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강 수필의 구성 / 권대근
6. 수필의 구성
1) 구성의 작업
여기에서 말하려는 구성은 구상과도 일맥 상통되는 말이다. 우리는 흔히 작품구상이라는 말을 곧잘 쓴다. 구상(구성)이란 문장을 만들기 전에 즉 수술로 들어가지 전에 무엇을 어떻게 써 갈까, 머리말은 무슨 말로부터 시작하며, 문체는 간결체로 할 것인가, 아니면 강건체, 건조체 또는 서간체, 일기체로 할 것인가, 본론은 어떻게 끌고 가며, 끝맺음은 무슨 말로 맺을 것인가 등, 이른바 문장구성상에 있어서 사전에 구상하는 작업을 말한다. 착상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 역시 구상에 속하며 제재, 주제를 결정하고 줄거리를 짜는 일이다. 구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작업은 줄거리를 짜는 작업이다. 그 의미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하여 다음의 예를 들어 설명해 본다.
우리가 집을 짓기 위해서 먼저 있어야 할 것은 땅이다. 그러나 땅이 있다고 해서 곧 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양옥으로 지을 것인가, 한옥으로 지을 것인가 또는 단층으로 지을 것인가, 이층으로 할 것인가, 건축재료는 블록을 쓸 것인가, 벽돌을 쓸 것인가 등의 구상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곧 구상작업이라고 한다면, 그 구상작업을 바탕으로 해서 자기가 짓고 싶은 집에 대한 어떤 설계가 작성되어야 할 것이다.
건평은 몇 평이므로 방은 몇 개이며, 욕실은 어디로 정할 것이며, 서제, 거실은 어디에다 어떻게 만들 것인가, 창문은 몇 개에 대문은 어떤 양식으로 할 것인가 하는 것 등 집을 짓기 위한 하나의 설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설계가 바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작자가 작품을 창작하는 목적은 작자의 어떤 사상을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전달할 바에는 올바르게 전달하여야 한다. 주제를 가장 바르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재를 적절하게 선택하고, 그 선택된 그것들을 잘 꾸며 가야 한다. 그러므로, 구성이란 제재를 선택하여 그것을 주제에 어긋나지 않게 배열하고 결합시키는 작업이다. 즉, 수필형성에 있어서는 유기적인 조치이라 할 수 있다.
다시 주제를 음식물의 맛이라고 한다면, 소재는 일반재료요, 제재는 그 음식물을 만드는 데 있어 필요불가결한 주요 재료인데 구성은 재료를 어떻게 배합하여야만이 목적한 음식물을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그 배합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전술한 바 건축에 있어서의 설계와 같은 역할을 한다.
2) 구성의 종류
수필구성의 종류는 사람에 따라 분류 기준이 다 다르나, 본고에서는 네 종류설을 근거로 하여 설명하겠다.
(1) 단순구성(Simple plot)
단순구성이란 말 그대로 그 구성이 단순한 것을 말한다. 즉, 한 가지 이야기만으로 꾸며진 수필이다. 이야기가 하나밖에 없으므로 내용 진행이 단순하며 수필의 주제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반면에 잘 못하면 독자들에게 너무 단조로운 감을 주기 쉽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필은 이 단순구성을 택하고 있다. 이 구성법으로 수필을 쓰면 첫째 독자에게 통일된 인상을 준다.
20년이 넘도록 학교의 교사 노릇을 해 오는 내게 한결같이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그것은 학생들의 시험 답안지를 채점하면서 점수를 정하는 일이다. 과연 이 점수는 어느 정도의 정확성을 갖게 되는 것인지 참으로 의심스럽다. 채점하던 펜을 멈추고 멍하니 나도 모르게 앉았던 때가 적지 않다. 대학에는 60점 이상이라야 학점을 받게 되는데 59점과 60점의 차이는 비록 그것이 한 점의 적은 차이지만 그 한 점의 중요성이 이만저만이 아니다.(중략)
나의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나와 남달리 의좋게 지내는 친구인 P가 평균 80이 넘는 우수한 성적인데 기하가 39점이라 할 수 없이 낙제를 하였다. 기하의 학과 담임 선생님은 일본 사람으로 박박 깍은 머리가 허옇게 생긴 키 작은 노인이었다. 참으로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분으로 여러 학생들이 마음 속에 두려워 존경하는 분이었다. 더구나 작은 키에 칠판 글씨를 유난히 많이 쓰는 관계로 바른편 어깨가 치켜져 올라가 몸이 끼우땅하게 굳어지고 말았다.
유달영 , < 39점 >
39점이라는 점수를 놓고 인간의 성격의 극단적인 일면을 보여준 수필이다. 시종여일 <39점>에 관한 이야기가 그 주조를 이루고 있어 단순구성으로 볼 수 있다.
(2) 복합구성(Intricate plot)
복합구성이란 두 개 이상의 이야기를 합쳐서 쓰는 수필을 말한다. 복합구성에는 주가 되는 이야기가 있고, 이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대개의 경우 부수적인 이야기는 주가 되는 이야기, 즉 주인격인 이야기를 강조해 주는 일을 한다. 이 복합구성은 장편소설, 단편소설에 많이 쓰여지고 있다.
한편 복합구성은 수필 <청추수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버러지>, <달>, <이슬>, <창공>, <독서> 등 이렇게 토막토막의 생각을 엮어서 한 편의 수필로 구성하는 경우도 있다.
1) 지구의 6개 대륙들 중 남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만 빼놓고 4대륙에는 내 발자국을 남겨 놨다. 내가 열 살 나던 해 여름 아버지를 따라 일본 도쿄로 가 한 달 가량 살고 온 것이 나의 해외여행 시초였다. 그 뒤에도 도쿄에 5,6차례 잠시 들르곤 했다. 그러나 교도와 나라와 오사까는 금년 6월에 대만가는 길에 5일간 들러 관광한 것이 처음이었다. (중략)
2) 1949년부터 자유 중국의 영토가 된 대만에도 5차례나 다녀왔다.
3) 중국 상해 호강대학 출신인 나는 동문들 만나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4) 미국문화는 콜라, 한국문화는 다방이라는 역설이 유행하고 있었다.
5) 금년 6월에 내가 참석했던 제 3차 아시아작가회의에서의 소득은 세 가지가 있다.
이 수필에는 적어도 두 개 이상의 이야기가 합해져 있다. 이 수필에서 주인격을 이루고 있는 것은 1)이요, 기타 2), 3), 4), 5)는 1)의 이야기를 강조하기 위한 부차적인 일을 하고 있음을 본다. 즉 사대륙의 여행기를 위해서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3) 산만구성(Loose plot)
산만구성은 그 자의가 말해 주고 있는 그대로 일정한 계획이 없이 써가는 글이다. 즉, 줄거리의 진전이 산만할 뿐만 아니라 어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써 가는 수필이다. 김진섭은 수필을 일러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 하였거니와 이 견해에 따른다면 수필이란 산만구성이 되기 쉬운 글이라 할 만하다. 왜냐 하면, 얼핏 보기에 어디가 머리이고 어디가 다리인지 분간이 잘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하여 무질서하고 혼돈한 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무질서 속의 질서>를 이루고 있는 것이 수필이라 할 수 있으니, 그것은 그것대로 수필로서의 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수필은 청자 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 맵씨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부멘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서른 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수필은 흥미는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 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것이다.
수필의 색깔은 황홀 . 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 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하여 추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우미하다. 수필의 빛은 비둘기 빛이거나 진주 빛이다. 수필이 비단이라면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 그 무늬는 읽는 사람 얼굴에 미소를 띄우게 한다. 수필은 한가하면서도 나태하지 아니 하고 속박을 벗어나고서도 산만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
수필의 재료는 생활경험, 자연관찰, 또는 사회현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 무엇이나 다 좋을 것이다. 그 제재가 무엇이든 간에 쓰는 이의 독특한 개성과 그때의 무드(기분)에 따라『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이 고치를 만들 듯이』수필은 써지는 것이다. 수필은 플롯이나 크라이맥스를 필요하지 않는다. 필자가 쓰고 싶은 대로 써가는 것이 수필 행로이다. 그러나, 차를 마시는 것과 같이 이 문학은 그 차가 방향을 갖지 아니 할 때에는 수도물같이 무미한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수필은 독백이다. 소설가나 극작가는 때로 여러 가지 성격을 가져 보아야 된다. 세익스피어는 헴레트도 되고 홀로니아스 노릇도 한다. 그러나, 수필가 램은 찰스 . 램이면 되는 것이다. 수필은 그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히 나타내는 문학형식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독자에게 친밀감을 주며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와도 같은 것이다.
덕수궁 박물관에 청자 연적이 하나가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 모양을 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 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은 파격이 수필인가 한다. 한 조각 연꽃잎을 꼬부라지게 하기에는 마음의 여유를 필요로 한다. 이 마음의 여유가 없어 수필을 못 쓰는 것은 슬픈 일이다. 때로는 억지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 하다가는 그런 여유를 갖는 것이 죄스러운 것 같기도하여 나의 마지막 십분지일까지도 수째 초조와 번잡에다 주어버리는 것이다.
피천득, <수필>
이 수필은 얼핏 보기에 아무런 계획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쓴 글처럼 보이기 쉽다. 말하자면 산만한 구성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수필을 <붓 가는 대로> <느끼는 대로> <생각 하는 대로>써 가기 때문에 그 구성이 산만하게 되기 쉽다. 그러나, 산만한 구성을 이루면서도 그 속에 형식이 있고 논리가 있는, 말하자면 산만 속에서 질서를 유지하여 가는 글이다.
(4) 긴축구성(Organic plot)
긴축구성은 마치 틀에 박은 듯 꽉 짜여 있는 구성을 말한다. 그 때문에 수필은 처음부터 끝가지 빈틈없는 유기적인 연결을 맺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유기적인 연결은 질서정연한 구성미를 보여 주기까지 한다. 다시 말하면, 어떤 주제를 나타냄에 있어 유기적 통일성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구성의 완성미를 보여주는 글이기도 하다.
1) 십대소년이 또 네 사람을 칼로 찔러 그 중 두 사람을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 서울에서 일어났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이른바 부산 신혼부부살인사건이 일어난 지 불과 십여 일 만에 다시금 이러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2)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번 부산 신혼부부살해사건이 일어났을 때 청소년 범죄가 근래 날이 갈수록 흉악해지고 있는 사실이 크게 문제가 됐던 것을 기억한다.
3) 이번 사건은 지난 번 부산 사건과는 달리 그 동기가 다니던 공장에서 쉐터를 훔친 것이 이유가 되어 해고를 당한데 대한 앙갚음이 동기가 됐다고도 전한다.
4) 이 점 최근의 이 두 사건은 오늘날 일부 철부지 십대들이 스스로의 욕구불만을 발산시키기 위하여 얼마만큼 쉽사리 살인과 같은 극단적인 범죄를 저지를 수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 좋은 표본이라 함은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5) 이에서 우리는 이제 이러한 일부 십대가 위험한 십대를 넘어서서 무서운 십대로 화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가 있으며,
6) 대체 어디가 무엇이 어떻게 잘못돼 있기에 이처럼 청소년범죄가 증가를 거듭하고 날로 흉악상을 더해가는 것일까.
7) 지난 번 부산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그랬지만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역시 각계로부터 갖가지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음을 본다.
동아일보, <청소년범죄의 흉폭화>
이 신문 기사는 서울에서 일어난 청소년의 살해 사건을 부산에서 일어난 신혼부부살해 사건과 연관시켜 더욱 흉폭화되어가고 있는 청소년 범죄의 실상을 고발하는 글이다. 1)에서 2), 3)으로 연결되면서 이어지는 단락의 전개가 빈틈없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7. 구성의 기본형
전술한 바와 같이 구성이란 제재를 주제에 어긋나지 않게 배열하고 결합시키는 일, 즉, 문장구성에 있어서의 유기적인 조직법을 말한다. 예를 들면 인체의 경우, 머리가 있고, 가슴, 배, 팔, 다리가 있어야만 하나의 인체를 구성하는 것과 같은 유기적인 조직을 의미한다. 그러한 조직을 효과적으로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수필을 구성하는, 즉 재료를 배열하는 여러 가지의 기본적 패턴을 터득하여 두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다. 이 기본적 패턴을 구성의 기본형이라고 한다. 구성의 기본형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배열식적 순서형
문장작법상 필요한 재료를 일정한 순서에 따라 배열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편의상 다음의 두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시간적 순서형과 공간적 순서형, 논리적 순서형과 이념의 순서형 등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순서라고 하는 것은 묘사나 서술의 순서를 지배하는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유의할 것은 한 편의 작품이 꼭 한 가지 질서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편의상으로 기본 구성형을 나눠 본 것이다. 이는 얼마든지 혼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1) 시간적 순서형
어떤 대상을 시간적 순서를 따라 서술하여 가는 것을 시간적 순서형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일단 시간을 흐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간적 질서에 따르는 구성은 세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시간의 흐름에 그대로 따르는 구성, 둘째는 시간의 흐름에 역행하는 구성, 셋째는 현재에 서 있다가 과거를 다녀오는 구성 등이 그것이다. 시간의 순서는 과거 . 현재 . 미래 . 어제 . 오늘 . 내일 . 아침 . 낮 . 저녁 순으로 진행된다. 그 한 예문을 들면 다음과 같다.
4일에 걸친 폭우가 겨우 그치고 오래 피신하였던 태양이 다시 위용을 내 놓았건마는 찌는 듯한 무더위가 오히려 사람을 열살, 뇌살치 아니하여 마지 아니하려 하는 7월 20일이었다. 밤이 되어도 완화되지 아니 하는 답답한 열압이 암만하여도 심상치 아니 하여 서투런 무당이 궂은 일에는 맞추는 것처럼, 상해 방면으로 동진하는 저기압이 무서운 호우를 가지고 온다하던 측후소의 예보가 반갑지 아니한 이 일에만 어쩌다 맞을 듯도 하다.
이은상의 <백두산참관기>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수일에 걸친 비가 �고, 태양이 얼굴을 내민 7월 24일, 그 날밤이 되어도 완화되지 않는 답답한 열압이 내려누르더라는 것 등은 모두 시간적 순서에 따른 것이다.
(2) 공간적 순서형
대상을 공간적 순서를 따라서 서술하는 것을 말한다. 즉, 어떤 풍경을 일정한 방향의 순서에 따라 표현하는 것인데, 예를 들면 밑에서 위로, 좌에서 우로, 동에서 서로 또는 남에서 북으로 등 이러한 순서를 따르는 것을 말한다. 수필가가 묘사하려는 대상, 서술하려는 행동, 이런 것들은 모두 공간 속에 위치하거나 거기서 진행된다.
정비석의 <산정무한>은 소재가 공간적 순서에 따라 배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순서에 따라 수필을 써 가고 있음을 본다. 즉 철원의 금강전철에서 내금강역, 청계, 문선교, 장안사 등 행로의 순서를 따라 전개하여 이어가고 있다.
부평으로 가는 만원 전철 속, 오른쪽에는 한 사람 건너 국민 학교짜리 셋(5,6학년쯤 돼 보이는)을 데리고 중년 여인이 서 있고, 왼쪽에는 미취학짜리의 손을 잡은 30대 부부가 서 있다.
영등포 역에 닿자 내 앞 좌석에서부터 왼쪽 30대가 서 있는 곳까지 서너 사람 몫의 자리가 났다. 그때,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이 빠져 나오기도 전에 구경거리 하나가 벌어졌다.
부평 역 광장에 내려서자, 때마침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뉴스가 가라앉지 않은 속을 다시 뒤집는 것이었다.
이 글에서 <부평으로 가는 만원 전철 속>은 작가의 출발점, 아마 서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의 공간적 변화는 <서울 → 영등포 → 부평>과 같이 표시할 수 있다. 이것은 공간적 질서에 일치함으로써 독자의 사고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
시간적 질서에 따르는 구성은, 잠깐 그 질서를 깨뜨림으로써 효과를 높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공간적 질서에 따르는 구성은 그것이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만일, 공간적 질서에 따르는 구성에 있어서 그 질서가 깨어지면, 독자에게 남는 것은 혼란뿐이기 때문이다.
(3) 논리형 순서형
문학 작품은 본래 논리를 추구하는 문장은 아니다. 그러나, 그 자체로서는 특수한 효과를 위한 의도적인 파괴가 아닌 이상 논리에 어긋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논리적 구성이라고 하면, 인과 관계에 따르는 구성, 연역적 구성과 귀납적 구성 같은 것을 연상하게 된다. 이 밖에도 더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이 한 가지만 고찰해 보기로 한다.
인과 관계에 따르는 구성은 두 가지 방식이 가능하다. 하나는 <원인 → 결과>의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결과 → 원인>의 방식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들은 한 작품의 전편을 지배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문단 문단에 나타나는 것이 현저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여름을 타는 것도 아닌데 여름 밥상엔 가끔 입맛을 잃곤 한다. 상치쌈이나 풋고추 된장찌개도 몇 날 몇 끼니지, 한 철을 내내 이것들에만 입맛을 맡길 수는 없다. 짭짤한 젓갈이나 장아찌 등 밑반찬이 더러는 입맛을 돋구어 주기도 하지만, 이것들도 끼니마다 줄대어 먹게끔 식성이 풀려 있지 않다.
작금년에 들어 바닷가 출신의 안식구는 집안 밥상머리에서의 민망함을 덜기 위해서 생각해 냈음인가, 망둥이라는 건어물을 가끔 상 위에 올려 놓는다. 그 때마다 친정의 오빠에게 부탁하여 구해 온 것이라 했다.
이 인용의 첫째 문단은 입맛이 없다는 것이고, 둘째 문단은 그래서 망둥이가 등장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첫째 문단은 망둥이가 등장하는 원인이 되고, 둘째 문단은 입맛이 없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가 되는 셈이다. 즉, 위의 인용은 <원인 → 결과>의 방식을 취한 구성인 것이다.
2) 병열형
시.공간의 순서를 밟지 않고 소재를 단위별 또는 항목별로 배열하여 서술하여 가는 방법을 말한다. 소재에는 시간성과 공간성이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는 것도 있다. 시간성 공간성의 순서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단위별, 항목별로 서술하면 그것 또한 나열형이 된다. 어떻게 배열하여 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작자의 재량에 맡길 수밖에 없다.
정지용의 <석류, 홍시, 유자>는 병열형의 서술이다. 석류, 홍시, 유자 하나 하나 단락을 이루면서 나열되고 있다. 시간적 공간적 순서에 구애받지 않는 서술형이다. 그렇다고 순서를 바꾸었다고 하여 시간적 공간적 연속성이 무시된다거나 논리적 순서가 비약된다거나 하는 염려가 없다. 바로 이것이 병열형의 특징이기도 하다.
현기순의 <주름살>도 병열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주름살'은 삶의 발자취를 상징하여 준다. 곧 삶의 악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주름살을 여러 측면에서 바라보고 나름대로 인생을 해석해 보고 있는데, 할머니의 주름살, 고생의 흔적을 보여주는 주름살, 학자의 주름살 등 인생의 주름살을 병열식으로 다루고 있다.
3) 삼단형
일에는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맺음이 있다. 이러한 삼단의 순서를 밟아 서술하여 가는 것을 삼단형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떤 글이나 덮어놓고 삼단으로 나누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삼단형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시작과․중간․끝의 삼단이 시종 논리적인 단계를 맺어 가면서 유기적인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글감을 모았다면, '우선 세 동아리로 묶어 놓고서 쓴다'는 원칙을 초심자들은 비결로 간직할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것에는 처음․중간․끝이 있다고 했다. 그만큼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삼단형의 구성이다. 다만 문학의 장르나 문장의 종류에 따라 그 이름이 달리 쓰일 뿐이다. 이대규 부산대 교수는 수필의 구성상 특징을 구조로 보고, 세 단위로 나누어 첫째 단위는 발단이고, 둘째 단위는 전개이고, 셋째 단위를 결말로 이름짓고 이 기본 세 단위를 갖춘 수필을 기본형 수필이라고 하였다. 형식이 자유로운 수필의 특성상 모든 수필이 발단과 전개 그리고 결말로 이어지는 삼단 구조로만 쓰여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중에서 한 단위 또는 두 단위가 빠진 수필이 있을 수 있다. 이를테면, 발단이 없는 경우, 결말이 없는 경우, 발단과 결말이 빠져서 전개만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런 수필을 변형 수필이라고 하였다.
시골 부잣집의 주인 영감 생일이 다가오자, 그 집에 살고 있는 동물들이 회의를 열었다. 누가 잔치상에 오를 것인가를 토론하기 위해서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소다.
"지금은 농사일이 한창 바쁠 때니 설마 나를 잡지는 않을 거야"
그 말을 들은 말이 말했다.
"주인은 언제나 나를 타고 다니지. 아무리 주인이 바보라고 해도 나를 잡아 먹고 걸어다니지는 않겠지"
한동안 말의 얘기를 듣던 양이 말했다.
"나는 곧 새끼를 낳아 주인을 돈 벌게 해 줄거야. 주인은 내 젖을 먹고 건강을 유지하며 털까지 깍아 팔아 돈을 모으는데 나를 잡겠어?"
암탉이 꼬꼬대며 수다를 떤다.
"나는 알을 낳고 병아리를 까서 주인을 위해 봉사하는데 나는 예외야"
먼 산을 바라보던 개가 입을 연다.
"나는 주인을 위해 밤새워 도둑을 지킨다. 내가 없으면, 이 집은 도둑들이 들끓을걸"
이때 돼지가 한숨을 쉰다.
"죽을 놈은 나밖에 없구나"
기업들이 어렵다. 어렵다 보니 감원선풍이 불어온다. 이럴 때 너나없이 전전긍긍하게 된다. 혹시 내가 대상이 될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상헌, <정년 이후>
4) 사단형
사단형은 서론, 설화, 논증, 결론 등으로 나누어진다. 한편, 기승전결형이라고도 한다. 사단식 짜임은 문장의 유형에 따라 단계별 이름을 달리 한다. 한편 사단법은 소설구성에도 많이 쓰이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Forster - Harris는 『소설의 기본공식』에서 ① situation ② complication ③ crisis ④ climax 등을 들고 있는가 하면, 또한 다음의 사단계를 들기도 한다. 수필 구성법에 쓰이던 틀은 ① 발단(exposition) ② 전개(development) ③ 절정 climax ④ 해결(resolution)의 구조라 할 수 있다.
이 기승전결의 사단형은 당나라때 완성된 시형식으로서 한시, 가요, 시, 동시의 구성법에 많이 쓰이고 있다. 글자 그대로 <기> 들어가기, <승> 풀이하기, <전> 굴리기, <결> 마무리 수법이다. 이 구성의 특징은 <전>에 있다. 의표를 찔러 참심함을 안기고, 흥미나 기지, 유머가 넘치는 <결>로 매듭짓는다. 변화로운 구성이요, 전개의 의외성, 문장 개성의 돋보임을 특징으로 한다.
이 구성법은 소설, 희곡의 4단계 즉 발단, 전개, 정점, 결말과 맞먹는다고 보겠다. 어느 쪽도 전체에 변화와 긴장을 곁들이고, 흥미, 인상을 안겨 내용을 깊게 하고 운치롭게 해야 하는 구성법이다. 이런 만큼 실용문, 논문 따위에 적용하기엔 특단의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곧 <전>의 대목은, 단락을 뚜렷이 구분하여야 하며 내용이나 잣수도 가늠해야 하고, 전체의 균형도 묘미도 곁들여야 하고, 재미를 북돋우어 깊은 인상을 노려야 하기 때문이다. 독자를 당황하게 하지 않는 치밀한 계산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자신이 없을 땐 삼단 구성으로 복귀해야 할 것이다.
이 구성법은 경험적 수필에 많이 쓰인다. 다음의 한 편은 이 구성법으로 효과를 거둔 예라고 할 수 있다.
대전 어느 교사들이 모임에서 법문을 하고, 늦은 시간 대구역에 도착했다. 훌륭한 법문을 설했다고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택시를 기다리는데 살며시 팔장을 끼는 손이 있었다. "스님, 쉬었다 가세요. 잘해 드릴께요" 선뜻 거리의 여인임을 느낄 수 있었다.
역겨운 감정이 솟아, 팔을 뿌리치려고 손을 빼는 순간, 그녀의 모습에 외롭게 사는 누이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뿌리치려던 손을 내리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엉거주춤 끌려 가고 있었다. 중생의 아픔을 넓은 가슴으로, 묻어 줄 수 있는 스님의 모습도 아니고, 껄걸 웃으며 등을 한번 어루만져 줄, 큰 가슴의 사내도 아니었으니…… 그저 자기 방어에 전전긍긍하는 ,못난 사내의 모습이었다.
아픈 중생과 하나될 수 없는 스님이라면, 도를 통해 무엇을 한단 말인가. 초라한, 참으로 초라한 자신을 발견한 또 다른 자신은 커다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스님, 잘해 드릴께요" 침묵을 깬 그녀의 말. 그 말이 왜 그리도 서럽게 들렸던지. 팔짱 낀 그녀의 손을 꼬옥 잡으며 말했다. "처녀, 큰스님 되면 올게. 꼭 큰스님 되어 올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며, 너무 진지한 나의 모습에 두 손 풀어 가슴에 모으고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의 눈망울은, 지금도 수행의 채찍이 되고 있다.
석용산, <어느 스님의 참회>
"큰스님 되면 올게. 꼭 큰스님 되어 올게" 서너 마디 말이, 읽을이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선을 범하고 난 다음의 불쾌보다 참고 난 다음의 쾌감을 택하라던, 성에 대한 어느 가르침은, 차라리 수준 낮은 언어의 장난이다. <전>에 도사린 '구성의 묘미', 절정적으로 맺힌 대사가 주제와 더불어 더없이 묻어 오게 한다.
5) 오단형
5단형 짜임에는 크게 6 가지가 있다. 첫째, 소설, 희곡 등에 많이 사용된 구성법으로서 그 내용을 보면, 발단, 갈등, 위기, 정점, 결말로 이어진다. 둘째, 3단락법의 변형으로, 독자와의 접촉, 제목의 소개, 논지의 제시, 주제의 전개, 맺음이다. 셋째, 희랍의 변론술형으로 도입, 진술, 증명, 반론, 결어다. 넷째, 중국의 산문구성형으로 기, 승, 포, 서, 결이다. 다섯째, 음악의 소나타형으로 전주, 제시, 전개, 재현, 종결이다. 이는 삼단형이나 사단형을 더욱 짜임새 있게 구분한 것이라 하겠다. 한편 문덕수는 그의『신문장강화』에서 <5단형은 동기부여의 순서에 따라 재료를 배열하여 서술한 문장의 패턴>이라고 전시하고, 다음의 오단계를 들고 있다.
① 접촉(주의를 이끄는 단계)
② 주장의 제시(문제를 제시하는 단계)
③ 논증의 명시(문제해결법을 제시하는 단계)
④ 논증의 전개(구체화의 단계)
⑤ 요약과 강조(행동에 유도하는 단계)
여기서는 3단법의 변형인 5단 구성법을 예로 들겠다.
징글벨소리가 울려 오면 사람들의 마음은 공연히 들뜨게 되고, 걷는 걸음걸이도 바빠지게 마련이다. 백화점에는 선물을 사려는 인파가 몰리고, 깜빡이는 네온사인 아래로 눈을 맞으며 걷는 연인들의 다정한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신세계 백화점 앞을 지나다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구세군이 자선냄비 앞에서 열심히 종을 흔드는데, 한 스님이 지나가다 그 옆에 자리를 깔고 목탁을 두드리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우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업무방해를 해도 분수가 있지....."하면서 그냥 지나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스님 앞에 돈을 놓고 가기도 했다. 진눈깨비가 내리고 날씨는 점점 추워지는데, 스님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불경을 외우고 있는 것이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스님 앞에도 돈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스님은 그 돈을 주섬주섬 챙기더니, 자선냄비 앞으로 가 모두 그 속에다 넣고 합장을 한 다음 어디론가 총총걸음으로 가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스님을 못마땅하게 보고 있던 사람들은 틀림없이 죄송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나는 부지런히 그 스님의 뒤를 좇아가 말을 걸었다.
"스님, 바쁘지 않으면 차라도 한잔 하면 어떨까요?"
스님은 빙그레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옷은 진눈깨비 때문에 흠뻑 젖어 있었고, 아무래도 따끈한 차라도 사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방에 들어가자 얼마 안돼 그의 옷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기 시작했다.
"스님, 열심히 시주돈을 받아 왜 자선냄비에 넣으셨습니까. 그냥 가지고 가시지..."
"내일이 크리스마스 아닙니까? 그래서 나도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스님은 기독교 신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부처가 따로 있습니까? 그래서 나도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부처가 따로 있습니까? 예수가 부처고 부처가 예수지요."
나는 그 스님과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내 마음도 활활 타오르는 난로처럼 훈훈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상헌, <스님의 자선냄비>
위 5단 구성법은 원래 논설문 따위 이론적 문장에 썼던 양식이다. 제 3,4단락은 이 글 사건의 중심이고 ,제5,6단락은 그 사건에 대한 해설, 감상에 해당한다. 주제문인 "부처가 따로 있습니까? 예수가 부처고 부처가 예수지요"로 귀결지은 맺음의 기법도 능숙하거니와 "업무방해를 해도......."의 위기스런 대목은 맺음에의 복선을 예비한, 치밀한 구상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6) 기타
이상에서 말한 것 외에 문덕수는『신문장강화』에서 다음의 형을 들고 그 예문을 제시하고 있다. 앞에서 말한 것이 단락 위주의 구성법이라면 다음에 말하는 것은 주제문 중심의 분류가 될 것이다. 즉 두괄형과 미괄형, 양괄형, 중괄형이 바로 그것인데, <두괄형은 그 문장의 토픽 센텐스가 서두에 있는 것이요, 미괄형은 토픽 센텐스가 결말에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이어 <토픽 센텐스가 서두와 결말 즉 앞뒤에 다 있는 것을 양괄형>, <토픽 센텐스가 문장의 중간에 있는 것을 중괄형>이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