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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ft Landing
거시경제이론 중에 경기변동을 설명하는 용어로서 Soft Landing이라는 말이 있다. 한 경제 주체의 경제활동이 항상 같은 수준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파도와 같이 정점과 저점으로 움직이면서 장기적으로는 성장하는 추세선을 따라 발전하는 것이다. Soft Landing은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할 때처럼 급강하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경기하강이 이루어 지도록 한다는 뜻이다. 경제 운용의 주체는 경기가 불황기에 접어 들었을 때에 경기 후퇴의 정도가 심하지 않게 하여야 한다는 뜻으로 이 용어를 언론에서 경제용어로 차용하게 되었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설명하는 강좌에서 어는 직업이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지를 물으면서 보기로 1) 상용 비행기 조종사, 2) 학교 선생님, 3) 외과의사를 들었다. 영국의 고용전문 Website인 Careercast가 설문 조사한 바에 의하면 상용 비행기 조종사가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운항과 관련된 모든 사람, 즉 승객 승무원 회사 이들과 관련 모든 사람이 조종사가 승객의 안전을 담보해 주는 Soft Landing을 기대한다. 뿐만 아니라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정시에 안전하게 도착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비행기 운항 중에 가장 사고에 민감한 것이 Landing이다. 그래서 Soft한 Landing을 확인한 후에야 비로서 자기의 소명이 완수 된 것을 확인하게 되고, 또한 긴장을 풀 수 있는 것이다. 긴장이 해소되는 이 용어를 경제용어로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경기변동과 같다. 때로는 잘되기도 하고, 때로는 죽을 것만 같기도 하다. 이런 인생에서 Soft Landing의 시점과 종점을 어디인가? 인생의 하루 하루가 Soft Landing을 필요로 하지만 인생전체를 한 통으로 보면 출생과 사망 중에 Soft Landing이 필요한 것은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12월 17일에 죽은 김정일의 사망을 어떤 이유와 힘이 작용하여 12월 19일 정오에 북한의 방송을 통하여 우리는 알게 되었다. 1994년 김일성이가 사망하였다는 소식에 통일에 대한 희미한 희망으로 반기기도 하였으나 통일의 기운은 서광을 비추지도 않았고, 점점 더 멀어져 가고 막연한 불안감의 노예가 되어갔다. 그런 학습효과로 한 반도의 중요한 변수의 당사자 한 사람이 사망하였는데도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은 “무덤덤” 그 자체이다. 나는 37년동안 국민을 볼모로 하여 철권 정치를 하였고, 그로 인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국민을 굶주리게 하여 죽음과 유랑으로 거리로 타국으로 내 몬 김정일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그 인생은 “Soft Landing인가?” 반문하였다.
용인시 백암면 고안리 548번지에서 시설호스피스를 운영하는 원주희목사는 죽음을 눈 앞에 둔 말기 암 환우 들을 돌 본 경험을 바탕으로 ‘죽음 알면 이긴다’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그 책에서 인생이 죽음에 대하여 아는 것 세가지 모르는 것 세가지라고 하였다. 아는 것 세가지는 1) 죽음은 누구나 한 번은 가는 길이요 순서 없이 가는 길이다. 2) 죽음의 길에는 아무도 동행하지 못한다. 3) 죽음의 길에는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우리가 죽음에 대하여 모르는 세가지는 1) 우리가 언제 죽을 지 모른다. 2)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 3)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이렇게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서 죽음 앞에서 불안과 방황하는 환우 들에게 “죽음이 끝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게 하여, 평안한 죽음을 맞이 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말기 암 환우의 죽음이 Soft Landing하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업느니라(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서 살겠고(요한복음 11장 25절)” 복음을 전하면서 평안한 죽음 맞이하도록 도와 주는 귀한 하나님의 일을 하고 계신다.
2001년 5월 나의 큰 동서 되시는 분께서 그 곳에서 2개월 가량 계시다가 돌아 가셨다. 어느 날 형님 문병을 갔다가 환우 들을 잠시 돌 보았다. 김장섭이라는 40대 폐암환자는 가족들이 장기 기증을 반대한다면서 가족의 동의를 받아 장기기증서에 서명하게 해 달라고 매일 조르는 모습을 보았다. 그 사람의 얼굴에는 죽음의 그늘을 발견할 수 없었다. 자기 방에 오는 도우미 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찬송가를 불러 달라고 졸랐다. 나도 그 분의 요청에 따라 “내 영혼이 은총 입어…”를 수 없이 반복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불렀다. 조용히 잠을 자는 모습을 보고서야 그 방을 나설 수 있었다. 그 평안함이 인생의 마지막 Soft Landing이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2011년 12월 20일 우리 사진반은 영종도로 출사를 나갔다. 처음에 갔던 해변은 해가 구름 속으로 들어 가는 바람에 야경 촬영으로 돌렸다. 안선생님께서 출사 포인트를 찾아내는 능수 능란한 실력으로 우리를 안내해 주셨다. 머리 위로 비행기가 지나 갔다. 저 멀리 빨간 불 빛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커져서 산더미 같은 위력으로 우리 머리 위를 지나 갔다. 조리개 우선 모드로 하라. ISO는 얼마로 하라. 안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우리의 손 놀림이 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위의 사진이 Landing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전경에 넣을 부제를 찾았다. 마침 Landing유도 시설물 주변에 있는 보안등의 불 빛을 받고 있는 언덕을 발견하고 낮은 자세를 취하고 롄즈를 하늘을 향해 방향을 잡고는 비행기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는 자기의 생명을 다하고 말라 버린 잡초 잎들을 전경에 배치하였다.
죽어 말라 비틀어진 풀잎이 비행기의 Soft Landing을 바라는 소원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 자신도 인생의 마지막 Soft Landing을 기원하였다.(촬영정보; 조리개 f4.0, Shutter Speed 1/80, ISO 3200)
출사를 도와주신 안선생님께 그리고 추위에 함께한 모든 선생님께 감사 드립니다.
첫댓글 사진과 더불어 좋은글을 보여주시네요^^ 언제나 선생님의 사진과 글에 감동을 받는 한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