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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도 청년 '박달'과 충청도 처녀 '금봉이'의 사랑 이야기 울고 넘는 박달재 |
- 여강 최재효 作 |
지금은 국민가요가 된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래에 얽힌 사연을 중편 소설로 다루었습니다. 본 작품은 제천 신문에 연재되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조선 중기 경상도 총각 박달(朴達)과 충청도 제천 처녀 금봉이의 이루지 못한 비련(悲戀)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
울고 넘는 박달재-22
다음날 동 를 무렵, 배는 돛을 올리고 새벽 물안개를 뚫고 한양을 향해 움직였다. 흥호 앞 강나루에는 한양에서 소금과 가재도구 등 생활필수품을 잔뜩 실은 상선(商船)들과 지방에서 한양으로 공물(公物) 과 세미(稅米)를 실은 배들이 뒤엉켜 혼란스러웠다. "저기 저 우측에서 나오는 지류(支流)가 섬강(嫌江)이라 합니다. 강원도 핑성 붕복산에서 발원(發源)하여 평성, 원주, 문막, 부론을 경유하여 이곳 강천(江川)에서 남한강과 합류하는데 하류에 두꺼비를 닮은 바위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지요. 이곳은 물이 맑고, 모래사장이 하얗고 주변이 빼어난 풍광으로 유명하답니다. 그리고 좌측에서 홀러드는 지류는 청미천이라고 하는데 용인 땅 문수붕 계곡에서 시작되는데 장호원과 음성을 경유하여 이곳 여주에서 남한강과 만나지요. 이 곳이 세 강이 만난다하여 저기 보이는 저 부락을 삼합(三合)이라 부른답니다. 이 고장은 땅이 기름져서 쌀이 아주 유명하지요. 조선이 개국되면서 지금까지 임금님들은 이곳 여주에서 올리는 진상미(進上米)만을 드신답니다.” 나이 많은 사공이 뱃머리에 서서 동양화처럼 스쳐 지나가는 풍광을 보며 침을 튀겼다. 초행길 사람들은 사공의 말을 귀담아듣는데 김 선달처럼 자주 물길을 망래한 사람들은 귀찮다는 듯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금방 물안개가 걷히면서 따가운 가을 햇살이 배 위로 꽂혔다. 사공들이 배 위에 포장을 쳐서 햇볕을 가려 주었다. 배는 때마침 불어오는 동남풍에 의지하여 순항하였다. 배가 두 식경 쯤 가니 빼어난 절경이 이어지면서 아늑한 절이 나타났다. 그러자 김 선달이 일어나더니 아는 체를 했다. “저 절은 신륵사라고 하는데 봉미산(鳳尾山) 남쪽 자락에 자리 잡은 고찰입니다. 신라 때 고승인 원효대사(元曉大師)의 꿈에 흰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 지금의 절터에 있던 연못을 가리키며. 신성한 가람이 들어설 곳이라고 일러준 후 사라지니, 그 말에 따라 사람들이 연못을 메워 절을 지으려 하였으나. 그 연못에 살고 있던 아홉 마리 용들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에 원효대사가 칠일 동안 기도를 올리고 정성을 드리니 아홉 마리 용이 그 연못에서 나와 하늘로 승천한 후에야 그곳에 절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신륵사(新勒寺)라는 절 이름에 관한 두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지요. 하나는 고려 말 우왕 때 신륵사 근처 마암(馬岩)이란 바위에 용마(龍馬)가 나타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자 나옹화상(備卷和尙)이 신기한 굴레를 씌워 굴복시켰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건너편 마을에 사나운 용마가 나타나 사람과 가축을 해치려하므로 마을 사람들이 용마를 잡으려 하였지만 워낙 사나워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법력이 높은 인당대사(印塘大師)가 용마의 고삐를 잡으니 말이 순해졌지요. 대사가 신력(神刀)으로 제압하였다하여, 신력(神刀)의 신(神)과 제압의 뚯을 지닌 륵(勒)자를 합쳐 신륵사라고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고려말에 나옹화상(備卷和尙)이 이곳에서 입적했기 때문에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고 사세(寺勢)가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원래 나옹은 양주의 회암사(植岩寺)에 있었는데 경상도 밀양의 영원사(蓋康寺)로 가는 도중에 신륵사에 이르러 병으로 입적(入寂)하게 되니 그의 문도들은 신륵사에서 다비식을 하고 석종(石鐘)부도를 조성하여 그의 덕을 기리게 되었다지요. 대개의 고찰들이 깊숙한 산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에 반해 신록사는 야트막한 붕미산에 등을 대고 남한강 상류인 여강(驅江)의 푸른 물줄기와 드넓은 들판을 바라볼 수 있는 풍광이 뛰어 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길지에 위치하고 있어 예로부터 명승지로 이름을 떨쳐왔지요. 붕미산이 비록 야트막하게 솟았지만 두 팔을 벌린 형세로 두 팔은 본신(本身)이 청룡과 백호 줄기가 되어 신륵사의 양기를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한 높이로 환포하며 에워싸고, 사찰 앞으로는 남한강 줄기인 여강이 좌수도우하며 유유히 홀러 간답니다. 원래 경기도 광주 땅 구룡산(九龍山)에 영면해 계시던 세종임금의 영릉(英險)이 예종(睿宗) 임금 때 이곳 여주 지방으로 이장된 후 영릉이 원찰(願刻)로 지정되어 절은 사세가 더욱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고, 여주는 부에서 주로 승격되는 계기가 되었다지요. 신륵사가 비보사찰로 불리는 이유는 앞을 흐르는 남한강 상류인 여강의 수류(水流)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강의 드센 물줄기가 휘돌면서 강월헌이 있는 청룡 끝자락을 그대로 치는 이른바 반궁수(反弓水) 형세랍니다. 여강 물줄기가 계속 치고 때려 침식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장소, 동시에 수해를 예방하거나 꼭 진압해야 할 장소에 절묘하게 탑들이 자리를 잡았답니다. 이와 같이 지세이 약점이나 홈결을 보충하거나 보완하는 것, 혹은 지나치게 드센 기운을 눌러주는 시설물들을 세워 그 약점을 없애는 방법을 풍수에서는 ‘비보(ff補)’라고 하는데 특히 보완하고 보충하는 시설물이 사찰일 경우에는 이틀 ‘비보사찰(梅補寺刻)’이라고 한답니다. 저기 보이는 저 팔각정인 강월헌 부군에 다층전탑(多層塼塔)과 삼층석탑이 있는데 그 탑들이 여강이 홍수에 대비해 항상 경각심을 갖도록 해주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수류를 진압하는 역할을 기대하는 의도를 가지고 이 곳에 세운 바로 ‘풍수비보탑’이 라고 합니다. 이 때문에 이 탑들이 주목받는 이유이고, 이 탑들 때문에 신록사를 비보사찰로 더욱 이름나게 된 것이죠.” “김 선달님, 대단하십니다. 이곳 풍물에 해박하세요.” 박달이 박수를 쳤다. 배는 신륵사 앞 여강(疑江)을 지나 조포(潮滿) 나루에 도착하였다. 강의 풍경은 한폭의 아름다운 산수화였다. 김 선달은 신륵사의 내력에 대하여 꿰뚫고 있는 듯 했다. "선달님은 고향이 여주가 아니신데 어찌 그리 이 고장에 대하여 훤히 아세요?“ 박달의 칭찬에 김 선달은 껄껄 웃기만 했다. "나처럼 이 고장 저 고장 흘러 다니다 보면 귀동냥을 하게 된답니다.“ "선달님에 비하면 저는 우물 안 개구리 같습니다.“ 박달과 김 선달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어느덧 중화(中火) 시간이 되었다. “자, 여러분, 점심을 드셔야 하니 저기 조포나루에서 간단히 요기를 마치시고 다시 배에 오르세요.” 박달은 산천경계가 빼어난 여강의 경치에 취하여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잊고 말았다. ‘아, 이렇게 빼어난 경승지(景勝地)가 있다니,참으로 비경(秘境)이로다. 여주에 사는 백성들은 선택된 사람들이 를림없어.’ 혼자서 경치에 도취해 중얼거리던 박달은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자 그들 뒤를 따라 내렸다. 조포나루 역시 아침에 출항한 홍호 못지않게 번화한 지역이었다. 길게 늘어선 크고 작은 주막과 객사 그리고 난전, 잡화상,대장간, 배를 수리하는 곳 등이 줄지어 있었다. 조포나루는 이포나루, 광나루, 마포나루와 함께 경기, 충청, 강원도 지역 공물과 농산물 등을 실어나르던 상선들이 자주 드나들면서 여주 지역미 상권이 형성된 나루였다. 박달이 한 주막을 찾았다. “아이고, 우리 주막에 헌헌장부님이 오셨네.” "여기 국밥 한 그릇과 탁배기 한잔 주시오.” “네네. 금방 차려 올립죠.” 젊고 음황(淫荒) 해 보이는 주모는 함지박만한 엉덩이를 흔들어대며, 손님을 맞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옆에는 언제 왔는지 김 선달 일행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김 선달이 박달과 시선이 마주치자 눈을 찡끗하였다. “박도령, 이리와서 한잔 하시구려.” “아닙니다. 션달님, 저도 탁배기 한잔 주문했습니다. 저 신경쓰지 마시고 많이 드세요.” 박달은 얼른 식사를 마치고 나루터로 나왔다. 인심 좋고 미인들이 많다는 여주에 닿자 박달은 기분이 좋았다. 방금 전에 마신 탁주가 얼큰하게 올랐다. ‘나중에 벼슬을 살다가 나이 들어 물러나면 이 고장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다. 내 곁에는 늘 금봉이 있으니 금상첨화가 될 테고.' 나루를 떠난 배는 가는 듯 마는 듯 지루하게 한양을 향해 움직였다. 강 좌우 양편으로 보이는 늦가을 풍경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오다 멀어지기도 하였다. 바람이 약해 돛을 올리고 사공들이 힘껏 노를 저어보았지만 배는 천천히 홀러갈 뿐이었다. 해가 지고 나서 박달을 태운 배가 이포(染'滿)나루에 접어들었다. 바람이 없어 배는 가는 둥 마는 둥 강 위에 등등 떠 있었다. 멀리 우측 편으로 높게 솟아있는 파사산(婆娑山)이 단풍으로 알록달록한 옷으로 갈아입고 선객(船客)들을 향해 손깃을 하고 있었다. 서서히 날이 저물어 가고 있는데 강바람이 불어 손님들은 옷깃을 여며야했다. 이포나루는 여주의 금사(金沙)와 대신(大神) 사이에 있는 나루터로 예로부터 한양을 오가는 배와 나그네들이 쉬어가는 유명한 곳이었다. 나루터에는 수십 척의 황포 돛배가 정박해 있었다. 옹기를 가득 실은 상선, 한양으로 가는 세곡선(稅殺船) 그리고 어선들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강바람에 나부끼는 돛대의 울긋불긋한 깃발이 푸드득 소리를 내며 펄럭이는 장면은 마치 전쟁터로 출병을 앞둔 전선(戰船) 같기도 했다. 바람이 점점 세차게 불기 시작하자 서천에서 먹장구름이 파사산(婆娑山) 꼭대기를 삼켜 버렸다. 곧이어 먼 하늘에서 우르릉거리며 포효하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일자 이포나루에 정박한 배들이 서로의 뱃머리를 받으며 출령거렸다. 사공들은 배를 단단히 정박시키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소리쳤다. 어떤 사공들은 배에 실린 물건을 등에 지고 내리기도 하고 어떤 사공은 비에 대비하여 물건이 젖지 않게 유지(油紙)를 덮느라 분주했다. “자, 오늘 저녁은 이곳 이포에서 해결해야 할 듯합니다. 하늘이 꾸물거리는 걸 보니 비가 내릴 것 같습니다. 손님 여러분 저기서 저녁 드시고 술도 한잔 드시고 다시 배에 오르도록 하세요. 비가 많이 내리면 이곳 객즛진에서 하룻밤 묵어도 되겠습니다. 배는 내일 아침 해뜰무렵 출항하겠습니다. 밤에는 암초들이 있어 위험합니다.” 사공이 손님들에게 소리쳤다. 사공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빗방울이 후드득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비가 내리자 손님들은 빨리 내리려고 나루 쪽으로 몰려들었다. “이런 염병할!. 웬 비가 내린담. 에이. 오늘은 저 이포나루 색주가에 들어 질탕하니 논다니 엉덩이를 주무르며 한잔 해야 겠는걸. 이보시게 박도령, 어떤가? 나하고 색주가에 들러 한잔 하시는 게?” 김 선달이 괴나리봇짐을 지고 배에서 내리며 박달도령을 향해 손짓을 하였다. 박달은 어젯밤 홍호에서 만난 대길이 같은 사람을 또 만날까 두렵기도 하고, 금봉이 보고 싶기도 하여 배에 남아 있으려고 하였다. 점심 때 조포 나루에서 괴나리봇짐에 넣어 둔 주먹밥이 있어서 저녁 한 끼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늦가을이지만 강바람이 차가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박달은 비를 피해 객실 안으로 들어가 괴나리봇짐을 플었다. 밖에서는 아직도 사공들이 물건들을 유지(油紙)로 덮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부산하게 움직였다. 번쩍하고 번개가 치는가 싶더니 세상을 집어 삼킬 듯 천둥이 고막을 때렸다. 혼자 객실에 앉아 주먹밥을 꺼내 먹던 박달은 괜히 처량한 생각이 들었다. ‘금붕이 곁에 있으면 좋을 텐데!..함께 술잔을 들며, 사랑가를 부르고 미래에 대한 설계를 하면서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번개와 천둥소리가 뱃전을 때리면서 박달이 심기를 혼란스럽게 하였다. 싱숭생숭한 분위기 속에서 도무지 주먹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젊은 사공 한명이 들어오더니 호롱불 아래서 혼자 앉아 주먹밥을 먹는 박달도령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도령님은 나루터에 안 나가보세유? 이포나루에는 기가 막힌 색주가가 있어유. 요지경이 따로 없구먼유. 나가서 구경해 보시면 마음에 드실거구만유. 작부들도 상당히 미색(美色)이라구유.” 젊은 사공은 누런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박달미 눈치를 살폈다. “그래요? 얼마나 예쁜데요?” 박달이 호기심이 일어 젊은 사공에게 되물었다. “여기 작부들은 인심도 후해서 말만 잘하면 그냥도 준다구유.” 젊은 사공이 말을 해놓고 혼자 낄낄거렸다. ‘그냥 준다니? 월 그냥 준다는 말인가?’ 박달이 사공을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뭘 그냥 준다는 겁니까?” '아니 저 도령이 쑥맥인가?‘ “가보시면 알아유.” “도대체 릴 그냥 준다는 건지 원.” 박달이 관심이 없는 듯 하자 사공이 박달에게 바싹 다가왔다. “도령님은 참 순진하기도 하네유. 얼른 나가 보세유. 볼 것도 많고 맛 볼 것도 많아유. 또 여기 작부들은 다른 나루터에 비해 젊고 화끈해서 하룻밤만 함께 지내면 삭신이 다 녹는다구유.” 젊은 사공은 또 누런 이빨을 드러내놓고 음흉하게 웃었다. ‘참말로, 이상한 사공이구먼. 색주가 포주와 짜고 손님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나. 왜 자꾸 색주가 타령을 하는 거야? 아까는 김 선달도 색주가 타령을 하더니만. 심심한데 한번 나가 구경이나 해볼까?’ 박달이 문을 열자 방금 전까지 장대처럼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거짓말처럼 맑게 개어 있었다. 칙칙한 가을 하늘은 예고도 없이 자주 비틀 뿌려 댔다. 박달이 배에서 내려 이포나루틀 향해 걸어 을라갔다. 황혼 속에서 청사초롱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환하게 빛을 발하였다. 한양. 충청도. 강원도에서 올라온 배에서 내린 사내들로 이포나루터는 북적거렸다. 술에 취해 갈짓자 걸음을 걸으며 훙얼대는 사람도 있고. 술값이 모자라는지 젊은 주모(酒母)에게 멱살을 잡히고 통사정을 하는 안타까운 광경도 목격되었다. 색주가 밀집 지역의 분위기는 여느 홍등가처럼 이상야릇한 느낌을 들게 하였다. 화장을 진하게 한 작부들이 색주가 대문 앞에 죽 늘어서서 히죽거리며, 지나가는 사내들에게 손짓을 하였다. 작부들은 만만해 보이거나 눈이 마주친 사내들에게 달려들어 팔을 잡아끌기도 하였고 살이 보일 정도로 치마를 걷어 올려 속곳을 은근히 내보이며 사내들을 유혹하였다. 시간이 갈수록 작부들은 점점 더 노골적인 행동과 질척한 말로 사내들을 유혹하였다. 박달은 그 모습을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 없어 시선을 땅에 고정시키고 걸었다. 그러나 그러한 희한한 광경을 공짜로 볼 수 있는 것도 자주 있는 것이 아니어서 박달은 슬며시 고개를 들어 작부들을 훔쳐 보았다. ‘참말로 요지경(塔池鏡)이로구나. 여인들이 속곳을 내보이며 사내들을 유혹하다니. 그런데 주막에서 싸구려로 몸을 파는 들병이와는 차원이 다른걸?. 젊은 사공말대로 들병이들 보다 활씬 예쁘고 감칠맛나게 구는걸보니 구미호들이 틀림없을 거야. 조심해야지. 그렇지만 꽤 볼만할 구경거리야. 풍산에서 생전 보지 못한 볼거리들이 이곳에는 널렸구나. 어디 가서 간단히 요기라도 해야 하는데..’ 박달이 작부들 앞을 막 지나가려고 하자 한 여인이 박달을 향해 다짜고짜 달려들었다. “잘생긴 오라버니!..저를 보러 오신 거죠? 제대로 찾으셨어요. 어서, 어서 저를 따라 오셔요. 아주 잘해드릴게요. 우리 색주가는 술값이 싸고 음식도 기가막히며 예쁜 아이들이 많다고 소문이 자자한걸요.” 여인은 박달도령의 팔을 잡아끌었다. “나는 국밥이나 먹으러 왔소이다. 이 팔 놓으시오.” “아이, 잘 생긴 오라버니 왜 이러셔요. 저를 따라 오시면 도화경(桃花境)이 펼쳐지는 아주 멋진 곳으로 가실 수 있어요.” “이 팔 놓으라니까.” 박달이 여인이 팔을 뿌리치려고 하자 여인은 더욱 힘을 주어 박달의 팔을 잡고 반강제로 색주가로 잡아끝려고 하였다. 옆에 있던 여인도 가세하여 박달이 등을 밀며 끌고 가려 하였다. “어허, 이게 무슨 해괴한 짓이오. 이러지 마시오.” 박달이 소리 지르며 뿌리치자, 두 여인이 마지못해 잡았던 팔을 놓으며 박달도령에게 눈을 홀겼다. "문등이 촌놈에게 정을 한번 주려고 하니까, 꼴값을 떠네. 홍-.” “그러게 말이여, 얼굴도 잘 생기고 양물도 실하게 생겼을 것 같은데. 촌것이 여간 내기가 아니겠어.” 여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는 박달 등 뒤에 대고 비아냥댔다. 박달은 부리나케 발걸음을 옮겨 마을 안쪽으로 갔다. 조금 더 들어가니 주(酒)자가 쓰인 하얀 깃발이 보였다. 보통 평범한 나그네들이 안심하고 들어갈 수 있는 주막같아 보였다. 포장이 쳐진 주막 안마당에 평상이 서너 개 놓여 있는데 평상 위에는 사공으로 보이는 젊은이들 서너 명씩 국밥과 탁주를 마시고 있었다. “주모. 여기 국밥 하나 말아주시오.” “과거를 보시러 가는 유생이시나 보네요. 그런데 정말로 보기드문 헌헌장부이시다. 잘 생긴분에게는 공짜 술도 드려요.” ‘어디를 가나 여인들 때문에 못 살겠네. 빨리 국밥이나 먹고 배로 돌아가야겠어. 여기서 어슬렁거리다가 김 선달하고 마주치면 곤란하니까.’ “여기, 국밥 대령이요.” 주모가 김이 무럭무럭 나는 국밥을 한 그릇 말아왔다. 그리고 시키지도 않은 탁주가 큰 사발에 찰랑찰랑 넘칠 정도로 가득 담겨져 상에 을려져 있었다. 박달과 주모이 시선이 마주쳤다. “이건 잘 생긴 장부님께 그냥 드리는거에요. 과거에 떡하니 붙으시고 고향 가시는 길에 한번 들려주십사 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거니 괘념치마시고 드세요. 우리 주막은 과거 보시러 가는 분들에게 후하게 인심을 쓴답니다.” ‘이런, 어제도 공짜 술을 마셨는데……’ 박달은 미안하여 머리를 긁적거렸다. "고맙소. 내 고향 내려가는 길에 한번 들리리다.” “이렇게 잘 생긴 도령님은 처음입니다. 나중에 고향 가시는 길에 꼭 한번 들려주세요. 그때는 더 한 걸로 질편하게 대접할게요.” ‘더 한걸로?. 그게 뭐지? 갈수록 요지경 속이로구나. 마치 내가 구미호들이 사는 소굴에 들어 온 느낌이야.’ 저녁 식사를 해결한 박달은 서둘러 주막을 나섰다. 비는 그쳤지만 밤공기는 썰렁했다. 이포 나루 색주가는 어젯밤 홍호보다 더 화려하고 번창해 보였다. 거리에는 대취해 비를거리는 사내들의 주정과 작부들이 호객하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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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겁게 읽었습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