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에 빛나는 영랑호
월요일 아침입니다.
어제의 과음 탓으로 몸이 무겁습니다.
그렇다고 숙소에서 마냥 뒤척거리기엔 날씨가 너무 좋습니다.
언제 그렇게 비를 뿌렸나는 듯이 하늘은 쾌청했고,
움직여야 알콜 기운도 빠져나갈 것 같아 대충 차려입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숙소에서 길 하나 건너로
영랑호의 단풍이 멋질 것 같아 한 바퀴 돌아볼 생각입니다.
속초시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항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쪽에서부터 대포항, 외옹치항, 속초항, 동명항, 장사항이지요.
외옹치항과 속초항 사이에 외옹치해수욕장, 속초해수욕장, 청호해수욕장이 있습니다.
오래전에는 대포항과 이곳 장사항이 유명했지요.
속초에 와서 회 좀 먹는다고 하면 외지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대포항을 찾거나
많이 다녀본 사람들과 현지인은 장사항의 횟집들을 선호했지요.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는 조용한 곳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외옹치항을 이용했고요.
지금이야 뭐 동명항 회센터가 활성화 되면서
대포항, 외옹치항, 동명항, 장사항 할 것 없이 주말마다 대목을 맞이하곤 한답니다.
새로운 도로가 생겨나고 접근성이 좋아지며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된 것도 큰 이유 중에 하나이겠고요.
영랑호에 도착했습니다.
가을 분위기 가득한 호수 주변으로
일방통행 도로를 따라 한바퀴 돌아 봅니다.
속초 8경의 하나인 영랑호 범바위입니다.
영랑호 범바위, 영금정의 속초등대 전망대, 속초해수욕장의 조도(새섬),
상도문의 학무정, 외옹치, 설악해맞이공원, 청초호, 청대산을 속초8경으로 부른답니다.
물에 비춰진 파란 하늘과 붉은 단풍은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인지 경계를 모호하게 합니다.
범바위 옆으로 오솔길을 따라 영랑정에 올라 봅니다.
속초시에서는 영랑호의 역사와 전통을 게승하기 위하여
2005년 정자를 세우고 시민들의 공모를 통하여 역사적 근거와 지역성이 가미된
"영랑정"으로 명명하였다고 하는군요.
영랑정 뒤로 영랑호와 동해바다의 푸른 물결이 넘실댑니다.
서쪽으로는 울산바위와 설악산의 대청봉을 비롯한 능선들,
그리고 미시령 고개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손에 잡힐듯 가깝게 보였고요.
여러개의 바위 무리를 관음암이라 부른답니다.
속초하면 대포항을 떠올릴 정도로 대포항은 속초를 대표하는 횟집거리였습니다.
관광수요가 있다 보니 24시간 영업하는 횟집들도 있어서
대포항에 도착하는 시간이 어느 때 이던 싱싱한 횟감을 바로 즐길 수도 있었지요.
언젠가부터 대포항을 새롭게 정비한다는 이유로
오밀조밀 붙어 있던 노점횟집들을 철거하고 여기 저기 신축건물이 들어서게 되면서
대포항의 외연은 훨씬 넓어지게 되었지만 예전과 같은 재래시장의 낭만과 멋스러움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지요.
그러다 보니 그전처럼 발길이 잦지 않게 되었고요,
전보다는 한산해진 모습을 보면서 내 생각만 그런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개발도 좋고, 위생적인 환경도 좋고, 편리한 시설도 좋지만
때론 그냥 자연스럽게 놓아두고 보존하는 것도
지역마다 특색 있는 문화를 지키는 좋은 방법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행을 하다보면, 비릿한 바다내음과 정겨운 시장 사람들이 북적이며 뒤엉켜
여행지의 낭만으로 가득했던 재래시장은 하나 둘 사라져 가고
도심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세련된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보면서
실망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속초시에서도 가장 북쪽 변두리의 작은 포구,
장사항을 자주 찾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주변으로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풍부하다는 것이지요.
속초 바닷가의 빼어난 풍경과 다양한 먹을거리들이 장사항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장사항에는 활어직판장과 많은 횟집들이 밀집하여 있으며,
남쪽의 속초등대 방향으로 이어지는 해변을 따라 실내포장마차들이 길게 형성되어
다양한 먹을거리들을 제공하며 젊은이들에게 핫한 거리가 되었습니다.
장사항에서 가까운 동명항 주변으로도
동해에서 잡히는 게와 활어회를 파는 대형 식당들이 즐비하며 동명항의 회센터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자연산 회를 즐길 수 있는 명소가 되었지요.
장사항과 동명항 사이의 바닷길은 길게 백사장이 형성되어
멋진 해변을 따라 산책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이며, 속초등대 아래로는
스킨스쿠버 교육과 함께 장비를 대여하는 곳도 있어서 다양한 해양경험을 할 수 있는 곳도 있지요.
이 구간에는 물회 맛집으로 알려진 봉포머구리횟집, 해물찜, 전복 뚝배기, 물곰탕,
도치숙회 같은 다양한 맛집들이 즐비하며, 속초등대와 영금정, 영랑호 같은 볼거리가 함께 있어서
주변 해안의 절경을 조망하고 동해의 일출을 감상하기엔 최적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속초에 오게 되면 이곳 장사항에 숙소를 정하거나
북쪽으로 10여분 더 울라가 토성면 교암리에 주로 자리를 잡게 되었지요.
장사항 북쪽으로 자동차를 이용하여 10여분 거리의 백도해수욕장에는
우리나라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오토캠핑장이 있다는 것도
이곳을 자주 찾는 이유가 되었고요.
영랑호의 드라이브를 위한 도로는 일방통행입니다.
호수를 바라보고 왼쪽방향으로 주행하도록 되어 있는데요.
언젠가 한번은 그걸 모르고 오른쪽으로 진입해서 호수를 반 정도 돌았는데
마주 오는 차량의 운전자 표정이 심상찮은 거예요.
한참을 주행했는데도 뒤따라오거나 추월하는 차량도 없었고요.
그제서야 역주행을 하고 있는 사실을 알아채고 돌려서 나왔다는.....ㅎㅎ
그때, 차량을 이용한 자해공갈단이라도 있었다면 횡재를 할 수 있었을텐데....
처음 가는 길도 아니었는데, 일방통행이라는 사실를 잊고 있었던건지,
아니면 예전엔 양방향 통행이었는데 그 사이에 일방통행으로 변경된 것인지....,
기억엔 없었지만 아마도 후자의 경우일 거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영랑호 어때요? 멋지지요?
지금 다시 보아도, 잔잔한 수면위로 붉은 단풍잎과 은빛 억새풀이 햇살에 반짝이는
가을 분위기로 가득한 이만 때 즈음이 영랑호는 젤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영랑호와 청초호는 속초를 대표하는 석호입니다.
석호는 바다로 길게 뻗어나간 모래톱이나 퇴적층이 발달하여
바다로부터 고립되면서 형성되는 호수를 말하지요.
주로 강원도와 함경도 지역의 동해안에서 불 수 있으며
강릉의 경포호, 주문진의 향호, 속초의 청초호와 영랑호, 고성의 화진포, 송지호,
그리고 북쪽의 삼일포 등이 대표적인 석호라고 하지요.
영랑호는 속초시 서북쪽으로 장사동, 영랑동, 동명동, 금호동에 둘러싸인
둘레 8㎞에 약 36만 평의 넓이를 가진 자연호수입니다.
청초호는 바다와 넓게 연결되어 큰 배들도 출입이 가능하다보니
커다란 항구와 같은 분위기가 나지만 영랑호는 영랑교 아래의 좁은 수로를 통하여
바다와 연결되어 있다보니 말 그대로 잔잔한 호수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호수 둘레를 따라 조성된 8km의 산책로와 드라이브 코스는
속초 시민들에게 여가를 즐길수 있는 휴식과 운동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지만
여행객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아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기도 합니다.
외지인들이 많이 찾지 않는다는 것은 번잡스럽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해서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한번쯤 권하고 싶은 곳입니다.
조용한 호숫가를 호젓하게...., 여유를 부리며 산책하거나
자동차의 창문을 내리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느린 속도로 드라이브를 즐겨 보는 것도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며, 여행중에 만나는 또 다른 작은 여정이지요.
영랑호라는 이름은 “삼국유사”의 기록에 근거하며
신라의 화랑 영랑이 이 호수를 발견했다 하여 붙여졌다고 합니다.
신라시대에 화랑인 영랑, 술랑, 안상, 남랑 등이 금강산에서 수련하다가
무술대회의 참석을 위하여 금성(지금의 경주)으로 가는 중에 이 호수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맑고 잔잔한 호수와 웅장한 설악의 울산바위, 그리고 웅크리고 앉아 있는 범바위가
물 속에 잠겨 있는 모습에 도취된 영랑은 무술대회에 나가는 것조차 잊고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렀다고 하며,
그 이후로 영랑호는 화랑들의 수련장으로 이용되었다고 하지요.
주변으로는 속초 8경의 하나인 영랑호 범바위가
호숫가에 범의 형상으로 웅크리고 앉아 웅장한 자태를 드러냅니다.
작은 산봉우리에는 커다란 바위가 여러 개가 모여 있는데
이를 관음암(觀音岩)이라 부릅니다.
전설에 의하면 오랜 옛날 이곳에 수목이 우거지고 인적이 드물 때
어느 도인이 수도를 하는 중에 관음보살이 나타나 득도를 도왔다고 하여
관음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는군요.
영랑호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에서 신선무리가 놀며 구경하던
암석이 기묘한 곳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이중환의 “택리지” 에서도
구슬을 감추어둔 것 같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곳이라 표현하고 있다는군요.
영랑호는 동해와 연결된 설악관광권으로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관광지이면서도
1974년부터 영랑호유원지를 개발한다는 명분으로 주변 경관을 훼손하며
콘도와 아파트, 골프장 등을 건설하면서 호수의 오염이 심해져 습지가 파괴되고
자연호수의 특성을 많이 잃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나마 요즘엔 수질을 보호하기 위하여 낚시를 금지하고
주변의 환경오염 요인들을 관리하면서 점차 시민들의 휴식처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