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1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326.348㎢이다. 해발 1,563m의 비로봉을 주봉으로 동대산(1,434m), 두로봉(1,422m), 상왕봉(1,491m), 호령봉(1,561m) 등 다섯 봉우리가 병풍처럼 늘어서 있고 동쪽으로 따로 떨어져나온 노인봉(1,338m) 아래로는 천하의 절경 소금강산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서쪽에는 설경이 아름다운 계방산(1,577m)이 위치하고 있다. 오대산국립공원은 우리나라 문수신앙의 성지이자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였던 오대산 사고가 있던 역사적 장소이자 백두대간의 중추로 생태적 가치가 높은 장소이다.
신라 성덕왕 4년(705년)에 왕자 보천(寶川)과 효명(孝明) 형제가 진여원(眞如院)이란 작은 적을 지은 데서 시작하였다. 그런데 진여원이 고려 말에 사라지고, 진여원 옛 터 위에 절을 지었다고 상원사(上院寺)가 되었다. 진여원이 있던 곳은 상원사 입구 부도탑 자리이다.
이후 영산각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들은 1946년 화재로 인해 전소되었다가 1947년에 다시 중창된 것이 지금의 상원사다.
상원사는 월정사와 달리 6.25 전쟁 중에도 피해를 입지 않은 절로 유명하다. 전각들 자체는 위에 언급되었듯이 1947년에 건설되었기에 문화재적 가치는 전혀 없었지만, 한국전쟁 피해를 입었다면 이 절의 국보인 문수보살상과 동종마저 잿더미로 변했을 것이기 때문. 1.4 후퇴 당시 대한민국 국군은 북한군이 절에 머물 것을 우려해 월정사 등을 불태우며 후퇴했고 이는 상원사에도 해당될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상원사 주지였던 승려 한암이 이를 필사적으로 막았다. 국군 군인들이 와서 절을 소개해야 하니 나갈 준비를 하시라고 하자 한암은 알겠다면서 가사와 장삼을 차려입고 법당에 들어가더니 정좌하고 "자, 이제 불을 놓게."라고 태연히 말했다. 군인들이 놀라며 왜 안 나오느냐고 말하자 "당신들은 군인이니 명령을 따라 불을 놓으라. 나는 불제자이니 내 몸도 함께 태워서 부처님께 공양하겠다"라고 말했다. 그것을 본 국군 장교는 상원사의 문짝을 떼어내서 태워 연기만 낸 후 돌아갔다는 훈훈한 일화가 있다. 당시 인근 부대의 장교로 있던 소설가 선우휘가 이 이야기를 전해듣고 상원사라는 소설을 썼다.
다행스럽게 상원사는 살아남았지만, 월정사를 비롯한 다른 유서 깊은 절들은 잿더미가 되었으니 국군의 흑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요즘 돈을 좀 벌었는지 여러번 증축해서 새 건물이 많아졌다. 이 때문에 오래된 절이라는 분위기는 좀 덜하다. 대웅전격인 문수전에는 청기와도 올리는 등 작은 절이 화려하게 변하고 있다.
▼ 오대산 중대사자암
75오대사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월정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창건된 사찰건물. 불전. 시도유형문화재.
201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익공계(翼工系) 팔작지붕 건물이다. 적멸보궁이란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건물로, 불사리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므로 내부에 불상을 모시지 않는 공통적인 형식을 지닌다. 우리나라에는 경상남도 양산의 통도사(通度寺), 강원도특별자치도 인제의 봉정암(鳳頂庵), 영월의 법흥사(法興寺), 정선의 정암사(淨巖寺), 오대산 월정사 등 5대 적멸보궁이 전해온다. 이 가운데 정암사의 적멸보궁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귀국 직후 직접 창건한 것으로 전한다. 다른 적멸보궁의 경우는 사리를 안치한 장소가 분명하여 방등계단(方等戒壇)이나 사리탑(舍利塔)이 조성되어 있지만, 오대산의 경우는 어느 곳에 불사리가 안치되어 있는지 그 정확한 장소가 알려지지 않아 신비감을 더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