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게시글
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조선 중기 경상도 청년 '박달'과 충청도 처녀 '금봉이'의 사랑 이야기 울고 넘는 박달재 |
- 여강 최재효 作 |
지금은 국민가요가 된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래에 얽힌 사연을 중편 소설로 다루었습니다. 본 작품은 제천 신문에 연재되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조선 중기 경상도 총각 박달(朴達)과 충청도 제천 처녀 금봉이의 이루지 못한 비련(悲戀)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
울고 넘는 박달재-33
박달도령과 금봉낭자 동상 - 제천 박달재 정상
유연천리내상회(有緣千里來相會)요, 무연대면불상봉(无緣對面不相逢)이라. 인연이 있으면 천리밖에 있어도 만날 수 있고, 인연이 없으면 얼굴을 마주하고서도 만나지 못한다. 회자정리(會者定離)이고, 거자필반(去者必返)이며, 생자필멸(生者必滅)이다. 인간사에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기 마련이고, 떠난 사람은 언젠가 꼭 돌아온다. 또한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죽게 마련이다. 옛사람의 말이 반드시 다 옳은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지나친 욕심은 천지신명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로 간주되어 천벌을 받을 수 있다. 세사(世事)가 공평하다면 세상 사는 일이 무의미 해진다. 항하사(恒河沙) 한 알 한 알이 모두 유의미 하다. 유의미한 것과 무의미한 것이 적절히 섞일 때 살고 싶은 생각도 들고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시간과 공간에 경계가 있어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증오도 한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은 인간 삶의 근간이면서 끊임없이 추구할 바이다. ‘박씨 말이 틀림없구나. 금봉이가 꽃물이 멈춘 게 틀림없어.’ 금봉의 아버지는 장독대 뒤에 있는 놋요강 두 개 중에 딸의 것 뚜껑을 열어보았다. 개짐이 들어있지 않았고 맑은 물만 가득 차 있었다. 꽃물이 있는 시기에 사용하던 개짐을 요강에 담가두어야 하는데 딸의 개짐이 없었다. ‘분명, 집 사람하고 비슷한 날짜인데. 집 사람의 개짐은 요강에 들어 있는데 금봉이 게 없다는 것은 그 애가 꽃물이 멈추었다는 증거야. 그렇다면 딸이 임신을 했다는 것인데…….’ 금봉의 아버지는 권련을 피우면서 곰곰이 딸의 앞날을 생각해 보았다. ‘과거가 끝났으니 지금 쯤 박도령이 급제하여 합격증서를 받아서 내려오고 있을 테지. 그러면 이곳 벌말까지 넉넉잡고 보름이면 충분할거야. 보름후면 딸에게 귀한 선물이 도착하겠군. 넉넉 잡고 보름이야. 보름…….’ 그는 딸의 개짐이 요강에 담겨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과수댁을 찾았다. 마을에서 과수댁 말고 여인들의 신체 변화에 대하여 물어 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아아, 이상하다. 몸이 점점 무겁고 밥맛도 없는 게 왜 그러지.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요즘 들어 내 몸이 이상해. 참으로 이상한 일이야. 혹시 내가 아기를 가진거 아닌가? 남녀가 사랑 행위를 하면 아기가 생긴다고 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여러차례 해주셨어. 여자는 남녀가 유별한 이유가 풋사랑을 이유로 함부로 몸을 굴리면 아기 씨앗이 몸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이야. 그런데, 그런데 나는 박달 서방님과 물레방앗간과 집에서 서너 차례나 진실한 사 랑을 했는데. 그럼, 그때 내몸에 사랑의 씨앗이 뿌려진 것인가? 갑자기 매월 나오던 꽃물도 끊기고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어. 자꾸만 신것이 먹고 싶고 가끔 헛구역질도 나고. 예전에 시집간 사촌 언니들이 말했던 증상이 나에게 똑같이 일어나고 있어. 그 렇다면 틀림없이 내가 아기를 가졌다는 것이 되네. 아아,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어머니에게 말씀 드려야 하는데, 어머니가 아시면 펄펄 뚜실 텐데.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 금봉은 어머니에게 들킬까봐 불안하였다. 금봉은 서낭당에 들러 하루 빨리 박달이 벌말에 도착하도록 도와달라고 기도를 드리고 이등령을 향해 가고 있었다. 다행히 며칠 전에 내린 눈이 먼 산을 제외하고 대부분 녹아 있어서 산길을 걷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얘들아, 저기 올라오는 게 금봉이 아니니?” “맞아. 금봉이다.” 땔 나무를 한 짐씩 지게에 지고 벌말을 향해 내려오던 갑돌이와 수돌이 그리고 동네 청년들이 그녀를 보더니 소리쳤다. 갑돌이와 수돌이는 그녀를 두고 서로 날카롭게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사이였지만 평소에는 둘도 없는 다정한 불알 친구였다. 그런 둘 사이가 나이를 먹자 점차 서먹한 사이가 되어 버렸다. “갑돌아. 너, 지금도 금봉이를 깊이 생각하고 있는 거니?" “…….” “아닌 거여?” 수돌이 갑돌이의 수심에 찬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네 말이 맞아. 나는 금봉이를 깊이 생각하고 있어. 그런데 너도 금봉이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너나 나나 오래전부터 금봉이를 마음에 두고 있었지. 그러나 선택은 그녀의 마음에 달려 있을 테지.” “그런데, 요즘 동네에 이상한 말이 돌고 있어.” 수돌이 양 미간을 찌푸리며, 한 마디 던지고 갑돌이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여? 그게 무슨 말이냐고?” “갑돌아, 금봉이가 홀몸이 아니라는 소문이 돌고 있어.” “뭐? 금봉이가 홀몸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소리여 시방?” “개똥엄마한테 들은 소린데. 금봉이가 홀몸이 아니라고 하더구나.” “그 미친 여편네가 생사람 잡네. 그 개똥엄마가 종종 미친 소릴 했었잖아. 수돌아, 넌 그 미친년 말 믿니?” 갑돌이 얼굴이 갑자기 하얗게 변하였다. “아니, 안 믿지. 네 말대로 그 여편네가 종종 헛소릴 했었어.” 금봉이 갑돌이 일행과 가까워지면서 사내들은 지게를 길가에 내려놓고 땀을 닦았다. “금봉아, 어딜 그렇게 바삐 가는 거여?” “응, 갑돌이구나.” “날씨도 찬데?” “응, 이등령에 갔다 오려고.” “이등령까지 한참 가야하는데. 길이 미끄러워 위험해. 그리고 꼭대기엔 아직 눈이 많이 쌓여있어. 가지마. 위험해.” 갑돌이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였다. “금봉아, 갑돌이 말이 맞아. 우리도 그 근처에서 나무를 해가지고 오는 길인데, 꼭대기에는 눈이 많이 쌓여있어. 가지마. 위험해.” 수돌이도 걱정스러운 듯 금봉에게 말하였다. “괜찮아. 며칠 전에도 혼자 갔다 왔었어.” “그런데 거기까지 무엇 하러 가는 거니? 금봉아,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거기 너 혼자 가는 건 너무 위험해. 가지마.” 수돌이가 다시 한 번 가지말라고 권했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그곳은 내가 어릴 때부터 다니던 길이라 크게 걱정 안 해. 너희들 말 참고 할게.” 갑돌이는 금봉을 유심히 살펴보았으나 금봉이가 임신하였다는 어떤 증표도 알아낼 수 없었다. “금봉아, 아무 일 없는 거지?” 갑돌이가 금봉이를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금봉에게 묻자 그녀는 이상한 소리를 다 듣겠다는 표정이었다. “갑돌아, 그게 무슨 소리야?” “응? 아, 아냐. 아무것도.” “남의 일에 너무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그래. 미안해. 그냥, 어르신 안녕하시냐고 물으려 했던 거야.” “우리 집은 아무 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금봉은 불편한 심기를 간신히 참고 휘적휘적 이등령을 향해 걸었다. 그녀가 저 만치 가물가물하게 보이자 갑돌이는 지게를 숲 속에 내려놓았다. “수돌아, 너희들은 먼저 가라.” “너는?” “응, 아무래도 금봉이가 걱정돼.” “그래서 금봉이 뒤를 따라가려고? 그럼, 나도 같이 가자.” 수돌이 갑돌이를 따라 이등령을 가겠다고 하자 갑돌이와 수돌이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수돌아, 부탁이다. 애들 하고 먼저 마을로 내려가라. 나 혼자 갈 테니. 걱정 말고,” “네 걱정이 아니라 금봉이 걱정이 돼서 그래. 그러니 내 앞길 막지 마. 나도 갈거야.” “수돌이 너 내가 금봉이를 어떻게 할까봐 그러는 거야?” “왜? 너만 가고 나는 금봉이 뒤따라가지 말라는 법 있어?” 그들은 결국 한바탕 격한 말다툼이 있고나서 수돌이 일행들과 나뭇짐을 지고 벌말로 내려갔다. 갑돌이는 부리나케 이등령을 향해 달려갔다. 한참 뛰어가다 보니 금봉이 저 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달려가 함께 금봉이 손을 잡고 가고 싶었지만 금봉이의 마음을 알 수 없어 그는 일정한 간격 을 유지한 채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아아, 서방님. 어서 내려오셔요. 이제 과거도 끝났으니 어서 오셔요. 분명히 급제하셨겠지요? 요즘 제 몸이 이상해요. 아마도, 서방님 씨앗이 제 몸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듯 해요. 이제는 예전처럼 몸이 가볍지 못해요. 어서 하루 빨리 서방님을 뵙고 싶어요. 서방님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고 싶어요. 빨리 달려 오셔요.” 그녀는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이등령을 향해 걸었다. “금봉이가 그 도령 때문에 이등령에 가는 게 분명해. 그 박달이란 사내가 과거에 합격하고 고향을 가기위해서 저 이등령을 넘을 것을 알고 맞으러 가거나 멀리 한양의 하늘을 바라보러 가는 걸 거야. 수돌이 녀석이 헛소리를 한 게 분명해. 아까 보니까 금봉이 배가 부르거나 이상한 조짐은 안 보이던데. 거참, 이상한 일일세. 동네 참새들은 왜 금봉이를 못 잡아먹어서 난리들이람.” 갑돌은 금봉의 뒤를 밟으며 이등령으로 향했다. 금봉의 아버지는 과수댁 집을 찾았다. 요즘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앉아만 있으면 잡념에 빠져 머리가 지끈거렸다. 과수댁은 거대한 둔부를 흔들며, 생글거렸다. “금봉 아부지, 먼저 말씀하신 거 있잖수? 그거 말이유.” 과수댁이 다가와 얼굴을 붉혔다. “과수댁, 말 해봐요. 주저하지 말고.” “친척 중에 아직도 아기를 못 가진 여인이 있다면서요?” “아아, 그거?” 금봉의 아버지는 서름하게 웃었다. “왜 웃어유?” “그 일은 잘 해결되었어요. 그 아이들이 무당에게 비방을 얻어서 그대로 실행하였더니, 금방 아기가 들어섰대요.” 그는 이번에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유? 잘 되었구먼유.” 그는 딸이 임신하였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으나, 자칫 이상한 소문으로 번질까봐 꾹 참았다. 과수댁 입을 통해 한번 흘러나간 말은 열배 혹은 백배로 부풀려져서 삽시간에 마을에 퍼지곤 했 다. ‘보름만 있어봐라. 이 벌말과 근동에 내 사위될 사람이 과거에 당당하게 급제한 사실이 쫙 퍼질 테니.’ 금봉의 아버지는 낮술에 취하고, 곧 있을 경사스러운 일에 스스로 도취되어 기분이 몽롱했다. “아유, 뭐가 그리 좋은 거유. 나도 좀 알자구유.” “과수댁은 알거 없소. 얼마 있으면 우리 딸에게 아주 좋은 일이 생길 거요.” 그의 얼굴이 다른 때 보다 여유 만만해 보였다. ‘좋은 일? 좋은 일이라? 그게 뭐지?’ 동네 모든 소문의 진원지인 과수댁은 ‘좋은 일’이 뭔지 골몰하였다. 어떤 희한한 이야기로 마을에 새로운 파문을 일으킬 것인지 그녀는 별의별 상상을 하였다. 금봉은 이등령 정상에 서서 북녘 하늘을 올려다보며,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였다 폈다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기도하였다. 찬바람이 불어도 그녀는 개의치 않고 오로지 박달의 금의환향만을 위한 염원에 몰두하였다. “천지신명님, 우리 박달 서방님께서 하루 빨리 소녀에게 달려오시도록 도와주세요. 오시다가 행여 나쁜 기운에 혹하거나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서방님이 마음이 너무 착해 다른 데 마음을 두실 수 있으니 혹하지 않도록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세요. 그리고 제 복중에 서방님의 씨앗이 자라고 있나이다. 우리 세사람에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살펴주세요. 비나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금봉을 몰래 엿보고 있는 갑돌이의 마음은 착잡했다. ‘박도령은 참으로 복도 많구나. 며칠 사이에 금봉의 마음을 다 훔치다니. 그것도 며칠 사이에 말이야. 나는 이십년을 이웃에 살면서 한 번도 금봉이의 마음을 훔쳐 본 적이 없는데…….’ 갑돌이는 가슴을 치면서 한탄하였다. “언니, 혹시 우리 박달 서방님 여기 안 오셨어요?” 아지가 극락을 찾았다. “아니. 안 왔는데.” “정말?” “아니, 내가 그럼 너한테 거짓말하랴?” 극락의 여주인은 새치름한 눈으로 아지를 바라보았다. “이상하다. 오늘 과거 급제자를 발표하는 날이라서. 아침에 성균관에 다녀오신다고 나가셨는데. 아직까지 안 들어오셨어요.” “그래? 거참 이상하다. 그 도령이 꼭 급제할 거라고 했었잖니?” “급제하셨을 거에요.” “얘, 너 죽 쒀서 개 주는 짓 한거 아니니?” “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 도령이 한양에 또 다른 여인네가 있는 거 아냐?” “아이참, 언니도. 한양에 일가친척 한명 없는 분이세요. 그런 분이 어딜 가시겠어요?” “너, 그거 모르는 소리다. 남자들이 얼마나 엉큼한지 몰라서 그래. 아지야, 남자들 절대로 믿지 말거라. 남자들 심보가 여자들보다 더 못되었다는 거, 너 알아야 해.” “언니, 그런 말씀 마세요. 박달 서방님은 절대 그런 분 아니에요.” “어이쿠, 네 주막 앞에 정절문이라도 세워야겠구나.” “언니, 그럼 나, 갈게요. 그 분이 한양의 지리를 잘 모르는데 찾아봐야겠어요.” “빨리 찾아봐라. 엉뚱한데 안 가시게.” 아지는 극락을 나와 피마골 주점들을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수백 개나 되는 주점을 하나하나 뒤지는 데에도 시간이 꽤 걸렸다. “형씨, 난 이번 과거에 꼭 입격되는 줄 알았다오. 아무리 내가 쓴 시권(試券)이라고 하지만 정말로 명문이라고 생각한다오.” “에이, 아녀. 아까 자네가 이야기한 고시월에 대한 자네의 논술은 잘못되었어.” “뭐요? 잘못되었다니? 뭐가 잘못되었다는 거요?” 박달이 긴장하며 물었다. “전반부에 형씨 나름대로 달에 대한 소신이 내용이 너무 장황하였고, 결론 부분이 너무 미약해 보이거나, 현재 기득권 세력인 이조판서나 상감에게 도전으로 비쳐질 수가 있어. 그들이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시권을 좋아할 리가 있겠어?” “뭐라고요? 그럼, 당신 시권은 잘 쓴 건 줄 알아요? 내가 보기에는 전체적으로 산만하기만 하지 핵심이 없었소이다.” 박달이 박가에게 눈알을 부라렸다. “뭐라? 경상도 문둥이 자식이 여기가 어디라고 버르장머리 없이 함부로 주둥이를 놀려대?” “문둥이 자식이라고?” 박달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이놈아, 문둥이 자식이라고 했다. 어쩔래?” 박달이 박가의 얼굴에 마시다 남은 술을 뿌렸다. “이 새끼가 미쳤나?” 이번에는 박가가 술상을 들어 박달을 향해 집어 던지자 술과 먹다 남은 찌개와 반찬 등이 박달의 얼굴부터 바지저고리까지 시뻘겋게 물들였다. “이놈의 새끼야. 한번 해볼 테여?” 박달이 벌떡 일어나 키 작은 박가의 멱살을 잡고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삽시간에 모줏집은 싸움터로 변했다. “이봐유. 그만들 해유. 여태껏 술 잘 마시다 이게 무슨 짓이유? 다른 손님들 생각도 해주셔야지유?” 모줏집 주모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야, 문둥이 새끼야. 네놈이 뭘 안다고 지랄이야 지랄이.” “뭐라고. 네놈이 같은 박가고 나보다 연배라서 그냥 지나가려고 했는데, 내 자존심을 건드려? 너나 나나 과거에 낙방하였으면 곱게 있을 것이지, 뭐가 잘났다고 함부로 입을 놀리는 거여?” 박달이 주먹으로 박가의 배와 등짝을 강타했다. “아이고, 경상도 문둥이가 사람 잡네. 여보시오들. 여기 이놈 좀 포도청에 신고해주시오.” 옆에 있던 김가가 싸움을 뜯어 말리려고 하였지만 한번 자존심이 상한 박달은 성이 풀리지 않았는지 계속해서 박가를 두들겨팼다. 그런데 누구의 신고를 받았는지 포도청에서 나온 사령(使 令)과 군졸들이 모줏집 안으로 들이 닥쳤다. “여봐라, 저 세 놈들 모두를 포박하여 포도청으로 압송하라.” 얼떨결에 세 사내들은 오랏줄에 묶여 포도청을 압송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운종가는 조선에서 가장 화려하고 번화한 지역이고 가까운 곳에 궁궐이 있어서 작은 사건이라도 포도청에서 군졸들 이 나와 곧 바로 소란을 피운 자들을 압송하여 끌고 가곤 했다. “나는 아무런 죄가 없어요. 왜 나를 포박하는 거요?” “저 놈이 먼저 나에게 경상도 문둥이라고 놀렸습니다. 그러니 저 놈만 끌고 가면 되는데 왜 나까지 끌고 가는 거요?” 퍽-, 퍽-. “이놈들, 말이 많다.” 사령이 곤봉으로 세 사람의 등을 한 대씩 갈기자 기가 죽은 세 사내는 꼼짝하지 못하고 모줏집에서 끌려 나왔다. ‘아아, 이게 무슨 망신이란 말이냐. 이런 내 처지를 금봉이나 어머님이 아신다면 얼마나 가슴이 미어질까?' 박달은 한탄하며 군졸들에게 이끌려 가려할 때였다. 한 여인이 모줏집으로 들어오더니 소리 질렀다. “안돼요. 안돼요. 우리 서방님을 끌고 가시면 안돼요. 이 분은 오늘 과거에 합격하신 분이세요. 사령님, 잠깐만요.” ‘아니? 아지가 여길 어떻게 알고?’ “아, 아지?” “서방님, 이게 어찌된 일이세요?” “사령님, 우리 서방님은 그제 과거를 보셨어요. 오늘 합격자 발표를 보시고 기분이 좋으셔서 술 한 잔 마시다 말다툼이 일어난 것 같은데, 우리 서방님은 착한 분이세요.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아지가 사령을 끌고 모주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한참 있다 나왔다. “여봐라, 저분을 풀어드려라. 어서.” ‘아니, 아지가 어떻게 하였기에 사령이 나를 풀어주라고 하지? 저 인정사정없어 보이는 사령놈이. 참으로 별일일세.’ 박달은 아지의 수단에 혀를 내두르며, 그녀에게 고마워하였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
|
첫댓글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