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욱의 술 인문학] 위스키 증류의 어원은 ‘이슬’
세계일보 2023-07-29
한국의 술을 공부한 사람은 알겠지만 우리 소주를 부르는 이름은 여러 가지가 있다. 불을 써서 증류하는 만큼 ‘화주(火酒)’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땀처럼 맺힌다고 하여 땀 한(汗)자를 써서 ‘한주(汗酒)’라고도 불렸다.
하지만 현대에도 이어지는 가장 대중적인 명칭은 아마도 ‘이슬’(이슬 로·露)일 것이다. 증류했을 때 내려오는 술 방울이 이슬처럼 보인 것. 그래서 조선의 명주였던 감홍로를 비롯한 홍로주, 노주(로주) 등 다양한 이름이 존재했고 진로, 참이슬 역시 이러한 계보를 잇고자 사용되는 이름인 것을 알 수 있다.
이슬처럼 소주 방울이 떨어지는 이치는 간단하다. 술을 끓이면 끓는 점이 78.3도로 물보다 낮은 알코올이 먼저 증발하고, 차가운 매질을 만나면서 다시 이슬처럼 떨어지기 때문이다.
소주를 부르는 말 중 하나인 ‘이슬’은 증류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디스틸레이션(Distillation)’의 어원인 라틴어에서도 비슷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즉 동양과 서양 모두 증류를 이슬이 맺히는 현상으로 본 것이다. 픽스베이 제공
흥미로운 것은 서양에서도 위스키, 코냑 등을 증류하는 모습을 우리와 유사하게 봤다는 것. 그리고 그 힌트는 영어로 ‘증류’라는 의미의 ‘디스틸레이션(Distillation)’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디스틸레이션(Distillation)이란 단어는 어떻게 구성돼 있을까? 이것은 ‘증류 과정 또는 행위’라는 중세 라틴어 ‘distillationem’(피동적인 distillatio)에서 유래됐다. 중요한 것은 이 단어는 ‘dis-’(분리)와 ‘stillare’(떨어지다)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라틴어의 흔적이 많은 이탈리아어에서는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stillare’는 스며들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stilla’는 이슬 및 방울을 뜻한다. 스며드는 것은 방울이나 이슬의 작은 물방울이라는 의미. 즉 소주의 이슬과 영어의 디스틸레이션(Distillation)은 같은 뜻이 된다. 영어 ‘스틸(still)’은 ‘여전히’와 더불어 ‘가만히 있는, 고요한, 정지한’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라틴어의 어원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라틴어 또는 이탈리아어가 ‘증류’라는 단어와 관계가 깊을까? 증류주의 원리인 연금술은 아랍권에서 넘어왔다. 그런데 이 아랍권과 가장 많은 교류를 한 곳이 바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십자군전쟁 때 예루살렘으로 떠나는 배도 바로 이 베네치아에서 많이 출발했다.
이 베네치아가 아랍권과 무역을 하면서 설탕 및 향신료를 반독점했고 엄청나게 부유해졌지만, 이후 오스만 튀르크(오스만 제국)가 들어서면서 이제까지의 무역 루트를 장악하니 유럽은 신항로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스페인, 포르투갈 등은 새로운 무역 루트, 신항로 개척에 적극 투자하면서 인도, 아메리카, 나아가 세계 일주로 이어지는 뱃길을 발견한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익은 그의 저서 성호사설에서 소주를 증류하는 이치를 비가 내리는 것에 빗대어 소개했다. 뜨거운 공기가 지표면에서 상승하고 차가운 매질을 만나 다시 액체가 되는 것을 낭만 있게 비 내리는 것으로 소개한 것이다.
자연에서 이슬이 맺히는 현상과 소주 내리는 현상도 비슷하다. 결국 더워진 공기가 식으면서 생기는 것이 이슬. 뜨거워져 기체가 된 알코올이 다시 액체가 되는 현상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소주와 위스키는 우리는 물론 서양에서도 나아가 자연 상에서도 진짜 이슬이었던 것이다.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