 계약하자고 해서 갔는데, 아줌마가 없대, (다음 날) 또 갔더니 또 없대. 알고 보니까 아줌마가 나한테 집을 안 주려고 이 핑계 저 핑계 대가지고 시간만 뺏은 거죠. 그 시간이면 다른 집을 얻었을 텐데. 또 어떤 집에 갔을 때는 나를 힐끗 보면서 ‘안 돼요’ 그러더라고. 그래서 실컷 혼자 욕하다가…
기현 _ 얘기를 하다 보니 너무 물이 올랐어요.
규식 _ 그래서 집이요, 장애인 혼자 가면 절대로 못 구한다고 생각해요. 요번에 집을 얻을 때는 나하고 활보하고 같이 산다고 뻥 치고, 나 혼자 잘 살고 있고요.
애린 _ 그 집은 얼마나 알아보고 얻은 집이에요?
규식 _ 한 스무 번쯤 되요. 어떤 집은 가자마자 욕하고, 보자마자 욕하고. 빙신이 집을 구해서 어떻게 살려고… 아니 또 복덕방 중개업자 만나가지고 ‘아저씨 내일 돈 갖고 올게요. 계약해요’ 하고, 하루 있다 갔더니 주인은 안 보이고 딴 데 갔다고 그래요. 하루 종일 눈 빠지게 기다려도 안 오고.
기현 _ 실질적으로 집을 얻기가 너무 힘든 게, 특히나 개발이 덜 된 지역은 우리가 휠체어를 타니까 1층에 턱이 없는 원룸 그런 집을 구하려고 하는 데 거의 없어요. 소개해주는 방이 계단이 많지도 않아요, 2~3개. 그리고 들어가기도 힘들게 돼 있고. 가끔 들어갈 수 있는 데가 있어도 무지하게 비싸더라고요. 또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은 더 무지막지하게 비싸고요. 비싼 집을 구해도 문제가 되는 것이 개조를 허용해주느냐 그것도 문제거든요. 개조가 입구도 문제지만 각종 스위치가 천장 가까이 있고, 전기 콘센트가 천장 가까이 있으면 고쳐야 되는데 그걸 고쳐주느냐, 그걸 다 내 돈 들여서 해야 돼요.
은주 _ 개조해서 좋은 점은 집주인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욕실 바닥을 싹 새로 깔아 놨거든요. 주인이 기분 나빠하지 않더라고요. 자기 집이 좀 더 나아지고 깨끗해졌으니까. 처음에 내가 그 집에 갔을 때 엄마가 며칠 후에 오셔서, 어디서 이런 그지 같은 집을 얻었냐고, 이런 더러운 집이 어디 있냐고, 청소도 안 하고 사람이 살았나보다고 하셨거든요. 근데 엄마가 1박2일 때 빼고 광내고 하니까 약간 인식도 달라지고… 처음엔 되게 싫어하던 이웃도 내가 들어오고 다른 장애인을 받더라고. 접해보지 않고 몰랐기 때문에 그런 거죠. 어쨌든 장애인이 들어오면 자기들한테 피해를 주고, 집값 떨어진다는 그런 걱정을 많이 하고, 특히 사고 나서 만날 불려다니지 않겠느냐, 이런 걱정을 많이 해요. 이 사람들이 보는 장애인은 내가 전부일 테니까 이웃에게 부탁이나 그런 일들은 더더욱 하지 않게 되고, 되도록 뭔가 신경 쓸 일은 일부러 내가 전혀 만들지 않아요. 이 사람들이 보는 장애인 이미지가 내가 될 수 있으니까, 그런 압박감이 생기기 시작하는 거죠. 그게 한 몇 년은 쭉 갔는데 요즘은 그런 것에서 벗어나긴 했는데… 다른 장애인도 들어와 이웃에 살고 그러니 많이 나아진 거죠.
기현 _ 특히나 제일 걱정하는 건 불나면 어떻게 하냐고 그래요. 근데 저기요 저요, 가스불을 못 켜요. 가스불을 켤 수 있어야 불을 나든가 말든가 하죠. 담배도 안 피웁니다.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하니까 되게 답답한 거죠.
라나 _ 혼자 가스불도 못 켜요, 되게 와 닿는데요. 하하
ⓒ비마이너
애린 _ 라나님는 지역에서 뭐가 제일 걸려요? 뭘 바꾸면 좋겠어요?
라나 _ 은주님에 비하면 전 너무나도 안정적으로 살고 있네요. 어쨌든 집 구조가 휠체어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집이 거의 없어요. 밖에 세워놓고 들어가야 돼요. 저도 전동휠체어를 충전하려면 문을 열어놔야 해요. 현관문을 열어놓고 어쨌든 무방비 상태에서 잘 수밖에 없는 거죠. 선을 연결할 데가 없으니까.
은주 _ 문 열어 놓고 자면 안 되죠.
라나 _ 저는 그게 한 번도 겁이 안 났었는데 옆집에 남자애들이 이사를 왔어요. 우리 집이 끝쪽이고 계단이랑 연결돼 있어요. 근데 얘들이 거기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거예요. 충전해야지 하고 문을 벌컥 열었는데 정말 정말 무서웠어요. 담배 피고 있는 그 모습이. 그다음부터는 문을 못 열겠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엔 집에서 웬만하면 충전을 안 해요. 집 구조 자체가 어차피 휠체어를 고려한 집이 그다지 많지 않아요. 저도 싱크대 이런 거를 거의 못 써요. 사람들이 와서 보면 놀랠 정도로 살죠. 서커스단에 취직해도 될 만큼. 의자에 올라가서, 책상에 앉아서. 문을 열면 싱크대랑 책장이랑 연결돼 있어요. 그렇게 앉아서 설거지하고 그러거든요. 그런 집 구조 하나하나가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을 전혀 배려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걸 배려할 수 있는 건축설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은주 _ 또 한 가지는 (우리가) 직장을 다니고 있다, 항상 누군가와 동행을 한다는 걸 꼭 인식시켜줘야 돼요. 진짜 사람이 일을 하고 안 하고의 차이에 따라 반응이 확 달라져요.
기현 _ 근데 그 아무리 일을 한다고 해도 못 알아듣는 분들이 있던데요. 항상 그 시간에 퇴근한다고 이야기해도 주변 분들이 뭐라고 하냐면, 어디 놀러 갔다 오냐고 하더라고요. 퇴근하고 오는 길이라고 그 이야기를 수십 번을 해도 어디 놀러 갔다 오냐고, 학생이냐고 그런 얘기를 되게 많이 들어요.
은주 _ 나는 실제로 지하철도 나를 말렸어. 집을 보러 다니는데 그 역이 리프트가 많은 역이었는데, 역무원이 무슨 일로 왔냐고 하더라고요. 집 보러 왔는데요 했더니 역무원 얼굴이 확 바뀌는 거예요. ‘여기 리프트가 많아서 되게 위험하고요, 그래서 이 동네에 오시면 안전하지 않고요’ 이러는 거예요. 제가 ‘집을 본댔지 이사하러 온다고 했나요?’ 그랬더니 뻘쭘해서 가만히 있는 거예요. 몇 시간 방을 돌아보고 왔더니 ‘어떻게 보신 집은 잘 됐나요?’ 내 승강장까지 따라와서 묻길래 ‘제가 이사 오는 게 그렇게 두려우세요?’ 그랬더니 아무 말 못하고 ‘안녕히 가세요’ 그러는 거예요. 그게 바로 보문역이죠. 2006년 이야기예요. 지금은 엄청 친절해진 거죠.
애린 _ 우리가 계속 다녔잖아요. 지금은 너무 친절해서 너무 탈이죠.
기현 _ 자립생활센터가 근처에 있는 역하고 아닌 역하고 굉장히 차이가 많더라고요.
애린 _ 선심님도 혼자 살고 계시잖아요.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을 텐데 이런 걸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어떤 것을 고쳤으면 좋겠는지?
선심 _ 신경 안 쓰면 되잖아요.
애린 _ 신경 안 쓰면요? 남들은 어떻게 하든지요?
기현 _ 정말 쿨 하시다.
애린 _ 선심님은 이미 달관을 하셨구나. 연륜과 내공의 깊이가 느껴지는 경지인데요. 그래도 주변 사람들이 신경을 쓰게 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선심 _ 우리 동네는 농협을 다닐 수가 없어요. 휠체어가 들어갈 수가 없어서.
애린 _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공공기관이 부족하다고요?
선심 _ 그렇죠.
기현 _ 제가 이사하고 나서 동네미용실을 못 갔어요. 그 이유가 미용실은 정말 많은데 들어갈 수 있는 데가 없어요. 근방 1~2킬로 이내에는 들어갈 수 있는 데가 없는 거예요. 지하철 두세 정거장 가야 있고, 아니면 비싼 데 가야하고. 일반 세탁소나 식당이나 이런 가게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 상당히 답답하더라고요. 특히나 우리 동네 같은 경우는 그런 것들이 좀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생각해보면 좁아서, 몰라서, 돈이 들어서, 이런 거 다 핑계 같거든요. 제가 경사로를 설치하세요 라고 하면 애들이 거기 걸려서 다칠까봐, 자전거가 걸려서 다칠까봐…그건 다 핑계 같고요. 조금만 머리를 굴리면 공간 다 나오고, 다 가능한데 인식의 차이가 아닐까 해요. 조그마한 인식의 차이가 우리가 불편하게 하고 편하게 하는 차이를 만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혁 _ 우리 부부가 제기동에서 7년째 살고 있거든요. 마찬가지로 들어갈 데가 없어요. 좋은 예를 하나 소개할게요. 한 2,3년 전쯤이에요. 집에서 조금 밖으로 가면 분식점이 하나 있는데 신장개업을 했어요. 우리가 가니까 5센티 정도 턱이 있었어요. 그래서 식사를 하고 나오면서 경사로 놓으면 어떻겠냐 했는데, 시간 지나니까 경사로를 놓더라고요. 제기동에 장애인이 몇 분 사는데, 애기들 밀고 다니는 유모차도 그냥 들어오고 하니까 그 집으로서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닌 거지요. 또 파리바게뜨가 최근에 새로 생겼는데 경사로를 놓더라고요. 그런 일도 있고, 장애인들이 전동휠체어 타고 다니면서 지역사회를 좀 바꿔놓는 역할을 하는 거 같아요.
기현 _ 웃긴 건요. 가다 보면 황당할 때가 있는데, 경사로라고 만들어놨어요. 만들어는 놨는데 근데 이걸 올라가라고 하는 건지, 등반을 하라는 건지 구분이 안 가요. 그리고 더 웃긴 건 경사로를 잘 만들어놨어요. 근데 그 안으로 들어가면 곧바로 계단이야. 그런 경사로는 무슨 의미일까요.
라나 _ 경사로가 있어도 이용할 수 있는 가게는 하나도 없고, 외관상 걸리지 않으려고 만들어 놓은 거죠.
애린 _ 제가 살고 있는 성북구 같은 경우 오래된 건물이 많아요. 경사로가 있다고 해도 거의 깎아지른 경사로나 경사로 끝하고 끝이 만나는 지점에 굴곡이 있어요. 이 굴곡을 넘어가야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하기가 멀고도 험한 길이죠. 그럼에도 내가 자립생활을 하고자 하는 이유와 목적이 있을 텐데. 단순히 나이가 차서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아야 한다고 하기에는, 물론 그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자립생활을 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각자 이야기 해주세요.
ⓒ비마이너
규식 _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우리 지역이 장애인이 살기에 딱 좋은데요. 요즘에 중증장애인들이 집을 얻어 살고 있잖아요. 밤에 혹시나 아주 급할 때 도우미가 있으면 딱 좋겠어요. 많이 아프거나 그럴 때. 뭐 119가 오면 되긴 하지만, 버튼만 누르면 재깍 오는 게 있더라고요. 독거노인들이 쓰는 거. 지역에 사는 장애인들한테 미리 서비스를 제공해서 버튼만 누르면 올 수 있는 시스템이요. 밤에 급한 일 생기거나, 활동보조가 없을 때 와서 잠깐 도와주고 가는 시스템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애린 _ 은주님은요?
은주 _ 딱히 자립생활의 이유라기보다, 내가 사는 이유인 것 같은데… 뭐랄까. 내가 필요하고 내가 하고 싶고 이런 것들을 알아나가고 스스로 나를 생각하고, 나를 다독이고 발전시키고 그런 재미가 있는 거죠. 그리고 혼자 살면서 주기가 있어요. 재밌는 것과 안 좋은 것, 때려치우고 싶다가도 또 재미있고, 그런 게 계속 주기적으로 오가죠. 잘 사는 거 같아요. 나로 인해서 우리 동네에 다른 장애인들이 와서 편하게 살 수 있고요. 전에는 무조건 내가 들어갈 수 있는 집, 이 정도면 됐다 그런 만족감에 눌려 살았다면 이제는 내가 원하는 집, 내가 원하는 삶을 추구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죠. 그걸 알아나가고 내가 그걸 요구하고 그러면서, 성질이 좀 나빠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게 재밌는 거 같아요. 내가 사는 것, 내 삶을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것, 내 삶을 계획하고… 자주 하는 말인데, 나의 노후를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죠. 나는 진짜 나의 노후를 가족이나 사회(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해놓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애린 _ 나의 노후를 내가 만들어 가는 것, 멋있네요. 선심님은?
선심 _ 나는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요.
애린 _ 나만의 공간이 내가 자립생활을 하는 이유라고요?
선심 _ 그렇죠.
애린 _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요? 자립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아니면 조그만 바람 같은 거나.
선심 _ 시설에서 사는 사람들을 나오게 하고 싶어요.
애린 _ 포부가 원대하시네요.
선심 _ 그래서 나는 내가 만약에 죽게 되면 내 돈을, 전세금을 빼갖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요.
애린 _ 다른 사람이 나와서 살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고 싶다 이게 언니의 바람인 거예요?
선심 _ 그렇죠. 가족이 있어도 주지 않을 거예요. 그냥 시설에서 나오는 사람들 도와주고 싶어요.
애린 _ 기현님의 자립생활 의미와 계획은요?
기현 _ 제가 혼자 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을 벗어나고 싶었어요. 간섭이랄지, 눈치랄지 그런 게 정말 싫었거든요. 동생하고 방을 함께 썼었는데, 아침에 출근할 때는 정말 쥐 죽은 듯이 조용하게 있어야 했어요. 왜냐하면, 일어나는 시간이 달랐으니까. 내가 조금만 떠들어도 신경질을 내고 싫은 내색을 하니까. 그리고 제가 사이버 대학을 다니고 있는데 그 수업도 마음대로 못 들어요. 밤늦게도 못 듣고. 방을 같이 쓰니까 동생도 불쌍하고 나도 불쌍한 거예요. 직접적인 이유는 그거였어요. 이 사태를 해결하려면 방이 네 개짜리인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데, 형제가 셋이니까 부모님은 방을 같이 쓰신다고 해도, 방 네 개짜리 집은 가격이 거의 안드로메다 수준이에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가 나온 거죠.
그런데 막상 이렇게 나오니까 정말 좋은 거예요. 오히려 더 규칙적이 되고 그 상황을 내가 컨트롤 하니까. 내가 음악 듣고 싶을 때 듣고 시끄러우면 끄고 뭐 그런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고 마음이 편해지고, 이게 혼자 사는 거구나 그런 기쁨을 느꼈고요. 그런데 조금 아쉬운 건 가끔 외롭다는 거. 하하. 그러니까 티비를 봐도 뭔가 허전하고, 게임을 해도 뭔가 허전해요. 혼자 있으면 너무 허전해요. 그래서 친구들끼리 술을 마시면 꼭 가줘야 되고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거 외에는 굳이 자립생활이 아니더라도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해서 지금 정말 만족하고 있어요.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든 전세를 얻는 거예요. 영구임대든 아파트든 단독주택이든 반지하든 간에. 월세는 나한테 희망이 없다는 게 계산이 되더라고요. 지금이라도 저축을 하든 대출을 받든 간에 전세를 얻자. 그게 되면 제 삶이 상당히 안정적으로 될 것 같아요. 그 목적을 향해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애린 _ 라나님은 자립생활을 한 지 꽤 됐잖아요. 자립생활을 하는 이유나 계획 같은 게 있을 텐데.
라나 _ 무엇보다 당당해졌다는 거죠.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이 사회에 대한 불만들이 좀 더 제대로 보이는 거죠. 같이 살면 같이 산다고 안 되고, 같이 사니까 지원을 해줄 수 없고, 혼자 살면 혼자 산다고 지원 안 되고, 그런 것들을 몸으로 체험하고 있고요. 어쨌든 나한테 자립생활은 당당함이고요. 바람이 있다면 정말 내 집 마련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요즘 되게 구두쇠처럼 살고 있어요.
ⓒ비마이너
애린 _ 하~ 내 집 마련이라.
기현 _ 제가 아까 전세라고 이야기한 게 저도 내 집 마련을 하고 싶은데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가능한 꿈을 갖자, 그래서 전세라고 한 거예요.
애린 _ 정혁님은 두 분이 같이 사니까 그 욕망이 더 강렬할 텐데.
정혁 _ 저희 부부가 월세 때문에 좀 힘든데, 가장 시급한 목표는 일단 영구임대아파트에 들어가는 거죠. 그리고 조건들이 있잖아요. 전동 두 대가 좁은 공간에 있기는 힘들어요. 그래서 좀 넒은 공간이 필요하죠. 서울시가 하는 주택개조 사업이 있는데 연중 사업이 아니에요. 5월 말이면 끝나는데, 제가 집을 구한 건 7,8월이었거든요. 지원을 못 받았어요. 그래서 결국은 우리는 거의 200만 원 가까이 자비를 들여서 고쳤죠. 장애인들이 봄에만 이사하지 않잖아요. (서울시의) 이런 지원체계가 되게 웃기더라고요. 앞으로 영구임대주택이 되더라도 시기가 맞지 않아서 주택개조지원을 못 받는 불합리한 점은 정책적으로 고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역사회가 변하려면 중증장애인들이 나와서 비장애인들과 계속 접촉하고 소통하는 과정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여기 모인 분들과 앞으로 나올 분들이 할 것이라고…
애린 _ 정말 많은 얘기를 해주셨어요. 집을 구하면서 겪었던 상황들이나 화났던 것들, 그리고 내가 자립생활을 하는 이유로 어떤 분은 당당함, 어떤 분은 나 자신을 찾는 것이라고 얘기를 해주셨는데, 마지막으로 앞으로 자립생활을 준비하고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자립생활을 먼저 시작한 선배로서 이 말 한마디쯤은 해주고 싶다, 주변 친구나 지인이 자립생활을 한다고 하면 나는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는 것이 있다면.
선심 _ 돈을 아끼라고 하고 싶어요. 돈을 아껴 써야지 살 수가 있다는 것이죠.
제기동에 사는 정은주 씨 ⓒ비마이너
은주 _ 집에 있을 때도 항상 내 자신의 삶이 전쟁 같은 삶이잖아요. 누구에게나 장애, 비장애 떠나서 전쟁 같은 삶인데, 진짜 내가 나와서 혼자 산다는 거 일상이 전쟁이고, 투쟁이고, 성격 나빠지는 거 각오해야 하죠. 내가 살려면, 정말 지역사회에서 살기 위해 내 주변에 정말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나는 어떤 물질이나 이런 거보다 사람이 되게 소중하다는 걸 절실히 느껴요. 내가 어려운 상황, 헤쳐나가지 못하는 상황들이 너무나 많이 오고, 그것들을 나 혼자 해결할 수 없고 그 누구도 해줄 수 없는 것들을,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도 친한 사람을 많이 만들어놓고 그래야 이 사람도 나도 서로가 사람이 되는 거, 그게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애린 _ 규식님은 자립생활을 꿈꾸는 후배장애인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규식 _ 용기를 갖고 빨리빨리 나와라. 안타까운데. 집에만 있든지, 시설에만 있든지 용기를 갖고 나와라. 그러면 된다. 그래야지. 나이나 먹든지. 늦게 나오면 안 된다, 빨리빨리 나와라.
애린 _ 일단 일부터 저질러라 그런 얘기죠? 라나님은요?
라나 _ 같은 이야기인데요. 우선 부딪히지 않고는 뭐든지 해결할 수 없는 거고. 문제가 발생해야 해결할 방법이 생각난다는 거죠. 전 정말 그랬거든요. 대학 다닌다고 청주에 왔을 때도 다들 정말 반대했어요. ‘니가 어떻게 살 건데’ 하면서요. 처음에 기숙사 들어갔는데 룸메이트 부모님이 반대해서 제가 자취를 하게 됐거든요. 뭔가 상황이 딱 벌어지면 살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방법이 생각이 나죠. 그래서 나는 해보지 않고서 미리 판단하고 미리 겁내지 말라고. 일단 저질러라.
정혁 _ 내가 권하고 싶은 거는 겁내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거. 솔직히 겁도 나요. 그런데 그거 한순간이거든요. 막말로. 어쩌면 밑을 보면서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거랑 비슷하거든요. 정면을 보면 무섭지 않아요. 그만큼 용기를 갖고 전진하면 길은 분명히 보여요. 그리고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기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기현 _ 제가 혼자 살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게 ‘내가 사는 것을 잘 몰랐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제가 빨래 걱정을 해봤겠습니까, 부엌에 세제 떨어지는 거 걱정을 해봤겠습니까. 세제 떨어지면 제가 사야하고요. 쌀 떨어지면 사야 되는구나, 반찬 떨어지면 이것 또 만들어야 되겠구나. 우리 집에 없으면 아쉬운 걸 어떻게 해요. 어떻게 빨래를 해야 하고, 어떻게 설거지를 해야 하는지, 어떤 음식을 내놓아야 맞고, 돈 관리를 어떻게 해야 되고, 그걸 진짜 부딪히고 몸에 체득하고 느껴야 잘 살 수 있습니다. 제일 걱정됐던 것이 내가 어떻게 굶지 않고 살 수 있을까였는데, 안 굶게 되더라고요. 절대 굶지 않습니다. 밥이 없으면 생라면이라도 깨먹습니다.
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정말 교과서적인 얘기일 수도 있는데 활동보조인들을 정말 뽕을 뽑아야 합니다. 활보 시간을 정말 철저하게 이용해야 돼요. 하나부터 열까지, 일분일초도 아깝습니다. 정말 머릿속에 계획을 세워서, 그게 대안인 거거든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내가 먹을 수 있는 곳에 음식을 놓고 가십시오’ 해야죠. 활보시간이 넉넉하면 그냥 달라고 하면 되지만 활보시간이 넉넉하지 않으니 활동보조든 어떤 도구든 간에 저는 살기 위해 머리를 굴릴 수밖에 없더라고요. 정말로. 먹고 살기 위해서 정말 별짓을 다 해야 하는 거거든요. 충분한 활동보조 서비스, 충분한 대안, 그런 게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요. 많이 알아야 하고 머리를 많이 굴려야 하더라고요.
애린 _ 제가 끝으로 한마디 하자면 자립생활에 대한 환상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으세요. 특히 시설에 계신 분들이나 집안에 쭉 계시다가 자립생활이라는 말을 듣고 ‘아, 나도 자립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 갖고 계신 분들이 많으신데요. 자립생활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거든요. 아까 말했다시피 정말 내가 세탁기에 빨래하다가 세탁기가 고장 나거나, 비가 많이 와서 내방이 물바다가 된다거나 그런 게 바로 내가 처해있는 현실이에요. 자립생활을 하려면 책임도 따라야죠. 내가 선택한 일에, 결정한 일에, 내가 저지른 일에, 그만큼 나에 대한 책임감이 따라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고요. 오늘 긴 시간 동안 수다를 떨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수다 더하기] 비마이너는 수다방을 마치며 강남구 삼성동에서 공인중개사로 일하는 임영희 씨를 인터뷰했다. 그는 중증장애인들의 집을 잘 구해주기로 입소문이 나있다. 중증장애인의 주거권, 그 치열한 현장에서 발로 뛰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영희네부동산을 통해서 집을 구했다는 중증장애인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요. 어떤 계기로 중증장애인들 집을 구해주게 됐는지요?
= 제가 노들장애인야학이라는 곳에서 교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그곳을 통해서 인연을 맺은 학생이나 졸업생 중에 집을 구하려고 하다가 좌절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물론 경제적 여건이 돼서 아파트나 오피스텔 같은 데를 가면 상관이 없지만, 그럴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는 분들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월세 방을 구할 때,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집 자체가 많지 않아요. 게다가 장애정도가 심하거나 하면 임대인들이 그분을 대하는 태도에서 문제가 있는 경우가 좀 있는 거죠. 이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 혼자 사느냐, 나는 못 주겠다 이런 경우가 실제로 있죠.
처음에 야학 학생 한 분이 집을 구하다구하다 힘들어서 저한테 부탁을 했어요. 처음엔 제가 영업하는 지역이랑 멀기도 했고, 또 그분이 스스로 알아서 집을 구하는 게 자립생활 취지에도 맞는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너무 어려움을 겪는 걸 보고 구해드리기로 마음먹었죠. 다른 부동산에 협조를 구해가면서 집을 알아봤는데 제가 알아봐도 너무 힘든 거예요. 집 자체가 없기도 하고 돈도 안 맞고, 어쩌다 구한 집의 집주인이 뒤돌아서 가는 경우도 실제로 있었고, 참 힘들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죠.
영희네부동산에서 일하는 임영희 씨. ⓒ영희네부동산
저희 사무실의 조그만 철학이 뭐냐면, ‘들어오는 의뢰는 거부하지 말자’ 이런 거예요. 만약 ‘제주도에 500에 20만 원짜리 월세 구해주세요’ 이런 건 좀 문제가 있겠지만, 그 정도로 심한 게 아니라면 들어온 의뢰는 다 받아서 하는 게 맞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우리한테 의뢰가 왔다는 건 거기서 우리를 필요로 했다는 거니까요. 만약에 어떤 장애인분이 500에 20만 원짜리 월세방을, 서울에서도 우리 사무실이랑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구한다고 할 때 ‘머니까 안 해줘요’라고 얘기하는 건 사실상 돈이 안 되니까 안 해주는 거거든요. 시간은 많이 드는데 돈이 안 되니까. 중증장애인분이 5억에 2천만 원짜리 월세 방을 구한다면 서울 강북이 문제가 아니라 제주도라도 가겠죠, 돈이 되니까. 들어온 의뢰에 대해서 이건 돈이 되니까 하고, 이건 돈이 안 되니까 버리자 하는 건 뭔가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경제적 능력을 가지고 차별하는 거라고 할 수도 있죠. 그렇게 거르는 거 자체가 기분이 나빠서, 정말 일이 바빠서 못 하는 게 아니면 할 수 있는 한 받아서 하는 게 낫겠다 생각해서 하게 됐어요. 처음에 인연이 닿아서 한 야학학생분하고, 사실 몇 분 안 돼요. 소문 듣고 오신 분들이나 정말 구하기 힘들어서 이야기하는 분들 같은 경우 알아봐서 계약하고 한 적이 있죠.
- 부동산 입장에서 장애인은 까다로운 고객인가요?
= 쉬운 고객은 아니죠. 아예 볼 수 있는 집 자체가 없으니까. 참 애매한 건 장애가 있는 분들을 까다로운 고객이라고 할 수 없는 게, 고객의 기호 자체가 까다로운 건 아니거든요. 왜냐하면 물리적인, 경제적인 요건을 갖춘 집 자체가 별로 없는 거니까. 그런 게 나오면 바로 계약을 하죠. 대신에 비장애인 같은 경우는 내가 가진 게 이만큼이다 하면 그걸로 되는 집들을 다 보고 이건 이래서 안 해, 저건 저래서 안 해 까다롭게 굴 수가 있는데, 실제로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의 경우는 까다롭게 굴 만한 파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요. 사실 되게 속상한 일이에요.
최근에 송파구 거여동에서 한 분 계약을 해 드린 적이 있는데 그분도 휠체어를 이용하시는 분이에요. 그분 같은 경우는 정말로 들어갈 수 있는 집 자체가 없어서 솔직히 ‘내가 볼 때도 여기가 참 좋은 집은 아니다’ 이걸 해 드리면서도 마음이 불편한 경우가 있었어요. 근데 어쩔 수 없으니까 이사를 하긴 해야 하는 데 집이 없으니까 다 뒤졌는데도 들어갈 수 있는 집이 딱 그 집밖에 없는 거예요. 돈이 맞고 들어갈 수 있는 어떤 물리적인 여건이 맞는 집 자체가. 그러다 보니까 집의 좋고 나쁘고를 고민하는 걸 떠나서 어쩔 수 없이 계약하는 경우도 있죠. 그런 부분은 속상하고 가슴이 아프죠. 장애인들이 접근가능한 집들이 참 많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게 항상 아쉽죠. 집값은 계속 올라만 가고 경제적인 약자고 그러다 보니까 아쉬운 게 너무 많죠. 나도 되게 싼 집에 살지만 나는 고르고 골라서 들어간 건데 그러지 못하는 게 참 안타까워요.
- 선택권 자체가 없다는 거죠?
= 그렇죠. 일례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빌라나 다세대, 다가구 주택 같은 경우는 1층이라고 해도 계단을 몇 개 올라가고 반지하라고 해도 계단을 몇 개 내려간다고요. 경사로를 설치할 수 있을 만한 집이면 모르겠는데 설치할 수 없는 집들이 되게 많아요. 집이 총 100개인데 그런 집들이 4~50개쯤 된다고 한다면 그 수만큼 갈 수 없게 되는 거니까 선택의 폭이 줄어든다고 할 수 있죠.
- 사람마다 욕구가 다르겠지만, 장애인들이 원하는 집은 대체로 어떤 형태인가요?
= 제가 장애인분들 집을 해 드린 경우가 주로 휠체어를 이용하는 분들이었는데, 정말 되게 간단해요. 휠체어를 타고 집 앞까지 혹은 집 안까지 접근이 가능한가가 제일 중요해요. 또 집에서 이동하고 활동을 하는 데 대중교통을 이용할 만한 여건이 되는가에요. 서울은 주로 지하철이 되겠죠. 지하철 이용이 가능한가, 지하철역부터 휠체어로 집 앞까지, 집 안까지 접근이 가능한가. 이걸 만족시키는 것과 동시에 필요충분조건으로 돈이 맞아야 되는 거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사실 상관이 없어요. 서울에 널린 게 아파트니까. 아파트에 갈 수 없는 장애인의 경우는 참 힘들죠.
- 집주인이나 임대인이 실제로 장애인이라서 방을 줄 수 없다고 거부하는 경우가 있나요?
= 있죠. 한번은 어떤 경우가 있었냐면, 되게 어렵게 집 하나를 찾았어요. 조건이 괜찮고 충분히 들어갈 수 있겠다 싶어서 그걸 보러 갔어요. 다른 지역에 가면 다른 부동산을 통해서 거래할 수밖에 없으니까 다른 부동산에 이야기해서 보러 간 거예요. 그런데 그 부동산에서 집주인한테 집을 보러 갈 사람이 휠체어 타는 분이라는 얘기를 안 했던 거죠. 우리가 집을 보러 집 앞에 갔는데 집주인 할아버지가 저 멀리서 휠체어를 타고 오는 우리를 보곤 뒤돌아서 문을 잠가버리는 거예요. 문을 두드렸더니 ‘방 나갔다’고해요. 이럴 때 뭐 할 말이 없거든요. 안 나간 거 뻔히 알지만. 주기가 싫은 거죠. 방 나갔다 이런 경우도 있고, 장애인이라서 안 된다 이런 경우도 있어요. ‘아이, 장애인은 괜히 무슨 일 날까 봐, 사고날까 봐.’ 이런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힘들기도 하고 기분이 나쁘기도 해요. 뭔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괜히 지고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차피 임대하는 사람 입장에선 세입자가 월세 잘 내고 집 깨끗이 쓰면 되는 건데.
사실 장애인분들 같은 경우 주거비용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생활비용에서 주거비용을 아예 떼어놓고 생활을 해서 월세가 밀리고 그런 경우를 거의 못 봤거든요. 임대하시는 분들은 월세 잘 들어오고 그러면 되는데 괜히 꺼림칙하다, 무슨 일 나면 어떻게 하느냐, 내가 계속 뭘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이런 우려들로 잘 안 해주는 분들이 있죠. 많다고 할 순 없고, 없진 않죠. 그럼에도 정말 조건이 맞는 집들 같은 경우는 어렵게 설득하고 이야기하면 괜찮아요. 실제로 같이 생활하다 보면 그런 오해나 편견도 많이 풀리곤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변에서 이렇게 장애인들을 많이 접하고 만나고 하는 게 참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죠.
- 장애인분들 집을 구해주는 게 부동산 입장에선 썩 내키는 일은 아닐 것 같은데…
= 저희 부동산이 자비 대면서 생계를 하기도 하고, 큰 뜻을 품고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장애인분들의 의뢰가 들어오면 사실 쉽지 않죠.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고, 또 굳이 장애인 방이 아니어도 그런 비슷비슷한 의뢰들이 들어와요. 돈이 안 되는데 어렵고 거리도 먼, 주로 지인들의 의뢰. 지방에서 처음 서울로 올라오면서 도움을 청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 의뢰를 내가 바쁘니까 거리가 머니까 안 해 줄래요 하는 건 결국 돈 때문에 안 해주는 거죠. 돈이 안 되니까. 그건 사실 좀 기분이 나빠요. 같이 일하는 친구들도 그런 부분에서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거죠.
집은 인권이니까. 그렇게 안 가리고 하다 보면 더 많은 기회가 올 수 있고, 더 많은 경험도 하고, 더 좋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또 좋은 부동산 협력업체들이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지금 우리가 이것 때문에 크게 뭐 문제가 있다, 손해 본다 이런 건 아닌 거 같아요. 그런 문제는 돈을 많이 벌어서 직원을 많이 두면 해결될 문제예요. 직원 여럿이 있으면 여유 있게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런 방향으로 해결하고 가려고 해요.
- 그동안 집 구해준 분들의 중개수수료는 어떻게?
= 중개수수료는 받죠. 근데 상황에 따라서 안 받은 경우도 있어요. 심지어는 우리가 돈을 주고 계약을 한 적도 한 번 있었어요. 받으려고 해요. 우리가 집을 구해주는 게 봉사 같은 거나 시혜와 동정 이런 게 아니니까, 진짜 정당하게 생각하라 이거지요. 일이 많고, 멀고 힘들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나는 돈을 벌려고 하는 거고 당신은 집을 구하려고 의뢰를 한 거니까. 수수료는 법정수수료가 이만큼이다, 우리가 아는 사람이니까 깎아 드릴 수 있다, 할인해줄 수 있는 건 할인해 줄 수도 있고.
아, 이런 경우도 있어요. 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는 일정 금액 범위 안에서 중개사협회가 수수료를 지원해줘요. ‘불우이웃’ 수수료 지원이라고 돼 있는데…(웃음) 어쨌든 장애인, 소년소녀가장, 독거노인 같은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해줘요. 중개인이 협회에 서류를 첨부해서 올리면 임차인한테는 수수료를 안 받고, 협회에서 수수료를 대신 줘요. 어쨌든 수수료는 받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받으려고 하고, 장애인이어서가 아니라 아는 사람이니까, 비장애인 같은 경우도 아는 사람들은 조금씩 빼주고 이런 게 있죠. 근데 법정수수료는 다 받으려고 하고 있어요. (웃음)
- 영희네부동산이 여느 부동산과 다른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부동산 소개 좀 해주세요.
= 강남구 삼성동에 있고, 아파트 원룸 빌라 다세대 다가구 상가 사무실 빌딩 이런 것들 전세 월세 매매를 전문으로 해요. 젊은 사람들이 하는 실력 있는 부동산입니다. (웃음) 잘 모르시는 분들은 이 부동산은 장애인들 방 구해주는 일 하는 좋은 부동산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절대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들어오는 의뢰들을 가리지 않고 할 뿐이지, 역량이 닿는 한 최대한 일을 많이 하려고 할 뿐이지, 다 돈 벌려고 하는 일이에요. 좋은 일 하려고 이러는 건 아니고 이걸 하면서 경험을 쌓고 들어오는 의뢰들에 최선을 다해서 고객만족을 주려는 거예요. 큰일도 많이 하고 돈 많이 되는 일도 하려고 하는 부동산입니다.
입구에 경사로가 설치된 영희네부동산 ⓒ영희네부동산
단지 기본 철학이, 우리 사무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데 집은 인권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헌법에 보장된 주거권과 쾌적한 환경에서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 개인의 여러 가지 신분에 따라 성별이나 나이, 지역, 장애여부, 임신여부, 국적 이런 여러 가지 것들 때문에 집을 구하거나 살아가는 데 불합리한 차별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들을 전제로 하려고 하죠. 사실 현실 여건에서 어려운 점도 많지만 어쨌든 똑같은 부동산인데 조금 더 열심히 하려고 하고, 의뢰가 들어온 것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려는 부동산입니다. 돈 많이 버는 벌고 싶은 부동산입니다.(웃음)
- 집을 구하고 있는 중증장애인들에게 좋은 집을 얻을 수 있는 왕도가 있다면 알려주시죠.
= 몇 번 이런 일이 있으니까 주변에서 계속 소개를 해주세요. 누가 이런 일이 있는데 부탁 좀 해도 될까요? 하고 의뢰가 오는 거죠. 근데 이 사람들이 저한테 부탁하는 것처럼 의뢰하는 거예요. 그럴 필요는 전혀 없는데. 제가 월곡동에 방을 구한다고 하면, 직접 부딪히는 게 맞아요. 저한테 의뢰해도 내가 다시 알아보는 건 결국 다 월곡동 부동산이거든요. 그런 거면 집을 구하는 사람이 월곡동 부동산에 가서 알아보는 게 맞아요. 특히나 자립생활의 일환에서 볼 때는요. 물론 더 힘들고 하겠지만 제가 알아본다고 해서 없는 게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똑같은 조건이니까. 근데 잘 모르고 하니까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의뢰하는 것들이 충분히 이해되고 그것도 맞고 들어오는 것도 다 열심히 하려고 하니까 상관은 없는데, 그런(직접 부딪히는) 과정 자체가 어떻게 보면 자립생활하는 데 피부로 느끼는 게 많을 것 같아요.
임대인들하고 부대끼는 문제도 있고, 부동산 자체가 접근이 어려운 경우도 많아요. 중개업소 자체가 접근이 어렵지만 어찌어찌하다 중개업소를 통해서 계약했다고 하면, 이분과 맺은 인연을 계기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게 업소에 경사로를 설치할 수 있는 거고, 또 중개업자분들이 지역에서 활동하니까 돌아다니다가 방이 나오면 이런 집 같은 경우는 경사로를 놓으면 들어올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죠.
가서 부딪혀서 만나는 것 자체가 자립생활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그 지역을 조금씩 조금씩 지역사회를 바꿔나가는 과정이기도 해요. 그런 생각으로 저는 장애인 분들이 직접 부딪히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부딪히고 정말 안 되면 내가 충돌을 할 수도 있고, 출동해도 안 될 수도 있고 잘 될 수 도 있겠죠. 접근도 안 되는데 언어장애가 있어서 소통도 안 되고 문에서 돌려보내는 경우가 많으니까 속상하죠. 그래서 어떤 분이 이런 집을 구해달라고 했을 때 ‘없습니다’라고는 정말 얘기하기 싫은 거죠. 우리만 믿고 우리 아니면 대안이 없다 하는 분들은 해 드리는 게 맞죠.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좋은 집을 구하기 위한 왕도는 발품이에요. 많이 보고, 한 번 갔던데 두 번 가서 깎아달라고 할 수도 있는 거고 정말 발품이에요. 똑같아요. 우리가 하는 것도 발품이에요. 많이 작업을 하고, 얼마나 발품을 파느냐에 따라 좋은 집을 찾을 수 있는 거예요. 또 많이 봐야지 아는 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