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우병택 작
1.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와 사랑을 나누다 보면 어느덧 지쳐서 잠이 들 때가 종종 있다.
그녀란, 쉬 달뜨지 않고, 언제나 팔을 쭉, 벋지 않고도 단 한 자만 내밀면 손에 잡히는 거리에 있다. 그로해서 고양이 앞발처럼 앙증맞은 손이며, 언제나 부끄러운 듯 숙이고 있는 복숭아 꽃 색깔 닮은 목덜미며 도톰한 귓볼이며, 등홍색 입술이며 이젠 조금 모자란 듯한 머리카락이며 봉긋한 젖가슴이며 약간은 둔한 허리며 펑퍼짐한 엉덩이며-를 실컷 어루만져 볼 수 있어서 넘치게 좋다. 늘 둘은 함께 잠자고 먹고 서로 쳐다보며 히죽거린다. 간혹, 제혁이 ‘아, 인생이 어쩐지 자꾸만 처연스러워’ 라고 말하려면 어느덧 혜정이 무릎 앞까지 다가와서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그의 기운 없이 축 쳐진 어깨며 핏기 잃은 낯이며 굽은 등을 어루만지며 혹은 쓸어주며 ‘힘을 내요. 당신 먼저 이러시면 난 어쩌라고 그래요.’이젠 주름 몇까지 선한 애처로운 얼굴로 눈물까지 그렁한 그런- 그래서 주책없이 ‘홍홍’ 기분이 좋아져서 그녀의 허벅지며 겨드랑이를 닮아 없어질 때까지 사랑하다가 또 제풀에 지쳐서 잠이 들다가 깨곤 한다. 그때는 그녀의 자취가 어느덧 사라지고 불 꺼진 천지에 나 홀로 덩그러니 남아 있는데 동공이 커지는가 싶으면 안절뱅이 책상 위에 낡은 lap top이 어느새 젖줄이 끊어진 채로 깜빡거리며 그를 원망하는 듯 아니면 서러워하는 듯 뭐 그러면 얼른 칭얼대는 아이한테 젖 물리는 아내처럼 두 구멍에 두 녀석을 곶아 주는 그 행위가 가증스럽다 못해 마냥 미안하기도 하다.
그렇담 도대체 나란 존재는 누구인가?
언제부턴가 그녀와 내 아내는 하나로 뭉쳐져서 둘 다 모난 성미가 둥글어져 아내보다 너그러운 그녀와 그녀보다 인정 넉넉한 아내가 다정하기도 하고 내가 털복숭이를 아내한테도 또 그녀한테도 부비부비하다가 깜빡 체액을 쏟아내면 두 여자가 똑 같이 에이 나이답지 않게 칭얼거리네. 혹은 정말 그렇게 내가 좋아요? 호호 한다거나 하면 그는 얼핏 부끄럽기도 하고 또 대단한 것도 같고 해서 아아, 둘을 합쳐서 살 걸. 아쉬움을 쓸어 내며 조그만 냄비에 물을 담아 가스렌지에 올려놓고 탁, 소리를 내며 성냥을 켜면 손 닦고 돌아와서 보글보글 물이 끓고 라면 한 봉지 뜯어다가 스프부터 넣고 조금 뒤에 면을 넣으면 스프와 면이 뒤엉키고 노릇노릇 국물이 베어 나오고 서른 해 전에 갑자기 내 곁에서 사라진 엄마랑 괜히 목욕하다가 영원히 내 머릿속에 목욕만 하다 사라진 아부지랑 왕천 소주 한 모금 마시고 일곱에 울 엄마랑 아부지보다 먼저 간 사촌 동생, 동생은 혼자 낮잠을 자다가 마루에 놓인 소주병에 반 남은 것을 훌쩍 마셨나 보다고 했다. 그리고 속이 달아서 냇가로 튀듯이 달렸고 냇물을 퍼 마시고는 눈을 휘번득 뒤집고 어른들이 달려 올 동안에 그렇게 세상을 하직했다. 그 동생과 아내와 그녀가 쬐그만 냄비에서 이젠 제법 먹음직스럽게 맛이 들면 눈물 찔끔 한 방울 고 속에 떨어뜨리고 후룩 입술로 그녀와 아내를 엮어 내입 속으로 게걸스레 끌어들인다.
이런 게 바로 나라는 인간이다.
아, 나는 진정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지 아내를 사랑했었는지 그런 속에서 또 배부르면 잠을 청한다. 휴대전화가 울리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면 포도대장의 새끼쯤 되는 젊은 녀석이 내일쯤 두 시간 걸려서 두 시간 일하고 또 두 시간 걸려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그러다가 뚜뚜뚝하는 소리가 나면서 지금까지 크진 동공이 줄어들고 나는 아내도 그녀도 다 싫어서 잠으로 까무룩 하고 빠져든다.
어느 날은 그녀를 만지고 싶어서 또 털복숭이가 자꾸만 꼼지락대며 칭얼거려서 탱크보다 더 육중한 미니카를 끌고 그녀 집 앞에까지 가서 그녀의 그와 또 다른 짝이 그 집(그녀와 그는 한 집에 산다)문을 나서서 좀 더 건강해서 혹은 좀 더 오래 살고 싶어서(짝보다 더) 계단을 내려오는데 한 칸씩 한 일백 팔십 계단쯤 내려와서, 내려오면서 시동 걸린 차에 올라타고 나의 미니카를 힐끔 멸시하고 지나간다. 휘발유 냄새 속에 그녀가 잔뜩 길들여 놓은 일본산 아지나모도 냄새가 묻어져 나온다. 그래 부지런히 먹고 좀 더 빨리 그녀 곁에서 멀어져서 내가 아무런 걱정 없이 그녀의 집 앞에서 척척척척 네 자릿수의 비번을 누른 다음 현관문이 열리면 그녀가 막 들어가 모자란 잠을 자려는 순간 방문을 척 열고 들어가서 예쁜 발을 내 무릎 위에 올려놓고 조그만 발가락부터 자근자근 으깨어 물다가 게 중에서 제일 큰 발가락을 조물조물 만지기도 하고 손톱을 세워 꾹 눌러 주기도 하면 ‘아응, 좋아! 좋아!’ 그러면서 이번엔 다른 발을 내 무릎에 올려놓으면 또 은근슬쩍 엄지로 패인 궁을 지그시 눌러 주면 끙 ‘아구구, 좋아!’ 하면 허벅지도 배꼽으로 하여간 그렇게 물고기가 강물 위로 튕겨 오르듯 하다가 귓볼도 만져보고 입술도 슬쩍, 꼭지란 꼭지 또 패인 곳 모두를 은근 슬쩍 건드리면 털복숭이도 어느덧 좋아서 꿈틀거리는데 ‘아, 좋구나.’
이건 또 무슨 행태인지. 나는 내가 가끔 가증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다가 그녀의 얼굴이 아내가 되어 ‘아이, 주책없이 왜 또 난리 뻥구람!‘ 하며 무릎으로 눈덩이를 릭 킥을 날리듯이 할라치면 ’퍽,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나동그라져서 그녀가 괜시리 그리워지고 또 아쉽기도 하고, 그러다가 너무 아파서 눈물 찔끔 흘리다가 방문을 소리 없이 열고 현관문도 열고 일백 팔십 계단도 내려와서 미니카를 타고 자꾸자꾸 큰 길로 내닫다가 잠을 깼는지. 이제 막 자려다가 깬 선잠인지를 깨달았는지 하다가 얼마쯤 지난 시간쯤에 진한 라면 국물 마신 게 떠올라서 입맛을 쩍 다시다가 아, 울 엄니가 콩가루 반죽을 씩씩하게 하는데(아들인 나를 주려니까 힘이 나서) 그 옆에서 주먹으로 턱을 괴고 울 아버지가 눈이 충혈된 채로 엄마 가슴이 반죽을 할 때마다 출렁거리면 아부지도 전신이 출렁거리는지 자꾸만 이상하다가 내가 아버지랑 똑 닮아서 아부지랑 다른 쪽 주먹으로 내 눈텅이쯤을 괴고 아부지를 째려 보노라면 ’에이, 놈의 자슥!‘ 한 소리하고 문을 탁 닫고 나가면 엄마는 ’홍홍 이 맛있는 게 더 좋기도 할 텐데 뭘 저리 보챌까‘ 까닭 모를 웃음을 흘리고 널찍한 송판에 반죽을 척 깔아놓고 홍두깨로 씩씩 밀어서 두 배로 세배로 그렇게 열배로 늘리고 나서 서슬 푸른 칼로 싹뚝싹뚝 가락지게 자른 다음 손가락으로 툴툴 털어서 부글부글 끓는 물에 풀어 넣고, 파 쓴 거랑 마늘 다진 거랑 애호박 쓸어 놓은 거랑 돼지 부랄 잘게 쓴 거랑 두부 으깬 거랑 그리고는 몰라 나는 어렸으니깐 암튼 보글보글 끓이는데 어제 먹은 라면이 눈에 어른거리고 청상과부로 친정에 와 있던 앞집(뱃집이라 덩그런 우리 집 건넌방에서 훤히 보인다) 누나가 허연 젖통을 내 놓고 적삼을 벗어서 까뒤집어 놓고 이를 잡아 마당으로 내 던지며 구구구 소리를 낸다. 아 지금은 털복숭이이지만 그땐 잠지인가가 꼿꼿해져서 오줌 마려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젓가락이 제 짝을 이루지 못한 날에 나는 참 짜증이 많이 난다.
차라리 중국집에 짜장면을 시켜서 먹을라치면 성의 없이 따라오는 나무젓가락이 낫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그냥 포장 종이를 찢어서 나란히 붙은 놈을 꺼낸 다음 가랑이를 쭉 찢어서 갈라진 두 놈을 손바닥에 턱 올려놓고는 양 손바닥으로 부비부비를 잠깐만 해도 보푸라기가 떨어지고 매끈해지는데 요런 맛이 정에 겨울 때가 있다. 그런데 수저통에서 정해진 내 젓가락을 아내나 딸은 잘도 찾는데 나만 몽땅 들어서 휘적거리고 찾으니 두 여자가 함께 눈살을 찌푸리며 ‘아이 참, 제짝을 찾아야지 그게 뭐예요.’ 혹은 ‘뭐야!’ 그러면 나는 지레 주눅이 들어서 끽 소리도 못한 채 물러나서 아, 나는 왜 젓가락 한 짝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얼빵인가 하고 씁쓰레하면 ‘아, 아빠 이젠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다가 다 차려지면 드셔요.’ 드셔요? 그래, 그렇게만 하면 오죽 좋겠냐? 그런데 두 여자가 집에 있는 때엔 아무래도 가만히 있다는 게 자연스럽지 않단 말이거든. 그래서 짝이라도 맞춰 놓으려고 그러지. 언제부턴가 나는 짝이 내 짝이 아니라는 듯이 어설프단 말이거든. 그 흔한 신발, 양말, 1학기 국어 책과 2학기 국어 책. 신주머니와 가방. 내 미니카의 바퀴 넷. 국민 학교 3학년까지 함께 앉았던 나와 그 가시나. 내가 미니카를 몰 때 조수석에 앉았던 지금은 스물일곱 된 십년 전의 그 소녀. 내가 홍홍대며 추근거리기 한 삽 백 육십일쯤 하면 하는 수 없이 내 손 잡아주던 그 이웃집 아줌마. 나랑 함께 있으면 마음이 포근하다며 먹을 것 사주고 잠자리 마련해 주고, 용돈까지 준 주유소에서 기름 넣으며 아르바이트 하던 사십 전의 친구 놈도 있었다. 아, 그렇지만 가장 아쉬운 것은 잘 하지 못하는 공부라도 좀 잘 해 보려고 독서실의 형광등을 벗을 삼아 참고서에 줄만 치다가 일 년 만에 잃어버린 내 오른쪽 눈. 그때 나는 짝 잃은 눈을 원망하며 똑 바로 걷지 못하고 한쪽으로 비칠거리며 걷는 내 그림자를 보고 또 얼마나 많은 왕천 소주를 마셔댔던가.
또, 막 내 기억 속의 어느 순간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헤엄쳐 다닐 때가 있다.
나는 열 네 살쯤의 소년이다. 때는 뽕 나무가 끝없이 두 줄로 널어 선 강가의 여름이다. 나를 꼬득여 소한테 풀 뜯기려고 함께 간 이웃집 동갑 소녀가 내 바지를 내리고는 잠지를 만지작거린다. 내가 뒤로 움찔 물러난 것은 그녀의 손길이 두렵다거나 싫어서가 아니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머슴 부길이가 시커먼 털복숭이를 꺼내들고 소녀의 치마를 들추고는 씩씩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같았으면 냅다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부길이 니는 퍼뜩 떨어져서 내빼지 못할까!-
라고만 했어도 그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어찌 된 일인지 소녀의 손길이 싫지 않았다. 소녀는 부길의 털복숭이가 좋은 듯 홍홍 소리를 냈다. 그럴 때마다 내 잠지 잡은 소녀의 손에 힘이 더해 갔다. 한 순간 하늘이 파랬다가 노랗게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눈 깜짝 할 사이에 벌어졌다. 부길이 소녀의 어깨를 짚고 푹 쓰러졌다. 소녀가 내 앞으로 엎어지고 부길이 ‘끙‘하고 나뒹굴었다. 순간 서슬이 퍼런 할아버지의 눈길과 내 눈길이 마주치는가 하는 때에 지게막대기가 부길의 어께죽지를 두 번째 강타하고 있었다. 어느 틈엔지 소녀가 강가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나도 바지춤을 움켜쥐고 소녀의 뒤를 따라 뛰었다. ’아이고 살려 주시유! 어르신‘하는 부길의 비명 섞인 울부짖음이 강변을 맴돌았다. 키 큰 포푸라 나무에 매달린 매미들이 한꺼번에 맴 하고 우리를 비웃었다. 그날 밤 이후 소녀네 집안은 마을에서 자취를 감췄다. 부길이도 두 번 다시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이후로 꼭 집어서 말 하긴 뭐해도 '보고잡다', '그립다'라는 말이 입 안에서 뱅뱅 돌아다녔다.
서른쯤에 내가 만난 짝은 내 건전한 짝으로는 어울리지 않았다. 고향에서 야반도주한 그 소녀와 같은 또래의 소녀였다. 주변에서는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지만 나는 누가 뭐래도 이 소녀를 내 아내로 삼아야한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소녀의 집에서도 -이태만 더- 하다가 -한 해만 더-하더니 그녀가 가출을 단행하자 열여덟 되던 해에 결혼을 허락했다. 그 동안 나는 뽕나무밭의 소녀를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소녀가 나를 끌어안는다. 나는 그녀 속에 있는 공백이 메워져가는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바닷가의 고운 모래가 달빛 속에서 무너질 때와 같은 조용한 소리다. 숨을 죽이고 그 소리에 귀 기울인다. 나는 내가 만든 가설 속에 있다. 해마가 쪼그라 들 때마다 가설의 바깥에 있다. 그리고 또 가설 속에 있다. 가설 바깥에 있다. 숨을 들이 마시고 멈추고 내뱉는다. 숨을 들이마시고 멈추고 내뱉는다. 인어공주가 머릿속에서 연체동물처럼 쉴 새 없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달이 뜨고 조수가 차오른다, 바닷물이 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창가의 산딸기나무 가지가 신경질적으로 흔들린다. 그녀를 꼭 껴안는다. 그녀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벌거벗은 가슴에 그녀의 숨결을 느낀다. 그녀는 내 속에 존재하는 근육 하나하나 더듬는다. 그리고 그녀는 빨개진 털복숭이를 치유하듯이 부드럽게 핥아준다. 그녀의 입속에 다시 한 번 벌컥벌컥 정액을 쏟아낸다. 그녀는 그것을 소중한 것인 양 삼킨다. 그녀의 성기에 키스한다. 혀끝으로 그녀의 전신을 핥는다. 그곳에서 다른 누군가로 변하고 다른 무언인가로 변한다. 해마라는 놈이 다른 어딘가로 숨어 버린 것이다.
"내 안에는 나만이 알아야할 건 아무 것도 없어“
하고 소녀가 말한다. 다음날 아침이 올 때까지 우리는 서로 끌어안은 채 몽롱한 시간이 지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한 소년과 소녀일 뿐이다. 이렇듯이 언제부터인지 내 옆에 있어야 할 것들이 하나씩 둘씩 흔적도 없이 사라져갔다.
증조모는 내가 철이든, 이후로는 쭉 혼자이다가 저승으로 갔다. 그렇지만 조부모, 내 부모, 다섯 삼촌, 두 외삼촌 사촌 형 둘까지, 아니 친구까지 짝으로 혹은 홀로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어느 날인가부터 내 짝이 일박이일 하더니 이박삼일 하더니 간혹 삼박사일까지 내 곁을 떠날 때면 나는 무척 즐겁다 못해 서럽다. 그래서 가만히 그녀를 따라, 뒤 따라서 가는데 너무 걸음이 빠르기도 하고 또 나보다 더 젊고 건장한 정체모를 거한이 내 멱살을 잡아서 내 키보다 두 자쯤 높이 쳐들면서 뒤 따라오다가는 숨 쉬기 어려울 거라며 윽박지르는데 어찌나 무서운지 그냥 그 자리에 서서 사라지는 짝을 쳐다보는데, 아쉽기도 하고 비감스럽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러다가 짠하고 기쁘기도 하고 또 그러다가 그게 꿈일 거야. 하다가 볼때기를 꼬집어보면 아프기도 하고 하다가 진짜 잠을 깨어 보면 나 홀로 잠을 자는데 텔레비전에서는 ‘시월드’인가가 방송되고 있어서 시어미와 며느리가 짝으로 나와서는 서로 헐뜯기도 하고 억지 칭찬이며 억지 주장을 하는데 나만 전후도 모르고 침을 흘리며 쳐다보다가 이제부터 정식으로 잠이 들어야지 하고 베개를 끌어다가 잠을 청한다.
2.
그런데 이건 또 뭔가? 그 무엇인가는 이렇게 시작 된다.
자유! 꿈! 행복!
제혁은 제2하나원의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빨간 독일산 벤츠버스가 들어서자 스물다섯 명에 끼어 버스에 올랐다. 석 달 동안 적응훈련을 받으며 서울 명동에 있는 L백화점까지 섭렵했다. 그렇지만 지금 이 기분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이다. 늘 위압감을 느끼던 검은 베레모들의 거수경례도 상냥하게 들렸다. 6,7,8월의 무더위는 하나원에 들면서부터 걱정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이런 곳이다. 그런데 하루에도 몇 명씩 교대하며 훈련을 시키는 교수 중에 노교수가 하는 나긋나긋한 말 속에는 모두에게 서릿발 같은 추위를 선물하기에 충분했다.
여러분은,
<비밀 특1-가> 원내에서 득한 어떠한 사실도 외부에서 발하지 말 것.
이 말의 뜻을 아는가?
누구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자본주의국가다.>
이 말이 여러분한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아는가?
제혁은 자유! 꿈! 행복을 찾아서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넜다.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면 ‘어떠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반드시 도착해야할 땅’이라고 각오하고 단행한 고난의 길이었다. 그런데 지금 노교수의 나긋나긋한 말이 우리한테 왜 달콤하게 들리지를 않는단 말인가? 갑자기 머릿속이 휑하니 빈 느낌인가 말이다.
“자본주의의 근간은 돈이다. 돈이 없는 대한민국 국민은 그 가치가 평가절하 되는 것이다. 이 말을 여러분은 명심해야할 것이다. 여러분이 북에서 어떤 일을 하고 살았다고 해도 그것 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된 이상 숨을 쉬는 것부터 물 한 모금 마시는 것 까지 모두 돈이다.”
긴 배후령 터널을 지나며 제혁의 머리를 잠시 스친 노교수의 말이 제혁에게 예사롭지 않았다. 제혁은 북에서 최고급 신분 출신이었다. 당 최고 간부였던 부친 덕분에 김책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덕분에 중국에서 자동차와 관련된 훈련을 받을 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북에 돌아와서 인민군에 입대해서도 탱크를 관리하는 부서에 배치되어 군 생활을 마쳤다. 제혁이 북에서 만큼은 기계와 관련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에 속하는 것이다.
김정일의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은 그런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김정일이 일거에 인민궁전에 안치되고 김정은이 들어서자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인민무력부에서도 고급간부며 언제까지라도 든든한 기둥이라고 믿었던 혜정 아버지의 추락이 이들의 행복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장인은 늘 서방세계를 동경했다. 그래서 비자금을 마련해 왔던 것이 발각 된 것이다. 이런 경우 사돈인 제혁의 아버지도 무사할 수만은 없는 게 북의 현실이다. 양부모님의 동의를 구하는 것보다 우선 북을 탈출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도 그들이 외부세계, 특히 한국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출신 좋은 집단에 속해있었기 때문이었다. 둘은 쉽게 마음이 통했고 겨울 휴가를 이용해서 동토를 떠났다. 중국 땅을 밟기까지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진행됐다. 그러나 중국에 도착하면서 여러 가지 난관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우선 그들이 미래를 보장받기에는 준비기간이 턱 없이 짧았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3.
영상 15도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봄이 온 것이 분명한데 나는 실내에서도 한겨울 복장으로 지낸다.
아침이면 주위 집들이 살아서 움직인다. 제대로 된 화장실에 들면, 거실에 오면, 안방에 와도 위층 사람들의 흔적들이 어른거린다. 그렇게 한 동안 꿈틀거리던 사람의 흔적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나면 나는 덩그러니 혼자 남는다.
먹을 것은 언제나 정해져 있고 결코 다 먹어서 없어지는 법이 없다. 영양식 한 끼, 저 칼로리식 한 끼, 그리고 푸짐한 차림 한 끼면 하루가 훌륭한 포만감에 안심이 된다.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아내가 외출하기 전에 이 모두를 장만해 놓는다. 운동하기 싫으면 저칼로리 식으로 하면 된다. 그렇게 요기를 하고 서서 어제 처음 읽은 책을 펼치고 햇살이 집안으로 잔뜩 들어오게 하고는 실내를 빙빙 돌며 책을 읽는다. 당 수치는 한 시간이면 정상이 될 것이다.
냉장고, 시계, 정수기, 공기청정기, 일주일 만에 귀가하는 아들이 켜놓은 컴퓨터와 딸이 켜 놓은 알람시계가 간혹 내 무심한 신경을 깨우곤 한다. 아기가 붙여놓은 각종 그림들이 간혹 떨어지는 소리도 들린다. 아기가 걷기 시작하면서 준비한 것인데 나는 아직 그 제품들의 이름을 모른다.
신간 책을 읽다보면 외국서적인데도 우리나라 제품이 눈에 띈다. 그들의 화장실문화까지 한류가 스며든 까닭이다. 사실 헤밍웨이 시절엔 메이드 인 코리아가 그들의 눈에 띌 일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드리 니페네거의 작품들 속에서도 우리 주방 조미료부터 화장품과 화장실 용품들의 제품 명칭이 눈에 익은 것들이 종종 등장한다.
아내가 준비해 둔 세 끼를 다 소화하면 나른해진다. 시계를 볼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컴퓨터만 켜면 오른쪽 하단에 시간도 함께 켜진다. 컴퓨터를 끄면, 그 시간도 사라진다. 눈이 피로하면 책 읽기를 그만 둬야한다. 아내가 물었다. 그렇게 책이 좋으냐고. 대답은 간단명료하다. 할 일이 없으니까.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게 잠이 들었나 보다. 아내가 누르는 전자키의 버턴 소리가 여섯 번 울리고 아내가 옷을 벗고 거실과 맞닿은 화장실로 간다. 이박 삼일로 여행을 다녀 온 다음날은 내게 무척 다정다감한 아내가 되지만 여행 직전에는 몹시 히스테릭해지는 경우가 많다. 오늘은 여행을 다녀온 뒤이니 걱정할 게 없어서 좋다. 아내가 사워를 하는 동안 까무룩 또 까무룩 잠에 빠져들었다.
따스한 기운이 느껴져서 잠이 깼다. 아내가 살며시 나를 만지고 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일어나 아내의 발을 마사지해 준다. 손에 먼저 닿은 왼발을 주무르면 곧 오른발을 들이댄다. 귀엽다. 드디어 내 짝을 만난 것이다. 브래이트나 클레어와 지낸 긴 하루였다. 그들은 내 아내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내의 숨소리가 고르다. 한참 빠져있는 클래어를 만나러 서재로 가려다 딸의 방문이 닫친 것을 본다. 딸이 돌아와 있다는 흔적이다. 아들 내외와 아기가 지내는 방문도 닫혀있다. 아하, 삼일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로구나. 다가오는 아침에는 풍성한 식단이 마련될 것이고 모처럼 온 가족이 둘러 앉아 한 주간의 일들을 얘기하는 행복한 시간이 될 것이다.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미국에 있어야 할 맏이가 와서 거실에 서 있다. '왜 온다는 사전 소식도 없이 왔느냐?'라고 물었다. 마치 미리 알았더라면 성대하게 환영이라도 할 것 인양 물었다. 아들은 빙글빙글 웃기만 한다. 아들 뒤엔 며느리와 손자도 함께 서 있다. 셋이 각자 하나씩 여행용 가방의 손잡이를 쥐고 서 있다. 먼저 손자한테로 눈길이 갔다. 미국 동부지역 유명 리틀 야구단의 단복을 착용하고 있다. 그 구단에 입단한 것이 얼마쯤 됐을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대략 몇 개월도 더 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번 여름방학엔 홍콩으로 학술세미나가 있어서 갈 예정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혼자서 잠깐 귀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분명히 꿈에 들은 말은 아니었는데 어째서 이 새벽에 온 아들 식구들이 낯설기만 한 건지 모를 일이다.
-해마에 문제가 있습니다. 점점 시나브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조금씩이긴 하지만.-
그래서 '헤모힘'의 힘으로 이겨보려고 한다.
-교수님,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제가 권하는 대로 이 제품을 복용해 보세요. 이름이 약이지 이건 순전히 자연에서 추출되는 건강기능식품이거든요. 해마, 그것 까짓것 걱정 없다니까요.-
내가 교수이기는 했었나? 이름도 가물가물한 내 제자라는 녀석이 박스째로 두고 갔다. 그녀의 말에 매달리듯이 포장지를 가위로 잘라 쪽쪽 빨아먹고 따듯한 물 한잔을 마시며 내 머릿속에 있는 해마란 놈이 결코 더 이상 움츠리지 않기를 바랐다. 딸이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두 봉지를 컵에 쏟아서 꿀 한 숟가락을 보태고 커피포터에서 물을 데워 커피 한 잔처럼 줬다. 그것을 마시고 나는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들네 식구들은 각자의 방으로 사라지듯이 자취를 감췄다. 아마도 먹고 죽는 것은 아니겠지.
아내를 닮은 여인이 닫힌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게 잠깐 보였다.
양말도 신지 않고 있다. 등을 곧게 편 자세의 우아한 걸음이다. 맨발로 걸어서 내게로 가까이 올 때마다 값싼 비닐장판이 뽀도독 혹은 파사삭 희미하게 소리를 낸다. 분명히 내게 익숙한 아내는 아니다. ‘이제야 옳게 짝을 만나는구나!’ 라고 생각했던 것이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언제부터인지 곧잘 내가 읽은 소설의 몇 구절이 이리저리 얽혀서 뇌리를 휘젓고 다닐 때가 있다.
그녀는 알몸이 되자 좁은 침대 안으로 들어온다. 흰 팔이 내 몸에 감긴다. 나는 그녀의 따뜻한 숨결을 목덜미에 느낀다. 넓적다리에 그녀의 음모가 와 닿는 것을 느낀다. 그녀는 아마도 나를 중국에 두고 온 자신의 남자로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방에서도 북쪽의 신방에서 했던 일을 그대로 되풀이하려고 하고 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당연한 일로, 잠든 채, 꿈을 꾸듯이. 그리고 그녀가 들어 주길 바라며 내가 애원하듯 속삭였다.
-내 머릿속 해마가 줄어들고 있대!-
그렇다면 해마를 살려야 한다. 춘천에서 만난 제자라는 그녀가 필요하다. 해마를 살릴 그 무엇이 있어야한다. '이것만 잘 마시면 해마는 살아납니다.' 그렇게 말 한 그녀는 누구였더라?
이런 위기일발의 순간에도 또 젊은이들이 내 모두를 지배하려고 한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먼저 와 있는 북한을 탈출한 동포들과의 소통이 도무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들과 둘은 그 시작부터가 달랐기 때문에 둘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너무 컸다. 심지어 둘은 자신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단정 짓고 시비를 걸어오는 인물도 있었다. 제혁은 ‘우선 아내인 혜정부터 한국 땅을 밟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탈출할 때 챙겨온 물건과 돈을 모두 끌어 모았다. 그리고 그것은 혜정을 끌어가는데 유용하게 사용됐다. 그들에게 돈으로 되지 않는 게 없다는 것을 실감하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혜정이 떠난 후 정확이 그들이 탈북한지 열 달 만에 혜정이 무사히 한국 땅을 밟았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혜정이 비교적 손쉽게 한국 땅을 밟은 것만큼 제혁은 혹독한 중국 생활을 경험해야 했다. 겨우 챙겨 온 것들을 모두 혜정의 손에 들려 보낸 제혁은 처음 부닥치는 거지꼴에 당황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짧지만 중국 유학시절에 익힌 중국어 덕을 톡톡히 봤다. 그것은 밤일망정 중국인 행세를 하며 여러 가지 돈벌이를 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번 돈마저도 대부분 혜정을 위해 썼다. 게다가 시시각각으로 엄습해오는 사냥꾼들의 위협은 늘 가슴을 죄게 했다. 사냥꾼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존재는 조선족들이었다. 그들은 한국을 자유롭게 오가며 북한 이탈 주민들을 먹잇감으로 삼았다. 돈이면 그들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존재가 조선족이었다.
더구나 제혁은 북에서 온 사냥꾼들한테 커다란 돈 덩이다. 북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은 만큼 그의 몸값은 상상을 초월하리만큼 높았다. 혜정이 안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제혁은 곧 바로 중국 탈출을 시도한 이유가 이런 몇 가지에 있었다. 제혁이 중국의 남쪽을 향해서 내려올 때는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혜정의 소식이 커다란 힘이 됐다.
혜정의 머리는 ‘오직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곧 신이라고 배웠다. 3개월 동안 돈은 남한 사회에서 살기 위한 수단일 뿐,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배웠다. 한국의 전통예절을 배운 이유도 그랬다. 그렇지만 그 모두는 돈과 관련이 없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표준어를 익혀서 남한에서 살기 편리하도록 했다. 한국 문화를 배워서 북한과 멀어지게 했다. 그중에서도 외래어를 익히는 시간이 많았다. 그 덕분에 남한의 어디를 가도 외래어를 자신보다 많이 알고 쓰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이런 여러 가지에 남한에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벌 수 있는 일 년치를 한꺼번에 수중에 넣은 혜정으로서는 날개를 단 기분이었다.
혜정이 하나원을 나온 뒤 불과 일 년도 되기 전에 강남과 분당에서 돈 잘 버는 여자로 통하기 시작했다. 피부미용 팀은 운전을 잘하는 한 사람(그는 지리를 잘 알고 운전 솜씨가 좋은 사람으로 매니저 역을 맡는다. 흔히 팀장이라고 부른다.)한 사람은 쇼 케이스를 담당하는 사람(허드렛일을 도맡는다. 물론 조수 역할을 잘 하는 사람이다.)그리고 혜정이 맡은 뷰티 걸이다. 수입은 팀장이 관리한다. 하루에 오전 오후와 저녁으로 나누어 일을 한다. 주로 뷰티삽이 아닌 가정집으로 출장을 한다.
월 소득이 천만 원을 넘게 된 혜정에게 부러울 것이 없다. 그렇지만 북에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하면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블로커를 통해 전화 통화도 했다. 물론 중국에서 출발한 남편 제혁과는 매일 통화를 했다. 그 덕에 제혁이 중국을 떠나 태국을 거쳐 입국하기까지 돈의 힘이 절대적으로 작용했다. 부로커들은 돈이면 하지 못 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제혁이 배후령 터널을 지나 분당으로 오는 길은 달랐다. 이미 사랑으로 달궈진 북의 혜정이 아니었다. 돈의 노예가 된 혜정이였다.
4.
나는 어떻게든 아내가 아닌 그녀를 깨워야하겠다고 생각한다.
잠을 깨워야만 한다. 그녀는 무엇인가 착각하고 있다. 거기에 대단히 큰 엇갈림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꿈이 아니다. 현실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간다. 나에게는 그 흐름을 제지할 힘이 없다. 나는 매우 혼란스럽고, 나 자신은 시간의 일그러짐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너 자신은 시간의 일그러짐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녀의 꿈이 네 의식을 눈 깜짝할 사이에 감싼다. 양수처럼 부드럽고 따뜻하게 감싼다. 그녀가 입고 있는 티셔츠를 벗기고, 반바지를 벗긴다. 네 목에 몇 번 입을 맞추고, 손을 뻗어 털복숭이를 잡는다. 그것은 이미 도자기처럼 딱딱하게 발기되어 있다. 그녀는 네 고환을 살며시 손에 쥔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네 손가락을 자신의 음모 밑으로 안내한다. 성기는 따뜻하게 젖어 있다. 그녀는 네 가슴에 입술을 갖다 댄다. 네 젖꼭지를 빤다. 네 손가락은 마치 빨려들어 가듯이 천천히 그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윽고 그녀는 똑바로 누운 네 몸 위에 올라탄다. 그리고 다리를 벌리고, 돌처럼 딱딱해진 털복숭이를 자기 안으로 이끈다. 너는 다른 아무 것도 선택할 수 없다. 오직 그녀만이 선택한다. 어떤 모양의 그림을 그리듯 깊숙이, 그녀는 엉덩이를 들어 허리를 비틀어댄다. 그녀의 곧은 머리카락이 네 어깨 위에서 버들가지처럼 소리 없이 춤춘다. 너는 조금씩 부드러운 진흙탕 속에 삼켜진다. 세계의 모든 것이 따뜻하고 촉촉하고 불분명하며, 그 가운데 털복숭만이 단단하고 윤기 나는 존재인 것이다. 눈을 감고 너 자신만의 꿈을 꾼다. 시간의 흐름이 무척 불명확해진다. 조수가 차오르고 달이 뜬다. 얼마 뒤 너는 사정한다. 물론 그것을 저지할 수 없다. 그녀 속에 몇 번씩이고 강하게 사정한다. 그녀는 때마다 수축하며, 쏟아낸 정액을 상냥하게 받아들인다. 그래도 그녀는 아직 자고 있다. 눈을 뜬 채 자고 있다. 그녀는 지금 북에 있다. 네가 분출한 정액이 북쪽세계에 삼켜진다.
아, 그런데 이런 경우는 무엇 때문일까? 한 동안 빠져 있던 어느 소설의 한 대목이 내 머릿속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렇게 전개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를 일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는 15층 위 옥탑이다. 이제 곧 알루미늄 사다리를 기어올라 접시 안테나가 놓인 곳까지 갈 것이다. 그리고 사방 10 킬로미터 정도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내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그녀는 이곳으로부터 백 오십 리, 60킬로미터 밖에 있다. 그녀는 대형마트에서 고기를 분류해 내고 있을 것이다. 국산과 외국산을 구별해 내고, 외국산은 호주산, 미국산, 캐나다산 등으로 세분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손엔 약간의 피가 묻혀진 목장갑이 끼어 있을 것이고 한 손엔 날카로운 칼이 들려져 있을 것이다. 그녀가 도려내는 힘으로 나는 오늘도 배불리 먹고 이제 곧 높은 전망대에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와 겹쳐지는 또 하나의 그리움이 스멀스멀 내 몸을 관통하기 시작한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그녀와 또 다른 그녀를 혼동하며 살아왔다. 호칭마저도 '당신'이라고 불러도 좋고 '여보'라고 불러도 상관은 없다. 얼마 전까지 그녀와 함께 살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뚝 떨어져서 살고 있으니 두 여자를 구별하려고 구태어 애쓰지 않아도 된다. 휴대전화기가 바지 주머니에서 푸르르 뜬다. 이태 전에 홀아비가 된 오년 연상의 박 형이다. 이 시간, 하늘이 맑은 오후 세 시쯤이면 내가 어디에 있을지 잘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
"거 망원경으로 가신 임 무덤만 쳐다보면 뭐 한답니까? 후딱 올라 오시우. 불루베리 주에 땅콩이라도 한 줌 들고 오시우. 내가 하모니카 한 두 곡쯤은 선사하리다."
그는 내가 주문한 것을 줨주섬 챙겨 들고 곧 올 것이다. 나는 그를 애타게 기다릴 필요가 없다. 먼저 접시 안테나까지 올라가서 아직도 펄펄 끓는 안테나가 만들어 놓는 응달에 신문지 두어 장만 펴 놓으면 그만이다. 그러면 그는 마실 것과 마른 안주를 전대에 차고 기어서 내가 깔아 놓은 자리까지 올 것이다. 그리고 한 잔 술이 목을 적실 때쯤이면 빤한 풍류를 또 한 자루 풀어 놓을 것이다.
"그 먼저 간 여자 말이오."
"그럼 형님은 나중에 갈 남자요?"
하고 맞장구를 쳐주면 그 빤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난 말이오. 돈이라면 참 많이 벌어 본 사람이오. 먼저 땅을 보고, 다음엔 후려치고, 그리고 집을 지었소. 나 때문에 울면서 가슴치고 눈 까뒤집어 뜨고 날 노려 본 사람들 참 많았소. 아무튼 그 사람들 울릴 때마다 내 주머니는 점점 부풀어져 갔다 이거요.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끓어 모우다 보니, 어느새 그 곱던 여자가 할망구가 되어 있더라 이 말이오. 아, 이를 어쩌나 하는데 뒤질 암이 딱 걸린 거라. 내가 반평생 동안 지은 죄 값을 내 여자가 고스란히 받을 줄 어찌 알았겠소? 그래도 그까짓 암이야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오. 그 동안 내가 살아오면서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없었듯이 내 여자 하나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퍼붓기만 한다면야 고치지 못 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었소.-
이쯤 해서 나는 얼큰하게 취했다. 그래서 '내가 무사히 지상으로 내려 갈 수 있을까?'라고 내 자신한테 물어 봤다. 내가 묻고 답하는 사이에도 박 형의 이야기는 두런두런 잘도 굴러간다.
-그런데 말이오. 선비양반! 돈으로 되지 않는 게 있더라 이 말이오. 고향에 있는 시전지 재산만 빼고 죄다 팔아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고친다는 병원으로 옮겼는데 기껏 기 천만 원 들이고는 죽어가더라 이 말이오. 허엉-
이 대목에서 나는 그와 눈물을 함께 찍었다.
-차암, 이봐요? 아, 그 여자가 죽기 직전에 산소마스크를 떼어 달라는 거요. 그리고는 하나뿐인 아들 내외를 물리치라는 거요. 그리고는 내 귀를 자신의 입까지 당겨놓고는 이러는 거외다, 씨팔~-허엉~
나도 까닭모를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미 다 외울 정도로 들은 이야기지만 어쩐지 이 대목만 나오면 가슴이 울컥해서 씨발~허엉~을 하고 만다.
-이렇게 말합디다. 남은 돈은 통장에 넣어두고 절대로 아들한테 죽는 그날까지 물려주면 안 되우. 약속하우. 그리고 또 한 가지. 끼니 거르지 말고. 알았지유? 그리고 또 마지막까지 함께 해준 그 누구한테 아낌없이 남겨주란 말이우. 딱 한 사람한테만. 절대로 남은 부동산의 명의는 당신 죽기 직전까지 아들 내외한테 넘기지 마시우-
"그리고는 곧 숨이 탁 멈췄다는 그 말이지요?"
"흠, 이제 다 외웠구랴. 자 보시오. 저 산 등성이 소나무 한 그루 보이지요? 저 밑에 그 여자를 묻었다우."
중학교 운동회 때 샀다는 쌍안경을 내게 들이밀었다. 낡기는 했으되 잘 보였다. 마침 앉았다가 날아가는 외가리 한 마리가 보였다. 박 형의 그 여자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벌렁 누웠다. 그 사이에 해가 지고 하늘엔 별이 총총했다. 새벽녘쯤에 술기운이 가시면 내려갈 것이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포근한 보금자리로 갈 것이다. 내 그리움의 여자들을 위하여.
한 짐 잔뜩 얹힌 지게를 지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다가 아내가 '제혁 아빠!'하고 부르는 소리에 퍼뜩 낮잠에서 깼다. 깨어서 옆을 더듬어보니 휑하다. 아내는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집에 있을 것이고 나는 벌써 보름째 타지에서 귀가하지 않았다. 보름 전에 귀가했더니, 점심은 중화요리를 시켜먹었는데, 잠시 친구 몇 만나서 수다 좀 떨고 오겠다더니 아예 밤 10시가 되어서 돌아왔다. 아내가 자리를 비운 텅 빈 공간에서 멀거니 예닐곱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다가 아내를 보자 벌떡 일어났다. 아무도 기다릴 사람 없는 곳이지만 돌아가야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내일 아침밥 따뜻하게 해서 함께 자시고 가요.”
"아니, 자동차 정기 검사 받아뒀고, 집안 청소도 했고, 재활용품도 수거장에 가져다 뒀소.'
내가 할 일은 다했다는 투로 말했다. 아내가
"삐치셨어요?"
라고 하며 따라 나오는 게 더 못마땅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와 마침 기다리듯 서 있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나이가 한살 더 해갈수록 하찮은 일에도 섭섭한 마음이 생긴다. 버스를 타면서 곧장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아내한테 그깟 일로 섭섭함을 느꼈는지 참 스스로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아내가 점심나절에 전화했다. '손주가 할배 보고싶다네요.' 그리고 손자를 바꿔줬다. '할아버지 왜 안 와?' 손자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듯한 손자의 목소리엔 안타까움이 실려 있었다. '그래, 할아버지가 바빠서 갈 수가 없네. 다음 주에 꼭 가마'라고 마음에도 없는 약속을 하고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깜빡 손녀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부부는 서로가 좀 더 냉정하게 상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평생을 함께 해 왔기에 서로에 대한 애틋함이 덜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한 때는 함께 있어도 그리웠던 아내다. 그랬었는데 내가 아내를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일이 차츰 줄어들더니 언젠가부터는 아내한테 조금씩 기대는 처지가 됐다.
어찌 하면 좋을지? 이대로 쭉 긴 평행선을 남기며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지지고 볶으면서 함께 살아갈 것인지? 손녀 얼굴이 어른거려서 주섬주섬 귀가 준비를 하면서도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도 박 형보다야 나은 듯해서 또 옥탑 위 접시 안테나 곁으로 가야 할까 보다.
아침 일찍이 내 원룸에 낯이 선 사람이 찾아왔다. 문을 열어 주자 반갑게 손을 내민다. 그런데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
“선생님, 저 기억 하시지요?”
“글쎄 뉘신가?”
“북에서 온 강제혁입니다.”
아뿔사, 나는 얼른 그를 문 밖으로 밀어내고 문을 닫았다. 뒤 따라온 박 형이 ‘왜 그러냐?’며 청년을 데리고 들어왔다. 나는 제혁을 알고 있다. 아니 알고 있었다.그리고 그의 아내인 송혜정이도 안다. 그런데 그것뿐이다. 그들 부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이때 해마란 놈이 부풀어 올랐는지 눈이 잔뜩 쌓인 경춘 고속도로가 떠올랐다. 그리고 빨간색 벤츠 리무진이 떠올랐다. 오늘의 이 사단은 거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리무진의 외형이 달랐다. 제혁이 탄 리무진보다 이전의 리무진이 문제였다. 그곳에 혜정이 있었다.
“해마가 문제였어.”
“아니, 해마가 지금 무어랍니까?”
갑자기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뽕나무 밭에서 부길이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며 모래사장을 내달렸다. 열네 살 소녀가 혜정이로 보였다. 아내가 전화를 했다고 박 형이 말했다. 박 형이 할아버지로 보였다. 아들이 미국에서 왔다고 했다. 아들이 제혁이로 보였다.
“아무래도 해마가 문제야. 나는 잘 못한 일이 없어.”
“교수님, 부티삽 원장님 전화만 알려 주시면 됩네다.”
나를 교수로 부르는 이 청년이 누구란 말인가? 내가 언제 교수였다는 것인가? 이제 아내가 나타나야 한다. 나는 아내를 필요로 한다. 나랑 잠을 잔 여자가 내 아내다. 잠을 잔 여자? 혜정이와 잠을 잔 것일까?부티삽 원 원장? 그녀가 열네 살 적 이웃집 소녀라고? 그렇다면 나는 제혁인가? 내 아들은 둘이다. 맏이는 미국에서 잘 나가는 교수로 살고 있다. 차남은 대한민국에서 똑똑한 컴퓨터 엔지니어로 살고 있다. 딸도 있다. 몇몇 대기업을 전전하다가 소도시에 있는 목재회사에서 무역업무를 맡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