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소개 [강원 도민일보] 횡성의 그윽한 호수 길을 걸었다.

[신정일]

[공동칼럼 길] 횡성의 그윽한 호수 길을 걸었다

2011년 10월 06일 (목) 신정일

유장하게 흐르고 흘러가는 강이 동적이라면 고여 있는 호수는 정적이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푸르른 녹색과 온갖 색깔로 갈아입는 산자락에 그윽한 풍경을 연출하는 호수를 바라보며 걷는 길은 그래서 남다르다. 그런 길이 바로 횡성댐을 둘러싸고 만들어진 횡성 호수길이다.

“횡성에서 잘 난체 하지 말아라”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그만큼 지역 색이 뚜렷하고 잘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 횡성에 태를 묻은 사람이 조선 중종 때 사람인 고형산(高荊山)이었다. 오늘날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길을 내는데 선구자 역할을 했던 고형산은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고갯길로 알려져 있는 대관령 길을 개척한 사람이다. 강원도 관찰사로 재직하고 있던 그는 그 당시 백성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 관의 힘만으로 관동대로의 길목인 대관령을 개척했다.

그런 역사를 긴작한 곳이자, 횡성한우와 안흥찐빵으로 이름난 횡성을 찾았던 것은 가을이 무르익는 시월 초였다. ‘우리 땅 걷기’ 도반들과 함께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의 사열을 받으며 도착한 대관대리의 수림공원 아래로 섬강의 상류천인 개천이 흐르고, 그곳에서부터 길은 나지막한 산길로 이어졌다. 울창하게 우거진 소나무, 상수리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호수가 가을 햇살을 받아 빛나고, 넓지도, 좁지도 않는 산길이 어찌 그리도 포근하던지, 마치 실크로드 길을 걷는 듯 싶었다. 저마다 나오던 탄성, ‘참 좋다.’ ‘길이 너무 좋은 데요’ 그렇다. 사람들이 걷는 길은 더도 덜도 아니고 이래야 좋은 길이다. 리본 하나 걸려 있지 않아도, 표지판 하나 없어도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는 길. 그 길이 가장 좋은 길이다.

가다가 보면 지난 밤 파다가 만 오소리 굴도 있고, 아침녘에 멧돼지가 지나가다가 싸놓은 똥이 수북하다. “야, 멧돼지 한 마리 잡으면 우리 일행들이 포식하겠는걸.” “그러면 법에 걸릴 것인데.” 그 말을 들은 박두희 과장이 “멧돼지를 잡으면 포상을 해줍니다.” 내가 그 말을 듣고 “멧돼지를 잡아 포상금 타서 한우 한 마리 사면 우리 일행 저녁 내내 포식하겠는데요.” 그 말에 모두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걸었던 길이 바로 그 호수길이었다.

우리가 걸었던 호수 길은 우리나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곳이다.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에게 지금의 밀양시 삼랑진에서 크게 패했고 일부 군사를 데리고 태기산으로 쫓겨와 웅거하던 중 군사를 훈련하다가 갑옷을 씻었다는 곳이 갑천이고, 갑천면 횡성댐을 둘러가는 길이 바로 이길 이다.

얼마 전에야 조성된 횡성호수 길은 그림 같은 호수와 그 호수를 그리움처럼 내려다보고 있는 어답산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두 개가 마주보고 있는 중금리 삼층석탑 너머 보이는 호수, 그래서 이 길은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길이다.

이제 곧 나뭇잎들이 형형색색으로 물들고 그리고 우수수 낙엽이 되어 떨어질 것이다. 낙엽 진 길을 싸드락, 싸드락 걸어가면 가을 나그네가 될 것이다. 봄이면 봄, 여름이면 여름, 가을이면 가을, 그 나름대로의 운치와 정취를 지닌 이 길을 걷다가 보면 자연 속에서 스스로가 자연이 되는 경이를 느끼게 되지 않을까?

해는 서산에 기울어 가고, 가끔씩 보이던 논배미에 벼이삭들이 황금빛으로 빛나던, 길을 걸어가는데 문득 군수님이 내게 한 말이 떠올랐다. “길은 인종구조물보다 원래 있던 길을 찾아내어 사람들이 다닐 수 있을 만큼만 정비하면 되지 않겠어요? 태기산성 길도 그런 취지를 가지고 잘 만들겠습니다.” 그렇게 다듬어진 태기산성 길을 걸으며 진한의 마지막 임금인 태기왕의 한 서린 이야기를 들을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원래의 길을 찾고 끊어진 길은 잇고, 그리고 그 지역의 숨결을 느끼며 걷는 길들이 사람들이 가장 걷고 싶은 길이다.

[자연속에나]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횡성호수 길을 건고 싶은 마음에...가슴이 마구 뜁니다..마치 천국과도 같은 생각이 들어서..언젠가는
가게 될날이 제게도 있겠지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가나다..]

횡성 호수길과 코스모스길을 걷던 시월 1 ~3일의 기억이 새롭습니다.
원주옆의 가까운 곳임에도 멀리만 느껴졌던 횡성! 우리땅과 함께하며 가까운 이웃이 되었습니다.
함께하는 등산회와 태기산, 갑천, 어답산을 둘러볼 기회를 상상하며, 우리땅님들과 함께한 시간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