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 삼각산 진관사(津寬寺)를 찾아서 ②
-독성전, 칠성각 및 그 밖의 당우-
1부에서는 진관사의 내력과 대웅전 명부전 나한전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이제 독성전 에 대하여 알아 볼 차례입니다.
독성전(獨聖殿)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34호
명부전 좌측에 아담하게 자리한 독성전, 보통 독성각이라 하는데 격을 높히어 독성전이라 했음을 봅니다. 보통 독성각이라 하지만 때로는 사찰에 따라 천태각(天台閣)이란 이름으 로도 불립니다. 안에는 독특한 독성상과 산신도를 모시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안내문을 보겠습니다.
『독성전(獨聖殿)은 홀로 천태산(天台山)에서 수도하면서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모든 중생 들을 제도하고자 하는 아라한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모시고 있는 전각(殿閣)으로, 우리나 라에서는 조선 후기에 산신(山神) 및 칠성(七星)과 함께 삼성각(三聖閣)에 봉안하거나 따로 독성각(獨聖閣)에 봉안하여 신앙하였다. 聖殿)’으로 격상되어 있다. 도리집의 형식으로 조성된 조선조 말의 건물로 1969년에 진관스님이 중수한 건물이다. 습으로, 평방 위로 공포 없이 서까래를 올린 모습이다. 한 ‘방화장’ 형식이다. 건물 내부는 불단(佛壇) 위로 조선후기에 조성된 소조독성상(塑造 獨聖像)과 독성탱화(獨聖幀畵), 산신탱화 (山神幀畵)를 봉안하였다. 聖殿 創建及丹臒畵幀佛事功德記)"라는 이 건물의 건축 관련 기록을 적은 작은 목조 현판이 전해져 그 내력을 알 수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광무(光武)11년 즉 1907년 3월에 독성전을 짓는데, 상궁 4인과 민간인 부부 2쌍이 참여한 것이 기록되어 있으며, 공사 참여자 명단도 부기되어 있는데 모두 승려장인들이다.』 -진관사 홈페이지에서-
진관사 소 독성상(塑獨聖像)과 독성도(獨聖圖).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11호.
독성전에 들어 참배하고 바라보니 소상으로 조성한 젊은 형태의 독성상이 보입니다. 독성 상 뒤로 후불독성탱이 있는데 여기에는 익히 보아온 전형적인 나이든 길고 흰 눈썹을 가진 나반존자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설명이 안내판에 있는데 옮겨 봅니다.
『진관사 독성각에는 나반존자상(독성상)과 독성도가 모셔져 있다. 1907년(융희 1년)에 독 성각이 세워졌는데, 같은 해 독성도와 독성상도 함께 조성되었다. 인도의 천태산에서 홀로 수행하고 있는 나반존자는 일명 '홀로 깨친 성자'라 해서 '독성(獨聖)'이라 부르기도 한다. 존자상의 머리는 삭발했으며 얼굴은 유난히 크다. 눈ㆍ코ㆍ입 중에 특히 뭉툭하고 크게 생 긴 코가 인상적이다. 2m가 넘는 거대한 독성도는 산수를 배경으로 나이 든 비구가 오른손 으로 땅을 짚고 왼 무릎은 세워 왼손으로 긴 주장자를 짚고 있는 자세가 편안해 보인다. 이 작품은 1907년(융희 1년)에 그린 화승(畵僧) 응석(應釋)의 대표작이다. 이 독성각과 독 성도는 1900년 전후의 독성상과 독성도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그 가치가 크다.』
-안내판에서 옮김-
독성상.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11호
산신도(山神圖).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49호.
독성전에는 산신탱화가 모셔져 있는데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단순한 형태의 그림입 니다. 그 설명을 옮겨 봅니다. 『독성전에 봉안된 산신탱화는 세로로 긴 화면에 일반적인 산신도와는 달리 산수배경이 생략된 채 온화한 산신이 호랑이에 기대 앉아 있는 모습을 화면 가득 묘사하고 있다. 을 휘감고 있는 호랑이는 해학적이며 익살스러워 민화(民畵)의 호랑이를 연상시킨다. 밝은 진홍색의 채색과 녹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여기에 호랑이의 황색과 흰색 등이 어우러 져 밝은 색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의 표현 등으로 볼 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산신도(山神圖)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산수배경이 생략되고 산신과 호랑이만을 부각시켜 그려 대담하면서도 단순한 구도가 돋보인다.』 -진관사 홈페이지에서-
칠성각(七星閣)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33호
칠성각 해체 보수과정에서 항일독립운동 사료와 태극기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진작에 접 했는데도 얼른 인연이 닿지 않다가 늦은 감이 있지만 찾게 되어 무척 기뻤습니다. 진관사 홈페이지에 설명이 잘 되었으므로 옮겨 봅니다.
『칠성신은 옛날부터 우리나라 민간에서 재물과 재능을 주고 수명을 늘려주며 비를 내려 풍년이 들게 해주는 신으로 믿어 왔다. 이 칠성신이 불교에 흡수되면서 처음에는 사찰의 수호신으로 자리 잡았다가 점차 본래의 기능을 되찾아 별도의 전각인 칠성각에 모셔지게 되었다. 민도리집 형식으로 조선조 말에 중창한 건물이다. 화강암으로 조성된 낮은 기단 위에 마름 모꼴의 초석을 두고 그 위로 사각기둥을 올린 모습으로 독성전과 같이 공포 없이 서까래를 이용하여 지붕을 올린 모습이다. 으로 구성되었다. 현판도 건립 당시의 것으로 추정된다. 坐像)과 1910년에 조성된 칠성도(七星圖), 그리고 영정(影幀)을 봉안하였다. 건물 중 현재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건립연대가 가장 오래되었다.
또한 19세기 후반~20세기 초 서울 · 경기 지역 사찰 건물들에게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건축방식으로 좌.우.후면 등 3면의 벽을 벽돌로 마감하는 화방벽(火防壁)이 설치되는 등 건물들이 창건될 당시의 시대적, 지역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문 앞에는 여기서 발견된 태극기에 대한 안내글이 있습니다. 이는 지난 2009년 칠 성각을 해체 보수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래에 사진을 통하여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진관사 입구에는 태극기를 돌에 새겨 길이 그 뜻을 기리고자 기 념하는 조형물인 <진관사 태극기> 기념비가 있습니다. 3부에서 만나 보겠습니다.
칠성각에서 발견된 백초월 스님의 독립운동 사료.
여기에 있는 글을 옮겨 봅니다.
『지난 2009년 5월 칠성각을 해체 보수하던 중 백초월 스님이 1919년 당시 항일운동을 대 변해 주는 태극기와 귀중한 독립운동 사료들이 발견되었다. 독립신문, 신대한신문을 비롯 한 독립운동 사료 등이 태극기에 싸여 있는 상태로 불단 안쪽 기둥 사이에 90년 동안 비장 (秘藏)되어 있었던 것이다.
2010년 정부에서는 총 6종 20점에 이르는 이 사료들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하였으며, <진관사 태극기> 특별전이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 또한 KBS 1TV 3ㆍ1절 특집극 <초월의 비장, 진관사 태극기>가 방영되기도 하였다.
그 동안 진관사와 학계는 백초월(白初月) 스님의 생애와 독립운동을 조명하는 두 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여, 당시 진관사가 경성 지역 불교독립운동의 근거지였음을 새롭게 확 인하였다. 현재 진관사에서는 백초월 스님의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는 기념관 건립을 추진 하고 있다.』
등록문화재 제458호. 이 사진은 염화님 사진임.
이 사진을 찍었는데 잘 나오지 않아서 버리고 대신 염화님 사진을 모셔왔습니다. 그리고 백초월(白初月)스님에 대한 글도 있기에 옮겨 봅니다.
『백초월(白初月 1878~1944) 스님은 일제강점기 불교계의 대강백(大講伯)이자 만해 한용 운 스님과 비견되는 대표적인 항일 승려이다. 스님은 1919년 3ㆍ1운동이후 진관사에 주 석하시면서 평생을 독립을 위해 정진하시다가 해방을 한 해 앞두고 일제의 모진 고문에 의 해 청주교도소에서 옥사하였다.』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과 칠성탱화.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47호.
이에 대한 안내글을 옮겨 봅니다.
『칠성각에는 치성광후불도(熾盛光後佛圖)와 치성광석불상(熾盛光石佛像)이 모셔져 있는 데,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직후인 1910년(융희 4년) 10월에 조성되었으므로 역사적 자료 로서도 가치가 있다.
칠성도는 옆으로 구성된 횡렬식 구도인데, 그 중앙에 치성광불(熾盛光佛)과 일광(日光)ㆍ 월광(月光) 등 삼존불이 있고, 이 좌우로 앞줄에 칠원성군(七元星君)이 나라히 서 있다. 뒷줄에는 칠성(七星)을 부처님으로 변화시킨 칠불(七佛)이 나라히 서 있는데, 이 가운데 한 분씩 바뀐 채 배치된 구도가 흥미롭다. 전체적으로 높고 뾰족한 육계(肉髻)와 긴 얼굴, 얼 굴과 팔 등의 금색, 성군들의 높은 보관과 보관의 금장식, 홍색 위주의 가사와 도포 등과 같은 것을 화사하게 표현한 점이 특징이다.
칠성도 앞 정면에 치성광불(熾盛光佛)로 모셔진 34cm의 작은 돌로 된 석불상(石佛像)이 모 셔져 있다. 아기 같은 얼굴과 신체는 순진무구한 부처님의 성격을 잘 표현하고 있다. 19 세기 말경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석불로 그 가치가 크다.』 -안내판에서 옮김-
이 칠성각의 칠성후불탱화(七星後佛幀畵)는 1910년 금어 춘담(春潭), 범천(梵天)이 제작한 것이라 합니다. 요즘은 탱화(幀畵)를 도(圖)로 표기하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찬 반의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안내판에는 도(圖)로 표현하고 있음을 봅니다.
석조여래좌상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10호
칠성각에 모셔진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은 다른 사찰의 칠성각에서 뵙는 치성광여래 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마치 천진불(天眞佛)을 뵙는 듯 합니다. 이에 대한 자 세한 설명을 옮겨 봅니다.
『진관사 칠성각의 석조여래좌상은 옥석(玉石)으로 만들어진 석조여래좌상으로, 상호는 둥글면서도 앳된 얼굴이 특징적인 동형불상(童形佛像)으로 신체에 비하여 두부(頭部)가 유 난히 크게 표현되어 있다. 두 표현되었으며, 크고 넓적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작게 묘사되어 있다. 특히 작은 입가에 는 미소를 머금고 있어 아기 같은 신체와 더불어 친근하면서도 온화한 인상을 준다. 몸에 는 통견(通肩)의 법의를 걸치고 있는데 양 어깨를 덮은 옷자락은 가슴 한가운데에 평행으 로 표현되어 있는 군의(裙衣) 아래로 끼워 놓았으며, 두 손은 신체에 비해 유난히 크게 묘 사되어 양 무릎 위에 가지런히 얹어 놓은 모습이다. 서울ㆍ경기 북부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신체에 비해 얼굴이 큰 편이지만 삼각형을 이루는 안정감있는 자세와 조형성에서 조선후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다.』 -진관사 홈페이지에서-
진관사 명호 스님 초상.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48호.
이에 대한 안내판의 설명이 있어 옮겨 봅니다.
『이 그림은 진관사 칠성각에 모셔져 있는 명호 스님의 초상이다. 원래 북한산 인수사에 모셔져 있었는데, "인싶사졀명호불영뎡)"이라는 화기에서 알 수 있다. 그림 중심에는 온화 한 인품을 느끼게 하는 인자하고 예지에 찬 얼굴과 훤칠한 모습의 명호 스님이 있고 좌우 에 동자승이 그려져 있다. 그림에서 명호 스님은 푸른 감색 장삼 위에 붉은색 가사를 걸치 고 있으며, 왼손에 긴 주장자를 짚고 오른손으로 염주를 굴리면서 경전 위에 올려놓고 있 는데, 덕이 높은 스님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조성연대는 정확히 쓰여 있지 않으나 고승과 좌우 동자승 등 삼존구도의 영정과 희귀한 한글화제, 온화한 고승의 형태적 특징 등에서 19세기 말기의 초상으로 생각된다.』 -안내판에서 옮김
염화님은 무엇을 담으실까? 동별당 같습니다. ^^
나한전 옆에 있는 동별당(東別堂). 스님들의 요사채입니다.
비니초님은 동별당의 무엇을 보고 계시는지?
미소님도...
앗! 제비집이 보입니다.
여기에 삼월 삼짓날이 되면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와 한 철을 나는 모양입니다. 올해도 강 남갔던 제비가 돌아오기를... _()_
동별당 옆 쉼터에서 잠시 차 한 잔을 나누며
정다운 모습입니다.
늘 여여하세요.
쉼터 옆의 능소화
능소화가 피면 무진장 멋있을 것 같네요. ^^
경내 풍경
명부전을 중심으로 좌측에 독성전, 칠성각, 그 앞의 나한전, 그리고 동별당 모습입니다.
다시 대웅전 모습
나가원(那迦院)
진관사에 가면 대웅전 앞 우측에 알쏭달쏭하게 보이는 초서체의 편액이 보이는데 이를 알 아보는 이는 아마도 드물 것입니다. 저도 물론 초서체를 잘 모릅니다. ㅎㅎㅎ 그러나 진 관사에 가면 한 번 이에 대하여 짚고 넘어 가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편액입니다. 이를 나가원(那迦院)이라 하는데 우선 나가원에 대한 안내글을 옮깁니다.
『나가원은 대웅전 우측에 있는 정면 7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건물로, 1972년에 진관스
님이 신축한 것이다. 건물은 콘크리트로 쌓은 낮은 기단 위에 원형초석을 두고 그 위로 두 리기둥을 세워 다포를 받친 모습으로, 건물 전면 3칸에 툇마루를 두어 요사채의 모습을 보 여 준다. 어간에는 현판을 비롯하여 주련 8기가 걸려 있다. 는데, 대중방에는 1972년에 조성된 석조관음보살좌상 (石造觀音菩薩坐像)과 1973년에 조 성된 아미타후불홍탱(阿彌陀後佛紅幀)이 봉안되어 있다.』 -진관사 홈페이지에서-
여기가 종무소이고 요사채여서 들어가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전에 뒷쪽에 종무소 가 있어 한 번 들어가 본 적은 있습니다. 이 나가원은 참선방입니다.
당우(堂宇)의 이름이 특이하지요? 나가(那迦)는 용(龍) 또는 코끼리(象)를 말합니다. 나가는 범어로 nāga라 하고 나가(那伽)로 음사하는데 여기서는 나가(那迦)라 했네요. 나가(nāga)는 용(龍)이라고도 번역하고 상(象)이라고도 번역합니다. 그래서 용상(龍象)이 라고도 합니다. 용상(龍象)은 수족(水族)과 수류(獸類) 중에 왕입니다. 그래서 이에 비유 하여 덕(德)이 높고 학식(學識) 높은 고승(高僧)을 용상(龍象)이라 합니다. 따라서 나가원 (那迦院)이란 이와 같이 훌륭한 스님인 용상(龍象)을 길러내는 선불장(選佛場)인 것입니다.
그리고 나가원에 걸려 있는 주련은 탄허스님이 쓰신 초서체 주련인데 나중에 반드시 주련 방에 소개하겠습니다. ^^
나가원(那迦院) 편액. 탄허스님의 초서체 친필입니다.
나가원에 붙어 있는 현판
진관사는 예로부터 수륙재를 지내온 사찰이기에 수륙재학교도 있고 보존연구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불광노인복지센터도 있네요. 은평구 불광동(연신내역 3번출구)근처에 지하 1층 지상 4층의 건물이네요.
수륙재(水陸齋)는 수륙무차평등재(水陸無遮平等齋)를 줄인 말로, 수륙회(水陸會), 혹은 무 차대회(無遮大會)라고도 불립니다. 수륙재는 물이나 육지에 떠도는 외로운 영혼과 아귀 등의 혼령들에게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평등하게 베풀어 그들을 구제하는 것을 목적으 로 하는 불교의식 중의 하나입니다.
진관사는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국가적으로 수륙재를 지내왔는데, 근대에 이르러서는 기록 이 거의 남지 않았는데 지금의 진관사 회주이신 진관(眞觀)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셔서 과거 의 수륙재를 복원하기 위하여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1982년 자운율사스님의 증명 하 에 수륙재를 복원하여 이후 매 윤년 윤달에 진관사 수륙재를 봉행해 오고 있다 합니다. 올해는 윤달이 있기 때문에 수륙재가 봉행될 것 같습니다.
나가원측면
대문 빗장 같은 것이 있네요. 여기까지 돌아보니 사진이 꽉 차서 여기서 줄이고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감사합니다. (계속)
☞ 다음은 진관사 제 3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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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상세한 설명에 많은것을 배웁니다. 늘 감사 합니다.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30.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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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사에는 설명할 것이 무진장 많네요.![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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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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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호 스님이 참 잘 생기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_()_
사진에서 명호스님이 제일 눈에 드셨나 봅니다.![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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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호 스님이 어떤 분인가는 정보가 없네요.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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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태극기를 보니 초기 태극문양입니다,진관사가 독립운동에 성지군요.두번이나 갈 기회를 놓쳤습니다.
음 3월 윤달에 수륙재가 있겠내요_()_
진관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찰입니다. 이제 독립운동의 거점 사찰로 조명을 받게 되었네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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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가실 기회는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순례 사진만 봐도 기초교리 공부 하는데는 많은 도움이 되내요....나무묘법연화경()()()
예, 이렇게 한 번 숙지하게 되면 다른 사찰에 가서도 분명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감사합니다.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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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는 것과 모른 채 보는 것과는 묘미가 다릅니다. 안 그렇습니까
진관사 요모조모 설명이 참 잘되어 있네요 무엇보다 알려지지 않은 독립열사 들이 목숨을 걸어 나라를 찾았거만 오늘날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_()_
진관사는 유서 깊은 곳이라 한 번 상세히 다루어 보고 싶었습니다. 중생들은 늘 자기 것을 취하는데 열성을 보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늘 갈등하게 되지요.![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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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추억이 되엇습니다. 감사합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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