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 | 명 단 |
11 |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최정택 백운택 노정기 권익현 |
12 | 박준병 박희도 안필준 최 웅 이상규 황인수 임인식 정동철 이광근 박세직 |
13 | 최세창 최문규 정진태 윤태균 정동호 권영휘 우경윤 이우재 조명기 신재기 오한구 |
14 | 이종구 문영일 장홍열 장기하 정도영 배명국 안무혁 박정기 이춘구 |
15 | 고명승 권병식 나중배 민병돈 이진삼 이대희 이상수 박태진 박종식 이삼술 김상구 이한종 |
16 | 장세동 최평욱 정만길 신말업 이필섭 김충식 김정용 이지윤 양현두 최원규 정순덕 |
17 | 김진영 임인조 김태섭 이병태 이문석 이해룡 이현우 안현태 강명오 허삼수 허화평 유근하 |
18 | 구창회 김재창 조남풍 배대웅 김정헌 강환근 반준석 이승남 장석린 성환옥 이시용 이학봉 조용암 |
19 | 강상진 김상준 김정환 김진선 김택수 박광영 서완수 이중환 이택형 최부웅 최권영 최준식 최석립 최윤수 장석규 |
20 | 김종배 김길부 함덕선 김무웅 안광열 허청일 장호경 이현부 안병호 한광덕 이경열 |
21 | 이충석 최승우 표순배 여명현 전영진 강창남 신윤희 구태도 박창규 홍순용 |
22 | 유효일 유회국 신양호 오형근 장성득 박범무 권기대 최기홍 조성호 |
23 | 손수태 정정택 박영일 길영철 서중일 김현수 오주의 |
24 | 민병국 홍한수 윤영정 강영욱 유보선 채문기 권중원 |
25 | 안광찬 황진하 이상제 이상선 임인창 박석조 장세영 권경석 진병국 강창희 유수재 |
26 | 이상학 김익성 임문택 안대환 최홍규 이기영 |
27 | 서삼섭 제정관 김부명 김준섭 김용석 신용수 이해호 |
28 | 김진황 안병윤 임종국 김명길 이채인 이영우 권영욱 김익환 장용운 |
29 | 박항규 이명구 최득묵 한동원 강대구 조성호 나병태 정두찬 홍원기 |
30 | 김정근 김용기 조윤기 이현중 방정한 권행근 김덕곤 하형규 |
31 | 윤희만 이진우 최종대 임치규 김용수 한성동 |
32 | 안학승 차철이 신경철 최진학 이기원 한기엽 이남호 김선도 이평희 김동화 허육 신태섭 |
33 | 김경규 김열수 박영록 김형원 민병달 용삼남 손삼수 이정훈 방동환 |
34 | 이해평 김정국 김홍식 노정수 김형배 이윤규 장사용 조영천 박종재 |
35 | 송영활 신동혁 정길현 김은홍 유제승 박정욱 최승주 심택용 김석순 정병욱 |
36 | 김용빈 김종만 김현집 장창록 최계명 김달수 강형준 최익봉 김창용 조인상 |
이번에 ‘신동아’가 공개하는 하나회 명단은 11~36기 소속 250명이다.
육군 인사참모부라는 공식기관에서 작성·관리해온 것이므로 이제껏 공개된 명단 중 가장 신뢰도가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군 인사전문가와 하나회 관계자는 “거의 100% 정확한 명단”이라고 평가했다.
그 동안 군 주변에서는 하나회 회원이 아닌데 ‘백승도 명단’에 포함되는 바람에 부당하게 피해를 입었다는 사람들의 하소연이 종종 화제가 되었다. 국방품질관리소장 한광문(27기·예비역 중장)씨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은 하나회 회원이 아니라고 강력히 부인해왔다.
반대로 ‘백승도 명단’이나 언론이 공개한 명단에서 빠진, 말하자면 아직 드러나지 않은 하나회 회원이 적지 않다는 얘기도 그럴듯하게 돌았다. 왜 이런 혼란이 생겼을까.
이런 의문은 ‘신동아’가 확보한 ‘육본 명단’을 통해 어느 정도 풀렸다.
‘백승도 명단’에 오른 사람 중 상당수가 빠진 반면, 새로운 이름이 다수 등장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27기 한광문씨의 경우 ‘육본 명단’에는 빠져 있다.
두 명단의 기별 인원을 비교한 결과 거의 모든 기에서 3명 이상씩 차이가 났다. 특히 35기의 경우는 심한 편이다.
‘백승도 명단’에는 모두 8명이 있는데, 그중 5명의 이름은 ‘육본 명단’(10명)에서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육본 명단’에 있는 10명 중 7명은 ‘백승도 명단’에 없다.
36기도 비슷하다. ‘백승도 명단’은 7명인 데 비해 ‘육본 명단’은 10명이다. ‘육본 명단’ 10명 중 5명은 ‘백승도 명단’에는 없다.
반면 ‘백승도 명단’ 중 2명은 ‘육본 명단’에서 빠져 있다.
이에 비해 ‘월간조선’이 공개한 명단은 ‘백승도 명단’보다는 오차가 작은 편이다.
‘육본 명단’과 비교하면 기별로 한두 명 차이가 있다. 하지만 26기까지의 회원만 적혀 있는 것이 한계다.
하나회 회원들의 진급실태를 분석할 때 11~26기의 명단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백승도 파동’이 있던 1993년 초 이미 26기 회원이 1차로 준장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때까지 장성진급 대상이 아니던 27기 이하의 회원들이 명단 파동 이후 진급인사에서 어떤 불이익을 받았는지가 분석 포인트다.
‘명단 파동’ 후 진급률 급락
육본 인사참모부 문서에 따르면 군 당국은 하나회 회원들에 대해 군 복무 기간 중 1회에 한해 불이익을 준다는 방침을 정했다
(장교들의 진급은 특별한 경우를 빼고 대체로 기별로 3차에 걸쳐 이뤄진다. 따라서 올해 1차 진급에 실패하면 이듬해에 2차, 내후년에 3차 진급기회가 있다. 예컨대 2차 때는 1차에서 함께 떨어진 동기생은 물론 새로 1차 진급대상에 오른 한 해 후배기수 및 3차 진급기회를 맞은 한 해 선배기수와 경쟁해야 한다).
문서에 적힌 진급 제한방식은 다음과 같다.
▲1차: 전원 진출 제한
▲2차: 극소수 진출
▲3~4차: 경쟁선발을 통한 소수 진출
*군에 꼭 필요한 인재는 선별적 진출, 군에 기여 기회 부여.
또한 보직에 대해서도 ‘기존에 누린 특혜를 고려해 형평성이 이뤄질 때까지 불이익을 준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러한 진급 및 보직 불이익 원칙은 알자회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26기 이전 기수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하나회 회원이 별을 달았다. 최상위계급인 대장도 수두룩했다.
주요 보직도 독차지했다. 한마디로 하나회 전성시대였다.
그러나 명단이 공개된 1993년 이후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그해 준장 2차 진급기회를 맞은 26기 하나회 회원 6명 중 3명은 끝까지 별을 달지 못했다.
100%에 가깝던 하나회 회원들의 장성 진급률이 50%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해 준장 1차 진급시기를 맞은 27기의 경우 회원 7명이 모두 진급에서 탈락했다.
이듬해 1차 진급대상이 된 28기(9명) 회원 중에서도 장군은 나오지 않았다. 이 두 기의 하나회 회원은 다들 대령으로 전역했다.
29기의 경우 9명 중 이명구씨 한 사람만 장성으로 진급했다. 이씨는 3차로 별을 달았는데, DJ 정부에서 소장까지 오른 후 전역했다.
30기 회원은 8명. 그중 김용기, 권행근씨만 각각 2, 3차에 별을 달았다. 회원 6명인 31기의 경우 3명이 각각 1, 2, 3차에 준장으로 진급했다.
1993년 중령이던 32기 회원 12명 중에는 아직 별이 나오지 않았다. 대령 계급장도 동기들에 비해 한참 늦게 달았다.
한 회원은 5차에 진급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33기도 회원 9명 모두 장성 진급에 실패했다.
이들은 대령 단 것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현재 대령은 39기까지, 중령은 43기까지 배출된 상태다.
2003년 준장 1차 진급기회를 맞았던 34기 하나회 회원(9명)의 경우 장성은커녕 대령 진급자도 드물다.
두 사람이 각각 3차와 5차에 대령으로 진급했을 뿐 나머지 회원은 모두 중령으로 예편했다.
지난해 준장 1차 진급대상에 오른 35기 회원도 10명 중 4명만 대령 계급장을 달았다. 1명은 2차에, 3명은 3차에 가까스로 진급했다.
하나회 마지막 기수인 36기는 10명의 회원 가운데 5명이 대령으로 진급했다.
한 명만 1차로 진급했고, 3명은 2차, 나머지 한 명은 3차로 턱걸이했다.
http://www.csuh.pe.kr/politics/mapaper/paper04b.htm
기수 | 명 단 |
34 | 권양주 박승용 박종태 박주현 오승호 이평규 이해평 강영철 오현석 이재영 박재수 박종국 |
35 | 강성룡 구상진 박정욱 박재두 송진형 신동혁 유정권 이원희 장연석 강선모 박희도 이석우 |
36 | 김달수 김동욱 김종업 김지홍 박판준 안형주 오 명 이근혁 이서영 장창록 류형관 최석원 |
37 | 권혁도 신문섭 이동준 권용일 김은준 박수경 이양훈 이찬우 정환만 조용평 승장래 이충원 |
38 | 권혁범 김영복 김영철 김진준 박순학 박종삼 박지양 성연호 안희만 이창형 임호영 조현천 최수환 |
39 | 강오영 김영덕 김의순 윤희천 이기덕 이영우 이해수 장경석 최돈철 최일우 박경양 윤지상 |
40 | 김병태 김상규 박운범 박현근 송장호 정귀섭 황광석 신원직 강구현 박진학 김주섭 백창진 |
41 | 곽병철 박병규 박형기 장경수 정진관 조성주 조종설 구자준 백광욱 조현규 한병훈 홍성민 주명호 |
42 | 장진섭 정욱진 정의관 박종일 곽정근 김정수 신병주 최 원 김석홍 최두환 최영식 김용상 |
43 | 고영석 김덕영 김정수 박동진 성 일 송지호 심상선 심화보 홍광호 문형만 |
[알자회]
육본 인사참모부 문서에 따르면 알자회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1986년 1월.
42기(육사 4학년)가 43기(3학년)를 끌어들이는 과정에 회원가입을 권유받은 43기의 한 생도가 거절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때 비회원인 42기 모 생도가 모임에 관한 내용을 알게 됐고 이를 공개적으로 발설했다.
그 직후 보안사(기무사의 전신)는 기별로 2~3명씩 불러 모임의 실체를 확인하고 회원 명단 파악에 나섰다.
조사결과 기마다 평균 12명의 회원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보안사에 불려가 조사를 받던 알자회 회원 L씨는 “조사가 끝난 후 ‘이 일을 문제 삼아 제대하지 않는다’ ‘조사받은 사실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 따위의 각서를 썼다”고 회고했다.
L씨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보안사가 알자회를 조사한 사건은 비밀에 부쳐지지 않았다.
보안사 조사를 받고 부대로 돌아간 L씨는 각서를 의식해 상관에게도 조사내용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날 상관이 L씨를 부르더니 “너, 알자회냐”고 물어 몹시 당황했다는 것이다.
당시 보안사 조사내용과 관련, 육본 문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직상, 직하 2개 기간 종적 연계 사실 확인(3개기 이상 종적 연계 없음).
▲군내 영향력자 및 외부와 연계사실 없음. 동기간 친목강화 모임으로 확인.
보안사 조사 후 수면 밑으로 들어갔던 알자회의 움직임이 다시 드러난 것은 1992년 7월 38기의 육군대학 교육과정에서였다.
육본 인사참모부장이 각 기 대표를 소집해 여론을 수렴한 후 회원들의 보직을 조정하기로 결정했다.
알자회가 하나회와 다른 점은 보안사의 조사결과가 말해주듯 생도 시절 결성된 친목모임이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알자회를 하나회의 아류쯤으로 여기는 일부의 시각은 부적절한 것이다.
육본 문서에는 알자회 결성경위와 활동상황에 대해 이렇게 기술돼 있다.
▲1976년 말 육사 34기 3학년 동기회장 박종국(예비역 대위) 생도가 ‘동기생은 있으나 진정한 친구는 없다’는 인식에서 몇몇 친한 동기생을 중심으로 모임을 결성.
▲12명의 동기생을 규합해 ‘서로 잘 알고 지내자’라는 뜻에서 ‘알자회’로 이름붙임.
▲1978년 말 (34기 임관 직전) 35기 후배들에게 동 모임 결성 권유(동일한 방법으로 34~43기까지 1년 선배가 후배기 결성 권유, 졸업선물 전달 등 상견례).
▲사관학교 재학중 교내 회동. 휴가시 친가 상호방문.
▲임관 후 OBC 교육시 1~2회 회동.
▲재경 근무자 중심으로 휴가 및 회원의 경조사시 부분적 회동.
한 기 평균 12명인 알자회 회원은 총 120명이다. 먼저 최상위 기인 34기의 진급실태를 살펴보자.
동기 중 일부는 2003년에 별을 달았건만 알자회 회원들은 대령까지 오르는 데도 헉헉거려야 했다.
12명 중 박승용, 박주현씨만 대령으로 진급했다. 8명이 중령으로 예편했다.
역시 12명인 35기에서는 대령 진급자가 강선모 박희도 유정권씨밖에 없다. 그나마 1차에 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들 외에 현역으로는 중령이 4명 있고 나머지는 제대했다. 36기(12명)도 1차에 대령이 된 사람이 없다.
총 진급자가 4명인데 1명은 2차에, 3명은 3차에 진급했다. 나머지는 다 옷을 벗었다.
37기(12명)의 경우 조용평 승장래 두 사람이 뒤늦게 대령으로 진급했다.
38기(13명), 39기(12명)에서는 대령 진급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육본 문서에 따르면 34기의 이해평씨, 35기의 신동혁, 박정욱씨, 36기의 장창록 김달수씨는 알자회 회원이면서 동시에 하나회 회원이다.
5명 중 이씨와 신씨, 김씨는 중령으로 예편했고, 박씨는 현역 중령이다. 장씨는 3차에 대령으로 진급했다.
사조직 회원들은 결성 이유야 어쨌든 동료, 선후배간에 위화감을 조성한 잘못만으로도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군 안팎에서는 이들이 그 동안 인사를 통해 그 대가를 치렀고 오래 전에 조직활동이 중단된 만큼 1차 진급에서 무조건 떨어뜨린다는 원칙을 언제까지나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말하자면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알자회에 대해서는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는 동정론이 힘을 얻고 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하나회는 주요 보직을 독점해 회원들끼리 돌리고 나누고 물려줬다. 진급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적어도 26기까지는 장군은 떼어놓은 당상이었다.
물론 개중엔 객관적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회원도 적지 않다. ‘XX기 이전까지만 놓고 보면 군에서 똑똑하다는 소리 듣던 사람의 상당수는 하나회 회원이었다’는 얘기가 군에서 정설처럼 퍼져 있다.
그렇지만 이들이 오랜 기간 혜택과 우대를 받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통령 2명을 배출하며 이 나라 군을 좌지우지하던 선배 기수의 회원들이 후배 기수 회원들의 진급과 보직을 관리해준 덕분이다.
하지만 장군 하나 나오지 않은 알자회는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한 것이다.
첫댓글 이상 총살 명단 이였습니다
이단체가 어떤 일을한 단체죠?
군내 육사/경상도출신들의 사조직
보자마자 열 받네요!!!!
하나회 한나라당의 모태 이지요..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