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푸트
[8]
채원에게 건네받은 나루토 1권 모양새를 본 민준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혹시 몰라.. 2권.. 2권도 살펴봐요.”
나루토 2권의 첫 장을 넘겨보니 나루토 1권과 마찬가지에 모양새로.. 에세순2개가 곱게 들어 앉아 있었다. 담배곽 속.. 대나무가 오늘따라 그렇게 슬퍼 보일 수가 없었다.
“너.. 너 이 새끼 죽었어!!!!!!!”
민준은 참 싱싱하게도 팔딱거리고 있었다.
“진정해.”
“선생님은 지금 제가 진정하게 생겼어요!!!”
그럼. 진정하게 안됐지. 뭐.. 그렇다고 네가 이렇게 팔딱팔딱 거린다고 이게 해결될 일은 아니잖아. 그렇게 팔딱거린다고 해서 뻥 뚫린 나루토 1권, 2권이 새살 돋아 올라오는 것도 아니고.. 이미 엎질러진 물을 어떻게 주워 담아.
“넌 진짜.. 아오..”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계속 팔딱거리는 이민준.
“근데 이거 네 책이야?.. 아니면.. 빌..”
“책방에서 빌린 거예요.”
팔딱거릴만 하구나..
이 책이 민준의 책이 아닌 빌린거라는걸 알게 된 채원은 팔딱거리는 민준을 말리는걸 멈추었다. 그래. 마음껏 팔딱거리길..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지 냉장고로가 음료수를 꺼내들고 벌컥벌컥 마시고는 제 자리로 돌아와 앉는 민준이.. 심장 부분이 뻥 뚫린채 널부러져 있는 만화책 나루토 1권, 2권을 한 대 놓고 바라보던 민준이..가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보헴시가모히또와 에세순 담배를 꺼내 들더니 겉포장지를 뜯고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잡았다. 꺼내.. 잡았다..? 그리고 입안으로 쏘옥.. 그리고 입안으로 쏘옥..?
너 이 새끼..
그 모습을 발견한 채원은 민준의 뒤통수를 있는 힘껏 손바닥으로 타악..!! 때려버렸다. 그러면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자연스럽게 침대 위로 떨어지고......... 그러면 시뻘겋게 달아오를대로 달아오른 그 뜨거운 얼굴을 해가지고.. 눈 쫙 찢어진 가자미눈을 하고서 채원을 돌아다보는 이민준이..
네가 지금 뭘 잘했다고.. 어따대고 눈을 치켜떠..?
“뱉어. 내놔. 그거 압수야.”
민준은 채원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는척하면서..
“.......메롱입니다.”
양손에 담배를 한 개씩 야무지게 그러쥐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병실문을 열고 냅다 튀기 시작했다. 어째.. 저 튀는 모양새가.. 오늘밤 안에 저 두 갑을 다 피울 모양새로 보이는건 채원만에 착각인가..?
여튼.. 병실에 홀로 남겨진 채원은 담배 들고 토낀 민준을 추격하기 위해 침대에 심장이 뻥 뚫린채 누워 있는 나루토 1권, 2권에게.. 파란 이불을 곱게 덮어주고는 병실에서 나왔다.
하지만..
오.. 뜀박질을 얼마나 잘하는지.. 민준의 모습은 이 복도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담배 들고 토낀 민준을 어떻게 잡아서 어떻게 반을 죽여 놔야 반 잘 죽여 놓았단 소문이 날지.. 곰곰이 민준사냥 계획을 짜고 있는데..
“민준이 선생님 오랜만이에요~ 지금 가시는 거예요?”
이때 민준이가 태산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던 간호사와 마주쳤다.
“민준이 안에 있죠?”
“민준이 안에 없어요.”
“그럼, 혹시 어디 갔는지 아세요? 주사 맞을 시간 다됐는데..”
어쩐지.. 방금 네 그 모습은 정상인의 모습이 아니었어.. 그 모습은 다 이유가 있었던거군. 주사 맞을 시간 다 됐는데.. 그치..? 맞아야 하는데.. 그치..? 맞을 시간 지났는데.. 그치..?
“민준이요.”
“네.”
“민준이가요..”
“네. 말씀하세요.”
“민준이가 말이에요.”
“아. 맞다! 채원 씨, 저희 이 선생님한테 찍히셨다고 들었는데.. 그 소문 맞아요?!”
이 선생님이 누구..? 뭘.. 찍혀..?
“무슨 말씀을........”
“왜 어제 밤늦게 남자친구분이시랑 응급실에 오셨었다면서요.”
그랬습니다만..
“그때 이 선생님이 치료하셨다구 하셨는데.. 그때 채원씨 남자친구분이 이 선생님한테 개기..셨다구~ 그 소문 저희 병원에 쫘~악 퍼졌어요~”
뭐라구요.. 방금 뭐시라구요..
“이 선생님이 좀 과격하신분이신데.. 이 간호사가 그 사실 말씀드렸는데도 남자친구분이 개기..셨다구~ 그 소문 저희 병원에 쫘~악 났어요~”
뭐라구요.. 방금 뭐시라구요............
“아. 이 선생님이.. 어.. 손톱에 네일아트 하신 분이요.”
손톱이라면.. 아까 그 흉기손톱을 갖은 자..? 어쩐지 그 의사가 맞는거 같았다.
“근데 의사가 손톱 기르고 하면 안되잖아요~ 그래서 뗏다 붙였다 하는걸로 자주 하시는데.. 정말 꼴갑이시죠.”
그렇게 말해놓고 무사할 수 있을까.. 이 사람..
“제가 방금 한 말은.. 기억에서 삭제해주세요.”
자기가 그렇게 말해놓고 발저려 가지고 발덜덜 떠는 모양새 좀 봐..
“제가.. 실언을 한거 같아요. 실언.”
“네. 알겠어요. 근데 김 간호사님.. 뭔가 오해가 있는거 같아요.”
“무슨 오해요? 아~ 채원씨는 괜찮아요~ 오늘도 이 선생님이랑 마주쳤다고 했는데 이 선생님이 별말씀 없으셨다면서요~ 그럼 괜찮은 거예요. 뭐.. 문제는 채원씨 남자친구분이시죠~ 예전에 채원씨 남자친구분처럼 이 선생님한테 자기 몸 힘들다구 개기셨던분 몇 분 있으셨었는데~ 그분들 이 선생님 본모습 한번 겪어보시구.. 이 병원 발길 끊으셨잖아요~ 뭐.. 그 정도이시죠.. 뭐~”
어떻게 그런 말을 하면서 그리 해맑게 웃을 수가 있는건지.. 그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가는 채원은 얼굴이 거뭏게 되어 김간호사가 하는 말만 멍하니 듣고 있었다.
“괜찮아요~ 걱정마세요~ 뭐.. 걱정이라면 채원씨 남자친구분이시죠~”
“아하하하..”
채원의 실없는 이 웃음소리..
“..하하하........ 하아......”
그 웃음소리는 점점 한숨소리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분위기가 반전.. 또 반전.. 그러한 반전에 연속이었다.
“김간호사님.. 저기.... 저쪽에.. 민준이 같은데요..?”
“정말요? 어디요?”
“저기..”
채원의 손끝을 따라가 보니.. 진짜 그곳엔 티격태격 앙증맞은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병원복을 입은 두 남자아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민준이.. 너.. 다 나았구나.. 너 이제 아프지 않구나.. 그 몸.. 성한 몸이 되었구나..
“아니.. 저 녀석들이!!!”
김간호사의 온화했던 그 얼굴이 순식간에 돌같이 굳어서는.. 마치 뭐에 홀린 사람마냥 그들에게 마구 달려가서는 발로 아이들의 엉덩이를 뻥뻥 걷어차 멋지게 넘어트렸다.
김간호사의 발차기로 인해 복도에 널부러진 아이들은 자신을 발로 걷어 찬게 김간호사란걸 알고는 일단 손에든 담배부터 주머니에 숨기기 시작했다.
민준이는 가슴팍 주머니에 숨겼고 나루토 1권, 2권에 그런 몹쓸 짓을 벌인 그 친구는 바지 주머니에 담배를 숨겼다. 하지만.. 그렇게 헐레벌떡 숨기는 티를 팍팍 내면.. 걸리고 말잖아..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고.. 바로 김간호사의 온정 어린 손길이 이어졌다.
“이민준!!! 이리내!!!”
“오새한!!! 이리내!!!”
가슴팍 주머니를 털린 이민준이.. 바지 주머니를 털린 오새한이..
“너네 이 선생님한테 넘길거야~”
꼴~좋다~
“이 선생님? 그 선생님 누군데요?”
오새한이.. 너는.. 아직.. 그 선생님을 모르는 거니..?
“제비족처럼 생긴 의사선생님 있어.”
이민준이.. 너도.. 아직.. 그 선생님을 모르는 거니..?
근데 제비족이란 단어.. 굉장히 잘 어울린다.. 오.. 근데 그 선생님한테 그렇게 말하고 너희들이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너 그 선생님을 알아?”
“응. 가끔씩 내 병실에 와서 가만히 앉아 있다가 호출 받아 뛰쳐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
“네 병실에? 네 병실에 왜가?”
“나도 몰라..”
“그럼 너는 그 선생님 들어오면 어떻게 해?”
“피해주지 않으니까.. 그냥 냅둬..”
“그 선생님이 진짜 네 병실 들어가서 아무것도 안하고 앉아만 있다가 나간다고?”
“응. 난 처음에 잡화상이 의사가운 훔쳐 입고 병원에 들어온줄 알았잖아. 근데 의사였어. 처음엔 좀 신경 쓰였는데.. 요즘엔 그냥 그래. 그래서 그냥 냅둬..”
“너 좀 쿨하다..?”
“훗..”
요즘 애들답지 않게 굉장히 귀여운 대화들이 오고 가고 있었다. 서로 대화를 끝내고 훗하고 훗훗하고 훗훗훗하고 저들끼리 웃는 모습을 보면.. 마음 한켠이 따뜻해졌다.
“오새한 넌 네 병실로 돌아가 있고 이민준 넌 나한테 주사 한방 맞고 이 선생님한테 바로 넘길거니까 그렇게 알구.. 알겠니~?”
김간호사한테 귀때기 잡혀서 병실로 질질 끌려가는 민준이.. 채원 곁을 스쳐지나가면서 채원에게 메..........롱을..하고 있었다.
네가 감히.. 나에게..
민준의 메롱을 접한 채원은 순간 발끈해서.. 민준이 엉덩이에 주사 맞을 때 바지를 내려주는 친절함을 선보였다. 참고로 엉덩이는 두 눈 가리긴 했으나 살짝 실눈을 뜨고 작게 혹은 좁게나마 포동포동한 그놈에 하얀 엉덩이 속살을.. 제. 대. 로. 두. 눈. 똑. 바. 로... 뜨고 봐~주었다.
민준이 엉덩이 본 이야기를 학교에 쫙~ 퍼트리면 정말 흥지겠지..? 맞아. 흥질거야.. 하지만..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깐.. 내 마음속에나마 곱게 간직하자.. 하지만.. 그게 현실로 펼쳐진다면.. 엄청 흥지겠지..? 동영상촬영을 해둘걸 그랬나.. 정말이지.. 지금 이 순간.. 흥지다흥져..
그나저나 경이에 미래는 어떻게 되는걸까.. 그 생각을 하면서 집까지 다다랐을때 집 앞에 차를 주차해놓고 허공에 슉슉~ 권투하는 흉내를 열심히 내고 있는 경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왜 갑자기 주먹을 야무지게 다잡고 권투질이지..?
한걸음 두걸음 경에게 다가가는데 자신의 두 귀로 들려오는 이름과 욕설들..
“의사양반!!! 네가 의사면 다야?! 새끼가 머리에 떡만 져가지고!!! 바람둥이 기질도 다분히 엿보이는 카사노바처럼 생긴게!!! 췩췩!!!! 내 손에 걸리면 의사고 나발이고 다 죽었어!!! 췩췩!!!”
저 신랄한 췩췩.. 소리.. 이 소리도 소리지만.. 저 공중에 흩날리는 침은..
“경..........아..”
인간분무기.. 경아..
“어? 왔어?!”
채원이 자신을 부르자 몸매무새를 다시 갖추고 채원을 보며 인자한 미소를 띄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딱 그렇게만 보면 자상한 아빠상인데.. 근데 실제 모습과 성격은 3살 먹은 애보다 어째 더 철이 없어 보인단 말이지..
“전화하지..”
“전화했는데 네가 안 받았잖아. 어디 있었어?”
경의 이 말에 가방에 둔 핸드폰이 생각났다. 항상 핸드폰을 소지하고 있었던 채원이었는데 오늘따라 가방에만 넣어두었던지라 경이 연락했는지 안했는지 조차 몰랐다. 이에 가방을 열어 핸드폰을 찾는데.. 채원의 눈엔 자신의 핸드폰 보다 민준의 가방에서 꺼내 가져온 그 물건이 더 눈에 들어왔다.
“부재중전화목록에 내 번호 뜨지?”
“미안해. 내가 핸드폰을 가방에만 넣고 있어서 전화 온지 몰랐어.”
경은 채원이 가방을 뒤적뒤적 거리는걸 가만히 보다가 다시금 혼자 뭐라뭐라 중얼거리더니 다시금 췩췩 소리를 내며 몸을 요리조리 마구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모습이 왠지 너무 안쓰러워서 물이라도 한잔 먹여 보내야 마음이 편안할 것 같았다.
“들어와서 차한잔하고 갈래?”
“차? 네가 웬일이야? 차를 다 주겠다고 하고..”
“응. 집에.. 들어 왔다가가..”
“어머님 계셔?”
금새 흐트러진 자신의 몸매무새를 정성껏 다듬으며 물어왔다.
“응. 들어가자..”
경은 채원의 초대가 그렇게 기분이 좋았던지 싱글벙글 웃으며 채원의 뒤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엄마~”
주방 쪽에서 음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경아. 들어와~”
채원은 주방으로 들어가 엄마를 찾았다.
“오늘 일찍 왔네?”
“응. 일찍 끝났어..”
“안녕하세요~ 어머니~ 경이왔어요~”
경의 깜짝 등장에 뒤를 돌아본 엄마는 고무장갑을 벗어 놓고 경을 반갑게 맞이했다.
“파리 갔다며! 근데 어떻게 한국에 있어? 아무튼 잘왔다. 경아~”
“그동안 잘지내셨어요?”
“그럼~ 잘지냈지~ 너도 잘지냈지?”
“네. 저도 잘지냈어요.”
경과 엄마는 하하호호 너무도 즐거운데 채원만 기분이 우울했다. 경과 엄마는 식탁에 앉아 그간 못 나누었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나누기 시작했고 채원은 본인의 방으로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한국에는 언제 온 거야?”
“온지 얼마 안됐어요.”
“그래~ 아. 채원이 너 다니는 학교에 근무하는거.. 알지?”
“네. 저도 그 학교에서 근무해요.”
“정말? 근데 채원이는 그런 말 없던데?”
채원이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오자 둘의 대화는 뚝 끊어졌다.
“채원아. 너 경이랑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니?”
“네?”
순간 당황한 채원은 필요이상으로 깜짝 놀라 반문했다.
“아.. 그게.. 엄마..”
“그러면 그렇다고 말을 하지~ 그거 좋은건데 왜 숨기고 있었데?”
이때.. 주방 쪽에서 냄비 물 넘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내 정신 좀 봐. 물 끓네~”
헐레벌떡 가스렌지로 달려가 물 조절을 하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경이 잡채 좋아하는데 이번 주 주말에 올래?”
“이번주 주말이요?”
“응. 그때 오면 잡채 해줄게~ 네가 좋아하는 고기도 넣어서~”
“정말요?!”
“그럼~”
“시간 안되도 그날은 꼭 시간 비워야죠!!!”
“진짜 경이는 말을 참 예쁘게 한다니까~”
엄마는 벌써부터 경이 자신이 만들 잡채를 맛있게 먹어줄 모습을 생각하니 머릿속에 요리레시피가 착착 펼쳐지고 있었고 경은 벌써부터 엄마가 해줄 잡채를 맛있게 먹을 생각으로 입안에 침이 가득 고여 가고 있었다.
“채원아, 앉지 왜 다리 아프게 서있느라 그래~?”
엄마는 은근슬쩍 경의 옆자리에 시선을 주며 말했다.
“경아, 옆에 의자 좀 빼줄래~”
경은 옆자리 의자를 빼주었다. 하지만 채원은 엄마 옆자리 의자를 빼서 그 옆자리에 앉았다.
“어머~ 얘가 부끄러움 타기는~ 오호호~ 경아, 기분 나빠하지 말고 얘가 원래 좀 여우같은 구석이 있잖니? 어머~ 채원이 너도 참~ 오호호~”
엄마는 채원을 가볍게 살짝 밀친다는게 그만 채원을 의자에서 떨어트려 버렸다. 그렇게 엄마의 밀침에 양껏 떠밀려 바닥에 쿵..하고 주저 앉게된 채원은 벌떡 일어나 다시 의자에 앉았다. 이때 엄마랑 두 눈이 마주쳤는데.. 엄마의 살벌한 복화술이 이어졌다.
“한채원.. 경이 옆자리로 가..”
방금 전 그 밀침이 그런 뜻이었나요..?
“빨리 안가..?”
하지만 채원은 요지부동이었다.
갈라면 엄마가 가세요. 경이 옆자리가 저렇게 훤히~ 비어 있잖아요? 오호호~ 엄마가 앉으시면 딱 좋을 거예요~
“자.. 밥. 밥 아직 안 먹었지? 좀만 기다려. 밥해줄게~”
“밥 굶기 잘한거 같아요.”
“밥을 굶어? 너네 데이트하다가 들어온거 아니었니?”
“아까 집 앞에서 만났어요.”
엄마는 의아한 눈빛으로 경과 채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또 물이 끓네? 잠깐만~”
분위기가 좀 이상한걸 감지한 엄마는 물 조절하러 이 자리에서 쏙 빠졌다. 이에 주방에서 물 조절하면서 둘을 찬찬히 살피는 엄마..
“채원아. 불편하면 그냥 갈까?”
“아니. 밥 먹고 가.”
“그래도 돼?”
“되지. 안될게 뭐가 있어. 네가 불편해서가 아니라 오늘 그냥 내 기분이 좀 안 좋아서.. 응.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래서 그런거니까, 나 너무 신경 쓰지마. 경아.”
“그럼 다행이고..”
경은 여전히 채원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근데 너 저번에 병원엔 무슨 일로 갔었던 거야?”
“언제?”
“응. 강현이랑 복도에서 마주쳤을때..”
“아~ 그때?”
경은 뭔가를 말하려고 하면서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초가 흐르다가.. 경이 말을 하려고 할 때.. 주방에서 엄마가 나와 말했다.
“나라는 잘 있니?”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찬물을 쫘악 끼얹은 것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회복해야 되는 거지.. 회복이 가능하긴 할까..?
몇 초 후.. 경의 헛기침이 이어지고 채원은 먼 산을 바라보고 엄마만이 소녀처럼 두 볼을 붉히며 나라의 행방을 묻고 있었다.
“엄마. 나라.. 잘 지내고 있데.”
“진짜? 요즘 나라가 안보여도 너무 안보여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네. 나라 잘 지내고 있어요. 그러니까 걱정 안하셔도 되요.”
“언제 한번 엄마 얼굴 좀 보자고 해. 나라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얼굴 보고 싶기도 하니까..”
이 말에 둘 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채 헤매고 있었다.
“저기 엄마.....”
채원이 나라가 파리의 있다고 말을 하려고 할 때.. 경이 말했다.
“나라 지방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지방? 지방 어디?”
“강원도 원주요.”
“강원도?”
엄마는 크게 놀라 들고 있던 잔을 떨어트릴뻔 했다.
“혹시 나라가 무슨 사고라도 쳤니?!”
“약간 그거랑 비슷한 거에요.”
“어머.....”
엄마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렇게 예쁘고 착하고 똑똑하고 싹싹한 나라가.. 사고를 쳐?”
“그렇게 됐데요. 그래서 지금은 그곳에서 아이들 가르치고 있어요.”
거짓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잘하는 경.. 정말이지 의외에 모습이었다.
“너는 그런 사실을 왜 엄마한테 말 안 했니?”
아무런 말 못하는 채원을 보던 경이 말했다.
“나라 입장 생각해서 그랬을 거예요.”
“나라 입장은 무슨.. 나라가 그렇게 됐다고 해서 엄마가 나라를 욕하는 것도 아니고 뭐..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 왜 말을 안했어..”
채원만 가운데서 난감했다. 그런 채원을 보는 경의 마음이 불편했다.
“이번 주 주말에 나라도 올라오라고 해. 같이 밥이라도 한끼 먹도록 하자~”
이 말에 둘 다 할 말을 잃었다. 뭐라고 둘러대야 하지..? 어떻게 해야 이 위기상황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거지..?
“나라가 요즘 좀 바쁜지 연락이 잘 안되요.”
“연락이 잘 안돼?”
“네.”
“그거 바쁜게 아니라 무슨 일이라도 있는거 아니니?”
경이 거짓말에 바닥을 보여 가고 있을 때.. 적절한 타이밍에 채원이 껴들어왔다.
“아니야. 엄마. 가족이랑 함께니까 무슨 일 난건 아닐 거야. 또 일이 났으면 연락이 왔겠죠. 그러니까 엄마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요.”
채원도 그 거짓말에 자연스럽게 가담해 가기 시작했다. 뭐.. 어떻게 시작된 거짓말이래도 일단은 어떻게든 마무리는 지어야겠단 생각만이 앞서서 거짓말에 가담하게 되었다.
“엄마 배고프다.”
채원은 이야기의 화제를 돌리려 빵빵히 부를대로 부른 배를 문지르며 배고픈 연기에 들어갔다.
“배고파? 어머, 진짜 시간이 벌써 이렇게나 됐네? 그래.. 엄마가 밥 차릴 동안 둘은 TV라도 보고 있어~”
그 이야기 화제돌리기가 단번에 먹혀들어갔다.
경에게 TV 리모컨을 건네주고 식사 준비를 도우러 들어온 채원은 식탁을 닦으며 엄마에게 말했다.
“나라도 엄마 보고 싶데..”
“정말?”
엄마의 목소리는 고도 흥분의 상징인 하이톤이었다.
“응.”
“그래. 그럼 언제 한번 집에 데리고 와~”
“응. 꼭 연락해서 데리고 올게. 엄마.”
“그래. 근데 경이는 언제 왔다니? 또 같은 학교에서 언제부터 근무는 한거라니?”
“경이 한국 온지 얼마 안됐고 한국 오자마자 근무하기 시작했어.”
“근데 엄마한테 왜 말을 안했어.. 엄마는 네가 학교에서 적응 잘못할까봐 맨날 걱정했었는데..”
“엄마딸은 어디가서든 적응 잘해~ 그러니까 그런 걱정 같은거 하지 않아도 되요~”
“하긴.. 내 딸이 좀 잘나야지~”
고슴도치도 제 새끼 털은 부드럽다 하고 귀엽다고 해요. 히히히히..
채원은 식탁을 차리면서 TV 보고 있는 경을 살폈다. 경은 지금 뉴스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진짜 열중된 모습이어서 그만 밥 먹으라고 부르는게 좀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하니까..
“경아. 밥 먹어!”
이 부름에 TV를 끄고 식탁으로 와 앉는 경.. 식탁 상엔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들이 많이 있었다. 꼭 오늘이 무슨 날인 것처럼.. 굉장히 신경 쓴듯한 음식들에 보는 이들 모두가.. 먹는 이들 모두가.. 기분이 좋아지는 밥상이었다.
* * * * *
경을 보내고 혼자 책상에 앉아 있는데 뭔가 손에 들린 이걸 보고 있으면 마음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또 이걸 왜 가지고 온건가 싶기도 하고.. 대체.. 이 싱숭생숭한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통스러워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아니. 전환줄 알았는데 문자였다. 것도.. 스팸문자였다. 대출이 어쩌고 저쩌고.. 어쩌고 저쩌고.. 기분도 꿀꿀한데 핸드폰을 박살내볼까 손가락을 꿈틀거리다가 다시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이 물건만 보면.. 침울해지고 우울해져서 그 흥분이 진정이 되어 갔다.
이때 전화가 왔다. 아니. 전환줄 알았는데 문자였다. 이번 것도 스팸이면 진짜 핸드폰을 박살낼 기세에 채원.. 근데 정말 문자였고 그 문자를 보낸 사람은 강현이었다.
“이민준 왜이래요? 가방 찢어먹을 기세에요”
연속으로 보내온 10개 가까이 되는 문자의 내용이 거의 다.. 민준이의 관한 내용이었다. 이 문자에 대해 어떤 답장을 보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 사이 전화가 왔다.
“지금 이민준 가방 씹어 먹을 기세에요.”
“무슨 가방?”
“이게 무슨 가방이지.. 이건 봐야 아는데.. 사람 한명이 들어가고도 남을만한 가방이요. 아시겠어요?!”
설명을 그런식으로 하면 누가 알아..
모르겠는 채원은 가만있는데.. 이때.. 민준의 발악에 찬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강현이 귀 아프다고 징징댔다. 그 사태를 가만히 듣고 있는 채원도 귀가 아프고 따가웠다.
“보자기가 사라졌대요.”
보자기..?
“보자기 아니거든! 스카프거든!”
전자는 강현의 목소리였고 후자는 민준의 목소리였다.
스카프.. 보자기.. 내가 보기엔 그게 그거구만...이 아니라.. 혹시 말이다.. 너희들이 입에서 불 뿜어져 나오도록 찾고 있는 그 무엇이.. 혹시........... 이건 아니니..
채원은 스탠드 불빛에 자신의 근심걱정덩어리인 그것을 갖다 대어 비추어 보았다.
참말로.. 스카프 조각 주제에.. 찬란히도 빛나고 있어.. 밤잠 못 이루게 하는 밤잠도둑놈같은보자기스카프.. 근데 정말 아이들이 찾고 있는게 이거라면.. 상황.. 복잡해지는데..
채원은 가볍게 전화를 끊어 버렸다. 배터리를 분리시키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대신 스탠드 옆에 약간 먼지 쌓인 알람시계에 손을 뻗어.. 아침기상 시간을 맞춰 놓는 깜찍하고 세련된 센스를 발휘하고는 그 근심걱정덩어리인 물건을 가지고 침대에 누웠다.
“너 왜 민준이 가방에 들어가 있었어..?! 왜..?! 너 왜.. 거기서 나왔어..?!”
하지만 말이 없는 이 근심걱정덩어리.. 이걸 보고 있으면.. 경이가 저번 카페에서 자신에게 말해주었던 것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민준이가 어떤 영광을 누리자고 자기한테 그런 몹쓸 짓을 하며 그렇게 몹쓸 짓을 했으면 자기와 마주치는게 조금이라도 껄끄러워 하는 태도를 보여야 하는게 정상일텐데.. 그런 부분이 없다는게 더 이상하고.. 그렇게 이런 저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민준이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근데 이 근심걱정덩어리를 가만 보고 있으면.. 기분이 이상해진단 말이지..
* * * * *
아침에 밥을 씩씩하게 굉장히 잘 먹는다고 엄마한테 칭찬을 받았다. 칭찬 받아 기분 좋은 채원은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전투적인 자세를 갖춰 양치질에 돌입했다.
“피하쓰어따며즈그라~”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양치질을 하면서 이와 같은 문구를 외치며 으쌰으쌰하던 채원은 입안 거품을 깨끗하게 헹구고 입가에 묻은 물을 수건으로 닦아내고 카카오톡 잘난척 이모티콘과 같은 얼굴 표정을 잘난척 할 것도 없으면서 양껏 지어보이며 진정한 잘난척을 뽐냈다.
씩씩하게 집을 나서서 앞을 보고 걸어가고 있긴한데.. 마땅히 갈곳 없어 꿋꿋하게 거리를 방황하며 걷고 있는데 민준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올 거에요?”
이 물음이 좀 반가웠다면.. 어쩔까.. 잇힝.
“시간 보고 갈 수 있으면 갈게..”
일단 좋은 티를 내면 안되니깐.. 시간 핑계를 댔다.
“백조면서 무슨 시간이요..?”
너처럼 선생님 머리 빡치게 하는 학생은 보기 드물거야..
“내가 백조이기는 하지만.. 나도 스케줄은 있는 사람이야.”
“백조가 스케줄도 있어요? 무슨 스케줄이요?”
라는 질문이 끝남과 동시에.. 민준이가 미친듯이 웃어 젖히는듯한.. 그러한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 이민준과 현재에 이민준의 이미지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처음엔 저러지 않았던거 같은데.. 물론 지금 이 모습에 민준이가 첫 이미지 민준이 보다는야 살가워 좋은게 사실이긴 하지만.. 그래도 적응이 안 된단 말이지..
“나 지금 스케줄 가야 되거든.. 끊을게.”
“참 연예인 돋네요. 스케줄이래..”
이렇게 말하고 또 미친듯이 웃어 젖히는듯한..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참.. 웃는 소리 한번 호탕하다.. 근데 기분이 나쁜건 왜지..? 채원은 아무 말도 반응도 보이지 않고 전화를 뚝 끊어 버렸다. 전원까지 끌기세로 씩씩 거리며 폰을 보다가.. 그래도 연락 받을건 받아야하니까 폰을 죽이지는 않고 살려두기로 했다.
* * * * *
가까운 카페에 들러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주변 눈초리가 따갑게 느껴졌다. 하긴.. 남들 다 출근해서 일할 시간에 혼자 여유롭게 커피나 마시고 있으니.. 이상해 보일만도 하지..
하지만 이런 시선 따위로 기죽을 채원이 아니니깐.. 핸드폰으로 열심히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통해.. 아르바이트 물색 중이다.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있을까..? 자신이 언제고 복직할 수 있을거란 부푼 기대감과 꿈에 젖어..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겠단 마음을 먹고 할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는 중.. 제발.. 있어라.. 있어야 돼.. 혼자 이러한 긍정적인 기도를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찾아가는데.. 뭔가 끌리는 아르바이트가 있었다. 자동차 주차관리 같은.. 그런 종류에 일을 하는거였는데.. 좀 웃겼던 부분이.. 팔다리 멀쩡하고 걸어 다닐 수 있는 분이면 환영한다는 부분이었다. 이에 그 부분에서 웃음보가 터진 채원은 급기야 커피잔에 커피를 테이블과 바닥에 쏟는 실수를 범했다.
티슈로 테이블과 바닥에 쏟은 커피를 다 닦아내고 의자에 앉았는데.. 그렇게 땀이 날수가 없었다. 것도.. 식은땀이.. 줄줄줄....
“하.. 덥다..”
손부채질을 하면서 다시 아르바이트를 찾는데 마땅히 할만한게 보이지 않았다. 이에 카페에서 나와 길을 걷고 있는데 전봇대에 붙어있는 전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하얀 종이에 검은색 글씨.. 그렇지.. 저런 형식에 광고물이 그렇게 눈에 띌 수가 없단 말이지.. 채원은 전봇대에 붙어 서서 이런저런 전단지를 한 장 한 장 읽어보았다. 그 전단지엔 부동산관련전단지도 있었고, 단순노동아르바이트전단지도 있었으며, 사람을찾습니다 전단지도 있었다. 그것을 한 장 한 장 보면서 세상 돌아가는 구경을 실컷하고 있는데..
“채원씨..?”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뒤에는 강현의 형.. 은현이 서있었다.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반가운 채원은 은현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이 시간에 여기서 뭐하고 있어요? 학교는..?”
강현이.. 너 입이 무거운 아이였구나..? 오.. 오..
의외의 부분에서 깊은 감동을 받은 채원은 더 기분이 좋아져서 활짝 웃음지었다.
“저 당분간 백조에요!”
기분이 좋아서였는지.. 은현에게 너무도 솔직하게 말해버렸다.
“백조요..?”
은현은 이런 채원의 대답이 엉뚱하게 들려왔는지 떠듬떠듬 물어왔다.
“네. 저 학교에서 쫓겨났는데.. 강현이가 말 안해요?”
아무 말도 안했으니까 은현이 모르는 거겠지..?
“맞다. 그 일 때문에 학교에서 나오게 됐다고 강현이가 그러던데.. 아직 일이 해결이 안났나봐요.”
뭐야..
“아.. 알고 있으시구나..”
“제가 건망증이 좀 심해서 깜빡하고 있었어요.”
순간 채원의 두 손에 주먹이 꽉 쥐어졌다. 여차하면.. 은현을 팰기세.. 부디 강냉이 조심하세요.
“아.. 건망증이 심하시구나..”
“괜찮을 거에요~”
“뭐가요..?”
“그 일.. 잘 해결될 거에요. 저는 그렇게 믿고 있어요.”
“아.. 네..”
은현이 그렇게 말해준건 정말 고마웠지만 그렇게.. 그.. 닥.. 큰 힘이 되어주진 않았다.
“그럼 그때 나와서 지금까지 백조인거에요?”
할 말 없어진 채원은 별 대답 없이 어설프게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구나..”
채원이 민망해하고 있다는걸 깨달은 은현은 더 이상 그 부분에 대해선 말을 하지 않았다.
“시간 있으시면 저희 병원 가서 저랑 대화 좀 나누면 어떨까 싶은데.. 괜찮으신지.. 할 얘기도 있고 해서요.”
이렇게 정중히 물어왔기에 절대 시간이 남아돌아서가 아닌.. 진심으로 은현이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였기에.. 채원은 그 제안에 바로 응했다.
* * * * *
병원에 들어서자 순간 숭아 생각이 났다. 은현을 좋아한다는 숭아.. 머리 하트 그리면서 제 자리를 빙글뱅글 돌며 좋아했던 숭아 의 모습이 생각이 나면서 갑자기 숭아가 보고 싶어졌다. 못 본지 며칠된거 같은데.. 요즘 열심히 공부하느라 선생님이 생각이 안나나 봐.. 숭아 생각에 섭섭해 하는 채원에게 은현이 커피를 건네주었다.
“잘 먹을게요~”
채원은 은현에게 받은 커피를 맛있게 한 모금 마셨다. 아.. 뜨거워.
“와.. 이 꽃 너무 예뻐요~”
채원은 은현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예쁜 꽃병에.. 꽂혀 있는 꽃에 꽃향기를 맡으며 행복에 젖어 있었다.
“네. 숭아가 준 꽃이에요.”
“숭아가요?”
“네. 하루에 한 번씩 여기 들러서 꽃을 갈아주고 가더라구요. 참 부지런하죠? 기특하기도 하구요.”
순간.. 채원의 두 손에 주먹이 꽉 쥐어졌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느라 자신을 생각안하고 있는거라 생각했던 좀 전에 자기 자신 의 모습이 생각나 부끄러웠다.
그런게 아니었어..? 그런게 아니었단 말이지..?
은현의 병원에 들러서 하루에 한 번씩 꽃병 꽃을 갈아 줄만큼.. 그만큼 한가한 숭아가.. 자신에게 시간 한번 내어주지 않았다는 부분에 크게 충격 받은 채원은 그 자리에서 금방이라도 쓰..러..지는게 아니라.. 잠깐 휘청거리고 말았다.
“이 꽃향기는 좀 구리네요..”
“네?”
순간 밖이 웅성거려 채원이 방금 한 말은 듣지 못했던 은현은 다시금 물었다.
“못 들으셨으면 됐어요. 별거 아니에요~”
채원은 이 말을 은현이 들어보았자 별로 좋지 않은 말이라 여겨져 그냥 대충 얼버무렸다.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은현의 얼굴 표정이 순간 굳어 보였던건.. 착각이었나..
“건망증이 또 도졌는지.. 기억이.. 잘..”
채원은 힘이 쭉..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조차 건망증이 발동하다니.. 최은현씨 참 피곤하시겠다.
채원은 천천히 병원 안을 살피며 은현이 건망증에서 벗어나기를 속으로나마 열심히 응원했다.
이때.. 드디어.. 건망증에서 탈출한 은현이 소리치듯 말했다.
“고마워요!!!”
아직.. 건망증에서 헤어나질 못한건가..
채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은현에게 고마워 할만큼.. 뭔가를.. 뭐.. 선행한 일 같은건 없었던거 같은데.. 의아했다.
“우리 강현이한테 신경 써주셔서 고마워요!”
에..? 그게 무슨 말이지..
“선생님 덕분에 강현이가 지금 많이 변하고 있어요.”
“네?”
이 말에 영문을 모르겠는 채원은 무슨 말이냐는듯 되물었다.
“숭아나 윤이가 아무 말 안해요?”
“무슨 말이요?”
“강현이의 대해서요.”
“아무 말.. 없었던거 같은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건지 모르겠어요.”
“음.. 숭아가 그러는데 강현이가 바뀐건 선생님이 오기 전부터 바뀌기 시작했던거 같은데.. 선생님이 오고 나서 더 확실히 바뀌었다고 하니까.. 강현이가 변한거에 선생님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저는 보거든요.”
암만 들어보아도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일단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기로 했다.
“강현이 마음의 병이 있는 아이에요.”
마음의 병..?
“설마.. 우울..”
증..?
“네. 우울증이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울증과 조울증 사이에 있는 아이였어요. 어느 날은 기분이 좋았다가도 어느 날은 기분이 안 좋기도 하고 그런게 오락가락하면서 그런 자기 자신 때문에 많이 방황하던 아이였어요. 근데 문제는 강현이가 왜 그러는지 그 이유..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는 점이었어요. 하지만.. 최근부터 강현이가 바뀌기 시작했는데.. 그러니까.. 아이가 한결 같아졌다는거죠. 어느 날은 기분이 좋았다가도 어느 날은 기분이 안 좋기도 하고.. 그런게 오락가락하던 강현이가 아닌.. 줄곧 기분이 좋다가.. 가끔씩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혹은 줄곧 기분이 안 좋다가.. 가끔씩 기분이 좋아 보이는.. 그런 평상시 사람들처럼 모습이 바뀌었어요.”
“강현이가요?”
“네. 그렇게 바뀐거는 분명 선생님과 만나기 전부터라고 해서 100% 선생님의 영향으로 강현이가 그렇게 변했다고는 말 못해도 분명히 선생님의 영향으로 강현이가 변한건 사실인게 확실하니까요.”
“아.. 근데... 그게..”
“저는 전문가이니까요. 전문가의 눈엔.. 그런게 보이니까요.”
은현의 얼굴에 이렇게 써있었다.
제가 오해하고 있는거 아닙니다..
..라고.. 그런 확신에 찬 모습에서 은현의 자신감이 엿보였다. 그 모습은 상대방 기분까지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희한한.. 신기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지금에 그 좌지우지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제가 더 고마워요.”
은현은 오히려 자신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있는 채원이 신기했다.
“음.. 제가 이런 말하는게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요. 그래도 말할게요.”
은현의 눈빛엔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필요 이상에 뭔가 뚜렷한 힘이 두 눈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선생님이 학교로 돌아가셔서도.. 혹은.. 돌아가지 않으시더라도.. 강현이의 곁에 있어주셨으면 해요. 그 곁에 있어줌이.. 가깝고 멀고에 그런 거리 개념이 아닌.. 한 공간에 함께 있어 주길 바라고 있다는.. 그런 말이에요.”
뭔가 말이 알아먹기 어려우면서도 쉬운 이 말.. 이해가 가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이 말..
“강현이가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게끔.. 선생님이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이 다섯 글자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요하고 잠잠하게 뛰어대던 심장이 충격을 받은듯 갑자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도와달라는 말이 너무도 절박하게 들려왔다면 착각일까.. 이 말에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는 채원은 눈빛으로만 자신의 의사표현을 했다.
다 알아 들었어요.
..라고.. 그 눈빛을 제대로 읽고 해석을 한건지 아닌건지 확인은 안됐지만 서로 눈이 마주쳤고 그렇게 얼마간에 시간이 흘렀다.
이때.. 채원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강현이가 예전에는 어땠었나요? 음.. 그러니까.. 우울증과 조울증 사이에 있는 아이..라고 하셨는데.. 그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상..상이 안가서요.”
그리고 강현이가 예전에 그랬었다는게 솔직히 이해가 안됐다. 보통 사람들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별 차이 없이 보였는데..
“보통 사람들과 기본적인 것부터 달랐어요. 사람은 하루에 세 번 식사를 하죠. 아침, 점심, 저녁. 하지만 강현인 이 세 번 식사를 하는 것조차 힘에 겨워할 정도로 정서가 많이 불안정한 아이였어요. 게다가 사람은 자신의 신체리듬에 맞는 수면시간동안 수면을 취하기 마련인데.. 강현인 하루 종일 잠만 잔적도 있었어요. 이렇게 하루 생활 패턴이 완전이 망가져가고.. 그러므로 인해서 대인관계 또한 틀어지기 시작했죠. 대인기피증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애매모호한게.. 학교생활 하기엔 별다른 문제는 없었지만 대인관계에는 문제가 있었던.. 음.. 뭐라 말로 딱 정리해서 뭐라고 말할 수가 없는 부분인데.. 아무튼 그러한 애매모호한 상황이 혼란을 가중시켰고 그걸 본인도 느꼈던 것만큼.. 강현이 본인 스스로도 자신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인식을 할 수 있을 만큼 강현이는 계속 달라지고 변해가고 있었어요.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거죠.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순간부터.. 예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초반엔 예전 모습이 조금 보이더니.. 후반인 최근엔 거의 예전 모습으로 되돌아갔다고 해도 될만큼.. 어느 순간 지점부터 회복이 되어 가고 있었어요. 그 회복지점에 선생님이 있었다는걸 최근에야 깨달았어요. 하지만 그건.. 저만의 생각이고 착각일 수 있다는 점을 배제하지 못하는건 사실이지만.. 제 생각과 착각인 것이어도.. 그게 생각과 착각이 아닌 그게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점 또한 배제하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도와달라는 거에요. 강현이가 지금에서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게끔 선생님이 도와주세요.”
아까도 느꼈던 무언가에 그 절박감이 채원에게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절박감.. 너무도 큰.. 절박감.. 근데 은현이 걱정할만큼 강현이는 안 아파 보이는데.. 강현이가 아픈 사람이라고..? 것도 제일 치유하기 힘든..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이라고..? 그냥.. 이 모든 말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혹시 은현이 다른 사람이랑 착각하고 이런 말을 하는건 아닐까.. 그게 또 새삼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의사를 할 정도에 사람이라면 사람을 혼돈할만큼 머리가 나쁘진 않을거고 그런 실수는 하지 않을텐데.. 그렇다면 은현이 말하고 있는게.. 다 사실이라는 말이 되는데.. 헌데 그게 100% 다 믿을 수가 없다는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강현이가 언제부터 아프기 시작한 거예요?”
채원이 순간 잘못본건지 모르겠지만 이 질문에 은현이 잠시 당황한 모습을 보였었던거 같다.
은현의 대답을 기다리면서 습관처럼 주의를 둘러보는데..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물건 하나가 채원의 눈에 보였다. 하얀 벽면을 바라보고 있는 액자. 마치 그 액자는 손을 대서는 안 될 물건처럼 묘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게 할만큼 굉장히 오묘한 느낌에 물건이었다.
은현의 대답이 이어지기전 채원이 그 액자를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저 액자는 왜 저러고 있어요?”
뭔가 질문에 웃긴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그저 저 액자는 어떤 액자이며 왜 일반 액자처럼 보이지가 않는지.. 그 의문을 풀어 보고픈 생각만이 중요했고 그게 우선이었다.
채원이 가리킨 물건을 따라가 보니 그 물건은 오래도록 손길이 가지 않아 뿌옇게 먼지 쌓인 한 액자였다. 그 액자를 바라보는 은현의 눈빛엔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저 액자요?”
“네. 그 액자요.”
이어지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게감 있는 이 공간에 축 쳐져 흐르는 공기.. 소름까지 끼칠 정도에 적막감.. 왜 이러한 분위기가 연출되는지.. 왜 이러한 꺼림칙한 느낌이 느껴지는건지.. 그 무엇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의문점 투성이에 저 액자.
“저 액자는..”
은현이 액자를 향해 손을 뻗칠쯤..
“쨔잔!!! 선생님의 숭아가 와쪄용~”
전혀 등장할 타이밍이 아닌 이 타이밍에 뿅하고 나타난 봉숭아..정말 도움이 안되는 봉발레리나..
“장미꽃이 다 팔리고 없대서.. 오늘은 버드푸트입니다~”
숭아의 이 외침에.. 퍽..하며.. 무언가가 박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오늘따라 겁나 발랄귀염둥이인 숭아를 넋놓고 바라보고 있던 채원이 퍽..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옮겨보니..
벽을 바라보고 있던 액자가 바닥 위에 깨진채 나뒹굴고 있었다. 이에 감춰져 있던 액자 유리안 사진을 드디어 볼 수가 있었다.
뭐야.. 저건.. 평범한 가족사진일 뿐이잖아..
강현이도 포함된 가족사진에 그토록 큰 관심을 가진 것에 대한 이 미련함에 채원은 허탈감을 감출 수 없어 콧잔등에 두 손가락을 얹고 훌쩍였다.
“채원씨 미안한데.. 휴지통 좀 가져다주시겠어요? 신문도 함께 가지고 와주면 좋겠구요.”
“네. 가져올게요!”
채원은 벌떡 일어나 숭아의 양 볼을 쭈욱 한번 잡아 늘린 뒤.. 휴지통과 신문을 구하러 밖으로 나갔다.
* * * * *
휴지통과 신문을 가지고 온 채원은 다른 한쪽 손에 들린 이것을 보고 혼자 흐뭇해했다. 그건.. 유리조각을 집을 집게!!!
은현에게 칭찬 받을 생각에 음층나게 신난 채원은 가볍고 발랄한 발걸음으로 은현의 사무실 문을 벌컥 열었다.
원래.. 이런 상황이면은.. 사람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 오면은.. 1, 2초쯤은 놀래줘야 하는게 정상 아닌가.. 근데 은현은 쪼그려 앉아 유리조각을 수집 중에 있었고 숭아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꽃병에 꽃을 꽂는 작업에 열중해 있었다.
아니. 이런 싱거운 사람들.. 제가 왔으요.. 한채원이 왔다구요.
하지만은 채원의 이 서프라이즈한 등장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모두는 출구쪽은 한 번도 바라봐주지 않았다.
집게까지 챙겨 들고 온 채원 민망하게..
부셔버리겠어..
이러한 심정으로 들고 온 모든 물건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무관심은 한 사람의 심장을 쿠크다스 심장으로 만들어 버린다.. 오늘의 교훈이라면 교훈이랄까..
“왔어요?”
“선생님 언제 오셨어요?!”
채원의 쿠크다스 심장은 그렇게 한 조각.. 두 조각.. 조각조각.. 조각져 갔다. 가뭄에 땅바닥이 노인 이마 주름 쪽쫙쪽쫙 갈라지듯.. 쩌억쩌억.. 갈라지고 부서져갔다.
“선생님 물건을 던지시면 어떻게 해요~”
숭아가 채원이 던진 물건을 챙겨서 은현에게 가져다주니.. 은현이 숭아의 머리를 쓰담쓰담 해줬다.
원래 그 쓰담쓰담은 내것이어야해.. 내것이었어야했어.. 다.. 부셔버리겠어..
그렇게 채원의 쿠크다스 심장은 다 부서져 자잘자잘한 가루가 되었다. 낄낄.
“숭아야. 다른 애들은..?”
남들 청소하며 다 저마다에 제 할 일을 하고 있는데 채원만이 혼자 소파에 앉아서 사장님 포스 풍기며 놀고 있었다.. 것도 발까지 까닥까닥이며..
“다른 애들이요?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겠죠~”
어째 너는 학생 아닌 것처럼 말한다..?
이러한 속마음은 내비치지 않은채 채원이 말했다.
“학교는 어떻게 하고 여기온거야?”
“네. 저 오늘 학교 안갔어요~”
“학교를 안가?”
“네.”
“그럼 그 교복은..?”
채원은 교복을 차려 입은 숭아의 지금 이 모습과 말이 모순돼 보였다. 학교를 안 갔다면서 교복을 입고 있어..? 뭐지..?
“오늘 아침에 학교 갈려고 나왔는데 학교를 못 갔어요.”
“여기 오려고?”
“땡~”
“그럼 길을 잃었니..?”
말은 안 돼지만.. 길을 잃었니?!
“것도.. 땡~ 더.. 더.. 머리를 굴려보세요~”
더 머리를 굴리라고?
“생각의 폭을 좀 더 넓혀보세요~”
지금 이 상황에 네가 나한테 그런 말할 처지는 아니라고 생각이 되는건 왜일까.. 음..
아침에 학교 가다가 차사고가 난거야.. 아니지. 그럼 여기 말고 병원엘 갔어야 하는데.. 그럼 이건 아니겠고.. 아! 아침에 학교 가다가 배가 아팠던거야.. 그래서 지하철역 화장실에 갔는데.. 그곳이 너무 따뜻해서 거기서 자다가 지하철을 놓쳐서 학교 갈 흥이 떨어졌던거지..
..그럼, 그랬던거면.. 좀 더 따뜻한 곳을 찾아 숭아는 떠났어야 했어.. 그럼 이건 아니겠고.. 그렇담 뭐지..?
채원은 평소 셜록홈즈전집을 즐겨보며 어떠한 것에 추리를 하는 것을 즐겨했던지라.. 이런 응용문제 같은거에 평소에 늘 자신이 있었는데.. 이번 문제는 어렵게 느껴졌다.
“모르겠어.”
그리하여 채원은 숭아에게 백기를 내던졌다.
“모르겠어. 숭아야.”
“선생님이 생각한거 말씀해 보세요. 그 중에 답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 그런가..?!”
숭아의 이 응원에(?) 채원은 자신이 생각한 것을 차근차근 말하기 시작했다.
“숭아.. 네가 학교엘 가지 않고 여기로 온 이유.. 두 가지를 생각해 봤어. 첫째! 아침에 학교 가다가 차사고가 난거야!”
하지만 숭아의 표정을 봐서는.. 이건 아닌가..? 그렇담..
“둘째! 아침에 학교 가다가 배가 아팠던거야.. 그래서 역화장실서 똥 싸다가 지하철을 놓친거지!”
답은 이 둘 중에 있을거란 기대에 찬 눈빛을 숭아에게 보냈지만 돌아온건 숭아의 콧방귀 소리였다.
방금 잘못 들은거 아니지..? 방금 네 그거 콧방귀 소리 맞지..?
“두 가지.. 모두 땡!”
그렇게 채원의 쿠크다스 심장은 또 한 번에 금이 갔다. 신랄하게 흔들던 발과 발가락의 요동도 멈추었다.
이젠 한번 해보자고 숭아에게 달려들 기세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을 때..
탁!.. 소리가 채원의 행동을 저지시켰다.
그 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니 말 한 번 하지 않고 지금까지 청소를 끝마친 은현이 쓰레기통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정리를 하는 소리였다.
청소하느라 수고하셨어요. 최은현 슨~생님.
“답은.. 강현이가 감기몸살 나서요.”
은현에게 다가가던 채원이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춰 섰다.
“그래서 그 소식 듣고 얼굴 보고 약사다주고 오는 길이에요.”
탁탁.. 청소에 마무리를 알리는 손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는 이 효과음.. 그야말로 깔끔함에 결정체였다.
“많이 아파..?”
“많이 아프니까 저한테 전화를 했을 거예요. 원래 강현이 먼저 전화하거나 그런적 없었는데.. 얼마나 아팠으면 저한테 전화를 다했겠어요. 그게 의아해서 제가 그걸 확인해 보려고 강현이 집까지 찾아 갔었다니까요. 음.. 아. 선생님 놀라지 마요. 감기몸살이 심해서.. 온 몸에 열꽃이 다 폈더라니까요.”
“열꽃..?”
“네. 열꽃이요. 선생님도 오늘 시간 내서 한번 방문하세요. 혼자 먹는 밥이 맛 없는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아플 때 혼자 먹는 밥은 맛이 없다 못해 서글프거든요. 지금 슝~하고 달려가면 강현이가 엄청 감동 받을 텐데~”
이 말에 채원은 은현에게 꾸벅 인사하고 사무실을 슝~하고 나가버렸다. 아침에 학교 가다가 차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아침에 학교 가다가 배가 아파서 역화장실서 똥 싸다가 지하철을 놓친 것도 아닌.. 감기몸살이었어.
일단은 채원은 강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못 할거란걸 알지만 그래도 일단 걸어는 보았다. 예상대로.. 신호음은 끊기지 않고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었다.
“이 바구니에 있는 귤주세요.”
계속 전화연결을 시도하면서 걷자마자 눈에 처음 보인 과일집에서 제일 싱싱한 놈으로 귤을 한바구니 구입했다.
출처 : 그 달콤함♥ (http://cafe.daum.net/BEST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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