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박경석 장군은 필자와의 대화에서 그 첫 만남 뒤에 사단장과 얽힌 일화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북 사단장은 박소위를 구금하지 않고 사단 사령부 내에 마음대로
돌아 다니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자주 불러서 산책도 하고 식사도 하며 북한군의 편입을
권유했었다는 것이다.
박소위는 대화를 할수록 북 사단장이 상당히 높은 인격의 소유자였음을 알게 되었다.
부하들에게도 당시 국군 사단장처럼 권위적으로 군림하지 않고 친동생 대하듯
자상하게 대했었다. 포로들을 철창 안에 몰아넣고 학대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한 때 북에서 추진되어 오던 식량 공급이 끊긴 일이 있었다.
덕분에 포로들은 물론 북한군도 모두 이틀간이나 굶은 일이 있었다.
박소위가 보니 북 사단장도 같이 굶고 있었다.
다 굶어도 사단장쯤은 식사를 해도 되지 않을까 했는데
북 사단장은 식량이 도착해서 전 부대원에게 식량이 다 급식될 때까지
엄격하게 자기 통제를 하며 같이 굶었다.
달포나 그렇게 지난 어느 날 그간 자주 박소위의 불러 식사를 하며 인민군 편입을
권유하던 사단장은 의외의 말을 했다.
"집에 가고 싶으면 할 수 없네. 그냥 떠나게나!"
이때는 1951년 2월로서 북 사단장의 사단이 북으로 복귀할 즈음이었던 것 같다.
박소위는 믿기 힘든 이 명령을 마다할 수가 없었다.그는 정 많았던 북 사단장에게
마음 속으로 우러나는 작별 인사를 하고 북 사단 사령부를 떠났다.
그러나 북 사단장의 온정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단장 부관이 따라 나오며 등짐을 질 수 있는 쌀 자루를 주었다.
국군 전선에 도착하려면 며칠이 걸릴지 모르는데 굶지말라는
북 사단장의 배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