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파리 음악원을 수석으로 졸업한 후 바로 연주계로 뛰어들어
활발하게 활동했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장 프랑세와 공연했고, 헤르만 세르헨, 멘겔베르크 등으로부터는 지휘도 배웠다. 그는
죽을때까지 지휘에 큰 관심을 보였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47년 런던 필과 프로코피예프의 첼로 협주곡 작품 58을
유럽 초연해 대성공을 거두었다. 50년대 들어 파리에서 카잘스 지휘의 라무뢰 오케스트라와 하이든과 보케리니의 첼로 협주곡을
녹음했다. 카잘스는 각별히 장드롱을 아껴 ‘그는 나의 황태자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역시 고독을 바탕으로 다듬어낸 그의
연주는 ‘고독의 성인’ 카잘스의 마음에 꼭 들었을 것이다. 또한 그는 테크닉 면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완성도를 지녔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필립스)도명연 중의 하나로 꼽힌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연주로 오전 연습을 대신하는
대표적인 첼리스트 장드롱은 연습벌레로 통하기도 했다. 장드롱은 역시내한 당시 연습의 중요성에 대한 얘기를 하나의 일화로
대신했다.
“어느 날엔가 피카소에게 첼로를 그려 달라고 부탁했죠. 이후 10년 동안 아무 말도 없어 포기하고 있으려니 어느날
불쑥 피카소가 첼로를 그린 그림을 내놓더군요. 놀라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피카소가 ‘너한테 첼로를 그려 달라는 말을 듣고
10년 동안 매일 첼로 그리는연습을 했다. 이제야 마음에 들어 보여주는 거다’ 라고 대답하더군요. 예술은 오랜 세월 쌓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