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라 도시 위로 천천히 휴식의 잠이 흘렀다.
한편, 남쪽 하마다의 넓은 암석고원 위에서는 밤에도 잠이 찾아들지 않았다.
모래 위로 바람이 불어 산의 암반이 드러나면 모든 것이 추위로 마비되었다.
이런 사막의 길 위에서는 아무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언제나 피로와 햇빛에 충혈된,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살았고 또 죽어갔다.
때때로 청색인간들은 같은 부족의 한 남자가 펄럭거리는 다 해진 옷에 두 다리를 앞으로 뻗고 부동자세로 모래 위에 똑바로 앉아 있는 것을 만나곤 했다.
그의 잿빛 얼굴 위 검게 변한 두 눈동자는 모래언덕의 일렁이는 지평선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렇게 죽음은 그에게 덮쳐왔다.
잠은 물과 같다.
아무도 샘에서 멀리 떨어져서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성층권에서 부는 듯한 바람이 불어와 지상의 모든 열기를 앗아갔다.
그러나 붉은 계곡, 이곳에서는 유랑민들이 잠을 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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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엘 아이닌이 '치크로'를 암송하기 시작했다.
멀리서 부르는 염소 울음 같은 기이한 그의 목소리가 광장의 침묵 속으로 울려 퍼졌다.
그는 상체를 앞뒤로 흔들며 아주 나지막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광장과 도시의 침묵, 사기에 엘 함라 계곡 전체를 뒤덮은 침묵의 근원은 사막의 공허한 바람 속에 있었다. 살아 있는 동물의 목소리처럼 노인의 목소리는 낭랑하고 또렷했다.
누르는 전율하며 그 긴 부르짖음을 듣고 있었다.
광장에 있는 남자와 여자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린 듯했다.
벌써 태양은 서쪽 하마다의 깨어진 암벽 위를 붉은 노을로 넓게 물들이고 있었다.
무한히 드리워진 그림자들이 차례차례 모여서 차오르는 물줄기처럼 땅에 길게 뻗쳤다.
"신에게 영광을,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계시는 신에게.
아버지도 자식도 지지자도 없이 오직 혼자 살아 계시는 신에게 영광이 있기를.
사자를 통해 진리를 알려주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신에게 영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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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바위언덕 위로 해가 뜨자 남자와 여자들은 텐트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도취 속에서 며칠 밤낮을 보냈건만 아무도 피로를 느끼지 못했다.
그들은 말에 안장을 얹고 커다란 모직 텐트를 말아 접고 낙타에 짐을 실었다.
누르와 그의 형이 북쪽을 향해 먼지 낀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 하늘에 해는 아직 그리 높이 뜨지 않았다. 그들은 어깨 위에 양식과 옷 보따리를 지고 있었다.
그들 앞에는 다른 남자와 아이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잿빛과 붉은빛의 먼지구름이 푸른 하늘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스마라 성문 어디에선가 말을 탄 푸른 투사들과 그의 아들들에게 둘러싸여 마엘 아이닌이 사막의 평원을 가로질러 길게 늘어져 가고 있는 대상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하얀 망토를 다시 여민 후 나타의 목 위에 발을 올리고 출발신호를 했다.
그는 뒤돌아 보지도 않고 천천히 스마라에서 멀어져갔다.
종말을 향해 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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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거센 폭풍이 불어와 모든 것을 쓸어가버린다.
그러면 그 다음날에는 다시 마을을 건설해야만 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웃으면서 일한다.
너무나 가난하기 때문에 갖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그것을 만족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폭풍이 지나간 후 그들 머리 위의 하늘은 더욱더 크고, 더 파래지고, 햇빛 역시 더욱더 아름답기 때문이다.
어쨌든, 시테 주위엔 아주 편편한 평지와 먼지바람, 그리고 너무나 광대하여 한눈에 다 볼 수 없는 바다밖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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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라는 돌 밑에서 솟아난 샘물을 생각해본다.
그녀는 햇빛에 반짝 이는 아주 맑고 매끄러운 물을 생각해본다.
아암마가 빵반죽을 계속 주무르는 동안 랄라는 오랫동안 그 생각에 잠긴다.
청색인간의 그림자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소리 없이 물러간다.
그러나 그의 힘찬 시선은 여전히 그녀 위 공중에 남아 있어 바람결처럼 그녀를 감싼다.
아암마는 이제 입을 다물고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계속해서 큰 흙쟁반을 덜그럭거리며 그 위에다 빵반죽을 치고 주무른다.
아마 그녀도 알 아즈락의 진리의 말씀, 진실한 道와 같은, 길가의 돌멩이 밑에서 솟아나오는 아름답고 깊은 샘물을 생각하고 있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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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타니는 벌써 바위 위에 서 있다.
그는 조금 멀찌감치 물러선다.
긴 팔로 그의 둘레를 날고 있는 잠에 취한 박쥐 떼를 이리저리 쫓는다.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동굴의 어둠이 더 짙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슬픔이 그녀 몸속으로 밀려 들어와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이제는 어둡고, 박쥐도 무섭지 않다.
지금은 그녀가 하르타니의 손을 잡는다.
갑자기 벌어진 일에 몹시 동요되어 하르타니가 몸을 심하게 떨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그는 움직이지 않는다.
가슴을 뒤로 젖히고, 박쥐를 보지 않으려고 한 팔로 눈을 가리고 있다.
어찌나 심하게 떠는지 그의 이빨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동굴 문 쪽으로 그를 데리고 가서 바깥으로 잡아 끌어내려 머리와 어깨 위로 햇살이 넘쳐흐르는 양지로 데리고 간다.
대낮의 햇빛에 하르타니의 얼굴이 어찌나 수척하고 가련하게 보이는지 랄라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그녀는 찢어진 자신의 옷과 하르타니의 긴 셔츠 위에 묻은 흙을 털어낸다.
그러고 나서 암석고원 쪽으로 다시 비탈을 내려간다.
뾰족한 조약돌 위에 태양이 반짝이고 거의 검게 보이는 하늘 아래 대지는 희불그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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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하나하나 자리를 떠난다.
랄라 혼자 나망 노인과 함께 남아 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일을 끝마친다.
그리고 나망 노인마저도 송진냄비를 챙겨 들고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어간다.
이제 랄라 곁에는 아무도 없다.
꺼져가는 장작불 더미만 있을 뿐이다.
하늘 깊숙이 재빨리 어둠이 차오면, 낮의 강렬한 푸른색들은 점점 밤의 검은색으로 변한다.
왠지 알 수 없으나 이 순간에는 바다도 잔잔해진다.
파도가 부드럽게 해변의 모래 위에 부서지며 연보랏빛 거품으로 모래사장을 덮는다.
맨 먼저 나온 박쥐들이 곤충을 찾아 바다 위를 지그재그로 날기 시작하고 모기와 길 잃은 회색나비들도 몇 마리 파닥거린다.
쏙독새가 숨죽이며 흐느껴 우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온다.
장작 불 속에는 마치 잿더미 속에서 숨어 팔딱거리는 이상한 짐승들처럼, 불길도 연기도 없이 붉은 잉걸불만 몇 개 계속 타고 있다. 마지막 남은 잉걸불 하나가 몇 초 동안 더 활활 타다가 스러져가는 별처럼 사그라지자 랄라도 일어나서 자리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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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막, 그곳에서는 말야, 사람들이 며칠을 걸어도 집 한 채 보이지 않고 우물 하나도 마주칠 수 없을 때가 있단다.
왜냐하면 사막은 너무 광막해서 아무도 사막을 전부 샅샅이 알 수가 없기 때문이야.
사막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마치 바다 위에 뜬 배에 타고 있는 것과도 같아서 언제 다시 돌아올지 아무도 알 수 없어.
어떤 때는 폭풍우가 몰아치기도 하지, 그렇지만 이곳 같진 않아.
그 사막의 폭풍우는 정말 굉장하단다.
바람이 모래를 잡아채서는 하늘 위로 흩뿌려 던져놓는단다.
그러면 사람들은 길을 잃게 되고 모래 속에 빠져 죽어.
폭풍을 만난 배들처럼 길을 잃고 죽는 거야. 그러면 그들의 시체는 모래속에 고이 파문힌단다.
그 나라에는 모든 것이 그렇게 다를 수가 없어.
태양도 이곳 태양과 똑같지 않아. 더욱더 강렬하게 타올라서 어떤 남자들은 얼굴을 데고 눈이 멀어서 돌아오기도 한단다.
밤이 되면 너무나 추워서 길 잃은 사람들은 괴로워서 비명을 지를 정도야.
그 추위는 뼈를 바스러뜨린단다. 남자들도 여기 남자들 같지 않아 ....
그들은 잔인해. 여우처럼 사냥감을 엿보고 있다가 소리 없이 다가가지.
그들은 하르타니처럼 푸른 옷을 입고 얼굴에 베일을 쓰고 있으며, 살갗이 검어.
그들은 남자가 아니라 정령들, 악마의 자식들이지.
악마와 거래를 하는 마술사와도 같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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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는 무릎에 고개를 떨구고 잠이 든다.
나망 노인의 질식하는 듯한 숨소리가 때때로 그녀를 깨운다.
그녀가 묻는다.
“할아버지, 거기 계세요? 거기 아직 계시죠?"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잠도 자지 않는다. 그의 잿빛 얼굴이 문 쪽을 향하고 있다.
그의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다만 그 눈 너머에 있는 것을 감각으로 느끼고 있는 듯하다.
랄라는 잠을 쫓으려고 애를 쓴다. 잠이 든 후에 일어날 일이 두렵기 때문이다.
랄라의 심정은 저 먼 곳에 있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에서 조난 당해 파도에 흔들리고, 폭풍우의 소용돌이에 갇힌 어부들과 같다.
그들은 절대로 잠을 자면 안 된다. 바다가 그들을 잡아 심연으로 던져 삼켜버리기 때문이다.
랄라는 잠을 물리치려고 하지만 그녀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두 눈꺼풀이 감긴다.
몸이 뒤로 넘어지는 것을 느낀다.
나망 노인의 느린 숨소리에 실려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녀는 오랫동안 잠 속을 헤엄친다.
동이 트기 전에 그녀는 깜짝 놀라 깨어 일어난다. 그녀는 땅바닥에 누워 있는 노인을 쳐다본다. 팔을 베고 있는 그의 얼굴이 평온하게 보인다.
이제 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숨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바깥에는 바람이 그쳤다. 이제 더이상 위험은 없다.
마치 죽음이 한 번도, 그 어느 곳에도 지나가지 않았던 것처럼 모든 것이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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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타니의 얼굴은 긴장되어 있다.
마치 그의 이마와 뺨의 피부가 매끄러운 돌로 되어 있는 것 같다.
별들이, 수천 개의 별들이 그들 위에 펼쳐진 공간을 서서히 메운다.
별들은 흰빛을 던지며 파닥거리며 서로 한데 어울려 비밀스런 모양을 그리고 있다.
두 도망자는 눈을 크게 뜨고 거의 숨을 죽인 채 별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성좌들의 문 양이 그들 얼굴 위에 내려와 앉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그들의 시선에 의해서만이 이 별들이 존재하는 것 같으며, 이 별들은 부드러운 밤빛을 마시고 있는 것 같다. 부드러운 보슬비처럼 별빛이 내린다.
소리 없이, 먼지도 바람도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내린다.
이제 별빛은 돌밭을 밝히고 샘터 가까이에 서 있는 나무는 별빛을 받아 하얀 연기처럼 가볍고 나약하게 보인다. 이제 대지는 그렇게 편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배 앞머리처럼 길어진 대지는 앞뒤, 좌우로 흔들리면서 미끄러져 간다.
이렇게 대지는 아름다운 별들 사이로 천천히 흘러가고 아이들은 두 몸을 가볍게 서로 꼭 껴안고 사랑의 몸짓을 한다.
한참 후, 하르타니가 그녀에게 얼굴을 파묻고 조용히 잠들자, 랄라는 이 모든 별들의 몸짓을 바라본다.
맥박 치듯 파닥거리는 별빛, 떨리며 반짝이는 별들, 또는 눈동자처럼 고요히 빛나는 별들, 이 모든 별빛을 헤아린다.
하늘 더 높이, 그녀 오른편 위쪽에 넓은 은하수가 흐르고 있다.
나망 할아버지는 가브리엘의 새끼양의 피가 흘러 은히수가 된 것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녀는 별 무더기들로부터 내려오는 아주 창백한 빛을 마신다.
할라하와의 목소리가 부르던 노래 속에서처럼 갑자기 별빛이 그녀에게 아주 가까울 것 같다.
그러나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손을 하르타니의 목 위에 얹고 그의 동맥 속에서 혈액이 맥박치는 소리를 들으며 그의 편안한 숨소리를 느낀다. 밤은 태양과 건조함의 열기를 꺼버린다.
은하수 빛은 목마름, 배고픔, 고뇌를 진정시켰다.
보슬비 빗방울처럼, 하늘의 별 하나하나가 떨어져 살갖 위에 자국을 남긴다.
그들은 이제 대지를 보지 않는다. 두 아이들은 서로 껴안고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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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이 바다 건너 멀고 먼 여기까지 올 수 있을까?
그들이 이 수많은 도로 속에서 길을 찾아올 수 있을까?
이 수많은 문들 중에 그녀의 집 문을 찾을 수 있을까?
여전히 짙은 방안의 어둠 속에 너무나 큰 공허가 자리 잡는다.
그 공허가 어찌나 거대하게 느껴지는지 점점 빙빙 돌아서 랄라의 몸 앞에 큰 깔때기처럼 입을 벌린다. 현기증 나게 도는 깔때기 입이 그녀에게 달라붙어 그녀를 빨아들인다.
온 힘을 다해 그녀는 소파를 움켜쥐고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저항한다.
너무나 긴장하여 온몸이 부서질 것만 같다.
그녀는 소리를지르고 고함을 쳐서 이 침묵을 깨고 밤의 중압감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러나 목구멍이 죄어들어 소리가 튀어나오지 않는다.
고통스러운 노력 끝에 겨우 수증기가 새어나오듯 쌕쌕거리며 숨을 쉴 수 있다.
몇 분 아니 몇 시간인지도 모른다. 랄라는 이렇게 온몸이 경련에 사로잡혀서 발버둥친다.
그러다가 문득 건물 안마당에 새벽의 첫 미광이 나타나면 그제야 랄라는 그 소용돌이가 스르르풀리며 멀어지는 것을 느낀다.
힘없고 형체도 없이 흐물흐물하게 그녀의 몸이 펄쩍 소파에 쓰러진다.
그제야 랄리는 자기 몸 안에 있는 아이를 생각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기에게 속한 누군가에게 아픔을 주었다는 고뇌를 느끼고는 따뜻한 온기가 깊이 스며들때까지 두 손을 배 양쪽에 대고 가만 있는다.
랄라는 마치 숨을 쉬듯, 짧고 고요하게 흑흑거리며 오랫동안 소리 없이 흐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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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라는 이 골목 안에 불어오는 바람이 서서히 선회하며 움직이는 것처럼 공허의 현기증이 끊임없이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낀다.
혹시 이 바람이 더러운 집들의 지붕을 뽑아내고 문과 창문들을 부수고 썩은 벽들을 무너뜨리며 모든 자동차들을 뒤집어엎어 고철더미로 만들어버릴 수는 없을까?
그토록 많은 증오와 고통이 있는 이곳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야만 한다.
그러나 더러운 큰 건물은 그 높은 키로 사람들을 짓누르며 그대로 우뚝 서 있다.
핏빛 같은 잔인한 눈을 굴리며 꼼짝 않고 서 있는 이 괴물들은 여자와 남자들을 통째로 집어삼킨다. 괴물의 내장 속에서 젊은 여자들은 얼룩진 낡은 침대 매트에 드러누워 말 없는 남자들의 불씨처럼 타오르고 있는 성기에다 몇 초 동안을 소유 당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남자들은 침대 가에 놓인 담배가 다 타버릴 시간도 두지 않은 채 옷을 입고 가버린다. 사랑을 삼켜버리는 괴물 같은 건물 내부에는 늙은 여인들이 자신들을 짓누르고 그녀들의 노란 살을 더럽히는 육중한 남자 밑에 깔려 누워 있다.
그러면 이 모든 여인들의 뱃속에는 공허가 잉태된다.
이 강렬하고 차디찬 공허는 그들의 뱃속에서 빠져나와 바람이 되어 끝없는 소용돌이를 일으키면서 골목길과 거리를 따라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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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도처에 있는 이런 자들의 머리 위에 있다고 랄라는 생각한다.
그들은 거기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죽음은 생트 블랑슈 호텔 1층의 점은 가게 안, 석고로 만든 오랑캐꽃 다발과 대리석 평석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그곳, 썩고 오래된 집안에 그리고 남자들의 방과 복도에도 죽음이 있다.
그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그들은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바퀴벌레와 쥐 그리고 빈대의 영상을 하고서 밤마다 죽음의 장의사를 떠나 깊이 채워진 매트 속에 퍼져서 마룻바닥 위를 기고 우글거리며 독기서린 어둠처럼 모든 틈새를 가득 채운다.
그녀는 다시 일어나 통증이 심한 배 아래쪽을 두 손으로 꼭 누르고 비틀거리며 걷는다.
그녀는 이제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어디로 가야 하나?
그들, 그들은 살아 있고, 먹고, 마시고, 얘기한다.
그러는 동안 올가미가 그들 위에 들씌워진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잃었고 유배되었고 두들겨 맞았으며 모욕 당했다.
그들은 비를 맞으며 거리의 얼음처럼 냉랭한 바람 속에서 일을 한다.
그들은 자갈 땅에 구멍을 파며 그들의 손과 머리를 깨고 굴착기의 소음으로 미치광이가 된다.
그들이 걸음을 멈추면 죽음이 그들 주위로 올라온다.
바로 그들의 발밑, 생트 블랑슈 호텔 1층 장의사로부터 죽음이 올라온다.
그곳에서 기분 나쁜 눈을 가진 장의사 사람들이 그들을 말소하고 생명의 불을 끄며 욕심을 사라지게 한다. 그래서 텅 빈 옷에 얼굴과 손이 사라지고, 그 자리엔 밀랍가면과 장갑만이 비죽이 나와 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로 숨어야 하나?
랄라는 마침내 옛날처럼, 절벽 꼭대기에 있는 바다와 하늘만 보이던 하르타니의 동굴, 그 비밀 장소를 찾아가고 싶어진다.
그녀는 조그만 광장에 다다른다. 그리고 낡은 집 벽 앞에 있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는다.
그 집의 불 꺼진 창문들이 마치 거대한 죽음의 눈동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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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모두 당신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하와의 신비로움에 대해서 말예요. 하와가 누구죠?"
"제 이름은 하와가 아니에요. 제가 태어났을 때, 저는 이름이 없었어요. 그냥 블라 에슴이라고 불렀죠. 이 말은 이름이 없다 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하와라고 부르죠?
"그건, 제 어머니의 이름이었어요. 그리고 전 하와의 딸이니까. 제 이름도 하와인 것뿐이에요."
"어느 나라에서 왔죠?"
"제가 떠나온 나라는 저처럼 이름이 없어요."
"그 나라는 어디에 있나요?"
"그곳은 아무것도, 아무도 없는 곳이죠."
"이곳엔 왜 왔지요?"
“여행하는 걸 좋아해서요."
"일상생활에서 좋아하는 게 뭡니까?"
"삶이에요."
"식사는요?"
“과일."
"좋아하는 색깔이라면?"
“파란색."
“좋아하는 보석은?"
"길바닥의 돌멩이요”
“좋아하는 음악은?”
“자장가"
"시를 쓰신다고들 하던데요?"
"전 글을쓸 줄 몰라요"
“영화는 어때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요?"
"아무 계획도 없어요."
“당신에게 있어서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그러자 갑자기 랄라 하와는 지겨워졌다.
그래서 그녀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호텔 문을 밀고 나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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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두 다 하와의 리듬을 따라 발가락과 발뒤꿈치로 바닥을 두드리며 춤을 추고 있다.
아무도 말이라곤 하지 않는다. 아무도 숨소 리를 내지 않는다.
사람들은 도취해서 춤의 율동이 자기 자신 속에 들어와서 마치 바다 수면 위에 이는 회오리바람처럼 그들을 휩쓸어 가버리기를 기다린다.
하와의 숱 많은 머리카락이 어깨 위에서 박자 에 맞춰 들렸다 내려앉았다 하며 요동친다.
벌리고 있는 손가락들이 떨린다.
남자와 여자들의 맨발이 유리같이 매끌매끌한 바닥을 점점 더 빨리 두드리고 전자음악의 리듬도 따라서 점점 더 빨라진다. 커다란 홀에는 이제 벽돌도 거울도 불빛도 없다.
그것들은 춤의 현기증으로 말미암아 뒤집혀지고 사라졌다.
이제 희망 없는 이 도시, 동굴 같은 이 도시, 덫과 같은 길, 무덤과 같은 집이 많은 이 도시는 사라졌다. 거지와 창녀의 도시는 자취를 감추었다.
춤추는 사람들의 취한 시선이 이 모든 장애물과 과거의 거짓말들을 다 지워버렸다.
이제 랄라 하와의 주위에는 끝없는 먼지와 하얀 돌평원이 펼쳐진다.
모래와 소금이 살아 있는 공간, 모래언덕의 파도들이 펼쳐진다.
마치 옛날에, 모든 것이 끝나던 것처럼 보이던, 염소들이 다니는 오솔길 끝에서처럼 땅 끝, 하늘 바로 밑, 바람의 문턱에 와 있는 것 같다.
마치 그녀가 비밀이라고 부르는 에스 세르의 시선을 처음으로 느꼈을 때와 똑같다.
현기증이 일어나면서도 그녀의 발은 그녀를 점점더 빨리 맴돌게 한다.
그리고 오랜만에 처음으로 그녀는 자기를 쳐다보고 관찰하는 것 같은 어떤 시선을 다시 느낀다. 춤추는 사람들과 멀리, 안개 도시와도 멀리 떨어져, 막막하고 텅 빈 공간에서 비밀의 시선이 그 속으로 들어와서 그녀의 심장을 건드린다.
단번에 견디기 힘든 강렬한 한 줄기 빛이 타기 시작한다.
그 빛은 하얗고 뜨겁게 폭발하 여홀 전체에 퍼진다. 번개처럼 잽싸게 전구와 네온사인들을 운동 다 깨뜨리고 기타를 치는 연주가들의 손가락에 벼락을 내리며 확성기들을 전부 산산이 폭발시킬 것만 같다.
계속 돌면서, 랄라는 해체되는 마네킹처럼 제자리에 주저앉으며 유리알 같은 바닥으로 천천히 미끄러진다.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그녀는 혼자 오래 바닥에 누워 있다.
이윽고 사진사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온다.
춤추던 사람들은 방금 자신들에게 일어난 변화가 무엇인지 깨닫지도 못한 채 길을 비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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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에 찾아든 너무나 큰 침묵에 누르는 현기증을 느꼈다.
알 수 없는 이상한 힘이 먼 지 낀 땅으로부터 솟아 나와 소용돌이치며 사람들을 감쌌다.
그것은 어쩌면 석양빛이었는지도 모르고, 혹은 이 자리에 고정된 시선이 마치 갇혀 있는 물처럼 빠져나가려고 힘을 쓰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장님투사는 천천히 다시 일어났다.
모래와 눈물 범벅이 된 그의 얼굴이 햇빛에 드러났다.
하늘색 하이크 끝으로 마 엘 아이닌은 그 남자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지워버리려는 듯, 이마에, 타버린 눈꺼풀 위에 한 손을 얹었다.
침을 묻힌 손가락 끝으로 그는 장님의 눈꺼풀을 문질렸다.
침묵이 어찌나 오래 계속되었는지, 누르는 이제 그전에 일어난 일도, 그가 한 말도,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누르는 족장 옆, 모래 위에 앉아 서 새로운 빛으로 점점밝아지고 있는 듯한 장님투사의 얼굴만을 들여다보았다. 남자는 이제 신음을 그쳤다.
그는 족 장 앞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두 팔을 약간 벌린 채 상처 입은 두 눈을 아주 크게 뜨고서 마치 족장의 시선에 서서히 취해드는 듯이 서 있었다.
그러고 나서 비틀거리기는 했으나 이제 양팔을 벌리지는 않고 걸어갔다.
그의 몸속에 더이상 고통은 남아 있지 않았다.
사막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꼼짝 않고 그가 평원 저쪽끝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고통은 사라졌다. 이제 그의 얼굴은 평화롭고 온화했다.
지평선에 맞닿은 태양의 금빛 햇살이 그의 시선에 가득히 담겼다.
그리고 누르의 어깨에 얹은 그의 손도 이제는 어디로 가는지를 아는 사람이 얹고 있는 손처럼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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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즈의 자그마한 몸은 사냥꾼에 몰려 숲에서 뛰어나온 토끼처럼 달려간다. 검은 경찰차가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 차체는 점점 커진다. 네 바퀴가 잔 자갈 아스팔트를 집어삼킬 듯이 달려온다. 라디즈는 뛰어가면서 건물 정면 여기저기서 블라인드들이 올라가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면서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그가 도망쳐 달려가는 것을 보려고 발코니에 나와 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벽이 터진 곳이 하나 눈에 띈다.
이제 그는 벽 반대편 바다로 가는 큰길에 홀로 있다.
아마도 검은 경찰차가 주차장 출구까지 가서 이 큰길로 반회전하기까지는 약 삼사 분가량 걸릴 것이다. 소년은 생각하지 않아도 이것을 알고 있다.
마치 미칠 듯이 뛰고 있는 그의 심장과 두 다리가 그를 위해 생각을 대신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하나? 대로 끝, 백 미터도 안 되는 곳에는 바다와 바위들이 있다.
소년은 본능적으로 바로 그곳을 향해 계속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태양에 뜨거워진 공기가 두 눈을 때리고 눈물을 흐르게 한다.
귀에서는 이제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도로 위에는 햇빛이 강하게 부서지고 있다.
도로 맨 끝, 벼랑의 암벽 위로,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젖빛 색깔이 보인다.
그는 빨리 달린다. 이제는 포도 위를 달려오는 검은 경찰차의 타이어 소리도, 건물들 사이의 공간을 온통 가득 채우고 있는 두 음색의 끔찍한 클랙슨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몇 번만 더 뛰어가자, 다시, 다리야, 심장아, 몇 번만 더 뛰어다오.
이제 바다가 그리 멀지 않단다.
바다와 하늘이 뒤섞인 그곳에는 집도, 사람들도, 자동차도 없단다.
사냥개 떼에 금방 잡힐 듯 말 듯 뒤쫓기던 한 마리 노루처럼, 소년의 몸이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그곳을 향해 훌쩍 차도로 뛰어든 바로 그 순간, 커다란 파란 버스가 한 대, 아직도 헤드라이트를 켠 채 달려온다.
떠오르는 태양이 둥그런 앞창 유리 위에 번갯빛처럼 반사되며, 요란스런 양철 소리와 브레이크 소리 속에 라디즈의 몸은 보닛과 헤드라이트 위에 부서진다.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종려나무 공원 경계선에서 매우 침울한 한 젊은 여인이 그림자처럼 꼼짝 않고 숨죽이며 그 장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서 있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는다. 단지 바라보고만 있다. 사람들이 사방에서 달려나와 버스와 검은 경찰차 그리고 부서진 꼬마 도둑의 몸을 덮어놓은 담요 주위로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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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명이 밝아오기 바로 직전, 바깥의 대기가 고요하게 미동도 하지 않을 때, 아무 소리도 들리
지 않고 날벌레 소리 조차 나지 않을 때 마 엘 아이닌은 죽었다.
그의 손을 잡고 있던 메이무나가 숨이 끊어진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 곁에 누워 흐느끼며 오열하기 시작한다.
문 옆에 서 있던 누르는 마지막으로 하얀 망토 위에 누워 있는 대족장의 연약한 모습을 바라본다. 그의 모습은 너무나 가벼워서 땅 위를 날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고 나서 그는 뒷걸음질 쳐서 멀리 가버린다.
보름달이 비치는 밝은 잿빛의 평원 위, 어둠 속에 누르는 혼자가 되었다.
고통과 피로로 멀리 가지는 못하고 가시덤불 가까이 땅바닥에 넘어져 노래하듯이 곡하는 랄라 메이무나의 흐느끼는 소리 도 듣지 못한 채 이내 잠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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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해변 위에는 붉은 햇빛이 오렌지색이 되고, 마침내 황금빛으로 변하고 있다.
틀림없이 태양은 벌써 동쪽 마을의 돌언덕까지 솟아 오르고 있을 것이다.
랄라는 아기를 두 팔에 안고, 자기 이빨로 탯줄을 잘라 우느라고 헐떡거리는 아기의 조그마한 배둘레에 허리띠처럼 묶어놓는다.
천천히 그녀는 거친 모래 위를 힘들게 기어서 바다로 간다.
가벼운 거품 속에 무릎을 끓고서 세차게 울어대는 아기를 짠 바닷물에 담근다.
그녀는 아기를 정성스럽게 씻긴다. 그리고 다시 무화 과나무로 돌아가 헐렁한 밤색 외투 속에 아기를 내려놓는다. 랄라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전과 똑같은 본능적인 몸짓으로 무화과나무 뿌리 가까이에 있는 모래를 두 손으로 파고 태반을 묻는다.
이윽고, 아주 단단한 나무둥치 바로 곁에 머리를 두고 그녀는 나무 아래에 눕는다.
그녀는 외투를 펼치고 아기를 두 팔에 안아 퉁퉁 불은 젖가슴께로 가까이 갖다 댄다.
두 눈을 꼭 감은 아이가 조그만 얼굴을 가슴에 파묻고 젖을 빨기 시작하자 랄라는 이제야 피로에 잠겨 든다. 이제 막 비쳐오기 시작하는 아름다운 햇빛과 달려오는 한 무리의 짐승 떼처럼 파도가 비스듬히 밀려오는 몹시 파란 바다를 한순간 쳐다본다.
그녀의 두 눈이 스르르 감긴다. 그녀는 잠이 들지는 않았지만 수면 위에 오랫동안 둥둥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녀에게 꼭 붙어 있는 조그만 생명의 따뜻한 체온을 느낀다.
그 조그만 생명이 그녀의 젖가슴을 누르며 살겠다고 탐욕스럽게 젖을 빨고 있는 것이다.
"하와의 딸, 하와야" 하고 랄라는 속으로 아기를 불러 보며 생각한다.
그리고 단 한 번 마음속에 이런 생각을 떠올리자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만, 그 수많은 고통을 겪은 후 피어오르는 미소처럼 그녀의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제, 그녀는 성급한 생각도 하지 않고 타르칠한 종이 판자촌 시테에서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게 잡는 소년이나 삭은 나뭇가지를 찾아다니는 노파, 아니면 그저 바다새를 보려고 즐겨 모래언덕까지 산책하는 어린 소녀들, 이곳은 언제나 누군가가 오기 마련이다.
무화과나무 그늘이 몹시 시원하고, 또 감미롭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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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날 새벽, 남자와 여자들은 투사들을 위해 또 다른 무덤을 팠다.
그들의 말들도 묻어주었다.
그리고 그 무덤 위 에다 강바닥에 널려 있는 커다란 돌을 주워 눌러두었다.
일이 모두 다 끝났을 때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청색인간들은 남쪽 길 흔적을 따라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 흔적은 너무나 길어 끝이 없는 것 같았다.
누르는 맨발로 그들과 같이 걸어갔다. 그가 지니고 있는 것은 단지 모직 외투와 젖은 헝겊에 싼 약간의 빵뿐이었다.
그들은 이마지겐 족의 최후의 생존자들, 티드라린 족, 아루시인 족, 세바 족, 레기바트 사헬 족. 마지막 살아남은 베리크 알라 족, 베니 드 디외 족들이었다.
그들이 가진 것이라곤 그들의 눈이 목격했던 것 그리고 맨발의 감촉뿐, 그 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 앞에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진 아주 잔잔한 대지 위에는 소금덩이들이 반짝거리며 빛을 발하고 있었다. 땅은 물 결치며 훌륭한 성벽과 구슬처럼 반짝거리는 둥근 지붕이 덮인 하얀 도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사람들의 그림자가 끝 없이 깊은 샘물처럼 짙게 드리워질 때면 태양은 그 열로, 그들의 얼굴과 손을 태우고 빛으로 현기증을 불러일으켰다.
매일 저녁 피가 흐르는 그들의 입술은 시원한 샘물과 알칼리 성분이 있는 강들의 짭짤한 진흙탕물을 찾았다. 차디찬 밤이 그들을 에워쌌다.
사지가 끊어질 것 같고 숨이 막힐 것 같으며 목덜미를 무거운 짐이 짓누르는 것 같은 추위였다. 자유에로 가는 길은 끝이 없었다.
자유는 막막한 대지처럼 광활했으며 빛과 같이 아름답고 잔인하며 눈물처럼 감미로웠다.
매일 첫 새벽에 자유로운 사람들은, 그들의 거주지를 향해 남쪽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자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은 그곳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매일 똑같은 동작으로 불을 지퍼 자신들의 흔적을 태워버렸으며 배설물을 묻었다.
사막을 향해 돌아선 그들은 아무 말 없이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길을 떠났다.
마치 꿈속에서처럼 그들은 사라진 것이다.