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님들!!
무엇을 보시나요?
댁들이 나를 볼 때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현명하지 않고 변덕스런 성질과 초점 없는 눈을 가지고
투정이나 부리는 늙은 노인으로 보이겠지요?
음식을 흘리고 대답을 빨리빨리 못하냐고
댁들이 큰 소리로 말할 때면,
난 정말 당신들이 좀 더 노력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당신들이 귀찮다고 나에게 주먹질을 할 때는
그렇게 맞아 가면서도
난 정말 안 움직이는 몸 속에서 용기를 내어
헛 손질이나마 싸우고 싶었습니다.
댁들이 쉽게 하는 일조차
내가 제대로 못 알아차리는 것 같아 보이고,
양말이나 신발 한짝을 항상 잃어 버리는 늙은 노인으로밖에는 안 보였나요?
내가 저항(抵抗)하든 말든, 강제로 목욕을 시킬 때도
설거지통 그릇만도 못하고 댓돌만도 못한 내 몸뚱이에 눈물도 쏟아 냈지만,
그 눈물이 흐르는 물에 감추어져 당신들 눈에는 보이지 않았겠지요!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이 아닌, 그냥 먹여 주는 댁들의 눈에는
내가 <가축>보다 못난 노인으로 비추어졌던가요?
댁들은 나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시나요?
댁들은 나를 그런 식으로 보시나요?
나의 팔에 든 수많은 멍을 보고
당신들은 도화지 속에 아무렇게나 그려 놓은 망가진 보라색 도라지 꽃으로 보이던가요?
간호사님들!
그렇다면 이제 눈을 뜨고 그런 식으로 나를 보지 말아 주세요,
이 자리를 꼼짝 하지 않고 앉아서
나의 의지는 상실되어 댁들이 지시한 대로 행동하고
나의 의지가 아닌 댁들의 의지대로 먹고
온 몸에 멍이 들어도 아픔을 삭혀야 했던 내가 누구인지
이제 말하겠습니다.
내가 열살 어린 아이였을 땐
사랑하는 아버지도 있었고,
사랑하는 어머니도 있었고,
형제들도 자매들도 있었답니다.
열여섯이 되었을 땐
발에 날개를 달고 이제 곧 사랑할 사람을 만나려 다녔답니다.
스무살 땐
평생의 사랑을 평생 지키기로 약속한 결혼 서약을 기억하며 가슴이 고동을 쳤답니다.
스물 다섯살이 되었을 땐
안아 주고 감싸주는 행복한 가정을 필요로 하는 당신들 어린시절과 같이 귀엽던 어린 자녀들이 생겨 났답니다.
서른살 되었을 땐
어리기만 했던 자녀들이 급속히 성장해서 서로 오래도록 지속될 관계가 맺어졌답니다.
마흔살이 되었을 땐
어리기만 했던 아들 딸들이 성장해서 집을 떠나게 되었지만, 남편은 내 곁에 있어 슬프지 않았답니다
오십이 되었을 땐
내 자식들은 직장에서 일을 하고 손주를 제 무릎에 안겨 주며 그때 비로소 인생의 맛을 느끼는 나 자신을 알게 되었답니다.
마침내 어두운 날들이 찾아와
내 옆에 있던 이가 먼저 하늘로 떠나게 되면서
앞으로의 삶을 생각해 보니 두려운 마음에 몸이 오싹해졌답니다.
자녀들이 모두 자기의 자식을 키우고 있는 그 모습을 보고
난 내가 알고 있던 지난 날들과 사랑을 한번 생각해 봤답니다.
나는 이제 늙은이가 되었는데
참으로 우습게도 늙은이를 바보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들을 보면서
세월은 참으로 잔인한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봤답니다.
몸은 망가지고 우아함과 활기는 떠나버렸고
한때는 마음이었던 것들이 이제는 무딘 돌이 되어 버렸답니다.
시체와도 같은 이 늙은이 속에는
아직도 어린이 같은 마음은 살아 있어
가끔씩 다 망가진 이 가슴이 부풀어 오는 때가 있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 젊은 시절처럼 사랑하고 싶다는 꿈도 꾸어 본답니다.
즐거웠던 일들을 기억해 보고 고통스러웠던 일들을 기억해 보면서
난 지금 다시 한번 삶을 사랑하며 이렇게 살아가고 있답니다.
너무 짧고 빨리 지나간 지난날들을 생각하면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답니다.
이제, 사람들이여!
눈을 떠 보십시오!
눈을 떠 보십시오!
투정이나 부리는 늙은이로 보지 말고
좀 더 자세히 나를 봐 주세요!
당신의 아버지는 아니나,
아버지일 수도 있고
당신의 어머니는 아니나,
어머니일 수도 있습니다.
그냥 <가축>에게 모이를 주듯 하지 마세요....
그냥 먹고 싶습니다.
멍들게 하지 말아 주세요...
가슴 속에 멍을 안고 떠나지 말게 해 주세요.
사는 동안 간절한 내 소망입니다....!!
[출처] 요양원에 남긴 글,,,,,,"제발 때리지 말아주세요"|작성자 운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