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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방디 vs 아르헨티나 사건
프랑스의 복합기업 비방디(Vivendi)는 1994~5년에 아르헨티나 투쿠만(Tucuman) 지역의 상하수도 운영권을 확보하고 사업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투쿠만 지역 주민, 지방정부, 지역 정치인들과 비방디사 간에 수도값과 서비스의 질 등을 놓고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됐고, 아예 지방정부가 주민들과 함께 수도값 지불 거부운동을 벌입니다.
그러자 1996년 비방디는 프랑스와 아르헨티나가 맺은 투자협정을 근거로 ICSID에 아르헨티나 정부를 상대로 한 중재심판 소송을 제기합니다.
그러나 2000년 ICSID 판결에서 일차적으로 투쿠만 지방정부의 법원으로 가야 할 일이며 그전에는 ICSID의 중재심판소가 어떤 개입도 할 수 없으니 소송을 각하한다는 판결이 나옵니다.
하지만 순순히 물러날 비방디가 아니었습니다. 비방디는 곧 ICSID에 이러한 중재심판소의 판결을 무효로 할 위원회(Annulment Committee)를 소집해 달라고 신청하였고 재소집된 위원회는 기존의 판결을 무효로 할 사유에 해당된다는 판단을 내립니다.
위원회 결정에 의하면, 중재심판소는 지방정부의 법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운영권 협약 따위에 얽매이지 말고 국제법이나 투자협정을 위반한 사안인지 여부를 독자적으로 판단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극적인 반전과 함께 2라운드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선벨트 vs 캐나다 사건
미국기업인 선벨트사는 물 부족지역인 캘리포니아에 물을 판매하기 위하여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 주로부터 ‘제한된 양의 물 수출 허가’를 받아 놓고 있는 캐나다 회사 스노캡(Snowcap)과 합작사업(joint venture) 계약을 맺고, 스노캡의 물 수출량을 늘릴 수 있도록 1991년에 새로이 허가를 신청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주민들은 지역의 수자원이 고갈되는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하면서 마침내 같은 해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정부는 기존의 물 수출 허가까지 취소해버리는 ‘물 모라토리엄’을 선언해 버립니다.이 과정에서 주 정부는 물 수출 허가를 내주었던 기존의 캐나다 회사 스노캡과는 33만 캐나다달러 정도로 배상액을 합의하게 됩니다.
그러자 미국의 선벨트사는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그러한 조치가 자사가 하려고 했던 사업에 대한 ‘수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UNCITRAL(유엔 산하 국제상법위원회)에 소송을 제기하고, 자사의 사업이 성사됐을 경우의 미래수익 추정액을 근거로 105억 달러라는 거액의 배상을 요구합니다.
이 사건은 수자원보호라는 기초적인 공공이익에 대한 보호정책마저도 얼마든지 투자자 -국가 직접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입니다.
기타 사례들
FTA 협정에 의하여 서비스 시장이 개방되고 미국의 거대 자본이 들어와 공공재에 대한 민영화 등 투자가 활성화되었을 때 ISD라는 옵션이야말로 얼마나 그들의 이익을 철저히 보호해 주기 위한 수단인지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할 것입니다.
그 근본적인 배경에는 <기대할만한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였을 경우>라는 표현 하나만으로도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할 것입니다. 협정 자체가 <그들의 이익을 보장>해주기 위함을 노골화하고 있고, 그에 대한 완벽한 법적 장치로서 ISD를 최대한 강제하는 것입니다.
필리핀에서는 수도민영화로 수도요금이 400% 상승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요금이 150% 상승하는 반면 수질을 악화되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수도요금이 450% 오르고 기업이익은 692% 상승했으며 최고 경영자의 급료는 700% 오른 반면, 공급정지는 50% 늘고, 이질병은 6배 증가하였습니다.
가나에서는 물을 시장가격으로 파는 것을 강제하는 IMF의 방침 때문에 빈곤층은 수입의 50%를 물 구입비로 써야 하고, 인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수입의 25%를 물에 지불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수도 민영화 이후 2001년에 35%, 2003년에 40%에 이어 2004년에 다시 30%를 인상하였습니다.
우리에겐 타산지석인 사례들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한미 FTA는 정말 국가 주권 위협하나?
국회에서 끝장 토론까지 열렸지만, 한·미 FTA를 둘러싼 의견 대립이 계속된다. 미국 의회가 의결한 ‘이행법안’을 살펴보니 미국은 FTA보다 연방법률을 우선하고 있었다. 한국 정부는 ‘딴소리’를 하고 있다.
현재 한·미 FTA 논란의 핵심은 결국 ‘국가 주권’의 문제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이후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미국과의 약속’ 때문에 소신껏 정책을 펼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대자본으로부터 중소 자영업자를 보호하거나 건강보험제도 유지마저 힘들 수 있다고, FTA 반대론자들은 말한다. 이에 정부·여당은 한·미 FTA가 ‘국가 주권’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주장으로 맞선다. 10월17일부터 며칠간 찬반론자들이 국회에서 ‘끝장 토론’을 펼치기도 했다.
한·미 FTA가 불평등 조약인 까닭
여기서 가장 크고 예민한 쟁점은 한·미 FTA가 한·미 양국의 법체계에서 가지는 지위였다. 적어도 한국에서 한·미 FTA는 국내법과 동등하거나 오히려 높은 수준의 지위를 점할 것이 확실하다. FTA에 맞춰 상당수 국내법이 개정된다. 그러나 미국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미국은 주(州, state)라고 불리는 ‘나라’ 50개가 결성한 연방 국가다. 연방 차원의 법률이 있고, 주 차원의 법률이 따로 있다. 미국이 연방과 주의 제도를 한·미 FTA에 맞춰 개정할지도 확실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만약 한·미 FTA를 한국은 준수하는데 미국은 그렇지 않다면 그야말로 고전적 의미의 ‘불평등 조약’이 될 것이다. 더욱이 10월12일 미국 의회가 의결한 법안은 ‘한·미 FTA 협정문’(정부·여당이 10월28일 통과시키려는)이 아니라 ‘한·미 FTA 이행법안(H.R. 3080: United States-Korea Free Trade Agreement Implementation Act)’이다.
국제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10월20일 ‘끝장 토론’에서 “한국에서는 (한·미 FTA 협정문) 1500쪽 모두가 국내법이 된다. 그러나 이 협정에 대한 미국의 이행법은 80여 쪽에 불과하며 이는 미국 내에서 국내법이 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행법안’을 살펴보면,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예컨대 이행법안 102조 (a)항은, “미국 연방 법안이 분쟁에 우선한다’(United States law to prevail in conflict)”라고 ‘대원칙’을 밝히고, 그 내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한·미 FTA 협정문의 어떤 조항이나 그 조항의 적용(특정 사람이나 상황에 대한)도 미국 연방 법률과 일치되지 않는다면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No provision of the Agree–ment, nor the application of any such provision to any person or circum–stance, which is inconsistent with any law of the United States shall have effect.)
‘한·미 FTA 협정문과 주(州) 법 간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102조 (b)항도 수상하다. 주의 법률 역시 한·미 FTA 때문에 무효화되지는 않으며, 이런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주체는 미국 연방정부뿐이라고 못 박고 있다.
10월12일 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법안은 두 개다. 하나는 이행법안. 다른 하나는 이행법안을 시행하기 위한 행정 조치를 나열한 ‘행정조치문’(Statement of Administrative Action). 이 ‘행정조치문’은 상당 부분을 ‘이행법안’의 보충 설명에 배분하고 있다. 예컨대 ‘협정문’과 ‘주 법률’의 관계에 대해서는 “주(州) 법률이 한·미 FTA 협정문과 어긋나도 ‘자동적’으로 (다른 법률로) 대체되거나 무효화되지는 않는다”라고 한 번 더 강조한다.
그렇다면 이런 불합치를 어떻게 해결할까? 결국 미국 연방정부가 주인공이다. 연방정부가 주 정부와 ‘가능한 한 가장 심도 깊은’(the gr–eatest possible degree) 협의와 협력을 통해 불일치를 해소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주 정부 측이 법안 개정을 거부하면 비로소 이 문제를 법정에 제소하게 된다. 이렇게 제소할 수 있는 권한도 ‘오직’ 미국 연방정부에 있다. (Only the United States is entitled to bring an action in court in the event that there is an unresolved conflict between a state law, or the application of a state law, and the Agreement.) 미국의 주 정부, 해당 주(州)의 기업이나 개인, 한국의 정부, 기업, 개인 등을 법률적 문제 해결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송기호 변호사 등이 한·미 FTA를 불평등 조약이라고 주장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그에 따르면 ‘협정문’과 ‘이행법안’은 내용이 다르기까지 하다. 한국이 통과시킬 협정문 11장 17조에는 “미국의 어떤 주가 FTA 조항을 지키지 않을 때 한국 기업이 미국 법원에 제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라는 것이다.
분쟁 주도권도 미국 정부가 가져
이에 반해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10월20일 ‘끝장 토론’에서 한·미 양국의 법체계 차이에서 생긴 오해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다른 나라와 FTA 협정을 맺을 때도 같은 방식으로 해왔고, 이제껏 어떤 나라도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미국은 WTO의 경우에도 ‘이행법안’을 통과시켜 시행 중이라고 한다. 또한 김 본부장은 “(이행법안에는) ‘협정문’이 첨부되어 있으며, 이행법을 보면 첫 조항이 ‘미국은 이 협정을 승인한다’로 시작하고 이에 따라오는 ‘행정조치’들에 대해서도 승인한다고 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이 이행법안을 통해 협정문을 승인하고 또 ‘불일치’(협정문과 미국 법률 간의)를 해소하기 위한 ‘행정적 조치’들을 진행하기로 모든 법적 절차를 마쳤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말한 ‘행정조치’는 ‘행정조치문’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행정조치문에는, 앞서 나왔듯이 한·미 FTA와 어긋나는 주 법률에 대해 “자동적으로 대체되거나 무효화되지 않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연방 법률과 관련해서도, “협정의 어떤 조항도, 그것이 연방 법안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미국 국내법 아래서 효력을 발휘할 수 없음을 확실히 한다”라고 되어 있다.
또한 김 본부장은 ‘끝장 토론’에서 “우리나라 투자자가 미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라는 주장에 대해 “그 내용은 가능하다고 이행법 106조에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106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국 연방은 미국에 대해 제기되는 청구(claim)를 해결할 권한을 가진다.”(The United States is authorized to resolve any claim against the United States) 이 역시, 미국 정부가 ‘불일치’ 문제의 해결을 보장하는 내용이라기보다 분쟁 해결에 대한 미국 연방정부의 주도권을 강조하는 문구로 보인다.
미국처럼 국내법 우선하는 특별법 필요
정부·여당은 10월28일 한·미 FTA를 국회에서 강행 처리할 방침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았듯이 한·미 FTA 협정이 양국에 동일하게 적용되는지 ‘사실 관계’마저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타당한 행위인지 의심스럽다. 더욱이 ‘투자자-국가 소송제’ ‘역진 방지 조항’ 등 이후 정부의 정책 자율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조항에 대한 논란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경우, 외국인 투자자가 국가정책(건강보험, 부동산 시장 안정, 골목 상권 보호)이 자신의 이익에 어긋난다고 생각할 때 국가에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는 제도이다.
외교통상부 측은 ‘공중보건, 환경, 부동산 가격안정화와 같이 정당한 공공복지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 행위는 상관없다는 주장이고, 이는 협정문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공공복지를 위한 조치라 하더라도 투자자는 국가를 중재 절차에 회부할 수 있으며, 국가는 이 절차 회부에 동의하지 않을 재량권이 없다”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렇게 사실 관계 자체가 혼선을 빚고 있는 상황이라면, 시간과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한·미 FTA는 시효가 없는 약속이다. 그렇다면 민주당 등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에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조항은 한국 내에서도 발휘하지 못하게 하거나, 미국의 FTA 이행법안처럼 FTA보다 국내법이 우선한다는 조항을 두는” ‘FTA 이행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4월, 호주는 왜 ISD를 ‘전면 거부’했나?
[기고] 투자자 국가 소송제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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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문제 조항으로 꼽히는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 Investor-State-Dispute)에 대한 공개 토론회가 무산되어 버렸다고 하며, 한나라당은 이제 모든 토론은 끝났다고 공언하면서 당장에라도 힘으로 한미 FTA를 의회에서 밀어붙일 기세로 나오고 있다.
나는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이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얼마나 큰 논쟁거리이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인가를 알리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한 바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루어진 논의가 알려진 것을 보다가 다시 한 번 놀라게 된 것은, 그동안 반대 진영 쪽에서 제시한 수많은 주장과 논의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과 정부 측 관료들은 이 제도에 대해 거의 아무런 경각심도 가지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어떤 학자는 “제대로 된 학자라면 이 제도가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모를 수 없다”라는, 정말로 ‘제대로 된 학자’인지 심히 의심스러운 주장까지 버젓이 펴고 있다는 점이다.
5년 전 나는 어떤 글에서 이런 분들에게 제발 1분만 시간을 내어 구글 검색창을 한 번만 두드려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와 같은 국제기구는 물론이고 서구의 여러 정부 기관과 유수한 연구소에서 1990년대 이후 이 제도가 확산되면서 얼마나 많은 갈등과 논쟁을 낳았는지, 그리하여 21세기로 들어온 지금 이 제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면서 수많은 나라들이 투자자와 국가의 분쟁 해결에 있어서 1980년대 이전의 방법을 선호하는 쪽으로 회귀하는 것이 최근의 흐름이라는 점을 소상히 밝힌 문서들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목소리들이 정부와 여당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 듯싶다. 이들은 현재 한미 FTA에 명문화되어 있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고려하여 2004년 새로이 마련된 미국의 투자 협정 표준안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 하나에 의지하여 그러한 모든 걱정들은 근거 없는 기우(杞憂)라고 일소하면서 이 문제에 대한 더 많은 숙고를 거부하고 있다.
이에 자칫하면 현재의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포함된 한미 FTA 원안이 그대로 실현될 상황에 오게 되었다. 이미 많은 이들이 그 문제점을 지적할 만큼 지적한 지금, 마지막으로 한 가지 사실만 다시 주의를 환기하고 싶다. 올해 2011년 4월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향후의 모든 자유 무역 및 투자 협정에서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원천적으로 배제하겠다고 공표한 사실이다.
알려진 대로, 오스트레일리아는 2005년 발효된 미국과의 자유 무역 협정(AUSFTA)에서 이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배제한 바 있었다. 그러한 판단을 내린 배경에도 우리나라에서 많은 반대자들이 제기했던 문제들과 똑같은 고려와 염려가 배경에 있었고, 이것이 노동운동이나 환경운동 등 시민사회 진영은 물론 의회의 대다수 국회의원들의 판단에도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이 미-오스트레일리아 자유무역협정 당시에는 비록 “양국의 법률 체계가 서로 믿을 만하고(robust) 또 역사적으로 많은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불필요하다는 명분을 들어 이 제도를 배제하기는 했지만, 외국 투자자의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각별한 보호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점이 명시되어 있었고 따라서 많은 비판가들은 이것이 언젠가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부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 등, 이 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오스트레일리아는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이후에도 ASEAN 각국들 그리고 대한민국 등 여러 나라들과의 자유 무역 및 투자 협정 논의를 진행해오고 있는 상황이며 여기에서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포함시킬 것인가의 여부를 놓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특히 이러한 논쟁에 불을 붙인 정황은 2010년 들어서 오스트레일리아가 브루나이, 칠레, 뉴질랜드, 싱가포르를 위시하여 말레이시아, 페루, 베트남, 미국까지 포함된 초 태평양 동반자 협정(TPPA : Trans-Pacific Partnership Agreement) 논의였다. 이 협정에는 미국이 들어가 있기에 이 협정의 논의야말로 한 때 잠들었던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다시 전면적으로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다시 오스트레일리아 시민사회를 일깨웠고, 많은 시민단체와 학자들이 반대와 비판의 목소리를 미리부터 내기 시작하였다. 이에 통상부 장관인 사이몬 크린은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자신들 또한 TPPA 논의에 있어서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조심스러운 입장(serious reservations)”이라고 표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함께 더욱 오스트레일리아 사회에 이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경각심을 일깨운 사건이 2010년에 벌어졌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이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걸려드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정부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안을 따라서 시중에 판매되는 담뱃갑의 포장을 광고 문구가 없고 대신 담배로 인한 건강 파괴의 이미지만을 담도록(“plain packaging”) 하는 규제를 추진하고 있었는데, 초국적기업인 필립모리스가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에게 이 정책을 철회하지 않으면 각종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마침내 2010년 6월 27일 필립모리스는 정식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를 제소(dispute)하겠다는 입장을 통지한다.
필립모리스는 많은 이들이 미국 기업으로 알고 있고 또 미국은 앞서 말한 대로 오스트레일리아와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오스트레일리아는 1993년 홍콩과 투자 협정을 맺은 바 있었고 여기에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필립모리스는 홍콩의 자회사를 이용하여 스스로를 홍콩 기업으로 내세운 것이다. 필립모리스는 이미 그전에도 우루과이 정부를 제소한 적이 있었고 이때는 스위스 기업으로 스스로를 내세운 적이 있었다.
물론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애초의 담배 포장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설령 국제 중재에 걸린다고 해도 자신들이 이길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불안함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서 오스트레일리아 의사 협회 등 여러 시민 단체들은 아예 홍콩과의 투자 협정을 종식시키라는 요구까지 하고 나서게 되었다.
이 와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으로, 2010년 11월에 오스트레일리아 의회의 ‘생산성 위원회(Productivity Committee)’가 내놓은 최종 보고서에서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피하기 위해 노력하라(seek to avoid)”는 주장을 내놓는다. 이 위원회는 정부나 의회와도 독자성을 유지하는 학자들과 연구자들로 구성된 조직으로서, 의회는 2009년 말 이 위원회에 양자 간 및 다자 간 무역 협정의 효과에 대해 포괄적인 경제학적 연구를 위임한 바 있었다. 이 문건은 몇몇 개인들의 ‘편벽된’ 견해도 아니요 또 ‘이념적으로 편향된’ 운동 단체의 입장도 아니다. 정치적으로 독립된 여러 명의 연구자들로 구성된 한 나라의 의회 위원회가 집단적으로 숙고하여 내놓은 문서이니, 그 관련 논지를 좀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하자.
보고서가 내놓은 첫 번째 결론은,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있어야 할 경제학적 타당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 제도가 특별히 투자자들을 보호해주는 장치라고 하기도 힘들고 또 흔히 오해하는 것과 달리 이 제도를 택한다고 해서 외국 투자가 더 들어오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첫째, 옛날과 달리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들은 해외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오히려 각종 혜택과 보호를 적극적으로 제공하려 들고 있으며 또 그러한 국제적 평판을 얻으려 애를 쓰고 있기에 오히려 자국 내 투자자들에 대한 역차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2005년에 나온 한 연구를 보면 80개국의 1만 명 사업가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했을 때 자국 투자자들은 역차별을 걱정하는 반면 외국 투자자들은 자신들이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생각을 피력하기도 한다.
둘째, 최근인 2010년에 나온 연구에서 볼 때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집어넣는다고 해서 해외 투자가 증가하게 되었다는 의미 있는 증거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셋째, 해외 투자자들이 지게 되는 ‘정치적 리스크’를 해소하는 데에도 훨씬 효과적인 대안적인 장치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세계은행의 다자 간 투자 보장 기구(Multilateral Investment Guarantee Agency)는 개발도상국에 투자하는 이들에게 전쟁, 테러, 또 직접이든 간접이든 수용(expropriation)이 벌어질 위험에 대비하여 보험을 제공하고 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의 수출입 금융 및 보험 공사 또한 해외에 투자하는 오스트레일리아 투자자들에게 ‘정치적 리스크 보험(Poltical Risk Insurance)’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제도가 있어야만 할 ‘경제적’ 근거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반면,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굳이 포함시킨 여러 다른 나라들의 경우를 볼 때 이로 인해 발생하는 정책에의 위협과 금전적 위험도 상당하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두 번째 결론이다.
첫째, 이 제도 때문에 공공 정책과 규제 활동에 제동이 걸리는 효과는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먼저 보고서는 소위 “규제에 대한 찬 서리(regulatory chill)”라는 현상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해외 투자자와 대상국 국가 사이에 거액의 국제 중재가 걸리는 상황만이 문제가 아니다. 대상국 국가의 정부 관리들은 행여 자신들의 이윤에 영향을 줄 공공 정책이나 규제를 행하지 않는가를 예의주시하는 해외 투자자들의 숨결을 자기들 목덜미에 항상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굳이 ‘복지부동’의 공무원이 아니라고 해도, 이렇게 위험한 소지가 있는 정책이나 규제는 애초부터 ‘쫄아서’ 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는 보이지 않는 위협이 있다는 지적이 그전부터 많았는데, 이 보고서는 그러한 위협이 현실적인 위험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둘째, 이렇게 하여 해외 투자자들이 투자 대상국 정부와 동등한 법적 지위를 획득하게 될 경우 국내의 투자자들과의 권력적 비대칭이 발생하여 후자가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정부가 어떤 정책이나 규제를 취했을 때 투자자들에게 발생할 ‘정치적 리스크’는 동일한데 해외 투자자들은 이러한 보호 장치를 가진 반면 국내 투자자들에게는 아무런 장치도 없기 때문이다.
셋째, 투자자와 국가의 분쟁을 해결하는 제3자 중재(arbitration)의 국제적 규칙들이라는 것이 제도적인 편향, 이해 상충, 일관성 결여, 투명성 결여, 터무니없이 높은 비용 등 숱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하여 보고서는 이렇게 주장한다.
“위원회의 평가로 볼 때, 투자자-국가 소송제 조항들을 명시할 경우 이 때문에 주권 국가들은 다양한 범위의 잠재적 문제들에 부닥칠 수가 있으며, 그 문제들의 성격과 정도가 어떠한가는 대단히 계산하기 어렵고 협정이 이루어지는 시점에서는 알 길이 없을 수 있다.”
세 번째, 다음으로 보고서는 그렇다면 이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채택했을 때 투자 대상국에 발생할 위협을 줄이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논한다. 지금까지 주로 나온 논의는 협정에서의 문안을 최대한 정교하고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다.
투자 및 무역 협정에 사용되는 용어들은 아주 크고 추상적인 것들일 경우가 많아 거기에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들어가는지 어떻게 적용되는 것인지가 애매할 때가 많다. 또 막상 국제 분쟁이 걸렸을 때에 이를 어떠한 절차로 어떻게 해야 공정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될 때가 많다. 이러한 경우들을 최대한 예측하여 협정 문안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러한 방법이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또 여러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간접 수용’의 성격이 무엇인지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를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밀하게 정의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일 수 없으며, 결국 정부가 내리는 이런저런 결정들이 걸핏하면 제3자인 국제 중재의 판단 대상이 될 위험은 피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 보고서의 판단이다.
결국 이 제도가 존재해야 할 경제적 이유는 찾기 힘들며, 대신 이 제도로 인한 정치적 경제적 위협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고, 협정을 맺을 적에 마련된 이런저런 협정 문안에 근거하여 그러한 위협을 막아낼 가능성도 불확실하다. 따라서 보고서는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최종적으로 이러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위원회의 평가는 이러하다. 비록 투자자-국가 소송제와 연관된 위험들과 문제들은 적절한 조장을 마련하는 것을 통해 완화될 수 있는 것들도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중대한 위험이 여전히 남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국제 투자 협정(…)에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포함시키는 것이 과연 오스트레일리아나 상대국들에 물질적 혜택을 가져다주는지는 의심스러워 보인다. (…) 이러한 배경으로 볼 때, 본 위원회는 오스트레일리아가 무역 협정에 있어서 해외 투자자들에게 현재 이미 국내의 법률 체계에서 제공되어 있는 것 이상의 추가적인 내용적 혹은 절차적 권리를 부여하는 투자자-국가 소송제 조항들을 받아들이는 일은 회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위원회의 보고서는 정부가 반드시 채택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이 보고서의 권고를 그대로 따른다. 그리하여 올해 2011년 4월, 앞으로 오스트레일리아는 어떤 종류의 양자 간 다자 간 무역 및 투자 협정에서도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채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입장을 천명한다.
물론 이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이야기이다. 대한민국에서의 한미 FTA 논의가 이 보고서의 내용을 맹목적으로 추종할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여러모로 세계 경제에서의 위치를 우리와 견주어 볼 수 있는 옆 나라의 의회에서 논의되어 결국 정부의 확고한 방침으로까지 이어진 이 보고서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무시할’ 이유 또한 전혀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중요한 제도에 대한 ‘끝장 토론’은 열리지도 못한 상태이며 이 제도를 협정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일방적인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여러 사람들의 우려를 이어 다시 한 번 말하자면,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지금까지 국제적으로 숱한 논쟁과 갈등을 낳은 바 있는 예민한 쟁점이며 지극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는 문제이다.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이 제도에 대한 보류와 반대를 표명하는 나라들이 최근 들어 급속히 늘고 있다.2004년 미국이 투자 협정의 표준안을 새로이 준비하게 된 것도 NAFTA를 낳은 1994년의 표준안에 들어 있는 이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숱한 문제를 낳았다는 것이 큰 이유였다. 하지만 이 2004년 표준안도 과연 실제 상황에서 얼마나 이러한 문제들을 예방하는 데에 효과가 있을지는 이 보고서가 숙고하는 대로 “협정이 이루어지는 시점에는 지극히 예측하기 어렵다.”
따라서 기존의 문안을 이리저리 해석하여 이런저런 걱정들이 기우라고 일소하는 대신, 지금이라도 본격적인 논의를 열어가는 것이 마땅하다. 그 과정에서 어째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의회와 정부는 이 글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판단을 내렸는지 그리고 여기에 대한 우리의 선택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답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오늘도 창의성을 강요 당하셨나요?!
‘본인이 창의성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했던 경험을 적으시오.’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쓸 때 이 세상의 ‘예비 김 대리’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항목이다. 이 항목 앞에선 한숨이 절로 난다. 볼품없는 스펙 한 줄이라도 만들기 위해 각종 인턴 지원하느라 대학생활 절반을 쏟아 부었는데, 아르바이트로는 채울 수도 없는 비싼 등록금 줄여보고자 장학금이라도 받기 위해 자는 시간 줄여가며 공부에 매진했는데. ‘창의적인 경험담’이라니.
예비 김 대리가 회사에 들어가 실제 김 대리가 되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오늘도 팀장이 팀원 전체를 종용한다.
“자자, 창의적인 아이디어 하나씩 내봐. 스티브 잡스처럼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해!”
시간이 흘러 이직을 준비할 때 김 대리는 또 창의성 이야기에 맞닥뜨린다.
“그동안 업무 수행하면서 가장 창의적으로 개발한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창의성, 창의성, 창의성. 모두가 ‘창의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 어느 누구도 ‘창의성’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창의성은?”이라고 물었을 때 명확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평소 문제가 생기면 책에서 답을 얻고자 했던 김 대리는 우선 도서관을 찾아가본다. 자료 검색창에 ‘창의성’이라고 친다. 약 30여 권의 책이 검색된다. 창의성과 관련한 책이 무궁무진할 것 같은데 30여 권이라니. 다른 검색어를 쳐야 할 것 같은데 연관검색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변화? 혁신? 애플? 그러다 우선 검색된 30여 권이라도 다 살펴보자는 생각에 모조리 훑어보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 창의성에 대해 조금이라도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더 막막해졌다. 모든 책이 ‘창의성은 후천적으로 길러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김 대리처럼 창의성에 대해 그저 막막한 사람들도 창의성을 기를 수 있다고, 충분히 가능하다고. 가장 충격적인 공통된 메시지는 “누구나 창의적이고, 창의성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기사도 검색해봤다. 검색 창에 ‘창의성’을 치고 여러 자료들을 살펴봤다. 예상대로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스티브 잡스가 가장 많이 거론되고, 아인슈타인, 피카소 등과 같이 그저 천재로 여겨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창의’와 연관 지어 있다.
이쯤에서 김 대리는 창의성을 포기하고 싶어진다. 인간의 본성이라는데 나한테만 그 본성이 사라진 걸까. 난 한 번도 내가 창의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누구나 창의적이라니.
누구나 시달리는 ‘창의성 콤플렉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창의성 콤플렉스에 시달린다.더/플레이랩이 그동안 많은 기업과 조직에서 창의/변화/혁신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정리한 ‘창의성 콤플렉스 원인’은 크게 3가지로 정리된다.
1. 창의성은 눈으로 관찰될 수 없는 심리․인지적 현상이기 때문에 여전히 모호한 개념이다.
2. 창의적 업적을 이룬 위대한 위인들의 그늘에 가려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게 된다.
3. 위 두 가지 이유가 합쳐져 창의성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만들어내고 있다.
김 대리가 일상에서 창의성 콤플렉스에 시달린 이유는 1, 2번과 연관되고 이들은 세 번째 원인인 ‘창의성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만들어낸다. ‘창의적이려면 기본적으로 아이큐가 높아야 한다’ ‘창의적인 것은 무조건 기존 방식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창의적인 사람은 튀는 외모로 독특한 행동을 한다’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없으면 창의성이 아니다’. 이 외에도 무수히 많은 잘못된 명제들이 창의성을 이해하는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이쯤에서 제대로 된 창의성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작업은, 창의성을 인수 분해하는 것이다. 창의성은 ‘창의력(創意力)’과 ‘창의적 인성(人性)’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창의력’은 문제해결을 위해 새롭고 유익한 아이디어를 생성, 발전 및 변형시키는 사고능력이다. 여기서 ‘능력(能力)’이란 내재되어 있는 잠재력을 바탕으로 학습을 통해 발현되는 정신적․신체적 기능을 일컫는다. 후천적인 학습과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키우고 유지할 수 있는 생각의 근육이라는 것이다. 하버드 경영대학교 교수 클레이턴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도 “창의력의 80%는 습득해서 얻는 것”라고 했다.
우리에게 창의성이 어려운 이유는 바로 두 번째 요소 ‘창의적 인성(人性)’으로 인한 것이 많다. 창의적 인성은 개인 성품을 뜻하는 말로, 그 사람만의 고유한 사고/태도/행동 특성을 말한다.
유명한 창의 컨설턴트 조던 아얀은 창의적 인성을 크게 4가지로 분류했다. ‘호기심(Curiosity)’, ‘열린 마음(Openness)’, ‘위험 감수(Risk-taking)’, ‘에너지(Energy)’가 그것이다. 전에 없던 새롭고 획기적인 것을 생각해내는 단순한 능력만으로 창의적 인성을 말할 수는 없다. 창의성은 열린 마음과 호기심을 가지고 다양한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도전과 협업을 통해 새로운 방향으로 끌고 나가는 열정적 에너지를 통합한 단어다.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존재는 다름 아닌 아이들이다.
놀이터를 몇 분 만 관찰해도 이 사실은 알 수 있다. 얼마 전 오랜만에 찾아간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다 박장대소했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놀이터에 들르는 모두에게 스스럼없이 마구잡이로 묻는다. ‘이건 뭐에요?’ ‘저건 뭐에요?’. ‘열린 마음’은 경비 아저씨를 대하는 태도에서 대번에 알 수 있다. 아저씨를 보자마자 대뜸 이름을 묻고는 자신이 현재 뭘 하며 놀고 있는지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말을 꺼낼 때마다 “철수 아찌!”를 외치면서. 아저씨가 그런 아이들이 예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사이, 한 아이는 비장한 표정으로 미끄럼틀 위에서 우산을 펴고 하늘을 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처럼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즐겁게 놀던 우리의 창의 본성은, 어디로 갔을까. 창의성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는 김 대리도 창의적 유전자를 지닌 아이었을 텐데 어떤 이유로 그 유전자는 퇴행된 것일까.
연재 <창의 강점 찾기>는 4가지 창의적 인성 요소를 모두 지녔던 우리들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창의성의 씨앗을 다시 찾고자 한다. 그동안 잊고 지낸 그때의 감성과 열정, 마음의 근육들을 회복시키는 방법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누구나 창의적이라는 뻔한 이야기 보다는, 창의성도 ‘단계’가 있고, 창의성을 이루는 ‘역량’이 있다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금까지 막연하게 느껴온 창의성과 이를 이루는 창의요소들을 쉽고 재미있게 접근해 살펴보고, 그 역량들을 키워낼 수 있는 재미있는 전략적 놀이(strategic play) 방법들을 다양하게 제시해 보려고 한다.
오래 전 우리 안에 있었던 창의성 씨앗을 다시 찾는 여정을 이제, 시작 한다.
우린 모두 창의적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었던 이 땅의 김 대리들이니까
피고 ‘대한민국’이 패소한 이유
우리 사회에 ‘관존민비’ 풍토는 사라졌을까. 적어도 표면상으론 극복되는 분위기다. 70, 80년대 군사정권 시절과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을 느낄 만하다. 요즘엔 일반 시민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만큼 세상이 변한 건 사실이다.
최근 법원이 판결을 통해 국가기관의 불법행위나 과오를 추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아주 멀리는 70년대부터 최근의 사건까지 다양하다. ‘대한민국’을 피고로 한 소송 사례 몇가지를 짚어보자.
(참고로 민사소송에서 경찰청, 법원, 국회, 국정원 등 국가기관이 독립적으로 소송당사자가 될 수 없다. 이들이 소송을 하거나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하려면 당사자가 ‘대한민국’이 된다. 또한 헌법(29조)과 국가배상법(2조)에 따르면 공무원이 직무상 고의, 과실 등으로 국민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는 국가가 일단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국가는 고의나 과실 정도를 따져서 다시 해당공무원에게 책임을 묻는 형태를 취한다.)
70,80년대 노동현장 블랙리스트 사건
70, 80년대는 그야말로 살벌한 시대였다. 사회 정치적인 활동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 현장에서도 기본권을 주장하는 목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노동기본권 보장이나 민주노조 건설이라는 합법적인 요구조차도 철저하게 짓밟혔다. 그 가운데 국가기관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978년 ‘동일방직 사건’은 단적인 예이다. 당시 동일방직 노동자들은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어용노조를 몰아내기 위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노조 대의원 선거가 벌어진 78년 2월, 회사의 비호를 받은 반대파 조합원들은 폭력을 행사하고 똥물을 투척하면서 선거를 무산시켰다. 노조 집행부는 항의농성을 벌였고 그 후 노사가 ‘복직보장과 구속자석방’에 합의하여 조합원들은 회사 복귀를 앞두고 있었는데, 그해 4월 1일 회사쪽은 별다른 설명 없이 124명을 해고해버렸다.
이 해고자 명단은 전국 사업장에 배포, 관리되어 이들의 재취업은 차단되었다. 이 ‘블랙리스트’는 노동운동의 통제 수단으로 오랜 기간 활용되었다. 이 사건은 의혹 속에 묻혀있다가 2000년대 들어서야 진실이 밝혀졌다. 조합원 해고, 블랙리스트 관리 등 일련의 조치에 중앙정보부를 필두로 경찰, 노동부가 적극 개입하였던 것이다.
해고 노동자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동일방직 해고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 일부 승소했다.
국가는 30여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이 사건을 “노동권과 직업선택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오히려 공권력을 불법 개입시켜 원고들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규정한 뒤, 그런데도 “국가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권리남용에 해당해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7일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불법행위를 구성하고 이로 인하여 원고들이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이 명백하다”며 위자료 지급 판결을 내렸다.
동일방직 뿐이 아니었다. 지난 13일에는 1980년대 활동했던 ‘서통노조’ 임원들이 국가를 상대로 일부 승소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보안사령부, 중앙정보부, 노동부 등이 주도한 노조정화 사업으로 불법 구금, 해고되었으며 블랙리스트 작성, 동향 감시 등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양천경찰서 피의자 고문 사건
국가기관의 ‘폭력’은 수십년전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죄를 밝히려는 의욕이 지나쳤을까. 아니면 범죄를 부인하는 피의자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는 오기가 발동했을까. 서울 양천경찰서 피의자 가혹행위 사건, 아니 ‘고문사건’은 2010년에 발생한 사건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양천경찰서 강력팀 소속 형사들은 절도 혐의로 피의자 A씨를 체포하여 조사하게 되었다. 범행을 부인하자 형사들은 ‘작업’을 시작하였다. 일단 강력팀 사무실 안에서 수갑을 뒤로 채우고 있던 A씨를 넘어뜨렸다. 그리고 A입에 휴지를 넣고 테이프로 감아 소리를 못 지르게 한 뒤 양팔을 위로 꺾어 올리는 행동(일명 날개꺾기)을 반복하였다. 형사들은 A씨를 의자에 앉힌 뒤 머리를 잡고 같은 방법으로 고통을 주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은 2월 “강력팀 형사들은 범행을 부인하는 피의자에게 폭행을 가하여 고문하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며 “A씨가 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국가가) 금전으로나마 위자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 10월 25일에도 유사한 판결이 내려졌다. 양천경찰서에서 가혹행위를 당한 피해자 3명이 일부 승소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범행을 부인한다는 이유로 경찰서 사무실과 경찰관의 승용차 안에서 무차별 구타를 당했다.
법원은 “고문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적법절차, 고문을 받지 않을 권리 등을 천명하고 있는 현행 헌법질서 하에서 어떤 이유로든 용납될 수 없는 반인권적 범죄이자 문명사회에서 반드시 퇴치되어야 할 잔혹하고 야만적인 범죄”라고 설명했다. 법원은 가혹행위를 한 경찰에게는 형사책임을, 국가에게는 손해배상 책임을 물었다.
‘조두순 사건’ 피해자에 고통 준 검찰 조사는 위법
이른바 ‘조두순 사건’에서 성폭력 피해 어린이를 배려하지 않은 검찰 조사가 위법하므로 국가가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2008년 12월 경기도 안산에서 발생한 끔찍한 사고를 기억할 것이다. 아침에 등교하던 여자 어린이 B양(당시 8살)이 50대 남성에게 화장실로 끌려가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이 사고로 B양은 장기손상 등으로 대수술을 받은 것을 물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는 등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 검찰 조사가 또다시 B양을 고통스럽게 했다.
검사는 2009년 1월 B양을 검찰청으로 불렀다. 당시 대수술을 받은 지 불과 2주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B양은 아버지와 함께 병원을 나섰다가 택시가 없어서 추위에 떨다가 병원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검사는 다시 피해자를 불렀고 아버지가 차량을 요청하자 검찰 차량을 보내주어 검찰청에 도착했다.
조사 당시 B양은 배변주머니를 달고 있었고, 수술 부위의 압박 때문에 비스듬히 겨우 앉아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검찰은 피해자 영상녹화 과정에서 기계 작동에 서툴러서 여러 차례 진술을 하게 만들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에 따르면 수사기관이 성폭력 피해자를 조사할 때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성폭력 전담검사가 조사를 해야 한다.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피해자가 편안한 상태에서 진술할 수 있도록 조사환경을 조성하고 피해자를 정당한 사유 없이 반복적으로 조사해서는 안 된다. 특히 피해자가 아동일 경우 피해 아동의 연령, 심신상태 또는 후유장애의 유무 등을 신중하게 고려하여 조사계획을 수립하고 조사준비를 철저히 하는 등 특별히 배려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당시 전담검사가 조사를 하지 않았다. 또한 검찰은 제대로 앉기도 힘든 B양을 직각 의자에 불편하게 앉아 4번씩이나 진술을 반복하게 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월 1심 판결을 통해 “수사 검사들이 성폭력법이 검사에게 부과하는 피해자에 대한 최선의 조사환경 조성, 필요 최소한의 조사 의무를 다하지 못하였다”며 “이같은 의무위반은 수사상 잘못이 객관적이고 명백한 경우로서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는 정도”라고 지적했다.
법원은 “불필요하게 반복된 조사 녹화로 인하여 B양과 어머니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상 넉넉히 추인할 수 있다”며 “피고(대한민국)는 검사들의 직무상 위법행위로 인하여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금전으로나마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항소심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26일 서울중앙지법 항소재판부(5민사부)는 국가의 항소를 기각했다.
수사기관의 중요한 임무는 범죄자 처벌뿐 아니라 피해자의 인권 존중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각인시켜준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