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강해3🍚(막12 13 17, 유튜브 교회 #활공교회, 설교원본-BAND: 활공교회)
https://youtu.be/soFnbM0zulo?si=wAw0msA1YZrgZytb
말씀:
[막12:13-17]
13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14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15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16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17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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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46 주 예수 우리 구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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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절,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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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회사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아 양해를 구합니다. 하지만 산골짜기에 사는 목사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만을 할 뿐입니다. 하지만 바울과 같이 현장에서 직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여러 말을 하는 사람과의 대면과 갈등의 이야기를 하는 좋은 장점이 있습니다. 이것을 비추어 보아 우리가 삶을 실제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를 헤아릴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주 외딴 곳에서 하나님의 설교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의 고통을 알지 못하고 자기 혼자 성경속에만 빠져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직장에 여러 고난를 겪으면서 또는 기쁨과 희로애락에 여러가지 것을 겪고 살아가며 나누는 간증은 오히려 우리에게 실제적인 신앙적인 유익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의 갈등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아 불편하셨더라면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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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장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단점이라면 좀 더 성경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단점이 있을 것입니다. 정말 골짜기 산골짜기에서 성경을 준비하는 목사님이라면 좀 더 성경에 집중해서 세상의 잡음을 듣지 않고 전할 수 있는 장점도 있을 것입니다. 여튼 언젠가는 회사가 그만둘 때에 더 성경 깊이가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비추는 지금의 설교를 많이 양해를 구합니다
자! 이번 주에는 회사에서 있는 그 갈등의 이야기를 오늘 본문에 비춰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너무 깊이는 이야기는 하지 못하구요. 사실 회사를 위해서 직원들을 위해서 제가 관철시키고자 하였던 바는 사실 하나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잘못한 생각도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아니면은 괜히 갈등만 조장하고 그들은 절대 나의 의견을 듣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저는 아예 처음부터 진노를 거두시고 회사 관계자분들의 일을 따라 줄테니 그냥 가볍게 이야기 하자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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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 처음 말한 대로 제가 이야기한 것은 하나도 들어 주지를 않았습니다. 제가 그렇게 한 이유는 갈등을 겪어 봤자 그들은 나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고(이직을 하려면 조용히 나가야...) 듣지 않는다라면 실제로 나의 말을 듣지 않았을 때의 상황이 얼마나 회사를 망하게 하는가를 실제로 보여주었을 때에 그들이 진심으로 깨달을 것을 알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예 대화를 되지 않는다면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제가 다 해줄테니 앞으로 회사가 어떻게 되나 한번 지켜보자는 것입니다
저도 미래 이후의 일은 예견하지 못합니다. 제 의견이 사실은 반영이 안됐기 때문에 저는 조용히 이 회사를 떠나고자 합니다. 내년 말에 떠나고자 하였는데 이직(새 곳 취직)이 되지 않는다라면 그냥 이직을 못하고 원래 계획대로 내년 말까지 있는 것입니다. 여튼, 제 의견이 반영되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곳을 떠나려고 이직하려 노력은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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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주제 넘은 생각이지만 저와 예수님의 그 죽음을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자신의 의를 다 이르려야 했지만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하나도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결국에는 율법주의자 즉 원칙주의자와 해롯당, 사두개인인 권세주의자, 로마를 의지한 권세주의자들에 의해서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원칙주의자 율법주의자와 권세주의자 세력주의자에 의해서 예수님은 죽임을 당했고 이제는 그의 사역은 끝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난 것이 끝난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마음과 뚯은 전 세계에 복음이 전달되었고 예수님의 말을 듣지 않았던 그 예루살렘과 유대지역은 로마인들의 와서 대학살을 당하고 나라까지 잃어버리는 2000년 대재앙적 수치를 당하였습니다. 또한 로마도 몇 년 뒤 폼페이우스의 대 폭발을 겪게 됩니다.(폼페이 화산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연결된 것을 아시는 분은 잘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승리인 것은, 오직 예수님의 복음이 많이 전해지고 오직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자는 철저하게 대재앙에 대지옥의 대형벌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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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구체적인 회사의 상황을 알지 못한다면 이것이 예수님과 과연 연관이 있는가라고 하는 의심을 가질지 모르지만 저 또한 구체적인 거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아시면 머리가 아프심, 회사 정보 유출방지 차원도...) 제가 하는 이야기를 믿지 않아도 예수님의 이야기와 상관이 없다 하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저는 주님이 주신 길을 단지 홀로 갈 뿐이며 그 회사 관계자와 이야기 하듯이 시간이 지나면 그 단면이 드러나 누가 진짜 옳은지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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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절,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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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예수님은 로마의 법과 이스라엘의 종교법을 다 지키려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로마에서 내라는 납세의 법을 유지하였고 예수님은 구약이 강조한 율법의 최고인 사랑의 법을 늘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것은 모두가 불법적인 모함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이사의 통치학인 로마의 법이라고 하는 것은 각 나라의 신앙의 자유를 지켜주어 사람을 보호하였던 것입니다. 그 나라에 사람이 없으면 어찌 그 나라의 이익을 취할 수 있겠습니까?
그 나라의 이익을 취하려면 일단은 사람이 살아야 하고 그 나라의 종교를 인정해 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교나 예수님 교회 그 신앙은 지켜 주는 것이 로마의 법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헤롯당은 예수님을 시기하고 자리 위협을 느껴 누명을 씌워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가이사를 비판하여 쿠데타를 하려는 것이 아니거든 그들은 가해자에 대한 모함하여 예수님을 죽이려 하였고 유대인 또한 예수님을 시기하고 자리 위협을 느껴 율법에 최고의 법인 사랑을 지켜왔던 예수님을 모함하여 억지로 죽이려 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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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또한 직장에서 그들이 원칙과 권세로서 저를 치고 누루고 싸우나 그러나 본래 우리가 섬기는 그 회사는 고객들과 직원을 위해 가장 먼저 이 사람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권세의 근본이고 제일 우선순위인 것이며 또한 회사의 원칙도 고객을 위한 것이 고객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원칙입니다. 제가 회사에서 가장 원했던 것은 당연히 고객을 위해서 고객을 사랑하기 위해서 고객을 챙기기 위해 권세가 따라주며 회사의 원칙이 따라주어야 하는 것을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객을 위해 회사의 권세를 관용할 수 있고 회사의 원칙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러한 것을 원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철벽! 원칙, 권세주의자는 저를 이해하지 못하고 내쫓거나 아니라 철저히 제 의견을 받지 아니하려 했던 것이었죠. 마지막 17절부터는 3년간 저의 직장 의견을 따라왔으나 마지막에는 저를 부인한 두 사람, 가룟유다와 베드로와 같은 두 사람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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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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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가이사에게 하나님 아버지께 모두 다 충실하였던 분이었던 것입니다. 절대 가이사를 모함하지 않았고 그리고 가이사이의 법대로 종교의 자유를 유대인과 같이 누리고 있으셨던 것이며 또 하나님의 최고의 법인 사랑으로 자신의 백성을 다스렸기에 어느 하나 소홀한 것이 없었던 것이 예수님이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아까 이야기했던 것처럼 주님은 아무 죄가 없는 가운데서도 부인을 당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였으나 후에 주님의 뜻을 동의하고 예수님께 고백하고 예수님과의 관계를 잘 회복하여 유지를 하였으나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관계가 회복되지 못하며 예수님을 향해 분 내고 화내고 배신감(자기 꼴깝)을 느끼고 자살을 하였던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주님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은 철저히 자기 유익만을 생각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돈도 안되고 권세도 누리지 못하자 원래부터 없던 믿음도 사라진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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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돈을 갈취하였고 가이사를 정복하여 권세를 누리고자 하였던 욕망의 사람이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계획이 아닌 것을 알고 철저한 자기 이익이 이루지 못함을 알게 되자 예수님을 배신자라 하고 오히려 자기가 예수님을 팔아 버린 배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배신하고 팔았던 것입니다. 너무나도 소름끼치는 일인 것입니다. 자신이 배신자면서 예수님을 배신자라 하죠.
가장 혹독한 길로 예수님을 내몰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배드로는 예수님과의 화해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그런 겸손한 사람이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끝까지 예수님을 위해 믿음이 있는 자요. 믿음직한 자이었던 것입니다. 이 둘의 현상이 놀랍게도 저에게도 있게 됩니다. 일을 할 때 일을 유익하고 효휼적이고 편하게 제가 이끄는 원칙대로 거의 모두를 이끌어가죠. 많은 선후배들이 저를 통해 유익을 얻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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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느날 권세를 가진 자?가 와서 3년만에 ‘너도 여전히 김진홍씨와 같은 방법으로 일하냐 생각이 같냐’고 물어보았을 때에 실상 모두가 저를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신실하게 저와 관계를 유지하였으나 다른 한 사람은 그렇게 편하게 유익을 얻어 놓고서는 저를 오히려 배신자라 모함하고 다니며 관계를 나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오히려 저를 배신자로 여겨 다른 사람들에게 모함하며 앞으로도 대화를 하지 않겠다라고 합니다.
오히려 내가 분노해야 하건만 나는 사과해도 그가 나에게 분노하면서 궁지로 몰아가 벌이는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어차피 그 당시 제 편을 들어줘봐야 그 권세자는 들어 주지도 않을 것이 뻔...) 그들이 사랑하는 아내와 처자식들이 있기에 어쩌면 그 가정을 지키기 위해 권세 앞에 비굴하게 고개 숙여야 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그것이 현실적으로 보이기에 그렇게 생각을 하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판단하고 심판할 것이지 제가 그들을 심판할 이유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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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결같이 모든 선후배들이 저는 다 잘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를 밟아 발판 삼아도 상관 없습니다. 누가 나빠짐 없이 예수님의 궁휼과 사랑과 평강 안에서 금생의 복과 영생의 축복을 다 누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저와 같이 비슷한 일을 겪으시는 모든 분들도 모든 상황을 극복하여 더 나은 직장 생활 더 나은 이직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을 드립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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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시험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와 같은 육체로 시험을 당하신 아드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약함을 극복을 할 수 있도록 우리 하나님 도와 주시옵소서 더 나은 직장 생활, 더 나은 이직이 되도록 우리 주님 모두 도와 주셔 평탄한 교회 담임 전도사로서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도와 이끌어 주시옵소서 저와 대척하든 자든 저와 연합자이든 모두 용서하옵시오며 평탄의 길을 만들어 이끌어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