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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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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찾지 않으려네
내가 살던 집 툇마루에 앉으면
벽에는 아직도 쥐오줌 얼룩져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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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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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너머로 늙은 수유나뭇잎 날리거든
두레박으로 우물물 한 모금 떠 마시고
가윗소리 요란한 엿장수 되어
고추잠자리 새빨간 노을길 서성이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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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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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석* 깔린 장길은 피라혀네
내 좋아하던 고무신집 딸아이가
수틀 끼고 앉았던 가겟방도 피하려네
두엄더미 수북한 쇠전마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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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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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줄기 찾는 허망한 금전꾼 되어
초저녁 하얀 달 보며 거닐려네
장국밥으로 깊은 허기 채우고
읍내로 가는 버스에 오르려네
쫓기듯 도망치듯 살아온 이에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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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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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때로 애닯기도 하리
긴 능선 검은 하늘에 박힌 별 보며
길 잘못 든 나그네 되어 떠나려네
- 신경림,「고향길」-
*감석: 감돌, 유용한 광물이 어느 정도 이상으로 들어 있는 광석.
㈏
산 너머 고운 노을을 보려고
그네를 힘차게 차고 올라 발을 굴렀지
노을은 끝내 어둠에게 잡아먹혔지
나를 태우고 날아가던 그넷줄이
오랫동안 삐걱삐걱 떨고 있었어
어릴 때는 나비를 좇듯
아름다움에 취해 땅끝을 찾아갔지
그건 아마도 끝이 아니었을지 몰라
그러나 살면서 몇 번은 땅 끝에 서게도 되지
파도가 끊임없이 땅을 먹어들어 오는 막바지에서
이렇게 뒷걸음질치면서 말야
살기 위해서는 이제
뒷걸음질만이 허락된 것이라고
파도가 아가리를 쳐들고 달려드는 곳
찾아나선 것도 아니었지만
끝내 발 디디며 서 있는 땅의 끝,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는 것이
땅끝은 늘 젖어 있다는 것이
그걸 보려고
또 몇 번은 여기에 이르리라는 것이
- 나희덕,「땅끝」-
㈐
요즘 나는 시를 쓰지 못한다. 어디선가 날개가 꺾였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어디선가……. 나는 그 장소를 알고 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 날개는 내 숨은 의지에 의해서 꺾인 것이다. 삶을 위해 삶의 가장 소중한 빛을 지워버린 것이다. 바라볼수록 쓸쓸한 그 빛…….
이럴 때 순천만의 하늘 위에는 무수한 별빛이 빛난다. 과거를 회상하는 버릇은 가슴 안에 깊은 말뚝을 지닌 모든 슬픈 짐승들의 운명 같은 것이다. 줄에 매달린 염소처럼 그들은 말뚝에 매인 밧줄 바깥의 세상으로서는 나갈 수 없다.
시 쓰기에 빠져들던 문학청년 시절, 내게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름씩, 한 달씩 지낸 시간들이었다. 어떤 경우에는 세 달쯤 말을 않고 지낸 적이 있다. 내 몸 안의 가장 든든한 기둥 위에 ‘묵언’이라는 패찰을 드리워 놓고 세상을 바라보던 시간들. 온전히 내 자신을 위해서만 열려 있던 시간들. 타인의 꿈과 욕망에 아무런 방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나의 길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던 시간들.
한없이 고요했던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법을 배웠다. 나의 시들이 천천히 날갯짓하는 것을 보았고 가능한 그 날갯짓이 더욱 격렬해지기를, 세상에 대한 더 깊은 연민과 지혜와 열정을 지니기를 나는 바랐다. 그리하여 내 시가 어떤 사랑스럽고 순정한 광기의 언덕에 이르러 고단한 날갯짓을 멈추기를, 그곳에서 여유롭게 비행하며 새로운 언덕을 다시 꿈꾸길 바랐던 것이다. 그 무렵의 내게 침묵은 날개의 다른 이름이었다.
불빛들이 빛나기 시작한다. 저 불빛은 화포의 불빛이고, 저 불빛은 거차의 불빛이며, 저 불빛은 와온 마을의 불빛이다. 하늘의 별과 순천만 갯마을의 차례로 바라보며 나는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가 하는 싱거운 생각에도 잠겨 본다.
당신 같으면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나의 선택은 마을의 불빛들이다. 불빛들은 갓 핀 달리아 꽃송이처럼 싱싱하다. 세 칸 집 안에 사는 사람들의, 꿈과 노동과 상처와 고통의 시간들의 은유이기도 하다. 아름다움보다는 쓸쓸함이, 기쁨보다는 아쉬움의 시간들이 훨씬 많았을 텐데도 그들은 말없이 불을 켜고 지상의 시간들을 지킨다. 어떤 불빛들은 밤을 새우기도 한다.
그럴 때 마을의 집들은 자신의 내면 안에 형형색색의 등을 켜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샤갈의 그림에 나오는 꿈, 염소와 새들과 초승달과 어린 남매와 할머니가 함께 날개를 달고 초록빛 어둠 속으로 날아오르는 꿈.
운동회 날 풍선처럼 두둥실 날아오르는 그 집들을 보며 나는 박수를 친다. 그러고는 날이 선 낫으로 그 집들에 매달린 끈을 하나씩 끊어 버린다.
훨훨 날아가렴. 또 다른 어딘가에 마을을 이루고 새로운 꿈을 꾸렴. 그래, 나도 언젠가 그 마을에 이르러 새로운 날들의 시를 쓸 테니…….
- 곽재구,「묵언의 바다」-
㈎~㈐의 공통점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➀ 반어적 표현을 사용하여 현실의 모순을 비판하고 있다.
➁ 개인의 경험을 확장하여 시대에 대한 성찰로 나아가고 있다.
➂ 시간의 순환적 흐름에 대한 통찰을 통하여 만물의 질서를 포착하고 있다.
➃ 현재 상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탕으로 주제 의식을 부각하고 있다.
➄ 극한적인 처지를 가정하여 이에 대응하는 삶의 자세를 제시하고 있다.
㈎, ㈏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➀ ㈎는 수미상관의 구조를 통해 작품 전체에 안정감을 주고있다.
➁ ㈏는 다양한 음성 상징어를 통해 생동감을 부여하고 있다.
➂ ㈎는 ㈏와 달리 독백의 어조를 활용하여 화자의 내면을 보여 주고 있다.
➃ ㈏는 ㈎와 달리 도치의 방식을 사용하여 끝맺음으로써 시적 여운을 남기고 있다.
➄ ㈎와 ㈏는 모두 영탄적 표현을 구사하여 고조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와 ㈐에 대한 감상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➀ ㈏의 ‘노을’은 화자가 동경하여 추구하는 대상이고, ㈐의 ‘불빛들’은 화자가 공감하고 격려하는 대상이다.
➁ ㈏의 ‘어둠’은 화자의 소망을 좌절시킨 외적인 힘을, ㈐의 ‘침묵’은 관조와 성찰을 통한 내적인 성숙의 과정을 의미한다.
➂ ㈏의 ‘나비를 좇듯’에서는 삶을 대하는 천진난만한 자세가, ㈐의 ‘줄에 매달린 염소’에서는 인간의 숙명에 대한 자각이 드러난다.
➃ ㈏의 ‘땅끝’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역설적인 공간으로, ㈐의 ‘마을’은 일상의 삶 속에서 꿈이 피어나는 공간으로 볼 수 있다.
➄ ㈏의 ‘파도’는 삶에 닥치는 시련과 고난을, ㈐의 ‘낫’은 부당한 억압에 대항하려는 의지를 상징한다.
㈐에 드러나는 글쓴이의 태도로 가장 적절한 것은?
➀ 글쓴이는 ‘타인의 꿈과 욕망’에 구애되지 않는 삶을 위해 세상 밖으로 나갈 것을 소망하고 있다.
➁ 글쓴이는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게 된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➂ 글쓴이는 마을 사람들의 ‘꿈과 노동과 상처와 고통의 시간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있다.
➃ 글쓴이는 ‘여유롭게 비행’하듯 살았던 과거 자신과 ‘날개’가 꺾인 현재의 자신을 비교하여 상실감을 느끼고 있다.
➄ 글쓴이는 ‘묵언’의 시간을 통해 ‘더 깊은 연민과 지혜와 열정’을 열망하며 ‘새로운 날들의 시’로 나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다.
<보기>를 참고하여 [A]~[E]를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일반적으로 고향은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이며 아름다운 추억과 정겨운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고향길」의 화자는 자신의 귀향길을 상상하며 충족감보다는 공허함을 느끼고, 소속감보다는 이방인의 의식을 갖는다. 고향에서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고향의 외형과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과 달라졌거나 자신이 과거와는 다른 존재가 된 탓이다. 순탄치 않은 삶으로 인한 초라한 현재는 영원히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떠돌이라는 자의식을 낳는 것이다.
➀ [A]: ‘내 살던 집 툇마루’에서 보면 ‘벽에는 아직도 쥐오줌 얼룩져’ 있으리라는 것에서 고향의 옛 모습을 추억하는 화자의 그리움을 엿볼 수 있군.
➁ [B]: ‘수유나뭇잎’, ‘고추잠자리 새빨간 노을길’은 고향의 자연을 대표하는 것으로 화자가 간직하고 있는 고향의 변치 않는 형상과 관련되는군.
➂ [C]: ‘감석 깔린 장길’과 ‘고무신집 딸아이’가 있던 ‘가겟방’도 피하고자 하는 것에서 고향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과 달라졌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드러나는군.
➃ [D]: ‘금줄기 찾는 허망한 금전꾼’과 ‘깊은 허기’라는 시구를 통해 화자가 그리워하는 것을 이제는 찾을 수 없으리라는 예감과 그로 인한 공허감을 보여 주는군.
➄ [E]: 화자가 스스로를 ‘길 잘못 든 나그네’로 규정하며 떠돌이로서의 자의식을 보이는 것은 ‘쫓기듯 도망치듯 살아온’ 삶에서 비롯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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