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성도 필수 목회신학 이론 :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성서해석의 선행된 개혁이 하늘에서 온 빛이었는가?(10)
정영근
16세기 말틴 루터와 칼빈은 종교개혁의 거성이었습니다. 또한 종교개혁의 성취와 성공은 이 두 개혁자들의 성서해석의 통일된 원리에 의존했습니다.
칼빈은 ‘성서는 자체가 해석자이다. 그리고 성서를 읽을 때 거기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될 것을 기대하면서 읽어야 한다.’라는 루터의 원칙을 그대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러면서 칼빈은 루터와 달리 많은 주석책을 썼으며 ‘단순하게 문자적인 의미를 받아들인다. 성서 자체가 성서 해석자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발견할 것을 기대하면서 성경을 읽거나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는 3원칙을 그는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사실 루터에게 그가 새로운 신교적인 성경 해석학을 개척했다는 점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돌리고 있지만 또한 천재적인 필치를 가지고 이 성경해석책을 실증한 사람은 칼빈이었음을 부정하지 못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루터의 성서해석법의 이야기입니다. 다시 지난번 것을 간단하게 정리해 가면서 새로운 방법 내용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성경해석의 유자격원리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 ‘성경은 성경의 유기적 신학적 통일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상의 계시는 사람의 이성으로가 아니라 계시는 게시로 따로 분리되어야 하며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원리
성경 해석상의 어떤 다른 이성과 관련한 것들(참고로 로마교회의 예를 상기함)이 끼어들지 아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론적인 원리
모든 성경 해석상의 기능은 문자적인 해석을 뛰어넘어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루터의 다음의 말은 루터의 규칙이었습니다.
‘모든 성경책이 그리스도를 촉구하고 있느냐의 여부를 알아본다면 그것이 모든 성경의 책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정확한 시금석이다.’라는 것입니다. 루터는 이런 의미를 가지고 ‘그의 일평생을 통하여 재삼 강조된 오직 성경의 원리를 강조'했습니다.
문자적 원리
성경의 ‘개개의 단어가 다 자기 본연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마련인 만큼 신앙을 가지고서는 그 단어를 포기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카톨릭교회가 지향하는 이미 희랍철학에 의해 사용된 알레고리(우화주의) 성경 해석방식을 배격하고 원어의 우월성, 역사적 문자적, 문법적인 원리를 중시했습니다.
문자적인 것과 성서원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그래야 시대와 환경과 상황과 귀절의 문맥을 유의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요. 그는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를 배워서 자유자재로 다루었다는 것입니다. 루터의 공헌 중에 하나는 그가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막힌 공간을 뚫고 일반 대중 누구나 성경을 볼 수 있게 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일반적으로 원어에 대하여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을 찌라도 오늘날 개척되어있는 내용서를 통해서 만으로도 우리 신앙에 충분하리만큼 적용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성서해석의 정도를 가는 필수이기도 합니다.
권위적 원리
루터의 강력한 주장에 의하면 ‘성경은 신학적인 문제에 있어 최상위이며 최종적인 권위이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교회의 권위 위에 성경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교훈은 취소되거나 변질될 수 없으며 사람이나 문헌이나 간에 여하한 교회의 권위에도 종속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루터는 한 때 이런 파격적이고도 유명한 말 ‘교황이나 혹은 우리들 가운데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의 생각을 따라 성서를 점거하거나 관리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마귀가 취하는 태도이다. 성서가 우리를 관리하고 주장하여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심리적 원리
그는 ‘신앙과 조명은 해석자에게 인격적, 영적 전제 요건이다. 믿는 자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추구해야 하며 그 인도하심에 의존해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성에 따라 성경을 비난하거나 판단해서는 안된다. 다만 부지런히 기도로 묵상하고 셩경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단지 이론적인 개혁이거나 울분에 의한 개혁모습이 아니고 성서해석의 개혁정신을 가지고 하루에 3시간씩 기도했다면 당시 타락한 종교상을 보면서 부지런하게 찾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성서해석의 빛과 종교개혁의 갈길을 지시받는 빛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입증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루터는 종교개혁을 일으킨지 얼마 후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인도하시지 아니하시고 나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떠미신다. 그분께서는 나로 하여금 넋을 잃게 하신다. 나는 나 자신의 증인이 아니다. 나는 개혁의 와중에 던져져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글을 맘무리하면서 잠시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성경이 영감되었다고 믿으십니까? 그러하다면 성경을 읽는 자와 해석자들의 영적인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도 믿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새삼스러운 말 갖지만 사실 성경은 성경으로라야 참으로 이해됩니다. 성경은 영적으로라야 참으로 이해됩니다.
우리(나)는 어떤 마음 자세로 성경을 어떻게 읽고 또 어떻게 해석하는가 다시 한번 심사숙고해 볼 필요를 절실하게 느끼게 합니다. 영생을 주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요 오직 성경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요 5:3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