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지명회의가 막 시작했을 때도 한승혁(사진 윗줄 맨 왼쪽)은 나타나지 않았다. 호텔에서 초조하게 자신의 이름을 불리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KIA가 자신의 이름을 호명한 뒤에야 신인 지명회의장에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사진=신주영 작가) ‘한승혁에 승부수를 던진’ KIA
전통적으로 타이거즈는 스카우트의 덕을 ‘톡톡히’ 본 팀이었다. 해마다 광주 전남지역에서 우수 자원이 배출되며 강한 전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전면 드래프트제가 시행되며 큰 손해를 봤다. 과거처럼 연고지 선수를 1차 지명했다면 유창식(광주일고)은 한화가 아니라 지금쯤 KIA 유니폼을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간 신인 지명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KIA 스카우트팀은 폭넓은 정보와 치밀한 전략으로 20011 신인 지명회의에 대비했다.
신인지명 전(前)
지난해 신인 지명회의에서 KIA 스카우트팀은 단 3명의 투수만 뽑았다. 2군에 투수 유망주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론, 고만고만한 투수들을 영입하느니 차라리 야수 유망주를 충원하는 게 낫다는 판단도 있었다. KIA가 내야 유망주 이인행, 임한용을 지명한 건 그래서 놀랄 일도 아니었다.
올 시즌도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KIA 조찬관 스카우트 팀장은 “1, 2라운드는 무조건 투수를 잡겠지만, 3라운드부터는 야수 유망주를 지명할 계획”이라며 “야수는 외야수보단 내야수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포수 지명 계획은 없는 듯했다. 조 팀장은 “올해보다 내년 포수 자원이 풍부하다”며 “설령 (포수를) 지명해도 1명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고교 최고 강속구 투수인 한승혁(덕수고)에 대해선 “두산이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안다”며 “우리는 1라운드 지명자로 최현진(충암고), 안규영(경희대), 이현호(제물포고), 홍건희(화순고) 등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인지명 후(後)
신인 지명회의장에 한승혁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명회의가 시작하고 나서도 한승혁은 없었다. 미 메이저리그 진출과 국내 잔류 사이에서 고민하던 한승혁이 미국 진출로 마음을 굳힌 듯했다.
지명 전 몇몇 스카우트는 “한승혁이 신인 지명회의에 참가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팀의 지명을 받거나 계약액이 낮으면 다시 미국행을 추진할 수 있다”며 “한승혁을 지명하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모 스카우트는 “지명회의 전까지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메이저리그와 한국프로야구 사이에서 간을 보는 한승혁의 태도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며 “선량한 학생 선수의 취업기회가 사라지는 걸 방지하려면 한승혁의 신인 지명회의 참가를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선 7개 팀이 1라운드를 지명을 끝내자 KIA 권윤민 스카우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KIA는…”
이때만 해도 이현호와 홍건희 둘 가운데 한 명을 지명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권 스카우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였다.
“우리 KIA는 1라운드 지명자로 덕수고 강속구 투수 한승혁을 지명하겠습니다.”
"깜짝 놀랐다고요? 글쎄요. 우리는 앞순위에서 다른 팀들이 한승혁을 지명할 줄 알았습니다." 조 팀장은 한승혁의 지명이 깜짝 이벤트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지명회의 전날 한승혁의 미국 진출이 완전히 결렬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에게 확인해보니 사실이었다. 그날 바로 조범현 감독께 한승혁의 메이저리그 진출 좌절 소식을 전했다. 감독께서 '시속 150km의 강속구 투수는 무조건 잡아야 하지 않느냐'고 말씀하셨다.
김조호 단장과 상의해 결국 1라운드에 한승혁을 지명하기로 했다." 조 팀장의 설명이다. 물론 우려가 없던 것도 아니다. 팔꿈치가 좋지 않은 한승혁이 입단 후, 바로 수술대에 누울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KIA 스카우트팀은 지금보다 향후 발전가능성에 주목해 한승혁 카드를 뒤집지 않았다.
조 팀장은 두산의 한승혁 지명에 대비해 1라운드 홍건희, 2라운드 왼손 투수 지명이라는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그러나 두산이 1라운드에서 최현진을 지명하며 한승혁, 홍건희 두 오른손 강속구 투수를 동시에 잡을 수 있었다.
만족도 (조찬관 스카우트 팀장) ★★★★
만족도는 90% 이상이다. 예상대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고교 최고 강속구 투수인 한승혁과 홍건희를 동시에 확보해 매우 기쁘다. 지난해처럼 9명만 지명한 건 선수단 적정 규모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신인 선수들이 많이 들어올수록 기존 2군 선수들이 그만큼 나가야 한다. 현재 2군 투수들이 새로 들어올 하위라운드 지명 투수들보다 낫다는 판단 아래 마지막 10라운드는 지명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아쉬움
수비와 타격을 겸비한 수준급 유격수를 영입하지 못해 아쉽다. 애초 강경학(광주 동성고), 천상웅(제주고) 가운데 한 명을 3라운드에서 지명하려 했으나, 한화와 두산이 두 선수를 지명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나마 수비가 뛰어난 정상교(대구고)를 영입해 다행이라 생각한다.
[출처] [박동희의 현장속으로] 2011 신인 드래프트 리포트 [4]|작성자 박동희
KIA 스카우팅 리포트
1. 한승혁, 포지션 : 투수, 우투·우타, 투구 스타일 : 오버핸드 스로우, 약력 : 덕수고, 신체조건 : 186cm/84kg, 올 시즌 최고구속 시속 150km
올 시즌 고교투수 가운데 최고 구속인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던졌다. 속구 구위와 변화구 구사능력도 뛰어나다. 특히나 슬라이더의 위력이 수준급이다. 투구 밸런스가 좋고, 근성이 있다. 미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한승혁에 높은 관심을 나타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승혁도 미 메이저리그 진출을 목표로 ‘슈퍼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 한때 “계약금 100만 달러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팔꿈치 부상과 부진이 이어지며 “계약금으로 50만 달러도 어렵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야구계 일부에선 “메이저리그 진출이 현실적으로 어렵자, 마지못해 국내 잔류를 선택한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나 한승혁 측은 “메이저리그 진출은 모든 고교투수의 꿈”이라며 “꿈을 이루려고 미국행을 타진한 게 그렇듯 비난받을 일이냐”며 항변한다. 세간에 떠도는 “돈 때문에 메이저리그행을 노렸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가슴을 친다.
한승혁의 부모는 “순식간에 돈 때문에 아들을 미국으로 파는 부모가 됐다”며 “어째서 그런 오해들이 눈덩이처럼 쌓였는지 모르겠다”고 아쉬움을 토해냈다. 한승혁의 아버지는 1980년대 한국배구계를 주름잡았던 한장석 전 대한항공 감독이다.
KIA 조찬관 스카우트 팀장은 “한승혁을 둘러싼 소문들이 좋지 않아 걱정했으나, 직접 한승혁과 부모를 만난 뒤 생각이 바뀌었다”며 “계약액을 논의하면서 한 번도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고, ‘아들을 잘 부탁한다’는 말만 되풀이해 되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KIA는 한승혁과 예상보다 적은 계약금으로 계약서에 사인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승혁 측이 “처음부터 돈에 연연하지 않았다. 실력으로 가치를 증명하겠다”고 다짐했고, KIA 스카우트팀이 한승혁을 잘 설득했기 때문이다.
지명 후 메디컬 테스트 결과, 팔꿈치에 조금 이상이 있으나 재활로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성장 여하에 따라 한기주 이상이 기대되는 투수다.
2. 홍건희, 포지션 : 투수, 우투·우타, 투구 스타일 : 오버핸드 스로우, 약력 : 화순고, 신체조건 : 182cm/70kg, 올 시즌 최고구속 시속 146km
고교 투수치고는 ‘투구 메커니즘’이 어느 정도 완성된 투수다. 투구 시 몸을 최대한 앞으로 끌고 가 던지는 통에 실제 구속보다 체감 구속이 더 빠르다. 몸쪽 승부를 즐기며 슬라이더의 각도 뛰어나다.
조 팀장은 “윤석민을 연상케 할 만큼 투구 밸런스가 좋아 부상 위험이 적다”며 “지금보다 몇 배 더 성장할 투수”라고 치켜세웠다.
다른 팀의 모 스카우트는 “KIA가 2라운드에서 지명하지 않았으면 우리가 뽑았을 선수”라며 “프로에서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낼 선수”라고 평했다.
3. 윤정우, 포지션 : 좌익수, 우투·우타, 약력 : 광주일고-원광대, 신체조건 : 188cm/85kg
지난해까지 투수였다. 그러나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지난해 말부터 야수로 전향했다. 그래서인지 송구가 부정확하고 타격에서도 변화구에 약점을 보인다.
그러나 말 근육 같은 탄탄한 근력으로 주력이 좋다. 조 팀장은 “여느 선수들처럼 잔발로 도루하는 게 아니라 육상선수처럼 큰 보폭으로 도루하는 선수”라며 “뛸 때 보면 메이저리거 알폰소 소리아노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올 시즌 대학춘계리그에서 도루 16개로 이 부문 1위에 올랐다. 투수 출신답게 어깨가 좋다. 힘도 좋아 프로 입단 후, 장타자가 예상된다.
4. 우병걸, 포지션 : 투수, 우투·우타, 투구 스타일 : 오버핸드 스로우, 약력 : 세광고-제주산업대, 신체조건 : 183cm/73kg, 올 시즌 최고구속 시속 147km
조범현 감독이 투구 동영상을 보자마자 “꼭 잡아달라”로 요청한 선수다. 시속 140km 초 중반대의 속구를 던지며 제구력을 갖췄다. 프로 입단 후, 체중을 늘리면 원체 손목힘이 강해 시속 150km 이상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조 팀장은 “선발보다 1, 2이닝을 깔끔하게 막는 불펜이 적격인 선수”라며 “우병걸이 생각보다 일찍 성장하면 곽정철, 손영민, 안영명 등으로 구성된 불펜진에 새로운 공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KIA가 4라운드 25순위로 지명하지 않았으면 다른 팀에서 지명했을 선수다.
5. 정상교, 포지션 : 유격수, 우투·우타, 약력 : 대구고, 신체조건 : 176cm/70kg
공수주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나 화려하지 않지만, 기본에 충실한 수비가 돋보였다. 포구와 송구 모두 수준급이다. 대구에선 “김상수(삼성)와 키스톤 콤비를 이뤄 10년 이상 삼성 내야진을 이끌 선수”란 소릴 들었다.
수비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졌던 타격도 지명 이후 자신감이 생겼는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KIA가 취약 포지션 보강차원에서 어렵게 지명한 선수다.
6. 유재혁, 포지션 : 2루수, 우투·우타, 약력 : 제물포고, 신체조건 : 181cm/70kg
KBO가 발간한 자료에는 ‘외야수’로 표기돼 있다. 실제론 내야수다. 빠른 발이 돋보이는 오른손 타자로, 도루와 타격정확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프로 입단 후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힘을 보강한다면 1군에서 좋은 활약이 기대되는 선수다.
7. 박기철, 포지션 : 투수, 우투·우타, 투구 스타일 : 오버핸드 스로우, 약력 : 광주일고, 신체조건 : 193cm/95kg, 올 시즌 최고구속 시속 142km
193cm의 장신이다. 큰 키에서 ‘뚝’ 떨어지는 변화구가 일품이다. 투구 밸런스가 좋아 프로에서 잘 다듬으면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던질 것으로 예상한다. 조 팀장은 “투구할 때 아직 ‘공을 채는’ 느낌이 뭔지 모르는 것 같다”며 “1, 2군 코칭스태프의 지도로 투구의 참맛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래 고려대 입학이 유력했다. 그러나 신인 지명회의가 다가오면서 “프로에 가고 싶다”는 뜻을 나타냈다. KIA 지명 후, 고려대의 양해를 얻어 프로 입단을 준비 중이다.
8. 박세준, 포지션 : 내야수, 우투·우타, 약력 : 부산 개성고, 신체조건 : 190cm/92kg
부산 개성고에서 줄곧 투수로 뛰었다. 그러나 마운드에서 내려왔을 땐 팀의 중심타자이자 3루수로 변신했다. 체격 조건이 뛰어나고 손목 힘이 강해 타구 질이 다른 선수들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평이다. KIA에서 거포로 키우려는 선수다. 단, 수비와 타격 시 콘택트 능력은 반드시 개선해야 할 점이다.
9. 박태원, 포지션 : 내야수, 우투·좌타, 약력 : 휘문고, 신체조건 : 186cm/78kg
지난 5월 3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대통령배대회 광주일고와의 4강전에서 휘문고가 승리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당시 박태원은 6타수 3안타 4타점의 맹타를 터트리며 승리의 주역이 됐다. 공교롭게 3안타 모두 ‘고교 최대어’ 유창식을 상대로 뽑아내며 이름을 전국에 알렸다. 이때부터 박태원은 ‘유창식 킬러’로 불렸다.
하지만, 프로 대신 연세대로 진학할 계획이다.
[출처] [박동희의 현장속으로] 2011 신인 드래프트 리포트 [4]|작성자 박동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