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
오종락
조그만 그물 한 조각의 힘이 무척 위대하다네. 생명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담당하고 있네. 이젠 이런 그물을 얼굴에다 내 걸지 않으면 이웃집이 먼저 싫어하고 외면하네. 버스와 지하철은 아예 태워 주지도 않고, 사람 많은 곳은 얼씬도 못하게 하는 세상으로 변했네. 들숨날숨이 균형을 잃으니 온몸이 속박된 기분이 든다네. 그래도 하루하루 참고 살다보니, 이젠 제법 익숙해져 입마개도 나와 한몸이 되어가고 있다네. 외출 시, 지갑이나 휴대폰보다 먼저 챙겨야 하는 애장품 제1호가 '입마개'가 아닌가. 내 생명의 작은 수호천사이다.
그물 하면 흔히들 물고기를 잡는 어망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농촌 출신인 나는 누렁이 암소의 입마개가 떠오른다. 유년시절 누렁이를 몰고 들판을 지나갈 때면 먹성이 좋은 누렁이는 잠시도 쉬지 않고 길섶 농작물의 푸른 잎들을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외양간을 나서기 전 미리 입마개부터 채웠다. 입마개가 채워진 누렁이는 아무리 혀를 날름거려도 소용이 없었다.
지금 사람들의 몰골이 들판을 걸어가는 누렁이 신세보다 더 딱한 처지로 변했다. 누렁이는 일시적으로 풀을 먹는 것만 제약을 받았으나 공기는 코로 마음껏 들어마실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숨 쉬는 것조차 제약을 받으며 촘촘한 그물을 얼굴에 내다 걸어야만 밖으로 외출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닌가. 이런 환경이다 보니 세상이 온통 그물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입마개는 보통 3중, 4중 입체구조로 되어 있다. KF80, KF94, KF99와 같이 숫자가 높은 입마개는 숨쉬기조차 몹시 거북하다. 3중, 4중 입체구조의 조밀한 그물 앞에선 바람이나 공기마저도 쉽게 넘나들지 못한다. 그러니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나 세균 등 미생물인들 어찌 쉽게 침투할 수 있겠는가.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이런 입마개를 ‘마법의 그물’이라 명명하고 싶다.
이처럼 조밀한 입마개 그물을 만든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그건 아마 그만큼 미세한 공격 대상으로부터 인체를 방어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점점 진화하여 호시탐탐 인간들을 노리는 바이러스의 공격으로부터 호흡기를 방어할 땐 입마개 그물은 간편하면서도 최고의 방패가 아닌가. 가장 기본적이고 손쉬운 방어 전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착용 시 일상생활엔 많은 불편함이 따른다. 특히 온종일 말을 해야 하는 직장인들은 얼마나 힘이 들까 생각하니 내 가슴마저 답답하다.
이런 입마개라는 그물에 의존하여 홀로 거리를 걸을 때면 그물에 걸린 한 마리 물고기의 처지나 다름없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큰 도시 전체가 거대한 그물에 덮여 있는 모습 같으니 말이다. 물고기가 그물 안에서 쉽게 움직일 수 없듯, 시민들의 활동도 많은 제약을 받으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지금 인류는 지구촌의 거대한 어망에 갇힌 물고기 형국으로 변한 듯하다. 이런 거대한 그물은 과연 누가 무엇 때문에 쳐 놓았을까. 아마 우주 대자연이 심한 몸살을 하는 과정에서 던진 그물이 아닐까 한다. 그물은 그물을 치는 입장에선 분명 공격용 도구일 것이다. 대자연이 인간들을 꾸짖으며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이에 맞서 인간들도 살아남기 위해 또 다른 형태의 방어용 그물로 대응하고 있다. 방어를 해야 하는 인간의 입장에선 입마개는 방패와 같은 그물이다.
지금 거리의 사람들을 보라. 입마개를 얼굴에다 걸어 놓아야만 일단 안심하는 모습이다. 행인들은 얼굴에 제각기 다른 형태의 입마개를 단단히 걸치고 남들을 경계하며 유해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성능이 좋은 입마개를 걸치고 외출에 나설 때면 묵언 수행자가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콧등에 걸린 그물이 나를 이끌며 구도자의 길로 안내하고 있는 듯하다.
그동안 말을 함부로 많이 한데 대한 과보를 받는 것 같기도 하고, 공기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대기 환경을 오염시킨 것에 대해 질책하는 것 같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자연의 그물에 걸린 나는 이처럼 참회의 순간에 젖어든다. 입마개에 가린 코와 입은 자유를 갈망하지만, 함부로 벗어날 수도 없는 입장이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가 펄떡거리듯,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긴다. 외출 시간도 단축하고 아파트 현관문을 들어선다. 물고기가 어부의 손에 의해 그물에서 수족관으로 옮겨지는 순간 몸을 퍼덕이며 활기를 찾듯, 수족관이나 다름없는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 다소 안도감을 느낀다. 비로소 입마개 그물을 벗어던지며 후~하며 긴 한숨을 쉬게 된다.
겸손에 관한 격언에는 “영안으로 온 세상을 보니 마귀가 온 땅에 그물을 편 것을 보고 두려워 탄식하기를 누가 능히 이 그물을 벗어나겠는가? 하니 한 천사가 대답하기를 겸손한 자 만이 능히 이 마귀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고 대답했다. 또 안토니는 “마귀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겸손이요.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것은 교만이다.”라고 했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분명 인간들의 교만으로 인해 그물에 갇히는 과보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쳐놓은 그물을 벗어나려면, 겸손한 마음자세가 선행되어야 함을 잘 일깨워 주고 있는 듯. 가령, 지구촌 사람들 모두가 방어용 입마개를 제대로 착용한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어느 순간 코로나 바이러스도 갈 길을 잃고 부지불식간에 사라지고 없을지도 모를 일.
코로나의 그물은 참으로 질기고 빠져나오기도 힘겹다. 과학자들은 물론 전 세계가 코로나 백신에 기린의 목을 닮아 가고 있다. 지금으로선 이 고난의 강을 건너는 징검다리는 안갯속이다. 어쩌면 대책은 단순한 것이 효과적인지 모른다. 매사 조심하는 겸손한 태도가 방역의 기본이요. 각자 입마개 그물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잘 걸러 내는 게 최상의 비책이 아닐까. (20.9.16)
첫댓글 사람들이 쓴 마스크에서 소의 입에 씌우는 망울을 연상하는 재치가 돋보입니다. 하늘이 내리는 인드라 망은 모든 존재들이 연관되어 있어 의지해 살라는 뜻인데. 인간이 쓰는 마스크는 모든 것을 걸러 내 버리라는 뜻이니 하늘의 뜻과는 다르군요. 코로나가 퇴지되고 마스크가 사라질 날을 고대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적절한 비유와 표현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쓰디쓴 경고가 우리의 삶에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오만하지 말고 겸허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난관을 극복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마스크 쓰기, 대화 금지 라는 글을 지상열차 안에서 보곤 합니다. 눈에 안보이는 바이러스 때문에 촘촘한 그물로 호흡기를 감싼 우리들의 모습이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말씀처럼 늘 조심하고 겸손한 태도로 이겨내야 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길을 걸을 때 쓰고 다니는 마스크를 소의 머구리(소 입마개)로 비유한 점이 특이합니다. 언제 이러한 일이 끝날지 답답합니다. 그믈이란 의미는 단지 머구리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코로나 외에도 현 세태를 나타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옛날 농부들이 논 밭을 갈데 필수품이 소머거리 였습니다. 머거리를 씌우지 않으면 맛있는 풀의 유혹에 소가 방향을 잃어 제대로 일이 되질않아 인간이 고안한 것이지요.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말말말 말이 하도 많아 입 좀 다물고 살아라고 조물주가 내린 재앙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아무튼 기약 없는 재앙이 언제 끝날지 마스크 보다 더 답답한 마음 입니다.적절한 비유와 사람들이 나아갈 길 제시한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